'금강애기나리' 만나러 들어간 팔공산 수태골
■ 언제 : 2017. 5. 3.(수)
■ 어디로 : 팔공산 수태골 - 서봉(왕복)
■ 누구랑 : 홀로
흔적
사월초파일이다.
아내는 다니는 절에 점심 공양을 위해 봉사활동을 나가야 한다.
나랑 산이나 가자고 했더니 오늘은 어림 반푼어치도 없다.
그런 줄 알면서 일부러 못 먹는 감 찔러나 봤다.
어디로 갈까? 어디를 가는 것이 좋을까?
고민할 필요가 없다.
이럴 때 내게 딱 좋은 맞춤형 산이 있다.
내 곁엔 팔공산이 있지 않은가?
오늘은 팔공산 수태골로 해서 서봉으로 가는 것이 좋겠다.
그동안 수태골을 외면하기도 했지만,
지금 거길 가야 주근깨 아가씨를 만날 수 있다.
탄력이 붙으면 비로봉과 동봉으로 돌아 나올 참이다.
수태골 초입에는 보랏빛 강한 박태기나무가 한창 열정을 발하고 있다.
기분 좋은 출발이다.
병꽃나무가 올라 왔고 국수나무는 아직 눈곱만한 꽃망울만 자잘하게 붙어있다.
징검다리 건너기 전, 키 큰 나무에 하얀 꽃이 만발해 있다.
분명 야광나무 같아 보이는데
수태골 들어서며 언제 내가 야광나무가 빛을 발하는 저런 모습을 본 적이 있었는지 긴가민가하다.
위로 조금 더 올라가니 또 보인다.
역시 본 적이 있었던 것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하다.
이맘때면 분명히 봤을 텐데...
이 산 저 산 다니며 워낙 많이 보고 다닌 지라 이젠
어디서 무엇을 봤는지 헷갈리기까지 한다.
내가 가장 많이 애용하는 팔공산 산행 코스는
수태골, 치산계곡, 하늘정원, 가산산성이다.
물론 팔공산이 워낙 깊고 높은 산이라 다양한 코스가 있지만,
그래도 팔공산 웬만한 코스는 다 다녀봤다고 자부할 수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자만하지는 않는다.
팔공산은 워낙 골이 깊고 능선이 즐비해 팔공산맥이라 부르는 만큼
내가 다닌 수준을 빚 대어 팔공산을 다 안다고 얘기하기란 조족지혈이다.
암벽 등반 지점에 이르니 웬 중년의 여성이 록클라이밍(rock climbing)을 하고 있다.
밑에서 일행인 듯 남자가 로프(rope)로 제어하며 훈련을 시키는 것으로 보아
초보인 여성을 연습시키고 있나 보다.
밑에서 시키는 대로 곧 잘 따라한다.
대단한 우먼파워(womanpower)다.
평범한 길을 헉헉거리며 올라가는 나를 되돌아보니 제풀에 기가 꺾인다.
폭포에 도착하니 낙하하는 물이 시원하다.
퇴임한 듯 혼자 온 남자분이 연신 사진기를 꾹꾹 누르며 올라오는 날 보며
작가님이신지 묻는다.
‘작가는 무슨~, 저도 퇴직하면 혼자 노는 연습한다.’고 했더니
그러시냐며 점심으로 가져온 쑥떡을 먹으라고 권한다.
가게에서 2,000원 정도 주고 사온 떡인 것 같은데 4개가 있었다.
많은 것도 아니고 극구 사양했더니 기어코 먹으라며
자기 나무젓가락을 반 부러뜨려 한 개 찍어 건넨다.
거절하지 못해 먹었더니 한 개 더 먹으란다.
4개밖에 없는 쑥떡을 내가 반이나 먹었다.
폭포 옆 바위 위에 노루삼 한 그루가
낙하하는 폭포의 세찬 물줄기 옆에 다소곳이 비켜섰다.
팔공산에서 노루삼이란 녀석을 처음 상면하는 순간이다.
팔공산 어디에서도 노루삼을 본 적이 없고
더욱이 폭포 가에서 보리라고는 꿈에도 생각한 적이 없다.
그런데 이 녀석이 바위 위 명당에 떡하니 자리를 잡았다.
뿌리 내릴 곳도 없는 척박한 바위 위에 자리를 잡고
폭포에 이는 바람에 살랑대고 있다.
처음엔 이 녀석이 노루삼이 맞나 싶어 골똘히 살폈다.
수형과 꽃술로 보아 분명히 노루삼이 맞았다.
예기치 않았기에 ‘심봤다’란 느낌까지 들었다.
금강애기나리를 보자면 서봉으로 가야 한다.
수태골로 들어온 사람들은 대부분 동봉으로 바로 오르지 이 길로는 잘 가지 않는다.
전혀 없지는 않지만, 동봉으로 가는 것보다 상대적으로 발길이 뜸하다는 얘기다.
자주 가던 곳이라 시기에 따라 동봉으로 가느냐? 서봉으로 가느냐? 를 정하는 것은
오롯이 그 시기에 피어나는 꽃들이 내가 갈 길을 정해 준다.
금강애기나리를 목적으로 했으니 오늘 가야 하는 길은 동봉이 아니고 서봉이다.
이미 수태골로 들어올 때부터 금강애기나리가 내 갈 길을 정해 놓은 거나 다름없다.
서봉 턱 밑에 다다를 때쯤 지난번 태백산에서 봤던 시닥나무가 보인다.
꽃이 피진 않았지만, 잎을 가지 쪽으로 동그랗게 만 시닥나무는
꽃이 핀 모습보다 더 예쁘고 신비롭다.
시닥나무 옆에는 단풍나무가 예쁜 꽃을 피우고 있다.
작년에도 서봉에서 동봉을 지나가며 봤지만,
단풍나무 꽃이 어찌 저리 이쁜지 새삼 감탄을 자아내지 않을 수 없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오늘 팔공산 산행은 이것도 저것도 아닌 오로지 금강애기나리가 주된 표적이었다.
하지만 있어야 할 주근깨 머금은 애기나리의 모습이 보이지 않는다.
‘이런, 또 일찍 왔나보군’, ‘그럴 줄 알았다.’ 라며 혼자 쓴 입맛을 다신다.
아닌 게 아니라 작년에도 사월초파일 날 왔었지만,
작년은 양력으로 5월 14일이 사월초파일이었다.
그런데 올해는 5월 3일이 사월초파일 아니던가?
양력으로 열하루가 차이가 난다.
그래서 혹시 빠르지 않나 우려를 했었는데
결국 그 우려하는 마음이 실제 상황이 되어버렸다.
절기상으로 보아 음력을 믿었건만, 올해는 양력에 맞추어야 했다.
개화 상황으로 보아 대략 열흘은 더 기다려야 꽃을 볼 수 있었기 때문이다.
‘할 수 없지, 다음 기회를 노릴 수밖에’
그런데 아쉽게도 올해는 다음 기회란 주어지지 않을 것 같다.
아무래도 올해는 팔공산에서 금강애기나리를 못 보고 지나갈 것 같은
불운한 기운이 감돈다.
13일쯤 가면 분명 볼 수 있을 것 같은데
또 가야 할지 말아야 할지 걱정이다.
다른 곳에도 가야 하는데
그것이 문제로군.
매화말발도리
으름덩굴
매화말발도리
덩굴꽃마리
매화말발도리
양지꽃
매화말발도리
단풍나무 꽃
노랑제비꽃
노루삼
단풍나무 꽃
덩굴개별꽃
덩굴꽃마리
매화말발도리
박태기나무
병꽃나무
시닥나무
애기나리
야광나무
양지꽃
으름덩굴
줄딸기
큰개별꽃
큰구슬붕이
풀솜대
'팔공산' 카테고리의 다른 글
가뭄에 찌든 팔공산 치산계곡의 유월 (0) | 2017.06.18 |
---|---|
팔공산 가산의 5월 말 꽃 풍경 (0) | 2017.05.29 |
팔공산 계곡에 봄내음이 물씬~ (0) | 2017.04.16 |
팔공산의 겨울 잔상 (0) | 2017.03.06 |
가산산성 복수초 (0) | 2017.03.0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