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도바람꽃 찾아 헤멘 팔공산
너도는 간 곳 없고 팔공산에 남은 겨울만 붙들어 매 놓고 왔오이다.
■ 언제 : 2017. 3. 5.(일)
■ 어디로 : 팔공산 치산계곡
■ 누구랑 : 홀로
흔적
팔공산에서 바람꽃 종류를 본 적은 거의 없다.
본 정도라면 겨우 너도바람꽃이 지고 난 후 씨앗이 맺힌 모습과 어쩌다가 꿩의바람꽃을 본 정도가 다다.
팔공산이야 내 지역에 있어 무시로 드나들지만
바람꽃 무리는 쉬 본 적이 없다.
특히 노루귀는 어떤 색깔을 막론하고 단 한 번도 본 적이 없다.
팔공산에는 왜 노루귀랑 다양한 이름을 가진 바람꽃 무리가 귀한지 문득 의아한 생각이 들었다.
복수초 소식이 들리고 변산바람꽃이 카페나 블로그를 통해 마구 올라오는 어느 날
갑자기 내 고장 팔공의 바람꽃 무리에 대해 궁금증이 일어 웹서핑을 해 보았다.
아니나 다를까 지금까지 팔공산을 다녀도 내가 못 봐 그렇지 팔공산에서
너도와 나도바람꽃을 봤다고 올려 놓은 블로그가 있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블로그에 탑재한 내용에는 그저 팔공산이라고 두리뭉실하게 나타나 있기만 해
정확하게 어느 지점인가는 알 수가 없었다.
팔공산 꽤나 다녀봤다고 자신하는 내가 제대로 이 녀석들을 만나본 적이 없었으니
그 소식을 알고 보고 싶은 맘이 드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지도 몰랐다.
그래도 자주 다녀간 곳이라 대충 눈대중으로나마 어디쯤이면 볼 수 있을 것이라는
막연한 기대감에 이번에는 바람꽃을 겨냥해 사냥을을 나섰다.
이 녀석들을 만나자면 시기가 무척 중요하다.
너도바람꽃을 보기 위해 몇 년간 치산계곡을 찾았지만,
늘 시기가 빨랐거나 아니면 꽃이지고 씨를 맺은 후에 만남을 가진게 다였다.
이번에도 시기적으로 좀 이른 것 같은 느낌을 가졌지만,
토요일은 가산산성에 너도바람꽃이 있다는 정보를 입수하였기에 그쪽으로 가야만 했고
일요일인 오늘은 팔공산 치산계곡에도 혹시 폈지 않았나 하는 마음에 이쪽을 더듬어야 했다.
목적이 분명했으니 가산에 갔을 때도 평소보다 더 관심있게 관찰했고,
아예 간 적이 없던 계곡을 찾아 훑고 다니기도 했다.
그렇게 뒤지고 다녔건만 바람꽃은 코빼기도 보일 기미가 없었다.
'그러면 그렇지 내가 뭐...'
오늘 찾은 팔공산 또 다른 계곡도 바람꽃류를 보자면 내가 다닌 경험으로 비추어 무조건 빠르다는 판단이 섰다.
하지만 늘 아쉽게도 꽃이 지고 난 뒤에 씨방이 맺힌 걸 본 적이 있는지라
혹시 때를 놓치는 것은 아닐까 하는 조바심이 나 99% 못 볼 걸 예견하면서도 또 들어갔다.
이번에는 시작부터 아예 마음먹고 계곡을 타고 올랐다.
겨울 가뭄이 들어 계곡에 흐르는 물의 수량이 크게 많지 않아 계곡을 건너 다니기는 수월한 편이었다.
그동안 계곡 옆으로 난 등산로를 따라다녔기에 이참에 생전 가지 않았던 길인 계곡을 거슬러 갔다.
원하는 꽃은 못 볼지언정 계곡을 타는 심오한 맛을 느끼고 싶었던 것이다.
계곡을 타고 흐르는 물은 유리알 같이 맑고 투명했다.
여긴 햇살이 따가운 여름철이면 엄청나게 많은 인파가 몰리는 곳이지만,
그래도 팔공산 치산계곡은 오염원이 없어 일년내내 청정한 상태를 유지하고 있다.
유일하게 오염의 진원지를 찾자면 이 계곡을 찾는 인간들이지만,
요즘은 산을 찾는 사람들의 인식이 많이 계몽되어 그런지
상식 이하의 몰지각한 행동을 하는 사람이 드문 편이다.
산이 좋아 산을 찾는 한 사람으로서 지극히 바람직하게 생각한다.
오늘은 봄볕 같은 날씨라 그런지 치산계곡을 따라 올라가는 산객이 꽤 많다.
하지만 나처럼 계곡을 타고 거슬러 올라가는 사람은 한 명도 없다.
빛 좋고 물 맑은 너럭바위에 걸터 앉아 쉬는 사람은 있어도
다소 위험이 수반되는 계곡 탐험을 즐기는 이는 없는 것이다.
난 계곡을 타고 가면서 계곡 타는 재미에 매료되어 꽃은 잠시 잊었다.
평소 가기 힘든 길을 감으로 해서 얻는 카타르시스와
너럭바위로 흐르는 수정 같이 맑은 물을 보노라니 그 어떤 욕심도 생기지 않는다.
이 순간은 봄이 오는 문턱에 서서 남은 겨울을 즐기면 그만인 것이다.
폭포 양쪽 가장자리가 길게 얼어 붙은 사이로 떨어지는 폭포수는 그야말로 진풍경을 자아낸다.
오늘은 그 폭포 가운데 내가 섰다.
평소엔 폭포 옆 전망대에서 바라볼 뿐이었는데 오늘은 처음으로 폭포의 중심에 내가 서 있는 것이다.
내친김에 거친 삶의 여정을 끝내고 회귀하는 연어처럼 폭포를 거슬러 올라갔다.
폭포가 있는 이 계곡은 아직 겨울이 많이 남았다.
폭포를 거슬러 올라가자니 이끼 낀 바위가 얼어 있어 몹시 미끄럽다.
군데군데 위험한 구간이 있긴 하지만 그래도 조심조심하면 못 올라갈 일도 없을 것 같아 꾸역꾸역 올라 갔다.
그럼에도 멀리서 찍을 수없는 이 자리가 아니면 찍을 수 없는 광경은
놓치지 않고 셔터를 꾹 누르며 간다.
폭포 위 끄트머리까지 올라가 아래로 떨어지는 물을 한동안 바라봤다.
평상 시 같으면 언강생심 엄두를 내지 못할 길이건만
이 나이에 뭔 객기가 남아 위험을 감수하고 올라왔는지 나도 모를 일이다.
사시사철 물이 흐르는 계곡이라 그런지 이끼류가 많다.
흔히 보는 이끼류와 모양이 다른 왜구실사리(?) 아니면 선비늘이끼(?), 큰솔이끼(?)가 바위와 숲을 점령하다시피 했다.
솟은 바위 위에 잔디를 깔아 놓은냥 파릇파릇 새싹이 싱그럽다.
보고픈 꽃은 간 곳 없고 새파란 이끼류가 팔공산의 봄을 제일 먼저 맞이하는 것 같다.
이제 본격적으로 계곡 주변을 탐사해 보자.
능선에 올라 동봉으로 한 바퀴 돌아 나오는 것도 아니니 오늘은 이 주변의 계곡이나 몽땅 훑어 보자.
팔공산의 봄이 더디게 온다고 하나 샅샅이 뒤지다 보면 소기의 성과는 얻을 수 있겠지.
하지만 크게 기대는 하지 않는다.
이미 오면서 봤지만, 여긴 아직 현호색도 산괴불주머니도 그 흔하던 별꽃도 소식이 없었던 것이다.
보아하니 아마, 또 헛다리만 짚고 갈 공산이 크다.
평소에 하던 대로 늘 가던 계곡을 먼저 훑었다.
이 코스는 꽃이 올라 오기 시작하면 무섭게 번지는 곳이다.
봄부터 늦가을까지 온갖 꽃이 만발한다.
그러나 애석하게도 여긴 아직 봄소식이 요원하다.
보아하니 불길한 예감이 잘 들어맞을 것 같다.
가던 코스로 쭉 가면 안부에 다다른다.
오늘은 산행이 목적이 아니었기에 안부에 다다르기 전에 다시 내려와 다른 쪽 계곡을 훑었다.
다른 쪽 계곡을 훑자면 가지 않았던 또 다른 줄기의 산 허리를 타야 한다.
가 봐야 별 것도 없으리란 생각이 들었지만, 그래도 새로운 계곡을 만나는 반가움이 있어 일삼아 그리했다.
그러다 보면 뜻하지 않게 보고 싶은 바람꽃을 발견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기대감도 있고
새로운 곳을 개척한다는 의미도 함께 가질 수 있으니 그도 나름대로 의미가 있다.
내가 주로 헤메고 다닌 곳은 팔공산 서북능선 그늘진 곳이라 아직은 겨울을 그대로 안고 있다.
꽃은 간 곳 없고 황량한 산그늘 아래 낙엽은 얼어 있고, 빈 나뭇가지 사이로 휑하니 찬바람만 몰아친다.
그래도 처음 가는 길이라 여기에 이런 길도 있었나 싶은 호기심이 발동하여 한 걸음 한 걸음 더 올라갔다.
비록 만나고픈 인연은 외면당했지만, 로버트 프로스트의 '가지 않은 길'이 떠오르며
늘 다니던 팔공의 새로움에 또 다른 흥미를 느낀다.
새로움에 취해 무작정 갈 일만 아니기에 적당한 곳까지 올라갔다가 다시 내려왔다.
그리곤 또 다른 계곡을 찾아 누비기 시작했다.
오늘은 완전 계곡 탐사가 주를 이룬다.
팔공산 뒤통수 자락에 있는 계곡을 살쾡이처럼 누비고 다닌다.
꽃을 찾아 나비가 날아다니는 건지 꽃이 나비를 찾아 다니는 건지 분간도 못하겠다.
그저 발길 닿는 대로 바람 부는 대로 길 잃은 괭이 마냥 싸돌아 다니기 급급하다.
오늘은 그렇게 그렇게 팔공의 깊은 계곡에 남은 겨울 잔상과 긴 얘기를 나누다 왔다.
보고파 했던 꽃은 진즉 포기한 상태로...
하지만 어떤 목적으로 왔든 산에 오면 얻는 것이 있다.
산은 자신을 찾는 산객을 빈 손으로 돌려보내는 법이 없다.
그럼 난, 뭘 봤고 뭘 얻었으며 빈 손이 아님은 뭘 얻어 왔단 말이지?
보고파 했던 애의 형상학적인 모습은 그림자도 못 봤으면서...
머리가 맑아졌다.
폴딱폴딱 뛰던 심장이 제 자리를 잡은 것 같다.
빈 가슴에 스며든 땀이 마음의 풍요로움으로 가득 찼다.
걷지 않았던 새로운 길을 만난 희열이 남았다.
팔공산 겨울 잔상이 아직도 길게 남아 춘심과 공존하고 있음을 알았으며
곧 신록의 세계가 펼쳐질 조짐을 보고 왔다.
이만하면 많이 보고 많이 얻은 것이 아닌가...
산은 절대 빈객을 그냥 돌려 보내지 않는다.
그림으로 보는 팔공산 치산계곡의 겨울 잔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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