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공산 가산의 5월 말 꽃 풍경
■ 언제 : 2017. 5. 28.(일)
■ 어디로 : 팔공산 늘 가는 곳 중의 한 곳, 진남문에서 성곽따라 남포루로 올라 중문에서 저수지 뒤로 돌아 내려감.
■ 누구랑 : 나랑
■ 대략 12km쯤 걸었음
흔적
아내는 울릉도와 독도 탐방길에 나섰다.
2박 3일 일정으로 갔는데 파도가 심해 이틀이나 발이 묶였다.
금요일 저녁에 왔어야 하는데 일요일 늦게 도착했다.
아내가 속한 단체는 울릉도로 출발한 당일 독도로 갔다가 1차 시기 실패하고
다음 날 가까스로 독도에 발을 디뎠단다.
그 이후로 사나흘은 파도가 심해 독도 부근엔 근접도 못했다니
아내가 속한 단체는 억세게 운이 좋은 편이다.
울릉도에서 발이 묶여 일정에 차질이 빚어지자
걱정이 되는지 아내한테 전화가 왔다.
‘배가 못 뜬대’
‘내일 모래 금요일은 아예 출항을 못 하고, 잘못하면 토요일, 일요일도 배가 못 뜰 수 있대’
‘당신 밥은 어떡하지’
‘빌 씰데 없는 걱정 다 한다.’
‘잘 됐네. 이참에 울릉도 구석구석 다 구경하고 온나’
그 머리 왕복 10여km에 달하는 성인봉도 다녀오고
여기저기 많이 다녔단다.
피할 수 없으면 즐기라 하지 않았던가?
기왕지사 발이 묶여 오도 가도 못할 판이면
이 팀은 오히려 이 상황을 호재로 삼으면 된다.
아내가 속한 단체는 이틀을 더 머물며 결국 일요일 저녁나절에 돌아왔다.
울릉도와 더욱 가까운 벗이 되어 돌아온 것이다.
토요일은 친구 딸내미 결혼식이 있었다.
부조만 할 수 없기에 참석을 했더니
결혼식이 끝나고 서대감이 경주최씨 종가에 가잔다.
집까지 태워준다며 가자기에
두 부부 사이에 끼어 나랑 다섯이서 함께 갔다.
경주최씨 종가는 생각보다 예스러움에 전통미를 보탠 멋스러움을 간직하고 있었다.
수백 년 묵은 회화나무와 느티나무 노거수가 마을의 수호신인양
파수를 서고 있는 모습이 인상적이었고,
생각지도 않은 곳에서 지적 호기심이 발동하기도 했다.
최씨종가를 찬찬히 살펴본 후 내친김에 동구 평광동에 있는
신숭겸 영각 유허비가 있는 곳까지 내달렸다.
대구치고는 너무 외진 골짝에 있어 여기가 대구 맞나란 생각까지 들 정도였다.
서대감도 나름 많이 다녀본지라 구석구석 모르는 데가 없다.
내비게이션도 켜지 않고 내달리는 것을 보니 길눈도 상당히 밝은 편이다.
시부저기 따라나서 서대감 덕분에 구경 한번 잘했다.
날씨가 꽤 덥다.
모두 시원한 얼음물 한 잔 먹고 싶은 모양이다.
천연기념물 1호인 ‘도동측백수림’ 옆에 있는 커피숍으로 갔다.
마눌도 없이 따라 다녔으니 그 죄로 커피는 내가 샀다.
시원한 얼음커피 한 잔에 뜨거워진 몸뚱이를 잠시나마 식힐 수 있어 좋았다.
집에 오니 다섯시 정도 되었다.
아직 해가 창창하다.
남은 해가 아까워 가까운 와룡산 자락으로 갔다.
다녀간 지 일주일밖에 되지 않았으나
으아리, 꿀풀, 대극, 원추리가 있던 자리에 또 다른 뭐가 피어 있는지 궁금했다.
또 다른 녀석은 하나도 발견하지 못했다.
오히려 일주일 전보다 세력이 약화된 나약해진 들풀의 모습만 봤다.
날이 가물어 그런지 식생 상태가 그다지 마음에 들지 않았다.
&
오늘은 멀리 가기 그렇다.
또 어김없이 팔공산을 찾았다.
이번에도 팔공산 자락의 가산이다.
가산은 이맘때 가면 무엇을 보여 주어도 보여 줄 것이다.
진남문에서 성곽을 따라 중문 부근의 저수지 뒤로 크게 한 바퀴 돌아 나올 참이다.
다녀보면 알겠지만, 남포루까지는 별로 보여 주는 꽃이 없다.
남포루까지는 헉헉대며 오르다 조망 좋은 곳이 나오면 풍경을 즐기며 쉬어가면 된다.
하지만 풍경은 좋다마는, 꽃을 보자면 남포루를 지나 성곽 만댕이까지 올라가야 한다.
멀리 팔공산 비로봉이 선명하게 보이는 성곽에 올라서면
더 이상 힘든 길도 없고 조망도 좋아지고 꽃도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이제부터 본격적인 꽃사냥에 돌입한다.
풀치고는 멀대 같이 길쭉한 녀석이 먼저 보인다.
다름 아닌 장대나물이다.
장대나물이 간간이 보이는가 싶더니
하얀 꽃을 풍성하게 달고선 고광나무가 숲속의 그늘을 환하게 밝히고 있다.
역시 5월이 끝나갈 즈음의 가산은 찾아온 꽃쟁이를 무색하게 만들지 않는다.
가뭄이 극심한 날씨지만 나름 꽃이 풍성한 편이다.
가뭄이 워낙 심한지라 들꽃도 나무에 핀 꽃도 기력이 쇠하다.
가산에서 나름 귀한 은대난초를 봤건만,
꽃대에 올라온 꽃이 피다가 마른다.
팔공산 가산은 내가 가장 자주 찾는 곳 중의 한 곳이다.
그런데 오늘은 그동안 보지 못했던 뜻하지 않은 꽃을 보게 된다.
가산뿐만 아니라 팔공산 그 어떤 곳에서 민백미꽃을 본 적이 있었던가?
단언하건대 단 한 번도 만난 적이 없다.
민백미꽃을 처음 본 건 문경 대야산이었고,
그 다음에 본 곳은 영양 일월산이었다.
그런데 이 녀석이 여기에 떡하니 있는 게 아닌가.
오늘 여기서 처음 봤을 땐 이 녀석이 ‘는쟁이냉이’인가 했다.
팔공산과 민백미꽃이 연결될 리 만무하였기에
이 녀석이 민백미꽃이란 생각은 전혀 들지 않았던 것이다.
저수지를 빙 둘러 내려오자니 는쟁이냉이인가 했던 꽃이 다문다문 눈에 띈다.
그런데 눈에 띌수록 는쟁이냉이가 아니라 민백미꽃으로 보인다.
‘아니, 정녕 팔공산에도 민백미꽃이 있었단 말이지.’
‘어째서 지금까지 단 한 번도 내 눈에 띈 적이 없었지.’
의아해하지 않을 수 없는 대목이다.
수시로 드나들던 길인데 여태 만나지 못하고 오늘 보다니
다소 의뭉스럽기까지 하다.
민백미꽃도 꽃을 피운 게 있는가 하면 피다가 말라버린 녀석도 있다.
아마, 극심한 가뭄의 영향이리라.
비가 와야 할 텐데...
억세게 한 번이라도 내려야 할 텐데...
산에 와서 보니 가뭄에 대한 우려가 현실로 다가온다.
그러나 산천이 메말랐다고 모두 시든 것은 아니다.
싱싱한 녀석은 가뭄에 전혀 구애 받지 않고 왕성한 세력을 자랑한다.
고광나무와 노린재나무가 그래도 튼실했지만, 백당나무는 그보다 더 싱싱했다.
백당나무가 있는 곳마다 이 녀석은 타 종에 비해 우월성을 자랑하고 있었다.
꽃이 필대로 다 폈고 모양은 갖출 대로 다 갖추었다.
오늘 가산 탐사의 주인공은 백당나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건강하고 싱싱한 만큼 나랑 함께 보낸 시간이 제일 많았던 친구다.
오월이지만 날씨는 여름 무더위 못지않다.
그런 무더위를 불사하고 온 성의가 괘씸했던지
그래도 오늘 가산이 내게 준 선물은 비교적 풍족한 편이었다.
봄에서 여름으로 가는 길목엔 의외로 꽃이 다양한 편이 아님에도
가산은 나름대로 만족할 만큼 보여 주었다.
그만하면 충분히 본전을 뽑고도 남았다.
오늘은 생전 잘 가지 않던 저수지 뒤로 돌았다.
거기서 또 민백미꽃을 보고 아직까지 물이 마르지 않은 저수지의 모습도 봤다.
거대한 규모의 저수지와 강바닥이 바닥을 드러내고 댐이 목말라 하는 즈음에
물 한 방울 내려오는 길이 없음에도 마르지 않고 있는 저수지를 보니 그저 신통방통하기만 했다.
대부분 꽃이 떨어졌지만, 아직 꽃이 일부 남아 있는 층층나무
숲속으로 들어가니 노린재나무의 흰 꽃도 무르익을 대로 익었다.
숲을 헤집고 다니며 은대난초도 보고
독성이 강한 천남성도 심심찮게 본다.
내려오는 길에는 임도를 타지 않고 일삼아 숲이 있는 샛길로 오며
그동안 가산에서 본 적 없던 민백미꽃을 또 다시 만나고
천남성도 보고 흰광대수염 군락도 만난다.
긴가민가했던 민백미꽃은 자주 보다 보니 민백미꽃이란 것이 확실해졌다.
별꽃 닮은 벼룩나물과 벼룩이자리도 색감이 좋고
눈곱만한 국수나무가 빽빽한 모습도 경이롭기 그지없다.
참꽃마리인가 했더니 거센털꽃마리 같아 보이는 녀석도 처음 봤고
덩굴꽃마리도 아직 제 모습을 그대로 유지한 채 여름이 옴을 무색하게 한다.
가뭄이 극심해 꽃을 제대로 볼 수 있으려나 했는데
그래도 산이 강이나 들보다 나은 모양이다.
저수지가 바닥을 드러내고 거북등 같이 쩍쩍 갈라지고 있는 시기에
산은 그래도 풀과 나무에 꽃이 피고 진다.
물론 생생한 맛은 덜했지만 그래도 들판보다는 나은 모양이다.
비가 좀 와야 할 텐데.
억수 같이 한번 안 쏟아지나...
진남문에서 성곽을 따라 남포루로 올라가는 시작점에 고들빼기가 어렵사리 성곽 위에 자릴 잡고 살아가고 있네요. 이 가뭄에 대단한 생명력입니다. 저 녀석들은 가뭄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나 보네요.
어디서 '따다다닥' 소리가 나길래 주변을 살펴보니 쇠딱다구리 한 마리가 열심히 작업을 하고 있네요.
마치 드릴로 구명을 뚫은냥 아주 정교하게 구멍을 파 놓았다. 어떻게 저렇게 이쁘게도 구멍을 뚫었는지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 드릴로 뚫은 것이나 다름없다.
나를 보고 인기척을 느꼈는지 날아가더니 멀리 가지 않고 주변을 맴돌고 있다.
자는 척 했더니 다시 제자리로 돌아와 눈치를 보며 작업 준비를 한다.
안심했는지 아예 머리를 쑤셔박고 따발총을 연신 쏘아댄다.
손이 닿는 곳에 있으면 주머니에 넣어 가도 모를 정도로 열중하고 있다.
성곽을 따라 여랫재로 넘어 가는 길이다.
중문 뒤로 조그마한 호수가 있는 길로 가본다. 이 길은 처음이다. 뭔가 있을 것 같다는 예감에 이 길로 접어 들었다.
층층나무의 하얀 꽃이 보이고, 메마른 가뭄에 물이 있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는다.
이 물은 어디서 흘러 내려오는 물길도 없는데 아마 밑에서 쏫아 나는가 보다.
녹음이 우거진 단풍나의 새파란 모습이 단풍으로 물든 모습보다 더 살갑게 다가온다.
족제비싸리 꽃이 이렇게 볼만 했었나? 늘 시커멓게 흉칙한 모습만 보다가 이런 모습을 보자니, 역시 사물이나 세상사는 한 단편으로 치부할 일은 아닌 듯...
벌이 열심히 작업을 하는 모습을 보니 족제비싸리 꽃에도 꿀이 있는 듯~
쥐똥나무도 요즘 제 철을 만난 듯~
개옻나무도 족제비싸리에게 질세라 꽃을 마구 피우고 있다.
둥굴레도 아직 한창이고~
올라가면서 은대난초도 보는데 날씨가 가물어 아무래도 꽃이 성할 것 같지 않다.
자태 좋은 둥굴레의 모습도 그냥 넘어가기 어렵고~
뭔가 했더니 '달래'인 모양이다.
오늘 꽃산행의 하이라이트는 이 백당나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아직 튼실하고 개체도 많았다.
멀대 같이 키만 삐죽한 장대나물도 보고
장대나물
곰딸기, 멍석딸기, 산딸기 헷갈리네...
지칭개, 조뱅이 이 놈도 계속 헷갈린다.
고광나무도 아직 살아 남았다.
백당나무가 월계관을 쓴 모습. 이 모습이 가관이다.
사진이 좀 그래서 그렇지 백당나무의 이 모습이 가장 예쁜 모습이다.
웬 여성 두 분이 가길래 배경삼아 찍어 봤더니 사진이 살았다.
백당나무
독초인 천남성도 자주 눈에 띈다.
뭔가 했더니 '개암나무'라네요.
노린재나무도 아직은 볼만 했고...
미나리아재비는 아직 코팅이 덜 됐는지 코팅막이 반짝이는 모습이 덜 하네요.
미나리아재비
처음에는 이게 '는쟁이냉이'가 아닌가 싶었다. 그런데 아무래도 아닌 것 같다.
요건 거센털꽃마리 같은데~~~
층층나무에 층층으로 핀 꽃들은 이제 지고 있는 중이다.
요건 덩굴꽃마리 같고~
저수지 뒤로 숲으로 돌아가며 본 노린재나무
여기서 또 은대난초를 본다.
공사 중인 문화재 발굴 현장으로 내려오니 국수나무의 꽃이 한창이다. 눈곱만한 꽃이 다닥다닥 붙어 얼마나 이쁜지...
쇠별꽃
흰광대수염
쇠별꽃
백당나무, 오늘 이 얘가 가장 친한 친구 노릇을 한다.
민백미꽃이다. 자주 보니 확신이 선다.
민백미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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