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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행방

2015. 막바지 덕유산 상고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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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상적인 덕유의 상고대, 흰백 설백 천지백

-白白雪白天地白-

 

 

언제 : 2015. 12. 26.(토)

어디로 : 덕유산 겨울 눈꽃산행

누구랑 : 아내랑(KJ산악회 이용)

산행 경로 : 설천봉(케이블카 탑승) 백암봉 - 중봉 - 동엽령 - 안성탐방지구(9.1km)

대략 10km쯤 걸었음

 

 

  흔적

 

 

집에 있으마 뭐하노.

방구들도 없는 거실 소파에 드러누워

리모컨만 만지작거리면 뭐하겠노.

차라리 길을 나서자.

 

춥다고 방에 콕하고 있으면 뭐하노.

휴대폰만 만지작 거리며

컴퓨터나 하면 뭐하겠노.

차라리 산에 가자.

 

요즈음 크리스마스 연휴나 신년을 기해 설산산행을 감행하고자 하는 마음을 늘 가슴에 고 산다.

그런데 아내가 컨디션이 썩 좋지 않은 관계로 말도 못 꺼내고 있다.

헌데 어젯밤 느닷없이

'덕유산 신청하까? 3일간이나 집에만 있으면 뭐하겠노.'

아닌 밤중에 홍두깨라더니 이게 웬 초가지붕에서 수박 떨어지는 소리고.

 

'그라마 퍼뜩 산악회 자리있나 알아보고 빨리 신청 해뿌라.' 했더니

다행히 아직 자리가 남은 모양이다.

아내가 번개보다 빠른 동작으로다닥 신청을 했다.

'신청 끝~'이라는 아내의 일성을 들은 후

내가 슬쩍 한 마디 던졌다.

'진짜 갈 수 있겠나. 몸은 괜찮겠나?'

다분히 속 보이는 소리다.

 

신청을 하고나니 '요즈음 눈이 없는데' 라는 생각이 들며

과연 덕유산의 눈꽃을 기대할 수나 있을지 의구심이 생긴다.

18일,19일 쯤엔 눈이 내려 덕유산이 그야말로 환상의 극치를 이루더만,

요즘은 눈이 내리지 않아 아무래도 눈꽃이나 상고대를 기대하기란 어려울 것 같다.

하지만 산정에 다다르면 상황이 다를 수도 있다.

겨울 덕유는람이 차고 기온이 낮기 때문에 눈꽃은 없어도 어쩌면 상고대는 기대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좌우당간 냥 밋밋한 산행은 되지 않을 것이라 기대를 해본다.

 

88고속도로가 광주-대구 고속도로란 이름으로 개통을 하더니 참말로 시간이 많이 단축되었다.

덕유로 가는 데 예전보다 30분~40분 정도 빠르게 달려간다.

앞으로 거창일대의 경남 산권과 전라도 권역 산행하는데 많은 효자 노릇을 하겠다.

88은 진작 손을 댔어야 했다. 늦었지만 지금이라도 확장 개통을 했으니 참말로 다행이다.

고속도로 이름도 광주-대구고속도로니, 달빛고속도로니 말이 많다.

달빛은 대구의 옛이름인 달구벌의 '달'과 광주를 지칭하는 빛고을의 '빛'에서 비롯된 이름이다.

이것도 좋고, 저 이름도 좋다. 이름이 어떠면 어떻노.

제발 이를 계기로 경상도니, 전라도니 지역 감정 좀 없애자.

도대체 누가 이토록 긴세월을 조그마한 나라에서 두 동강 냈는지 한심하기 그지없다.  

 

우리 일행을 실은 산악회 차량은 설천지구 무주리조트에 당도했다.

예상대로 스키어들이 빽빽하게 운집해 슬로프를 질주하고 있었으나 그건 내게 아무런 상관이 없다.

아내와 난 오로지 눈꽃이나 상고대를 보러 왔기에 스키어들이 많음은 오히려 불편하기만 하다.

하지만 아쉽게도 슬로프를 제외한 주변엔 눈이 별로 눈에 띄지 않는다.

그래서 케이블카를 타고 올라가기 전까지만 해도

등로에 쌓인 눈을 밣는 게 다겠구나 싶은 생각에 별로 신명이 나지 않았다.

 

그런데 그게 아니었다. 케이블카가 상부에 이르니 아랫동네와는 다른 완전 별천지가 펼쳐진다.

케이블카를 함께 탄 가이드가 어제도 인솔했는 데 어제까지 이런 광경이 없었단다.

그런데 오늘은 이런 환상적인 장면이 펼쳐지고 있는 것이다.

과연 지성이면 감천이라더니

하얀 날개옷을 입은 천사가 노니는 천상의 세계가 우리를 반기고 있었다.

 

설천봉에 첫 발을 내딛으니 설천봉의 상징적인 건물인 상제루가 안개에 가린 채 그 형체만 어렴풋이 보인다.

짙은 안개로 인해 시야가 전무한 것이다.

이런 상태라면 애시당초 조망은 물 건너 갔다.

하지만, 그래도 좋다. 설천봉부터 하얀 눈이 '흰백 설백 천지백'이니 

가야산, 기백산, 황석산, 오도산 그리고 지리산이 안 보이면 어떻노.

가는 길이 상고대로 환상을 불러일으키는 데 그보다 더 어떤 욕심이 필요하리.

 

춥고 힘들어 먼 길 가기 힘든 사람들은 설천봉에서 향적봉까지만 가더라도 충분하다.

케이블카를 타고 설천봉에 내리면 향적봉까지는 큰 힘 들지 않고 갈 수 있어 설국을 즐기기에는 그만이다.

대략 600m 정도에 이르는 길만해도 충분히 환상을 즐길 수 있는데 우리는 향적봉에 오르고도

그때부터 무려 4.3km나 되는 동엽령까지 환상적인 설국을 걷고 상고대를 바라보며 갔으니

말해 무삼하리오. 그것 뿐이었나? 동엽령에서 안성탐방센터로 내려가는 길은 또 어땠고.

 

늘 그랬듯 덕유의 향적봉에 오면 줄을 서서 한참을 기다려야 정상석 사진을 한 장 얻을 수 있다.

그런데 우린 그럴 여유가 없다.

사람들이 자리 이동하는 틈을 타 사람이 있던 없던 빈 정상석 한 장 찍고 갈 길을 바삐 가야 한다.

오늘도 어김없이 그리할 수밖에 없었다.

겨우 빈 사진 한 장 건지고 향적봉대피소로 갔다.

 

향적봉에서 중봉을 넘어 백암봉을 거쳐 동엽령에 이르는 길은 4.3km에 이르는 능선길이다.

이 길은 걷기 재미난다.

오르고 내리는 길이 있긴해도 힘든 구간이 아니라 산천경계를 두루두루 관망하는 길이다.

봄부터 가을까지는 야생화 산책하기에 더 없이 좋은 길이다.

그런 길을 오늘은 짙은 안개로 인해 조망이 전무하여, 오로지 눈 앞에 펼쳐진 상고대만 보며 간다.

그래도 전혀 지겹지 않다. 이 계절이 아니면 볼 수 없기에 기회가 닿을 때 우린 최대한 즐긴다.

아내와 난 사계절 아랑곳 하지 않고 많은 산을 다녔다.

물론 겨울산도 많이 다녀 눈꽃도 엄청나게 많이 보고 즐겼다. 오늘 본 것이 처음이 아니라는 얘기다.

그럼에도 오늘 덕유를 찾아 시작부터 끝날 때까지 연방 감탄사를 뱉어낸다.

볼 때마다 경이로움을 금치 못하고 겨울산이 주는 순백의 아름다움에 쏙빠져 든다.

 

동엽령에 다다라 늦은 점심을 먹었다.

향적봉에서 점심을 먹지 않았으니 오늘 같은 날씨엔 점심을 먹을 자리가 마땅치 않다.

우리가 가는 덕유의 능선은 센바람을 막아줄 숲과 바위 무더기가 없다.

다소 있긴 해도 살을 에이는 듯한 강한 바람을 막기에는 역부족이다.

그래서 동엽령까지 왔다. 물론 동엽령에도 바람을 막아줄 지형지물이 있는 것은 아니다. 

그래도 데크를 설치한 쉼터에 앉으면 능선보다는 약간의 바람을 피할 수가 있다.

작년에 숙이랑 수진이랑 꼭 같은 경로를 같은 산악회를 이용해서 온 적이 있었다.

그때도 여기서 늦은 점심을 먹었다.

오늘은 아내와 따끈한 미역국에 따뜻한 밥을 말아 후루룩 마시듯 먹었더니 꿀맛이 따로 없다.

 

동엽령에서 하산 지점인 안성탐방센터로 가는 길도 무려 4.2km나 된다.

지금까지 온 길을 되짚어보면 차량이 복잡해 설천지구에 내려 케이블카 승강장 있는 곳으로 걸어 왔으니

그 길이 대략 500m, 설천봉에서 향적봉까지 대략 600m, 향적봉에서 동엽령까지 4.3km니

현재까지 무려 5.4km를 걸었다. 그런데 아직 동엽령에서 안성지구까지 4.2km 더 남았다.

물론 내리막길이긴 하나 아직 갈 길이 많이 남았다.

 

동엽령에서 미역국에 밥 말아 배를 채우고 아내랑 하산을 하기 시작했다.

작년 기억을 떠올려 대략 1km 정도만 급하게 내려가면 나머지는 내려가는 길이 평길과 다름없다고 했는데

막상 내려가보니 그게 아니었다. 무려 3km 정도를 계속 내려가니 그제사 평탄한 길이 나오기 시작했다.

내 말만 믿고 따라오던 아내가 '와 이래 내려가는 길이 기노'라고 연신 되묻는다.

'곧 끝난다 끝날끼다' 라고 얘기한 게 3km 내려왔다.

 

더욱이 하산길은 동엽령에서 내려가는 일부만 상고대가 좀 있더니

곧 멀대같이 마른 나무에 잎조차 하나 달고 있지 않은 황량한 겨울나무 그대로의 진면목을 보여주었다.

그러니 하산길이 재미있을 턱이 있나. 나는 그래도 나무를 봐가며, 사진도 찍어가며 가니 지루함을 덜 수 있는데

아내는 내려가는 길이 많이 지루했을 것이다. 게다가 발가락이 불편해져 더 지루했을 것이다.

그러나 내려오는 길이 지난 번 지리산 화개재에서 뱀사골로 내려오는 길에 비하면 이 길은 여반장이다.

그때는 아내가 정말 고생 많이 했었는데...

 

요즘은 새삼스럽게 아내가

음...

뭐라해야 하나...

뭐, 사랑스럽다느니 이쁘다느니 이런 표현은 

구태의연한 말에 불과할 것 같고

바로 얘기하자면 여러가지로 참 고맙다는 생각을 자주한다.

몸도 예전 같지 않고 일도 힘든 데

잘 참고 내 곁에 남아 죽으나 사나 식구들 뒷바라지에 전념하기 바쁘니

그 고마움이야 말로 다 할 수 없다. 

경상도 사나들 애정 표현에 다소 투박하다고 하나

이렇게라도 마음을 표해야겠다.

  

오십줄 넘어 서방따라 산에 다녀주는 것도 고맙고

자식들 잘 키워 준 것도 고맙고

무엇보다 시어머니 모시고 신경을 써 줌에 그저 감사할 따름이다.

아프지 말고 남은 인생 건강하게 잘 살아가 주었으면 더 바랄 게 없다.

 

 

 

 

 

 

사진으로 보는 2015년 막바지 덕유산의 겨울

 

 

무주리조트. 스키어들은 추울수록 좋은가 보다. 둔탁한 복장을 하고 어찌 그리 날쌔게 달리는지 난 도무지 이해가 안 된다.

 

곤도라를 타고 설천봉에 다다르니 자욱한 안개가 마치 높은 하늘에 있는 구름속에 들어온 것 같다. 

 

설천봉의 상징 상제루.  한 치 앞도 안 보이는 것 같으나 볼 건 다 보고 간다. 아내가 유유히 안개속을 헤치고 전진하고 있다. 

 

설천봉에는 스키어들이 별로 눈에 띄지 않는다. 생각보다 많이 몰리지는 않았나 보다.

 

상고대는 볼품없는 모든 것들도 모두 작품을 만든다. 겨울 상고대가 여름 야생화와 다른 이유다.  

 

향적봉을 향해 조금 가다가 뒤돌아보니 상제루가 마치 유령선처럼 형체만 보인다. 

 

나목의 분위기가 한층 up↑

 

자, 이제 향적봉으로 올라갑니다.

 

크리스마스트리를 이렇게 이쁘게 장식할 수 있을까?

 

부지런한 사람들. 추위와 힘든 정도는 각오해야 이런 장관을 볼 수 있지, 절대 아무에게나 보여주는 그림이 아니다.  

 

잎이 모두 떨어져 볼품이 없어도 상고대가 내려 앉아 있으니 이보다 더 이쁠 수가 없다. 

 

우와, 참말로 입이 떡 벌어져 다물어 지지 않는다.

 

집에 들어 앉아 있었으면 어쩔뻔 했나... 꿈직이니 이런 별천지를 보지~

 

군밤장수 아지매 것네. 좋지요. 속에 응어리진 것 있으면 여기다 다 묻어버리고, 순백의 아름다움만 꽉 채우시구려.

 

바위에 내려 앉은 상고대

 

상고대가 나무와 풀에만 앉는 것은 아니다. 이런 돌에도 순백의 꽃이 피어 있다.

 

아, 이 얼마나 아름다운 그림인가. 올 겨울에 이런 장관을 몇 번 더 볼 수 있을지...

 

향적봉 정상석 인증샷을 하기 위해 줄을 서서 기다리고 있다. 난 저렇게 줄을 서서 기다리며 인증샷을 날릴 여유가 없다. 사람이 있거나 없거나 그냥 한 방 날리고 갈 길을 간다.

 

세련된 군밤장수 아지매를 인증으로 한다.

 

요행히 빈 사진 한 장 건졌다. '잠깐만요.' 하고 손짓을 하면 대부분 잠시 기다려 준다. 그 순간에 셔터를 순식간에 꽉 누른다. 그래야 이런 사진 한 장 얻는다.

 

철쭉인가 진달랜가? 능선을 따라 햐얗게 꽃이 피어 겨울의 절정미를 마구마구 풍긴다.

 

정상에 이런 그림이 있는 것은 아주 좋은 현상이다. 주변을 알 수 있게 해주는 것은 산꾼들에겐 아주 반가운 일이다. 그런데 오늘은 아무것도 안 보인다.

 

가는 길이 멀어도 이런 길은 하루 온 종일 걸어도 좋다. 가다가 죽어도 좋다.

 

향적봉대피소는 여전히 산객들로 붐비고 모두 허기진 배를 채운다고 바쁘다.

 

이건 아마 구상나무가 아니겠나 싶은 데 늘 봐도 주목과 헷갈린다.

 

수리취에 맺힌 상고대. 수리취가 맞겠지. 이놈은 겨울도 잘 버티고 선 놈이다.

 

과연 산나물의 제왕답다.

 

아랫동네에 도착했을 때만 해도 전혀 기대하지 않은 모습이다. 이런 길을 내내 걷고 또 걸으니 길이 멀다고 어이 푸념을 할소냐.

 

길이 멀어도 좋다. 오늘 걷는 이 길이 끝나지 않는 영원의 길이라도 좋다. 걷고 또 걸어보자.

 

어찌 걷기만 하겠노. 가다가 절로 발걸음이 묶이는데... 걷지만 말고 보고, 느끼고, 가슴에 담고 덕유가 주는 분위기를 맘껏 만끽하자.  

 

당신들로 그렇지요. 도저히 그냥 못 가겠죠.

 

그럼 우리도 당연히 그냥 갈 수 없죠.

 

그 참, 도저히 말이 안 나온다. 이게 무슨 그림이고. 우째 이 길을 마다할 수 있으랴.

 

동엽령으로 가는 능선길은 그야말로 별세계다. 신천지다. 이 모습에 어찌 바삐 가기만 한단 말인가?

 

올라오지 않고는 결코 볼 수 없는 장관이다.

 

멀리 보이지 않아도 좋다. 바로 앞만 봐도 황홀하니까.

 

상고대가 살포시 내려 앉지 않았다면 이 겨울에 이 나무가 뭔 볼품이 있겠나.

 

장관이로고...

 

또 장관이로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