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전선 DMZ 두타연 계곡 탐방
■ 언제 : 2015. 9. 5.(토)
■ 어디로 : 두타연 계곡(강원도 양구군 방산면 건솔리 수입천 지류에 발달하여 사태리 하류에 위치한 계곡)
■ 누구랑 : 아내랑(사설산악회 신청해서)
■ 탐방코스 : 이목적 안내소 - 3.7km - 두타연 - 1.8km - 쉼터3 - 1.8km - 하야교 삼거리 - 0.9km - 포토존 - 1km - 쉼터2 - 0.5km - 비아목교 - 1.2km - 쉼터1 - 1.1km - 비득안내소
이목정 안내소에서 두타연 주차장까지 3.7km는 차량으로 이동
탐방안내도<양구군청 문화관광 홈>
두타연 개요
<펌>양구군청홈 양구문화관광
강원도 양구군 방산면 건솔리 수입천 지류에 발달하여 사태리 하류에 위치한 계곡이다. 두타연은 민간인 출입통제선 북방인 방산면 건솔리 수입천의 지류에 있는데 동면 비아리와 사태리 하류이기도 하다. 유수량은 많지 않으나, 주위의 산세가 수려한 경관을 이루며, 오염되지 않아 천연기념물인 열목어의 국내 최대서식지로 알려져 있다.
높이 10m, 폭 60여m의 계곡물이 한곳에 모여 떨어지는 두타폭포는 굉음이 천지를 진동하고 한낮에도 안개가 자욱하여 시계를 흐리게 한다. 이 폭포 바로 아래에 있는 두타연은 20m의 바위가 병풍을 두른 듯 하고, 동쪽 암벽에는 3평 정도의 굴이 있는데 바닥에는 머리빗과 말(馬)구박이 반석 위에 찍혀 있다. 1천 년 전 두타사란 절이 있었다는데서 연유된 이름이며, 민간인 출입통제선 이북에 위치하여 자유스럽게 출입할 수 없어 아쉬움을 더하고 있다.
<펌>다음 백과사전
두타[頭陀] : 속세의 번뇌, 의식주의 대한 애착, 욕망 등을 버리고 오직 청정하게 불도를 닦는 수행. 떠돌면서 온갖 괴로움을 무릅쓰고 불도를 닦는 일. 두타행이라고도 한다.
흔적
대구에서 강원도 양구 두타연까지 가는 길은 멀기도 멀다.
적어도 차량으로 4~5시간은 이동해야 갈 수 있는 길이다.
두타연을 가리라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않았는데 어제 퇴근 무렵 아내로부터 연락이 와
그 먼 두타연까지 갈 생각이 없냐고 의견을 묻는다.
갑작스런 제안이라 어안이 벙벙했다.
가만히 생각하니 못 갈 일도 없다. 사설산악회를 이용하니 운전을 하지 않아도 되고
비록 가는 길이 멀다하나 계곡 트래킹 코스가 오르막길이 거의 없는 평탄한 곳이라
힘도 들지 않을 것 같았다. 다만 걷는 거리가 12km쯤 되니 대략 서너 시간은 걸어야 한다.
계곡 트래킹 코스가 그 정도라면 가는 길이 멀어도 크게 우려하지 않아도 될 것 같다.
셈이 그리하니 머뭇거릴 이유가 없다. 아내와 의기투합하여 바로 참가신청을 해버렸다.
두타연 계곡은 양 방향에서 출발할 수 있다.
서편 이목정 안내소에서 출발해도 되고, 동편 비득 안내소에서 출발해도 된다.
두타연을 중심으로 탐방하고자 한다면, 두타연과 가까운 이목정 안내소가 제격이며
근 12km에 달하는 전 코스를 모두 경유하자면
이목정 보다는 비득에서 출발하는 것이 더 편리하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든다.
이목정에서 출발하면 임도로 이어지는 길이 급한 경사는 없지만, 완만하게 이어지는 경사길이 더러 나오나
비득에서 두타연 주차장까지 가는 길은 내려가는 길이라 더욱 수월하기 때문이다.
어차피 우리 일행은 전 코스를 모두 경유해야 하니 같은 값이면 그쪽이 나을 것 같았다.
그런데 우리는 두타연 주차장에서 비득으로 거꾸로 출발했다.
우리만 그런 것이 아니라 이곳을 찾는 사람들은 대부분 코스를 그리 잡는다.
그건 아마, 두타연 트래킹 코스의 핵심이 이쪽에 몰려있기 때문일 것이다.
우리 일행은 이목정 안내소에서 출입 허락을 받고
차량으로 3.7km에 이르는 두타연 주차장까지 이동했다.
이목정 안내소부터 걷는 사람도 있겠지만,
우리는 굳이 안내소에서 3.7km에 이르는 두타연 주차장까지 걸을 이유가 없었다.
그러다보니 총 걷는 길은 당초 12km에서 대략 8.3km로 줄어든 셈이다.
난, 풍경과 꽃 사진을 찍어야 하니 시간이 줄어들수록 좋았다.
강원도 양구땅까지 왔으니 그냥 갈수는 없는 노릇이다.
50여년이 지난 후 비록 일부 구간을 민간에 개방은 했지만, 여기는 여전히 군작전 지역이다.
두타연 주차장에서 이동하면 계곡을 통해 임도를 걸어 비득 안내소까지 가는 동안
음주와 흡연은 물론이거니와 식사도 못하게 엄중하게 다스리고 있다.
그만큼 치안에 긴밀을 요하는 작전지역이란 의미다.
그래서 좀 이른 시간이지만, 모두 주차장에서 미리 배를 채우고 가야만 했다.
일찍이 식사를 마치니 시간이 남는다.
우리 일행이 모두 모이기 전에 해설사 한 분이 다른 팀을 모아 해설을 하고 계셨다.
시부지기 다른 팀에 끼여 해설사의 설명을 찬찬히 들었다.
그러다보니 곧 우리 일행이 해설을 들을 차례가 돌아왔다.
같은 분이 해설하시니 우리 일행이 들을 때 또 한 번 더 들어 복습까지 한 셈이다.
어디가면 해설사 분의 설명을 듣는 것이 최고다.
해설을 위해 그만큼 교육을 받았을 것이고, 무난하게 해설을 하자면
공부 꽤나 했어야 할 분들이다. 그 지역 그 문화는 이 분들이 가장 많이 알고 있는 분들이다.
오늘 우리는 믿음이 가는 훌륭한 해설사 분을 만난 것 같다. 그 또한 내 복이다.
두타연 일대는 해설사 분과 함께 동행을 했다.
처음에는 설명을 한 마디라도 더 듣기 위해서 앞서 졸졸 따라 다녔는데
주변에 보이는 야생화와 풍경, 기록물을 사진기에 담다보니 이내 뒤쳐졌다.
조사하자면 시간도 많이 걸리고 이해하기도 힘든 설명을 더러 놓쳤다.
안되겠다 싶어 재빨리 다가가 설명을 듣는데 집중을 했다.
그러나 그래도 꾸물거릴 수밖에 없어 중간 중간 요긴한 설명을 많이 놓쳤다.
두타(頭陀)란 앞서 개요에서 밝혔듯이 속세의 번뇌, 의식주에 대한 애착,
욕망 등을 모두 버리고 청정하게 살아가는 삶을 말한다.
해설사 분이 이르시기를 여기에 왔으니 모두 묵은 짐을 버리고 가란다.
50대에 이르러 나름대로 버린다고 버렸는데 아직 버릴 것이 남았는지 모르겠다.
온 김에 오욕과 허영이 남았다면 두타연 깊은 웅덩이 속에 모두 풍덩 빠뜨리고 가야겠다.
두타연 주차장에서 바로 보이는 북쪽 방향의 산만댕이에는
마치 로마 병정의 투구처럼 생긴 바위가 우뚝 서있다.
북한군의 동태를 살피고 나라를 지키는 파수병인 냥
그렇게 서 있는 바위는 장군바위라 부른단다.
장군바위 너머는 전장 때 피·아간에 피비린내 나는 전투가 벌어졌던 단장의 능선이고
거기에서 불과 4km 정도만 더 가면 북한 땅이란다.
그러니까 내가 지금 서 있는 이곳에서 북한까지는 바로 지척이라고 보면 된다.
북한이 바로 내 있는 곳에서 엎어지면 코 닿는 곳에 있다는 말이다.
괜히 가슴이 짠해지는 순간이다.
초입 가까이 양구전투위령비가 있다.
위령비 옆에는 새로 단장한 ‘길 가소서’라는 시문이 서 있다.
다섯 소절로 이루어진 이 시의 배경을 설명하면서 해설사 분이 멋들어지게 시 낭송을 한다.
장중하면서도 묵직하게 그러면서 마치 구천을 떠도는 원혼의 넋을 위로하는 냥
울먹이는 듯 아예 우는 듯 그렇게 낭송을 한다.
그 앞에 서 있으니 듣는 나도 우리 일행들도 절로 가슴 속 깊이 울고 있다.
이 분이 우리 모두의 심금을 울리며 그렇게 시를 읊조리고 있다.
분단의 아픔이 이렇게 서럽고도 슬픈 것이었는지 새삼 느끼는 순간이다.
뭉컬 했던 가슴을 쓸어안고 조각공원으로 갔다. 이 조각공원은
전장의 과거와 현재, 미래를 아우르는 전쟁을 경험하지 못한 젊은 작가들로 구성된 작품 공원이다.
생성과 소멸이라는 개념을 모토로 하는 ‘행복을 주는 나무’를 비롯해 젊은이들의
민족성이 부여된 창의성이 깃들인 작품으로 꽉 차 있다.
조각공원을 둘러보고 천 년의 얼이 서린 옛 두타사 터를 지나 두타연으로 갔다.
두타연은 높이 10m, 깊이가 무려 12m나 되는 깊은 연으로 이루어져 있다.
두타연 계곡은 북쪽인 금강산에서 내려오는 80% 정도의 계곡물과
남쪽 동면에서 내려오는 20%의 계곡물이 합쳐지는 상징적 의미가 있는 곳이다.
이렇게 합쳐진 남북의 물줄기는 남·녀의 형상을 한 뽀뽀바위 중간을 가로질러
깊은 웅덩이를 형성하는데 이곳을 두타연이라 한다.
원점으로 되돌아와 신라 헌강왕 때 금강산 장안사의 고승이
꿈에 남쪽으로 가라는 계시를 받고 관음보살을 친전한 뒤
두타사라는 절을 창건했다고 전해지는 보덕굴을 본 후 두타교를 지났다.
두타교를 지날 때는 내 안에 아직 내재되어 있을지도 모르는 상념마저 벗어 던졌다.
두타교를 지나 계곡을 가로지르는 징검다리를 건너면
두타연 계곡의 절경 탐방은 거의 끝났다고 보면 된다.
그 이후로는 계곡길 위로 조성해 놓은 임도를 따라 하염없이 걷기만 하면 된다.
햇볕이 따가운 여름날엔 걷기가 쉽지 않을 것 같다.
난, 지루한 임도를 따라 걸으며 야생화 찾기에 여념이 없었다.
멀리 북한이 가까운 강원도 이북 지방까지 왔으니
뭐 특별한 애라도 보여주지 않을까 하는 기대가 내심 크게 자리 잡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내 눈에 띄는 건 내 고장 팔공산과 별로 다를 게 없다.
고작해야 병조희풀 정도가 다다. 야생화에 건 기대는 큰 실망으로 다가왔다.
하지만, 멀리 양구 두타연까지 온 것은 야생화를 주목적으로 한 것은 아니다.
여기가 어딘가? 바로 북한이 코앞에 있는 곳이다.
멀리 남쪽에 있는 나는 강원도 고성에서 군 생활을 한 이후로
가까이서 북녘 땅을 볼 기회가 많지 않다.
군 생활을 할 때야 바로 코앞에 금강산 일만이천봉 중의 1봉인 백바위라 부른 철모바위와
2봉인 나무꾼과 선녀의 전설이 서려 있는 낙타봉으로 부른 선녀봉과 늘 함께했다.
그러나 지금은 이렇게 애써 먼 길을 와야 북녘 하늘을 바라볼 수 있다.
그러니 야생화쯤이야 덜 봐도 어떠리.
중간쯤 왔을 때 우려했던 소낙비가 내린다.
그만 그치겠거니 했던 비는 1시간 넘게 계속 내린다.
담아야 할 장면이 많은데 비가 내려 카메라 사용이 자유롭지 못하다.
야속하게도 이럴 땐 이쁜 야생화도 눈에 더 자주 띈다.
그래도 놓칠 수 없는 장면이 있거나 이쁜 꽃이 있으면 주저하지 않고 카메라를 꺼냈다.
진고개와 비득고개로 넘어가는 삼거리 지점에 당도하니 금강산으로 가는 갈림길이 나왔다.
아쉽게도 금강산으로 가는 길은 군사통제구역으로 민간인은 일체 출입이 허용되지 않았다.
말없이 철문만이 굳게 문을 닫은 채 가는 길을 가로막고 있었다.
빈 건물 옆으로 끊어진 철로 아래는 금강산에서 흐르는 물이 두타연 계곡으로
세월도 잊고 흐르건만 남·북의 끊어진 발길은 도무지 이어질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차라리 우리가 바람이라면
저기 끊어진 다리 아래로 유유히 흐르는 물이라면
장애가 없는 저 하늘의 뜬구름이라면
아니면 두타연 계곡을 자유롭게 유영하는 눈이 빠알간 열목어라도 되게 해 준다면
드나들 수나 있을 텐데
눈앞에 펼쳐진 현실은 그도 저도 아니다.
아프다. 가슴이 시리도록 아프다.
철문 앞에 서서 아내더러 희망의 메시지라 쓰인 빠알간 공중전화 부스로 들어가
전화라도 한 통화 하라고 했다.
어서 빨리 통일이 되게 해달라고.
나는 이 길을 떠나기 전에 꽉 닫힌 철문 사이로 팔목을 깊이 넣어 보았다.
그리고 말 없이 돌아섰다.
비득고개 정상을 넘어서니 전시에 적의 통행을 막기 위한 구조물이 양쪽에 늘어 서 있다.
분단의 현실을 극명하게 드러낸 모습이다.
그뿐인가? 이목정에서 비득으로 넘어가는 두타연 탐방길 12km는
길 이외는 모두 지뢰밭이다.
길섶 가까이 철조망 너머 귀한 야생화가 보인다 하더라도 들어 갈 수도 없다.
이것이 지금 우리가 처한 현실이다.
나는 오늘 두타연 계곡길을 걸으며 많은 아픔을 느꼈다.
아픔은 비단 나 뿐 만이 아닐 터
우리 모두는 빨리 하나 되는 날을 위해 더욱 많은 땀을 흘려야 하리라.
전장에서 피 흘리며 숨져간 영혼을 위로하기 위해서라도 더 많은 땀을 흘려야 하리라.
사진으로 보는 분단의 아픔, 양구 두타연 계곡
이목정 안내소. 여기서 출입 허가를 받는다. 반대편 비득 안내소에서 출발해도 된다. 여기서 두타연 주차장까지 3.7km는 차량으로 이동한다.
이목정 안내소에서 비득 안내소까지 총 12km에 달하는 데 두타연 주차장까지 차량으로 이동하니 8.3km로 줄어든다. 해설사의 설명을 듣고자 한다면 이목정 안내소를 출발해 두타연 주차장에서부터 설명을 들으면 된다. 해설사 신청을 하지 않았다면 다른 팀에 끼여 들으면 된다.
이목정 안내소에서 두타연 주차장까지 옴. 계곡으로 가는 입구는 두타연 계곡의 상징인 열목어를 조형해 놓았다. 열목어는 눈이 빨개 이 지역 사람들은 빨갱이고기라고도 부른다.
열목어 조형물 앞에 커다란 산사나무가 있다. 느티나무와 어우러져 연리지가 되었다고 하는데, 여사로 봐 확인을 하지 못했다.보통 연리지는 같은 수종의 나무끼리 붙는 것으로 아는 데 확인을 못해 아쉬운 부분이다. 만약 느티나무랑 산사나무가 함께 연리 되었다면 좀 더 소상하게 관찰했어야 하는 데 아깝다.
소지섭씨한테 이런 면이 있었네요. 멋진 사람입니다. 소지섭길 51km
기념촬영을 하고
워낙 청정하고 쉽게 가기 어려운 곳이라 1박 2일 촬영을 이런 곳에서 하지 않을 수 없겠지요. 가기 힘들고 좋은 곳을 많이 찾아 다니니 당연 빼 놓을 수가 없는 곳이죠.
여기는 해발 338m 지점입니다. 길 이외는 모두 지뢰밭입니다. 꽃사진 찍느라 철조망을 넘으면 큰일나겠죠.
두타연의 대표적인 야생화 사진이 있는 데 제가 보아도 이름이 잘못된 게 많이 있네요.
위령비와 조각공원, 두타사 옛 터를 돌아 다시 이 아래로 나온다.
열목어. 일명 빨갱이고기
두타연 주차장에서 보이는 저 바위는 마치 로마병정의 투구처럼 보인다. 장군바위라 칭하는데 마치 양구를 지키는 파수병인 냥 서 있다. 저 바위 뒤로 4km만 더 가면 바로 북쪽 땅이다. 바로 지척에 있다. 그리고 바로 저 뒤가 피아간에 피를 흘리며 죽어간 그 유명한 단자의 능선이다.
안내판에 있는 두타연 트래킹 핵심구간만 부각시켜 보았다. 현위치-위령비-조각공원-두타정-두타연-현위치로 돌아와 출렁다리를 건너 긴 트래킹에 접어든다.
우리 팀의 해설사 분이다. 얼마나 조리있고 또록또록하게 설명을 하시는지... 난, 이미 이분이 다른 팀 설명할 때 한 번 듣고 우리 일행이 모였을 때 또 들었다. 모범학생이다.
위령비와 조각공원이 현위치에서 멀지 않아 가볍게 저 길을 따라 한 바퀴 돌아 이 아래로 다시 돌아온다. 이 길을 평화누리길이라 부른다.
평화누리길을 따라가 볼까요.
두릎나무
모두 위령비 앞에섰다. 10초간 묵념을 드리고 해설사의 설명을 듣는다.
위령비 위에 얹혀 있던 시비가 높아서 글을 읽기 어려워 위령비 옆에 읽기 시비를 세워 놓아다고 한다. 해설사 분이 '길 가소서'를 낭송하는 데 가슴이 울컥했다. 나 뿐만 아니라 모두들 다 그런 표정이었다. 해설사 분의 그때 그시절을 그대로 표현하는 듯한 음성은 가히 일품이었다.
앞 두 소절은 박정희 대통령이 당시 전장에 참가한 장군 시절 지었다 하고 나머지 세 소절은 김윤환 장군이라 했던가 그 분이 마저 붙여 이 시를 완성하였다고 한다.
초연이 쓸고간 ... '비목'. 이 현장을 지나던 군인이 너무나 황망하고 허망한 나머지 그 감정을 읊조린 것이 오늘날 그 유명한 가곡 '비목'이 되었다고 한 것 같다.
전장의 흔적을 보라. 양구는 일촉즉발의 전투가 줄곧 이어졌던 곳인 만큼 계곡엔 물이 흐른 것이 아니고 핏물이 흘렀으며, 산은 흙과 돌이 쌓인 것이 아니라 시체가 산을 만들었을 것이다.
해설사 분의 설명을 들으랴, 사진 찍으랴 하다 보니 설명을 많이 놓쳤다.
시비 앞에 서 '길 가소서'를 낭송하는 해설사. 지금도 가슴을 울리며 뇌리에 강하게 남아 있다. 시를 낭송하는 모습이 너무나 의연하고 처절하게 들려 가슴이 내내 뭉클했다.
전장 당시 미군이 사용했던 탱크와 나이키 미사일 . 위령비 바로 위 조각공원에 전시되어 있다.
액자에 집사람을 담고...
이 부분도 뭐라고 했는 데 사진 찍느라 듣질 못했다. 남들이 찍기에 따라 찍었는 데 아무래도 장병이 수류탄을 투척하는 모습같다.
양구는 피가 강을 만들고, 시체가 산을 이룬 전투의 현장이 한둘이 아니다.
조각공원에 전시된 탱크
당시 사용된 나이키 미사일
전쟁 경험이 없는 젊은이들의 작품으로 구성된 각종 조형물 "행복을 주는 나무"
소망탑. 양구 황토가 질 좋기로 최고라지요. 이성계도 양구 황토로 도자기를 빚어 소원 했던바를 이루었다는 얘기가 들리네요.
조각공원에서 두터정으로 가는 길에 옛 두타사 터가 있습니다.
두타연 계곡 건너편 전망처
배초향이 무리를 지어 보랏빛 꽃을 머금은 채 금강산에서 흘러오는 물길을 바라본다. 저 물을 거슬러 가면 금강산이 나오고 바로 북한이다.
쉬어 가는 정자 두타정
사람이 들어갈 수가 없으니 물이 깨끗할 수밖에~
두타연폭포로 물이 떨어지는 모습은 마치 한반도 지형과 같이 보이기도 한다. 조금 방향을 잘못 잡았나~
두타연폭포 상류 지형
두타정의 모습
건너편 전망대
아, 저기로 내려갔어야 하는데 참말로 아쉽다. 물매화가 지금 피었을지 모르겠지만, 이 부근 아니면 찾아볼 길 조차 없는 것을 일행과 뒤쳐지지 않으려고 내려가는 것을 그만 게을리 하고 말았다.
출렁다리 두타교
보덕굴, 장안사 스님이 꿈에 계시를 받아 보덕굴에 들어가 참선을 하던 중 관음보살을 알현하고 두타사를 건립했다는 전설이 있음. 보덕굴은 3평 정도
오리 같은 진범이 보인다.
소지섭씨가 이 길을 먼저 다녀간 모양이다.
멀리서 두타연폭포를 담아본다. 높이 10m, 깊이가 무려 12m나 된다고 한다. 이쪽 어딘가에 물매화가 있을 것 같은 생각이 든다.
왼쪽이 남자 얼굴모양이고, 오른쪽이 여자의 얼굴모양이다. 남녀가 서로 뽀뽀를 하고 있는 모양이라 뽀뽀바위라고 부르기도 한단다. 원래는 하나의 바위 덩어리였던 것이 지금은 떨어져 나가 두 개의 바위로 나뉘어졌다.
주변은 모두 지뢰밭이다. 북녘 가까운 양구에 있음을 실감한다.
지뢰체험장
각종 체험전시물이 곳곳에 마련되어 있다.
참, 오랜만에 들어보는 용어다. 군 생활 당시 입에 달고 살았는데~
가는 길에 소망지가 많이 달려 있는 모습도 보고
구멍난 철모와 철모 위에 얽힌 철조망을 보노라니 마음이 아프다.
두타교. 출렁다리로 이 다리를 건너며 잡스러운 것은 모두 버리고 간다.
버리고 또 버리시오. 그리고 이 다리를 건넌 후 해탈하시기를...
금강산에 흘러 내려오는 물이라 그런지 눈길이 자꾸만 간다.
피로 물든 산하가 지금은 이렇게 청정 지역으로 탈바꿈하였다. 아이러니하다 아니 할 수 없다.
길 이외는 모두 지뢰밭 투성이
징검다리를 건너면 이제 임도로 비득 안내소까지 내내 가야한다. 햇볕 뜨거운 날은 걷기 불편한 길이다. 지금까지 걸어온 길 보다 앞으로 가야 할 길이 3/4이다. 땡볕을 가야하지만, 오늘은 날씨가 흐리고 조금 후 소나기 한 시간 정도 내려 오히려 걷기는 좋았다.
수량이 많으면 이 징검다리를 건너지 못하고 우회해야 한다. 우회하는 길이 있겠죠.
그야말로 말로만 듣던 청정 무공해지역이다.
보기만 해도 가슴이 시원하다.
오리방풀이 지뢰밭에 가득 피어 있다.
오른쪽 숲속 1길로 빠진다. 이 지역 출신 유명한 화백인 박수근씨를 비롯한 여러 작가의 솜씨를 볼 수 있다.
이 길은 예술과 사색의 길이다.
왜 못났을까요. 함께 어울리지 못하고 혼자 외롭고 처량하게 있어 그런걸까요.
이게 뭔 일인지. 거미줄이 마치 그물처럼 숲을 덮었다. 처음엔 나무를 보호하기 위한 조처라 생각했는 데 그게 아니다. 거미가 온통 그물을 덮어 씌워 놓았다.
마치 아마존의 깊은 숲속을 연상시킨다.
50여년간 방치된 숲속의 한 단면이 극명하게 드러나는 순간이다. 오늘 이 장면을 본 사람이 과연 몇이나 있을라나...
지뢰 표시 뒤 숲에 뭔가가 있어도 눈요기만 하고 말아야 한다.
온통 지뢰밭이니 그럴 수밖에... 그런데 생각보다 별로 귀한 야생화를 잘 보여주지 않는다.
지뢰밭과 눈빛승마.
병조희풀은 마치 장렬하게 산화한 병사의 넋이 병꽃 모양의 꽃으로 환생한 것 같다.
까실쑥부쟁이와 지뢰밭
하염없이 임도를 따라 걷는다. 오른쪽 아래가 계곡길이만 계곡을 따라 걷는 길은 짧게 한정되어 있고, 두타연을 지난면 주로 이런 임도를 걸어야 한다. 땡볕이라면 걷기 힘들고 짜증이 날 수도 있는 길이다.
여기 쉼터에서 쉬어가도 되련만, 꾸물거리며 걷다보니 쉴 여유가 없다. 한 번도 쉬어 간 적이 없다.
저기 잡스럽게 보이는 풀들은 모두 사철쑥이라 부르는가?
이 다리를 건너기 전부터 비가 내리더니 급기야 후두둑 떨어지기 시작한다. 다리를 지나 우의를 걸쳤다.
금강산에서 흘러오는 물줄기를 또 쳐다본다.
뒤돌아 보기도 한다.
여기가 금강산, 비득 안내소 가는 삼거리다. 금강산을 그리는 마음으로 담는다.
그대, 그대로 금강산으로 갔으면 좋것지요.
단교. 끈어진 채 교각만 덩그러니 남아 있다. 저 물길 따라 가면 금강산이란다.
금강산 가는 삼거리.
DMZ로 들어가는 철문이다. 보다싶이 굳게 닫혀있다. 답답한 마음에 손만 빼꼼 넣어본다.
희망의 메세지를 전하는 전화 부스가 있다. 옳거니~~~
아내더러 어서 빨리 통일이 되라고 전화 한 통 하라 했다.
철문 너머 바위에 적힌 글이 궁금해 찍었는데 잘 모르겠다.
오가는 모든 사람들 여기서 금강산이 얼마나 되나 안타까운 마음으로 들여다 본다. 저 철문을 열고가면 불과 차량으로 1~20분이면 금강산이다.
물봉선을 비롯한 야생화는 용량 관계로 야생화방으로 모두 옮겼다.
흰물봉선과 물봉선이 함께 섞여 자라고 있다. 근데 노랑물봉선은 못봤다.
물봉선이 통실통실하게 실하게 여물었다.
비는 그칠 줄 모르고 계속 주룩주룩 내린다. 카메라를 접어 넣어야 할지 고민이다.
어째 장면이 모두 비슷비슷하다.
참당귀의 진한보랏빛이 강한 인상을 풍긴다.
노박덩굴도 길섶에 많이 자라고 있었고
여름날 하얀꽃을 무성하게 피웠던 야광나무의 붉은열매도 알알이 익어간다.
또 같은 장면이다. 보이는 건 모두 이런 형태다.
비가 살짝 그치며 구름이 산마루를 감고 있는 모습이 장관이다. 이 모습에 반한 아내가 빨리 사진 찍으라고 재촉을 한다.
이 그림은 언제 봐도 멋있다.
햐아, 최전방에서 이런 그림을 얻어간다. 환상적이다.
환상적인 파노라마의 연속이다.
전시에 적의 침투를 차단하기 위한 시설물이다.
요거는 더 오래 전에 만들었나 봅니다.
나비나물이 버글버글 하네요.
비득고개 정상
산기슭에서 마구마구 익어 가는 두릅나무 열매
오늘 여정의 마지막 장면이다. 젊은 군인들, 군 생활 건강하게 잘 하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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