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빛이 가득한 팔공산 하늘정원
10월의 우리풀 우리나무
■ 언제 : 2016. 10. 9.(일)
■ 어디로 : 팔공산 하늘정원
■ 누구랑 : 홀로
오늘은 일진이 사나운지 뭔가 일이 자꾸 꼬인다.
가을꽃을 보기 위해 오랜만에 팔공산 자락의 가산을 간다고 길을 나섰다가
카메라 가방을 두고 오는바람에 다시 돌아갔는가 하면
정작 가산에 도착해선 진남문 성곽을 따라 남포루 부근까지 갔다가 다시 뒤돌아 오기도 했다.
남포루 근방까지 갔으면 힘든 길은 모두 끝난 지점인 데
웬 낯선 전화가 오길래 받지 않고 있다가 두 차례 연거푸 오기에 느낌이 이상하여 전화를 받았더니
아니나 다를까 웬 낯선 여인의 다급한 목소리가 귓전에 들려온다.
요는 차를 좀 빼 주었으면 하는 모양인 데
내 차는 방해가 되지 않는 안전한 곳에 주차를 했는 데 왜 차를 빼 주었으면 하는지 이해가 되지 않아
왜 그러시냐고 물었더니 주차할 곳이 마땅치 않아 내리막길에 주차해 둔 내 차 뒤에
약간이나마 주차 여유가 있어 차를 바짝 붙였다가 차를 바르게 되기 위해 후진을 하는 데
내리막길이라 차가 밀려 아마 내 차를 건드릴 확률이 많았었던가 보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진퇴양난에 빠져 다급해진 상황에서 운전자의 아내가 나에게 전화를 한 모양이었다.
처음에는 뭐 그러다 잘하면 뒤로 빠져 나가겠지 싶어 의식을 하지 않고 계속 산을 오르다가
두 번째 전화가 오기에 쉽게 해결될 상황이 아닌 것을 감지하고
할 수 없이 내려가겠노라 전화를 해 주고 바삐 뛰어내려 가다시피 했다.
힘들게 올라간 길을 20분도 걸리지 않아 현장에 도착했다.
남편은 차에서 내리지도 않고, 어린아이와 함께 온 노모와 아내만이 미안함을 표하였다.
아내를 보아하니 남편도 나이가 아직 젊어 보이더라만, 얼굴도 나타내지 않았다.
순간 꽤심한 생각이 들어 한 소리 하려다 노모와 어린아이가 있어 모른 척하고 아내되는 사람한테만 한 마디 했다.
'오늘 이 가을이 다 가기 전에 가산의 가을야생화 좀 보려고 왔더니 다 틀렸네요.' 했더니
젊은 아낙이 하는 말 '아니 산에 다시 안 올라가시구요.'
'인지 다시 올라갈 수도 없고 오늘은 틀렸네요.'라고 점잖게 얘기했지만,
속으로는 '니 같으면 다시 올라갈 마음이 생기겠나' 싶은 것이
에이 또 그러면 뭐하것노 싶어 조용히 차를 몰고 만만한 팔공산 하늘정원으로 갔다.
오늘따라 하늘정원에 웬 주차난이 그리도 심한 지 들머리 소규모 주차장은 물론이고
그 아래 위로 차들이 줄지어 늘어 서 있다.
한참을 내려가 적당한 곳에 차를 세우고 올라가야 했다.
'오늘 참말로 일진이 왜 이렇노' 하면서 씩씩거리며 올라가는 데
막상 데크를 따라 올라가노라니 지금까지 식상한 기분은 간 곳 없고 분위기는 완전 반전되었다.
다운된 분위기완 상관없이 살랑대는 억새의 하늘거림과 파란 하늘이 더 없이 살갑게 다가온 것이다.
한 무리의 가족 구성원이 날 앞서 올라가고 있다.
젊은 처자는 아빠 엄마 사진 찍어 주기 바쁘고, 셀카로 본인도 사진 찍기에 여념이 없다.
남편은 폰카로 아내와 동행인들 사진 찍어 주느라 바쁘다.
하늘정원의 파란 하늘과 솔솔 부는 가을 바람에 살랑대는 억새 무리가 너무나 잘 어울린다.
난 나대로 참좁쌀풀이 있던 자리와 쉽사리, 꽃층층이, 터리풀, 미역줄나무가 꽃 피우던 곳을 더듬으며
뭣이 있는 지 살피기 바쁘다.
그런데 겨울이 올려면 아직 멀었는 데 대부분의 꽃은 지고 보이지 않는다.
데크로 올라가는 길에도 흐드러지게 피었던 봄꽃과 여름꽃이 그 사이 모두 지고 만 것이다.
절기가 무심할 정도로 여전히 산이 계절에 제일 민감하다.
어째 분위기가 오늘 꽃보기란 쉽지 않을 거 같다.
비로봉 기슭과 청운대의 기암에 단풍이 살짝 내려 앉기 시작했다.
10월 말경이면 단풍이 또 다른 즐거움을 선물하겠다.
등로에 핀 꽃도 잘 보이지 않아 풍경만 보고 즐긴다.
군부대를 받치고 있는 만물상의 단풍이 다 익으면 가히 아름다움의 절정을 맛 볼 수 있으리라.
팔공산 억새의 나부낌이 유달리 멋스러운 10월의 하루다.
꿀풀이 오랫동안 남아 있더만, 이젠 흔적도 없다.
보이는 건 그저 가을꽃의 대명사라 불리는 하얀 구절초와 쑥부쟁이가 다다.
이게 아닐텐 데...
하지만 다행한 점은 오늘 아내가 지인의 잔치가 있어 홀로 왔기에 많이 자유롭다는 것이다.
보일 때까지 여유를 가지고 샅샅이 찾아봐야겠다.
그동안 등로만 걸으며 보이는 애들만 잡다가 오늘은 여유가 있어 등로를 벗어나 발걸음이 갈 수 있는 곳까지 더듬어 봤다.
보통 등로에 보이지 않으면 좀 더 들어간다 하더라도 별반 식생 환경이 다르지도 않더만, 실상은 그게 다가 아니었다.
더 더듬어 보니 못 보던 녀석이 얼굴을 삐죽 내밀고 있는 모습이 보인다.
앉은좁쌀풀은 어디 있는지 진작 알고 있어 쉽게 찾았지만, 주변의 또 다른 곳에서 서식하고 있는 줄은 몰랐다.
뒤져보니 다른 곳에 인물이 더 좋은 녀석들이 자라고 있었다.
아직 건재한 채 여기 저기 지 자릴 잡고 '내가 진정 앉은좁쌀풀'이오 라며 한 껏 자태를 뽐내고 있다.
황매산에 갔을 때도 등로에는 보이진 않던 앉은좁쌀풀이 수풀 속으로 들어 갔더니 많이 있었다.
아하, 그래서 꽃쟁이들이 수풀을 뒤비고 들어 가는 모양이군.
산길에 숲을 삐대고 들어간 흔적이 있으면 영락없이 꽃쟁이들의 짓이라고 보면 된다.
그게 싫어 지금까진 등로를 걷다가 눈에 보이는 애들만 상대했는 데
귀한 녀석 알현하자면, 천상 숲을 삐대고 들어가야 하는가 보다.
등로를 쬐금 벗어난 지역을 두리두리 살피니
인물 더 좋은 앉은좁쌀풀도 만나고, 고산 식물인 귀한 개회향도 본다.
그뿐인가? 지금쯤이면 풀과 나무에 핀 꽃이 적어질 때가 아닌가?
그럼에도 눈을 부릅뜨고 더 살피니 더 많이 보여준다.
노박덩굴에 달린 노란구슬, 흔하지만 숲속에 깊이 숨어 핀 꽃향유, 앙증맞은 산앵도나무
단풍이 든 산여뀌, 아직도 건재한 선괴불주머니, 과연 산나물의 제왕이라 할만큼 그 위용을 과시하고 선 비로봉 수리취
갈대숲 사이를 눈여겨 보면서 발견한 귀한 용담, 하늘정원을 수없이 다녀갔지만, 용담은 처음 만났다.
정영엉겅퀴도 봤고, 지난 번엔 많더니 투구꽃도 다 지고 딱 한 송이 맺혀 있는 모습만 봤다.
식재한 쥐똥나무에 동글동글 맺힌 쥐똥 같은 열매도 잉증맞다.
오늘 시작은 이래저래 꼬이더만, 결과는 대단히 만족스럽다.
역시 산에 다녀가니 이보다 더 좋은 곳이 없다.
잔치 갔다가 집에 있을 아내를 생각하니 이 분위기를 함께 느끼지 못한 것이 아쉽다.
아내한테 지금 혼자 누리는 이 행복을 전화로 얘기했다.
집에 있던 아내가 정말 좋겠다며 부러워 한다.
이 행복을 함께 누리지 못해 마음이 안 됐다.
누가 보면 억수로 애처가인 줄 알겠다.
그건 아닌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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