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공산순환도로 단풍 & 팔공산 가산 자락의 가을 풍경
■ 언제 : 2016. 10. 30.(일)
■ 어디로 : 팔공산 가산산성
■ 누구랑 : 아내랑
흔적
팔공산 순환도로의 단풍이 어디까지 왔나 궁금하다.
몇 번 다녀본 감으론 지금쯤 한창 익어가고
11월 초순쯤이면 활활 불 타 오를 텐데...
어제는 부산 모처에서 교장을 하는 후배의 자녀 혼사가 있어 부산엘 다녀왔다.
올 9월에 교감 승진 발령을 받은 후배가 KTX를 예매해 둔 덕에 편하게 다녀오긴 했다만,
어쨌든 잔치를 다녀오니 하루 해가 다 저물었다.
아직 감기가 채 떨어지지 않아 오늘은 몸을 사리는 것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혹시 팔공산 순환도로의 단풍이 갑자기 추워지는 날씨에 우수수 떨어져 버리는 것은 아닐까 우려되어
아내랑 함께 길을 나섰다.
예상한 대로 팔공산 순환도로의 단풍은 아직 절정이 아니었다.
도로변을 수놓은 가로수가 한쪽은 익어가거나 이미 익어 있고
햇빛을 등진 다른 한쪽은 아직 단풍물이 들려면 한 열흘쯤은 더 있어야 했다.
여긴 단풍이 워낙 좋은 곳이라 이 정도론 성이 차지 않는 곳이다.
대형 산불이라도 난 듯 활활 불타 올라야 비로소 성이 차는 곳이다.
그래도 예까지 와서 그냥 스치듯 가버리긴 뭐 해 단풍 좋은 녀석이 있는 곳을 골라 차를 댔다.
사진도 찍어가며 여유롭게 가을 정취를 만끽한 후
그제야 우린 가산산성으로 갔다.
요즘 이런 저런 연유로 산행 같은 산행을 한 지 꽤 된 거 같아
오늘은 마음먹고 가산을 한 바퀴 돌아봐야겠다는 다짐을 헸다.
집에서 늦은 시간에 출발했고, 더구나 팔공산순환도로의 단풍 구경을 하고 간 터라
산행 출발 시간이 꽤 늦어 버렸다.
가산을 한 바퀴 돌아 나올 시간이 될지 의구심이 들긴 했지만,
일단 가는 데 까지 가보리라 생각하고 슬금슬금 오르기 시작했다.
산행을 막 시작하려는 데 반가운 얼굴이 눈에 띈다.
퇴직한 지 벌써 4년이나 되었다는 *숙 선생과 아직 현직에 있는 양교장을 만났던 것이다.
두 사람은 이모와 조카 사이로 제주가 토박이인 사람들이다.
이모인 *숙 선생은 퇴직을 했고, 조카인 양교장은 현직에 있다.
이 두 사람과는 공교롭게도 각각 두 학교씩이나 함께 근무를 했었고
그로 인해 만만찮은 인연이 쌓였던 사람들로
전혀 예상치 않았던 해후였기에 반가움이 더 컸다.
중문에 이르러서는 또 다른 반가운 얼굴을 만났다.
체육과 박** 선생이라고, 이 친구 역시 퇴직한지 2년이 된 거 같다.
아내랑 가을 분위기를 즐기기 위해 가산을 찿은 모양이다.
박선생 아내는 30여년 전 결혼할 때 보고 처음 보는지라 낯이 설다.
어쨌든 산행을 하면서 아는 사람을 만나면 그 만나는 즐거움 또한 큰 법이다.
오늘은 늘 가던 진남루에서 성곽길을 오르는 길이 아닌 평이한 길을 따라 걸었다.
이 길은 다소 지루한 길이지만, 걷기에는 편하고 좋은 길이다.
단풍은 아직 온 산을 색동저고리처럼 물들이진 않았지만, 그래도 대체로 고운 편이었다.
지금 고운 단풍옷을 입은 이 길은 언젠가 눈 내리고 난 겨울날 찾았을 때
빈가지에 하얀 눈꽃 달린 모습을 보며 얼마나 황홀했던지 모른다.
그때 기억이 얼마나 강렬했으면 아직도 이 길을 걷노라면 그때 기분이 삼삼하게 되살아 난다.
동문에 들어서니 키 큰 나무에 빠알간 열매가 엄청나게 달려 있는 모습이 보인다.
저거 뭐지? 물푸레나무 아니었던가? 그런데 오늘 열매 달린 모습을 보니 그가 아니다.
그렇다면 대팻집나무인가 그도 아니면 팥배?
하여간 빨간 열매가 달려도 엄청나게 달려있다.
저토록 큰 나무에 저렇게 많은 빨간 열매가 달린 것을 본 적이 있었던가?
어디서도 본 적 없고 오늘 여기서 처음본다.
가산에 한 두번 온 것이 아니건만 왜 오늘에서야 눈에 띈 걸까?
그동안 나무는 봤어도 열매가 빨갛게 열린 상태는 본 적이 없는지라
내가 이 시기에 가산엘 온 적이 없었다는 얘기가 되는데.
가산은 자주 들락거리는 곳이라 그렇지는 않은 것 같은데...
팥배를 알고나니 온 산에 거목으로 자란 팥배나무가 지천이다.
동문 위의 큰나무도 팥배고 성곽길을 따라 걷는 길에도 거목이 된 팥배나무가 가로수처럼 줄지어 서있다.
빠알간 열매를 주저리 주저리 매단 채 가는 가을을 붉은 정념으로 매달고 있다.
파란 하늘에 매달린 빠알간 열매는 가히 환상이라 아니할 수 없다.
오늘은 팥배나무 하나로 발품 판 보람을 모두 다 가졌다.
팔공산순환도로의 단풍이 덜 익었어도, 설령 가산의 단풍이 곱지 않았다 하더라도
섭섭해 할 하등의 이유가 없다.
1% 부족한 것은 팥배나무로 모두 채웠다.
그런데 이 나무가 정녕 팥배나무였단 말이지.
참말로 그것도 확실하게 모르고 수피에 흰얼룩만 보고 물푸레나무가 아닌가 했었다.
오늘 열매를 보고 나니 그게 아니었음을 알았다.
꽃도 나무도 쉬운 공부가 아님을 새삼 느낀다.
불현듯 안도현 시인의 쑥부쟁이와 구절초 생각이 난다.
무식한 놈
- 안도현-
쑥부쟁이와 구절초를
구별하지 못하는 너 하고
이틀간 여태 걸어 왔다니
나여, 나는 지금부터 너 하고 절교다
지금 가산에는 팥배나무의 빨간 열매가 가산의 가을을 남기고 있다.
저 빨간 열매가 떨어지면 곧 겨울이 들이닥치겠지.
이제 하얀 눈이 가산을 덮으면 그때 다시 와야겠다.
팥배가 가는 가을을 붙들고 있다.
빠알간 열매가 다 떨어지기 전에 아직 물들지 않은 단풍에 분칠이 더 해 주었으면 좋겠다.
그래서 이 가을이 다 가기 전에 가산을 찾는 이들의 마음을 더 풍요롭게 해 주었으면 좋겠다.
더불어 아내와 내 마음도 나이들수록 더 이쁘게 영글어 갔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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