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공산, 이번엔 뭔가 보고오겠지.
■ 언제 : 2016. 4. 9.(토)
■ 어디로 : 팔공산 어느 골
■ 누구랑 : 홀로
흔적
올해 들어 팔공산만 다섯 번 찾았다.
그것도 예년과는 달리 일부러 시차를 다르게 해서 찾았다.
늘, 너도바람꽃이 지고 난 뒤에 간지라 그 애와의 조우를 위한 마음과
꿩의바람꽃, 큰괭이밥, 괭이눈을 만날 수도 있을 것 같은 예감이 들어 일부러 시기를 달리해 갔다.
근래 비가 좀 오더니 치산계곡에 흐르는 물의 양이 꽤나 풍족하다.
가뭄이 들어도 물 마를 날이 없는 곳이라 약간의 비만 와도 계곡은 생기가 불어 넘친다.
게다가 파릇파릇 신록이 우거지는 봄기운까지 더하니
드디어 팔공산에도 봄이 오긴 왔나보다.
팔공산 기슭에 피는 꽃을 보고 늘 우리 산엔 봄이 더디게 온다고 푸념을 하였더만.
어느틈에 팔공산의 봄이 삽시간에 밀려온 것이다.
지난 3월 12일 다녀갔을 때만 해도 계곡을 타고 오르는 등로 주변이 얼음으로 채워져 있더만,
불과 한 달이 채 되지 않았음에도 너도바람꽃은 꽃이 지고 그만 씨를 맺고 말았던 것이다.
난 팔공산 치산계곡의 봄과는 늘 이렇게 시기를 잘 못 맞춘다.
바람꽃류는 겨우 꿩의바람꽃 하나를 본 게 다다.
작년에 우연히 꿩의바람꽃을 발견해 희색이 만연하기도 했었는 데 오늘은 그 애도 딱 한 개체밖에 만나지 못했다.
그런데 꽃의 분포가 예년에 비해 많이 달라졌다.
전에도 그런 기류를 느꼈지만, 갈 수록 분위기가 이상 야릇해 진다.
박새 군락이 산 한 자락을 뒤덮고 있더만, 어느 순간 모조리 없어져 버리는가 싶더니
이젠 그렇게 흔하게 보던 큰괭이밥과 미치광이풀 조차 쉽게 눈에 띄지 않는다.
심지어 큰괭이밥이 길섶을 뒤덮고 있던 곳은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있을 곳 같지 않고, 원래 없었던 곳에 약간이나마 무리지어 자라고 있었다.
그나마 다행이라고 여겼다만, 도대체 어찌된 조화 속인지 알 수가 없다.
산객이 무식하게 훼손하지는 않았을 것 같은 데
그래도 자연의 섭리에 따른 변화로 보기엔 다소 이해가 가지 않는 부분이 많다.
설마, 사람이 그리 훼손하지는 않았을 테지.
그리 믿고 싶다.
오늘은 홀로 계곡을 중심으로 샅샅이 훓었다.
마치 계곡산행이라 해도 될만큼 계곡을 중심으로 훓었다.
겉보기엔 들꽃 산행길에 나선 것 같아 보였지만, 실상은 산을 찾아 길을 나선 것으로 봐야겠다.
하지만 꽃이 있을만한 곳을 중심으로 걸었으니 들꽃산행이든 그냥 산행이든 매양 일반이라
일단 산에 들어 간 것 자체로 만족을 한다.
처음엔 빠알간 현수교에서 신녕재 가는 계곡을 따라 갔고
신녕재로 반쯤 가다가 다시 내려와 짧은 목교가 있는 곳에서
생전 가지 않던 계곡을 따라 마치 뭣에 홀린 듯 올라 갔다.
이 길은 빠알간 현수교에서 신녕재 방향으로 가다보면 짦은 목교가 금방 나오는 데
그 다리를 지나면 낡은 글씨로 '등산로 폐쇄'라는 표식이 있음을 발견할 수 있다.
폐쇄라는 표식을 보고 평소에 눈길 한 번 주지 않고 외면을 하곤 했던 곳이다.
그런데 오늘은 아직 숲이 무성하지 않아 그런지
길이 뚜렷하게 나있고 이 길에도 계곡이 있음을 보여 주었다.
그래서 늘 다니던 길 바로 옆에 있기에 호기심이 발동해 일부러 가 본 것이다.
가지 않았던 길이라 혹여 뭔가 새로운 것을 볼 수 있으려나 하는 기대감이 없잖아 있었지만,
그 맘은 그저 기대에 불과했고 역시 별다른 소득이 없었다.
다시 빠알간 현수교로 내려와 진불암 계곡으로 빙향을 선회했다.
진불암과 동봉으로 가는 갈림길 계곡에 다다랐을 즈음엔
진볼암 방향으로 가지 않고 동봉으로 가는 계곡길을 따라 계속 올라갔다.
이 길은 워낙 계곡이 좋아 혼자 오면 일부러 찾는 나만의 힐링 아지터이기도 하다.
편평하게 깔린 반석이 얼마나 좋던지
작년에 홀로 여길 찾아 넋을 놓은 채 발품을 내려 놓고 독야청청 했던 것 처럼
오늘도 나는 이쯤에서 사바에 찌든 무거운 육신을 내려 놓고
몸도 마음도 모두 내려 놓았다.
나름 득도를 하는 순간이다.
이제 배가 실실 고파온다.
가볍게 준비한 빵이었지만, 주린 배를 채우는데 전혀 지장 없고
배가 든든하니 삭신이 그리 편할 수가 없다.
이 맛에 치산에 들어오면 홀로 여기를 찾는다.
골바람에 묵은 때 날려보내고 앉아 있노라니, 계곡을 타고 흐르는 수정 같이 맑은 물은
마치 은쟁반에 옥구슬 구르는 소리와 다름없다.
너른 반석에 앉아 홀로 팔공산의 자연을 즐기는 나는 곧 자연의 일부가 되어
흐르는 물에 몸과 마음을 맡기면 될 뿐이다.
이것이 과연 물아일체가 되는 순간이 아닐런지.
오늘은 치산계곡에 흐르는 물길을 따라 다녔다.
공산폭포로 모이는 계곡은 지금까지 내가 다닌 경험으로 미루어 봐 4군데로 추정된다.
세곳은 두드러진 곳이라 쉬 알 수 있겠다만, 오늘 내가 처음 간 그 계곡은 대부분 잘 모르리라 생각된다.
난, 오늘 처음 간 그 계곡을 끝으로 비로소 4군데로 갈라진 계곡에서
한 곳으로 집중되는 공산폭포의 전모를 알게 된 것이다.
또 다른 수확을 얻은 것이다.
팔공산을 다니다보니 이렇게 팔공산을 하나 둘 더 알아 간다.
그 재미가 쏠쏠하다.
비록 보고팠던 꽃을 보진 못했지만,
그 하나로 오늘 팔공산 봄꽃 산행의 가치를 하나 더 얻었다.
그로서 만족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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