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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방

칠곡보, 관호산성, 구상문학관, 성베네딕도회 왜관수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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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사는 가까운 곳, 칠곡 왜관 여행길

 

 

■ 언제 : 2015. 12. 12.(토)

■ 어디로 : 칠곡 왜관(칠곡보, 관호산성 둘레길, 구상문학관, 성베네딕도수도원)

■ 누구랑 : 아내랑

 

 

 

 

1부. 칠곡보 쉬엄쉬엄, 관호산성 느릿느릿

 

 

 

칠곡보 개요 

 

칠곡보(漆谷洑)는 경상북도 칠곡군 석적읍과 약목면에 있는 낙동강의 보로서 4대강 정비 사업 과정에서 부설되었다.

칠곡보는 4대강 살리기 사업 중 낙동강 살리기 사업 24공구 성주·칠곡 지구에 해당한다. 당시 준설 길이는 18.59, 담수량 16858000이다. 다기능보인 칠곡보 1개소와 소수력 발전소, 교량 보호공 5개소를 건설하는 것으로 부산 지방 국토 관리청에서 발주하여 20091027일 착공하였다. 설계자는 한국 종합 기술과 동명 기술 공단이며 시공자는 대우 건설 외 8개 회사가 함께 참여하였다. 공사 금액은 약 3372억 원이다. 칠곡보의 디자인은 통일 신라 시대 승려 도선(道詵)[827~898]이 땅의 기운을 다스리기 위해 가산 바위 굴 속에 쇠로 만든 소와 말의 형상을 묻었다는 철우(鐵牛) 이야기에서 형상화하였다.

[출처] 한국학중앙연구원 - 향토문화전자대전(디지털칠곡문화대전)

 

 

 

 

 

관호산성 개요

<>칠곡군청홈

 

관호산성 둘레길은 안전행정부가 주관한 ‘2011년 친환경 생활공간 조성공모사업에 우수 사업으로 선정되어 총 사업비는 15억원, 칠곡군 약목면 관호2(구 왜관 마을)에 위치한 관호산성에서 호국의 다리까지 총 3.8km 구간으로 칠곡군의 역사와 문화, 자연이 어우러진 친환경 테마길이다.

둘레길의 메인코스인 관호산성은 신라시대 토성으로 1500년 역사를 이어오고 있다. 또한, 임진왜란 당시 왜인들의 군사거점으로 사용된 갈등의 역사가 공존하는 곳이기도 하다. 관호2리 코스에서는 고향의 아늑함과 한적한 농촌 풍경을 감상할 수 있고, 6·25전쟁의 대표적인 상징물인 호국의 다리 코스에서는 그날의 긴박했던 순간을 느낄 수 있다.

 

 

 

 

 

흔적

 

산에 갈 여력이 안 되어 아내와 난

내 사는 곳 가까운 칠곡 왜관 지역의 문화탐방길에 올랐다.

가고자 한 곳은 사전에 대략

칠곡보, 관호산성, 구상문학관, 성베네딕도회 왜관수도원 정도로 파악해 두었다.

 

먼저 칠곡보로 갔다.

칠곡보는 위 개요에서 밝혔듯

4대강 살리기 사업의 일환으로 축조된 친환경 에너지 생산과

홍수 대책 마련을 위한 명분으로 건설되었다.

낙동강 구간에서는 함안 창녕보와 강정 고령보에 이어 세 번째로 큰 규모라고 한다.

 

피의 전장인 호국의 다리를 보면서 칠곡보에 이르니

낙동강을 따라 긴 데크로드가 함께 따라 간다.

강바람을 맞으며 쉬엄쉬엄 걸어 보라고 설치해 놓았나보다.

우린 아내의 모닝을 맞춤형 자리에 주차하고

강가에 부는 바람을 맞으며 데크 로드를 걷기 시작했다.

 

강보를 넘어 흐르는 강물은 맑고 바람은 더 없이 선선하다.

아내와 난 주말에 길을 나서면 늘 헉헉거리며 산을 오르기만 했다.

그런데 오늘처럼 여유롭게 강가를 걷노라니

그 또한 운치가 있고 서정적인 분위기가 감돌아 또 다른 매력이 있다.

 

그러나 한가롭고 여유 만만한 강가를 거니는 것도 좋았지만

보 주변을 거니노라면 난, 늘 답답한 구석이 한 가지 생긴다.

저 보를 거슬러 물고기들이 어떻게 상류로 유영할까?

물류 유통을 위한 선박은 어떻게 지나갈까?

물론, 대책을 강구했겠지만 그 단순한 의혹이 늘 뇌리 속을 파고들어

잔잔하고 평화롭던 마음을 어지럽힌다.

 

보 중간 중간에 물고기들이 역류할 수 있는 구멍을 뚫어 놓았겠지.

버튼을 꾹 누르면 보 중앙이 쫘~악 갈라지면서 뱃길을 열겠지.

 

 

칠곡보의 다른 이름이 공도교인가 보다.

칠곡보라고 적힌 다리에 그렇게 적혀 있다.

공도교라 적힌 칠곡보가 있는 도로 바로 건너편엔 관호산성으로 올라가는 길이 있다.

산성의 규모가 어느 정도 걸을 만큼의 규모는 되지 않겠나 싶었는데

막상 가보니 산성은 자그마한 동산에 불과했고, 걷는 거리도 지극히 짧았다.

 

관호산성 둘레길은 안전행정부가 주관한 ‘2011년 친환경 생활공간 조성

공모사업에 우수 사업으로 선정되어 호국의 다리까지 총 3.8km 구간으로

칠곡군의 역사와 문화, 자연이 어우러진 친환경 테마로 조성된 길이다.

그 중 주된 코스인 관호산성은 신라시대 토성으로 1500년 역사를 이어오고 있으며

임진왜란 당시 왜인들의 군사거점으로 사용된 갈등의 역사가 공존하는 곳이기도 하다.

<참조>칠곡군청홈

 

짧은 오름길을 오르면 바로 산성의 만댕이에 다다른다.

산성에 올라 바라보는 겨울 풍경은 겨울이 왔는지도 모른 채 흘러가고 있다.

산성을 덮고 있는 메마른 가지가

마치 그것을 증명이라도 하듯 아직까지 배풍등과 노박덩굴의

빨간 열매를 탐스럽게 달고 있다.

그러고 보니 올 겨울의 초입은 잦은 비는 내렸어도

그다지 추운 줄 모르고 지내고 있다.

겨울이 겨울 같아야 할 텐데 올 해는 슈퍼엘니뇨로 인하여 춥지 않다고 한다.

하지만 변화무쌍한 자연 앞에 어떻게 변할지는 두고 볼 일이다.

 

관호산성에 올라서면 먼저 낙동강을 가로막은 칠곡보의 전모가 한 눈에 들어온다.

일렬로 평면적으로 보이던 것이

3차원의 공간 형태를 띤 입체감으로 나타난다.

멀리 있는 것이 아니라 가까이 있는 좀 더 높은 산성에서 보니

다리에 서서 바라보던 것과는 차원이 다르다.

역시 사물은 먼 곳에서 바라봐야 전부가 보이는 법이다.

산과 숲도 그렇지 아니한가?

숲 속에 들어가서 산과 숲의 형상을 볼 수는 없는 노릇이다.

 

산성에 올라보니 문화재를 발굴하는 현장이 능선을 덮고 있다.

지금 발굴 중인데 겨울이라 잠시 중단하고 있는 것 같아 보였다.

신라시대의 문화와 유적이 발굴되었는지 흔적을 보존한 상태로 머물러 있다.

 

아내와 난 느릿느릿 산성을 걸으며

낙동강과 산성에 부는 바람을 맞으며

겨울 같지 않은 포근한 바람을 맞는다.

겨울이 따뜻한 한나절이다.

 

 

 

 

 

사진으로 보는 칠곡보와 관호산성

 

 

칠곡보와 관호산성은 바로 곁에 있다. 우린 먼저 칠곡보로 갔다. 

 

칠곡보는 낙동강에 설치된 보 중 규모로 보아 세번 째 크기에 속한다. 

 

칠곡보 바로 앞에 관호산성으로 가는 이정목이 있다. 산성 만댕이까지 400m에 불과하다. 

 

다리 건너 호국기념관까지 갈려고 하다가 다리 건너는 재미가 없어 중간 쯤 가다 돌아 나왔다. 

 

저기 보이는 철로 위로 KTX가 여러 번 지나가던데 얼마나 쏜살 같이 지나가는지 카메라 셔터를 미처 누르지 못했다.

 

태극기 휘날리는 저 건물이 호국기념관이다. 칠곡은 곳곳에 전장의 상흔이 베어 있는 호국의 도시다.  

 

보 앞에 비치된 관호산성 둘레길 안내판

 

 

 

 

산성을 올라가기 전 모습

 

미국자리공은 까맣게 익은 채 아직 겨울을 이겨가고 있다.

 

애도 미국쑥부쟁이로 봐야 할 것 같은데???

 

산성에 올라 바라본 칠곡보

 

역시 산성에 올라 바라 본 보 너머 호국기념관

 

문화재 발굴지역. 현장을 보호하고 있다.

 

 

배풍등의 빨간 열매가 앙징맞다.

 

애도 미국쑥부쟁이로 봐야 할 것 같은데???

 

개망초가 아직 꿋꿋하게 꽃을 피우고 있다.

 

앞서 간 아내가 쉬면서 서방을 기다리고 있네요.

 

 

회잎나무 열매 맞는가??? 아직 앙증 맞은 빨간 열매가 여기 저기 많이 달려 있다.

 

문화재발굴지역이 또 한군 데 더 나온다.

 

빨갛게 익은 배풍등 열매도 아직 많이 남아 있다.

 

산성길이 짧아 금방 왔던 길로 돌아 나온다. 

 

무슨 열매일까요.

 

아무도 없다. 아내와 단 둘이~ 둘이 다니다보면 이런 경우가 허다하다. 둘만이 모두 다 가진 세상~ 부러울 거 없다만 아직도 버리지 못한 무엇인가가 남아 있나 보다.

 

배풍등이 이쁘게도 달려있다.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4대강 건설... 도대체 잘 한 건지 못 한 건지~

 

 

다리 이름은 공도교, 보 이름은 칠곡보~

 

 

보는 대체로 야경이 멋이 있는 것 같은데~

 

데크 저 멀리 보이는 다리가 호국의 다리다. 

 

 

 

 

2. 구상문학관을 가다.

 

 

 

오늘속의 영원, 영원속의 오늘을 추구한 시인 구상

 

프랑스 문인협회가 선정한 세계 200대 문인 반열에 오른 구상 시인을 선양하고 한국의 시문학에 끼친 업적을 보존하고 시인의 삶과 문학, 구도자적 정신세계를 이어가고자 설립함.

 

경북 유일의 문학관으로 구상 선생을 기념하기 위해 건립하였다. 구상 선생(1919 ~ 2004)은 한국전쟁 직후인 1953년부터 왜관에 정착하여 22년간 왕성한 문학활동을 펼쳤다. 프랑스 문인협회가 선정한 세계 200대 문인으로 우리나라 현대문학사에 커다란 업적을 남겼다. 2층 건물로 1층 전시실과 관수재 2층 보존서고와 사랑방으로 구성되어 있다. 구상 시인의 창작활동과 많은 문화예술인들이 모였던 관수재가 있어 시인의 향수를 느낄 수 있다.

 

1층 전시실에는 문단 활동 당시의 모습이 담긴 사진 자료와 지인들과 주고받은 편지, 서화 등이 전시되어 있다.

영상실은 시인의 문학세계와 사상을 생생한 육성을 통해 직접 들을 수 있어 또 다른 감동을 체험할 수 있다.

 

2층 보존서고는 구상시인이 생전에 가지고 있던 소장도서 뿐만 아니라 지인들이 기증한 도서 등 27,571권이 비치되어 있다.

사랑방에서는 매년 문학창작교실을 개최하고 있으며, 지역민들에게 문학창작 활동의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

 

관수재는 구상시인이 53년부터 74년까지 거주하셨다. 시인이 강을 바라보며 끊임없이 마음을 씻고 가다듬은 觀水洗心의 삶을 살았던 곳이다.

 

<펌>칠곡군청홈

 

 

 

 

흔적

 

관호산성 입구에 세워진 안내판에 쉬엄쉬엄, 느릿느릿 걸으며 즐기라는 글이 적혀 있다.

그리 적혀 있지 않아도 아내와 난 늘 그렇게 걷는 게 습관이 된 사람들이다.

실상 느릿느릿 쉬엄쉬엄 걸어도 시간을 그리 많이 빼앗아 가지도 않았다.

그래서 우린 여유롭게 다음 코스인 구상문학관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칠곡 왜관에 구상문학관이 있다는 사실은 진작부터 알고 있었다.

그러나 알고 있었던들 문학에 그닥 남다른 재주나 흥미가 컸던 것은 아니었기에

가는 길이 있으면 들러볼 거라는 잠정적인 마음만 가지고 있었던 터다.

그래서 오늘은 일삼아 마음먹고 시인 구상선생을 뵈러 갔다.

 

강가에 살았음에 그런지 특히 강을 많이 노래한 구상선생이

내 곁에 이렇게 가까이 있었음에도

, 그분으로 인해 깨달음을 얻는 기회를 갖지 못했다.

그분이 외면한 것이 아니라 그분은 늘 문을 열어두고 기다리고 있었음에도

무지한 사람이 곁을 주지 않아 그분으로 인해 얻은 것이 없었으리라.

 

구상문학관은 낙동강 바로 곁에 있는 왜관읍 중심에 있었다.

현대식 구조물을 이룬 문학관과 기와로 덮은 관수재의 명암이

다소 엇갈리는 듯 했으나 흙담 너머 주절주절 달린 산수유의 빨간 열매가

그나마 구상선생과는 다소 어울리지 않는 문학관 건물 이미지를

희석시켜 다른 생각을 갖지 않게 했다.

 

관수재는 구상선생이 1953년부터 왜관에 정착하여 74년까지

22년간 왕성한 문학 활동을 하며 거주하셨던 곳으로

낙동강을 바라보며 끊임없이 마음을 씻고 가다듬은

觀水洗心의 삶을 살았던 곳이다.

물론, 현재 자리한 구상문학관과 문학관 앞의 강을 바라보는 곳에 서 있는 관수재는

당시 구상선생이 거처하면서 왕성한 문학 활동을 하던 부근이었으며

관수재의 의미를 되새김질 하고자 하는 의미에서 전통한옥 구조로 신축한 건물이다.

그리고 평생 반려자이며 그를 위해 주치의 역할을 평생 감당했던 수호천사 서영옥 여사

, 그의 부인이 운영하던 순심의원이 있던 자리이기도 했다.

 

당시에는 () 구상문학관이 있는 장소가

강가에 있는 시골스러운 멋과 분위기를 자아내고 있었겠지만

지금은 왜관 읍내 상가와 주택이 밀집한 곳에 있어

구상선생의 분위기랑 다소 어울리지 않았다.

해서 문학관 직원한테 당시의 위치에 대해 물어봤더니

구상선생이 문학 활동을 하던 관수재와

그의 부인이 운영하던 순심의원이 있던 자리가 바로 현재 위치한 이곳이었다고 한다.

그 말을 듣고 위안은 되었지만

현재 부인인 서영옥 여사가 운영하던 순심의원은 그 맥이 끊어지고

문학관 영상실에서 방영되는 역사 속에서나 볼 수 있어 아쉬운 감이 들기도 했다.

 

의외로 슬그머니 다녀간 구상문학관에서 오늘 여행의 의미가 크게 부각되었다.

프랑스 문인협회가 선정한 세계 200대 문인으로

우리나라 현대문학사에 커다란 업적을 남긴 분의 족적을

영상으로나마 맞이하며 그분을 이해하는데 많은 도움을 받는다.

 

아내랑 영상실에 앉아 구상선생의 일대기를 보면서

살아생전의 모습을 떠올린다.

어두운 영상실을 나와 구상선생이 그랬듯 강가를 바라보니

마침 관수재로 강바람이 몰아 분다.

아마, 그 바람은 구상선생의 바람이었으리라.

 

 

 

 

 

구상문학관은 왜관 읍내의 상가와 주택이 번잡한 곳에 있으며, 낙동강 바람이 부는 곁에 있다.

 

 

영상실에서 구상선생의 삶을 만나본다.

 

 

 

 

 

 

 

 

 

 

 

 

관수재. 구상선생이 왜관에 터를 잡고 왕성한 문학활동을 하던 곳. 당시에는 화가 이중섭, 공초 오상순과 같은 당대의 내노라 하는 문인협객이  이곳을 드나들며 삶의 고뇌와 시대의 아픔을 함께 나누기도 했던 곳이다. 부인 서영옥 여사가 운영하던 '순심의원'과 관수재가 현 구상문학관이 있는 이 자리였다고 한다.

 

구상문학관 내부 시설물 안쪽으로 끌어들인 수로는 선생이 강가에서 강을 노래한 마음을 담아 형상화 하였다. 문학관 안에 또 하나의 나동강이 있는 셈이다.

 

또 다른 하나의 낙동강. 내부 바닥 모서리 부분을 물이 흐르는 수로로 만들었다. 구상선생이 늘 노래하듯 지은 강을 형상화 한 것이다.

 

문학관 내부

 

 

밖에서 본 구상문학관

 

담너머 산수유의 빨간 열매가 문학관의 겨울 분위기를 돋군다.

 

관수재. 물론 옛날에 있던 자리에 구상선생을 기리기 위해 새로 지은 건물이다.

 

 

 

3부. 성베네딕도회 왜관 수도원

 

 

 

하느님을 찾는 여정 성베네딕도회 왜관수도원

 

칠곡군 왜관읍 관문로 61

 

독일 성 베네딕도회 오딜리아수도원으로부터 파견된 수도자들이 북한 덕원과 중국 연길수도원에서 수도 생활을 하던 중 이념 차이로 인한 당국의 탄압과 더불어, 6·25전쟁 당시 북한 정권의 박해로 피란을 오면서 1952년에 설립되었다. ‘성 베네딕도회 왜관 수도원기도하고 일하라는 베네딕도 성인의 정신에 따라 깊은 신앙심과 성스러운 노동으로 더불어 살아가고 있으며 교육 복지 등 활발한 사회사업을 펼치고 있다.

 

<펌>칠곡군청홈 문화관광

 

 

 

 

 

흔적

마지막으로 1928년에 건축된 왜관 최초의 성당 성베네딕도회 왜관수도원을 찾았다.

오늘 찾은 네 곳은 모두 고만고만한데 있어 이동하기가 수월하다.

 

우리가 왜관 기행의 마지막으로 찾은 성당은

예스러운 멋과 정갈함이 공존하고 있었다.

마침 어린 신도들이 생일파티를 하며 즐거워하는 모습이

성당이 안고 있는 포근함으로 다가왔다.

 

1967왜관 성당으로 더 크게 지어 이전해 갔음으로

성베네딕도회 왜관수도원은 현재 구성당으로 불리운다.

신 고딕양식을 포함한 신 로마네스크 건축 양식인 구성당은

이 지역에서 그리스도교적 삶의 중심이 되었다고 한다.

 

왜관의 여기저기를 드나들며 성당을 마지막으로

오늘 하루 여정을 마무리 한다.

정갈하고 삶의 무게가 묵직한 성당을 나서는 발걸음이

유달리 상큼한 하루다.

 

 

 

 

 

신고딕양식을 겸한 신로마네스크양식의 구성당 

 

 

 

왜관에 처음 생긴 성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