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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방

제주 여행 첫날 : 사려니숲길 - 산굼부리 - 김영갑갤러리 - 성산일출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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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박 6일의 제주 여행

-눈으로 보고 가슴에 담은 제주 이야기-

 

 

 

■ 언제  : 2016. 1. 10. ~ 1. 15.(5박 6일), 1월 10일 저녁에 출발, 1월 15일 아침 비행기로 도착, 실제 여행 기간은 4일

 

■ 어디로 : 제주로

 

■ 누구랑 : 아내랑 딸내미랑

 

■ 숙식은 : 제주도에 머물고 있는 조카네 집에서 

 

 

 프롤로그

 

 

제주를 가나 마나 고민 끝에

결국 아내랑 짐을 싸 제주행 비행기에 올랐다.

큰조카와 질부가 직장 땜에 제주에 터를 잡고 있어

명절에 만나면 늘 작은아버지와 작은어머니 놀러 오시라며 노래를 한다.

그렇게 노래하듯 오라고 해도 이런 저런 연유로 인해 여가가 잘 나지 않는다.

 

그래도 시기 적절한 때를 골라 한 번은 가야하니

야생화가 좋은 봄·여름·가을이 좋을지  

그도 저도 아니면 한라에 눈 내린 겨울이 좋을란지

애들 있을 때 한 번은 가야겠는 데, 이왕지사 발걸음 하는 것

그냥 대책없이 시부지기 다녀오는 것보다

작정하고 가는 것이 나을 것 같아 저울질만 하다 보니

5년이 훌쩍 지나갔다.

 

마침 딸내미가 제주 오빠네 먼저 가 있어

이참에 가는 것이 여러모로 좋을 것 같아

우리도 만반의 준비를 하고 제주를 향해 날아갔다.

 

제주특별자치도청 홈페이지에 들어가 제주 전도와 권역별로 나눈 간략한 개념도를 다운 받아

어디를 어떻게 갈 것인가 동선을 고려한 후 코스 탐색을 하고

가고자 하는 곳의 역사와 문화를 재구성하여 깔끔하게 정리부터 먼저했다.

제주 여행은 제주시와 서귀포시를 중심으로 동·서부로 나누어

여행지를 6개 권역으로 분산하여 권역별로 집중 탐색하는 것이 나을 것 같아

그렇게 여행 자료를 정리해 두었다.

 

내 딴에는 나름대로 촉각을 곤두세우며 치밀하게 제주 섭렵 작전 계획을 수립했던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아무 짝에도 쓸모가 없게 되었다.

제주 오빠네 집에 이미 장기 투숙을 하고 있는 딸내미의 치밀한 계획에 의해

아비의 계획은 졸지에 무용지물이 되고 말았던 것이다.

 

그게 뭐냐면 이놈이 이번 제주 여행을 빌미로

취업을 할 것인가? 계속 공부를 할 것인가를 결정해야 하는 시점이라

나름대로 자신의 미래를 위해 숙고를 해야 할 혼자만의 시간이 필요했다.

그 사실을 에미 애비가 너무 잘 알고 있는지라

딸 아이의 마음을 우선 고려해야지 우리가 갑질을 할 수 있는 형편이 아니다.

현 상황에서 여행길마저 애비 독단으로 꾸려 나갈 수가 없는 노릇이란 얘기다. 

그래서 부부가 난생 처음으로 함께한 제주 여행은 기분좋게 딸내미한테 양보를 하니

애써 꾸려 놓았던 내 여행 보따리는 창고용이 되어 버렸다.

 

게다가 이놈이 나름대로 머리를 굴려 우리가 제주에 당도하기 전에는

제주올레길이라든가 버스로 접근하기 용이한 곳만 다니고

이동하기 먼 곳, 돈 많이 드는 곳은 모두 아껴 두었다가

우리가 오면 함께 가리라 생각하고 대기하고 있는 중이었다.

 

그러니 내 계획은 당연히 물거품이 될 수밖에 더 있나.

그러나 한 편 생각하면 그 정도 꾀를 부릴줄 아는 것만 해도

오히려 다행스럽다는 생각이 든다.

당체 꾀가 없어 보여 걱정이 되더만 

그만한 꾀라도 낼 줄 알아 오히려 다행스럽다.

그런 예쁜 꾀라도 있어야 험한 세상 지혜롭게 살아 갈 수 있지 않겠나.

 

어찌되었든 제주에서의 5박 6일 여정은 비교적 여유 있는 듯해도 빠듯하다.

10일 당일은 저녁에 제주에 당도했으니 오자마자 하루가 지나간다.

마지막날인 15일엔 아침 비행기를 타고 가야하니

제주에서 바쁘게 다녀야 할 날짜는 나흘밖에 여유가 없다.

 

다행히 조카는 회사에서 지원하는 차량을 타고 출퇴근을 하며 업무를 보면되니

우리는 조카네 차를 타고 차량으로 이동하며 나들이 할 수 있었다.

제주가 멀어야 얼마나 머나.

차량을 이용하여 다니니 여간 편리한 것이 아니다.

이곳 저곳 마음놓고 편히 다닐 일만 남았다.

 

큰조카 내외가 큰손님 맞느라 애 먹었다.

 

본격 여행기에 앞서

 

 

 

 

제주 여행 첫날 : 사려니숲길 - 산굼부리 - 김영갑갤러리 - 성산일출봉

 

 

 

1. 사려니숲길 탐방

 

 

흔적

 

 

제주에서의 5박 6일(1/10~15) 중 첫날은 저녁 나절에 제주에 당도하였기에

조카네가 마련한 제주토종돼지 전문집에서 식사를 겸해 소주 한 잔하며 하루를 보냈다.

늦은 시간이라 그닥 할 일이 있는 것도 아니었기에

식당에서 조카랑 가볍게 소주 한 잔 나누며 시간을 보냈다.

 

다음날(1/11) 아침 우리는 딸내미와 함께 제주의 첫번 째 여행지인 사려니숲길로 갔다.

딸내미가 우리랑 함께한 제주 여행의 시발점이다.

그런 사려니숲길은 내가 계획한 여행지 중에도 속해 있었다.

 

사려니숲길의 평균 고도는 550m이며, 비자림로를 시작으로 물찻오름과 사려니오름을 거쳐 가는

삼나무숲이 우거진 1112번 지방도 초입에 위치하고 있다.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조천읍 교래리 비자림로에서 서귀포시 남원읍 한남리 사려니오름까지

15km에 이르는 숲길을 가진 이곳은

'제주의 숨은 비경 31' 중 한 곳이며, 

삼나무, 편백나무와 같이 전봇대처럼 쭉 뻗은 키 큰 나무들이 줄지어 늘어선

청정한 숲길이 연이어져 식물을 좋아하는 여행자에게 힐링을 겸한 트래킹 코스로 인기가 많은 곳이다.

 

우리가 도착한 곳은 교래리 비자림로였으며, 여기는 주차 공간이 마땅치 않아

도로변 삼나무숲 사이에 주차를 할 수 있도록 주차 요원이 안내를 하고 있었다.

뭔가 제주란 지명과 격에 맞지  않는 모습이었지만

그리하지 않고는 현재 관광객들이 몰고오는 차량을 소화할 공간이 없어 보였다.

연세가 지긋하신 분이 친절하고 알뜰하게 주차 안내를 해 주신 덕분에

주차 여유가 없었음에도 안전하게 주차를 할 수 있었다.

추운 날씨임에도 친절하게 주차 안내를 하시는 분들께 감사의 말씀을 전한다.

 

우리는 먼저 걷기 전에 숲길이 시작되는 초입의 안내판 앞에 섰다. 

그리고 어디까지 갈 것인가를 그려보았다.

15km나 되는 먼 길을 다 걸을 수는 없기에 물찻오름까지만 다녀오기로 하고 숲으로 들어갔다.

거기까지만 해도 편도 6.6km, 왕복하면 13.2km나 된다.

왕복 3시간쯤 걸리는 데 다음 일정상 과연 물찻오름까지나 다녀올 수 있을지 모르겠다.

 

겨울이라 황량하기만 한 숲이 의외로 포근하고 안온하게 다가왔다.

숲으로 가는 오솔길은 마치 황토로 다져진 길처럼 갈빛을 띠고 있었다.

현무암 토양이라 잿빛 내지는 시커먼 길인 줄 알았더니 그게 아니었다.

폭신폭신한 것이 걷기 딱 좋았다.

 

나무도 잎이 모두 떨어져 겨울 냄새를 진하게 풍겼다.

그러나 그 와중에도 고목을 칭칭 감은 송악 줄기가 푸른 잎을 띠고 있고

제주특산식물인 제주조릿대가 양탄자를 깔아 놓은 듯 숲속을 지배하고 있다.

겨울이라고 모두 잿빛 천지는 아닌 모양이다.

 

그런데 날씨가 추워서 그런지

관중이 모두 쓰러져 축 늘어져 있다. 관중뿐 만이 아니다. 

천남성도 빨간 열매를 옥수수 알갱이처럼 아직 탱탱하게 달고 있던 데, 줄기만 삭은 채 모두 쓰러져 있다. 

똑바른 모습으로 서 있는 애가 있을 것 같아 찾아봤지만

아쉽게도 내 눈에 띤 건 모두 쓰러진 모습이 전부였다.

천남성은 그렇다하더라도 관중은 그래도 서 있을텐데 관중마저 모두 삭아서 엎어져 있었다.

날씨가 무지하게 추웠나 보다.

 

2.25km쯤 오니 아치형의 목교가 나오고, 목교 아래로 현무암 덩어리가 가득 채워진 채 긴 하천이 이어진다.

시커먼 괴석 사이로 움푹 패인 곳에 드문 드문 물이 고여 있기도 했다. 

돌도 시커멓고 까마귀도 시커멓고 고인 물까지 시커멓게 비치니 하천 주변은 온통 시커먼 모습이다. 

틈틈이 고인 물에 까마귀가 머리를 푹 담근 후 날개짓을 하며 물을 터는 모습을 되풀이 한다.

그 장면을 보아하니 먹이를 먹자고 머리를 물 속에 쳐박은 것은 아닌 것 같고

뭔가 나름대로 부족함을 해소하는 모습처럼 보이는 데 한 놈은 계속 그래샀고

그러던가 말던가 한 놈은 보초를 서 듯 멀뚱멀뚱 쳐다만 보고 있다.

그 모습이 재미있어 한참을 그놈들과 함께 놀았다.

 

아치형 목교 이름이 천미천이다.

천미천은 유로가 25.7km로 제주에서 가장 긴 하천에 속한다.

천미천은 화산 구조의 특성상 연중 거의 물이 흐르지 않는 건천에 속하나

폭우 시에는 갑자기 불어난 물로 인하여 엄청난 급류가 형성되기도 한단다.

하지만 비가 그치고 나면 곧 언제 그랬느냐는 듯 물이 쏙 빠져 버리겠지.

 

아무래도 물찻오름까지도 가기 어려울 것 같다.

사려니숲길에서 더 이상 시간을 소비할 여유가 없다.

오늘 일정만 해도 빠듯한 데 더 이상 여유를 부릴 형편이 안 된다.

길이 너무 좋으니 아내와 딸내미는 한정없이 가고자 한다.

억지로 뜯어 말려 물찻오름 가기 전에 다시 되돌아 가야만 했다.

 

하지만, 오늘 비록 일부 구간이지만, 사려니숲길 탐방을 하면서

사려니의 매력을 충분히 느꼈으니

언제 다시 여유로울 때 야생화를 찾아 이 길을 다시 걷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그때는 반드시 물찻오름과 사려니오름도 함께 올라야겠다.

 

산굼부리에서 나이 지긋하신 친절하신 여자 해설사분께 들은 얘기로는

물찻오름이 그렇게도 좋단다.

제주 오름 중에서 유일하게 물이 고여 있는 곳이기도하며

오름을 오르는 주변 풍치(風致)가 그렇게 좋을 수가 없단다.

그런데 이 좋은 곳을 요즘은 개방을 하지 않고 당분간 폐쇄를 했다고 한다.

 

그 이유가 웃기지도 않는다.

어떤 사람인지 물찻오름의 웅덩이에 붕어를 풀어 놓고 먹이를 주며 길렀는 데

거기다가 낚시까지 하는 몰지각한 행태를 해

그냥 방관하면 지하수의 오염 및 심각한 자연 훼손이 우려되어

부랴부랴 폐쇄 조치를 하지 않을 수 없다고 하셨다.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 지, 설명을 듣고 있던 우리도 도무지 대책이 안 선다.

 

참, 세상엔 별의 별 사람이 다 있다.

그 물이 어떤 물이던가? 바로 제주가 자랑하는 '삼다수'가 아니던가?

이참에 다함께 각성할 노릇이다.

 

 

 

 

 

 

 

 

 

 

 

 

 

 

 

 

 

 

 

 

 

 

 

 

 

 

 

 

 

 

 

 

 

2. 산굼부리 탐방

 

신주소 :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조천읍 비자림로 768번지

 


  흔적

 

산굼부리분화구는 대략 제주시와 서귀포시 동부의 중간쯤에 위치하고 있다.

분화구가 형성된 시기는 미상이나 약 13만 년 전에 형성된 것으로 추정하고 있으며

지형의 크기는 무려 14만여 평에 달한다.

 

산굼부리 역시 연맹활동을 하면서 애들과 함께 온 적이 있다.

오래 전 일이라 어렴풋이 기억에 남아 있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뭔가 확연히 떠오르는 것도 없다.

이번에는 아내와 딸아이랑 함께 왔다.

돌계단을 따라 만댕이에 올라서니 움푹 패인 펑퍼짐한 솥뚜껑 뒤집어 놓은 듯한 지형이 나타난다.

 

산굼부리는 대체로 나즈막한 언덕 정도로 보면 된다.

나즈막한 둔덕 아래 펼쳐진 평원이 멋진 곳이다.

구상나무 군락이 한 겨울을 버티고, 억새 군락이 모진바람에 하염없이 나부끼고 있다.

나즈막하지만 마치 창녕 화왕산이나 경주 무장산 억새밭에 선 느낌이다.

그만큼 억새밭이 무성하고 정돈이 잘 되어 있다.

데이트하는 연인들의 감성을 자극하고, 사진기 셔터는 누르는 대로 작품이다.

 

아내랑 딸내미랑 산굼부리로 곧장 올라가 잘 다듬어 놓은 산책길을 따라

시계방향으로 반 바퀴 돈 후 분화구 앞에 섰다.

누각으로 된 안내소가 있고 그 앞으로 광활하게 펼쳐진 평원의 중심에 깊게 패인 분화구가 있다.

가까이 가지 않고 겉으로 보자면 화산체가 낮아 이렇게 깊은 분화구가 있으리라고 예상하기 어렵다.

한라산이 보이는 풍경이 너무 좋아 사진 찍기 안성맞춤이었지만,

분화구 앞에 선 우리는 못된 바람 때문에 똑바로 서 있을 수 조차 없었다.

그런 와중에도 난 사진기 셔터를 연신 눌렀다.

찍다보면 쓸 만한 사진 한 장 건진다는 일념으로 찍고 또 찍었다.

 

오늘은 바람이 너무 세 관광객이 그리 많이 보이지 않는다.

안내소 앞에서 산굼부리의 특징을 적어 놓은 글을 읽던 딸내미가 혼잣말로 해설을 들었으면 하는 말을 내비쳤다.

해설을 듣자면 사전에 신청을 했어야 하고,

우리는 달랑 3명이 여행을 하는 형편이라 그러고 싶어도 그럴 수가 없었다.

그런데 딸아이가 시부즈기 딱 한 번 내뱉은 말을 마침 안내소에 있던 해설사 분이 들은 모양이다.

두 사람밖에 없는데 설명을 자청하신 모양이다.

마침 주변에서 여행하던 가족 3명이 가세해 설명 들을 사람이 5명으로 늘었다.

그 광경을 본 나도 껴 도합 6명이 해설사의 설명을 들었다.

 

, 고마운 분이다.

신청도 하지 않고 듣는 사람도 극소수에 불과한데,

거기다 오늘 산굼부리에 부는 바람은 얼마나 못됐게 불고 있는가?

그럼에도 아랑곳 하지 않고 성심껏 설명을 다 하신다.

 

역시 해설을 동반한 여행과 그냥 상식 없이 하는 여행의 차이는 크다.

우리는 그저 광활한 평원에 꽤 깊은 분화구가 패여 있다 싶었는데 설명을 듣고보니 그게 다가 아니었다.

깊이가 무려 아파트 44층 높이에 달하며, 예전에는 그 분화구 안에서 사람이 거주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깊은 웅덩이 속에서 어떻게 사람이 거주하고 살았는지 잘 이해가 되지 않았지만,

그 의혹은 설명을 듣고 나니 쉽게 이해되었다.

 

우선 사람이 살았던 흔적으로 인가가 있었던 주변의 대나무숲 얘기를 했다.

분화구 안에 있는 대나무도 위에서 보면 멀어서 무슨 잡풀이 자라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 대나무도 높이가 무려 10m가 넘는다고 한다.

아직도 잔존하고 있는 것만 해도 적잖아 보이는 데

옛날에는 그 주변에 대나무가 더 많이 자라고 있었다고 한다.

지금은 모두 베어내고 현재 눈에 보이는 것이 전부란다.

분화구 안의 대나무는 그 당시 살던 사람들이 필요에 의해 인위적으로 심었던 대나무였단다.

 

그러면 비가 많이 오는 제주에 특히 산굼부리쪽에는 비가 올 때면 장대같이 쏟아 붓는다는 데,

어떻게 분화구 안에 있는 인가가 물에 잠기지 않고 거뜬하게 버텨낼 수 있었을까?

모두 의아심을 가질 수밖에 없다.

화산탄으로 메꾸어진 분화구라 하더라도 억수 같이 쏟아지는 장대비를 감당하기는 역부족이리라.

그러나 역시 해답은 현무암 지형에 있었다.

지형의 특성상 쏟아지는 우량만큼 배수도 잘 된단다.

가옥이 침수될 염려가 없었던 것이다. 

그뿐만이 아니다. 여기선 겨울 매서운 혹한에도 끄떡없이 찬 겨울을 날 수 있었단다.

분화구가 깊다 보니 제주의 센바람을 피해 살아 가기 더 좋았던 면이 있었던 것이다.

다만분화구가 깊어 생필품을 구하자면 분화구 안을 벗어나야 하는데 그게 불편했던 모양이다.

분화구 안에서 자급자족하는 삶을 살 수밖에 없었다고 봐야겠다.

분화구는 생활이 어려운 사람들의 생존 터전이 된 셈이다.

 

부연하지만 산굼부리 분화구는 생각보다 넓고 깊다. 

성산 일출봉에서 해가 떠 한라산 백록담으로 해가 너머 갈 때면,

분화구 속을 둘러싸고 있는 식물의 일조량이 서로 다르다. 

분화구 안의 동·서를 기준으로 식생 환경이 판이하고,

높이에 따라 식물 분포 또한 다르다.

분화구 안은 또 다른 자연환경이 서식하고 있는 것이다.

난대림, 온대림, 한대림이 교차하고 있는 것이다.

 

제주하면 '삼다수' 또한 빼 놓을 수 없는 귀한 물이다.

진즉 대한항공이 삼다수의 진가를 알고 이를 음용하기 시작했으며,

대한항공 기내에서 공급하는 물도 삼다수라고 한다.

대한민국 유일의 화산암반수인 삼다수는 올해부터 직영 체제로 전환해

제주개발공사가 맡았으나 아직은 유통체계 및 준비 미흡으로 다소 잡음이 유발되고 있는 상황이다.

그러나 어찌되었든 삼다수는 우리나라 유일의 화산암반수이며 ,

산굼부리가 있는 교래리에서 집중 생산되고 있다.

만약 이 지역이 오염된다면 그것은 재앙에 가까운 일일 것이다.

화산 지형 특성상 오염이 된다면 얼마나 빠른 속도로 오염이 될 것인가?

끔찍한 상상이다. 이런 우려는 하지 않는 것이 낫다.

 

제주 삼다수에 관해 설명을 하시던 해설사 분이

갑자기 우리가 오전에 다녀온 샤려니숲길의 물찻오름에 대해서 부연 설명을 한다.

물찻오름길이 그렇게 좋은 곳이라며 꼭 가봐야 한다고 자랑이 늘어졌다.

그 말을 듣는 순간 우리는 아차 하는 마음이 들었다.

사실 우리는 산굼부리 오기 전에 먼저 샤려니숲길을 다녀 온 것이다.

물찻오름 어귀까지라도 가려고 하다가 시간이 여의치 않아 가지 않았는 데

거기가 그렇게 좋은 곳이었다니 아쉬움이 절로 난다.

 

한국 사람 말은 끝까지 들어봐야 안다고 했던가?

애써 아쉬움을 감추며 계속되는 설명을 진지하게 듣자니,

오히려 가지 않은 것이 간 것보다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왜냐하면 제주에는 368개의 많은 오름이 있지만,

물이 고여 있는 오름은 9개 정도로 국한되어 있다고 한다.

그 중 물찻오름도 물이 고여 있는 오름 중 한 곳인데

맑고 아름답기가 그 어느 오름에 비할 바 아니며,

오름에 올라 바라보는 주변 풍경은 더 할 나위 없이 황홀하기 짝이 없단다.


그런데 지금 물찻오름 길은 개방을 아니하고 잠정 폐쇄 조치를 하고 있다고 했다.

어떤 몰지각한 인간이 거기에 붕어를 풀어 먹이까지 줘가며 고기를 기르고

심지어 떡밥까지 풀어가며 낚시를 하는 추태를 부려

급기야 폐쇄 조치에 이르게 된 것이다.

, 인간이 많다보니 온갖 추태를 다 본다.

그 참! 어째 그런 일이 있을 수 있는지 살다보니 온갖 기상한 얘기를 다 듣는다.

 

산굼부리에 와 느닷없이 노다지를 캔 기분이다.

딸아이가 무심코 내뱉은 해설 좀 들었으면 좋겠다는 혼잣말을 들은 해설사 분이

산굼부리에 부는 매서운 바람에도 아랑곳 하지 않고,

6명을 대상으로 솔선해 30여 분이나 설명해 주었다.

그것도 아주 진지하고 성실하게 하나라도 더 알려주고 싶어했다.

물론, 듣는 우리도 성심껏 들어서 그런지 해설을 하는데 거침이 없다.

제주에 와서 56일 여행하면서 가장 큰 수확을 산굼부리에서 얻고 간다.

차제에 해설사 분께 감사의 말씀을 꼭 드리고 싶다.


존함은 생각나지 않지만 연세가 있으신 여성분이었는데

이 글을 그분께 드리고 싶다. 


 

 

 

 

 

 

 

 

 

 

 

 

 

 

 

 

 

 

 

 

 

 

 

 

 

 

 

 

 

 

3. 김영갑 갤러리 두모악

 

김영갑갤러리두모악    (699-094) 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성산읍 삼달리437-5(삼달로137)

 

 

흔적

 

 

김영갑갤러리 두모악은 제주 남동쪽 해안 가까운 서귀포시 성산읍 삼달리에 자리잡고 있다.

오늘 두번 째 갔던 산굼부리에서 꽤 먼 곳에 있었다.

난, 김영갑이 누군지 당체 듣도 보도 못했다.

오로지 딸아이가 가고 싶어해 간 것에 불과했다.

이번 제주 여행은 딸아이로 인해 일정에 반해 엉뚱한 곳도 많이 갔다.

이정도면 꽤 괜찮은 에미 애비가 될라나...

 

입장료도 있었지만, 이왕 걸음한 것 함께 갤러리로 들어갔다.

갤러리의 주인공이 누군가?

왜, 여기에 갤러리를 만들어 여행객의 발걸음을 끌어 들이는가 궁금했다.

 

먼저, 김영갑갤러리 두모악이라는 이름에서 '두모악'이 뭔지 살펴봤다.

두모악이란 꽤 있어 보이는 이름은 알고보니 한라산의 옛이름이란다.

김영갑씨가 얼마나 제주를 사랑한 것인가를 엿보는 부분이기도 하다.

 

57년에 충남 부여에서 태어나 고향 땅은 거의 밟지 못하고

1982년에 제주에 발을 디딘 후로 제주에 매려되어 급기야 85년에 제주에 정착을 한 인물이다.

제주에 정착한 후 2005년 작고할 때까지 오로지 제주를 사랑하고 아끼는 마음을 담아

제주 사진에 올인을 한 인물이다.

 

갤러리 입구에 들어서면 정면에 악보가 그려진 액자 하나가 보인다.

'<김영갑氏> 김희갑 작곡, 양인자 작사, 노래 김진권 '이라 적혀 있다.

아마 이 분을 추모해 만든 노래인 것 같다.

노래를 만들고 부른 이의 이름만 들어도 대단한 인물로 각인되는 순간이다.

 

김영갑씨의 제주 사진을 흘기듯 지나가며 보는 데 괜히 작가에게 미안한 마음이 든다.

사진 한 장 찍는 데 혼신의 정을 다하여 겨우 마음에 드는 사진 한 장 얻었을 텐데

나는 뭔가? 1분이면 대여섯장은 쉽게 찍어 버리는 나 같은 사람은 도대체 뭔가?

괜시리 미안해 지는 것이 작가의 사진을 뚫어져라 바라보기도 미안타.

 

그래서 갤러리 밖으로 나왔다.

마당을 서성거리며 삼달국민학교라 적힌 돌기둥을 바라봤다.

두모악이 그 옛날 삼달국민학교였나 보다. 

마당은 아주 잘 가꾸어져 있었다.

길을 낸 가장자리 돌무더기를 따라 수선화가 계절도 모른 채 예쁘게 피고 있다.

바람이 시샘하여 꽃 핀 수선화를 그냥 내버려 두질 않는다.

이 겨울에 수선화가 너무 예뻐 김영갑씨가 사진 찍을 때처럼 흉내를 내며

고상하게 찍어볼랬더니 바람이 훼방을 놓는다.

 

딸아이는 나올 기미가 없다.

아마 사진에 반했나 보다.

나는 결국 밖으로 나왔다.

녹슨 철판을 기울게 세워둔 구조물에 '두모악'이라는 글씨가 눈에 확 들어온다.

그것도 내 카메라 앵글에 잡았다.

 

주차장 한 켠 집담 너머 귤밭에 귤이 송글송글 맺혀 있다.

오른쪽편으로는 하늘타리 열매가 조그만 외처럼 노랗게 매달려 있다.

주변 풍경이 아기자기 한 것이 갤러리 분위기와 잘 어울리는 것 같다.

답답하지도 않고, 화려하지도 않으며

목가적이고 점잖은 것이 작가의 성품과 잘 어우러진 거 같다.

 

작가는 갔어도 작품은 살아 있다.

그를 추모하고 그의 인생을 고뇌하고 감내한 많은 우인들이

그가 갔을지언정 갔어도 늘 그 곁에 있다.

이름 한 번 들어본 적 없던 나도 오늘 왔다 간다.

작가는 죽어도 죽은 것이 아닌가 보다. 

 

 

 

 

 

 

 

 

 

 

 

 

 

 

 

 

 

 

 

 

 

 

 

 

4. 성산 일출봉

 

  • 주소 : 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성산읍 일출로 284-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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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흔적

     

    영갑갤러리에서 나와 1132 해안일주로를 따라 오늘 여정의 마지막인 성산일출봉으로 갔다.

    일출봉 역시 언제던가 연맹 애들을 인솔하여 다녀 간 적이 있었다.

    애들을 인솔하여 보면 알겠지만, 떼거리로 모여 천방지축으로 날뛰는 애들을 뒤로하고

    애들을 인솔한 지도교사가 자기만의 여유를 가지며 세세하게 탐방할 수 있는 여유는 없을 것이다.

     

    그래서 그런지 일출봉엘 다녀갔어도 특별하게 남는 기억이 별로 없다.

    , 그나마 그렇게라도 일출봉을 한 번 다녀갔다고, 가지 않은 다른 곳이 워낙 산재한 터라 크게 가고 싶은 맘이 없었다.

    그저 딸내미 일정에 맞추어 주다 보니 엉겁결에 두 번째 방문을 하게 된 것이다.

    근데, 이번 제주 방문길에 일출봉엘 다시 오지 않았다면 크게 후회할 뻔 했다.

    도무지 내가 예전에 여기를 오긴 했는가 싶을 정도로 생소하기만 했기 때문이다.

    겨우 떠오르는 기억은 일출봉 언저리 주변만 어렴풋이 어슬렁 거렸던 기억만 난다.

     

    아마, 그때 애들 인솔했을 땐 후미 그룹 아이들 뒤치다꺼리 하느라 일출봉까지 올라가지도 못했던 것 같다.

    올라가면서 보니 전혀 올라간 기억이 없다.

    그래서 처음 왔다고 생각하고 이번 방문길엔 여물게 탐색을 했다.

    여행길이 익숙하지 않은 딸내미도 애비 이상으로 제대로 탐방을 한다.

    아니, 오히려 애비보다 여행에 임하는 자세가 더 낫다.

     

    성산 일출봉은 약 5,000년 전 제주도의 수많은 분화구 중에서

    얕은 바닷가에서 폭발하여 만들어진 해발 180m에 달하는 보기 드문 화산체이다.

    지하의 뜨거운 마그마가 물과 섞일 때 발생한 강력한 폭발로 인해

    마그마와 주변 암석이 가루가 되어 쌓인 것이 일출봉이라고 한다.

    원래는 화산섬 이었지만, 신양해수욕장 쪽 땅과 섬 사이에 모래와 자갈이 쌓여

    자연스럽게 육지와 연결된 곳이다 보니 관광객들이 드나들기 수월해 진 곳이기도 하다.

     

    성산일출봉은 예부터 정상에서 바라보는 일출 광경이 그 어느 곳에도 비할 바 아니며

    영주 10경 중에서도 그 으뜸이라 하였다.

    지방기념물로 관리하다 2000719일 천연기념물로 지정되었으며,

    빼어난 경관과 지질학적 가치를 인정받아 200772UNESCO 세계자연유산 등재에 이어,

    2010101UNESCO 세계지질공원에 인증되었을 뿐만 아니라, 2011년도 대한민국 자연생태관광 으뜸명소,

    201212월 한국관광기네스 12선에도 선정되었다.

    가히 제주의 명승지 중 최고라 해도 과언이 아님은 가본 자만이 알 일이다.

    <참고> http://jejuwnh.jeju.go.kr/contents/index.php?mid=020202

     

    먼저 일출봉으로 올라가는 언덕바지는 완만한 구릉을 따라 다소 급해지는 경사로를 약간 힘들게 걸어 올라야 한다.

    겨울이 깊어 나무와 풀은 대부분 색이 바랬지만,

    그래도 제주인지라 계절을 잊은 채 꽃을 피운 풀과 나무가 드문드문 눈에 띄었다.

    일출봉의 식생분포가 궁금했던 나는 나무 한 그루, 풀 한 포기도 그냥 지나치지 않았다.

    차가운 제주의 겨울바람에도 아랑곳 하지 않고, 아직도 노란 꽃을 피우고 있는 털머위

    빨갛게 예쁜 꽃을 피운 아름드리 동백나무꽃, 중국남부가 원산지인 나한송

    노란 참외가 주저리주저리 달린 듯한 노랑하늘타리, 역시 빨간 열매가 예쁜 돈나무

    그리고 무엇보다 등경돌이라고 하는 성산일출봉의 독특한 바위들이 돋보였다.

     

    일출봉으로 올라가는 길은 낮지만, 그래도 경사가 있어 올라가는 데 약간 힘은 들었다만,

    그래도 아직 남아 있는 초록빛의 나무와 예쁜 꽃, 일출봉이 만든 독특한 기암과 주변 풍광을 보노라니

    어느 틈엔가 발걸음이 정상에 머물러 있다.

    일출봉은 그런 오름이다. 일출봉을 끼고 쪽 뻗어 있는 광치기 해변이 시원스럽고

    어촌 마을과 주변 상가까지 이채롭기 그지없다.

    더더구나 사발처럼 움푹 패인 분화구는 요즈음 자연 식생의 보고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꽃이 좋은 계절에 분화구 속으로 들어갔다가 나왔으면 좋겠다는 욕심이 생긴다.

    이 마음은 산굼부리에서도 그랬다. 산굼부리 분화구는 현재 통제를 하고 있지만,

    허가를 받을 수 있다면 들어갔다가 나왔으면 딱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멀리 소가 누워 있는 우도가 마치 손에 잡힐 듯 가까이 있다.

     

    일출봉에 서서 전에 없이 조망도 많이 하고 자연 상태도 많이 관찰을 하였다.

    인제 제주에 오더라도 일출봉을 다시 오겠나.

    이로써 일출봉은 마지막일 것 같다. 그런 생각이 드니 자연스럽게 오늘 한 발걸음에 더욱 애정이 간다.

    그런 마음으로 일출봉에서 느릿느릿 걸어 내려오며 올라오면서 놓친 광경, 풀과 나무를 찍어가며 그렇게 내려왔다.

     

    이제 일출봉을 뒤로 하고 오늘 여정을 마감해야 한다.

    우리는 왔던 길로 되돌아가 일출봉 가면서 봐 두었던 노란 유채꽃이 한창인 해변을 찾았다.

    겨울인데도 유채꽃이 한창이다. 조카한테 얘기했더니 거기는 1년 내내 그렇게 유채꽃이 만발해 있단다.

    제주란 참 희한한 동네다.

     

    유채꽃밭에서 사진 촬영을 하려면 요금을 지불해야 한다.

    그런데 지금은 해가 저물고 바람이 너무 세 요금을 받는 사람이 없다.

    아무도 없는 꽃밭에 들어가 아내 사진을 찍어준다.

    바람이 너무 거세 꽃이 잠시도 제자리를 지키지 않고 심하게 흔들리고 있다.

    공짜로 찍는다고 좋아라했더니 그것도 아니었다.

    세상에 공짜로 쉽게 얻어 걸리는 것은 없나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