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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방

대율리 한밤마을, 군위 화본역 & 산성중(3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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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율리 한밤마을, 군위 화본역 & 산성중

 

 

언제 : 2015. 11. 15.(일)

 

어디로 : 대율리 한밤마을, 군위 화본역 & 산성중

 

누구랑 : 아내랑

 

 

 

 

흔적

 

화본역에서 철둑 길 추억을 상기한 후 5분 거리에 있는 산성중으로 갔다.

 

폐교가 된 산성중으로 갔더니 산성중의 연혁에 대해 궁금증이 발동한다. 조사한 바에 의하면

산성중은 54420일 산성중학원으로 설립 인가를 받아 개교를 하였고

그 이후 의흥중학교 산성분교로 인가를 받았으며

71115일 산성중학교로 최종 인가를 받았다.

2009217일 제53회 졸업식(졸업생 3)을 끝으로 그동안 3,094명의 졸업생을 배출하고

200931일자로 반백년의 역사를 마감한 채 쓸쓸히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달랑 3명의 졸업생을 데리고 거행한 제53회 졸업식장은

아마 눈물의 식장이었으리라.

18대 교장을 역임한 박성식 교장의 졸업식 회고사에 의하면 제53회 졸업식은

마지막으로 3명이 졸업하지만, 남아 있는 1, 2학년 6명도 인근 제2석굴암 가는 길의 부계중학교로 떠나보내고

13명의 교직원도 다른 학교로 모두 떠나야 하는 또 다른 형태의 특별한 졸업식이라고 했다.

 

산도 울고 들판도 울고

학생도 울고 교직원도 울고 학부모도 울고, 모두 울고 울었을 것이다.

황망한 졸업식장엔 휑한 찬바람이 몰아쳤을 것이고

그 바람이 모든 눈물을 거둬 갔을 것이다.

그렇게 산성중학교는 53년의 역사를 안고 강가의 옅은 물안개 속에 묻혔을 것이다.

 

그러나 역사 저편으로 넘어간 산성중은 물안개 속에 마냥 묻혀버린 것만은 아니었다.

물안개가 걷히며 폐교를 활용한 지역 명소로 새롭게 부상했던 것이다.

엄마 아빠 어렸을 적에~’ 라는 주제로 옛 추억을 되살리는

엄마 아빠 세대의 문화가 공존하는 소중한 공간으로 탈바꿈한 것이다.

물론 전시된 환경물의 모두는 아내와 내가 살아온 지난했던 시절의 소산물들이 주류를 이루었지만...

 

먼저 운동장을 한 바퀴 휘돌고 야생화 전시관을 둘러봤다.

계절이 계절인지라 대부분 꽃은 지고 없었지만,

그래도 분재로 가꾼 나무에는 열매도 달려 있고 꽃이 핀 애도 있었다.

쥐똥나무에도 까만 열매가 맺혀 있고, 꼭지윤노리의 빠알간 열매도 앙증맞다.

대문자초란 애는 새악시의 볼그레한 뺨보다 더 이쁘다.

아내랑 산천을 다니며 초목과 함께 놀며 보았던 얘들이 없다보니

이 친구들이 큰 위로가 된다.

 

사진관에 있던 교복과 교련복 그리고 교모와 교련복 모자

이것만 봐도 학창 시절이 절로 떠오른다.

머리숱이 많아 짧은 머리임에도 늘 긴 것처럼 보여 교련쌤한테

일단 머리 한 대 얻어맞고 시작했던 억울한 일들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간다.

폐교가 된 빈 교실엔 이렇게 옛 추억이 소담스럽게 쌓여 있다.

 

손풍금이 있고 대문만한 주판이 칠판에 걸쳐있다.

난로 위엔 도시락이 어지럽게 포개져 있고

환경게시판엔 빛바랜 상장과 통일을 염원하는 포스터가 덕지덕지 붙어 있다.

또 어떤 교실에는 포니2 한 대가 떡하니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옛날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아이스께끼 통

교련 시간에 사용하던 목총 혹은 플라스틱 모형총

그리고 선데이서울이랑 주간경향이란 주간 잡지도 전시되어 있다.

기차를 타거나 고속버스를 탈 때 한 번쯤 사본 기억이 있을 것이다.

모두 향수를 자극하는 전시물들이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산성중에서 소시 적 향수를 많이 맡았다.

주제가 엄마 아빠 어릴 적~과 잘 어울리게 꾸며져 있다.

비록 학교는 역사 속으로 사라졌지만

부모님의 향수를 자극하는 공간으로 탈바꿈하여

산성중의 오랜 역사를 되새김질 하게 만든다.

잘 한 일이다.

 

군위군은 최근 자랑할 만한 업적들을 하나하나 잘 챙기고 가꾸는 것 같다.

동산계곡 위의 팔공산 하늘정원을 가꾼 것도 그렇고

원효대사의 구도의 길인 원효굴이 있는 청운대 아래 오도암 중창도 그렇다.

문화재 복원과 함께 오도암이란 사찰을 중창하는데 군위군에서 일조를 하는 모양이다.

지난번 오도암을 갔을 때 스님이 그리 말씀하신 것 같다.

 

이렇듯 군위 쪽 산과 명승고적을 다니다보면

군위군에서 주가 되어 군위의 문화와 역사를 가꾸는 모습을 더러 접한다.

그럴 때마다 난, 군위가 군위를 무척 사랑하고 아끼며 잘 가꾸어 감을 느낀곤 한다.

무척 잘 하는 일이라 사료된다.

 

 

 

 

 

 

 

3부. 군위 산성중, 엄마·아빠의 옛 추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