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부. 다도해 섬 기행 보길도편
■ 언제 : 2015. 10. 9.(금) ~ 10.(토), 1박 2일
■ 어디로 : 완도 - 신지도 - 노화도 - 보길도 - 땅끝
■ 누구랑 : 초롱이 내외랑 정민이 내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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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부. 흔적 보길도편
노화도 동천항에 내렸다.
노화도 역시 완도에 걸 맞는 전복의 고장이었다.
바다 곳곳에 전복 양식장이 밭을 이루고 있었다.
노화도에서 우리는 곧장 보길대교를 넘었다.
어차피 노화도는 보길도로 가기 위한 징검다리 역할을 한 곳이라
어려운 걸음이었지만, 노화도를 등한 시 할 수밖에 없었다.
우리는 보길대교를 지나 우암 송시열의 애환이 담긴 ‘글씐바위’로 먼저 갔다.
꽤 먼 거리였다. 가보니 자그마한 섬에 불과할 줄 알았던 보길도도 의외로 큰 섬이었다.
글씐바위는 주차장에 안착하고 나니 주차장에서 불과 300m 거리에 있었다.
그러나 거리는 300m였지만 해안 숲길이라 남쪽 지방에서 주로 서식하는 각종 기이한 나무들로 가득 차 있었다.
우묵사스레피나무, 동백나무, 말오줌때, 누리장나무, 돈나무, 다정큼나무 등
내륙에서 보기 어려운 각종 나무들이 즐비하게 늘어져 있었다.
이렇게 내가 꽃과 나무 이름을 주절주절 읊을 수 있는 것은
내가 잘 알아 그런 것이 아니라 내가 애용하는 카페 신세를 진 덕이라 보면 된다.
혹시 이 글을 읽는 사람들이 날 보고 식물에 엄청 조애가 깊은 줄 알까봐
그렇지 않고 계속 관심을 가지고 공부를 하고 있는 중이라 밝히고 있는 것이다.
우암 송시열이 새긴 글씐바위를 들여다보면 도대체 무슨 글자가 새겨져 있는지 알아보기 쉽지 않다.
모진 세월을 감당한 우암 송시열만큼 시린 바닷바람에 새긴 글자가 깍였을 터이고
세월이 풍화한 탓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 보다 더욱 심각한 것은 탁본을 위해 먹을 묻힌 자국이 글씨를 더 알아보기 어렵게 만든 것 같아 시린 가슴이 더욱 아프게 시려 온다.
왜, 모두들 바라보는 데 만족을 하지 못하고 저리 해코지를 하는지 알다가 모를 일이다.
해안 바위에 암각된 글의 내용은 이렇다.
八十三歲翁(팔십상세옹) 83세 늙은 이 몸이
蒼波萬里中(창파만리중) 푸른 바다 한 가운데 떠 있구나.
一言胡大罪(일언호대죄) 한 마디 말이 무슨 큰 죄일까
三黜亦云窮(삼출역운궁) 세 번이나 쫓겨난 이도 또한 힘들었을 것이다.
北極空瞻日(북극공첨일) 대궐에 계신님을 속절없이 우러르며
南溟但信風(남명단신풍) 다만 남녘 바다의 순항만을 믿을 수밖에
貂裘舊恩在(초구구은재) 담비갓옷 내리신 옛 은혜 있으니
感激泣孤衷(감격읍고충) 감격하여 외로운 충정으로 흐느끼네.
글씐바위를 지나 뾰죽산(보죽산)이 있는 공룡알해변으로 갔다.
둥근 자갈이 마치 공룡알 같아 이름을 그리 붙인 것 같다.
해변 바로 곁에 있는 뾰죽산 정상에 서있는 산객의 모습도 보인다.
저 산에 올라 내려다보는 풍광이 단연 압권인데
일정상 높지 않은 산을 그저 바라보는 것으로 만족을 한다.
비교적 따가운 햇살이었지만, 동글동글한 공룡알해변에 옹기종기 둘러 앉아
아침에 말아온 주먹밥으로 한 끼 점심을 해결했다.
공룡알해변에 놓인 안내판을 보니 여기가 보옥리고
보옥리에서 큰기미절벽을 따라 예송리로 가는 멋진 탐방로가 연결되어 있었다.
이 탐방로를 걸었어야 하는데 너무 아깝다.
5km나 되니 왕복으로 발걸음하기에는 시간이 너무 없다.
보길도는 앞으로도 가야할 곳이 많아 여기서 더 이상 지체할 겨를마저 없다.
아쉬움에 공룡알해변 주변의 꽃과 나무를 찾아 담았다.
동백나무를 휘감고 있는 노랑하늘타리열매가 푸른 열매를 맺고 늘어져 있는 모습
노란꽃과 꽃 진 자리가 하얀 솜방망이처럼 생긴 사데풀
내륙에선 전혀 볼 수 없는 보리밥나무
그리고 방풍림으로 채워진 동백나무 군락을 보면서 맘껏 눈 호강을 시켰다.
뾰죽산을 배경으로 빨간 열매와 하얀 꽃이 함께 이쁘게 핀 나무가 보였다.
누리장나무였다. 먼 걸음 끝에 본 애라 그런지 이렇게 유별나게 이쁜 누리장나무의 모습은 처음이다.
카메라에 그 장면을 놓칠 수가 없어 뾰죽산을 배경으로 여러장 사진에 담고서야 공룡알해변을 벗어났다.
이제 보길도의 주인공인 고산 윤선도를 만나러 간다.
가는 길에 공룡알해변으로 오면서 봐 두었던 정자리 황칠나무를 만나러 갔다.
일행을 찻길에 머물게 하고 혼자 바삐 알현하러 갔다.
천연기념물 제479호로 지정된 황칠나무는 1970년대 초반에
박모씨라는 분이 목을 메어 숨지자 이때부터 마을 사람들이 신들린 나무라하여 접근을 하지 않고 손을 대지 않아 오히려 오늘날까지 잘 보호된 것이라고 전한다.
그러고 보니 바로 옆에 우두마을이 있음에도 얼마 되지 않는 길은 음산하기 그지없었다.
도로변에서 불과 200m 거리에 있음에도 사람이 없어 그런지 마을이 끝나는 길에서 70m거리에 있는 황칠나무로 가는 길은 키 큰 대밭으로 무장되어 있고
그 안에 황칠나무가 우뚝 서 있었다.
그 사실을 진작 알았다면, 혼자서 가지 않았을 텐데 지금 생각하니 오싹하니 소름이 돋는다.
마을이 바로 곁에 있었음에도 사진을 찍다보니 소름이 돋는 것 같더니 바로 그런 내력이 있었구만.
이제 보길도는 고산 윤선도만 만나 뵈면 된다.
워낙 고매한 분이라 어떻게 영접해야 할지 모르겠다.
학창 시절에 그 분을 대할 땐 그저 ‘오우가’니 ‘어부사시사’니 하며 시험 공부할 때
내용도 모른 채 제목만 외우기만 했었다.
자연의 모습을 아름다운 우리말로 서정적으로 노래한 '어부사시사'와 '오우가' 등은
모든 걸 내려놓고 자연을 벗 삼아 살아가는 선비의 생활이 절제된 언어로 잘 묻어 있다.
우리는 지금 여기에 와 있는 것이다.
보길도하면 누구나 고산 윤선도를 떠올리는 정도는 다 알 것이다.
보길도는 윤선도가 만든 섬이나 다름없다. 바로 대명사격인 셈이다.
윤선도 원림에 들어가 세연지와 세연정 일대를 돌아봤다.
따사로운 가을빛이 더욱 그리워지는 날이다.
오늘따라 세연지에 비친 하늘빛과 호수에 비친 세연정의 반영이 화사하기 그지없다.
누군가가 사무치게 그리워만 지는 날이다.
세상을 버리고 제주로 가던 중 보길도의 비경에 취하여 이곳에 머물러
명실공히 우리나라 국문학의 산실이 된 여기 보길도
내 사는 곳에서 결코 다시 오기 어려운 곳.
그곳에 들러 아쉬움을 머금고 짧은 시간 짬을 내어 그를 만나본 것이 다다.
이제 완도와 그 주변에 딸린 섬 여행을 마감할 시점이 된 것 같다.
실로 짧은 시간 긴 여행을 했다.
1박 2일에 무려 섬 4곳을 돌았다.
물론 알뜰하게 다 살핀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다시 발걸음하기 어려운 곳은 아쉬운 대로 다닌 셈이다.
우리 일행은 너무 먼 길을 왔기에 그냥 가기 아까워 1박을 더 할까 하는 마음도 있었지만
아쉽게도 땅끝 마을을 떠나오고 결정을 한지라 내륙에는 숙소를 마련할 수가 없었다.
그러면서 차는 고속도로에 올라 가던 길을 계속 질주하였다.
그래 여기서 이번 여정은 마감을 하자.
더 이상은 욕심이다.
모두 수고들 많았습니다.
덕분에 좋은 여행, 아름다운 길 많이 걸었습니다.
보길도 가는 배 안에서 세 마나님 콤비를 담아볼까요.
시기가 아닌지 배를 타고 여행하는 사람도 그리 많지 않다. 우리는 사람이 붐비지 않아 더욱 좋았는 데~
바다를 가르는 물살까지 정겨움으로 다가온다.
가다보니 어떤 섬인지 곰 한 마리가 섬을 지키는 파수병처럼 지켜보고 있다.
완도 화흥포항에서 노화도 동천항에 도착했다. 보길도를 가자면 여기서 하선해야 한다.
노화도도 전복으로 유명한 고장인가 보다. 해마다 전복 축제도 하는 것 같은 데~ 노화도는 보길도를 가는 길목으로 차량으로 이동하면서 보는 정도로 만족한다.
보길대교를 건너 우리는 먼저 우암 송시열선생의 흔적이 베어 있는 글씐바위로 간다. 자그마한 주차장에 안착하면 우암이 암각한 바위는 바로 지척에 있다.
가는 길에 누리장나무가 열매를 맺고 있는 모습이 보인다. 언제봐도 이쁘다.
산박하에 달라붙어 있는 나방인가? 나비인가? 나방 종류로 보이는 데~
모두 전복 양식장이렸다.
우암 송시열의 암각시문 내용은 이렇다. 구구절절 나라에 대한 충정과 자신의 신세를 한탄함이 시문에 그대로 베어 있다.
八十三歲翁(팔십상세옹) 83세 늙은 이 몸이
蒼波萬里中(창파만리중) 푸른 바다 한 가운데 떠 있구나.
一言胡大罪(일언호대죄) 한 마디 말이 무슨 큰 죄일까
三黜亦云窮(삼출역운궁) 세 번이나 쫓겨난 이도 또한 힘들었을 것이다.
北極空瞻日(북극공첨일) 대궐에 계신님을 속절없이 우러르며
南溟但信風(남명단신풍) 다만 남녘 바다의 순항만을 믿을 수밖에
貂裘舊恩在(초구구은재) 담비갓옷 내리신 옛 은혜 있으니
感激泣孤衷(감격읍고충) 감격하여 외로운 충정으로 흐느끼네.
다니다 보니 우암의 흔적을 많이 만난다. 언뜻 생각나는 곳이 충북 괴산의 도명산과 영동 옥천의 월류봉이 떠 오른다. 그만큼 한 시대를 풍미했던 고명한 학자로서 그 파란만장한 삶의 흔적이 우리나라 산천 곳곳에 베어 있는 것이 아닐런지~
우묵사스레피나무. 까만 열매를 맺은 채 바다를 향해 있다.
박대감은 절벽을 타고 올라가네요. 좀 더 아래서 찍을 걸~~~ 그러면 더욱 실감났을 텐데~ 요거는 위장한 것이 그냥 확 드러나네요.
우암 선생의 글씐바위가 있는 전망 좋은 암반에 걸터 앉아 잠시 쉬어간다.
워낙 풍광이 좋아 카메라를 들이대는 대로 그림이다. 이곳을 우암은 제주도로 귀양가다가 풍랑을 만나 피해가던 곳이란다. 아이러니칼한 얘기지만, 고산 윤선도도 그렇고 다산 정약용도 그렇고 우암 선생도 그렇다. 모진 세월 귀양살이로 한 세월 보냈지만, 어찌보면 천혜의 절경속에서 마지막 생을 마감한지도 모른다. 그나마 복이라 할까? 전화위복이라 할까? 얽히고 설킨 정쟁을 떠나 오히려 학자로서 귀하고 귀한 시가와 고금을 통틀어 역사에 길이 남을 역작을 만들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폭풍전야와 같은 정쟁 속에 있었다면 감히 상상도 못할 일이다.
이게 뭐란 말인가? 쯧쯧, 다니면서 이런 모습을 보노라면 가장 화가 난다. 글씨는 어디로 갔는지 간 곳이 없다. 탁본을 하기 위해 먹을 묻힌 시커먼 때만 가득하다. 안타까운 장면이다. 윗 부분에 이렇게 잘 보이지 않는 시비에 적힌 내용을 자세하게 적어 놓았다.
자리 잡고 앉아 쉬면 쉼 자첵 망중한이다.
자, 이제 또 슬슬 떠나볼까요.
돌틈 사이에 우묵사스레피나무와 돈나무가 함께 자라고 있다.
어느 방향으로 찍어도 그림이 좋다.
이 친구도 우묵사스레피나무겠지~
우묵사스레피나무
다정큼나무. 여러 종류의 나무가 많았는데 좀 더 담아올 걸 하는 후회가 생긴다.
섬에 오니 산박하를 아직본다.
말오줌때. 용케 이름을 찾았지만, 비슷한 열매가 많아 참 이름 하나 알기 어렵다.
말오줌때
뾰죽산이라 불리는 보죽산으로 왔다. 여기는 보옥리 공룡알해변이 있는 곳이다. 뾰족산, 저기를 올랐어야 하는 데~
올라가지는 못하더라도 공룡알을 배경으로 뾰죽산이라도 담아볼까요. 박대감 포즈 좋소이다.
여기는 뾰죽산 건너편 산이다.
보다싶이 보길도도 산이 많다.
헉, 누리장나무에 하얀꽃이 피어있다. 우암 송시열 글씐바위로 갈 때는 꽃이 지고 열매만 맺힌 애만 봤는 데~
바다로 가는 개천에 으아리가 아직 하얀꽃을 피우고 있다.
섬에 있는 수크령도 담아보고~
동백나무 군락이 멋드러지게 자리잡고 있다. 해안 방풍림으로 조성된 동백군락인 모양이다.
이곳 섬들은 몽돌이 널려있는 해변이 심심찮게 보인다. 땡볕이지만, 저기 왼쪽에 자리 잡고 앉아 아침에 말아온 주먹밥으로 점심을 먹는다. 함께 여행을 자주 댕긴 우리 일행은 정민이네의 지혜로 아침에 먹다 남은 밥과 반찬으로 주먹밥을 말아, 댕기면서 점심으로 챙겨 먹는다. 맛도 일품이거니와 경비 절감도 많이 된다. 자고로 여행길은 소소한 것부터 큰 것에 이르기까지 갖은 지혜가 필요한 법이다.
여기 공룡알해변이 있는 보옥리에서 예송리 탐방로를 걸었다면 이번 여행길의 노다지를 캐는 건데 다닐 시간적인 여유가 없는 것이 옥에 티라면 티다. 좋은 곳도 많이 보았지만, 놓친 곳도 많다. 다녀오고나면 늘 이런 아쉬움이 남는다.
시간이 되는 사람은 꼭 이 탐방로를 걸어 보시기 바랍니다.
동백나무에 노랑하늘타리 열매가 주렁주렁 달려 있다. 역시 카페 '바람재들꽃'을 통하여 알아낸 이름이다.
조~오기서 주먹밥을 먹었지요. 저기 보이는 해안 숲길이 탐방로네요. 저 길을 따라 걸었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요. 시간이 없어서 가지 않았는 데 만약 하룻밤을 더 유하기로 했다면, 아니 내가 저쪽으로 우리 일행을 유인만 했더라면 하룻밤 더 유숙하고 갈 수 있었을 텐데 아쉽다. 정민이네 아빠는 하룻밤 더 머무를 마음이 있었던 것 같은 데 진작 그런 줄 알았더라면 이 길로 살짝 들어갔다 나왔을 텐데 쩝쩝 아쉽다.
노란 사데풀과 꽃지고 핀 하얀 씨앗이 이쁘기 한량없다. 바닷가 풀숲에 있었다.
보리밥나무. 보리수나뭇과에 속한 상록 활엽 관목으로 바닷가에 주로 서식한다.
보리밥나무 군락. 바닷가 산지에 자라는 상록 덩굴나무로 줄기는 비스듬히 자라거나 나무를 타고 올라간다고 한다.
보옥리-예송리 탐방로를 가지 못한 아쉬움을 달래며 마지막으로 눈 도장 한 번 더 찍고 간다.
뾰죽산을 배경으로 공룡알해변도 다시 한 번 더 보고~
공룡알 해변으로 오면서 봐 두었던 정자리 황칠나무를 만나러 간다. 고맙게도 내가 보고 싶어하니까 박대감이 보고 오라고 차를 세워 준다.
도로변에서 200m 지점에 있기에 혼자 후다닥 뛰어가 천연기념물 제479호로 지정된 정자리 황칠나무를 기어코 보고 왔다. 가는 길에 마을이 있고 마을이 끝나는 지점에 대나무 군락으로 뒤덮여 있는 오솔길이 짧게 70여미터 이어진다. 아무도 없는 대숲을 지나노라니 한기가 엄습하고 서늘한 기운이 감돈다. 황칠나무 군락 한 그루를 중심으로 대숲이 가까이 둘러쳐져 있어 키 큰 황칠나무 사진을 담기에는 거리가 잘 안 나온다. 더욱이 주변에 냉한 기운이 서려 퍼뜩 이 자리를 벗어나고 싶었다. 알고보니 1970년대 초 이 황칠나무에 누군가 목을 매 자살을 한 이후로 마을 주민들이 신들린 나무라하여 이 나무 가까이 가지 않은 것이 오히려 이 나무를 보호하게 된 것이 아닌가란 얘기도 전해진다. 그래서 그런지 괜히 섬뜻한 기운을 느껴 후딱 몇 장 담고 내려와 버렸다. 그래서 사진은 옳게 나오지 않은 것 같다.
마지막 코스로 고산 윤선도의 마지막 삶의 터전 보길도 윤선도원림을 찾았다. 여기에 오기 위해 내비게이션을 세연정으로 맞추었더니 자꾸 보길중학교가 있는 보길대교 가까운 곳을 안내했다. 분명 아닌데 자꾸만 이곳으로 안내하기에 왜 그런가 봤더니 아뿔싸 내비가 세연정이라는 횟집을 가르킨 것이다. 괜히 애궂은 횟집을 탓하며 다시 방향을 잡아 왔던 길로 되돌아 이곳으로 왔다.
고산이 세연정에 담은 의미
세연정 앞 세연지
세연정 앞 팽나무
세연정
세연정
세연정
세연지
판석보. 우리나라 조원 중 유일한 석조보로 일명 굴뚝다리라고도 한다.
고산이 다듬고 아낀 세연지의 가을 풍광에 우리 일행들도 덩달아 취해 서로 사진을 찍어 주기 바쁘다.
고산이 파고 물을 담은 세연지에 세연정의 반영이 아름답다. 마치 고산의 숨결이 세연지의 숲이 되어 함께 있는 듯하다.
지금 우리는 고산과 함께 어울리고 있는 것이다. 언감생심 선생이 살아계실 땐 어찌 우리가 함께 동석할 수 있겠나. 세월이 흘러 비록 그가 곁에 없으나 그의 숨결과 이 순간 함께하고 있다.
지금 당신들은 고산과 함께 있오이다. 엄중한 고산의 한 말씀을 되뇌이고 갈까요.
우리도 고산이 전하는 한 말씀 듣고 가세.
아름다운 풍광에 도저히 그냥 갈 수 없죠. 그 마음이 곧 고산 선생의 말씀이 아닐런지요.
판석보는 비가 많이 올 때는 연못의 수량을 조절하는 역할을 하고 평상 시에는 교량 역할을 한다. 오른쪽은 네모난 석축은 동대라 일컬으며 어부사시사가 불리어지면 군무를 하던 곳이라 한다.
때죽나무열매
세연정과 세연지. 사람이 없는 장면 한 장 담는다.
단체사진도 기념으로 한 장 남긴다.
이제 긴 장도의 끝을 달려야 한다. 보길도에서 보길대교를 떠나 노화도의 산양진항으로 간다. 완도에서 올 때는 화흥포항에서 보길도로 가기 위해 노화도 동천항에서 내렸는 데, 땅끝마을로 가기 위해서 우리는 보길도를 떠나 노화도 산양진역으로 왔다.
다행히 시간을 잘 맞춰 큰 기다림 없이 매표를 하고 차량을 선박에 태웠다. 이제 땅끝마을로 가야한다.
산양진항을 떠나기 전에 배에 선승 후 한 컷 남긴다. 저기 오른쪽에 있는 배는 우리고장 대구에서 온 kj산악회에서 온 차량일세.
땅끝마을 전망대가 보인다.
이제 갈 길이 점점 가까워 진다.
올라 가지는 못할테고 사진이라도 자꾸 찍어두자. 난, 다행히도 누리단 애들과 함께 올라가 본 적이 있다.
배 안에서 망망대해를 그냥 역광으로 바라봤다.
지나 가는 배도 잡아보고~
배에 실려 있는 우리 차량도 담아본다.
땅끝마을 도착한 기념으로 모두 기념촬영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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