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고팠던 (청)노루귀도 만나고
덤으로 변산아씨까지 무더기로 만난 바람난 춘심
■ 언제 : 2017. 3. 11.(토)
■ 어디로 : 포항 운제산 자락 모처
■ 누구랑 : 아내랑
흔적
노루귀는 흰색, 분홍, 청색의 3종류가 있다.
흰색과 분홍은 비교적 만나기 쉽지만, 청색 노루귀와의 만남은 그리 만만치 않다.
흰색과 분홍은 여러번 만났으니 이번엔 기필코 청색을 만나야겠는데
청색을 만나자면 이 봄이 가기 전에 후딱 만나야 한다.
아니면 또 1년이란 세월을 기다려야 한다.
청색 노루귀 서식지를 알기 위해 틈틈이 웹서핑을 했다.
가급적 원행을 하지 않기 위해 내 사는 지역 위주로 검색했지만,
간간이 봤다는 정보는 있어도 어디에 있는지 정확한 지점을 알려주는 블로그는 잘 보이지 않는다.
요즘 야생화 동호회라든지 꽃을 찾아다니는 꽃님들은 야생화 서식지의
정확한 지점을 노출하는 걸 꺼리기 때문에 웹서핑을 통해 정확한 지점을 얻어 걸리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이러한 점은 서식지 훼손을 막기 위한 바람직한 방향이기는 하나
들꽃동호회에 가입하거나 여럿이 함께 다니지 않는 나 같은 경우엔 애로 사항이 많다.
난, 주로 아내랑 이산 저산 다니며 등로에 핀 꽃이 보이면 그때서야 사진기를 들이대는 유형이라
많이 보는 것에 비해 정보에는 다소 귀가 어두운 편이다.
하지만, 아내랑 함께 근 7년을 주말 산행하며 나름대로 꽃을 알고자 했고 사랑하는 마음이 있었기에
지금쯤 어느 산에 가면 어떤 꽃이 피는지 나름대로 꽤 알고 있는 편이다.
그것은 워낙 산을 많이 다닌지라 산이 우리 부부에게 준 지극히 자연스러운 선물이기도 하다.
정보를 얻기 위해 여기저기 기웃거리다 포항 지역에 청색 노루귀 서식지가 있다고 소개한 블로그를 겨우겨우 찾았다.
이 블로그의 주인은 아직 순진한지 청노루귀의 서식지를 정확하게 나타내 주었다.
가뭄에 단비 같은 반가움이었지만, 그에 반해 한때는 나도 저리 순진했었지 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도 어디서 뭘 보고 오면 마치 자랑질을 하고 싶어 안달이 난 듯 블로그에 정확하게 그 위치를 나타내곤 했다.
혹 내 블로그를 참고하였다가 욕을 볼까 싶어 더욱 자세하게 표시했던 것이다.
그런데 그 때문이었을까?
산행을 다녀온 후 어느 지역에 뭐가 있다는 자세한 내용을 블로그에 올리고,
후년에 그곳을 가보면 거짓말같이 개체 수가 줄어든 모습을 보곤 한다.
불과 몇 년 지나면 아예 씨가 말랐는지 종적이 묘연하다.
생태 환경에 뭔 변수가 생겼는지 사람 손을 탔는지 알 수 없으나
괜히 어디에 뭐가 있다는 걸 자랑하듯 알린 것이 원인이 된 것은 아닌가? 라는 생각에
늘 꺼림칙한 마음이 들었다.
내 사는 가까운 곳, 내가 자주 드나드는 곳
거기에 있던 박새와 미치광이풀은 전혀 예전 같지 않은 모습이었으며
일부 지역은 흔적조차 사라지고 없다.
마치 내가 큰 잘못을 저지른 것 같은 마음을 떨칠 수 없다.
어쨌든 청색 노루귀의 서식지를 소상하게 나타내 준 그분 덕에 고맙게도 장소를 쉽게 찾았다.
계곡 깊숙이 들어가야 하는 곳이지만, 여기도 익히 알려진 곳이라 분명히 꽃쟁이들이 득실거릴 것이다.
이 지역은 지금 청색 노루귀가 한창이니 꽃쟁이들이 없을 리 만무하다.
차량이 교차하면 피해 줄 곳도 없는 꼬불꼬불한 길을 따라 서식지에 도착하니
과연 내가 예상한 그대로의 모습이 펼쳐졌다.
외길에 차를 방해받지 않게끔 잘 주차하고 사람들이 분주하게 움직이는 산기슭으로 갔다.
한눈에 봐도 돈깨나 먹어 보이는 카메라를 든 사람들이 부지기수다.
개중에는 휴대폰으로 찍는 사람들도 있어 그런지 내 카메라가 크게 부끄러워 보이진 않는다.
그들이 없었더라면 대포 사이에 낀 내 소총이 초라할 뻔 했다.
진사들 틈바구니에 끼어 노루귀 사진을 찍자니 꽃보다 사람이 더 많다.
청색 노루귀는 듬성듬성 한데 사진기를 앞세운 사람들이 꽃보다 더 많은 진풍경을 자아내니
모양새 좋은 노루귀 한번 담자면 줄을 서서 기다려야 하는 형편이다.
이거야 원, 청색 노루귀가 대단한 건지
그 꽃을 보기 위해 불원천리 달려온 진사들의 꽃 사랑이 더 대단한 건지
잠시 혼란이 빚어진다.
어떤 이는 아예 자리를 깔고 누워 '엎드려 쏴' 자세를 하고
어떤 이는 '쪼그려 쏴' 자세를 취하고 있다.
또 어떤 여인네는 엉덩이가 하늘을 향해 있다.
산을 다니며 아무도 없는 곳에서 무진장 펼쳐져 있는 우리 들꽃을
마음 편히 찍고 다니는 아내와 나에겐 우스꽝스러운 장면이 아닐 수 없었으나
반면에 꽃을 대하는 진지한 태도와 마음에 드는 사진 한 장 얻으려는
진사들의 정렬만큼은 정말 존중해 줘야 할 것 같다.
사람이 줄지어 서 있는 곳은 그래도 꽃 모양이 좀 나은 편이다.
대체로 개화 상태가 그리 양호한 편이 아니어 어쩌다 꽃 모양이 이쁜 곳엔
진사들이 진을 쳐 차례를 기다려야 한다.
이런 모습에 익숙하지 않은 난, 기다리는 것이 싫어 혹시 다른 곳에 더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위로 올라갔고
내가 그러는 동안 아내는 뭘 하는가 살펴 봤더니
다행히 아내는 한적한 곳에 앉아 발품을 내려놓고 편안하게 쉬고 있었다.
오늘 피곤하다며 따라나서지 않으려는 걸 억지로 데리고 왔더니
상태 좋은 노루귀 몇 개 찾아 주고는 따뜻한 봄볕 아래 사색을 즐기고 있다.
희안한 게 야생화들은 같은 산임에도 꼭 있는 곳에만 있다. 이 녀석도 그랬다.
서식지 주변에 더 퍼져 있을 만도 한데 그 주변을 싹 다 뒤져도 없다.
어련하랴. 위쪽에도 있다면 이 사람들이 가지 않을 리 만무한데
그런 분위기를 알면서도 찾아 다닌 것은 때깔나는 꽃에 몰려있는 사람들이 줄어들기 바라며
호시탐탐 그 자리를 노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좀 줄었나 했더니 그 사이에 안 보이던 다른 사람들이 또 와 있다.
보아하니 오늘 이 현장은 혼자 여유롭게 촬영하긴 어려운 분위기다.
그렇다면 함께 끼어 찍을 수밖에 없다.
염치불고, 체면불고하고 엉덩이를 들이밀자니
내 그림자가 대포 같은 카메라가 겨냥하고 있는 영역을 침범하고 있다.
혹시 사진에 영향을 미칠까 봐 얼른 비켜났다.
거의 전문가 수준에 이르는 진사들은 마음에 드는 꽃 사진 한 장 건지려
같은 장면을 수백 번 찍어 마음에 드는 사진 겨우 한 장 건진다더니만,
카메라 촬영 기술이 여러모로 부족한 난 늘 같은 방식으로 쉽게 카메라를 들이댄다.
그러니 찍고 나서 컴퓨터로 옮겨와 사진을 보면 역시 마음에 드는 사진이 없어 자주 실망하곤 한다.
그래도 예외없이 꽃사진 촬영은 나름대로 성의를 다하며 풍족하게 담는다.
한 곳에서 집중적으로 사진을 찍고 자리를 털고 일어나 주차한 차량이 있는 곳으로 가노라니
건너편 계곡 쪽이 영 수상쩍게 보인다.
문득 건너 가봐야겠다는 생각이 난다. 아내는 차로 가고 나는 계곡을 건넜다.
계곡을 건너면 거기에 뭔가 있을 것 같다는 서툰 예감이 들었다.
혹시 너도바람꽃을 볼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기대감이 서려 있기도 했다.
아니나 다를까 사람 그림자도 보이지 않던 계곡을 찾아 들어가니
역시나 꽃쟁이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다.
저기도 뭔가 있구나 싶어 내심 반기면서 난, 은근히 너도바람꽃이 있기를 기대했다.
하지만 너도는 간 곳 없고 또 청색 노루귀만 있었다.
많지도 않고 다문다문 조금조금 있었다.
그런데 거기도 사람들이 줄을 섰다.
당최 삼각대 받쳐 놓고 길게 찍는 사람들 때문에 그놈의 꽃 사진 한 장 제대로 찍기 어렵다.
겨우 몇 장 건지고 일어났다.
♣
청색 노루귀가 있는 곳보다 더 깊숙한 계곡으로 들어갔다.
거기엔 변산바람꽃 군락지가 있다는 정보를 함께 입수한 터다.
막상 가보니 가는 길은 상당히 좋지 않았다만, 변산바람꽃이 있다기에 그냥 내쳐갔다.
여기 가면 변산바람꽃을 보고 덤으로 너도바람꽃까지 봤으면 하는 기대감까지 가졌다.
실상은 변산바람꽃은 지난 번 경주 모처에서 봤으니 너도바람꽃에 대한 기대가 더 컸다.
그런데 이게 무슨 경우인지?
개울을 건너자마자 변산바람꽃이 바로 눈에 띄는 것이 아닌가.
그것도 도도한 자태를 뽐내면서 아씨로서의 위상을 한 껏 돋보이며 무리지어 섰다.
비록 너도바람꽃은 없었지만, 이렇게 인물 이쁜 변산아씨가 무더기로 있을 줄은 몰랐다.
이건 뭐 길섶에 변산바람꽃이 지천으로 널려있다.
그것도 군락지 전체가 문을 활짝 연 만개한 상태로.
지난번 경주 모처에서 본 것에 비하면 비할 바가 아니다.
갑자기 미인들 틈에 에워 쌓여 몸 둘 바를 모르겠다.
올해는 이러다가 변산아씨의 향기에 취해 바람나는 것이나 아닌지 모르겠다.
아무래도 올해는 변산아씨의 꾐에 빠져 꽃바람이 날 조짐이 크다.
산행은 소홀히 하고 꽃바람에 더 심취할 것만 같다.
아직은 산이 먼저고 꽃이 그 다음이 되어야 하는데
꽃이 먼저고 산이 그 다음일 공산이 크다.
하지만 아직은 아니다.
아직은 산을 우선해야 하는 나이고 그래야 한다.
지금까지 그랬듯 이산 저산 다니면서 남들보다 더 많은 꽃을 보지 않았는가.
단지, 보기 쉽지 않은 즉 보고 싶은 꽃을 보자면
정확하게 그 만을 겨냥해야 쉽게 만날 수 있지만,
그러고 싶을 땐 산은 잠시 접고 하고 싶은 대로 하면 된다.
아직까지는 늘 그랬던 것처럼 그렇게 산을 다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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