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언제 : 2017. 3. 26.(일)
■ 어디로 : 경산 00산
■ 누구랑 : 아내랑
흔적
이 주째 거푸 만주바람꽃이 보고 싶어 갔던 곳을 또 간다.
지난 주에 갔을 때 일주일만 더 기다리면 만개한 모습을 볼 수 있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어제는 야속하게도 온 종일 비가 내려 갈 수가 없었다.
오늘도 비가 내린다는 예보가 있어 집에만 있자니 그저 속만 탄다.
그렇다고 궂은 날씨에 강행하자니 그건 아닌 것 같고...
만주바람꽃과의 대면을 더 이상 미룰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다.
일주일 후면 만주바람꽃이 다 질 것이다.
오늘 가지 않으면 또 가기 어렵거니와
다음 주엔 다른 곳에 다른 애를 만나러 가야 해 갈 수도 없는 처지다.
이 지역에 자생하는 만주바람꽃을 보자면, 여러 정황을 보아
어제와 오늘이 적기 임은 틀림없는데, 도대체 날씨가 도와주지 않는다.
그렇다고 뻔히 비가 오는 걸 알면서 나서자니 그도 마땅찮은 일이다.
이런 날은 가봐야 꽃잎이 모두 문을 닫은 채 입을 오므리고 있는 것이 분명한데
꼭 가야 하는지 나도 이해가 안 된다.
줄 곧 그런 생각을 하면서 가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계속 망설인다.
하지만 오늘 못 가면 올해는 다시 가지 못할 것 같은 마음이 들어 일단 가기로 작정했다.
비가 많이 내리면 하는 수 없고 맞을만큼 내린다면 맞을 각오를 했다.
신천대로를 따라 남부주차장 가는 길로 접어드는데
아니나 다를까 차창 밖으로 비가 뚝뚝 떨어진다.
순간 돌아가야 하나란 마음이 들었지만,
그래도 저 정도면 맞아도 되겠다란 생각에 아랑곳 하지 않고 곧장 달렸다.
가다보니 더 세게 떨어지더구만 이젠 '못 먹어도 go'라며 가던 길 계속 달렸다.
다행히 현장에 도착하니 내리던 비는 오락가락하기만 했지 가는 길을 크게 방해할 정도는 아니었다.
골짜기로 올라갈 땐 우산을 쓰다가 촬영을 시작할 땐 우산을 접었다.
촬영을 마칠 때까지 내내 우중충한 날씨였지만, 걱정한 만큼 비가 내리지는 않았다.
불순한 날씨임에도 날씨가 부조를 한 셈이다.
우리 부부가 골짝을 찾았을 때는 아무도 없었다.
한산하고 고즈넉한 분위기만 엄습했다.
지난 주와 다른 점이 있다면, 어제 오늘 내린 비로 계곡에 흐르는 물이 더 많이 불어났다는 점이다.
불어난 물로 인해 계곡 안에 잠식해 있던 꽃이 걱정 되었지만,
다행히 물에 잠기지 않고 지난 주보다 개체 수가 더욱 늘어나 있는 상태였다.
한 가지 아쉬운 점이 있다면, 이 녀석들이 한결같이 눈을 감았다는 점이다.
예상한바 였지만, 예상대로 실제 그런 모습이 보여 아쉬움이 컸다.
혹여 한두 녀석이라도 눈을 뜨고 있는 애가 있을지 모른다는 일말의 기대감에
계곡 위로 높은 곳까지 샅샅이 뒤졌지만, 눈을 뜬 애들은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지난 주까지 싱싱하던 노루귀와 복수초도 벌써 한 해를 갈마무리하고 있었다.
너도바람꽃은 흔적마저 없어지고 꿩의바람꽃과 만주바람꽃만 한창이다.
하지만 저 녀석들도 우중충한 날씨로 인해 고개를 푹 숙이고 있다.
그래도 지난 주 딱 한 개 봤던 것에 비하면 오늘은 풍년이라 여기고 자족한다.
틈틈이 보이는 발레리나 같은 몸짓을 하는 올괴불나무에 핀 꽃과
생강나무의 샛노란 빛이 어두운 계곡을 밝힌다.
보고파 하던 애들은 모두 숨을 죽인 상태라 아내가 그만 찍고 산행이나 하잔다.
그렇지 않아도 오늘은 만주바람꽃을 목적으로 하고 왔으니
이 녀석만 보고나선 줄곧 산행을 할 심산이었다.
노루귀와 복수초도 볼 만큼 봤고,
올해는 그동안 만나지 못했던 바람꽃 종류도 많이 봤다.
볼 만큼 봤으니 이제 산행이나 하자.
날씨는 비가 올듯 말듯 계속 찌푸린 채 궁상을 떤다.
그래도 아랑곳 하지 않고 우린 길도 없는 곳에 길을 만들며 위로 올라갔다.
그런데 길은 올라갈수록 험하다.
미끄럽기도 했지만, 나뭇가지를 헤치며 가자니 불편하기 짝이 없다.
능선까지 거의 다 올라왔다 싶으면서도 어디까지 더 올라야 할지 가늠이 안 된다.
그러던 차 바로 아래서 노부부 둘이 올라 오고 있다.
두 분은 꽃을 보러 오셨다며 험한 길 헤치며 올라오셨는데
우리를 보자 잠시 갈등을 하시더니 계속 올라가기로 마음을 먹는다.
정상으로 갔는지 안 갔는지는 함께하지 않아 알 수는 없다만
두 노인네의 노익장은 알아주어야 할 것 같다.
우린 그냥 내려왔다.
가는 길도 험한데다 미끄럽기까지 하니 가지 않는 것이 낫다고 판단했다.
올라 가는 것도 만만치 않았지만, 미끄러운 길을 내려오는 것은 더 조심스러웠다.
특히 아내는 내리막길에 취약한지라 더 더욱 조심스러웠다.
결국 아내는 한번 꽈당했다.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혹시하는 마음으로
이끼 낀 미끄러운 바위가 널브러진 계곡으로만 내려온 내 탓이었다.
오늘, 비 맞을 각오를 하고 왔는데 예상 밖으로 날씨가 우리를 많이 도왔다.
비록 활짝 핀 만주바람꽃은 못 봤지만, 양적인 면에서는 풍성했다.
그러면 됐지 뭐...
하지만 아직 만주바람꽃과의 만남은 이것으로 끝이 아니다.
오늘 보니 다음 주가 더 기대된다.
다음 주엔 다른 곳에 갈 계획이 이미 서 있지만,
이 녀석 때문에 그러지 못할 것 같다.
아무래도 또 산행은 하지 못하고 보고 싶은 꽃이 있어
여기도 가고 저기도 갈 공산이 크다.
꿩의바람꽃
만주바람꽃
현호색
노루귀는 이제 지고 있습니다.
만주바람꽃
현호색
바람꽃 골짜기.
만주바람꽃과 복수초
현호색
복수초
만주바람꽃
현호색
올괴불나무
생강나무
꿩의바람꽃
만주바람꽃
꿩의바람꽃
만주바람꽃
꿩의바람꽃
만주바람꽃과 복수초
꿩의바람꽃
생강나무
굴피나무열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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