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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행방

노루귀, 복수초, 변산바람꽃을 한꺼번에 만나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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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꽃 3종세트를 한 방에 만날 수 있을까요.




■ 언제 : 2017. 2. 23.(목)

■ 어디로 : 경주 모처

■ 누구랑 : 홀로




흔적

 

에잉, 어째 짜증이 확 난다.

이번 탐방길은 어째 순순히 마음먹은 대로 실타래가 술술 풀리지 않는다.

변산바람꽃을 보기 위해 두 곳이나 달려갔어도 허방만 짚다 왔다.

하지만 그래도 영 헛다리만 짚은 게 아니었기에 그나마 위안을 삼고

평소에 하던 대로 후기 작성을 하는데 그만 컴퓨터가 말썽을 일으켜 작성한 내용이 싹 날아가 버렸다.

보통 다녀오면 후기 내용이 기본적으로 A4용지 4~5매 분량은 되는데

무려 3/4 정도의 내용이 휘리릭 날아가 버린 것이다.

그만 콱 김이 새 만지지도 않다가 다시 쓰자니 영 쓸 맛이 안 난다.

 

한 번쯤 경험들 해보셨겠지만 썼던 글을 다시 쓰자면 영 찐맛이 없다.

그래도 어쩌겠나. 지금까지 어디 다녀오면 선생님이 내준 숙제하듯 흔적을 남기고 하는 것이

습관이 되어 버렸는데 빼먹자니 변소 갔다 뒤를 닦지 않은 그런 찜찜한 기분을 떨치기 어렵다.

쉽지 않지만 마음을 가다듬고 다시 적을 수밖에는.

 

이번 탐방은 변산바람꽃을 만나고자 하는 것이 주된 목적이었다.

뿐만 아니라 때를 잘 맞추면 변산아씨와 함께 노루귀와 복수초도 함께 만날 수 있다.

그렇게만 된다면 일거삼득인 셈이다.

시기가 좀 이른 것 같다는 생각이 없잖아 있었지만, 가능할 것도 같았다.

당초 봄의 전령사인 삼총사를 만나기 위한 곳으로 한 곳만 목표 지점으로 삼았기에

그곳 상황을 미리 알아야 할 필요성이 있어

웹서핑을 하던 중 우연히 변산아씨의 자생지가 가는 길에 한 곳이 더 있다는 정보를 입수하게 되었다.

그래서 이번 출사길엔 두 군데 중 어디선가는 변산아씨를 확실하게 만날 수 있다는 확신이 들었다.

더구나 새로 입수한 그곳은 크게 돌아가지도 않고 가는 길에 조금만 멈칫거리면 되는 곳이다.

 

그런데 막상 새로 입수한 정보처로 가자니 가는 길이 장난이 아니다.

안강읍에서도 외딴 길 깊숙이 들어가는데 비포장인 곳은 마치 곰보처럼 곳곳이 움푹 패였고,

패인 곳은 물까지 고여 있어 운전마저 쉽지 않다.

게다가 서로 마주치면 피할 곳도 없는 좁은 외길에다 경사가 급한 곳이 더러 나와

운수 사나울 땐 난감한 경우에 처할 수도 있는 그런 무지막지한 길이었다.

마침 주 중이라 그런지 오가는 차량이 없어 불행 중 다행이었지만, 결코 만만하게 상대할 길은 아니었다.

  

사찰은 고즈넉한 분위기를 풍기고 있었으며, 그 앞으로 긴 계곡이 펼쳐져 있었다.

입수한 정보에 의하면 계곡을 따라 올라가야 오늘 보고자 했던 변산아씨를 만날 수 있다고 했다.

그런데 절에는 사람 그림자조차 보이지 않고

공허한 산사엔 염불 소리만 무심한 빈객의 귓전을 때린다.

계곡도 고요한 적막만이 감돈다.

  

이렇게 깊은 곳을 어떻게들 알고 찾아오는지 꽃을 찾아 나비가 몰리듯 많은 사람들이 이 절이 있는 계곡을 찾는다.

봄이 오기 전부터 꽃쟁이들이 나비보다 벌보다 먼저 여길 찾는 것이다.

변산아씨, 노루귀, 복수초 이 삼총사를 만나기 위함이다.

하지만 어떻게 오던 여길 오다보면 이 사람들은 가까이 있는 이 절에 발을 딛을 것이고

발을 딛다보면 이 절이 어떤 절인가를 새삼 깨닫게 되는 계기를 마련할 것이다.

이 절이 바로 신라 화랑의 생활수계인 세속오계를 전파한 원광법사의 흔적과

금곡사지원광법사부도탑이 있음을 비로소 알게 된다는 것이다.

 

일단 여기까지 왔으니 변산아씨보다 사찰 탐방이 먼저다.

이 절은 규모가 크고 가람이 많은 곳이 아니니 아무 곳에서나 한 눈에 들어왔다.

더구나 절 공부하러 온 것이 아니기에 자그마한 규모의 절을 대충 훑어보는 데는

그리 긴 시간이 요구되지 않았다.

 

읍내에서 멀리 떨어진 이곳 산사는 고요한 적막만이 내려앉았다.

그런 적막강산을 뒤로하고 변산아씨를 만나기 위해 홀로 계곡을 따라 오르자니

갑자기 스산함이 엄습하는 것이 괜스레 망설여진다.

여기까지 오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었는데 한기가 돈다고 하여

목적한 바를 포기하고 내려가자니 그렇고

그렇다고 무작정 아씨를 만나기 위해 계곡을 타기도 그랬다.

 

고심 끝에 물러섰다.

아무래도 아무도 없는 깊은 계곡을 혼자 오르자니 기분이 썩 내키지 않는다.

아씨가 자생하는 장소는 알았으니 훗날 기회가 되면 누군가와 동행하여 다시 오기로 하고

오늘 혼자 가는 이 길은 다음 기회로 미루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어차피 먼 길 왔으니 공칠 수는 없고 이참에 원광법사의 흔적이 머문 금곡사와

그가 전한 세속오계에 대해 공부라도 좀 해봐야겠다.

 

금곡사(金谷寺)는 경주 안강에 있으며 읍내에서 멀리 동떨어진 외진 곳에 자리하고 있었다.

절이란 곳이 우리나라 처처에 자리 잡지 아니한 곳이 없건만,

금곡사는 깎아지른 단애의 끝에 서 있는 것이 아님에도 접근이 용이하지 않았다.

그래서 그런지 고명하신 원광의 흔적이 베여 있음에도

아직까지 대중에게 널리 알려지지 않음은 재고의 여지가 다분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이 지역의 가치를 안타까워한 뜻 있는 사람들이 중론을 모아

국립공원으로 승격시키기 위한 운동을 현재 활발하게 전개하고 있다고 한다.

 

이 지역이 굳이 국립공원화 되던 안 되던 차치하고

원광법사와 이 절에 얽힌 역사와 유래를 안다면 아마 모르긴 해도

그 역사적인 가치나 사료적인 의미는 충분히 부각되리라 여겨진다.

물론 그리되면 찾아올 사람 또한 적지 않을 것이다.

 

아래의 본문 내용은 Daum 디지털청도문화대전 내용의 일부를 수록하거나 편집한 내용입니다.

 

금곡사는 창건연대가 미상이나 신라시대에 원광(圓光)

중국의 수()나라로 유학하여 귀국한 뒤 30세부터 4년간 수행하던 사찰로

절터에는 경상북도문화재자료 제97호로 지정된 금곡사지원광법사부도탑이 있다.

자료에 의하면 이 탑을 일부에서는 원광법사의 부도로 추정하기도 하나

이것은 탑의 조성양식보다 삼국유사의 기록을 믿는데서 비롯된 것으로 생각되며,

석탑의 기원이 부처님의 사리를 모시기 위해 건조된 것으로 볼 때

특별히 원광법사의 부도만 삼층석탑 형태로 조성하였다고 보기는 어렵다고 한다.

따라서 이 탑은 통일신라시대에 조성된 일반형 삼층석탑으로 보는 것이

더 설득력이 있을 것이라는 견해를 보이기도 한다.

그렇다면 삼국유사에 기록된 내용이 사실이라면 원광법사의 부도는 어디에 있고 어떤 형태로 남아 있을까?

아쉽지만 어느 곳에서도 그 답을 얻을만한 단서를 찾을 수 없다고 한다.

하지만 금곡사터가 신라의 고승이신 원광법사의 자취가 서려있는 유적지임에는 틀림이 없는 사실이라고 한다.”

 

원광법사하면 우리는 그 유명한 세속오계가 먼저 떠오른다.

세속오계의 탄생 배경을 살펴보면 원광이 한 때 청도 가실사(加悉寺)에 머무르고 있을 때

삼국시대 신라 왕경(王京)을 구성하고 있던 6부의 하나인 사량부(沙梁部) 출신인

화랑 귀산과 추항이 찾아와 죽을 때까지 지켜야 할 계명(誡命)을 구하자

원광법사는 그들에게 다섯 가지의 수계(受戒)를 내려 주었는데 이것이 바로 세속오계의 시작이었던 것이다.

 

원광에게 수계를 내려 받은 귀산과 추항은 602(진평왕 24)

백제군이 아막성(阿莫城 지금의 전라북도 남원 운봉)을 공격할 때

각 군영(軍營)의 기병(騎兵)과 보병(步兵)을 거느리던 관직인 소감(少監)으로 출전하여

큰 공을 세우고 돌아오다가 격전 중에 입은 상처로 인하여 길에서 함께 죽었다.

그 이후로 세속오계는 화랑의 실천덕목으로 삼국통일의 정신적인 지주로 자리매김하게 되었으며,

천년이 지난 지금도 우리에게 큰 가르침을 주고 있음은 주지의 사실임에 틀림없다.

 

꽃 찾아 왔다가 꽃은 못 만났지만, 우연히 깊은 산사에서 만난 원광법사를 배알(拜謁)한 의미로

그동안 잊고 지냈던 세속오계(世俗五戒)를 되새김 해본다.

 

사군이충(事君以忠) 충성으로써 임금을 섬기어야 한다.

사친이효(事親以孝) 효로써 부모를 섬기어야 한다.

교우이신(交友以信) 믿음으로써 벗을 사귀어야 한다.

임전무퇴(臨戰無退) 싸움에 나가서 물러남이 없어야 한다.

살생유택(殺生有擇) 살아있는 것을 죽일 때에는 가림이 있어야 한다.

 

금곡사에 와서 꽃보다 원광의 가르침을 되뇌며 아쉬울 것 하나 없이 발길을 돌린다.

, 이제 미련 없이 당초 가고자 했던 곳으로 꽃이나 보러 가세나.

 

&

 

여기에 오면 변산아씨, 복수초, 노루귀와 같은

봄소식을 전해 주는 대표적인 삼총사를 한꺼번에 만날 수 있으려나 모르겠다.

꼭 봐야 할 텐데...


작년에는 이번 방문보다 늦게 가서 그런지 변산아씨는 만날 수 없었다.

그래서 이번에는 시기를 약간 앞 당겨 왔는데 잘하면 만날 수 있을지 모른다.

여긴 작년에 아내랑 회주 우학스님의 천일 무문관 청정결사가 무사히 끝난 다음날

한국관음불교대학 감포도량에 갔다가 야산에 핀 복수초 군락을 보고 다녀간 적이 있었다.

 

마을을 비켜 돌아 밭자락을 끼고 야생화 탐색에 들어갔다.

대표적인 야생화 삼총사가 있는 곳까지는 마을에서 가깝게 있다.

귀한 녀석들이 마을과 멀리 떨어지지 않은 가까운 곳에 있어 꽃쟁이들의 접근이 쉽고

다른 지역보다 비교적 봄소식을 빠르게 전해주는지라

이 시기가 되면 진사들의 발걸음이 몹시 분주한 곳이다.

하지만, 오늘이 목요일이라 그런지 어째 진사들의 발걸음 소리가 들리지 않는다.

토함산을 오르는 산객도 한 명 보이지 않고 오롯이 혼자 걷고 있을 뿐이다.

 

느낌이 좋지 않다.

그런 차에 위쪽에서 카메라를 둘러멘 여인네 둘이 내려온다.

품새를 보아하니 나처럼 삼총사를 만나러 온 모양이다.

아무도 없는 빈 산에 사람을 만난 반가움과 정보를 입수할 겸

뭐 좀 봤습니까했더니 1초의 여유 없이 돌아오는 말

아무 것도 없어요.’라며 나는 뭐 좀 알고 왔는가 싶어 되려 되묻기까지 한다.

여인네 , ‘어디쯤 가면 만날 수 있나요.’

빈객(), ‘저 위로 가면 만날 수 있을 것 같은데요.’

여인네, ‘계곡을 건너야 하나요.’

빈객(), ‘아마, 그럴걸요’ ‘나도 아래에 없으면 그 위로 갈 작정 이거던요.’

빈객(), ‘원래 있던 군락지에는 아무 것도 없던가요

여인네, ‘하나도 없어요

 

여인네의 말을 듣는 순간 오늘 여기도 너무 빠르게 왔음을 직감했다.

금곡사까지 가서 계곡의 음산함이 엄습해 거길 가지 않고 왔던 건 여길 믿었기 때문인데

이거 오늘 헛일 단단히 하나보다 싶다.

군락지는 여인네들이 샅샅이 훑고 지나갔겠거니 싶어

그래도 가는 길에 대충 훑어봤는데 정말 복수초랑 노루귀는 코빼기도 뵈지 않는다.

변산바람꽃은 언강생심 바라는 게 사치스런 마음 같아 보이기까지 한다.

 

여기까지 와서 공칠 수만은 없는 노릇이라 계곡을 거슬러 안부까지 올라갔다.

그런데 계곡에 이끼처럼 빽빽하게 자라던 애기괭이눈마저 흔적조차 없다.

삼총사가 무르익을 즈음이면 흔히 현호색이랑 큰개불알풀이 길섶에 늘어져 있건만

애들조차 숨을 죽인 채 꼼짝을 하지 않고 있다.

주변 상황을 미루어 짐작하니 아무래도 일주일쯤 앞당겨 온 것이 분명했다.

이런 착오를 하지 않기 위해 나름대로 검색을 하고 날짜를 맞춘다고 맞추었는데

주변을 아무리 살펴봐도 있을 것 같지가 않으니 날짜를 잘못 짚은 것이 확실했다.

 

금곡사에서 포기하고 내려온 것만도 아쉬움이 큰데 여기까지 와서 그냥 가기는 또 그렇다.

이렇게 되면 산행도 아니고 뭣도 아니게 된지라 이럴 바에는 운동이나 하자 싶어

산기슭을 횡방향으로 훑어 내려갔다.

여기저기 느긋하게 그렇지만 두 눈은 먹잇감을 노린 승냥이처럼 매서운 눈빛을 발산했다.

그러나 지 아무리 노려본들 없는 애들이 , 여기 있소라며 툭 튀어 나올 리 만무하다.

 

그렇게 산기슭을 가로로 훑어 내리며 자생지가 있는 곳까지 다시 내려왔다.

올라오면서 대충 살폈봤기에 당연히 애네가 없을 것으로 간주하고

그보다 더 높은 곳으로 올라가 쭈욱 훑었다.

글쎄 그런다고 없던 애들이 나올 리가 있나

두 눈 씻고 봐도 비스무리한 녀석조차 없다.

 

아직은 날씨가 온전한 봄이 아니기에 토양이 얼어붙어 미끄럽기 짝이 없다.

복수초와 노루귀 자생지 방향으로 내려오는데 조심하지 않으면 미끄러지기 십상이다.

조심조심 내려와 자생지를 마지막으로 꼼꼼하게 살폈다.

그래도 없다.’, ‘안 보인다.’

에이 오늘은 틀렸다.’, ‘그만 내려가자.’

그렇게 마음먹고 돌아서는데 아니 저기 뭐꼬’, ‘분홍노루귀 아이가

느닷없이 분홍노루귀 한 다발이 보이는 게 아닌가.

낙엽이 치워져 있고 주변이 곱게 단장된 채 떡하니 자기 존재감을 유감없이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

 

선답자가 발견하고는 인물 좋은 사진을 얻기 위해 말끔하게 단장을 해 놓았던 것이다.

단장을 했거들랑 다시 낙엽을 덮어 이불을 덮어 두던지 아니하고

날도 추운데 그냥 간 모양이다.

촬영이 주목적인 사람들은 저런 비상식적인 사람들이 많다.

내가 주변을 돌로 막고 낙엽으로 덮어 이불을 만들어 주었다.

 

어쨌거나 그렇게 깔끔하게 단장을 해 놓았는데도 그게 그렇게 눈에 띄지 않았다니

그야말로 야생화 헌터는 정말 따로 있는 모양이다.

길섶 바로 가까이 있었음에도 그 녀석이 그토록 눈에 띄지 않았던 것이다.

앞서 간 여인네도 발견하지 못했던 것이다.

 

그런데 그게 다가 아니었다.

바로 그 곁에는 복수초가 갓 낳은 강아지 새끼마냥 눈도 뜨지 못한 채 고개를 내밀고 있는 것이 아닌가.

순간 이게 웬 떡인가 싶다.

원래 야생화는 있는 곳에 있는지라 옳다구나 싶어 샅샅이 더 뒤지기 시작했다.

그랬더니 그렇게도 보이지 않던 녀석들이 왜 이제야 날 찾느냐는 듯

여기에서도 저기에서도 반갑게 눈 맞춤을 한다.

! 얼마나 반갑던지 마치 이산가족 상봉이나 한 것처럼 커다란 희열을 느끼는 순간이다.

왜 그렇지 아니하겠는가?

포기하고 있다가 막 가려던 참에 발견을 했으니 그 기쁨은 이루 말로 형용하기 어려우리라.

 

내친김에 변산바람꽃은 없는 지 다시 살피기 시작했다.

하지만 아무리 살펴봐도 걔는 보일 기미가 없다.

여기가 아닌지 아니라면 그렇게 훑고 지나다녔으면 보일 만도 했을 텐데

없는 걸 보니 아직 피지 않은 모양이다.

아니 어딘가 피어 있는데 이 녀석도 쟤들처럼 찾지 못한 건 아닌지도 모를 일이다.

 

사실 여기까지 온 건 변산바람꽃 때문인데 많이 아쉽다.

노루귀랑 복수초야 어디서든 쉽게 만날 수 있는 데

이 변산아씨는 자생지에 가야만 볼 수 있다.

원래 변산에서 처음 발견된 친구라 변산이란 이름이 붙었다고 하지 않던가.

지금은 전국적으로 분포되어 있다만 그래도 있는 곳에만 있는 친구가 바로 이 녀석이다.

일주일만 늦추어 오면 이 삼총사가 활짝 반겨줄 텐데

이 녀석들 보자고 또 한 걸음 더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개학하기 전에 한 번 더 왔으면 좋겠다만, 아내가 시간이 될지 모르겠다.

아내가 시간이 되어 함께 오면 올까 이제 이 녀석들 보자고 혼자 길 떠나기란 좀 그렇다.

이 녀석들 곧 지고 말텐데 어쩌지.

지금 못 보면 내년을 기약해야 하는데 어찌해야 할지 살짝 고민스럽다.





경주 안강 금곡사

















생강나무 꽃눈










경주 모처에서 만난 노루귀












경주 모처에서 만난 복수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