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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행방

앉은부채를 찾아 나선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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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을 재촉하는 겨울이 무색한

앉은부채를 찾아서



■ 언제 : 2017. 2. 21.(화)

■ 어디로 : 충북 모 앉은부채자생지, 미동산수목원

■ 누구랑 : 홀로 왕복 350여 km를 달림




흔적

 

하루가 가는 것이 아깝다.

집에 버팅기고 있자니 좀이 쑤시나 그렇다고 어디 마땅하게 갈 곳도 없다.

여기도 갔고 저기도 갔고, 가지 않은 곳은 너무 멀리 있다.

그렇다고 멀리 혼자 애써 가기란 여러 가지 애로 사항이 많다.

 

산행을 할 것이냐, 꽃을 보러 갈 것이냐 그것이 문제로군.

산을 가자면 가까운 산 어디든지 가면 될 것이나

님도 보고 뽕도 따자니 늘 그것이 걸림돌이 되어 발목이 잡힌다.

예전 같았으면 이유 여하를 불문하고 산이 먼저고 그 다음이 꽃이었다.

산을 다니면서 눈에 띄는 꽃과 나무를 즐기며 만족했던 것이다.

 

오늘도 혼자 움직여야 하는데 어디 마땅히 집히는 곳이 없다.

봄이 더디게 오는 내 고장 가까운 곳은 산이 있어도 이즈음 피는 꽃이 없다.

지난 주 팔공산 오도암 가려다 바람이 너무 쌀쌀맞아 포기하고 군위 인각사와 학소대를 갔는데

오늘 다시 거기나 갈까하는 생각을 하다가 이내 고개를 젓는다.

그쪽은 오늘 별로 내키지 않는다.

 

며칠 전부터 갈만한 곳을 찾아 여기저기 뒤적이다

충청도 모처에 앉은부채자생지가 있음을 미리 파악해 두었다.

그런데 단순히 앉은부채그 녀석 만나고자 혼자 왕복 350km가 넘는 거리를 달려가자니

아직은 내가 왜 그래야 하는지 납득이 되지 않는다.

그 녀석을 만나고자 홀로 기름을 쏟아 가며,

고속도로비 자진 납부해 가면서 가야할 이유가 있나.

괜히 사치스러운 생각이 든다.

 

행여 볼 일이 있어 그쪽으로 가는 걸음이라면 몰라도

그놈 보러 거기까지 간다는 것은 아무래도 아직은 내 취향이 아니다.

물론 보고 싶은 애들이 있을 땐 그렇게 무리한 적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염천의 무더위 속에 혼자 남덕유산 꼭대기까지 올라 솔나리를 만난 적도 있고

아내와 함께 가야산 칠불봉에 백리향을 만나러 간 적도 있다.

그 외에도 산보다 꽃을 위주로 다닌 적이 꽤 있기는 하다.

 

하지만 오늘은 왠지 길을 나서기가 쉽지 않다.

그래서 아침 드라마를 보면서 꾸물거리다 이래선 안 되겠다 싶어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까짓거  가자.’  ‘가보자

집에서 궁상 떨면 뭐 하노’, ‘오늘은 앉은부채랑 놀아보자.’

거기 가면 앉은부채가 있는 것은 확실하니 공치진 않을 것이다.

다만, 부처가 앉아 있는 모습까지 볼 수 있을지

희귀종이라 하는 노랑앉은부채까지 접견할 수 있을지가 의문이었지만,

그건 가봐야 알 일이다.

 

며칠 전 그곳을 다녀온 선답자의 블로그에 의하면

부처가 앉아 있는 활짝 핀 애가 있기는 했지만, 아직 시기적으로 이른 감이 있어

큰 기대는 하지 않고 일단 먼저 다녀간 이가 보고 왔으니 그 일대를 샅샅이 뒤지면

나도 활짝 핀 모습을 볼 수 있으리라는 자신감을 가졌다.

산행을 하지 않으니 그 대신 앉은부채가 있는 그 야산을 모두 훑어 버리겠다는 마음을 단단히 가졌던 것이다.

그러나 한 가지 아쉬운 점은 먼저 다녀온 선답자의 얘기에 의하면

노랑앉은부채는작년에 있었던 그 자리에 지금은 없다는 얘기다.

어느 눔인지 퍼 갔는 모양이다. 꽤심한지고~~~

가져 가봐야 살리지도 못하고 죽일 건데 쯧쯧쯧

 

혼자 가는 길이라 그런지 멀기도 하다.

경부고속에서 중부내륙을 타다가 상주-청주간 고속도로를 바꾸어 타면 속리산휴게소가 나온다.

이 도로를 달리면 으레 속리산휴게소를 들린다.

여기는 또 언제가 될지 모르겠지만 가야 할 산이 있다.

이 산은 바로 100대 명산인 구병산인데 휴게소를 에워싸고 있는 그 형상이

자못 당당하고 기세등등하다.

보는 순간 오르고 싶은 욕구가 용솟음치는 산이다.

하지만, 난 늘 휴게소에 서서 그저 바라보기만 하며 하염없이 상념에 잠기기만 한다.

다른 이유는 없다. 직장 동료였던 아내와 그의 남편인 친구의 아픔이 서려 있기 때문이다.

하여 구병산은 계속 나에게 외면을 당하고 있는 것이다.

 

2시간이나 걸려 목적지 부근에 정확하게 도착했다.

그런데 마을 주변은 남·북은 길이고 동·서는 모두 산이라 어느 방향으로 가야할지 갈피를 못 잡겠다.

지나가는 여인네한테 물어봐도 외지인이라 모르고,

동네지구대에 가서 경찰한테 물어도 어렴풋이 알고 정확한 지점을 모른다.

다만 마트에 가면 야생화에 일가견이 있는 분이 있다하여 거길 가 물었더니

잘 아는 주인장은 없고 동네 노인분께서 어디 어디를 가면 안은부채가 많다고 말씀을 해 주신다.

 

노인장께서 말씀해 주신 곳으로 가니 어딘지 잘 모르겠다.

길가 주유소 옆에 차를 세우고 담배 한 대 태우고 계시는 마을 농부인 듯한 분께 또 물었다.

뭐라 뭐라 친절하고 자상하게 말씀은 많이 해 주시는데

정작 내가 알고자 하는 곳은 피해가고 친절하게 다른 말씀만 많이 주신다.

어쨌든 충청도 특유의 느린 언행이었지만 자상하신 말씀에 고마움을 담고

고개 숙여 감사의 말씀을 드린 후 내 갈 길을 찾아 나섰다.

 

다시 왔던 길 되돌아가니 선답자의 블로그에서 봤던 앉은부채자생지란 비석이 서 있는 것이 보였다.

좀 전에 올라갈 때는 하천너머 건너편에 서 있었기에 쉽게 발견이 되지 않았는데

돌아오는 길에는 같은 방향에 있어 잘 보였다. 이목교란 다리 건너 바로 있었다.

주차할 장소를 찾으니 마침 ○○순복음교회의 주차장이 텅 비어 있다.

염치불구하고 거기에 주차를 했다.

 

, 이제 드디어 목적지에 안착했다.

바로 눈앞에 있는 산인데 지금부터는 어디로 가야할지 판단을 잘 해야 한다.

산만댕이로 올라가 능선을 누비고 다녀야 할지 아니면 밑에서부터 치고 올라야할지 분간이 잘 안 된다.

우선 만댕이로 올라가 내려올까 싶어 갔는데 하천부지 쪽에서 앉은부채를 보러 온 듯한 사람이 셋 보인다.

여인네 둘 남정네 하나

그분들께 안전부채의 근황을 물었더니 소상하게 정보를 일러준다.

어디부터 시작해서 어느 부분에 집중적으로 분포되어 있는지 정확하게 짚어 주셨다.

이분들을 만나지 않았더라면 바로 눈앞에 있었더라도 좀 헤매었을 뻔 했다.

 

앉은부채 서식지는 생태보전의 가치가 높아 200110월에 충북의 자연환경명소로 지정된 곳이다.

특히 앉은부채의 자생지로 널리 알려진 곳이라 때가 되면 전국의 꽃쟁이들이 득달 같이 몰려온다.

야생화의 피고 지는 시기가 어두운 나도 알고 찾아 왔는데

야생화에 관심을 가진 사람이라면 귀신같이 알고 찾아올 것이다.

 

이 야산엔 덩굴나무와 잡목이 우거져 겨울의 끝자락이 아니라면

쉽게 접근하기 어려운 곳이었다.

다행스럽게도 이 꽃은 2월에서 3월에 꽃을 피우니 이때라면 메마른 빈가지만 무성하여

수풀 속을 비교적 쉽게 뒤지고 다닐 수 있는 것이다.

숲이 우거지고 무성하면 발 디밀기란 엄두가 나지 않는 곳이었다.

 

예보와는 달리 오늘 날씨는 맑고 포근했다. 햇살도 좋았다.

전국적으로 추위가 기승을 부린다고 하여 독립군 모자를 덮어쓰고 갔더니 오히려 모자가 불편하기 까지 했다.

그래도 산속의 토양과 이끼가 달라붙은 바위는 미끄럽기 짝이 없었다.

빈 가지에 잎이 다 떨어진 나무줄기만 어지럽게 널브러져 있어도 그 역시 지나다니는 데는 장애가 많았다.

요리조리 피해 다녀도 긁히고 메마른 나뭇가지는 내 몸에 걸려 곧잘 부러져 나갔다.

행여 죽은 나뭇가지라도 나로 인해 부러지지 않도록 조심조심 피해 다녔다.

특히 떨어진 나뭇잎에 덮여 있어 보이지 않는 앉은부채라도 밟을까 우려되어 이끼 낀 미끄러운 바위 틈새와 얼어붙은 흙 위로만 골라 다니며 밟고 다녔다.

 

처음에는 잘 보이지 않던 보고파 했던 녀석들이 하나가 눈에 띄기 시작하더니 줄줄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세상에 지금까지 전국을 떠돌며 7년 넘게 산행을 했지만, 단 한 번도 만나지 못한

앉은부채를 이렇게 떼거리로 만나다니 살다보니 이런 날도 있구나.

그러고 보니 왜 이 지역을 앉은부채 자생지로 선정했고, 충북의 자연환경명소로 지정했는지 이제야 알 것 같았다.

 

조심조심 한 발 한 발 내딛으며 촬영에 전념했다.

지금 이 산엔 나밖에 없다. 아무도 없다. 바람소리마저 없다.

있다면 오늘 주인공인 앉은부채와 소규모 자작나무 군락만이 유일한 내 친구다.

여기도 앉은부채저기도 앉은부채곳곳이 앉은부채.

이럴 수가 있다니 참말로 이제부터는 산을 다녀도 꽃피는 시기와 서식지를 주도면밀하게 파악하고 다녀야겠다.

오늘 같은 경우를 보니 덮어 놓고 다닐 일이 아니다.

 

그러나 내내 좋은 것만은 아니었다. 아쉬움 또한 컸다.

일주일쯤만 늦게 왔어도 만개한 부처 모양의 꽃을 보았을 텐데

아무리 뒤지고 다녀도 불염포의 한 쪽이 터져 속을 보여주는 녀석이 없다.

도깨비방망이처럼 생긴 것에 육수꽃차례로 작은 꽃이 송골송골 달려 있는 꽃을 봐야 하는데

아무리 찾아 봐도 그 녀석은 야속하리만큼 나타나질 않는다.

현재 생육 상태로 보아 단 며칠만 늦게 왔어도 볼 수 있을 뻔 했는데

다음 차례는 경주를 가야해 늦출 수가 없었다.

경주는 시기를 잘 맞추어 노루귀와 복수초 그리고 변산바람꽃을 한꺼번에 볼 심산인 것이다.

 

속을 확 드러낸 녀석은 아무리 찾아도 없다.

혹시나 하고 기대했던 노랑앉은부채도 코빼기도 뵈지 않는다.

그런데 다문다문 속이 뻥 뚫린 녀석들이 보인다.

뭔 일인고 했더니 누군가 불염포 안에 있는 꽃을 보기 위해 불염포를 잘라 내거나

아예 밑둥을 싹둑 잘라낸 채 속을 내 보이는 녀석들이 더러 눈에 띈다.

그런데 도깨비 방망이 같은 꽃마저 잘린 채 날아가고 없다.

어떤 곳에는 한 무리의 앉은부채가 몽땅 잘려나갔다.

 

이상하다.’ 칼로 벤 듯이 매끄럽게 잘려 나간 것으로 보아 짐승의 소행 같지는 않은데

그렇다면 꽃쟁이들이 그랬단 말인가? 말도 안 된다.

꽃이 좋아 꽃을 찾아 불원천리하며 온 이들이 그런 무지막지한 행동을 했을 리 만무하다.

자로 잰 듯 너무 매끄럽게 잘려 나가 처음엔 사람의 소행이 아닌가 했다만,

아무리 생각해도 그건 아닌 것 같다.

겨우내 굶주린 들쥐의 소행이거나 날짐승들의 짓이 분명하다.

어떤 녀석은 꽃이 보이는 특정 부분만 구멍이 뚫렸기에 앉은부채의 생식 기관을 잘 아는

아마 들쥐의 소행이 분명하렷다.

어쨌거나 야생에서 꽃차례가 달린 속을 보긴 봤다.

비록 정상적으로 본 것은 아니었다만...

 

오늘은 이정도로 만족을 해야 하는가 보다.

이번 출사는 새 봄에 나뭇가지에 돋는 파릇파릇한 새순마냥

죽순처럼 삼각형 모양으로 혹은 고깔모양으로 언 땅을 비집고 삐죽 고개를 내민

이 녀석들로 만족을 해야 하는가 보다.

됐다. 이번엔 그 정도로 만족하자.

비록 육수꽃차례는 못 봤지만, 그 모습은 다른 꽃님들의 몫으로 넘기자.

내가 못 보면 남이라도 보면 될 것 아닌가.

앉은부채랑 안녕하고 하산한다.

 

먼 길 왔는데 그냥 갈 수 있나.

기름 값은 좀 건져야지.

그래서 가는 길에 있는 미동산수목원으로 갔다.

 

미동산수목원은 정말 멋진 곳에 자리 잡고 있었다.

수목원을 감싸고 있는 미동산 산행 코스로도 좋고 수목원 탐사 코스로도 좋았다.

대충 한 바퀴 돌고 왔다만, 다음 기회가 되면 산행과 겸해 다시 한 번 더 와야겠다.

오늘은 정확한 코스를 몰라 가는 길에 시부지기 들렀지만,

내년 이맘때면 조준을 잘해 앉은부채의 부처 모양도 보고

미동산수목원 산행도 하고 수목원도 둘러봐야겠다.

코스가 딱 적당할 것 같다.

내년을 기약하자.



































미동산 수목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