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부회, 천안 · 아산 일대 1박 2일
1일차 탐방 흔적
■ 언제 : 2016. 1. 28.(목) ~ 29.(금)
■ 어디로 : 천안, 아산 일원
■ 누구랑 : 회원 전원 참석
■ 숙소 : 천안상록리조트
■ 운전 : 박.., 고.., 장..
■ 탐방 코스
1일차 : 독립기념관 방문- 아우내장터(병천순대로 점심) - 삽교천 방조제(스쳐 지남) - 공세리 성당 - 아산 현충사 - 숙소
2일차 : 외암민속마을 - 봉곡사 - 공산성
흔적
열두 식구가 다 모였다.
이 모임은 조직 이래 행사를 진행할 때 마다 불참하는 부부가 없다.
음~, 이정도면 육부회 모임은 반듯하게 자리를 잡은 것 같다.
보자. 그러고 보니 모임 이후 퇴직자가 하나, 둘, 셋
세 분이 퇴직을 하셨구나.
모임이 활성화 되고 부부가 함께 모여 세월을 즐기는 동안
세월은 또 다른 양상을 띠며 그렇게 가고 있었나 보다..
이번 여행길은 모두 바쁘게 움직였다.
사공이 많아 당초 계획대로 움직여지진 않았지만,
그도 나쁘지만은 않다.
워낙 나다닌 사람들이 많아 나름대로 여행길은 일가견이 있기에
때로, 좌충우돌 하는 경우가 있더라도 적재적소에 코스 변경이 상황에 맞게 이루어지니
그닥 불만족스러운 경우는 거의 발생하지 않는다.
오히려 상황에 따라 지혜롭게 처신하니 전화위복이 되는 경우가 많다.
먼저 첫 탐방지로 천안에 있는 독립기념관을 갔다.
독립기념관이야 애들 수학여행, 연맹 아이들 인솔로 수 차례 다녀간 적이 있었지만,
목적지가 천안, 아산 일대다 보니 독립기념관이야 뺄래야 뺄 수가 없다.
오랜만에 갔지만, 역시 새삼스러웠다.
아이들 인솔이 아닌 우리끼리의 자유분방한 탐방길이다 보니
보다 세세한 견학을 할 수 있어 좋았다.
아이들 인솔교사가 되어 견학을 하다보면
가지 않으려는 아이들, 눈치 보며 살짝 빠지려는 아이들, 아예 버스에서 내리지도 않으려는 아이들
간섭하고 통제하다 보면 아이들 제쳐두고 지도교사가 맘 편히 탐방하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방학 중이고, 요 근래 전국적으로 눈이 오고 기온이 올 겨울 들어 가장 추워서 그런지
독립기념관에는 방문객이 그리 많지 않았다.
듬성 듬성 가족 단위로 온 사람들만 있어
드넓은 광장은 한산하고 스산하기 그지 없었다.
전시관을 두루 돌아나오며 느꼈지만,
독립기념관에 우리 국민들이 많이 애용을 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민족의 태동과 함께 근·현대사를 총망라한
우리 역사가 독립기념관에 모두 다 들어 앉았다.
역사의 산물로 재탄생 한 곳이 바로 독립기념관이기 때문이다.
하기야 유치원 아이들부터 어른에 이르기까지 한 번쯤 다녀가지 않은 사람이 없기에
요즈음 방문객이 현저하게 줄어들 수밖에 없을 것 같기도 하다.
한 때는 학교도, 연맹에서도 필수 코스였지만,
근래 이쪽으로 코스를 잡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
앞으로도 지속적인 관심을 갖어 주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
점심 한 끼를 해결하기 위해 아우내장터로 갔다.
아우내장터는 만세운동으로 태극기의 물결이 장터를 휩쓸었던 곳이다.
1919년 4월 1일, 천안 병천 시장에 모인 민중이 조선 식민지배에 반대하여 독립만세를 부른 현장이다.
류관순 열사를 비롯한 민중 열사들이 만세 운동을 주도하였으며,
현장에서 19명이 사망하고, 수없이 많은 사람들이 붙들려가 모진 고문을 받은 현장이기도 하다.
뒤돌아 생각하면 병천순대는 당시 만세 운동을 부르며 숨져간 우리 민족의 피와 살이라 해도 무방하다고 봐야겠다.
민족의 설움이 순대국 한 그릇에 담겨 있으니
병천순대는 다름아닌 아우내장터에 모여 만세운동을 부른 선조들의 넋이었던 것이다.
우리는 오늘 순대를 먹은 것이 아니라 선조들이 흘린 피를 먹은 것이다.
♣
아우내장터에서 삽교천방조제로 이동을 했다.
삽교천을 감으로 해서 이동 동선을 역류해 거꾸로 한 바퀴 돌았다.
짧은 거리가 아니었음에도 삽교천방조제까지 가서 우리는 차에서 내리지도 않고 그냥 스쳐 지나갔다.
철새들이 한가하게 진을 치고 있는 모습과 일부 하늘을 나는 무리가 V자형으로 편대 비행을 하는 모습을 보며,
그것으로 대리 만족을 하고 다음 경유지로 이동을 했다.
철새와 잠시 얘기를 나누고 싶었지만, 여의치가 않았다.
♣
다음 경유지는 조선시대의 성당인 공세리성당(貢稅里聖堂)이었다.
공세리란 명칭은 조선 시대 충청도 서남부의 조세를 보관하던 공세창(貢稅倉)이 있었던 데서 유래한다.
1890년에 시작되어 무려 120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유서 깊은 공세리성당은 1998
2005년도에 한국관광공사가 뽑은 대한민국에서 가장 아름다운 성당으로 선정되기도 했으며,
수령 350년 묵은 팽나무, 수령 380년과 250년 묵은 느티나무, 수령 150년 세월이 지난 피나무 같은 보호수와
그와 상응하는 거목들이 상당 수 자리 잡고 있다.
이는 성당의 유서 깊은 역사를 잘 대변하고 있는 대목이기도 하다.
또 공세리성당은 드라마 촬영지로도 유명하여, '태극기 휘날리며', '사랑과 야망', '에덴의 동쪽'을 비롯하여
다수의 영화와 드라마를 촬영한 명소로 이름이 나 있고,
1895년에 부임한 에밀 드비즈 신부님이 프랑스에서 배우고 익힌 방법으로
고름을 뽑아내는 종기 치료 명약으로 사용한 고약을 처음 개발하여 보급한 곳이기도 하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공세리성당하면 순교지 임을 간과해서는 아니될 것이다.
1,801년 신유박해 때부터 1,873년 병인박해가 끝날 때까지
오로지 천주님을 믿는다는 단 한 가지 이유로 목숨을 잃은 거룩한 순교자가 있는 성스러운 곳이기 때문이다.
이곳에는 이분들을 모신 순교자 묘지가 있고,
신유에서 병인에 이르기까지 순교한 32인을 기리기 위한 삼십이위순교자현양비가 설립되어 있다.
그리 규모가 크지 않은 얕으막한 언덕배기 동산에 자리 잡은 성당이 품은 내용은
그야말로 큰 산과 다름없다.
우리는 성당의 여기 저기를 살피며 신기한 듯 넋을 놓고 탐방을 했다.
탐방하는 모습을 보아하니 모두 탐방하는 자세와 분위기가 날로 발전을 거듭하고 있다.
이런 식이면 조만간 모두 전문 여행가로 손색이 없겠다.
공세리성당을 떠나며
난, 공세리성당의 거목을 향해 고개를 돌리며 눈인사를 했다.
박해와 인고의 세월을 고스란히 담은 채
한 마디 말도 없이 한결 같은 마음으로
예나 지금이나 쉼터만 제공하는 그 모습에는 과연 무엇이 담겨 있을까?
말이 없어도 없는 게 아닐 것이다.
나무가 백 년, 이백 년, 삼백 년이 지나면 그저 나무일 수만은 없을 것이다.
분명 우리가 모르는 그 어떤 신령스러운 기운이 스며 있을 것이다.
공세리성당을 떠나기 전에 순교 성당을 지키고 선 거목을 바라보며
그저 고개만 숙일 뿐이다.
♣
공세리성당을 떠나 아산현충사로 갔다.
이동 노선에 다소 혼선이 있었다만, 모두 아랑곳 하지 않는다.
승용차 세 대가 움직였지만, 운전하는 이들이 일행들의 기분좋은 여행을 위해 전혀 개의치 않는다.
이것은 여럿이 여행할 때 가장 필요한 덕목이다.
여행을 하다보면 예기치 않게 이동 경로가 뒤죽박죽 되는 경우가 허다하다.
그럴 때 누구라도 초치는 소리하면 분위기는 삽시간에 냉랭해 질 수도 있다.
여럿이 여행할 땐 잘못까지 동조하는 넉넉한 마음이 가장 중요하다.
그렇다고 뭐~ 우리가 이번에 크게 잘못한 것이라는 것은 아니다. 얘기하자면 그렇다는 말이지.
아산현충사 안 가본 사람 있겠나.
현충사 역시 다녀간 적이 몇 번이나 있었던 것 같다.
그러나 갔던 곳이었다 하나 역시 다른 곳과 마찬가지로 생소하기는 마찬가지다.
충남 아산의 시목은 은행나무다.
그래서 그런지 현충사로 오는 길가의 가로수도 모두 은행나무 일색이다.
현충사에도 충무공이 무과에 급제하기 전에 살던 옛집 옆 활터에
고목인 은행나무 두 그루가 있다.
무려 500살이 넘은 은행나무다.
두 그루 모두 암나무로 해마다 많은 은행이 열린다고 한다.
현충사는박대감과 우리 부부만이 들렀다.
나머지 네 부부는 오다말고 인근에 있는 지중해 마을로 샜다.
숙소에서 만나기로 하고 우리는 우리대로 그들은 그들대로 부득이 따로 놀았다.
우리는 현충사 이곳 저곳을 여물게 탐방했다.
소나무의 다른 종인 반송이 잘 가꾸어진 거대한 모습으로 우뚝 서 있는 가 하면
이충무공 집안이 배출한 네 분의 충신과 효자 한 분의 훈공을 액자에 새겨 놓고
사표로 삼은 '정려'를 지나 충의문을 통해 현충사로 가 참배를 하였다.
현충사엔 직원인 여성 한 분과 우리가 모두였다.
현충사는 1932년에 중건된 구현충사가 있었고,
우리가 참배한 현충사는 1967년 성역화 사업으로 새로 건립한 곳이었다.
내려가면서 구현충사에 들리니 건물만 덩그러니 있고, 안은 텅 비어 있었다.
그래도 주련에 새긴 글귀하며 내용을 알고보면 봐야 할 것이 있으리라.
현충사 아래 이충무공의 옛집이 있었고, 바로 옆에 이충무공의 가족이 사용하던 우물이 있었다.
충무정이란 이름을 가진 우물은 요즘 참배객의 식수로 사용하고 있었다.
우물 바로 위론 이충무공이 활쏘는 연습을 하던 활터가 있었고
활터는 현재 중학생부터 성인을 대상으로 한 활쏘기 체험장으로 사용하고 있었다.
그리고 활을 쏘는 곳에 바로 500살 묵은 은행나무 두 그루가 있었다.
오랜 세월을 버티고 선 엄청난 굵기의 은행나무를 보니
마치 이충무공의 나라를 위한 우국충정이 여기에서 비롯된 것 같아 보인다.
내려가면서 구현충사도 들리고 충무공 전시관도 둘러봤다.
여기 저기 관람하면서 명량해전, 노량해전 등 얘기를 나누고 있노라니
관람 마감 시간이 다 되었다는 안내 방송이 나온다.
전시관을 나서 현관으로 나가자니 아직 지지 않은 화살나무의 빠알간 열매가 다닥다닥 열려있다.
이 겨울에 아직 지지 않은 화살나무의 열매가 앙징맞다.
♣
이제 숙소인 천안상록리조트로 달려갔다.
오늘 하루, 빠듯할 정도로 바쁜 여정이었다.
고대감과 서대감은 먼저 숙소에 당도해 쉬고 있고
회장 일행은 농수산물시장에서 먹거리 장만하느라 아직 도착하지 않았다.
늦었지만, 장보러 갔던 이들도 숙소에 당도했다.
그런데 이 사람들, 시장을 통째로 들고 왔는지 먹을거리를 엄청나게 장만해 왔다.
수산시장에서 눈에 띄는 것은 다 잡아 온 모양이다.
종류도 다양하고 푸짐하기로는 이루 말로 다 못할 정도다.
그런데, 모두 잘 먹는다.
저걸 언제 다 먹지. 도저히 다 못 먹고 남길 것이라 여겼는 데
웬걸, 하나 남김없이 모두 깔끔하게 싹 비웠다.
나도 잘 먹지만 모두 엄청 잘 먹는다.
그래 먹고 죽은 귀신은 때깔도 좋다하지 않았나.
여행 뭐 별거 있나.
잘 다니고, 잘 먹으면 그게 최고지.
그렇지 아니 하온지요. ♥♥♥
입구에 있는 겨레의탑. 설명은 아래 사진으로...
머스마들 폼 함 잡아볼까나요. 뒤로 흑성산을 안고 있다.
나도 끼어 볼까요.
같은 곳 다른 모습
마나님들도 한 컷.
기념관으로 들어가 볼까요. 1~7전시관이 있다.
태극기만 보면 그냥 숙연해 지죠. 우리네 민족성 입니다.
인물 좋구만~~~ 뒤에 있는 엑스트라는 뉘신지요. 많이 보던 사람인디~
불굴의 한국인상.이제 1관 겨레의집부터 들어갑니다.
불굴의 한국인상. 재료 화강암
황룡사 치미. 설명은 아래 사진 참조.
치미
아깝다. 우리 고구려의 옛 영토. 위로는 만주벌판 아래로는 대마도까지 가졌어야 하는 데~
신기전. 세계 최초의 로켓포
대한제국의 주권을 강탈하기 위해 강제로 을사늑약을 체결하는 장면을 나타냄. 조선인이 더 많다.
요즘 위안부 협상으로 더 큰 이슈로 부각되고 있죠.
예부터 나라를 구한 사람은 백성이고 국민이었다. 정치가 쉽지 않겠지만 나라를 위한 마음으로 지발 발전 좀 하자.
왼쪽부터 윤봉길, 안중근, 김좌진
구한말 민족대표 33인
회장님이 병천 원조 순댓집을 알아 두었지만, 주차난이 좋지 않아 이집으로 왔다. 주차장도 좋고 맛도 좋고 가격도 비싸지 않아 좋았다.
점심을 먹고 순교지인 공세리성당으로 왔다. 고딕양식의 성당과 보호수인 거목들이 먼저 눈에 들어왔다.
본당 앞에 있는 팽나무. 82년에 수령 350년이라 했으니 지금은 거기다 33년을 더해야 나이가 맞겠네요. 뿌리를 보세요. 얼마나 힘이 좋은지...
팽나무. 세월이 그리 가도 순교 현장을 그냥 보고만 있지는 않았을 터...
우람한 체격에 감탄이 절로 나온다.
고딕양식의 성당
느티나무. 역시 수령 380 + 33 해야겠죠.
위 느티나무 아랫부분
윗부분
수령 150년 피나무
피나무
수령 250년 느티나무. 작은 동산에 있는 성당에 이런 거목들이 성당 주변을 에워싸고 있다.
순교지묘지에 먼저 내려가 있네요.
보호수인 거목과 함께한 고딕양식의 건축물 공세리성당
순교자묘지
가기 전에 성당 상부를 한 번 더 보고...
순교지의 성스러운 공세리 성당을 떠난다.
다음은 아산현충사로 갔다.
흰눙이 소복하게 쌓인 모습이 마치 왕을 같아 보이나 실은 기념 전시관이다.
'정려' 이충무공 일가의 충신, 효자의 훈공을 액자에 적어 사표로 삼기 위함
아산현충사는 박대감 부부랑 우리 부부만 왔네요.
현충사로 가는 길목에 선 거대한 반송.
도대체 한 뿌리에서 줄기가 몇 개나 나왔나요. 불로동에서 봤던 구절송보다 더 많다.
소나무 숲길이 황량한 겨울을 푸근하게 맞이한다.
현충사 참배를 하고 이충무공 옛집으로 간다.
그것 참~ 기이하게도 생겼네요. 고리가 만들어졌네요.
왕버들
이충무공이 무과에 급제하기 전에 거주했던 옛집
아무도 없는 빈집인 옛집을 이리저리 둘러본다.
활터에 있는 수령 500년 은행나무
활터에서 본 이충무공 옛집
수령 500년 은행나무. 은행나무는 아산의 시목이다.
두 그루나 있다.
충무공이순신이 활을 쏘며 연습하던 활터로 지금은 중학생부터 성인에 이르기까지 활을 쏘는 체험장으로 이용하고 있다.
충무정이란 우물. 당시에 사용하던 우물로 옛집 앞에 있다.
난, 혼자 구현충사로 간다.
기둥에 적힌 주련만 남아 있다.
안을 들여다보니 아무 것도 없다. 텅 비었다. 그러나 이 구현충사가 존재하는 자체가 역사이니 보존의 가치가 있다고 본다.
주련에 쓰인 글씨는 위당 정인보 선생의 글이다.
주련의 글을 음미해 보세요.
화살나무의 빠알간 열매가 앙징맞다. 너를 끝으로 아산 현충사를 떠난다.
첫날의 마지막 여정을 끝내고 숙소에 도착
회장님과 장부장이 농수산물시장에서 공수해 온 먹거리로 숙소에서 이렇게 먹고 놀았다.
푸짐하다. 실컷 먹었다. 솜씨 좋은 정민이 엄마 땜 시 매운탕으로 속까지 풀어가면서 먹었다.
회장님의 건배 제의
하루 일정을 마무리하는 즐거움은 뭣보다 먹는 게 최고지~
마이 뭈나~
마이 묵고 있다 아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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