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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부회

천안, 아산일대 탐방(2일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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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부회, 천안 · 아산 일대 1박 2일

2일차 탐방 흔적

 

 

■ 언제 : 2016. 1. 28.(목) ~ 29.(금)

■ 어디로 : 천안, 아산 일원

■ 누구랑 : 회원 전원 참석

■ 숙소 : 천안상록리조트

■ 운전 : 박.., 고.., 장..

■ 탐방 코스

  1일차 : 독립기념관 방문- 아우내장터(병천순대로 점심) - 삽교천 방조제(스쳐 지남) - 공세리 성당 - 아산 현충사 - 숙소

  2일차 : 외암민속마을 - 봉곡사 - 공산성

 

 

 

둘째 날 첫 코스 : 외암민속마을

 

 

 

흔적

  

둘째 날 첫 코스로 아산시 송악면 외암민속마을을 찾았다.

민속마을 주차장가에 마을을 둘러싼 개울이 흐르고,

하천과 마을을 잇는 섶다리를 건너면 마을로 들어간다.

그러니까 마을 외곽을 흐르는 하천은 마을의 안과 밖을 구분하는 뚜렷한 경계선이 되는 셈이다.

보통은 마을 경계를 솟대나 장승을 세워 구분한다.

 

마을 초입에 들어서면 마을에 대한 설명이 있는 안내판과 외암민속마을이라는 표식이 있다.

그 앞에 모두 모여 단체 사진을 촬영하는 데, 웬 여자 분이 오시면서

사진을 찍어 주신다고 자청을 하신다.

덤으로 몇 방 더 찍어 주시더니 본인이 마을의 문화해설사라며

자청하여 해설까지 도맡아 주신다.

 

정말 재밌고 성의 있게 많은 설명을 해 주셨지만,

사진 찍고 듣고 하느라 여물게 챙기지를 못하여 들은 만큼 다 기억을 못하겠다.

자료를 참고하기 위해 뒤적이니 다행히 외암민속마을에 대한 홈페이지가 잘 만들어져 있다.

해설사 분께 설명들은 내용과 홈페이지 내용을 추려

외암민속마을에 대한 사전 지식을 먼저 갖도록 해야겠다.

 

다음 내용은 주로 홈페이지에 담긴 내용과 해설사분의 설명을 짜깁기 한 것이다.

 

온양 고을의 안산(案山)인 설화산은 광덕산에서 갈라진 지맥으로 다섯 봉우리가 솟아서 오봉산이라고 한다.

그 설화산 서쪽에 충청도 양반 마을의 대표적인 곳으로 외암민속마을이 있고,

마을의 조산(祖山)은 유곡리에 우뚝 솟은 봉수산이며, 거기는

외암의 예안 이씨들이 대대로 묻힌 명당 지역이라고 한다.

 

원래 외암마을의 주인은 평택진씨였으나, 오늘날 외암마을에 거주하는 주민의 절반은 예안이씨라고 한다.

예안이씨의 시작은 평택진씨 참봉 진한평의 사위인 이사종이다.

당시 진한평에게는 아들이 없고 딸만 셋 있었는데,

예안이씨 이사종이 진한평의 장녀와 혼인하면서 마을에 들어와 살게 되었다고 한다.

 

외암마을의 주산인 설화산(雪火山)가 있어 불을 상징하는 '화산(火山)'과 같고,

그러므로 옛 사람들은 마을에 '()'의 기운이 미칠 수 있다고 생각하여

마을 내부에 화()와 상극인 물을 끌어들여 그 화()를 제압하려고 하였다.

원래 있던 화()는 자연에 순응하기 위해 그대로 두고

그 화()를 막기 위한 인위적인 조치로 물()을 이용함으로써 자연과의 조화를 이루려 하였던 것이다.

이는 자연에 순응하고 서슴없이 적응해 나가기 위한 선조들의 빼어난 지혜라고 생각된다.

 

그리고 외암마을은 영화와 TV 드라마의 주요 촬영장으로 많이 사용되었는데,

촬영을 위해서 마을을 개조하거나 새로운 셋트장을 만들지 않고

대부분 원형 그대로 사용했다고 한다.

촬영한 영화로는 '태극기 휘날리며’, 손예진, 조승우, 조인성 주연의 흥행 영화 '클래식',

그리고 건재 이상익의 고택은 영화 취화선속에 나오는 이응헌의 집 배경이 되기도 했다.

건재의 고택은 장승업이 머슴살이를 하면서 그림에 대한 꿈을 펼치기 시작한 곳이며,

소운이라는 학처럼 고운 여인을 마음속으로 사랑한 장소이기도 하다.

그 외에도 이 마을에서 찍은 영화는 부지기수(不知其數).

 

드라마 촬영도 SBS 드라마 옥이이모’, SBS 드라마 임꺽정’, KBS 드라마 찬란한 여명

KBS 드라마 당신’, SBS 드라마 덕이’, SBS 대하드라마 야인시대

이 마을은 영화와 드라마를 막론하고 집중적인 조명을 받은

자타가 공인하는 촬영장소로 거듭난 명품마을임을 알 수 있다.

공교롭게 영화도 드라마도 대부분 재밌게 본 것들이라 더욱 정감이 가는 마을이다.

 

대체로 마을은 평온하고 아늑한 분위기가 감돌고 있었다.

마을을 감싸고 있는 병풍처럼 드리워진 산세가

전통적인 풍수상의 명당인 배산임수(背山臨水) 지형을 뜻하고

동고서저형의 구릉은 자연스럽게 다랭이 논을 만들게 했다.

 

이런 안온한 분위기의 마을은 예부터 삼다(三多)로도 유명했다.

돌이 많고, 말씀을 잘하는 사람이 많으며, 양반이 많기로 유명하다고 했다.

거기에 걸맞게 걸출한 인물이 많이 배출된 마을이기도 하다.

 

역시 모두 나이가 들어 그런지

도시의 화려한 LED 조명이 밤하늘을 난무하는 난잡한 광경보다

살짝 하얀 눈이 덮인 시골 마을의 포근한 풍경이 더욱 정감이 가는가 보다.

세월 이기는 장사 없다더니

나이를 먹을수록 인공미가 아닌 자연미가 듬뿍 담긴

소담스런 풍경이 좋은 모양이다.

 

꼭 산이 아니라도 좋다.

여섯 부부가 모여

서로 부추기고 챙겨가며 격의 없이 다니는 여행이 좋다.

나이 들어가면서 서로 함께 길을 걸으며 떠나는 여행도 좋다.

함께 여행을 하면서 길에서 새로운 인생을 만나고 배우는 즐거움을 누리는 것은

어쩌면 앞으로 우리가 가야 할 남은 인생 길인 지 모른다.

 

 

 

 

이틀 째, 외암민속마을 입구 주차장에 있는 안내판에서. 역시 박대감 사진 찍을 줄 아시는구려. 

 

 

주차장에서 내려 이 섶다리를 건너면 전통마을과 민속체험마을이 나온다. 전통마을은 주민이 거주하고, 민속마을은 거주하지 않는다.

 

눈이 살짝 덮인 소담스런 풍경이 마을의 정취를 더욱 복돋운다.

 

단체촬영. 해설하시는 분이 찍음.

 

 

단체사진을 찍어 준 해설사 분께서 자의로 해설을 맡아주셨다. 알뜰하고 성실한 해설에 감사의 말씀을 드린다.

 

회장님 내외간. 두 분 보여 주고, 먹여 살린다고 애 많이 썼오이다.

 

육부회 잉꼬부부. 보통 장승과 솟대는 마을 영역을 표시하는 것으로 사용되며, 외암마을은 공교롭게도 다리가 있는 하천을 경계로 마을 안과 밖을 구분할 수 있게 되어 있다.

 

마음이 서로 잘 통하는 부창부수 

 

마을을 둘러싸고 있는 설화산의 화로 인한 불기운을 다스리기 위해 마을 안쪽에 실개천이 흐르게 만들고, 돌담 옆 집 안쪽으로도 물길을 내었다. 그리고 이 물은 다용도로 이용되기도 했다.

 

건재 이상익의 고택. 영화 취하선을 찍은 곳이기도 하다.  

 

담장의 폭이 1m라 했나. 돌담이 정갈한 것이 깔끔하다.

 

돌담마을에 눈 내린 골목이 어릴 때 외가에서 놀던 분위기 그대로다.

 

 

모두 설명을 열심히 듣고 있네요. 모두 모두 모범생~

 

듣는 태도 좋고~

 

담장너머 키 큰 나무는 은행나무이며 열매가 자라지 않는 숫나무다.

 

건재 고택 앞에 있는 이 아름드리 나무도 은행나무인데 가지가 뻗은 모양으로 봐 암나무라 봐야 하나 열매가 맺지 않아 숫나무로 봐야 한단다. 성별이 암에서 숫으로 바뀌어 버린 경우라 해야 하는지~  그래서 설사 분이 **수 나무라 하던데 혹시 당사자가 기분이 나쁠까 봐 이름은 밝히지 않겠음.

 

마을이 보면 볼수록 이쁘다. 살짝 눈까지 덮여 있어 사진을 찍으니 상당히 돋보인다.

 

돌담에 덮인 기와가 있는 집과 돌담만으로 이루어진 초가집. 골목을 중심으로 양쪽이 명료하게 대비가 되네요.

 

포즈 좋고~

 

외암마을의 이장직 맡으시오. 잘 어울리겠오.

 

해설사 분께서 여기까지 오셔서 설명을 하시며 친절하게 사진도 찍어 주신다. 복 많이 받으세요.

 

육부회의 원앙

 

오우! 잘 어울리시는데요.

 

이건 뭐지~ 왼쪽은 좋은데 오른쪽이 영~~~

 

역시나 잘 어울리는 한쌍입니다.

 

찍고 찍히고~ 누가 누구를 찍는지도 모릅니다요.

 

듬직하고 신실한 부부. 역시 잘 어울립니다.

 

꾀꼬리 같은 부부의 모습도 아주 보기 좋습니다.

 

눈이 귀한 대구에서 올 겨울 처음 밟아보는 눈이죠. 근데 까마귀 날자 배 떨어진다더니 대구를 벗어나 충청도로 오니 대구에는 눈이 나린다네요.

 

행복은 가지고자 하는 자의 것. 많이 웃으면 더 많은 행복이 오지요. 스마일♠♠♠

 

디딜방아가 말 잘 듣나요.

 

모두 힘을 합쳐 밟아 볼까요.

 

참 그림 좋다. 이런 그림이 어떻게 나올까?

 

역시 풍경이 기가 막힌다. 멀리 산그리메가 동네를 받쳐준다.

 

저 방향이면 봉수산인가???

 

 

성춘향이 이 마을에 두 분 납시었오.

 

동고서저 지형의 구릉으로 자연스럽게 만들어진 다랭이논과 밭

 

마을이 평안하고 안온하다.

 

입구로 다시 돌아왔다.

 

자연스럽게 마을의 경계가 된 하천

 

 

 

둘째 날 두번 째 코스 : 봉수산 봉곡사

 

 

흔적

 

외암마을에서 해설을 하던 분이 친근하게도 인근에 천년도량이 있다는 말씀을 덧붙이며

소나무 숲길, 만공스님, 실학자 정약용 등

문화와 역사가 깊은 봉곡사(鳳谷寺)란 절이 있음을 알려주셨다.

외암마을과 가까이 있어 접근도 용이한 곳이었다.

 

해설사 분이 봉곡사를 권하지 않았다면, 우린 광덕산에 있는 광덕사로 갔을 것이다.

외암마을 가까이 봉곡사란 절이 있는 줄도 몰랐고,

광덕사에 가면 수령 400년으로 추정되는 천연기념물 제398호로 지정된

광덕사 호두나무가 있다는 것 정도는 알았기에

, 봉곡사보다는 광덕사에 마음이 더 갔던 것이다.

그 귀한 두나무를 알현 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해설사 분의 봉곡사 솔숲이 기가 막히다는 말씀에 광덕사는 그만 간 곳 없고

오로지 봉곡사만 마음에 와 닿았다.

봉곡사가 좋다고 하니 가까이 있어 당연히 가야하나

내친 김에 봉덕사에 이어 광덕사까지 가고 싶었던 것이다.

그러나 다음 일정과 이동 장소에 따른 불편함이 야기되어 내 맘 가는대로 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봉곡사는 충청남도 아산시 송악면 유곡리 봉수산(鳳首山)에 있는 절이다.

송악면의 남단 봉수산의 동북 계곡에 위치한 고찰이며,

초입부터 울창한 송림으로 뒤덮여 청정도장의 면모를 더욱 돋보이게 한다.

 

봉곡사는 신라 말인 887년에 도선국사가 창건했다고 알려져 있으며, 그와 관련한 이야기로

우리나라 풍수의 국조라 일컫고, 왕건이 고려를 세우리라는 것을 예언하며,

도선비기를 남긴 신라말 옥룡자 도선국사가

어느 날 산 너머 절터를 닦고 목수들을 불러 재목을 다듬고 있는데,

까마귀들이 계속 밥을 물고 가는 것을 보고 무작정 따라갔다고 한다.

그런데 까마귀가 사라진 곳의 그 터가 무척 좋은지라,

거기에 절을 짓고 석암(石庵)이라 이름 지었다는 것이다.

 

사찰입구 안내판에는 신라51대 진성여왕 원년(887) 2월에 도선국사가 창건하고,

고려 18대 의종(1170)때에 보조국사 지눌이 중창했으며,

조선 세종 때(1419)에 함허대사가 삼창하였다고 쓰여 있다.

 

안내판 설명에 뒤이어 내용을 덧붙이자면 조선 선조 때(584)에 화암거사가 중수하고,

봉황이 깃든 곳이라는 뜻의 봉서암(鳳棲庵)이라고 고쳐 불렀으며,

임진왜란 때 소실된 것을 1647(인조 24)에 다시 중창했다.

그런 우여곡절을 그친 후 1794(정조 18)에 궤한화상이 다시 중수하고

사찰 이름을 봉곡사(鳳谷寺)로 바꿔 불렀다.

 

봉곡사는 근대의 선승 만공스님과 실학을 집대성한 다산 정약용과 인연이 깊은 절이다.

23세에 봉곡사에 온 만공스님이 2년 동안 수행에 정진하던 중 홀연히 깨달음을 얻어 오도송(悟道頌)을 읊었다고 하며,

이를 전해주는 만공탑이 대웅전 가기 전 언덕 위에 있다.

탑머리에 음각돼 있는 世界一花는 만공스님의 친필이라고 한다.

다산 정약용은 봉곡사에 머물며 실학자들과 어울려 공자를 논하기도 했다.

 

이쯤에서 만공스님이 깨달음을 얻어 읊은 오도송에 대해 조사한 내용을 살펴보고 가자.

一次 오도(悟道)는 깨달음을 얻기 위해 수행한 봉곡사에서

二次 오도(悟道)는 경남 양산 영축산의 흰 구름 떠도는 외딴 암자 백운암(白雲庵)에서 얻었다고 한다.

 

봉곡사에 깨달음을 얻은 一次 悟道 오도송(悟道頌)

 

空山理氣古今外(공산이기고금외)

빈 산()의 이치(理致)와 기운(氣運)은 예와 지금의 밖에 있는데

白雲淸風自去來(백운청풍자거래)

흰구름 맑은 바람은 스스로 오고 가누나

何事達摩越西天(하사달마월서천)

무슨 일로 달마(達摩)는 서천(西天)을 건너왔는가

鷄鳴丑時寅日出(계명축시인일출)

축시(丑時)엔 닭이 울고 인시(寅時)엔 해가 뜨네.

 

양산 영축산 백운암에서 깨달은 2차 오도(二次 悟道) 오도송(悟道頌)

 

淸淨般若蘭(청정반약란)

깨끗한 반야(般若) 난초(蘭草)

時時吐般若(시시토반약)

때때로 깨달음의 향기(香氣) ()하네

若人如是解(약인여시해)

사람도 이와 같으면

頭頭毘盧師(두두비로사)

비로자나(毘盧遮那) 부처님이구려.

 

봉곡사의 유래, 얽힌 여러 가지 이야기들은 이쯤하고

이제 봉곡사 주변의 감흥을 나누어 보는 시간을 갖도록 하자.

 

봉곡사로 진입하는 어귀는 해설사 분의 말씀대로 울창한 소나무 숲이 그야말로 가관이랄 수 있었다.

노송이 우거진 솔숲 길을 따라 걷노라니 소나무가 뿜어내는 피톤치드가

어젯밤 우리 몸속 깊이 베여 있던 주독을 그냥 빼앗아 가는 것만 같다.

이런 좋은 길을 걷는다면, 기름진 음식을 먹거나 음주가 다소 과하더라도

아무런 걱정을 할 필요가 없을 것 같다.

이런 길을 먹고 걷고 먹고 걸으면, 문제가 생길 하등의 이유가 없다.

 

봉곡사로 가는 길을 천년비손길이라 이름 하였다.

지풍골 봉곡사 주차장을 출발해 봉수산 능선을 올라 아산기맥을 타고

오형제 고개까지 오른 후 다시 지풍골로 돌아오는 천년 숲길을 한 바퀴 돌아오는 코스다.

붉은 기둥의 솔숲 사이로 녹지 않고 쌓인 하얀 눈이 한층 더 돋보이는 매력 충만한 길이다.

 

비록 다음 여정이 바빠 '천년비손길'을 다 돌아보지 못한 아쉬움이 한 구석 눌러 붙어 있었지만,

이로서도 여독을 삼키기엔 충분하고도 남았다.

다만, 다 좋았는데 노송에 긁힌 V자형의 상처가 우리 모두의 아픔으로 다가왔다.

이런 아픔이 뭐가 좋은 지 속없는 상흔은 ♥ 이런 모양도 있다. 괘씸한 지고.

 

봉곡사로 가는 길이 너무 좋아 도저히 그냥 갈 수가 없다.

서로 사진을 찍고 찍히며 충분히 여유를 가질 수밖에 없다.

분위기가 좋아 그런지 모두 해맑은 얼굴에 웃음이 가득해

마치 그 모습이 맑고 순수한 동자의 천진난만한 미소처럼 보인다.

그 모습은 길을 가는 우리가 가져야 할 앞으로의 모습이 되어야 할 것이다.

 

만공탑에 이르면 광덕산과 봉수산으로 가는 갈림길이 나온다.

광덕산으로 가면 광덕사로 갈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며

자꾸만 광덕사에 있는 천연기념물 호두나무가 뇌리에 아른거린다.

 

봉곡사, 예기치 않게 방문한 사찰이다.

비록 염두에 두었던 광덕사는 가지 못했지만,

이로서 족해야 할 것 같다.

 

봉수산 품에 안긴 봉덕사에서 만공스님이 견성하여 읊은 오도송(悟道頌)을 대하며

우리는 과연 어떤 오도(悟道)를 하였을까?

오도(悟道)는 아무나 할 수 있는 것이기는 한 건가?

오도(悟道)란 법력이 높고 깨달음이 깊은 선승들의 전유물인가?

깨달음이란 결코 누구에게나 쉽게 도달하는 것이 아니리라.

다만, 우리는 선승의 깊은 깨달음을 보고 느끼며

자신을 한번 쯤 뒤돌아봄이 그 정도가 깨우침이 아니겠는가?

깨우침이 있다면 깨달은 게지.

 

그저 자기 위치에 서서 작지만 조그마한 느낌이라도 가졌다면

우리에겐 그 자체가 큰 깨달음으로 돌아오리라.

 

 

봉곡사 주차장 지풍골부터 천년비손길이 시작되어 한 바퀴 휘둘러 다시 회귀하는 길이다.

 

시작부터 봉곡사에 이르기까지 솔숲이 계속 이어진다.

 

 

우리 소나무가 가진 아픈 상흔. 여기 소나무는 거의 이렇게 상처를 입었다. 그럼에도 꿋꿋하게 어떻게 이렇게 튼실하게 자랐는지. 그런 면에서 과연 소나무는 우리 민족을 대변하는 나무라 해도 손색이 없다.

 

사진이 마음에 드시나요. 잘 나왔는디~ 

 

아, 아프다. 너보다 보는 우리가 더 아프다. 꿋꿋하게 견뎌주어 고마우이~

 

육부회 포토제닉상은 여기로 몰아주세요.

 

배경 좋고 분위기 좋네요. 앞으로 육부회의 마스코트가 되어 주세요. 

 

장부장이 떤 사진을 버리기 아까워 요렇게 만들었오.

 

이렇게도 만들고요.

 

소나무 명품로드. 봉곡사의 명품입니다.

 

무작정 앞만 보고 걷기에는 너무나 아까운 길이죠.

 

 

맞습니다. 웃고 떠들고 사진 찍으면서 그렇게 즐겁게 가야죠.

 

이런 괴목을 보면 나무는 죽어서도 일을 한다더니 괴목이 되어 버린 나무는 그 자체가 작품이다.

 

자, 또 슬슬 올라가볼까요.

 

 

하늘 가린 소나무도 담아보고~

 

만공탑 아래. 이쯤에서 광덕산과 봉수산으로 가는 갈림길이 나온다.

 

만공탑. 난 일반적인 사리탑인가 싶어 아래서 사진 한 장만 이렇게 찍었더니 그게 아니었다. 만공스님의 깨우침을 기리기 위한 탑이었으며 '세계일화'라는 한자로 적은 만공스님의 친필이 새겨져 있다. 

 

봉덕사 대웅전과 가람 전경

 

 

대웅전은 옛모습을 많이 간직하고 있다.

 

삼성각이 좀 떨어져 있고

 

요사채는 새로 지은 듯하다.

 

 

봉곡사의 소담스런 장독대 풍경. 장독대가 있는 자리가 명당인 것 같은 데 장맛이 좋을라나~

 

 

여기서부터 스마트폰 사진

 

 

 

정성스럽게 공을 드리는 옆지기

 

 

일행들이 노니는 모습

 

 

어느 사진이 좋은지 비교하기 위해 같은 장면을 스마트폰으로 다시 담아봤다. 카메라 배터리는 예비용으로 챙겼다고 생각했는 데 챙기지 않았는지 없었다. 배터리가 떨어져 스마트폰으로 촬영하기 시작했다.

 

 

2일차 마지막 여정 : 공주 공산성

 

 

흔적 

 

12일의 마지막인 공주의 공산성으로 갔다.

한적한 산사에 머물다 공주 시내로 들어오니 이내 분위기가 상반된다.

공산성은 충청남도 공주시 산성동에 있는 산성으로

백제의 도읍지인 공주를 수호하기 위해 축조하였고,

당시의 중심 산성이며 사적 제12호로 지정된 곳이다.

아울러 백제역사유적지구로 유네스코에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곳이기도 하다.

 

아래 일부 내용은 Daum백과에 소개된 내용을 편집한 것이다.

 

공산성은 성의 둘레가 2.2km, 웅진성 혹은 쌍수산성으로 불린다.

표고 110m의 구릉 위에 석축과 토축으로 계곡을 둘러쌓은 산성이다.

475년 백제 문주왕 때부터 사비로 옮기기 전까지

백제의 정치·경제·문화의 중심지인 공주를 보호하기 위해 축조되었다.

 

축성 시기는 백제 국력이 안정된 동성왕 때 이루어진 것으로 짐작된다.

축조된 이래 여러 차례의 개축을 거쳐 현재에 이르며,

성의 구조는 석축 약 1,810m, 토축 약 390m이다.

상단의 너비는 약 70cm 정도이다.

토축 산성은 돌을 혼합하여 쌓았는데 대개 높이 1m, 바닥너비 8.5m, 윗면너비 3m 정도이다.

성내에는 깊이 2m 정도의 호가 형성되어 있고,

영은사·광복루·쌍수정과 비석 주초석·창고터·연못터 등이 남아 있다.』 

 

금서루를 통과해 성곽길을 따라 왼쪽 공산정으로 올라간다.

공산정에서 바라보니 얼어붙은 금강과 등록문화재 제232호인 금강교

그 옆으로 백제큰다리가 보인다. 오른쪽으로는 공주대교가 금강을 잇고 있는 모습이다.

금서루에서 공산정만 올라도 공주 시내 일원과 길게 뻗친 금강이 시원스럽다.

물론 금강은 얼어있다. 오히려 얼어붙은 금강이 공산정의 겨울을 잘 대변하는 듯하다.

 

공산정에서 공북루로 내려가니 얼어붙은 금강이 더 가까이 있다.

엄청난 굵기의 느티나무가 고목이 되어 공산정의 역사를 대신하고, 금강 곁에 서 있다.

공북루 앞 공터엔 문화재 발굴 작업이 한창이다.

나무에 잎 다 떨어진 메마른 겨울이라

어느 누각에서든 공산성과 공주 일원이 한 눈에 들어온다.

오히려 공산성의 겨울 풍경이 시원해서 좋다.

 

공북루에서 무심코 성곽 길 오름을 또 따라가자니

일행 중 장부장 내외를 제외하곤 공사가 한창 진행중인 공북루 앞 공터로 샌다.

장부장은 오라고 올라오라고 손짓을 하는 데

나도 괜히 올라가기 싫어진다.

 

옆으로 빠진 일행들과 동참해 나가니 곧 활쏘기 체험장이 나온다.

거기서 우리가 처음 들어왔던 금서루는 금방이다.

여행길이 다소 피로했던 모양이다.

 

이로써 짧은 12일의 여정이 마감되는 순간이다.

짧은 일정에 가야할 코스가 빡빡해 쉬운 여정이 아니었지만, 모두 잘 움직여 주었다.

코스는 우리 아이들 현장체험학습 일정보다 더 빡셌다.

나이 들어 편안한 여행을 해야 함에 어찌된 일인지 일정은 더 빡빡하게 잡는다.

마음먹고 가기 쉽지 않아 여행지 부근의 또 다른 여행지를 놓치지 않으려다 보니 더 그렇다.

 

함께 계속 다니다 보니 여행의 성숙도가 자꾸 상향되는 모양이다.

모두 함께해서 즐거웠고 수고들 많았습니다.

 

 

 

 

공산성은 금강을 끼고 있으며 공주 시내에 있다. 공산성 탐방에 앞서 맞은편 국수 집에서 국수와 만두로 점심을 해결하고 공산성을 올랐다.

 

공산성 관문인 금서루로 올라간다. 오늘도 많이 걸었는 데 모두 씩씩하게 잘 간다.

 

이 방향에서의 관문은 금서루다.

 

깃발도 동서남북에 따라 내용이 다르다.

 

석문의 천장에 그려진 그림의 의미는 뭘까요.

 

비교적 보수와 정비가 잘 된 성곽길이다.

 

 

등록문화재 제232호인 금강교와 왼쪽 백제큰다리. 금강이 얼어 붙어 있습니다.

 

금서루에서 금강이 바로 보이는 성곽을 따라가면 가장 먼저 나오는 누각이 있지요. 공산정입니다.

 

공산정에서 바라본 금서루와 주변

 

역시 공산정에서 바라본 금강교와 백제큰다리

 

 

 

공산정에서 공북루로 내려간다.

 

 

공북루 앞 거목이 금강을 수호하고 있다.

 

공북루에서 공산정과 금강교, 금강을 바라보며 대장정의 막을 내린다. 모두들 수고 많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