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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B산악동아리

영동 월류봉 산행(제 10회 정기산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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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류봉 월류정엔 땡볕이 내려 앉고 그 땡볕길엔 우리가 있었다.

 

 

■ 언제 : 2014. 6. 28.(토)

■ 어디로 : 월류봉(충북 영동군 황간면 원촌리)

■ 누구랑 : 아부지 1, 고모 1, 아들 1, 딸내미 2

■ 산행 경로 : 에넥스 - 0.8Km - 월류봉 - 0.1km - 1봉 - 0.2km - 2봉 - 0.23km - 3봉 - 0.3km -  4봉 - 0.32km - 5봉 - 1.55km - 우천리 - 0.5km - 추풍령사슴관광농원 간판 - 대략 2.5km - 보를 건너기까지 - 대략 4km - 강둑길로 월류봉 주차장까지- 대략 1.8km - 에넥스

총 걸은 거리 : 12.3km

총 걸은 시간 : 4시간 35분 쯤 소요

■ 산행안내도 

 

 

 

사진으로 걷는 영동 한천팔경 중 그 으뜸!!! 월류봉 산행기

- 작은 투자 큰 만족 -

 

 

월류봉 개요

<펌>영동군청

우뚝솟은 월류봉은 달님도 쉬어간다고 할 만큼 경관이 수려한데, 월류봉에 달이 걸려있는 정취는 그대로 한 폭의 수채화다. 월류봉 밑 일대의 절묘한 산수를 가리켜 한천팔경이라 하며 우암 송시열 선생이 이곳에 한천정사를 지어 강학을 하였던 것으로 유명하다.

 

황간면 원촌리에 깎아 세운 듯한 월류봉의 여덟 경승지를 한천팔경이라 부르는데 우암 송시열(宋時烈 1607~1689) 선생이 머물던 한천정사에서 이름을 땄다. 산 아래로 금강 상류의 한 줄기인 초강천이 흐르고 깨끗한 백사장, 강변에 비친 달빛 또한 아름다워 양산팔경에 비할 만하다.

 

 

흔적

 

이번 산행길엔 참여 식구가 많지 않다총무한테 8명 쯤 된다고 들었는데 당일 막상 와 보니 3명이나 빠졌다. 물론 급박한 사정이 있어 빠졌지만 오늘 함께한 이들은 나까지 포함하여 딱 5명이다. 그러고보니 내 차 한 대로 안성맞춤인 숫자다. 1명이 더 왔더라면 애매하게 차 2대가 움직여야 할 판이다. 함께 참가하지 못해 다소 아쉬웠지만, 5명이 한 식구가 되어 예정된 길을 간다. 길을 나서자니 분위기가 오붓한지 모두들 한 가족 같단다. 그도 그럴 듯한 것이 누가 봐도 아부지 1명에 고모 1, 아들내미 1명에 딸내미 2명이 마치 한 가족과 다름 없어 보인다.

 

월류봉까지는 추풍령에서 쉬어가도 1시간 30분이면 충분한 길이다. 황간 IC로 빠지니 금방이다. 먼저 다녀간 선답자의 포스팅 내용을 정리해보니 월류봉은 6개의 봉우리를 가졌어도 크게 힘들지 않고 산행하고도 시간이 넉넉하게 남을 것 같았다. 그래서 월류봉 산행을 하고 남는 시간에 인근에 있는 노근리 사건 현장을 탐방하고 난계국악박물관에 들러 세계 최대의 북인 천고를 만나고 박물관 바로 옆에 있는 난계사를 들러 우리 선조인 박연선생을 알현하는 알뜰한 계획을 세웠다.

 

월류봉은 우암 송시열 선생이 30대 초에 들어와 한천정사를 짓고 10여 년을 강학했던 곳이다. 선생이 지내던 정사는 초강천이 유유히 흐르는 월류봉 바로 앞에 있다. 우암 선생이 그 시절에 이곳을 알고 자리 잡았으니 그 깊은 안목에 찬사를 보내지 않을 수 없다. 이년 전 5월 초에 충북 괴산 명산 도명산을 찾았을 때도 화양구곡의 도처에 우암선생의 자취가 없는 곳이 없더니 월류봉이 있는 원촌리에도 한천팔경을 비롯한 선생의 흔적이 요소마다 깊게 스며있다. 선생의 산수를 사랑하는 마음은 비단 여기뿐만이 아니리라. 산천을 벗 삼아 다닌 곳곳에 선생의 흔적이 남아 후학으로 하여금 귀감이 되고 있다.

 

달이 머물다 간 봉우리가 월류봉이다. 오늘 그곳을 가기 위해 직접 와서 보니 과연 달이 가다가 그냥 갈 것 같지가 않다. 도저히 자의로는 갈 수가 없을 것 같다. 우암 선생은 얼마나 다니셨기에 이런 기막힌 장소를 찾아내셨는지 그 분의 행적이 실로 신비로울 뿐이다. 월류봉엔 언젠가부터 월류정이란 정자가 세워졌다. 월류1봉의 암석 줄기를 따라 내려와 초강천 바로 곁에 우뚝 선 암석 위에 자리를 잡고 월류정이 서 있다. 지금은 월류정이 월류봉의 대세를 이루고 있을 정도로 잘 어울리고 유명세를 톡톡히 치른다. 화룡점정이라면 이와 같은 경우를 두고 하는 말일 것이다.

 

우리는 황간면 원촌리에 있는 월류봉 주차장으로 먼저 왔다. 주차장에서 보면 월류봉 표지석을 비롯하여 월류봉의 전모가 드러나며 한천팔경이 주변에 모두 모여 있다. 우리는 한동안 넋을 잃고 월류봉의 분위기에 도취되어 이리저리 사진을 찍고 셀카도 찍으면서 발길을 움직일 줄 몰랐다. 그렇게 한동안 주차장에서 시간을 보내다가 주차장 매점에 있는 아주머니한테 내가 파악한 산행 경로를 점검할 겸 우려했던 부분을 소상하게 물었다. 우리는 원점회귀를 해야 하니 아주머니는 가장 무난한 코스가 에넥스를 기점으로 1봉에서 5봉을 왕복하는 것이라고 한다. 난 이미 왕복을 하지 않고 5봉에서 폐광과 산신각이 있는 곳으로 내려오는 코스를 파악해 두었는데 그 길은 분명치 않고 어려울 거라면서 차라리 왕복하지 않으려면 길이 멀더라도 사슴농장으로 내려가 보를 건너 월류봉 주차장으로 온 후에 에넥스 공장으로 가는 것이 낫다고 권한다. 아주머니의 설명을 들으니 처음 그림을 그린대로 맞지 않는다. 그래서 우리는 일단 에넥스로 가서 월류 5봉까지 가보고 결정하기로 하고 에넥스 공장 주차장으로 이동했다.

 

에넥스 공장 주차장에 주차를 하고 들머리를 찾아 본격적인 산행 길에 올랐다. 월류봉 등산로 표식이 눈에 잘 띄게 표식이 되어 있어 표식을 보고 길머리를 잡아가는데 주차장 바로 위로 올라가면 금방인 것을 주차장에 올라오면서 봐 두었던 등산로 표시를 미리 봐두었던 곳으로 따라 가는 바람에 예기치 않게 시작부터 빙 둘러갔다. , 먼 길 돌아간 것은 아니기에 본격적인 산행 전에 잠시 워밍업을 했다고 생각하면 되겠지만, 그래도 뒤통수 한 방 맞은 기분이다. 월류봉 들머리에 다다르니 월류봉까지 800m라 적혀 있다. 800m 정도야 먼 거리가 아니니 아무리 된비알이 눈앞에 나타난다고 해도 크게 걱정은 안 된다. 월류봉에서 1봉은 10m 밖에 안 되니 월류봉만 오르면 5봉까지는 어려울 것이 없고 오르락내리락 하며 능선길을 따라 조망을 즐기고 가면 될 일이다.

 

비록 800m 밖에 안 된다고 하지만 첫 봉우리를 오르기 까지는 나름대로 힘겨웠다. 비지땀을 흘리며 첫 봉우리에 올랐더니 낮지만 조망이 좋아 건너편의 백화산이 보이고 바로 앞에는 초강천이 물돌이 하며 만든 멋진 한반도 지형이 나타났다. 영월에 있는 선암마을의 한반도 지형에는 미치지 않지만 그런대로 우리나라 지형의 모습이 잘 드러나 있다. 2봉에서 5봉으로 가면서 한반도 지형은 그 모습이 자꾸 흐트러진다. 그러니까 한반도 지형은 월류봉과 1봉에서 가장 제대로 된 모습을 본다.

 

1봉에서 5봉으로 가는 길은 봉우리 마다 거리가 고작 200~300m에 불과하다. 거리도 짧고 높낮이도 굴곡이 그리 심하지 않다. 밖에서 바라보는 월류봉의 모습과는 많이 다르다. 월류봉 원촌리 주차장에서 봉우리 전체를 볼 때는 봉우리마다 오르내릴 때 나름대로 힘이 좀 들겠구나란 생각이 들던데 막상 1봉을 오르고 나니 나머지 봉우리는 여유가 많았다. 문제는 5봉에서 어떻게 할 것인가가 과제로 남았는데 실상은 5봉에서 폐광을 거쳐 월류봉 방향으로 내려가 강의 얕은 곳을 찾아 건너려고 했었다. 그러면 월류정에서 잠시나마 쉬어 갈 수 있어 산객의 낭만은 더 없이 풍류에 젖을 수 있었을 텐데 못내 아쉬움이 컸다. 그러나 월류봉 원촌리 주차장 매점을 운영하는 아주머니께 물어 보았을 땐 그 길은 분명치 않고 험하다 하니 조만간 새댁이 댈 처자를 데리고 혹시 모를 위험한 코스로 갈 수는 없는 노릇이다. 멀리 돌아가더라도 우촌리 소내마을로 내려가는 것이 여러모로 좋을 것 같았다.

 

당초 계획한대로 5봉에서 월류봉으로 길을 찾아 바로 내려갔으면 월류봉 산행은 그야말로 싱겁기 짝이 없을 뻔했다. 월류정에서 죽치고 않아 풍류를 즐기거나 한천8경을 비롯한 주변 관광지와 유적지를 돌아보지 않는다면 뭔가 40% 쯤 부족한 느낌이 들었을 것이다. 해서 우리는 안전한 길을 택할 겸 조금 더 걷기 위해 먼 길을 돌아가기로 했다. 소내마을로 해서 사슴농장을 지나 초강천 낮은 보를 건너가는 땡볕 길로 접어드니 회귀하는 길도 멀고 내리쬐는 햇살에 도로변을 따라 걷는 것이 쉽지만은 않았다. 일행이 없었더라면 너무나 지루했을 길인데 그래도 함께하니 모두 따가운 햇살을 맞으며 걷는데도 무척이나 즐거워 한다. 모두 성격이 모나지 않고 주어진 환경에 긍정적이고 능동적으로 대처하니 오히려 고맙기까지 하다.

 

보를 찾아 눈여겨보며 가는데 웬만큼 내려왔는데도 건너야할 보가 보이지 않는다. 이럴 땐 지역 주민한테 길을 물어보는 것이 제일 좋은데 주민이라고는 눈을 씻고 봐도 인적은 간 곳없다. 그런데 저 앞에 보이는 강가에서 투망을 던지고 천렵을 하는 사람이 눈에 띈다. 길을 물어 볼 사람은 저 사람들 밖에 없다. 이쯤 왔으면 무작정 도로를 따라 내려갈 일이 아닌 것 같다. 강가로 가서 천렵을 하는 사람에게 물어보니 강을 따라 다시 올라가 보를 건너야 된단다. 그제야 도로를 따라 내려오느라 보지 못했던 보 같지 않아 보이는 보가 저 위로 보인다. 보가 있는 곳으로 가기 위해 강가를 벗어나 길을 따라 갔어야 하는데 멀지 않은 곳에 있기에 강변의 잡풀을 헤집고 그냥 내쳐갔다. 그런데 눈에 보일 때는 대수롭잖게 보이는 잡풀더미더만 막상 헤집고 가자니 눈에 보이는 게 다가 아니다. 수풀이 우거지고 길도 쉽게 내어 주지 않는다. 인지 길을 찾아 나갈 수도 없고 멀지 않은 곳에 있기에 그냥 없는 길 만들어 도선생 앞세워 전진해 갔다.

 

나지막한 보를 건너기 위해 양말을 벗고 바지를 무릎 위까지 걷어 올려 초강천에 발을 디밀었다. 햇살은 따가운데 그래도 초강천을 흐르는 물은 차가워 한 낮에 더위 먹은 몸뚱아리를 잠시나마 씻어 내린다. 마음 같아선 보에서 떨어지는 물살에 몸을 맡겨 풍덩 뛰어 들고 싶더만, 낫살깨나 먹고 체면은 차려야 할 것 같아 참았다. 보를 건너 강둑길을 따라 올라가자니 강둑길이 월류봉 주차장까지 이어질지 도중에 끊어질지 종잡을 수가 없다. 지금 상태로는 달구어질 대로 달구어진 삭막한 도로를 따라 가기는 더 이상 싫은데 어떻게 해야 할지 망설여지는 부분이다.

 

강둑길이 계속 이어질 것 같은 기대감에 길이 끊어지면 어쩌나 하는 우려도 없지 않았지만, 우리는 강을 거슬러 계속 올라갔다. 간간이 길이 끊어질 것 같은 곳이 여러 번 있었지만, 이제 되돌아가기도 쉽지 않아 우리 스스로를 믿고 계속 나아갔다. 계속가다 보니 우려는 잠시고 햇빛마저 차단된 숲길이 나오면서 걷기에는 너무나 좋은 휠링로드가 펼쳐진다. 그야말로 개척되지 않은 아직 사람의 손때가 그리 많이 묻지 않은 자연이 숨겨 놓은 길을 우리가 가고 있다. 우려했던 마음은 어디론가 가버리고 참으로 탁월한 선택을 했다고 모두들 좋아서 어쩔 줄 모른다. 지금쯤 땡볕이 따가운 도로를 걷고 있다고 생각하면 실로 끔찍하기 짝이 없을 것이다.

 

무사히 먼 길 돌아 월류봉 주차장으로 돌아왔다. 짧은 길을 두 배 이상 시간을 투자해 걸었다. 산행 시간이 짧아 어쩌면 잘했는지도 모른다. 언제 다시 영동에 와서 월류봉 5봉을 넘어 우촌리 소내마을을 걷고 초강천의 강둑길을 따라 원촌리로 와 보겠는가? 우암선생도 이곳에서 10여 년 강학하고 사셨으니 이 길을 분명 걸었으리라. 오늘 우리는 그 옛날 우암선생의 발자취를 따라 걸었는지도 모른다. 우암선생이 생각나니 주차장 바로 옆에 있는 한천정사를 방문하지 않을 수 없다. 멀리 있는 것도 아니고 주차장 바로 곁에 있다. 정사에 들러 우암선생의 향기를 맡으며 이젠 도리 없이 땡볕 길이 따가운 대략 2km에 달하는 에넥스 공장으로 차량을 회수하러 가야 한다. 원점으로 회귀하면 노근리 사건 현장과 난계국악박물관에 있는 천고도 만나야 하고 난계사에 들러 박연선생도 만나야 한다. 그러자니 시간이 그리 녹록치 않다. 한천8경 모두 섭렵하지 못했지만, 고만고만하니 다음 여정을 향해 미련을 버리고 땡볕 길을 따라 에넥스 공장으로 간다.

 

에넥스에서 난계국악박물관으로 가는 얼마 되지 않는 길에 노근리 사건 현장이 도로변에 있다. 차를 주차하고 지금도 철마가 달리는 아치형 쌍굴다리에 하얀 페인트로 , , 로 표시된 총탄의 흔적을 본다.(그 많은 표식 중에서 □는 하나 밖에 못봤다.) ‘, , 로 표시된 의미는 잘 모르겠으나 애 궂은 주민의 학살현장을 그대로 보는 것 같아 가슴이 쓰리고 아리다. 노근리 참극의 현장은 현재 대한민국 근대 문화유산으로 등록해 사건의 진상을 규명하기 위하여 보존하고 있다. 사변 때 후퇴하던 미군이 영동읍 주곡리, 임계리 주민과 피난민들을 굴다리 안에 모아 놓고 비행기 폭격과 무차별적인 기총 소사로 무고한 양민을 집단 학살한 현장이다. 우리는 여기서 민족의 쓰라린 아픔을 잠시나마 일깨우고 간다.

 

노근리에서 난계사와 난계사 바로 옆에 있는 난계국악박물관까지는 거리가 꽤 된다. 노근리 평화공원에서 난계사까지 근 21km에 달하며 차량으로 25분 정도 걸린다. 가는 길이면 좋으련만 스마트폰 T-map은 난계사까지 갔다가 다시 왔던 길로 되돌아 황간 IC로 빠져 나가는 길을 안내한다. 어쩌겠나. 길을 모르니 시키는 대로 가야지. , 내비게이션을 사용하거나 내비가 고장나 스마트폰 T-map에 의지하거나 간에 여하튼 기계가 시키는 대로 길을 간다. 엉뚱하게 가리켜도 그대로 간다. 그렇게 가다보면 목적지에 와 있다.

 

난계국악박물관은 도로변에 있고 그 옆에는 이석제 장인이 만든 세계 최대 규모의 북인 천고가 천막 같은 곳에 보관된 채 전시되어 있다. 20097월부터 20108월까지 14개월의 제작 기간을 거쳐 201176일 영국기네스월드레코드(GWR)세계 최대 북으로 등재가 되었다. 여간 자랑스러운 일이 아니다. 이 북을 제작하기 위하여 사용된 소나무 원목이 24,000(15톤 트럭 4대 분량)에 이르고 가죽을 사용하기 위해 소 40여 마리 분이 사용되었다고 한다. 실로 방대한 작업이며 이석제 장인의 피땀 어린 산고로 탄생된 명실공히 세계 최고의 북이다. 저 북이 울리면 노근리의 쌍굴다리 위로 기차가 지나갈 때마다 깜짝 놀랄 구천을 떠도는 영혼이 위로를 받을 수 있을 것 같고 남북통일도 절로 이루어 질 것 같다.

 

월류봉 산행을 하기 전까지 나는 우리나라 천고란 북이 세계 최고의 북으로 기네스에 등재된 사실조차 몰랐다. 학교 도서관에서 빌려 빈 시간을 이용해 틈틈이 읽고 있는 낙장불입 시인 이원규의 멀리 나는 새는 집이 따로 없다.’란 책을 읽다가 영동 난계국악박물관에 천고란 북이 있는 것을 알았고, 이원규 시인이 이석제 장인과 만나 나눈 이런저런 글을 읽으며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다. 마침 영동의 한천8경으로 그 이름도 유명한 월류봉을 찾을 기회가 생겨 그 틈을 놓치지 않고 오늘 세계 최고의 북을 만난다.

 

천고를 만났으니 이제 이번 방문길의 마지막인 난계사에 들러 박연선생을 알현해야 한다. 나랑은 본관이 같으니 집안의 먼 선조를 뵙는 것이 된다. 난계사는 난계국악박물관 바로 옆에 있으니 가까이서 천고와 우리나라 3대 악성의 한 분인 난계 박연선생을 만날 수 있었다. 고스톱으로 말하자면 12피인 셈이다. 먼저 들어가자마자 대하는 난계 박연선생에서 읍을 드린 후 난계사로 들어갔다. 들어가는 길 주변엔 잔디와 수목이 깨끗하게 잘 관리되어 있고 하얗게 핀 흐드러진 개망초도 담장 밑에 떼를 지어 자라고 있어 흔하지만 보기는 좋다. 수목이 자라고 있는 한 쪽엔 가지마다 노란 꽃이 촘촘히 피어 있기에 무엇인가 궁금해 가까이 갔더니 모감주나무다. 모감주나무에 노란 꽃이 활짝 피어 난계선생의 음악적 분위기를 더욱 고조시킨다.

 

난계선생의 위패와 영정이 모셔진 난계사에서 예를 올리고 깔끔하게 다듬어 놓은 뜰에서 잠시 쉬어 가며 긴 여정의 피로를 잠시나마 내려놓는다. 오늘은 산도 가고 물을 건너 역사와 문화가 있는 곳을 두루 방문했다. 바쁜 듯 크게 바쁘지 않았으며 힘이 든 듯 크게 힘들지 않고 다녔다. 우암선생이 10년 세월을 머물다 간 달이 머물다 갈 정도의 빼어난 풍경을 자랑하는 월류봉을 비롯해 노근리 사건 현장과 세계 최고의 북 천고를 봤으며 고구려의 왕산악, 신라의 우륵과 더불어 3대 악성으로 추앙되고 있는 난계선생도 뵈었다. 이렇게 다니다보니 긴 여름의 하루가 짧기만 하다. 회원이 많이 참가하지 못해 다소 아쉬웠지만 참가한 우리는 그래도 가족 같은 분위기로 알찬 하루를 보냈다. 모두 시종일관 즐거운 마음으로 함께 해주어 고맙게 생각하며 이 글을 마감한다.

 

 

 

 

황간면 원촌리 한천팔경이 있는 월류봉 주차장에 당도하여

먼저 월류봉과 월류정을 조망한 후 등산 기점인 에넥스 공장으로 간다.

 

황간면 원촌리에 있는 월류봉에 먼저 당도하여 월류정을 중심으로 월류봉 6개의 봉우리 전모를 관망하고 사진 촬영을 한 후 에넥스 공장으로 이동하여 본격적인 월류봉 산행을 한다.

 

표지석에 간략하게 설명된 내용도 사진 정리할 때 도움이 되니 선명하게 촬영을 해 둔다. 

 

초강천과 월류봉 아래 자리 잡은 월류정이 보이는 그대로 화룡점정일세. 

 

황량한 바위 주변에 우거진 녹음이 월류정을 살짝 감싸고 월류정 아래 유유히 흐르는 초강천의 푸른 물결은 더 없이 평화로운 분위기를 자아낸다. 과연 우암 선생이 10여 년 머물며 강학을 하며 지낼만 하다. 

 

그냥 갈 수 있나요. 직찍~~~ 많이 참석하지 못해 아쉬웠지만, 함께한 우리는 즐겁기만 합니다.

 

가족 사진 같다네요.^^^ 고모랑 아들내미랑 딸내미 2명~~~

 

혹시 갈 때 이쪽으로 오지 못할 수도 있으니 사진은 충분하게 찍어 두자. 달만 머물다 가는 것이 아니라 땡볕에 우리도 머물다 가지요.

 

 

 

자, 이제 에넥스 공장을 기점으로 출발해 볼까요.

 

월류봉 주차장에서 월류봉 분위기를 먼저 감지한 후 산행을 하기 위해 에넥스 공장으로 갔다. 여기는 에넥스 공장 주차장이다. 주차장에서 에넥스 공장까지는 도보로 대략 20분 거리에 있다. 주차장에서 월류정이 있는 초강천 얕은 곳을 찾아 건너 5봉쪽을 겨냥하여 가도 되었지만, 가는 길이 완전하게 숙지가 되지 않아 안전한 길로 가기 위해 에넥스로 간다.

 

월류봉 주차장에서 에넥스 공장 주차창으로 들어가는 길이다. 주차하고 들어오면서 월류봉 등산로 표지가 이쪽에 있어 다시 걸어 내려온다.

 

등산로 표식을 보고 마을길을 돌아 표식이 시키는대로 간다.

 

등산로 표식이 군데군데 친절하게 잘 표시되어 있다.

 

아니 그런데 이게 웬일^^^ 여기는 주차했던 바로 위가 아닌가. 그 참 씰데없이 한 바퀴 빙 돌았구만... 저 앞에 가는 다른 팀은 우리보다 늦게 왔는데 이쪽으로 바로 와 우리보다 앞서간다. 뭔가 손해본 느낌이 드는 것 같으나 산행하기 전에 워밍업했다고 생각하지 뭐!!!

 

하얀 개망초가 한창인 들녘너머 우리가 가야할 월류봉이 보인다.

 

이제 월류봉 산행 본격적인 들머리에 접어든다. 월류봉은 여기서 1봉까지만 오르면 나머지 봉은 봉과 봉사이가 200~300m에 불과해 순조로운 산행을 이어갈 수 있다. 그러나 여기서 1봉까지는 시작부터 된비알이라 힘이 좀 든다. 그러나 거리가 그리 멀지 않으니 힘들면 쉬엄쉬엄 가면 된다.

 

당초 계획은 5봉에서 폐광이 있는 곳으로 내려와 월류정에서 정아쌤도 있겠다 풍월도 읊고 노래도 한 가락 하고 갈려고 했는데 월류봉 주차장 매점 아지매가 내려오는 길이 불분명하고 길이 좋지 않으니 다시 5봉에서 왔던 길로 되돌아 가거나 사슴 농장으로 내려가 초강천 보를 건너는 것이 좋다고 한다. 차량을 에넥스에 주차했으니 시간을 줄이자면 왔던길로 되돌아 가는 것이 가장 좋고, 5봉에서 월류정 쪽으로 내려가는 길에 확신이 있으면 그리로 내려가는 것도 좋다. 우리는 우짜던지 안전제일주의를 지향하는지라 5봉에서 우천리로 하산해 땡볕 도로를 걸으며 먼 길 돌아왔다.

 

자, 이제 슬슬 올라갑니다. 가는 길에 여름야생화 구경을 좀 했으면 좋으련만, 개망초만 지겹도록 보고 월류봉에선 딱히 보여 주는 애가 없다.

 

올라가면서 보니 에넥스 공장의 지붕이 눈에 확 들어온다. 에넥스 공장은 월류봉이 홍보대사 역할을 톡톡이 한다.

 

월류봉에서 바라본 한반도 지형. 한반도 지형의 모습을 가장 잘 볼 수 있는 곳이다. 초강천이 한반도 지형의 남쪽 지방을 물돌이 하며 유유히 흐른다.  

 

한반도 지형을 조금 더 당겨본다. 그러니까 우리는 5봉을 지나 우천리로 하산해 저 아래 있는 보를 건너 한반도 지형의 서해 지방을 따라 쭈욱 걸어 월류봉 주창으로 왔구만. 우천리에서 사슴농장을 지나 강둑을 건너는 길은 땡볕이라 모두 강렬한 햇빛에 타기도 많이 탔지만, 한반도 지형 서해 지방으로 들어서면 숲이 우거져 햇빛도 차단되고 강을 따라 걸으니 나름대로 운치도 있고 걷기가 아주 좋았다.

 

아들과 딸내미 2명. 오늘 고모 1명이랑 우리는 5인 가족이 되었다. 월류봉과 월류1봉은 10m 거리에 있다. 그래서 월류봉과 1봉은 같이 여겨도 틀렸다고 하기 어렵다.

 

1봉에서 2봉 가는 길. 1봉까지 왔으면 고생 끝 행복 시작이다. 탑재할 사진을 골랐는데도 양이 많아 그대로 올리기 어려워 사진 장 당 500kb로 줄여 올렸더니 크기가 작아 볼 품이 없다. 장 당 1Mb로 올렸더라면 좀 크게 봤을텐데~~~

 

한천팔경 중의 한 곳 기룡대

 

2봉에서 한반도 지형을 바라보니 1봉에서 본 것 보다 원형이 좀 못하다.

 

2봉에 있는 산불감시초소

 

2봉 정면에서 바라본 한반도 지형

 

1봉 - 2봉 - 3봉은 거리가 200여 m에 불과하다. 나머지 4~5봉도 크게 다르지 않다.

 

이제부턴 선화공주라 부를께??? 자칭 저질 체력이라고~~~ 원래 공주는 이쁘고 나약한 법이거늘 괜찮다. 힘들면 그렇게 쉬어가면 되지~~~

나 봐라. 늘 산에 다녀도 너랑 비슷하잖아.

 

힘들어 보이지만 짧다. 이 사진은 암석을 관찰하기 위해 찍었다. 암반이 붉은 색상을 주로 띄는 것으로 보아 철분이 많이 함유되어 있는 바위인 것 같다. 그렇다면 이 길을 걸을 때는 낙뢰를 조심해야 한다.

 

산 좋고 물 좋은 곳에 있으니 과연 이 마을은 풍수적으로 길지에 있다고 봐야 하지 않을까? 하기야 우암선생께서 웬만했으면 여기 눌러 앉아 10년이라는 짧지 않은 세월을 강학 하셨겠나? 멋진 마을이다.

 

월류3봉이다.

 

 

4봉으로 가는 길을 바라보며

 

거의 수직에 가까운 단애. 지나온 2봉을 바라보면...

 

 

월류4봉까지 왔다.

 

정아쌤은 오랜만에 참가했는데도 생생하다. 학부 시절에 산에 좀 다녔다고 하더니 역시 뭔가 달라도 다르네. 올 해 시집갈 만반의 준비가 되어 있는 생기발랄한 처자다. 누가 데불고 가는지 복뎅일 데리고 간다.

 

오늘 고모가 되어 버린 박쌤. 나이가 어려 보이더만 웬걸 봄가을을 많이도 보냈네.

 

잠시 쉬어갈까나요.

 

느릿느릿 쉬엄쉬엄 와도 벌써 5봉까지 와버렸네.

 

 

 

 

5봉에서 점심이나 먹고 더 쉬었다 가자.

 

그놈 참 쉬어 가기 딱 좋네. 생긴 게 긴 의자처럼 생겨 좀 괴롭겠다.

 

그림 좋다.

 

5봉에서 회귀점까지 가자면 판단을 잘 해야 한다. 사슴농원이나 우천리로 내려가 월류봉 주차장을 경유하여 에넥스 공장까지 가려면 땡볕에 먼 길을 가야한다. 우리는 우천리로 내려간다.

 

꽃은 눈을 씻고 봐도 아래쪽에선 개망초가 대세고 우천리로 내려오니 겨우 큰각시수염이 눈에 띈다. 여름 산행길에 흔해 빠졌지만, 워낙 본 애들이 없어 반가움에 카메라를 들이대 본다.

 

나무에 열매가 맺혀 있어 사진을 찍으려니 바람에 너무 많이 흔들린다. 도쌤이 잡고 있어도 흔들린다. 바람이 멎을 때까지 마냥 기다릴 수 없어 그냥 찍었더니 역시 그렇다. 이름이나 알자고 찍었는데 때죽나무인지 잘 모르겠다.

 

우천리 도로변으로 나오니 노근리 평화공원이 여기서 2.2km 밖에 안된다. 차량으로 회귀하면 여기까지 왔으니 반드시 거쳐야 할 곳이다.

 

추풍령사슴관광농원 가는 도로를 따라 간다. 땡볕이 아주 죽여 준다. 다리 건너 저 앞에 보이는 포도집하장이 보이는 곳에서

 

잠시 쉬어가며 도대체 어디로 얼마만큼 가야 하는지 Tmap으로 검색을 하고 있다.

 

우천리 소내마을의 유래가 담긴 비석도 담아 두고 마을 역사를 한번 살펴보자.

 

행정구역은 연화동인 모양이다.

 

처음에 언뜻 봤을 때는 붉은 토끼풀인 줄 알았다. 그런데 잎 모양이 토끼풀 모양이 아니고 갈퀴나물 모양이다. 보통 갈퀴나물 꽃은 저래 피는 걸 본 적이 없는데 뭐지 싶어 검색을 해 보니 '왕관갈퀴나물'이다. 외래종이라네요.

 

길을 잘못들어 강을 건널 자리를 찾아 강가로 걷다가 잡풀이 무성하여 길을 쉽게 내 주지 않는다. 선화공주는 영화 '킬빌'인가에 나오는 여주인공처럼 등에 칼을 차고 복수를 하러 가기 위해 황야를 떠도는 킬러 같다. 멋있네~~~^^^

 

길을 탐색하느라 애를 먹네. 그래도 거기만 지나면 바로 보가 나오네. 저 보를 찾아 마을 길로 들어섰어야 하는데 도로를 마냥 따라가다 강길로 접어들어 잡풀을 헤치며 오느라 애 먹었다.

 

보를 건너기 위해 신발 벗고 양말 벗고 차가운 물길을 지나왔더니 그래도 발은 시원하고 피로가 달아나는 것이 훨씬 좋네.

 

추풍령사슴관광농원 혹은 우천리로 넘어 왔으면 이 보를 건너야 월류봉 주차장으로 갈 수 있다.

 

건너온 초강천 보를 다시 한번 담아보고...

 

월류봉이 보이는 방향을 보고 강둑을 따라 땡볕길을 걸어 간다.

 

초강천의 물길을 거슬러 좌측 강길을 따라 간다.

 

우천리에서 사슴농장을 지나 보를 건너 강둑을 따라 땡볕을 맞으며 거슬러 올라간다.

 

포도 경작으로 유명한 곳이라 곳곳에 포도밭이 있다. 포도 송이를 감싼 봉지를 보니 농사 짓는다는 것이 예사로운 일이 아님이 느껴진다. 단지 봉지를 감싼 것 뿐임에도 엄두가 나지 않는다. 과연 농사가 쉬운 일이 아니다. 귀농, 귀천 등 함부로 덤벼들 일이 아니구만...

 

돌문 사이을 지나고 나니 이제부턴 숲길이 이어진다. 강가의 숲길을 따라 걸으니 땡볕길을 걷던 것과는 천양지차다. 너무 좋다. 

 

두 사람은 아주 여유있게 걸어오고 있네요. 땡볕길에 짜증이 날만도 한데 너무 좋단다. 이 친구들 뭔가 안다.

 

돌 무더기가 있는 강을 보니 여유가 있으면 좀 쉬었다 갔으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담아본다.

 

'달이 머무는 집' 아마 캠핑장인가 보다.

 

드디어 지루한 길이 끝나고 월류정과 월류봉 주차장이 보인다.

 

월류정이 있는 곳으로 내려와 사람들이 강을 건너는 저곳으로 건너왔으면 시간이 많이 빨랐을텐데 우리는 안전하게 오느라 너무 많이 돌아왔다.

 

이쪽으로 내려왔으면 눈 앞에 있는 월류정을 올라 갔을텐데 아쉽다.

 

초강천과 월류봉을 끼고 기암 위에 자리잡은 월류정은 말 그대로 화룡점정이다. 선화공주가 먼저 한 컷하고...

 

이쁜이 맑음이도 그냥 갈 수 있나요.

 

알고보니 자연과 잘 어울리는 여인이더만요. 산에도 자주 다니는 자연을 느낄 줄 아는 오늘 고모 역할 담당하느라 애썼오.

 

산기슭을 뒤덮고 있길래 먼발치에서 바라보고 능소화구나라고 생각했는데 꽃을 보니 능소화가 아니다. 알아보니 '미국능소화'다.

 

이제 가야하니 아쉬움에 월류정을 다시 가슴에 담아본다.

 

미국능소화.

 

 

 

월류봉 6봉을 왕복하면 2~3시간 이면 충분한데 우리는 우천리로 해서 먼 길을 돌아왔다. 짧지만 강한 느낌을 주는 월류 6봉이지만 산행길이 짧기 때문에 시간이 많이 남는다. 그러면 주변에 인접한 한천팔경의 나머지와 '노근리주민학살' 현장인 쌍굴다리, 박연의 위패와 영정이 모셔진 난계사 그리고 같은 장소에 있는 난계국립박물관의 세계에서 가장 큰 북인 '천고'를 보러 가는 것도 좋다.  

 

 

주차장 매점에 들어가 더위에 시달린 육신을 1,000원 짜리 아이스크림으로 달래본다. 아이스크림을 거의 안 먹지만, 지난번 5월 정기산행 시 팔공산 동봉에서 먹은 아이스크림 맛이 떠올라 나도 한 입 보탰다. 과연 더위 먹고 피로를 날리는덴 아이스크림만한 것도 없다.

 

한천정사. 우암 송시열 선생이 31세에 들어와 10년간 강학을 한 곳이다.

 

 

정면에는 한천정사라 써 있으며 좌우에는 한천팔경 중 4곳이 각각 나누어 적혀 있다. 

 

월류봉주차장. 사진으로 볼 때 한천정사는 왼쪽 아랫부분 언덕에 있다. 주차장 바로 곁이다.

 

이게 때죽나무인가 보다. 꽃이 펴 있으면 수월하게 구분할텐데...

 

또 다시 도롯가 땡볕 길을 걸어 에넥스 공장으로 가야한다. 차량을 회수하러 가기 위해... 가는 길에 넘어 갔던 월류봉을 마지막으로 되새김 해 본다.

 

 

 

영동 노근리 쌍굴다리, 주민 학살현장을 찾아 가다.

 

월류봉에서 난계국립박물관을 가는 도로변에 있다.

 

피비린내 나는 역사의 현장을 보존하기 위해 대한민국근대문화유산으로 등록해 놓았다.

 

총탄 흔적 △와 ○의 차이는 뭐지???

 

아치형으로 지어진 쌍굴다리 위로 철마는 어김없이 달리고 있건만 역사는 어이하여 제자리를 맴돌기만 하는가?

 

전쟁의 상흔 속에 애궂게 죽어간 주민의 영혼은 어찌하란 말인가? 잘 보존하여 후손들이 역사의 아픔을 알게해야 한다.

 

 

사회가 전공이니 깊이 느끼고 가시지요. 여기는 '□' 표시도 있네.

 

 

 

 

 

 

 

노근리 사건 현장 탐방 후 난계사를 찾아 박연선생님도 만나고

세계 최고의 북 '천고'도 만난다.

 

난계사와 난계국악박물관은 같은 장소에 있다. 한 곳을 찾으면 천고와 난계선생을 모두 알현할 수 있다. 난계사는 에넥스 공장에서 대략 18km 쯤 떨어져 있다. 난계사에 들러 관람 후 다시 노근리 방향으로 되돌아와 다시 황간 IC를 통하여 대구로 간다.

 

난계사로 들어가기 전 좌측 도로변에 난계국악박물관이 있다. 바로 옆에는 흰 천으로 뒤 덮인 영국 기네스북에 등재된 세계에서 최고 큰 북인 천고가 있다. 근데 보사시피 이렇게 귀한 '천고'를 이렇게 허술하게 보관해서 될 일인지 모르겠다. 모르긴 해도 아크릴 유리 같은 곳에 진공 상태로 보관하고 실외가 아닌 실내에 둬야 하지 않을까 생각하는데 언뜻 이해가 안된다. 천고의 재질로 미루어 바깥에 공기가 확 트인 습하지 않은 곳에 보관을 해야 맞는가는 잘 모르겠다. 그러나 그보다 더 우려되는 것은 국보 제1호 숭례문을 불을 질러 확 태워 버리는 사람이 있는데 저 귀한 북을 저렇게 관리하면 또 느닷없이 어떤 날벼락을 맞을지 그것이 걱정된다.

 

난, 천고의 매력을 지금 내가 도서관에서 빌려 놓고 틈틈이 읽고 있는 지리산 시인으로 널리 알려진 낙장불입 이원규 시인의 '멀리나는 새는 집이 따로 없다.'란 책을 읽으며 천고에 대해서 알게 되었다. 공교롭게도 이번 정기산행이 영동에 있는 월류봉이다 보니 내친김에 노근리 사건 현장과 천고가 보고 싶어졌다. 노근리 사건 현장은 월류봉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있었지만, 천고가 있는 난계국악박물관은 약간 떨어져 있었다. 물론 박물관 옆에는 박연선생의 영정이 모셔진 난계사가 바로 붙어 있었다. 천고를 찾으면 박연선생도 알현할 수 있으니 얼마나 귀한 걸음인가?

 

천고는 이석제 장인의 열정으로 14개월의 제작 기간을 통하여 완성하였으며 소나무 원목이 15톤 트럭 4대 분량인 24,000재가 투입 되었고 가죽은 소 40여 마리가 사용되었다고 한다. 과연 한 눈에 봐도 그 크기가 어마어마 하다.

 

낙장불입 이원규 시인은 천고 제작자인 이석제씨를 만나 많은 이야기를 나누고 그 느낌을 피력한 것 같았는데 막상 천고 앞에 서니 두 사람의 이야기가 현실감 있게 다가 온다.

 

 

 

 

 

 

 

 

영동 탐방길의 끝으로 박연선생이 계신 난계사를 찾았다.

 

난계사로 가는 입구에 '천고'가 있다. 이제 천고를 만나봤으니 박연선생을 알현하러 간다. 박연선생은 나랑 본관은 같으나 영동 심천에서 태어나셨다.

 

호가 난계이며 자는 탄부. '난계 박연상'이다.

 

고구려 왕산악, 신라의 우륵과 더불어 3대 악성으로 불리우는 조선 초기의 박연선생과 먼 후손인 피아노를 전공한 음악선생이 과거와 현재를 함께 어우르고 있다. 많이 배우고 느끼고 가기 바랍니다.

 

상 뒤에 있는 박연선생의 설명.

 

자, 이제 선화공주가 영정을 모신 사당안으로 들어갑니다. 뒤따라 귀한 총각도 들어갑니다. 둘 다 수학인데 뭔가 어울리는 것 같기도 한데~~~

내가 3번 째 학교 근무할 때 조직한 산악회에선 젊은 선남선녀 2쌍이 탄생했는데 이들도 모를 일이다. 이놈들 알게 모르게 벌써 시작한 건 아니겠지...

 

선화공주님께서 뭘 그렇게 빼꼼히 보시나요.

 

선화공주가 열어 놓은 문으로 들여다 보니 박연선생의 영정과 위패가 모셔져 있다. 먼저 참배를 하고 사진을 한 장 담았다. 가까이로는 밀양박씨의 선조님이 아니시던가.

 

잠깐이라도 쉬어 볼까요. 

 

800m 지점에 난계선생의 묘소 가는 길이 있다. 이제 갈 길이 멀어 묘소까진 가지 못했다.

 

개망초가 군락으로 하얗게 무리지어 피어 있으니 그도 예쁜 모양이다. 박선생도 예쁘오.

 

셀카 놀이가 재미있나요. 이제 모두 가실까요.

 

한 번 더 찍고~~~

 

노란 꽃이 잔뜩 핀 나무가 있길래 뭔 나무인가 싶어 가까이 가서 봤더니 바람재에서 주이님이 가르쳐 주신 바로 모감주나무다.

 

 

긴 장도의 하루를 검은깨칼국수랑 돼지수육, 막걸리 2병으로 대장정의 막을 내린다. 모두들 수고 많았오이다. 즐거웠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