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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길잡이

[여행] 예술인의 고향, 경남 통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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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예술인의 고향, 경남 통영

 

한국교직원신문 2013-03-25



 

남망산 조각공원에서 본 통영의 야경. 암청색 하늘과 바다를 캔버스 삼아 불을 밝힌 색색의 가로등과 어화의 물그림자는 서양화가 전혁림의 유화작품처럼 강렬한 이미지를 남긴다.



그리움 품은 밤바다 … 그 어둠마저 눈부시더라




예술인의 고향, 경남 통영


봄바람 따라 걷는 ‘동양의 나폴리’
길거리마다 文·色·音의 향연


유치환, 유치진, 김상옥, 김춘수, 박경리, 윤이상, 전혁림 등 경남 통영이 고향인 작가들은 자신의 작품세계에서 통영을 어떻게 묘사했을까. 아이로니컬하게도 그들은 일제강점기에 이순신 장군의 한산대첩이 벌어졌던 항구도시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다. 그들의 원고지와 오선지, 그리고 캔버스에 통영의 바다색깔과 파도소리가 짙게 스며들 수밖에 없었던 까닭이다.

통영이 우리나라 문화사에 큰 발자취를 남긴 작가들의 고향으로 자리매김한 유전적 힘은 어디에서 나왔을까. 통영사람들은 그 뿌리를 삼도수군통제영의 객사인 세병관(洗兵館)에서 찾는다.

세병관은 서울 경회루, 여수 진남관과 더불어 조선시대 3대 목조건물로 두보의 시 ‘만하세병(挽河洗兵)’에서 현판 이름을 따왔다. 은하수를 끌어와 병기를 씻어 다시는 전쟁이 일어나지 않기를 바라는 염원이 훗날 통영을 예술의 고장으로 거듭나게 한 힘의 원천이었다는 것이다.

학교 선후배 사이인 그들은 하루에도 몇 번씩 남망산에 올랐다. 남망산은 여황산과 망일봉의 치맛자락에 안긴 통영 시가지가 두루마리 그림처럼 펼쳐 보이는 곳.

유치환은 이곳에서 무심한 파도를 보고 ‘그리움’ 등 수많은 시를 남겼다. 아홉 살 연하인 윤이상은 파도 소리와 갈매기 소리를 들으며 작곡가의 꿈을 키웠고, 윤이상과 동년배인 전혁림은 푸른 빛깔의 바다로부터 영감을 얻어 코발트 블루색이 인상적인 서양화를 개척했다.

청마 유치환(1908~1967)의 발자취는 통제영 유적지 앞에서 통영중앙동우체국까지 200m 남짓한 청마거리에 선명하게 각인되어 있다. 통영여중 국어교사로 근무하던 청마는 가정교사로 부임한 9살 연하의 정운(시조시인 이영도)에게 연정을 품는다. 하지만 이미 결혼한 청마는 닿지 않는 인연이 안타까워 20년 동안 5000여 통의 연서로 그리움을 달랜다.

 ‘사랑하는 것은 사랑을 받느니보다 행복하나니라
 오늘도 나는 에메랄드빛 하늘이 환히 내다뵈는
 우체국 창문 앞에 와서 너에게 편지를 쓴다’


‘행복’은 정운이 살고 있는 수예점을 바라보며 쓴 연시. 우체국 앞에 세워진 ‘행복’ 시비 맞은 편에는 정운이 운영하던 수예점이 금옥당이라는 보석점으로 간판을 바꿔 단 채 옛 추억을 반추하고 있다. 청마의 생가는 지난 2000년 빛바랜 육필원고 등이 보존된 망일봉 청마문학관으로 옮겨가, 골목안 생가터에는 대리석 표지석만 남아있다.

청마거리와 연결된 초정거리는 1939년 ‘봉선화’로 등단한 천재 시조시인 초정 김상옥(1920~2004)을 기리는 골목. 옷가게가 밀집한 초정거리 중간쯤에는 함석으로 둘러싼 일본식 2층 건물 하나가 눈길을 끈다. 옷가게로 바뀐 초정의 생가로 초정의 부친은 이곳에서 통영갓을 만들던 장인이었다.

청마가 플라토닉한 사랑을 즐겼다면 초정은 지고지순한 사랑의 주인공이었다. 가난한 집에서 태어나 갖은 고생을 했던 초정은 말년에 자신의 병구완을 하던 아내가 세상을 떠나자 식음을 전폐했다. 그리고 엿새 만에 사랑하는 아내의 뒤를 따랐다.

통영 출신 예술가 중 통영을 극찬하지 않은 사람은 없다. 대하소설 ‘토지’의 작가 박경리(1926~2008)도 예외는 아니다. 박경리는 일찍이 장편소설 ‘김약국의 딸들’ 제1장에서 ‘통영은 다도해 부근에 있는 조촐한 어항이다.

부산과 여수 사이를 내왕하는 항로의 중간지점으로서 그 고장의 젊은이들은 ‘조선의 나폴리’라 한다. 그러니만큼 바닷빛은 맑고 푸르다’고 묘사했다. 옛 통영성의 서문(西門)이 있던 서문고개에서 태어나 미륵산 서쪽 자락에 영원한 안식처를 마련한 것도 박경리의 통영사랑 때문이다.

통영이 낳은 20세기의 위대한 현대음악가 중 한 사람으로 꼽히는 윤이상(1917~1995)의 체취는 도천테마파크(윤이상기념공원)에서 만나볼 수 있다.

윤이상거리와 생가터 사이에 위치한 기념공원의 전시실에는 생전에 연주하던 첼로 등 유품 412점도 전시되어 있다. 윤이상의 현대음악은 너무 어려워 문외한은 들어도 이해하기 어렵다. 하지만 윤이상의 젊은 시절 선율은 누구나 따라 할 수 있을 정도로 쉽다. 통영에서 중·고교를 다닌 사람은 누구나 부르는 교가의 십중팔구가 유치환이 작사하고 윤이상이 작곡했기 때문이다.

3년 전에 타계한 서양화가 전혁림(1916~2010)의 작품은 남망산에서 만나는 통영의 야경을 무척 닮았다. 암청색 하늘과 바다를 캔버스 삼아 불을 밝힌 가로등과 어화의 물그림자는 색색의 물감을 풀어놓은 듯 강렬한 이미지를 그린다. 미륵산 자락에 위치한 전혁림미술관에서 조망하는 통영의 바다가 작품 ‘통영항’처럼 강렬한 것은 당연한 일.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꽃’의 시인 대여 김춘수(1922~2004)는 유치환의 결혼식에서 화동 역할을 했었다. 생가가 있던 남망산 조각공원 입구에는 ‘꽃’ 시비 하나만이 덩그러니 남아 옛 추억을 되새기게 한다. 고향을 떠나 대구에서 20년, 서울에서 10년을 살았던 김춘수는 나이가 들면서 극심한 향수병에 시달렸다.

“요즘도 나는 화창한 대낮 길을 가다가 문득 어디선가 갈매기 우는 소리를 듣곤 한다. 물론 환청이다”고 고백한 뒤 “바다가 보고 싶은데 뜻대로 되지 않는다. 내 고향 바다는 너무나 멀리에 있다”고 안타까워했다. 시인의 향수병을 달래주려는 듯 김춘수유품전시관은 ‘삼백리 한려수도’가 시작되는 미륵도 바닷가에 위치한다.

태어난 곳이든 거쳐간 곳이든 예술가들에게는 통영이 영원한 마음의 고향이다. 한국전쟁으로 피난생활을 하던 화가 이중섭(1916~1956)은 1952년 봄부터 2년 동안 통영나전칠기기술원양성소에 살면서 작품 활동에 몰입했다. 이때 탄생한 그림이 ‘황소’를 비롯해 ‘세병관 풍경’ ‘선착장을 바라다 본 풍경’ 등 30여 점의 유화작품이다.

풍경화를 잘 그리지 않았던 이중섭은 통영에서 ‘남망산 오르는 길이 보이는 풍경’ 등 많은 풍경화를 그렸다. 비록 마흔살의 짧은 생애를 살았지만 지역 유지들의 도움으로 창작활동에 전념했던 통영에서의 2년이 ‘이중섭의 르네상스’로 불리는 이유다. 현재 항남동에는 이중섭이 작품 활동을 했던 옛 통영나전칠기기술원양성소 건물이 그대로 보존되어 있다.

아름다운 통영의 풍경은 ‘향수’의 시인 정지용(1902~1950)도 감탄하게 했다.

정지용은 해방 직후 유치환의 안내로 미륵산 신선대에 올랐다. 그리고 발아래 펼쳐지는 통영 시가지와 한려수도의 황홀한 풍경에 취해 말을 잊었다고 한다.

훗날 정지용은 부산, 통영, 진주를 둘러보고 쓴 기행문 ‘남해오월점철’에서 “통영과 한산도 일대의 풍경 자연미를 나는 문필로 묘사할 능력이 없다”고 고백했다.

문향과 예향의 흔적을 찾아 골목을 배회하다보면 발걸음은 자연스럽게 동피랑 벽화마을을 향한다.  동피랑은 ‘동쪽에 있는 높은 벼랑’이라는 뜻으로 오랜 세월 서민들의 삶의 터전이었다.  재개발을 앞둔 동피랑이 벽화마을로 거듭난 것은 2007년 ‘푸른통영 21’을 비롯한 시민단체들이 동피랑을 살리기 위해 벽화그리기 공모전을 연 것이 계기가 되었다.

벽화가 그려진 가파른 골목길은 동피랑 정상의 나그네 쉼터인 ‘동피랑 구판장’과 연결된다. 겨우 탁자 서너 개를 놓은 구판장의 창가 자리는 유치환의 ‘우체국 창가’를 떠올리게 하는 명소. 짙은 커피향에 취해 창밖 풍경에 침잠하면 작가들이 왜 통영예찬론자가 될 수밖에 없었는지를 깨닫게 된다.

박강섭 국민일보 관광전문기자








여행수첩 (지역번호 055)

◆가는길

통영대전중부고속도로 통영IC에서 내리면 통영 시내이다.  서울에서 통영까지 고속버스로 4시간10분. 통영 시가지와 한려수도를 한눈에 조망하려면 미륵산 8부 능선까지 운행하는 한려수도조망케이블카를 타야 한다.
8인승 캐빈 47대가 순환하는 케이블카의 왕복요금은 어른 9000원·어린이 5000원으로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 운행(649-3804).


◆볼거리

문화예술의 보물창고로 불리는 통영은 세병관을 비롯해 충렬사, 통영옻칠미술관, 청마문학관, 윤이상기념관, 동피랑 벽화마을 등 관광자원이 지근거리에 위치해 도보여행의 적지로 꼽힌다.

‘이야기가 있는 문화생태탐방로’인 ‘토영 이야~길’ 제1코스(10㎞)는 강구안의 문화마당에서 출발해 남망산 조각공원~동피랑 벽화마을~세병관~서문고개~충렬사~윤이상기념공원~해저터널~초정거리~청마거리를 거쳐 중앙시장에 이르는 도보여행길로 4시간 정도 걸린다.

‘토영’은 통영 토박이의 경상도식 사투리 발음이고 ‘이야’는 언니나 형님을 부르는 말로 뜻이 맞고 말이 통하는 사람끼리 정답게 걷는 길을 의미한다.

미륵도의 통영유람선터미널은 장사도, 한산도, 소매물도 등 통영의 섬으로 오가는 정거장.

 
◆먹거리

통영을 대표하는 봄 음식은 도다리쑥국. 살이 꽉 찬 봄 도다리와 자연산 해쑥을 넣어 끓인 도다리쑥국은 입에 넣은 순간 쑥향이 그윽하다.

통영시청 제2청사 아래에 위치한 명실식당(645-2598)이 맛있다.

통영여객선터미널 인근에 위치한 통영명가(649-0533)는 굴밥으로 유명한 음식점.

1960년대에 탄생한 통영의 꿀빵은 속에 팥소가 들어있고 겉에 꿀이 발라져 쫀득쫀득하고 고소한 맛이 일품이다. 충렬사 인근에 위치한 ‘오미사 꿀빵’이 원조. 인터넷으로 주문하면 택배로 보내준다(645-32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