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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길잡이

[여행] 남도답사 일번지 전남 강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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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남도답사 일번지 전남 강진

한국교직원신문  2013-03-11

 


동백은 세 번 핀다. 가지에 붙어 피고, 땅에 떨어져 다시 핀다. 또 꽃을 피해 살금살금 걷는 사람들의 가슴에 마지막으로 핀다. 백련사에서 다산초당에 이르는 철학의 길에는 애잔한 동백의 붉은 비단이 반짝인다.



떨어질 때 더 아름다운 꽃 … 동백이 부른다

남도답사 일번지 전남 강진

조선시대 실학자이자 개혁가인 다산 정약용(1762~1836)은 살을 에는 동짓달 삭풍을 맞으며 월출산 누릿재(노루재)를 넘을 때의 소회를 ‘탐진촌요(耽津村謠)’라는 시에서 이렇게 표현했다.

당시 다산의 나이는 막 불혹으로 접어든 40세. 18년 동안의 기나긴 유배생활이 시작되는 순간이었다.

신유박해에 연루되어 경상도 장기현으로 유배를 갔던 다산은 조카사위 황사영의 백서사건으로 인해 강진으로 다시 유배지가 옮겨졌다. 한양을 출발한 다산은 삼남대로를 따라 내려오다 나주 반남정 주막거리에서 흑산도로 유배 가는 형 정약전과 이승에서의 마지막 밤을 보낸 다음날 누릿재를 넘었다.

강진으로 가는 길은 동서남북이 사통팔달이라 어디서나 접근이 가능하다. 하지만 강진의 풍광과 역사를 제대로 읽으려면 광주에서 13번 국도를 타고 나주와 영암을 거쳐 월출산의 누릿재와 풀치를 넘어야 한다.

월출산 동쪽 자락을 넘는 이 길은 다산이 눈물을 뿌리며 걷던 ‘정약용 남도유배길’로 강진을 비롯한 남도사람들이 광주와 서울로 가기 위해 넘어야 했던 험난한 고갯길이기도 하다. 




누렇게 탈색된 구강포 갈대밭이 한 폭의 그림처럼 펼쳐져 있다.


‘호남의 소금강’으로 불리는 월출산은 아직 겨울이다. 그러나 누릿재 아래의 산비탈에 위치한 월출산 차밭은 봄 향기가 그윽하다. 초록융단을 깔아놓은 듯 차나무가 등고선을 그리는 월출산 차밭은 약 10만평. 바위산인 월출산을 배경으로 펼쳐져 영화의 한 장면처럼 황홀하다.

다산이 강진 땅에 처음 발을 디뎠을 때 주민들은 ‘대역죄’를 짓고 귀양 온 선비를 몹시 경계했다고 한다. 그런 다산에게 호의와 인정을 베푼 사람은 동문 밖의 주막집 주모와 그의 외동딸. 주모에게서 작은 방 한 칸을 얻은 다산은 ‘생각, 용모, 언어, 행동을 마땅히 바르게 해야 할 방’이라는 뜻에서 당호를 사의재(四宜齋)라 짓고 그곳에서 4년을 지냈다.

사의재와 주막은 근래 복원된 건물인데도 옛 정취가 그윽하다. 오가는 길손들이 목을 축이던 샘은 옛날 그대로의 모습. 지극정성으로 다산을 도왔던 주모와 딸의 동상이 주막 뒤편에서 오늘도 다산을 기다리고 있다. 사의재에서 군청 등 관공서가 몰려 있는 길을 따라 10분쯤 걸으면 영랑생가.

 




‘돌담에 소색이는 햇발같이’로 유명한 영랑 김윤식(1903~1950)은 구수한 남도 사투리를 음악성 있는 시어로 표현하는 데 탁월한 감각을 지녔던 시인. ‘모란이 피기까지는’의 시인 생가답게 초가로 복원한 영랑생가 너른 앞마당에는 모란이 여느 해와 마찬가지로 새싹을 틔우기 시작했다.

툇마루와 기둥에 바른 들기름 냄새가 구수한 안채 작은방은 영랑이 결혼 후 거처하던 곳. 마당에는 ‘마당 앞 새암을’의 소재가 되었던 우물과 시비 몇 개가 있다.

은행나무 고목 그늘 아래에 위치한 사랑채는 영랑이 작품 활동을 하던 공간으로 대다수의 시가 이곳에서 탄생했다.

남도의 봄은 영랑생가 뒤란의 대숲에서 시어가 되어 한바탕 흐드러진 춤사위를 펼친다. 청자빛 하늘에서 봄바람이 불자 안채 뒤편의 초록색 대숲이 빗자루로 마당 쓰는 소리를 낸다.

봄바람이 파도처럼 증폭되자 ‘동백잎에 빛나는 마음’의 소재가 되었던 수령 300년의 동백나무 다섯 그루도 어깨를 들썩인다. 초록색 잎과 진홍색 꽃이 물감을 섞어 휘젓듯 아찔한 꽃멀미를 불러일으킨다.

영랑생가에서 다산이 제자 이학래의 집에서 잠시 기거했던 목리마을까지는 강진의 소박하고 정겨운 골목길이 이어진다. ‘정약용 남도유배길’은 누런 갈대밭이 멋스런 구강포의 남포마을을 거쳐 드넓은 들판으로 접어든다. 구강포(九江浦)는 탐진강을 비롯한 아홉 골 물길이 모여 만든 포구. 강진의 옛 이름인 탐진(耽津)은 탐라(제주)로 가는 나루라는 뜻이다.

강진만을 따라 걷던 유배길은 백련사로 진입하기 직전에 해창(海倉)으로 불리는 철새도래지를 만난다. 해창 일대는 짱뚱어, 문저리, 바지락 등 먹잇감이 풍부해 큰고니를 비롯해 온갖 철새들이 날아드는 자연생태계의 보고. 보리밭에서 날아오른 재두루미와 구강포에서 비상한 바닷새들이 수시로 청자빛 하늘에서 아름다운 비행을 선보인다.

만덕산 중턱에 위치한 백련사 앞에는 천연기념물 제151호로 지정된 백련사 동백나무 숲이 바다처럼 펼쳐진다. 5.2㏊에 이르는 백련사 동백나무 숲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아름다운 동백나무 숲으로 수령이 500~800년인 동백나무 고목 8000여 그루가 밀림처럼 우거져 장관을 연출한다.

다산은 이곳의 동백꽃을 선춘화(先春花)라고 불렀다. 봄에 먼저 피는 꽃이라는 뜻이다. 동백꽃은 햇살이 반짝이는 초록잎을 캔버스 삼아 청사초롱을 닮은 꽃이 진홍색으로 빛날 때 아름답다. 그러나 동백꽃은 송이 째 뚝뚝 떨어져 풀밭을 수놓을 때 더 황홀하다. 송이 째 낙화한 동백꽃이 어둑어둑한 숲속에서 아침햇살에 환하게 웃는 모습은 경이롭기까지 하다.


백련사와 다산초당 사이에는 만덕산의 산허리를 가로지르는 약 800m 길이의 오솔길이 빨랫줄처럼 걸려있다. 다산과 백련사의 혜장선사가 학문과 사상을 논하던 ‘우정의 길’로 다산은 차를 좋아해 혜장선사에게 차를 청하는 걸명소(乞茗蔬), 편지를 보냈을 정도. 만덕산은 야생 차나무가 많아 ‘다산’(茶山)으로도 불린다. 정약용 선생의 아호 다산도 거기서 따왔다고 한다.

산안개 흐르는 오솔길은 사람을 유혹하는 묘한 매력이 있다. 빗물 머금은 황톳길의 촉감도 부드럽지만 닳아 반들반들해진 소나무 뿌리를 계단 삼아 오르며 사색에 빠져드는 것도 오솔길이 가진 수많은 덕목 중 하나이다.

다산은 그 옛날 나무꾼이 다니던 오솔길의 억새와 잡목가지를 헤치고 무시로 백련사의 혜장선사를 찾았다. 그리고 종일 차를 나누며 학문을 논하다 달빛을 등불삼아 밤이슬에 젖은 채 동암으로 돌아오곤 했다.

다산이 10여 년 동안 머문 다산초당은 허름한 초가였다. 그러나 1957년에 복원되면서 기와집으로 바뀌었다. 1974년에는 다산의 처소였던 동암과 제자들이 거처했던 서암도 복원됐고, 애초에 없었던 천일각도 세워졌다. 동암은 목민심서, 흠흠심서, 경세유표 등 500여권의 책을 저술한 산실.
 
다산이 가족을 그리워하며 눈물을 흘렸다는 동암 옆 바위는 구강포 들녘과 강진만이 한눈에 들어오는 곳으로 훗날 천일각이 세워졌다.


300m 길이의 다산초당 하산길은 소나무 뿌리가 드러난 채 얼키설키 엮여 계단 역할을 한다. 이를 보고 정호승 시인은 ‘뿌리의 길’을 노래했다.

유홍준씨는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에서 시뻘건 황토에 일렁이는 초록색 보리밭과 강진의 푸른 하늘빛, 그리고 선홍색 동백꽃잎을 ‘남도의 봄빛’이자 ‘남도의 원색’이라고 설파했다. 그 원색을 변주해 흑갈색 황토와 연분홍 진달래, 누런 바다갈대밭을 그려낸 화가도 남도의 봄 이외엔 아무도 없다고 했다.

겨우내 차가운 바닷바람에 맞서 혹은 땅속에서 혹은 숲속에서 원색의 꿈을 키워온 곳. 돌담에 속삭이는 햇발같이 원색이 눈부신 그곳은 ‘남도답사 1번지’로 불리는 전남 강진이다. 

 

 박강섭 국민일보 관광전문기자

 

 



나무 뿌리가 돌출된 ‘뿌리의 길’.

 





◆ 가는길 

승용차를 이용할 경우 서해안고속도로 목포나들목에서 2번 국도로 갈아타고 강진 읍내까지 간다. 서울에서 강진까지 고속버스로 5시간 소요. 기차를 타고 광주에서 내리면 강진까지 시외버스가 수시로 다닌다.


1시간 20분 소요. 정약용 남도유배길은 사의재→영랑 생가→목리마을→남포마을→해창→백련사→다산초당→다산유물전시관까지 15㎞.



◆ 볼거리

다산초당에는 아담한 연못과 석가산, 돌 틈에서 솟아나는 약천, 솔방울을 태워 찻물을 끓이던 바위인 다조, 해배를 앞두고 자신의 발자취를 남기기 위해 집 뒤편의 암벽에 손수 쓰고 새겼다는 ‘정석’(丁石) 등 다산의 손때가 묻은 자취들이 남아있다. 다산유물전시관(430-3911)에는 영정, 가계도, 유물 등이 전시되어 있다. 

병영면의 전라병영성 하멜기념관(430-3181)은 우리나라를 서양에 최초로 알린 ‘하멜 보고서’의 저자 헨드릭 하멜을 기리는 전시공간. 제주도에 표착해 조선에서 13년간 억류생활을 했던 하멜은 7년을 강진 병영에서 살았다.   

대구면의 청자박물관(430-3755)은 청자문화의 역사적 변천 과정을 체계적으로 전시한 공간. 체험장에서는 연중 청자체험프로그램이 진행된다. 대구면 저두리 중저마을에서 마량포구에 이르는 약 10㎞의 해안도로는 환상의 드라이브 코스. 강진만을 벗한 마량의 바닷가 구릉은 보리밭으로 유명하다.


◆ 먹거리

강진을 대표하는 음식은 한정식. 청정해역의 어패류와 기름진 강진평야의 농산물이 후덕한 전라도 인심과 맛깔스런 손맛에 의해 전국을 대표하는 한정식으로 명성이 자자하다.

강진 한정식은 조선 후기 강진으로 귀양을 온 수라간 상궁에 의해 궁중음식의 비결이 전해졌다고 한다. 강진읍내에 한정식을 전문으로 하는 음식점이 대여섯 곳 있다.


◆ 잠자리

강진에는 호텔이나 리조트가 없다. 강진읍내에 모텔과 장급여관이 몇 곳 있다. 다산초당 아래의 다산촌명가(433-5555)는 찻집과 음식점을 겸한 한옥숙박시설로 주인과 차를 나누며 다산학에 대한 강의도 들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