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신년 제주 기행 3
비양도 비양봉
■ 언제 : 2020. 1. 3.(금)
■ 어디로 : 비양도 비양봉
■ 누구랑 : 아내랑
비양도 비양봉(飛揚峰) 개요
• 주소 :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한림읍 협재리 산 100-1
• 해발 114.1m, 비고 104m, 둘레는 2,023m, 면적 260,428㎡, 폭은 651m
큰 분화구(큰암메)는 깊이가 79.8m인 깔때기형 분화구
작은 분화구(족은암메)는 깊이가 26.5m인 복합형 화산체
디지털제주시문화대전<http://jeju.grandculture.net>펌
[현황]
높이는 114.1m, 비고 104m, 둘레는 2,023m, 면적은 260,428㎡, 폭은 651m이며, 모양은 복합형으로 되어 있다. 비양봉 서남쪽 기슭에는 동산밧굴이라는 천연 동굴이 있고, 그 남서쪽 바닷가 일대에는 신석기 시대의 곽지리식 토기가 확인되는 유물산포지가 있다. 동남쪽 기슭에는 비양리 포제단과 술일당이 있다.
노인 회관을 지나 마을 안 오른쪽으로 나 있는 도로를 따라 가면 길 오른쪽에 오르는 길이 있다. 이 길을 따라 오르면 주봉 분화구 외륜에서 가장 낮은 곳인 안부로 쉽게 오를 수 있다.
비양도는 그 동안 역사문헌 등(고려사 등)의 해석을 통해 1002년에 분화되어 ‘천년의 섬’이라고 알려진 섬인데, 전용문 박사는 이와 관련해 ▲1000년 전에는 이 일대가 바다였기 때문에 화산 분출이 일어났다면 지금과 같은 분석구가 형성되지 않았을 것 ▲섬에서 6000년 전의 신석기 유적이 발견된 점 ▲암석의 연령을 측정한 결과 2만6000년 안팎으로 나온 점 등을 근거로 고려사에 기록된 화산 분화는 비양도와 관련이 없다고 밝혔다.
그리고 섬의 서북부에 거대한 화산탄들이 발견되고, 서북부 해안에 수심이 앞은 해저지형이 펼처진 점 등을 근거로 현재의 비양봉 분석구와 별개로 또다른 거대 화산체가 서북부에 있었는데 파도의 침식으로 수면 상부가 사라진 것으로 분석했다.
[출처] 한국학중앙연구원 - 향토문화전자대전
[명칭 유래]
한림읍 협재리 앞바다의 비양도에 있는 기생화산으로 섬 중앙에 대형 분화구와 그 옆에 소형 분화구가 있으며, 대형 분화구 사면에 낮고 작은 2개의 분화구가 딸려 있다.
큰 분화구(큰암메)는 깊이가 79.8m인 깔데기형 분화구이며, 작은 분화구(족은암메)는 깊이가 26.5m인 복합형 화산체를 이루고 있다.
“비양봉에는 두 개의 굼부리(분화구)가 있는데, 예로부터 비양 오름 외에 ‘암메’라고 불렀다. 주봉에 딸린 큰 분화구는 큰 암메이고 작은 봉우리에 딸린 작은 봉우리를 족은 암메라고 한다. 이 암메는 암메창이라고 하는데 굼부리를 뜻하는 제주어로서 가메창(오름)외에 몇 곳이 이런 맥락으로 명칭이 붙었다.
`암메`란 분화구를 가진 산의 통칭이며 분화구 자체를 가리키는 `암메창`의 약칭이기도 하다.
한데, `가재`라는 별로 알려지지 않은 이름이 있으며 한국지명총람(한글학회, 1984)에도 `가재`라는 이름으로 나온다.
어떤 연유에서의 호칭인지는 알 수 없으나 주민들 사이에는 아는 이가 드물며 서쪽 사면 우묵하게 골진 곳을 가잿골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서산(瑞山)은 한자의 뜻 그대로 `상서로운 산`의 뜻으로 보인다. 민간에서는 `가재` 또는 `암메` 등으로 알려지고 있다.
[출처] 한국학중앙연구원 – 향토문화전자대전, 제주환경일보(http://www.newsje.com)
[자연환경]
비양봉은 비양섬[비양도]에 있다. 주요 식생은 해송이 주를 이루나 북쪽의 작은 분화구에는 비양나무 군락이, 저지대 주변에는 환경부 보호 식물로 지정된 식물이 있다.
분화구 안쪽과 능선에 자라는 고나속 식물은 56과 150속 191종류로 확인된다. 이곳에 자라는 양치식물은 봉의꼬리·도깨비고비·곰비늘고사리·꼬리고사리·돌담고사리·콩짜개덩굴 등 6종이다.[출처] 한국학중앙연구원 – 향토문화전자대전
오름 주변 해안에는 대형의 굴뚝형 분기공인 `애기업은 돌`(북부해안)과 Swa stack(암석해안에서 차별침식에 의해 만들어진 독립된 암석기둥: 예 외돌괴) 및 초대형 화산탄 모양의 베개용암(pillow lobe: 수중에서 용암이 물과의 접촉으로 베개모양으로 굳어진 형태) 등의 수중용암들을 볼 수 있다.(제주 본섬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기암괴석이다.) 오름 동남쪽 기슭에는 속칭 `펄낭`이라 불리우는 염습지가 있다.[출처] daum백과
[생물학적 특성]비양나무
비양나무는 쐐기풀과의 낙엽관목으로 줄기는 곧고 2m 정도의 높이로 자란다. 작은 가지는 가늘며 암자색을 띠고 어린 가지에는 가는 털이 있다. 잎은 호생하고 장타원형, 장타원상형이고 기부는 원형이거나 둔형이다.
잎의 가장자리에는 톱니가 있고, 잎은 얇고 윗면은 약간 거칠다. 뒷면은 하얀 면모가 밀생하기도 하고 아예 없기도 하다. 길이는 5~10㎝, 폭은 2~4㎝이고, 마르면 검게 된다. 주맥은 3개이고, 뒷면이 융기한다. 꽃은 이른 봄에 피며 자웅이주이다. 본종은 난지산으로 일본의 규슈, 시고꾸, 와카야마 등지에서 자란다.
비양도의 비양나무는 우리나라에서는 비양도의 분화구에서만 자생되는 것으로 확인되고 있다. 분화구의 중앙 북쪽 10㎡의 면적에 비양나무가 집단적으로 군락을 이루고 있어서 학술적 가치가 높다.
[출처] 한국학중앙연구원 - 향토문화전자대전
흔적
협재해수욕장은 한림읍 협재리에 있는 제주에서도 꽤 유명한 해수욕장이다.
<daum백과>에 의하면 “협재해수욕장은 1980년대 제주도 관광종합개발계획의
일환으로 개발된 곳으로 해안은 흰색의 순수 패사로 이루어진 사빈해안으로
검은색의 현무암이 해안 곳곳에 노출되어 서로 대조를 이루고,
해안의 길이는 1,100m에 이르며, 모래사장 뒤쪽으로 소나무 숲이 빽빽이 늘어서 있고, 비췻빛 물결은 수심이 얕고 경사가 완만하여 수많은 피서객이 즐겨 찾는
관광명소로 이름이 나 있다.”라고 소개되어 있다.
아내와 난 제주에 오면 마치 빚쟁이한테 빚 받으러 가는 것 마냥 이 오름 저 오름 찾아다니기 바쁘다.
그러다 보니 협재해수욕장이 있는 도로를 달리는 경우도 꽤 많다.
그럴 때면 마치 귀신에 홀린 것 마냥 내 차는 나도 모르는 새 협재해수욕장에 닿아있다.
잠시 머리도 식힐 겸 비췻빛 바다 물결을 바라보노라면 오름을 다니며 피곤했던
육신이 봄눈 녹듯 살살 녹아내린다.
그 느낌이 좋아 우리는 늘 협재를 그냥 못 지나간다.
협재해수욕장 앞에 서면 손만 대면 곧 닿을 듯 앞을 가로막고 선 비양도가 보인다.
비양도는 제주에서 가장 가까운 섬이다.
비양도에는 비양봉이란 오름이 있다. 언젠간 우리가 가야할 곳이다.
협재에 서서 늘 “저기도 가야하는데 언제 가지?” 소 닭 보듯 했는데,
결국 침만 흘리고 바라봤던 비양봉을 오늘에야 가게 됐다.
비양봉을 간다는 기쁨에 아침부터 마음이 들뜨고 설레기 시작했다.
대충 한 술 뜨고 서둘러 한림으로 향했다.
한림항에서 11시 20분 배를 탔다. 비양도까지는 10분이면 도착한다.
비양도에서 출발하는 마지막 배는 15시 35분이었다.
우리는 넉넉하게 마지막 배를 타고 나오기로 했다.
두 번 가기 쉽지 않을 터 가는 김에 최대한 시간을 보낼 작정이었다.
비양도에 대해선 사전 조사가 충분치 않아 그저 비양봉을 오르며
눈에 보이는 것만 담자는 생각으로 가볍게 길을 나섰다.
그런데 막상 가보니 그게 아니었다. 10분이면 도착하는 짧은 시간이었지만,
선장님의 구수한 설명과 하선하자마자 해설사가 설명하는 내용을 듣자니
시간이 넉넉하지만은 않을 것 같았다.
가벼운 마음으로 관광하는 정도면 2시간 남짓이면 충분했지만,
내용을 더 깊이 알자면 하루 이틀 머물러도 부족할 판이다.
아내와 난 먼저 비양봉부터 올라갔다.
나한텐 오름이 우선이니 혹여 꾸물거리다 비양봉을 놓칠까 싶어 그리했다.
뭐, 그다지 큰 섬이 아니기에 2~3시간이면 비양도를 훑어보기는 하겠지만,
볼거리에 따라 시간 변죽이 많은 나로선 나를 믿기 어려웠다.
그래서 우선 목적으로 하는 곳부터 서두르기로 했다.
비양봉은 지표고가 104m밖에 안 된다.
마을 골목을 따라 산길로 접어들면 비양봉으로 가는 길이 나온다.
우리는 그 길로 갔다.
비양도에서 유일한 농산물인 갯무 밭을 지나면 오름 초입이다.
정상까지 500m만 가면 된다는 표식이 있다.
짧은 거리지만 그리 만만치만은 않다.
우리보다 앞서 가던 노부부가 나보다 더 숨이 차는 모양이다.
할매는 그나마 좀 나은데 할배가 영 신통찮다.
먼 훗날 내 모습을 보는 것 같다.
걱정이 돼서 한 마디 말을 건넸다.
“쉬엄쉬엄 천천히 가세요.”
“높은 산이 아니라 슬금슬금 가셔도 됩니다.”하니
할매가 “어디서 왔오.”라고 되묻는다.
“대구서 왔습니다.”
할매 왈 “내 친정도 대군데 대구 어디서 왔어요?”
지금 내 사는 곳은 대구 신도시라 말해도 모를 것 같아
주로 내가 성장했던 “대명동에서 왔습니다.”라고 하니
“나는 봉덕동에서 살았는데 우연히 제주에 놀러왔다가
목사님이 이 양반과 중신을 해 그 길로 50년 넘게 제주에 살았으면서
비양도는 오늘 처음이라요.”
제주에 살아도 제주 여행 한 번 변변하게 못하신 모양이다.
잠시 내뱉는 늙은 아내의 타박 아닌 신세타령에 할배의 시선이 먼 바다를 향한다.
무안하셨던 모양이다.
말씀에 탄력이 붙은 할매는 할배의 시선 따위는 아랑 곳 없다.
기다렸다는 듯 한 마디 한 마디 시원하게 속사포 갈기듯 갈긴다.
비단 할배를 겨냥해 내뿜는 말은 아니었으나
괜히 말을 먼저 붙인 나로서는 할배가 신경 쓰일 수밖에 없었다.
힐끗 할배를 쳐다보니 할배는 싱긋이 미소만 짓는다.
한 번은 먼 산보고 또 한 번은 고개 돌려 바다를 바라보며 안 듣는 척 하긴 해도,
괜히 무안해 하는 내색은 감출 수가 없었다.
노부부와는 굼부리 갈림길에서 헤어졌다.
우리는 팻말이 시키는 대로 오른쪽으로 노부부는 왼쪽으로 갔다.
왼쪽으로 가는 길이 더 힘들어 보였고 길도 막아 놓았는데,
이 길을 잘 아는 듯 서슴없이 막아 놓은 길로 갔다.
조심해서 가시라며 인사를 건넨 후 우리도 그제야 지형을 살피며 오르기 시작했다.
굼부리 갈림길에서 보니 큰굼부리와 작은굼부리가 마치 형제처럼 나란히 붙어 있다.
비양봉의 신비로운 형태가 드러나는 순간이다.
옛날에는 굼부리를 ‘암메’라 불렀던 모양이다.
큰굼부리를 ‘큰암메’, 작은굼부리를 ‘족은암메’라 불렀다고 한다.
큰 분화구(큰암메)는 깊이가 79.8m인 깔데기형 분화구이며,
작은 분화구(족은암메)는 깊이가 26.5m인 복합형 화산체를 이루고 있다.
`암메`란 분화구를 가진 산의 통칭이며 분화구 자체를 가리키는 `암메창`의 약칭이기도 하단다.
이대 숲을 지나니 비양등대가 보인다.
등대가 서 있는 지점이 정상이다.
한림읍이 보이고 섬이라 사방이 밝게 확 트였다.
사진을 찍고 비양봉 오름에 왔다는 즐거움에 취해있는데
굼부리 갈림길에서 헤어졌던 노부부가 길이 없는 곳을 뚫고 힘들게 올라왔다.
할매가 앞서고 할배가 뒤쳐져 올라왔다.
그렇지 않아도 노부부가 올라온 길로 내려가려 했더니 아내가 길 따라 가자고
만류하는 바람에 어떻게 할까 망설이던 차에 잘 됐다 싶어,
그쪽으로 길이 좋더냐고 여쭈었더니 그리로 내려가지 말라고 한사코 만류한다.
길은 있는데 험하고 미끄러워 안 가는 게 낫단다.
한 눈에 봐도 그리 보였는데 좋은 길 마다하고 왜 하필 노구를 이끌고 그쪽으로 오셨는가 싶다.
노부부의 말씀대로 우리는 길 따라 갔다.
내려가면서 난 비양봉에 온 만큼 꼭 보고 가야할 숙제가 생겼다.
여기까지 왔으니 ‘비양나무’를 봐야 한다. 난 여지껏 ‘비양나무’란 식물이 있는지도 몰랐다.
비양도에 도착해 해설사의 설명을 들으며 ‘비양나무’ 군락지가 우리나라에
그것도 비양도에만 자생한다는 사실을 알았다.
해설사가 비양나무가 있는 곳은 접근하기 어려워 보기 쉽지 않다며,
비양도 관리실 화분에 한 그루 키우는 것이 있다고 보고 가라고 해
화분에 담긴 모습만 열심히 담아 놓았었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제주 모 식물원에도 식재한 비양나무가 있다는 얘기를 들었다.
목전에 있는 비양나무를 외면한 채 발길을 돌릴 수는 없었다.
그것도 가는 길목에 있는데 그냥 갈 수야 없는 노릇.
접근을 막기 위해 철망을 쳐 놓았더라만 가까이 접근할 수 있는 곳까지 다가가
서서히 줌을 당기기 시작했다.
철망이 가로막고 굼부리 깊숙한 곳에 서식하고 있었기에 모양을 예쁘게 담을 수는 없었다.
그래도 지금까지 이름 한번 들은 적 없고 더군다나 학술적 가치가 높은
귀한 식물을 만났는데 도저히 외면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비록 멀리 있어 세세하게 담을 수는 없었지만,
자생지에서 자라는 군락지를 담는 것으로도 충분히 만족했다.
&
비양봉에 와 대어 한 마리 낚고, 기분 좋게 비양봉을 내려온 우리는 해안 길을 따라 걸었다.
섬 속의 섬을 걷는 기분은 또 다른 감흥으로 다가왔다.
가끔 센바람이 몰아치긴 했지만 그 정도 바람은 우리의 업(up)된 기분을 이길 수 없었다.
그래도 오늘은 날씨가 보편적으로 봐 좋았다고 말할 수 있다.
비양봉을 보고 걷는 해안 길은 비양도가 덤으로 주는 행복이다.
비양도는 지질명소로도 이름나 있다.
어떤 점이 특별한지 알고 싶어 검색했으나 인터넷상으론 상세 자료를 입수하기란 쉽지 않다.
제주특별자치도 세계유산본부(본부장 김홍두)는 제16차 국가지질공원위원회에서
제주도가 국가지질공원으로 재인증됐고,
우도와 비양도가 대표 지질명소로 추가됐다고 밝힌 바 있다는 정도와
제주특별자치도 세계유산본부(한라산연구부)의 전용문 박사를 초빙해
비양도 현장답사를 진행하면서 해설한 내용을 소개한 인터넷 자료에 의하면,
“비양도는 그 동안 고려사 등의 해석을 통해 1002년에 분화되어
‘천년의 섬’이라고 알려진 섬인데, 전 박사는 이와 관련해
1000년 전에는 이 일대가 바다였기 때문에 화산 분출이 일어났다면
지금과 같은 분석구가 형성되지 않았을 것이고
섬에서 6000년 전의 신석기 유적이 발견된 점과
암석의 연령을 측정한 결과 2만6000년 안팎으로 나온 점 등을 근거로 들어
고려사에 기록된 화산 분화는 비양도와 관련이 없다고 밝혔다.”
“그리고 섬의 서북부에 거대한 화산탄들이 발견되고,
서북부 해안에 수심이 얕은 해저지형이 펼쳐진 점 등을 근거로
현재의 비양봉 분석구와 별개로 또 다른 거대 화산체가 서북부에 있었는데,
파도의 침식으로 수면 상부가 사라진 것으로 분석했다.”
제주에서 가장 가까운 섬! 그 섬은 비양도다
신비로운 섬 비양도에 첫발을 내딛으면 “비양도 천년기념비”가 우뚝 서 있는 모습을 보게 된다.
누가 봐도 비양도의 천년을 기념한다는 말로 해석할 것이다.
하지만 전용문 박사의 설명에 의하면 비양도는 천년의 섬이 아니라
그 이전인 수만 년 전에 형성된 섬이란 걸 알 수 있다.
여기서 우리는 천년의 의미를 태고적 신비를 간직한 의미라 여기면 되겠다.
해안을 돌다보면 갖가지 신비로운 돌을 많이 볼 수 있다.
기이한 형상을 한 화산탄인 코끼리바위와 생전 처음 들어보는
호니토란 애기 업은 돌 모양의 암석 그리고 우리나라에서 유일한 해수로 된
펄랑못이라 부르는 염습지가 있어 신비를 더한다.
비양도! 매력 만점인 섬이라 아니할 수 없다.
오늘 하루 비양도에 와 대물 하나 건졌다.
10분밖에 안 되는 짧은 시간이지만 도항선을 타고 돌아가는 길이 흐뭇하다.
갈매기 끼룩대는 소리가 유난히 정겹게 들려온다.
비양도 가는 선착장 매표소
이 배를 타는 줄 알았더니 이 배가 아니고
이 배였다. 비양도 천년호
먼저 비양봉을 오르고 해안을 한 바퀴 도는 게 낫다. 우리는 그리했다. 관광차원으로 다니면 2시간 남짓하면 비양봉에도 가고 해안을 따라 한 바퀴 돌 수도 있다. 하지만 좀 더 학술적인 의미를 부여하기 위해서 다니자면 아침 첫 배를 타고, 막 배로 나오는 것이 나을 것이다.
비양도에 갔으면 최소한 저기 탐방안내도에 소개한 곳은 다 보고 와야 한다.
해설하시는 분의 도움으로 관리실에 있는 비양나무를 먼저 봤다. 크게 특이하게 보이지는 않으나 이 비양나무의 자생지는 제주도 그것도 비양도의 비양봉 굼부리 깊숙한 곳에서만 서식하는 나무다. 비양봉 굼부리에 자생하는 군락지에선 이 비양나무의 형태를 자세히 볼 수 없을 것 같아 관리실에 있는 이 비양나무를 먼저 유심히 살폈다.
'비양도 천년기념비' 비양도의 천년을 기념하는 비로 해석되겠지만, 실은 이 비양도의 탄생은 천년 훨씬 이전이라고 한다.
비양도는 그 동안 역사문헌 등(고려사 등)의 해석을 통해 1002년에 분화되어 ‘천년의 섬’이라고 알려진 섬인데, 전용문 박사는 이와 관련해 ▲1000년 전에는 이 일대가 바다였기 때문에 화산 분출이 일어났다면 지금과 같은 분석구가 형성되지 않았을 것 ▲섬에서 6000년 전의 신석기 유적이 발견된 점 ▲암석의 연령을 측정한 결과 2만6000년 안팎으로 나온 점 등을 근거로 고려사에 기록된 화산 분화는 비양도와 관련이 없다고 밝혔다.
그리고 섬의 서북부에 거대한 화산탄들이 발견되고, 서북부 해안에 수심이 앞은 해저지형이 펼처진 점 등을 근거로 현재의 비양봉 분석구와 별개로 또다른 거대 화산체가 서북부에 있었는데 파도의 침식으로 수면 상부가 사라진 것으로 분석했다.
[출처] 한국학중앙연구원 - 향토문화전자대전
드라마 촬영지이기도 했다.
갯무밭. 비양도의 유일한 농산물인가 보다.
정상까지 500m밖에 안 된다. 그래도 굼부리 능선에 이르기까지는 계속 오르막이다. 저기 앞서 가시는 노부부랑 말벗이 되어 갔다. 할매가 대구 태생인 분이다.
굼부리너머 비양등대가 보인다. 정상 지점이다.
이대밭을 지나 조금만 가면 등대가 나온다.
확트인 전망대가 나오고 협재리가 목전에 있다.
비양등대
호랑지빠귀 한 마리가 친구가 되어 주고...
까마중이 아직 건재한 모습으로 꽃까지 피우고 있다.
굼부리 안이 깊다.
철망이 있는 안쪽으로 비양나무 군락지가 있다.
평생 듣도 보도 못했던 비양나무 군락지가 내 눈 앞에 무리를 지어 자라고 있다.
비양나무는 현화식물문 > 목련강 > 쐐기풀목 > 쐐기풀과 > 비양나무속
바닷가 저지대에 드물게 자라는 낙엽 떨기나무이다. 줄기는 가늘고 긴 가지가 갈라지며 높이 2m쯤이다. 잎은 어긋나며 잎자루는 0.5-5cm이다. 잎몸은 보통 긴 타원형이지만 드물게 난형 또는 타원형으로 길이 6-12cm, 폭 2.5-5cm이며 가장자리에 거친 톱니가 있다. 잎 끝은 꼬리처럼 길며 밑은 둥글다. 잎 뒷면은 어릴 때 털이 있어 흰빛을 띠며 앞면과 뒷면 맥 위에 털이 난다. 꽃은 3-5월에 암수딴그루에 핀다. 열매는 수과이며 육질의 화피에 싸인다. 우리나라 제주도에 자생한다. 인도, 일본, 중국 및 동남아시아에 분포한다. 펌<다음백과>
줄기는 가늘고 긴 가지가 갈라지며 높이 2m쯤이다. 잎은 어긋나며 잎자루는 0.5-5cm이다. 잎몸은 보통 긴 타원형이지만 드물게 난형 또는 타원형, 길이 6-12cm, 폭 2.5-5cm, 가장자리에 거친 톱니가 있다. 잎 끝은 꼬리처럼 길며 밑은 둥글다. 잎 뒷면은 어릴 때 털이 있어 흰빛을 띠며 앞면과 뒷면 맥 위에 털이 난다. 꽃은 암수딴그루로 수꽃과 암꽃의 꽃차례는 모두 둥글며 자루가 거의 없다. 수꽃은 4개의 수술이 화피편과 마주 붙는다. 열매는 수과, 육질의 화피에 싸이고 난형으로 길이 1.5mm쯤이다. 펌<다음백과>
비양나무는 낙엽 떨기나무로 꽃은 3-5월에 핀다.
국내에 분포하는 모시풀속(Boehmeria) 식물들(모시풀 B. nivea (L.) Gaudich. 예외)과 비교하여 잎은 어긋나며, 열매는 육질의 화피에 싸이고 암술머리의 가장자리에 털이 있으므로 구분된다. 펌<다음백과> 굼부리 깊숙이 있어 접근하기 어렵고 보호를 위해 접근해서도 안 된다. 나도 먼발치에서 줌을 당겨 찍었다.
큰암메와 족은암메 사이로 길이 나있다. 비양봉의 가장 두드러진 특성이라고 말할 수 있다. 비양봉에는 두 개의 굼부리(분화구)가 있는데, 예로부터 비양 오름 외에 ‘암메’라고 불렀다. 주봉에 딸린 큰 분화구는 큰 암메이고 작은 봉우리에 딸린 작은 봉우리를 족은 암메라고 한다. 이 암메는 암메창이라고 하는데 굼부리를 뜻하는 제주어로서 가메창(오름)외에 몇 곳이 이런 맥락으로 명칭이 붙었다.
저 아래 데크가 시작되는 지점이 굼부리 능선의 시작점이다. 우리는 저 데크로 올라 돌아왔다. 다시 그 지점 가까이 온 것이다.
오름 초입으로 내려가는 길에 다시 한 번 더 올려다 본다.
오름 출발점이다. 해안 길을 따라가다 보면 비양봉으로 올라가는 길이 몇 군데 있더라만, 출발은 여기서 하는 게 좋다.
해안선을 따라 가다보면 볼거리가 많다.
이 녀석들은 가마우지가 맞는지 민물가마우지가 맞는지 구분이 쉽지 않다. 대개는 민물가마우지가 많던데 섬 속의 섬에 있는 녀석들이라 가마우지가 아닐까 싶기도 하다.
호니토. 대형의 굴뚝형 분기공인 `애기업은 돌`
펄랑못. 우리나라에서 유일한 해수로 된 염습지
쇠백로
백년초. 한림초등학교 비양분교 앞 바닷가에 많이 자라고 있다.
2020년 2월 29일까지 휴교라면 3월부터는 개교하는지... 2월 29일가지 휴교라 했으니 3월부터는 아마 문을 열 모양이다. 이런 곳에와 말년을 교사로 보낼 수 있었다면 얼마나 좋을까???
1년간 문을 닫으니 빗장을 3개나 걸어 놓았다.
딸내미가 여기 보말죽이 맛있다고 해 늦은 점심을 여기서 먹었다. 맛이 좋았다.
뱃시간이 남아 마을 한 바퀴 어슬렁거리다 본 색깔 입은 소라껍데기
언제 다시 올지 모를 비양도를 그리며 한 장 담아본다.
비양도 민가 돌담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