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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행방

마이산 탑사 가족 산행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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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비에 쌓인 만불탑과 마이산 이야기

-마이산(숫마이봉686m, 암마이봉 680m)-

 

 

▣ 언제 : 2012. 10. 13. (토)

▣ 어디로 : 마이산 (전북 진안군)

▣ 누구랑 : 아내와 딸내미

▣ 어떻게 : 승용차로

▣ 마이산 관리사무소 (063) 433-3313

▣ 네비게이션 주소

북부주차장 : 전북 진안군 진안읍 단양리 688번지

남부주차장 : 전북 진안군 마령면 동촌리 76-2번지


▣ 마이산 산행 후 느낀 권장 코스

탑사 기행이 목적인 경우는 비교적 접근성이 좋고 거리가 가까운 북부주차장을 기점으로 하는 것이 좋고, 긴 산행을 원하면 종주코스가 좋다. 적당한 산행과 탑사 기행을 겸할 경우에는 우리가 산행한 코스가 적합하다.

 

▣ 우리가 산행한 코스

남부주차장 0.6Km 고금당 1.0Km 전망대(비룡대) 2.4Km 봉두봉을 거쳐 탑사까지 1.2Km 은수사 2.2Km 남부주차장

총 7.4Km

 

마이산을 알고 가자.

 

만불탑의 산 마이산

 

두 봉우리가 우뚝 솟아 하늘에 꽂혀 있는 듯한 마이산은 전북 진안군 진안읍과 마령면에 걸쳐 있는데 조선을 개국한 태조 이성계가 호남에서 무술을 연마할 때 산의 모양이 말의 귀와 비슷하다 하여 馬耳라 이름 지었다고 한다.

 

2003년 10월 명승지 제12호로 지정된 해발 667m의 마이산은 자웅의 두 봉우리가 하늘을 찌를 듯이 솟아 있으며 ‘龍岩洞門’이라 생긴 암벽 사이를 들어서면 기암괴석이 뒤엉켜 기기묘묘한 현상을 연출하며 절경을 펼쳐놓고 있다.

 

이 곳 마이산은 옛 신라 때에는 서다산(西多山), 고려시대에는 용출산, 조선 초기에 이르러서는 속금산이라 부르다가, 태종 때에 이르러 마이산이라 부르게 되었다. 『동국여지승람』에 의하면 봉우리 두 개가 높이 솟아 있기 때문에 용출봉, 또는 속금산(束金山)이라고 불렀다고 하는데, 이 산의 특징과 매력은 기묘한 형태로 갖가지 아름다운 형용을 지니고 있다는 점일 것이다. 흔히 동쪽에 있는 봉우리를 숫마이봉, 서쪽에 있는 봉우리를 암마이봉이라 부른다. 숫마이봉 중턱에는 화암굴이 있고, 굴 속에서 솟아올라 오는 맑은 약수를 마시면 옥동자를 잉태한다는 전설이 있다.

 

서쪽의 암마이봉 절벽 아래에는 1백여 기의 돌탑을 쌓은 유명한 마이탑사가 자리 잡고 있는데, 이 탑사는 약 90년 전에 이 고장의 이갑룡이라는 처사가 발원하여 전국 명산의 돌을 몇 개씩 날라다 이곳의 작은 바윗돌과 함께 쌓아 만든 탑이라고 한다. 원래 이갑용 처사는 임실 둔덕 태생으로 어릴 때부터 효성이 지극하여 부모의 상을 당하자 묘 옆에 움막을 치고 3년간 시묘를 했다고 한다. 그 후 전국의 명산을 전전하다 25세 때 마이산에 들어와 솔잎을 주식으로 생식하며 수도를 하던 중에 신의 게시를 바다아 만불탑을 쌓았다고 한다. 낮에는 돌을 나르고 밤에는 탑을 쌓았다고 하지만 여러 가지 정황으로 보아 혼자 쌓은 것이 아니라 여러 사람들의 힘을 모아 쌓은 것이라는 설이 더 유력하다.

 

탑은 거센 폭풍우에도 넘어가는 일이 없으며 단 위에 놓여 있는 정화그릇은 겨울에 물을 갈고 기도를 드리면 그릇 표면으로부터 10`~15cm의 고드름이 솟아오르는 신비한 광경이 연출되기도 한다. 이러한 만불탑이 쓰러지지 않는 것은 석질에 순인력(順引力)이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숫마이봉 남쪽 기슭에는 은수사가 자리 잡고 있고, 맞은편에는 작은 마이산이 서 있다.


『신증동국여지승람』은 이렇게 쓰고 있다.

  마이산은 현의 남쪽 7리에 돌산이 하나 있는데 봉우리 두 개가 높이 솟아 있기 때문에 용출봉이라 이름 하였다. 높이 솟은 봉우리 중에서 동쪽을 아버지, 서쪽을 어머니라 하는데 서로 마주 대하고 있는 것이 마치 깍아서 만든 것 같다. 그 높이는 천 길이나 되고 꼭대기에는 수목이 울창하고 사면이 준절하여 사람들이 오를 수 없고 오직 모봉(母峯)의 북쪽 언덕으로만 오를 수 있다. 전하는 이야기에, 동봉 위에는 작은 못이 있고, 서봉의 정상은 평평하고 샘이 있어서 적병을 피할 수 있고, 날이 가물어 비를 빌면 감응이 있다고 한다. 신라시대에는 서다산(西多山)이라 불렀는데 소사(小祀)를 지내는 곳이었다고 한다. 본조 태종이 남행하야 산 아래에 이르러서 관원을 보내어 제사를 드리고 그 모양이 말의 귀와 같다 하여 마이산이라는 이름을 지어주었다.

신정일의 '다시 쓰는 택리지 복거총론' 내용을 정리

 

마이산 지형의 지질 특성

  마이산은 흙이 하나도 없는 콘크리트 지질로써 두 개의 커다란 역암 덩어리로 이루어져 있다. 흙 한줌 없는 마이산을 본 어떤 미국인이“이만한 산을 쌓을 수 있는 기술은 물론이고 그 엄청난 양의 시멘트를 어떻게 충당했느냐?”하며 혀를 내둘렀다는 에피소드가 전해져 온다.

신정일 '다시 쓰는 택리지'에서

 

 

  마이산을 남쪽에서 보게되면 봉우리 중턱 급경사면에 군데군데 마치 폭격을 맞았거나 무언가 파먹은 것처럼 움푹 움푹 파인 많은 작은 굴들을 볼 수 있는데 이는 타포니 지형이다. 풍화작용은 보통 바위 표면에서 시작되나 마이산 타포니 지형은 풍화작용이 바위 내부에서 시작하여 내부가 팽창되면서 밖에 있는 바위 표면을 밀어냄으로써 만들어진 것으로 세계에서 타포니 지형이 가장 발달한 곳이다.


 

※ 타포니(tafoni)

  타포니는 비교적 건조한 지방의 암석 절벽이나 해안에서 잘 형성되는 구조라고할 수 있다. 외형적으로 보이는 형태가 마치 벌집모양이라고 하여 지질학에서는 벌집구조(honeycomb structure)라고 부른다. 우리 나라에서는 마이산에서 가장 뚜렷하게 관찰되고 있다. 그리고, 울릉도나 제주도 삼방산 절벽에서도 관찰된다. 해안 지역에서 타포니는 주로 염분이 암석의 입자 사이에 들어가 풍화가 진행되면서 시작된다. 풍화가 진행되어 어떤 부분이 상대적으로 약하게 되면 그 곳을 중심으로 풍화가 심화된다. 마이산의 경우처럼 암석이 자갈로 이루어진 경우에 절벽에서 자갈덩어리가 빠져 나오면 그 곳을 중심으로 풍화가 빠르게 진행된다. 마이산의 타포니에서 주의해야 할 것은 하나의 구멍이 점차 커져서 진행되기도 하였지만 작은 구멍이 합쳐져서 지금처럼 커진 경우가 많다. 한마디로 말하면 암석 절벽에서 약한 부분이 풍화가 진행되면서 둥그런 모양으로 떨어져 나가 형성된 벌집모양의 구조라고 정리할 수 있다.

<인터넷에서 펌>

 

 

 

흔적

 

오랜만에 딸내미와 함께 산행을 했다. 먼 길 다녀가는데 아내랑 둘이 가기에는 뭔가 아까운 생각이 들어 딸내미를 꼬드겼더니, 거절하기 어려웠던지 흔쾌히 동참을 해 주었다. 전북 진안에 있는 마이산은 대구에서 쉽게갈 수 있는 곳이 아니기에 내친김에 합미성을 들머리로 진안읍 단양리에 있는 북부주차장까지 종주를 하고 싶었다. 하지만 종주를 하기에는 딸내미가 걱정이 되어 아무래도 우리 욕심대로 할 것이 아니라 딸내미가 다닐만큼 산행을 하는 것이 나을 것 같아 현장에 도착해 우리에게 맞는 코스를 다시 그려 마이산 품속으로 들어갔다.

 

우리가 선택한 코스는 남부주차장을 기점으로 고금성 - 비룡대 - 봉두봉 - 탑사 - 은수사 - 탑사 - 금당사 - 남부주차장으로 원점회귀하는 대략 7.4Km 거리다. 거리가 다소 먼 듯 하지만 우리가 선택한 마이산 코스는 그리 힘든 구간이 아니었다. 물론 오르락내리락 하는 구간이 더러 있었지만, 긴 오름이 없어 크게 힘들지 않았고 안부에 이르면 조망권과 풍광이 사통팔달이라 다소 힘이 들더라도 마이산이 주는 경이로움이 피로함을 금방 잊게한다. 봉두봉을 거쳐 탑사로 내려오는 데 종주 산행을 할 걸 그랬나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산행 후 느낀 마이산의 두드러진 특징은 첫째, 마이산이 가진 암석의 특징과 지질을 들 수 있다. 대체적으로 우리나라 산을 형성하고 있는 바위는 대부분이 화강암을 기반으로 하고 있는데 이 산의 봉우리를 형성하고 있는 암석은 자갈이 굳어져 형성된 역암층으로 구성되었다는 점이다. 둘째, 마이산은 대부분 타포니 지형으로 구성되어 있다는 점이다. 단애의 거대한 직벽 바위에 벌집 모양의 빈 구멍이 곳곳에 동굴처럼 혹은 일부러 파놓은 것 같은 모양을 하고 있다.

 

더욱 신기한 것은 거의 수직에 해당하는 벌집 같은 바위 굴 속에 누가 어떻게 쌓아 놓았는지 나즈막한 돌탑이 무더기로 쌓여 있고, 또 누가 심었는지 크고 작은 나무가 자리를 잡고 서 있다. 참으로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이다. 이성적인 판단으로는 도무지 이해하기 어렵다.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은 이뿐만이 아니다. 이미 90년 전에 이 지방 출신인 이갑용 처사님이 쌓은 돌탑 중 80여기가 아직까지 멀쩡하게 버티고 서 있다. 아무리 강한 비바람이 불어도 위태롭게만 보이는 돌탑이 무너지지 않고 버티고 있다는 사실은 도무지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이다. 올 해만 한반도를 강타한 태풍이 세 번이나 휘젓고 지나가지 않았는가. 돌탑의 석질에 순인력이 작용하여 접착 구실을 한다고 하나 믿기 어려운 사실이다. 이런저런 점을 비추어보아 가히 마이산은 신기가 머물고 있는 신령스러운 산이라 아니할 수 없다.


마이산은 언젠간 방문해야 할 산이었지만, 이번 기회에 딸내미를 데리고 함께 잘 다녀온 것 같다. 너무 먼 길이라 지레 짐작하고 여유 있을 때 가겠노라고 막연하게 생각만 하고 있었는데 아내가 스마트폰으로 검색을 해 보더니 2시간 남짓 걸린다고 한다. 그렇다면 지금까지 우리가 다닌 산보다 시간이 더 걸리는 것도 아니니 충분히 다녀 올 여유가 있는 그런 곳에 있었다. 막상 가보니 마이산 산행과 탑사 기행을 하고도 여유가 있어 내친김에 임실에 있는 옥정호까지 보고 왔으니 대구에서도 마이산은 당일 산행이 충분히 가능한 거리였다. 더구나 산행을 하고도 시간 여유가 있어 먼 길 온김에 아내와 딸내미를 위해서 옥정호까지 보여주고 왔다. 다만, 옥정호에서는 시간이 넉넉치 않아 전망대에 올라 옥정호를 내려보고, 호수 주변을 짧게 드라이버 한 것으로 만족을 해야했지만...

 

아내와 딸내미는 먼 길 온 것이 아까워 하룻밤 유하고 다음날 인근에 있는 모악산도립공원이나 내장산국립공원을 갔으면 했는데 아무래도 무리일 것 같아 오늘은 여기까지 여정으로 만족을 하고 아쉬움을 접었다. 쉽게 올 수 있는 곳이 아니라 아쉬움은 있었지만, 과유불급이라 했으니 이쯤에서 오늘 하루를 마무리 하는 것이 맞을 것 같다. 오늘 하루도 걸으면서 많은 것을 보고 느끼며 공부를 했다. 함께한 딸내미도 느낀 만큼 삶의 지혜가 충만하기를 바란다.

 

 

 

 

스마트폰으로 찍은 파노라마 사진

 

 

 

 

 

 

 

 

 

 

여기서 부터 마이산 산행기 시작부터 끝맺음까지의 사진 이야기가  이어집니다.

 

대구에서 2시간 쯤 달려와 장수-익산간 고속도로에 접어들면 말의 귀처럼 보이는 마이산의 형태가 그 모습을 드러낸다. IC로 빠지기 전 달리는 차 안에서 아내가 찍은 사진

 

전북 진안군 진안읍 남부주차장. 남부주차장에서 산행을 하지 않고 탑사로 바로 가자면 잘 포장된 길을 따라 30~40분 정도 가면 된다. 우리는 탑사 기행과 산행을 겸하기 위해서 남부주차장을 기점으로 고금당 가는 길을 들머리로 정했다.

 

아직 이른 시간인지 매표소에서 부터 시작되는 식당가는 한산하다. 그러나 마이산의 명성에 걸맞게 벌써부터 산객의 발걸음은 분주하게 움직인다.

 

들머리에서 20여 분만 올라가면 고금당이 나온다. 오늘 산행 중 가장 긴 오르막 등반길이다.

 

고금당에 올라서면 마이산의 상징인 암마이봉이 거대한 실체를 드러낸다. 숫마이봉은 암마이보에 가려 보이지 않는다.

 

고금당에도 어김없이 가을의 전령사인 보랏빛 쑥부쟁이가 산객의 발걸음에 발 맞추어 하늘거린다.

 

고금당 나옹암

 

 

나옹암에서 바라 본 금당사와 암마이산

 

고금당에서 바라 본 왼쪽 마이산 전망대(비룡대)와 오른쪽 암마이봉

 

고금당 바로 위에 자리하고 있는 제단

 

세존 진신사리보탑

 

고금당 위 안부에 올라서면 삼거리 이정표가 나온다. 전망대로 가야하는데 글씨가 떨어져 있다. 글씨가 떨어져 있는 방향으로 가면 된다.

 

1984년에 재설한 삼각점

 

아마 올 해 불어닥친 태풍으로 뿌리 째 뽑혀버렸나 보다.

 

시원하게 뻗은 장수-익산간 고속도로 주변의 조망이 한 눈에 들어온다.

 

이태조가 백일기도를 드린 탑사

 

이번 마이산 산행에서는 야생화가 많이 보이지 않았다. 전라도 지방의 특색있는 야생화 구경을 하고 싶었는데 시기가 맞지 않았는지 산길 주변에서는 별로 발견하지 못했다. 주로 다른 곳에서 보던 그런 애들만 보고와 다소 아쉬움이 남는다.

 

아직 만산홍엽이 되기에는 이른 시기라 어쩌다 빨갛게 익은 단풍을 보면 카메라를 들이댈만큼 예쁘고 반갑다.

 

전망대(비룡대)에서 바라 본 고금당. 멀리서도 황금빛 기와가 눈부시다.

 

마이산은 그리 높은 산은 아니지만 능선과 안부에 올라서면 사방이 확 트여 마이산 일대의 전역을 한 눈에 조망할 수 있어 좋다.

 

나봉암에 세워진 팔각정 비룡대.

 

전망대(비룡대)에서 바라본 암마이봉과 뒤로 보이는 숫마이봉

 

나봉암 팔각정 전망대(비룡대)

 

전망대(비룡대)를 뒤돌아 보며

 

멀리서 바라보니 비룡대의 거대한 바위 덩어리에도 타포니 지형이 잘 발달되어 있다.

 

저기 남부주차장에서 골짜기를 타고 고금당을 올라 오른쪽  끝에 있는 전망대를 따라 봉두봉으로 가는 길에 촬영. 봉우리가 모두 콘크리트 지질로 형성된 역암층이다..

 

탑사로 내려가서 돌탑 기행을 하고 인공 호수로 만들어진 탑영제의 좌측으로 돌아나가면 남부주차장으로 환원한다.

 

탑영제. 오리배 한 척이 호수 위를 유유자적하게 노닐고 있다.

 

요즘 산행 시 눈에 띄는 야생화는 구절초와 쑥부쟁이 일색이다. 마이산은 다른 산에 비해 구절초도 그리 흔하지 않다.

 

마이산 암마이봉. 군데군데 패인 벌집 같은 구멍을 타포니라고 한다. 마이산은 세계에서 가장 많은 타포니 지형을 형성하고 있다고 한다.

 

바위 위에 뿌리내리고 있는 저 나무들을 보라. 그 역시 신비롭고 진기한 풍경이다.

 

아깝다. 적지 잖은 세월을 살아왔을텐데 허무하게 뽑혀있다. 올 해는 태풍이 많이 불어와서 그런지 산에 다니면서 이런 처참한 모습을 자주 본다. 안타깝다.

 

남부주차장에서 3시간 정도 산행 후 드디어 탑사에 도착했다. TV에서만 보던 마이산 탑사를 가족과 함께 동행 기행을 하니 무엇보다 감사하기 이를데 없다. 탑사에 다다르니 역시 명성에 걸맞게 많은 사람들로 인산인해를 이루나 평상 시에 비하면 오늘은 많은 편도 아닐 것이다.

 

탑사를 가운데 두고 역암으로 구성된 거대한 바위 덩어리가 바람막이를 하고 있다.

 

거대 암벽에 구멍 뚫린 타포니 지형. 마치 겉에 있는 껍데기가 조금씩 벗겨져 나간 것 같다. 가까이 당겨보니 콘트리트 지형과 다를바 없다.

 

 

 

 

 

노래하는 해운스님. 주로 7080 노래 중심으로 부르는데 실력이 보통이 아니다. 김수철의 내일을 비롯한 스님의 노래를 같이 흥얼거리며 걷는다. 스님이 노래하니 더욱 흥겹고 정겹다.

 

암마이봉 남쪽 아래 위치한 돌탑은 바람에 흔들리나 무너지지 않는 원추형 석탑인 천지탑을 비롯, 외줄탑인 중앙탑 등 80여기의 크고 작은 돌탑이 위엄과 조화의 극치를 이루고 있다.

 

 

마이산 탑사. 마이산은 봄에는 바다에 떠있는 배의 돛 같아 돛대봉, 여름에는 푸른 숲에 우뚝 솟은 형상이 용의 뿔 같아 용각봉, 가을에는 단풍 속 바위 형상이 말귀 같아 마이봉, 겨울에는 흰 눈 속에 솟은 봉우리가 붓 끝에 먹물을 찍은 것 같아 문필봉으로 계절마다 불리는 이름이 다르다.

 

 

여기있는 돌탑은 이갑룡 처사님께서 전국 명산을 다니면서 가지고 온 돌을 여기에 있는 돌과 썩어서 돌탑을 만들었다고 한다. 강한 비바람에도 무너지지 않고 거뜬히 버틸 수 있는 것은 여기있는 돌이 가진 특성인 순인력이 작용하기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돌과 돌 사이의 순인력이 작용하여 접착력을 대신한다고 하나 근 100여 년을 붕괴되지 않고 버티고 있다는 사실은 마이산의 신령스러움이 아니라면 이해하기 쉽지 않다.

 

탑사의 돌탑을 있게한 이갑룡 처사님. 마이산 석탑은 1885년에 입산하여 솔잎 등으로 생식하며 수도한 이갑룡(1860~1957) 처사가 30여 년 동안 쌓아 올린 것이다. 당시에는 120기의 탑들이 세워져 있었지만 현재에는 80기만 남아 있다.

 

대웅전과 그 아래에 자라고 있는 줄사철나무

 

섬진강 발원지 용궁이라고 새겨져 있는데 위에 있는 은수사에도 섬진강 발원지라고 적힌 샘이 있다. 어디가 맞는고...

 

영신각 뒤로 있는 거대한 암벽 덩어리에는 담쟁이와 능소화가 벽을 타고 올라가 한 층 더 그림을 멋있게 그려 탑사의 신령스러움을 돋보이게 하고 있다.

 

시골 마을의 담장이나 경주 양동마을 어느 기와집의 담장에서 흐드러지게 핀 능소화를 본 적이 있지만 이렇게 높고 거대한 직벽 바위를 타고 올라간 능소화 줄기는 처음본다. 이 역시 마이산에서나 볼 수 있는 기이하고 신령스러운 모습이다. 도대체 몇 백년 묵었단 말인가? 상상이 안된다.

 

능소화가 이렇게 줄기를 뻗어 바위벽을 타고 올라갔다. 그 모습이 진기하다 아니할 수 없다. 그러나 이 바위는 역암으로 구성되어 있기 때문에 담쟁이나 능소화가 암벽 사이의 공극에 뿌리를 내리면 풍화가 가속되어 타포니 지형의 더 큰 원인이 되지 않을란지 걱정이 된다.

 

왼쪽 오르막 계단은 은수사로 가는 길이다. 멀지 않으니 생략하지 말고 꼭 둘러보기 바랍니다. 여기까지 와서 귀찮아서 은수사를 둘러보지 않는다면 은수사의 귀중한 역사를 저버리는 결과를 초래하니 꼭 가보시기 바랍니다. 탑사에서 10분 거리에 있습니다.

 

천지탑. 천지탑 앞의 거대한 바위 덩어리는 암마이봉이며 표면은 마치 콘크리트 벽이 오래되어 닳아 버린 것 같다. 이갑룡 처사 님께서 만 3년의 고행 끝에 완성한 탑이라고 한다.

 

 

오방탑

 

삼불미륵단. 이갑룡 처사님께서 직접 조각하여 법당에 모시고 기도를 하던 미륵부처님

 

 

은수사로 올라 가는 길에 영신각을 배경으로

 

거대 암벽에 형성된 타포니 지형. 벌레 먹은 벌집 모양으로 여기저기 굴이 패여져 있다. 이렇게 높고 거대한 직벽에 패여진 타포니에 조그마한 돌탑 무더기와 그 안에 자리 잡고 자라는 나무는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인지 도무지 가늠하기 어렵다.

 

 

태고종인 은수사로 올라가니 숫마이봉의 전모가 드러나고, 숫마이봉은 은수사를 품고 있다.

 

은수사는 숫마이봉을 버팀목으로 절묘한 위치에 자리잡고 있으며 전면에 비로자나불을 모신 대적광전이 있다.

 

대적광전.  절의 법당 중에서 비로자나불을 본존으로 모시는 본당. 

화엄경에 등장하는 주존 부처님인 비로자나부처님을 모신 법당입니다. 비로자나부처님이란 태양의 빛이 만물을 비추듯이 우주의 일체를 비추며 일체를 포괄하는 부처님입니다. 진리의 본체라 하여 법신불(法身佛)이라 일컫기도 하지요. 이 법신부처님은 형상도 없고 소리도 없습니다. 그래서 전혀 설법을 하지 않습니다. 다만 법신불의 미간 백호에서 광명이 비춰 나와 시방 세계의 모든 나라를 드러냅니다. 이렇게 침묵 속에서 찬란한 진리의 빛을 발한다 하여 이 법신불을 모신 큰법당을 대적광전, 적광전, 대광명전(大光明殿), 보광전(普光殿)이라고도 부릅니다. 비로전(毘盧殿)이라는 명칭도 있습니다.                                                                                      다음 지식에서 <펌>

 

아미타불을 모시는 무량광전

 

가을꽃의 대표적인 그 흔한 꽃향유도 보기 어렵더니 은수사 쪽에 오니 더러 보인다.

 

마이산신제를 지내는 제단

 

 

 

은수사에는 마이산신제를 지내는 제단이 마련되어 있다.

 

마이산신각

 

은수사 장독대. 절에서 보는 장독대는 웬지 정감이 가고 마음이 끌린다.

 

아래 탑사에도 섬진강발원지가 있고, 여기 더 위에 있는 은수사에도 섬진강발원지가 있다. 거의 같은 지점에 두군데 발원지가 있으니 어느 곳이 맞는지... 탑사와 은수사의 종파가 서로 달라서 그런지 언뜻 이해가 가지 않는다.

 

 

은수사의 청실배나무. 천연기념물

 

 

왼쪽(서쪽) 암마이봉, 오른쪽(동쪽) 숫마이봉

 

왼쪽(서쪽) 암마이봉, 오른쪽(동쪽) 숫마이봉 사이로 은수사가 있다.

 

은수사에서 탑사로 다시 내려오면서 탑사의 일부 정경을 바라본다.

 

 

탑사의 오방탑과 천지탑

 

내려오면서 해관스님의 구수한 노래 소리에 피로를 씻고, 탑사에서의 돌탑 기행을 마무리하며 아쉬운 발걸음을 돌린다.

 

 

탑사에서 남부주차장으로 하산하는 길에 인공호수로 만들어진 탑영제가 있다. 

 

탑영제를 감싸안은 마이산을 배경으로

 

금당사로 오는 길에 기와로 덮인 담길따라 걷는 발걸음이 정겹기만 하다.

 

금당사 대웅보전.  대웅전은 석가모니부처님을 모신 법당이다. 석가모니부처님은 모든 번뇌를 쓸어버리고 깨달음을 얻었기에 위대한 승리자요 위대한 영웅이라 했다. 그래서 대웅(大雄)이라 불렀으며 이 분을 모신 곳을 대웅전이라 이름 한 것이다.

보통 석가모니부처님 좌우에는 협시보살이나 다른 부처님이 모셔져 있다. 석가모니부처님 좌우에 아미타부처님과 약사여래가 자리 잡고 있을 경우 그곳은 격을 높여 대웅보전(大雄寶殿)이라 부르기도 한다.

 

금당사는 남부에 위치한 사찰로 보물1266호 괘불탱화와 그 외 문화재 2점을 보유하고 있는 백제 고찰이다.

 

 금당사는 1천300년의 전통을 지닌 백제의 고찰로서 호남 동부권의 대가람일 뿐만 아니라 고려말에는 나옹화상이 수행하며 도를 이룬 곳으로도 유명하여, 금당사 옛터인 천연동굴은 나옹굴(懶翁窟)이라 불려지고 있습니다.

 

 

입산할 때는 한산하더니 내려오는 길에는 많은 사람들로 북적댄다. 식당도 많은 손님들로 성업 중이다.

 

늦은 점심을 해결한 식당 한 곳에 주렁주렁 매달려있는 수세미

 

전북 임실 옥정호.  마이산 산행과 탑사 기행을 마친 후 시간에 여유가 있어 먼 길 다시 오기 쉽지 않아 마이산 남부주차장에서 30분 거리에 있는 옥정호를 찾았다.

 

옥정호 구절초 테마공원을 찾고 싶었지만 그러기엔 대구로 되돌아갈 시간이 여의치 않다. 아쉽지만 전망대에서 옥정호의 전경을 보는 것으로 만족해야 했다.

 

대구로 가는 길에 옥정호 주변을 드라이버 하면서 아내와 딸내미랑 함께한 마이산 여정을 마무리 한다. 이제 올라 갈 길이 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