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백산 일대 야생화 산행
- 풍경 사진 위주 -
■ 언제 : 2017. 7. 26.(수)
■ 어디로 : 함백산 일대, 만항재, 5대적멸보궁 정암사
■ 누구랑 : 아내랑
■ 탐방 경로 : 두문동재 - 은대봉, 승용차로 만항재 아래 함백산으로 가는 삼거리로 이동 - 함백산 정상 - 주목 군락, 만항재 야생화 정원 탐방, 정암사 탐방
흔적
자, 떠나자 태백으로~
방학한 다음날 지리산 성삼재-피아골 구간을 다녀왔다.
이삼일 정도 걸려 피아골 산행 후기를 마감하고, 예약했던 건강검진까지 했으니
또 어딘가 산이 있고, 꽃이 있는 곳을 찾아 떠나야 하지 않겠나?
어디 갈 지는 이미 계획이 선 터라 26일 아침 일찍 길을 나섰다.
딸아이가 여름휴가를 제주로 간단다.
그래서 딸아이 휴가 출발 날짜에 맞춰 산행 계획을 잡았다.
딸아이는 4박 5일 제주에 머무르고 우린 2박 3일 동안
강원도 태백에서 하루 정선에서 하루 머무를 예정이다.
가는 길에 딸아이를 공항까지 태워 주고,
딸아이가 휴가를 마치고 돌아오면 집에 먼저 도착한 우리가
공항으로 딸아이를 데리러 갈 수 있게 그렇게 날짜를 맞추었다.
이번 강원도 태백방면 산행 계획은 이랬다.
첫날은 이래저래 시간이 많이 지체되어 장거리 산행이 어려울 것 같아
비교적 가볍다고 판단한 두문동재에서 은대봉을 지나 함백산 넘어 만항재로 갈 생각이었고,
두 번째 날은 다소 여유가 있어 두문동재에서 금대봉을 지나
분주령에서 대덕산을 넘어 검룡소로 갈 생각이었다.
그렇게 하고도 시간이 된다면 마지막 3일차 일정으로 생각했던 정선 하늘길까지 돌고
3일 동안의 계획을 이틀로 해치울 생각이었다.
3일 계획이 이틀로 되지 않을 경우에는 어차피 3일간 계획을 하고 왔으니
일정에 따라 태백에 있는 낙동강 발원지 황지연못과 용연동굴을 돌아볼 참이었다.
드디어 두문동재로 왔다.
첫 날은 계획대로 무리 없이 착착 진행되었다.
대구에서 바로 두문동재로 가 두문동재 아래 간이매점에 주차하고 은대봉으로 갔다.
길 건너 반대편은 금대봉과 대덕산으로 가는 길이다.
그 길은 내일 우리가 갈 길이다.
두문동재는 몇 년 전 박대감과 이실장 부부랑 관광버스를 이용해
금대봉으로 해서 바람의 언덕이 있는 매봉산과 삼수령까지 간 적이 있다.
한 번 다녀간 곳이라 눈에 익어 그런지 낯설지가 않다.
두문동재(杜門洞嶺)는 싸리나무가 많아 싸리재라고 불리기도 하며,
해발 1,282m에 위치한 포장이 잘 된 도로로
태백시 삼수동에서 정선군 고한리로 넘어가는 고개 만댕이에 있다.
대부분 잘 알고 있는 함백산을 경계로 하자면,
남쪽 화방재 방향으로 만항재가 있고,
북쪽 은대봉 방향으로 두문동재가 있다.
만항재가 해발 1,330m로 우리나라에서 차가 다니는 가장 높은 고개이며,
두문동재 역시 그에 버금가는 해발 1,282m의 고산준령으로 도로가 잘 놓여 있다.
두 고개는 명실상부한 우리나라에서 차가 다니는 가장 높은 도로로 잘 알려져 있다.
높이래야 고작 18m밖에 차이가 나지 않는다.
행정 구역상으로는 만항재가 영월군 상동읍에 속하고
두문동재가 정선군 화암면 백전리에 속해 서로 멀리 떨어진 것으로 여겨지나
산을 타는 사람의 시선으로 봤을 땐 함백산을 경계로 산하나 사이에 있다.
물론 고산(高山) 하나를 비켜가자면 그도 여사 일이 아니지만,
만항재와 두문동재가 워낙 높아 산을 하나 넘는 것쯤은 크게 힘든 일도 아니다.
말하자면 행정 우위를 다툼하는 관계 기관에서 행정 우월을 과시하는 편의에 따라
우리가 제일 높다란 식의 도토리 키 재기를 할 필요가 없다는 말이다.
도긴개긴이라는 말은 여기에 어울리는 말이 아닐는지.
두문동재란 고개 이름의 유래
두문동재란 이름을 처음 접했을 때 막연하나마 그 이름에서
뭔가 애틋한 냄새가 풍겨왔다.
‘두문동’에서 두문불출이 연상된 것이다.
내친 김에 두문동재란 고개의 유래를 살펴보고 가자.
내용인 즉 가볍게는 고개 너머 정선 땅에 두문동이라는 자연부락이 있어
그곳을 넘어가는 고개라 하여 두문동재라 하였다 하나 더 깊이 내용을 알아보면
그 이름에 칼을 댄 역사의 비운이 서려 있음을 알 수 있다.
자료를 조사하던 중 마침 “『함께 사는 길』(97/10월호)”에 소개된
김하돈의 글이 인터넷에 실려 있는 내용을 찾았다.
가장 설득력 있는 내용이라 사료되어 토씨 하나 고침 없이 소개하면
“두문동(杜門洞)은 본래 개풍군의 지명이다.
개성 송악산 서쪽 자락 만수산과 빈봉산에 각각 두 곳의 두문동이 있었다.
『개풍군지』를 들추어보니 만수산의 서두문동에는 고려의 문신 72인이 은둔했고,
빈봉산의 동두문동에는 무신 48인이 숨어 살았다 한다.
전설을 따르자면, 회유에 지친 조선의 태조는 끝내 그 두 곳의 두문동에 불을 질렀다.
많은 이들은 그렇게 불에 타 죽고 살아남은 일곱 충신이 흘러간 곳이
바로 정선의 고한 땅이었다. 또한 변함없이 두문불출하였으니 이름 역시 두문동이다.”
「개풍군지」란 사료에 입각하여 내용을 쓴 것 같아 믿음이 간다.
불을 질렀을 때 죽지 않고 살아남은 충신들이 목숨을 연명코자 저 북녘 멀리 개풍에서
고한까지 숨어들어 두문불출하였다 하여 그들이 살고 있던 곳을 두문동이라 했으며,
고개 이름은 그에 따라 자연스럽게 두문동재가 된 것이다.
두문동재는 앞서 얘기했지만, 싸리나무가 많아 ‘싸리재’로 불리어졌다고도 한다.
아직도 두문동재는 싸리재와 함께 병용하고 있다.
이 지역에 오래 거주하신 어르신들은 습관적으로 ‘싸리재’라 부르는 것 같다.
검룡소에서 두문동재로 올 때 택시 기사분도 두문동재로 가자고 했더니
대번에 싸리재라 말씀하셨다.
사설이 너무 길다.
산에 한 번 다녀오면 뒷감당이 너무 힘들어
앞으로는 주요 골자만 기록해야겠다고 늘 생각하지만,
그것도 기술인지 능력인지 잘 안 된다.
쓰다 보면 이야기 거리가 고무줄처럼 줄줄 늘어나고 기찻길처럼 자꾸 연결된다.
아무래도 능력이 한계에 다다른 모양이다.
두문동재에서 은대봉까지
만항재는 여러 번 갔었고 함백산은 정상까지 딱 한 번 올라간 적이 있다.
그때는 만항재에서 함백산으로 갔다.
오늘은 두문동재에서 함백산으로 간다.
예전과 거꾸로 가는 것이며 은대봉으로는 처음 가는 길이다.
은대봉까지는 산책길 수준이다.
해발 1442.3m인 고봉을 산책길이라니 도시(都是) 이해하기 어려울 것이다.
하지만 산이 높은들 어떠하리.
들머리가 해발 1,282m이니 두문동재에서 은대봉으로 가는 길은 여반장일 수밖에.
초입부터 솔나물과 꽃층층이꽃, 마타리, 동자꽃, 짚신나물이 환영인사를 한다.
마타리는 가녀린 줄기에 가는 곁가지를 뻗어 노란 꽃을 매달고
지 몸을 흔들며 반갑다고 강아지처럼 꼬리를 살랑살랑 흔든다.
첫 발을 떼자마자 마음이 동요되고 바람에 나부끼는 마타리처럼
내 마음도 흔들린다.
꽃을 찍으며 여유 있게 가도 은대봉까지야 식은 죽 먹기다.
은대봉에서 함백산 가는 길은 이같이 쉽기야 하겠나 만은
남은 시간으로 봐선 충분하다.
먼 길 달려왔어도 아직 이 정도로는 끄떡없다.
난, 이 길을 걷고 싶었다.
오늘은 날씨도 엄청 시원하다. 현재 기온이 27℃ 밖에 안 된다.
대프리카의 실내온도 32~33℃에 비하면 여긴 천국이나 진배없다.
마침 은대봉의 날씨가 선선한 가을 날 못지않다.
하늘도 높고 푸르다.
파란 하늘에 하얀 뭉게구름이 무척 잘 어울리는 축복 받은 날이다.
하지만 날씨가 이렇게 부조를 함에도 아내는 나랑 마음이 다른 모양이다.
내일 또 금대봉으로 가야하니 은대봉에서 함백산으로 가기 싫은 모양이다.
자꾸 만항재로 가 함백산을 오르자고 한다.
그거나 저거나 매양 일반인데 나 원 참!
그 길은 예전에 한 번 다녀간 길이라 난 꼭 이쪽으로 가고 싶은데,
아내가 싫다고 하니 어쩔 도리가 없다.
아쉬운 마음에 가던 길 조금만 더 가보자며 300m쯤 가다가 돌아섰다.
만항재에서 함백산까지
차를 가지고 만항재가 있는 함백산으로 갔다.
예전에 갔던 추억을 되새기며 슬금슬금 가노라니 그 때는 겨울 언저리라
함백산에서 꽃을 본 기억이 없다.
눈 쌓인 길을 걸으며 함백산이 주는 산 너울만 푸지기 보고 왔다.
그런데 오늘은 다르다.
하늘이 맑고 푸른데다 바람마저 시원하기 그지없다.
게다가 내가 바라던 야생화가 울긋불긋 지천이다.
하지만 꽃은 많아도 그닥 특별한 친구는 없다.
긴산꼬리풀도 동자꽃도 노루오줌도
요즘 같은 여름이면 어딜 가도 흔하디흔하지만,
우리나라에서 여섯 번째 높은 산에서 봐서 그런지 오감이 다르게 작용할 뿐이다.
흔한 동자꽃도 노루오줌도 여기선 그냥 셔터만 누를 일이 아니다.
저 너머 보이는 산그리메를 배경으로 주제를 잘 살리면 작품이 그려진다.
능력은 안 되지만, 그리 해봤다.
하지만 능력이 일천해 요리조리 담아 봐도, 생각대로 그림이 잘 그려지지 않는다.
주목나무 군락지로 내려갔다.
함백산은 주목 군락지가 압권이 아니던가?
눈에 보이는 주목 하나하나 가슴에 담고, 그 여운을 남기기 위해
주목 특유의 늠름한 자태를 기계 속으로 빨아 당겼다.
멀리 매봉산 바람의 언덕에 세워진 풍력발전기의 날개가 멋진 배경이 된다.
지난 번 똑딱이를 가지고 왔을 때에 비하면 오늘은 300mm 망원이 아니던가?
돈 값이 기계 값 대신한다 싶다.
맑고 푸른 날 함백의 정상 기슭에 천년을 산 주목의 당당한 모습은
과연 말로 형용하기 어려울 지경이다.
그 앞에 서 있는 것만으로도 심장이 멈출 지경이다.
이런 모습을 보자고 그 멀리서 여기까지 온 것이 아니던가?
오늘로 함백산에서 두 번째 대하는 주목이지만
볼 때마다 경이로운 마음이 드는 것은 어쩔 도리가 없다.
이건 비단 나만이 가지는 사치스런 감흥은 아닐 것이다.
갑자기 아내가 주목은 겨울에 보는 것이 훨씬 낫다고 한 마디 툭 던진다.
한창 신이 나 사진기 셔터를 누르느라 여념이 없던 나도 순간 그런 생각이 들었다.
지금까지 우리가 봤던 주목은 주로 겨울이 한창이거나
지난번에 여기 함백산에 왔었던 것처럼 겨울 언저리였다.
죽은 듯 살아 있는 천년나무에 눈이 덮인 모습은 가히 상상을 초월한다.
그 어떤 예쁜 꽃도 고귀한 나무도 이에 비할 바가 아니다.
함백산에서도
태백산에서도
덕유산에서도
계방산에서도
눈이 소복하게 쌓인 겨울날의 주목과 마주섰다.
운문산에서
소백산에서
가리왕산에서 만난 주목은 겨울이 아니었다.
가만히 비교해 보니 역시 주목은
오늘 아내가 말한 것처럼
겨울날 죽은 듯 살아 있는 천년 고목에 눈 덮인 모습이 제일 잘 어울린다 싶다.
만항재 야생화 분위기와 정암사 탐방
태백에 전지훈련 온 성부장이랑 만날 시간이 가까워온다.
성부장은 오늘 애들이랑 태백산을 오르며 산악 훈련을 다녀온 후
늦은 시간에 계곡으로 애들을 데리고 흘린 땀을 씻기고 있단다.
6시 30분 경 태백에서 만나기로 했다.
갑자기 마음이 바빠진다.
만항재로 돌아와 만항재 야생화 정원도 돌아봐야 하고
우리나라 5대 적멸보궁인 정암사도 들러야 한다.
물론 다 가본 곳이지만, 다음에 또 올 기회가 막연한지라
온 김에 둘러볼 건 다 둘러봐야 한다.
오늘 야생화 촬영은 충분했으니 꽃 욕심은 버리고
후다닥 빠른 속도로 만항재 야생화 정원을 거닌 후 정암사로 갔다.
일주문을 들어서자 적멸보궁 뒤 산자락에 수마노탑이 서 있는 모습이 보인다.
오늘은 저기까지 올라갈 시간이 없다.
이때 300mm 망원이 진가를 발휘한다.
당겨 찍었더니 처음 왔을 때 가지고 다녔던 똑딱이에 비할 바가 아니다.
가까이서 찍은 듯 화면 가득 수마노탑이 자릴 잡았다.
정암사 수마노탑은 보물 제 410호로 자장율사가 세웠다고 한다.
수마노탑에는 석가모니의 진신사리를 모신 사리탑이 있기에
수마노탑 아래 적멸보궁에는 부처님이 없다.
신라의 고승 자장율사가 세우고 주석(駐錫)하시며 입적한 곳이 정암사다.
문수보살을 애태워 기다리던 스님(자장율사)이
허름한 옷차림으로 나타난 문수보살을 끝내 알아보지 못하고 돌려보낸 과오를 범하자
그로인해 아상(我相)을 버리지 못한 잘못을 깨닫는다.
희대(稀代)의 고승인 자장율사도 아상을 버리지 못한 잘못을 저지르고 만 것이다.
무엇이 고매한 고승을 질책하게 했는지
결국 자장율사는 아상의 상징인 육신을 내려놓고
자기가 창건한 정암사에서 입적을 하며 아상을 소멸하고 열반에 들었다.
아내가 부처님께 문안 인사드리는 동안
난, 정암사 자장율사 주장자를 세심하게 살폈다.
지난 번 다녀갔을 때 세심하게 살피지 못한 부분이 아쉬워
그 부분을 특별히 관심 있게 살폈다.
자장율사 주장자는 전설에 의하면 1,300년 전
자장율사가 꽂았다는 지팡이가 자라 주목이 되었다고 한다.
물론 지팡이에 새 생명이 돋아나 천년이 넘게 살고 있는 것은 아니겠지만,
자장율사가 입적하기 전에 심은 주목일 것이라고 추정하기도 하니,
굳이 전설과 예측의 진위 여부를 따져 맞고 맞지 않음을 따질 일은 아니라고 본다.
그런 맥락으로 접근하면 정암사 적멸보궁에 있는 자장율사 주장자는
결코 자장율사를 떠나서는 생각할 수 없다는 점이다.
정암사 자장율사 주장자의 신비로움은
죽은 나무가 속을 다 드러내고 껍질만 남았는데
그 속을 비집고 새로운 생명이 움터 자랐다는 것이다.
지금까지는 죽은 바깥 껍질이 오랜 세월을 거치며,
그 속에서 새로운 심지를 뿌리 내리며 자라는 주목을 보호하듯 감싸고 있었는데
이젠 세월의 무게를 감당할 수 없는지 속심지에 밀려 껍질이 떨어져 나가고,
이제 그 껍질도 일부만 남아 있는 상황이다.
난, 그 점을 유심히 지켜보며 사진기로 방향을 바꿔가며 촬영을 했다.
아마, 언제가 될지 모르겠지만, 그때 다시오면
저나마 남아 있는 빈 껍질도 다 떨어져 나갔겠지.
그 모습을 보면 아둔한 내가 아상을 내리고 업장을 소멸할 수 있을지...
태백에 전지훈련 온 성감독과의 만남
부랴부랴 태백으로 달렸다. 7시가 넘었다.
애들 데리고 훈련을 마친 성부장이 막 도착했던 모양이다.
저녁을 먹기 전에 성부장한테 부탁했던 숙소부터 해결하러갔다.
위치는 태백역 가까이 허름한 모텔이었는데 모텔로 들어가는 양쪽 입구에는
공사를 하느라 길을 막아 차가 들어갈 수 없는 상황이다.
보아하니 숙소도 허접한 것 같고 주차할 곳도 마땅치 않아
따로 숙소를 정하기로 하고 일단 저녁부터 먹었다.
식사를 한 후 태백까지 애들 전지훈련을 온 성부장이
우리 땜에 신경이 쓰일까 싶어 숙소는 우리가 알아서 할 테니 신경 쓰지 말라며,
극구 만류하는 성부장을 떨쳐내고 사북으로 갔다.
애들과 함께 훈련 온 감독을 우리로 인해 일정에 차질이 생기게 해서는 안 될 일이다.
요즈음 태백에는 숙소 구하기가 어렵단다.
고원에 자리한 도시라 여름이면 시원해 전국 각지에서
전지훈련을 태백으로 많이 오는 모양이다.
축구, 사이클, 육상 등 각 종목마다 태백에 훈련을 온 것이다.
성부장이 숙소가 마땅한지 다녀올 때쯤
마침 좀 괜찮아 보이는 호텔에 방이 있었다.
하룻밤 유하는데 70,000원이라고 했다.
에이! 하룻밤 잠만 자면 되는데 뭔 70,000원씩이나 주고 잔단 말이야.
아내나 나나 마치 독심술이 통한 것 마냥 고개를 가로 저었다.
예기치 않았던 선택으로 인한 기분 잡침
사북으로 넘어갔다.
거기는 좀 싸지 않겠나 싶었다.
평일이라 그런지 사북에는 예상보다 숙소가 많았다.
태백에서 좀 괜찮아 보이는 호텔 간판을 단 곳이 70,000원이었고,
사북에서 새로 구한 숙소는 그보다 좀 못했지만 50,000원이었다.
아내는 차에 있으라 하고 혼자 내려 우리가 주차한 바로 앞에 숙소를 정한 후
숙소를 정했다고 아내에게 전화를 했다.
그리고 바로 옆으로 차를 옮기라고...
에이! 그런데 오늘 여기서부터 일진이 꼬여도 더럽게 꼬였다.
차를 옮기려던 아내와 앞서 달리던 차량과의 경미한 접촉 사고가 난 것이다.
사고 현장에서 경찰에 신고할까 하다가
먼 객지에 와 번거롭게 할 필요가 있겠나 싶어 그러지 않았더니
결과적으로 보아 경찰을 부르는 것이 백번 옳았다.
분명 쌍방과실이었음에도 100% 다 뒤집어썼다.
객지라 해꼬지 당할까 봐 보험에 다 맡겼더니
결과는 100% 이상 과실을 뒤집어 쓴 것이다.
상대 운전자도 사고 당시에는 수더분하고 고분고분하더니
다음 날 말을 완전 뒤바꾸어 버린다.
분명 양쪽 보험사에 출동한 사람들과 주변에 사람들이 많이 모여 있을 때는
그렇게 말하지 않더니 하룻밤 사이에 말하는 내용이 싹 달라진 것이다.
보험사는 도대체 뭔 조사를 하는지 모르겠다.
우리가 많이 뒤집어쓰면 내가 가입한 보험회사 측이 돈을 더 내야 되는데
그런 건 아랑곳하지 않나 보다.
멀리서 좋은 산에 와 힐링 잘하고 막판에 이게 뭔 날벼락인지...
절에 다니지는 않지만, 정암사까지 가서 수마노탑을 한 바퀴 돌지 않아
벌을 받았나 싶기도 했다. 그래도 아내는 적멸보궁에서 절도하고 헌금불사도 했는데...
숙소도 겉에서는 깨끗해 보이더니만 안에 들어가니 썩 좋아 보이지 않는다.
기분이 더러워 편의점으로 가 캔 맥주 두 깡통을 샀다.
안주는 집에서 가져온 오징어가 있었기에 그냥 술만 샀다.
이런, 오징어와 안주 될 만한 것은 모두 차에 두고 왔다.
내려가기 싫어 그냥 캔을 땄다.
아내한테 ‘한 캔 할래.’ 했더니 고개를 내젖는다.
혼자 안주도 없이 홀짝 홀짝 마시니 맛도 없다.
억지로 마셔야 잠을 좀 잘 수 있을 것 같아 마셨는데도 두 캔 다 못 마시겠다.
한 캔 반 정도마시고 잠자리에 들며
아내한테 한 마디 했다.
‘그래도 다행이다.’
‘우리가 산을 그렇게 다녔어도 언제 사고 같은 사고 난 적이 있었나?’
이건 앞으로 자만하지 말라고 경고를 주는 것이라며
‘사고 같지 않은 사고에 오히려 감사하자.’
‘잠이나 푹 자자.’
‘그라고 내일 일찍 일어나 예정대로 산이나 가자.’
아내는 내 말에 모두 순응을 하며 고개를 끄덕였지만,
나도 그렇고 아내도 그렇고 잠들기 전까지
잊을 만하면 한 마디씩 던지곤 한다.
‘에이, 김 팍 샜다.’
억울해서 쉬 잊히지 않는 모양이다.
사진으로 보는 은대봉과 함백산
두문동재(杜門洞嶺)는 한 때 싸리나무가 많아 싸리재라고 부르기도 했으며, 해발 1,282m에 위치한 포장이 잘 된 도로로 태백시 삼수동에서 정선군 고한리로 넘어가는 고개 만댕이에 있다.
두문동재탐방지원센터. 여기서부터 검룡소 구간까지 탐방지원센터는 모두 세 곳이다. 두문동재와 금대봉 그리고 검룡소 세 군데가 있다. 여기 근무하시는 분들은 모두 연세가 지긋하신 어르신들로 팀이 짜여져 있었다. 지역의 명망있는 분들을 추대해 안내 역할을 맡겼다고 하는데 평소 연륜이 깊으신 분들을 모시고 태백을 찾는 산객에게 좋은 인상을 심어주기 위해 노구를 이끌고 봉사를 하신다. 국공 산하 젊은이들도 물론 잘 하겠지만, 이 분들은 넉넉한 연륜만큼 지역을 사랑하고 봉사하는 마음이 남다름을 느꼈다.
첫 날은 아래 진행도로 가고자 했다. 하지만 아내의 반대에 부딪혀 은대봉에서 조금 더 가다가 다시 돌아와 함백산으로 갔다.
은대봉이 해발고도가 높다. 무려 1,400m가 넘는다. 그래도 두문동재에서는 산책길에 불과하다.
초입에 들어서자마자 짚신나물, 동자꽃이 즐비하게 늘어졌다.
길이 얼마나 좋은가? 여기 살면 날마다 오고 싶은 길이다.
동자꽃, 노루오줌이 가는 길을 열어준다.
좁쌀풀도 두문동재부터 쫙 깔렸었다.
이내 은대봉에 올라선다. 마타리가 보초를 섰군.
마타리가 천지삐까리다.
풍력발전기 돌아가고 있는 오른쪽 봉우리가 매봉산이고 그 주변이 바람의 언덕이다. 바람의 언덕에는 고랭지 배추밭이 있는데 배추밭의 규모가 무려 43만평에 달한다고 한다. 실로 엄청난 재배규모다.
노루오줌을 바라보면 아상을 떨쳐내고 있나요.
된장잠자리가 평화롭게 쉬고있다.
개망초에 앉은 나비도 평화롭긴 마찬가지고~
이 높은 봉우리를 거저 먹었다.
기념 촬영은 빼 먹을 수가 없죠.
난리났네. 이거 모두 개구릿대(지리강활) 같은데...
키가 쭉쭉 뻗은 마타리
300mm 렌즈 기능을 테스트할 겸 진하게 댕겨본다.
등골나물
두문동재에서 만항재로 돌아왔다.
만항재 야생화 동산 구경은 나중에 하기로 하고 먼저 함백산부터 찾는다.
긴산꼬리풀
구름패랭이
노루오줌
동자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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