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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행방

지리산 성삼재에서 피아골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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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시로 스마트폰에 폭염 예보를 날리는 기상청

그럼에도 아내와 난 성삼재에서 피아골로 갔다.



■ 언제 : 2017. 7. 20.(목) 집에서 새벽 5시쯤 출발

■ 어디로 : 지리산으로

■ 누구랑 : 아내랑

■ 산행 경로 : 성삼재 - 노고단 고개 - 노고단 - 노고단 고개 - 돼지령 - 피아골 삼거리 - 피아골 대피소 - 표고막터 - 직전마을

■ 산행 거리 : 대략 12km쯤




흔적

 

지리산 성삼재에서 피아골 가는 길!

 

지리산, 그 넓은 품속을 속속들이 알려면 멀고도 험한 길이지만,

그래도 지리산이 자랑하는 유명한 산행 길은 웬만큼 간 편에 속한다.

그리 말해도 되는 건지 모르겠다만...

 

아내랑 지리산을 처음 갔을 때가 2011726일이다.

벌써 6년이란 세월이 지났다.

6년 전 중산리를 시작으로 천왕봉을 다녀온 후

띄엄띄엄 다닌 게 이젠 마치 밀린 과제 해결하듯

일 년에 한 두 번은 지리산을 찾는다.


그동안 지리산 어디 어디 다녔는지 그 족적을 살펴보니

중산리에서 천왕봉

백무동에서 천왕봉

성삼재에서 반야봉과 뱀사골

성삼재에서 만복대를 거쳐 정령치

성삼재에서 노고단 여러번

뱀사골에서 와운마을 천년송

남원시 운봉읍 용산리에서 바래봉

함양군 마천면 추성리 칠선계곡

지리산 남부능선 청학동 삼신봉

그리고 성삼재에서 피아골

그밖에 일기불순으로 인하여 갔다가 불발로 그친 적 몇 번

 

따져보니 나름 꽤 다닌 편이다.

내 고장 팔공산 다음으로 가장 많이 갔다.

물론 지리산 꾼들에 비하면 조족지혈인 건 분명한 사실이지만...

 

이번 지리산행은 피아골을 겨누었다.

마음 같아선 피아골을 찾는 숙연한 마음으로 피땀 흘리며 힘든 곳을 찾아 올라야 했지만,

도무지 자신이 없어 내 능력에 맞는 편한 길을 선택했다.

그 길이 성삼재에서 돼지령을 지나 피아골삼거리에서 피아골로 빠지는 길이다.


, 그럼 성삼재로 출발해 볼까요.

 

새벽 5시쯤 아내가 일어나더니 오늘 지리산을 갈 수 있단다.

아내가 일찍 일어나면 갈 수 있고, 일찍 일어나지 못하면 나도 못 간다.

아침에 일어나봐야 알 일이라 못 갈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아내가 일어났다고 통보하니 꾸물거릴 여유가 없다.

일어났어란 한 마디에 그래라며 반사적으로 튀어 올랐다.

 

성삼재에 도착하니 8시가 넘었다.

주차장으로 들어가면 하루 온 종일 주차비가 장난이 아닐 텐데

그렇다고 도로변 옆구리에 슬쩍 주차하고 다녀오기엔 시간이 너무 길다.

피아골에서 버스를 이용해 교통비를 절약하자며,

아직은 텅 빈 주차장으로 들어갔다.

 

성삼재에서 노고단으로

 

성삼재에서 노고단은 지리산에서 가장 무난한 길이다.

지리산을 가고 싶은데 힘이 부치는 사람

꽃 사냥을 즐기고자 하는 꽃님들에겐 환상적인 길이다.

지리산이라면 어디 간들 꽃이 없으랴마는

노고단은 큰 고생을 시키지 않고 쉽게 꽃길을 열어준다.

그 덕에 나도 여긴 자주 가는 편이다.

 

임도로 가는 편안한 길은 멀리 돌아가야 해

노고단고개로 가는 오르막을 바로 치고 오른다.

여기 오면 늘 그렇게 가는 길이다.

오르막이래야 짧아 그렇게 힘들지는 않으나 노고단고개까지 가는 길은

그래도 여기가 나름 힘들다면 힘든 곳이다.

그런데 오늘은 이 오르막이 전혀 힘들지 않다.

가는 길이 지리산에서만 자라는 우리나라 특산인 지리터리풀 지천이다.

마치 길가의 가로수처럼 늘어져 있다.

 

지리터리풀은 이 산 저 산에서 보는 일반 터리풀과 색감부터 다르다.

장미과(Rosaceae)에 속하는 여러해살이풀로 짙은 자홍색을 띤

지리산 일대에 서식하는 특산종으로 그 희귀성이 인정되어 보호 받고 있는 식물이다.

오늘은 그 귀한 지리터리풀의 자홍색 빛과 내내 함께하는 행복을 누린다.

 

노고단대피소에는 산객이 별로 눈에 띄지 않는다.

아무래도 폭염주의보가 내린 요즘 날씨라 발걸음이 뜸한 모양이다.

그래도 우리는 폭염에 구애받지 않았다.

산에 오면 오히려 선풍기를 돌리거나 에어컨 바람을 맞는 것 보다

더 낫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실제로 그랬다. 노고단고개에서 지리산 주능선을 걷는 길은 더위랑 전혀 관계없었다.

오히려 능선에 부는 바람이 더욱 시원하기만 했다.

우린 그걸 알기에 더위쯤이야 아랑곳 하지 않고 길을 나선다.

 

노고단고개에 다다르니 노고단으로 올라가는 초입부터 구름패랭이가 운집해 있다.

홍자색을 띤 구름패랭이는 석죽과에 속하며 고산지대 산기슭 양지 바른 곳에 자란다.

데크를 따라 올라가는 길 내내 구름패랭이가 무리지어 피어 있다.

마치 구름패랭이와 어울리기라도 하듯 구름이 산자락을 덮었다 열었다 한다.

운무와 더불어 어우러진 구름패랭이의 군집이 가관이다.

 

지리산 노고단하면 노란 원추리를 빼 놓을 수 없다.

노고단의 대표적인 꽃이랄 수 있다.

원추리야 우리 동네 가까운 산에서도 흔하게 보는 꽃이지만,

지리산에서 보는 원추리는 그 감흥이 다르다.

지리산을 배경으로 한 노고단 원추리 사진을 전문으로 찍는 작가들이 어디 한 둘이던가?

 

노고단으로 가는 길 내내 구름패랭이가 한 몫을 한다.

노란 기린초도 나도 질세라 자기 존재감을 드러내고

노고단의 터줏인 원추리도 마냥 멋지기만 하다.

여름꽃을 대표하는 흔한 원추리가 이렇게 멋있어 보이는 건

아마, 가까운 동네에서 본 것이 아니라 여기가 지리산이기 때문일 거다.

 

노고단은 지금 운무를 추고 있는 구름에 가려 시야가 전무하다.

전망대에 서서 섬진강을 바라보는 모습이 압권인데 오늘은 틀렸다.

구름 속에 묻힌 지리산을 배경으로 제대로 된 꽃 사진이나 한 장 얻었으면 좋겠다.

날개하늘나리를 찾아야 하는데 작년에 봤던 곳에서 보이지 않는다.

희귀식물이라 꼭 보고 가야하는데 찾지를 못했다.

갈 길이 멀고 바쁘다.

노고단에서의 아쉬움은 다음 기회로 미루고 이만 이별을 해야겠다.

한 차례 거센 바람이 휘몰아치더니 구름이 내 가슴 속을 파고든다.

, 높은 산에 오면 이런 분위기와 기분이 너무 좋다.

전망 좋은 날씨를 맞이하여 지리산을 사통팔달 보는 것도 좋지만,

뜻밖에 이런 분위기도 고산에 오면 생각 외로 좋은 느낌을 받는다.

아쉬움을 뒤로하고 노고단을 내려오는데

건각의 여성 두 명이 활기찬 모습으로 구름밭을 뚫고 나온다.

꽃보다 더 아름다운 건강미가 돋보이는 젊은 청춘이다.

 

노고단고개에서 피아골삼거리로 피아골을 겨냥해 간다.

 

뭐라고 해야 할까?

지리산 종주 능선으로 들어가는 관문을 들어서면

그 길은 곧 천국으로 이어진다.

햇볕이 제 아무리 뜨거워도 뜨거운 줄 모르고

이즈음엔 온갖 꽃들이 만발해 힘들어도 힘들 수가 없다.

지금 우리는 살아서 천상을 드나드는 것이다.

 

이 길에도 지리터리풀이 길가의 가로수마냥 줄지어 늘어서 있다.

짙은 자홍색을 띤 지리터리풀이 이렇게 많이 피어 있다니 그저 놀랍기만 할 뿐이다.

바깥 날씨는 37를 웃돈다.

그런 무더운 날씨를 여기서는 전혀 느낄 수가 없다.

여기가 곧 무위자연이요 무릉도원이다.

 

구름이 많이 끼어 조망은 없다.

무릇 한 가지를 얻으면 한 가지를 잃는 법

덕분에 더위가 가시었으니 구름이 낀들 어디 대수던가?

가는 길이 편하고 꽃이 있으니 뭘 더 바란단 말인가?

지금 이대로도 충분히 좋다.

 

돼지령에 다다르니 아담한 규모의 풀밭이 나온다.

역시 구름에 가려 조망은 전무한 상황이다.

근데 이게 뭔 조화 속인지 녹색 밭에 하얀 꽃대가 올라와 총총히 핀 꽃이 보이는 게 아닌가?

가만히 살펴보니 올라오면서 지리산 꽃을 소개한 사진 속의 그 꽃 같다.

이름이 뭣이라고 적혔더라?

흰젖제비난이라 했던가? 알쏭달쏭하다.

집에 와 검색을 해 보니 흰제비난이다.

오늘 또 한 건했다.

노고단에서 날개하늘나리를 못 봐 아쉬워했는데 흰제비난

그 아쉬움을 대신했다.

개체 수가 많지 않아 사진 한 장 제대로 얻어야 되겠다 싶어

찍고 또 찍으며 수십 번 넘게 셔터를 눌렀다.

 

오늘 노고단에서 피아골삼거리에 이르기까지 얻은 수확을 말하자면,

단연 지리터리풀과 구름패랭이

그리고 돼지령에서 만난 바로 이 친구 흰제비난이라 할 수 있다.

이제 그만 하산해도 아쉬울 것 없다.

하지만, 하지만 오늘 여기 지리산에 온 목적은 따로 있다.

오늘은 꽃도 꽃이려니와 무슨 일이 있어도 피아골을 가야한다.

피아골을 가기 위해 오늘 지리산에 들어 온 게 아니었던가?

가자, 그 피아골로~~~

 

피아골! 드디어 핏빛이 단풍으로 물든 그 골짝으로 간다.

 

과연 피아골을 이렇게 편하게 가도 되는 건지 괜히 마음에 걸린다.

종주 능선인 피아골삼거리에서 직전마을까지 무려 6km에 달하는 먼 거리지만,

피아골이 삼킨 핏빛을 만분의 일이라도 생각하노라면

이 길은 힘이 들더라도 내려갈 것이 아니라 피 같은 땀을 흘리며 올라가야 마땅한 법이다.

그런데 마음만 그랬지 도통 자신이 없다.

 

언젠가 성삼재에서 반야봉을 거쳐 화개재에서 뱀사골을 내려가다가 식겁을 한 적이 있었는데,

그때 원주에서 홀로 온 나보다 많이 젊어 뵈는 산객 한 사람을 만난 적이 있었다.

키는 나만 했지만 한 눈으로 봐도 보통 산꾼이 아니라는 생각이 든 사람이었다.

그런데 그래 보이던 그 사람도 피아골로 올라오며 보통 힘든 길이 아니라며

혀들 내두른 기억이 났다.

그 사람을 만난 이후 피아골에서 올라가는 것은 감히 엄두조차 내지 못하고 있던 터다.

내가 나를 잘 아는지라 피아골로 올라오는 짓은 못하더라도

내려가는 길은 멀지만 꼭 걸어봐야겠다는 생각을 한 것이다.

 

내려가면서도 내내 미안하다.

내가 뭘 안다고 미안해하고 안타까워 한다는 말인지 모르겠으나,

마음 한 구석 깊은 곳에서 막연하나마 역사의 피비린내를 맡기는 한 모양이다.

 

내려가는 길이 하염없다.

조망도 없고 계곡도 없다. 능선길처럼 꽃이 많은 것도 아니다.

드문드문 말나리가 눈에 띄는 것이 마치 빨치산이 숨어 들어와

위치를 노출 당한 느낌을 준다.

 

화개재에서 뱀사골을 내려가는 돌길이 무려 9km가 넘었다.

그때는 반야봉도 올랐고 화개재까지 가서 9km를 더 내려갔으니

그 힘들었던 기분을 말로 다하기란 어렵다.

아내는 발에 물집이 잡히고 다리에 힘이 풀려 생고생을 하지 않았던가?

다시는 따라 나서지 않으리라 다짐을 하고 또 하지 않았던가?

오늘 피아골로 내려가는 이 길도 내리막길이라 비교적 쉽게 생각하고 갔다만,

내려가는 길이라고 그리 호락호락하지만은 않았다.

아내는 뱀사골을 내려가던 그 기억이 또렷하게 떠올랐는지

또 같은 말을 되풀이 한다. 다시는 이런 힘든 길 따라 나서지 않겠다고~

 

능선 삼거리에서 피아골대피소까지 2km 남짓 거리인데 꽤나 멀고 힘든 길이다.

계곡은 피아골대피소까지 가야 비로소 물소리를 들을 수 있다.

대피소에는 한 무리의 탐방객만이 모여 앉아 산중 만찬을 즐기고 있다.

대피소에서 좀 쉬어갈까 했는데 맘 편히 쉬어 가기 그래서

대피소 분위기만 간직한 채 곧장 가던 길을 갔다.

 

여기가 거기겠지.

임진왜란 당시 숨어 들어온 의병을 일본군이 처참하게 목을 자른 곳도,

갑오농민전쟁 당시 동학군이 관군에게 목숨을 잘린 곳도 여기 어디쯤이겠지.

여순반란사건이 일어났을 때 숨어 들어온 곳도 여기고

전쟁이 끝났어도 끝나지 않은 전쟁이 계속된 곳도 여기겠지?

이데올로기로 무장된 제대로 나라의 형국을 갖추지도 못하던 때

우리끼리 얼마나 동족상잔의 참극을 빚었나?

그 대표적인 곳 중의 한 곳이 바로 지리산 피아골 이 골짝이 아니던가?

 

지난겨울 마치 밀린 숙제하듯 조정래의 대하소설

태백산맥, 아리랑, 한강을 한꺼번에 읽었다.

조정래의 대하소설 태백산맥을 읽고서는 지리산 피아골을

꼭 가보고 말겠다는 생각을 굳히게 된 계기가 되기도 했다.

대작을 남긴 조정래의 필력과 집념에 감탄을 금치 못하며

태백산맥에 등장한 피아골 인물들을 한 명 한 명 생각나는 대로 떠올리면서

터덜터덜 돌길을 따라 내려간다.

 

계곡으로 접근하기 좋은 길이 나온다.

양쪽 커다란 절벽 같은 바위 사이로 쉬어 가기 좋은 너럭바위가 있고,

얕은 층으로 이루어진 바닥 위로 층이 생긴 물길이 하염없이 흐른다.

저 바위가 저 맑고 깨끗하게 흐르는 물이 한 때는 피로 범벅이 되었겠지.

피아골을 따라 흐른 핏물이 섬진강을 빨갛게 물들였다고 하지 않았던가?

 

길이 약 20km, 지리산 제2봉인 반야봉의 중턱에서 발원한 맑고 풍부한 물이

임걸령·불무장 등의 밀림지대를 누비며,

피아골 삼거리·연곡사 등을 지나 섬진강으로 빠진다.(네이버 두산백과 글 옮김)

이 길은 피로 물든 길이다.

하늘도 나무도 바위도 계곡에 흐르는 물도 핏빛으로 채워진 곳이다.

계곡엔 티끌하나 없이 맑고 깨끗한 물이 흐르건만,

어이해 저렇게 청정한 산하가 피로 물들어야만 했는지

짚고 또 짚어 봐야할 대목이다.

 

피아골은 원래 가을 단풍으로 유명한 지리산 10경 중의 한 곳이다.

피아골 단풍을 구경하지 않았다면

단풍을 구경했다는 말을 하지 말라는 얘기까지 공공연히 나돈다.

그만큼 단풍이 아름다운 곳이 피아골 단풍이다.

마치 피에 서린 원혼이 빨간 핏빛 단풍으로 물들었다는 얘기와 다름없다.

피아골 단풍은 그래서 더욱 빨갛다고 전해진다.

단풍 좋은 가을날 오지 못해 아쉬움이 컸다만,

오늘은 그저 피아골을 걸어보는 것으로 피로 물든 단풍의 모습을 오버랩한다.

 

피아골 단풍은 삼홍소에 다다라 조식 선생의 시를 통해 알면 더욱 실감이 난다.

조선시대 유학자 남명 조식 선생은

"피아골 단풍을 보지 않은 이는 단풍을 봤다고 할 수 없다"

'산이 붉게 타니 산홍(山紅)이요.

단풍에 비친 맑은 소()가 붉으니 수홍(水紅)이요.

골짝에 들어선 사람도 단풍에 취하니 인홍(人紅)이라'

삼홍시(三紅詩)를 남기기도 했다.

 

삼홍소(三紅沼)

 

- 조식(1501~1572)

 

흰구름 맑은 내는 골골이 잠겼는데

가을에 붉은 단풍 봄꽃보다 고와라

 

천공(天公)이 나를 위해 뫼빛을 꾸몄으니

산도 붉고 물도 붉고 사람조차 붉어라.

 

피아골이라 함은 흔히 조정래의 태백산맥이나

1990515일 개봉한 정지영 감독의 영화 남부군과

피아골이란 영화를 통해 익히 알려져 왔다.

그 바람에 피아골이라면 먼저 선혈이 낭자한 붉은 피가 연상되지만,

사실인즉 피아골이란 이름은 피밭골이란 직전마을에서 유래된 것이라 한다.

(, 피 직)은 벼과의 피에 해당하는 한해살이풀로

직전(稷田)이란 오곡 중의 하나인 피를 심었던 피밭을 의미한다.

그러니까 직전마을이란 벼과의 피를 이용해 굶주림을 해소했던 마을이란 의미다.

피밭마을에서 피아골로 이름이 변했다는 얘기다.

 

여기까지 온 김에 연곡사도 들리고 싶었지만, 시간이 여의치 않다.

마을 끝까지 내려가니 주차장이 나온다.

구례로 가는 버스를 타야 하는데 버스가 있을지 모르겠다.

버스를 타야 경비를 절감할 수 있다.

버스를 타고 구례로 가서 구례에서 또 다시 버스를 타고 성삼재로 갈 생각이다.

 

먼저 내려간 아내가 버스 시간을 알아보더니 좀 전에 버스가 떠났다고 한다.

다음 버스를 타자면 한 시간쯤 기다려야 한다.

계곡을 끼고 있는 크고 멋진 식당이 보인다. 천왕봉 식당이다.

아내가 식당 주인한테 버스 시간을 묻고

택시를 이용하면 성삼재까지 얼마나 받는지 파악해 두었다.

택시로 피아골에서 성삼재까지 무려 55,000원을 받는다.

역시 예상대로 요금이 만만치 않다.

애당초 택시를 탈 마음은 없었다.

 

천왕봉식당 주인아주머니께서 덥다고 계곡으로 내려가

버스 올 때까지 기다리라며 살갑게 친절을 베푸신다.

아내밖에 없는 줄 알고 냉커피 한 잔을 태워 오시며,

나도 있다는 걸 몰랐다며 미안해하시는 모습이 더 없이 인정스럽다.

식당을 운영하시는 분이라 과한 친절도 상술의 하나인가 싶기도 했지만,

전혀 밥 한 그릇, 막걸리 한 사발 팔자고 베푸는 친절이 아닌

피아골 주민의 따뜻한 인정이었다.

우리는 식당아주머니의 살가운 친절만 받아먹고,

버스가 올 때까지 기다리기 위해 시원한 계곡으로 내려갔다.

 

그런데 우리가 구례로 갔을 땐 구례에서 성삼재로 가는 막차가 끊어지고 없단다.

피아골에서 버스로 구례까지는 가야 경비를 절감할 수 있다.

경비를 줄이는 건 틀린 것 같다.

결국 거금 55,000원을 들여 택시를 불렀다.

 

택시 기사분이 해박하고 정서가 충만한 분이다.

보아하니 나랑 갑장인 것 같고 지역 토박이 분이셨다.

서울에서 직장생활을 하시다 노모를 봉양하기 위해 내려오신지 오년이 넘으셨다고 한다.

은어를 잡고 있는 풍취 좋은 섬진강변을 지나노라니

강가에 줄 지어 선 집 가운데 녹색 마당이 펼쳐진 집을 가리키며 저 집이 내 집이라신다.

가만히 보니 그 길이 눈에 익숙하다.

알고 보니 몇 년 전 이 실장 내외랑 구례 오산 사성암 산행을 한 후

매화 광양마을로 갈 때 엄청나게 길이 막히던 그 길에 기사 분의 집이 있었던 것이다.

 

노모가 돌아가시면 함께 서울로 돌아가자고 아내랑 약속하고 내려왔지만,

이젠 오히려 아내가 여기가 더 좋다고 올라가지 않으려 하신단다.

금슬 좋은 부창부수임에 틀림없다.

이 지역을 잘 아는 사람을 만난 것도 좋은 기회라 몇 마디 물음을 건넨다.

 

조정래 태백산맥의 빨치산의 근거지가 여기 피아골이죠.’

대부분 그리 아는 데 실은 이 골짝은 빨치산 조직이 다 붕괴되고

잔당의 일부가 숨어들어 소탕 된 곳이고,

빨치산들의 주 근거지는 지리산 중산리에서 화순 백아산 일대의

민가 가까운 산기슭이 주요 근거지였다고 한다.

그 당시만 해도 직전마을이란 이 골짝은 토양이 척박하고

민가가 많지 않은 깊숙한 골짜기라 굶주림을 해소하기 위한 아지트로 삼기엔

적합하지 않았다고 한다.

들어보니 일리가 있는 말이다.

 

피아골이 구례군 토지면이다.

그 기사 말씀이 토지는 흙토()에 뜻지()를 쓴다고 한 것 같다.

토지라면 박경리의 대하소설 土地가 대명사격이다.

박경리가 이 지역에 머물다 대하소설 土地의 제목을 정했다고도 했다.

 

천은사 얘기도 하셨다.

성삼재에서 구례로 가는 산길이 천은사 사유지여서 통행료를 받는다고 한다.

한 사람 당 1,600원을 갹출한다는 데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는 부분이다.

우리는 늘 지리산 IC를 통과해 인월방향으로 뱀사골을 경유해 성삼재로 갔기에

통행세 관련 문제에 대해선 지금까지 모르고 있었다.

 

오늘은 우리가 탄 택시가 구례에서 성삼재로 가고 있는데

어김없이 통행세를 걷는 천은사 소속 승려들이 차를 세운다.

우리는 택시를 탔기에 택시를 탄 사람들까지 탑승 인원 당

통행료를 받고 있는 줄은 상상도 하지 못했다.

거두려면 개인 차량이 지나갈 경우만 억지 징수를 하던지

대중교통을 이용하고 있는 승객들까지 강제 징수를 한다는 것은

도대체 억지로 이해를 하고자 해도 이해가 되지 않는 대목이다.

그렇다면 버스를 타고 오는 승객들까지 차를 세워 징수를 하는 가요?’ 했더니

그렇단다. 나 원 참! 이건 어느 나라 법인지...

 

우린 성삼재주차장에 주차한 차량 회수하러 가고 있는 중이라고 했다.

그랬더니 대번 돌아오는 말이 입장료를 지불했는지 되묻는다.

황당해 있는 나랑 달리 아내가 아침에 지불하고 왔어요.’ 라고 한 마디 했더니

통과하라고 손짓을 한다.

물론 아내가 한 말은 옆에 있던 기사분이 시키는 대로 말한 것이다.

돈은 내지 않았지만, 어쨌든 기분이 좋을 리 없다.

더욱이 통행료 징수 문제는 법적으로 패소했음에도

계속 징수를 한다는 것은 도대체 무슨 배짱인지 알 수가 없다.

천은사 쪽에서도 뭔 합당한 이유가 있는지 모르겠으나 슬기롭게 대처할 문제라 본다.

 

기사 분이 휴대폰에 저장된 자기 집 사진을 보여주며

자기 아내 얘기랑 본인 얘기를 하며 정겨운 말씀을 나눈다.

자기 집에 오면 십 수 명이 한꺼번에 숙박할 수 있는 빈 방도 있고

필요한 사람에겐 방을 내어 주기도 했단다. 물론 무료로~

우리보고도 나중에 기회가 닿으면 이용하시란다.

기사 분의 해박한 지식과 넉넉한 인심을 담으니 다소 위로가 된다.

 

아내가 카드 결재 되느냐고 기사 분께 물으니 당연히 된다고 하셨다.

오만 원밖에 없어 카드 결재를 해야겠다고 하니 그리하시란다.

현금으로 지급하면 오천 원 깎아 줄려나 싶어 던진 말이 부끄러워져 버렸다.

메타 요금으로 가는 것도 아니면서 이 양반 택시 요금은 칼같이 받는다.

그동안 정답게 해준 말들이 맞나 싶어 다시 기사 분 얼굴을 한 번 더 쳐다봤더니

역시 인상은 좋아 보이기만 한다.

카드를 꺼내 결재하는 아내의 모습을 보고 속으로 빙긋이 웃어본다.

 

이런 제기랄, 성삼재주차장 주차료는

? 또 이렇게 비싼 거야?

13,000원이나 나왔다.

아들내미 보러 간 김에 북한산 갔다가 주차료 칠천여 원 낸 이후 가장 최악이다.

카드를 내밀며 하루 종일 주차하면 얼마 나와요? 했더니 13,000원이란다.

하루 최고 요금을 물고 온 것이다.

이런 제기랄!!! 국립공원주차장 주차료가 왜 이렇게 비싼 거야.

 

오늘 다 좋았는데 경비 지출이 좀 많았던 것이 옥에 티다.

지리산! 정말 좋은 산인 건 분명하다만,

지리산이 참 많은 사람 먹여 살린다는 생각을 한다.




성삼재에서 피아골로 사진 속으로 빠져들어 볼까요.


성삼재 휴게소, 집에서 5시쯤 출발해 여기 도착 시간이 8시가 넘었다. 일출이니 운해가 서린 모습을 못 봐 아쉬웠다. 


주 중이라 그런지 아직 주차장이 텅 비었네요. 국립공원 주차비 장난 아니더군요. 온 종일 세워 두고 갔더니 주차비가 무려 13,000원~ 하루 중 최고액이더군요.


노고단의 산신인 노고할미의 넉넉한 품이 가는 길부터 순순히 열어줍니다.


오른쪽 임도로 가면 편하기는 하나 길이 멀죠. 대부분 빠른 길로 올라갑니다. 오름길이 길지 않아 천천히 가도 금방 갑니다.


가는 길은 주로 숙은노루오줌이 많더군요. 고개를 바딱 들고 섰으면 그냥 노루오줌, 이렇게 숙이고 있으면 숙은노루오줌, 흰색으로 숙이고 있으면 흰숙은노루오줌이라 하죠.


초입부터 병조희풀이 많은 데 오늘은 그리 많이 눈에 띄지 않더군요. 아마 지금부터 시작인가 봅니다.


지리산의 특산인 '지리터리풀', 자홍색으로 피어난 지리터리풀은 일반 터리풀과 색감부터 다르다. 희귀식물로 보호하고 있는 보호종으로 지리산엔 지금 특수를 누리고 있다. 가는 길 내내 지리터리풀과 함께 한다. 


노고단 대피소. 지리산 대피소 한 번 예약한 적 없으면서 지리산 다녔다고 말이나 붙일 수 있을란지~ 아내와 난 주로 당일치기로 지리산을 댕긴다.


가면서 대피소 지붕을 올라본다.


올라가는 길이 지리터리풀 일색이다. 이런 광경은 지리산말고는 못 본다.



색감이 얼마나 이쁜지 그만 찍어도 될 걸 유혹을 이기지 못해 찍고 또 찍는다.


동자꽃도 이제 여름 내내 존재감을 떨치겠지.


노고단 올라가는 데크 초입에 길을 정비하느라 공사 차량이 드나들고 있더군요.


아니, 이게 뭔 일... 이 맘 때쯤에 분명 노고단에 왔을 텐데 구름패랭이가 군락을 이룬 채 엄청 피어나고 있다. 전에는 못 봤는데 아마 그 때는 시기가 아니었나 보다.


노고단고개에 길을 정비하느라 레미콘이 올라와 있네요.


앞은 구름이 가로막아 전망이 전무하다.



데크로 가는 길에도 곳곳에 구름패랭이가~




구름패랭이와 기린초


참당귀 같아 보이는데 이름 부르기가 어려운 친구들이죠.



구상나무는 제주 한라산도 그렇고 기후 변화로 인해 고사하고 있는 중인데 이를 어찌 잘 막아야 할 텐데~



구름이 우리 앞을 날아다닌다. 점잖게 구름 밭을 거닐고 있으면 누가 보면 우리가 구름을 타고 날아 다니는 줄 알겠다.



항상 아내가 먼저 올라가고 난 그 뒤를 졸졸 따라다니죠.


노고단의 원추리는 작가들의 작품 대상인데~ 난 어찌 허접하게만 보이지...



긴산꼬리풀도 넉넉하게 보여준다.







여기 전망대에서 섬진강의 S라인을 봐야 하는데 한 치 앞도 안 보인다. 제기랄~



돌양지꽃은 구름 속에서도 아랑곳 하지 않는다.













여기 적힌 봉우리는 다 가봤다. 좀 간 편에 속할까??? 지리산 오면서 이만큼 안 다닌 사람 어디 있을라고, 평생 지리산만 끼고 산 사람들이 한 둘이 아니라지...





구름패랭이



구름을 뚫고 생기발랄한 처자 2명이 마치 신기루처럼 등장한다. 매무새를 보아하니 산 꽤나 타는 건각임에 틀림없다.



미역줄나무의 꽃이 여기는 아직 한창이다.


이제 노고단고개로 내려와 종주 능선길로 들어가는 천국의 문을 두드린다.


이 길은 걷는 자체가 무위자연이요 무릉원이다. 길도 좋고 꽃도 좋아 힘들어도 지루해도 그런 감을 느낄 수가 없다. 


꿩의다리도 제법 보인다.


산수국도 많이 보인다. 가만히 보면 헛꽃의 모양도 다양하다. 탐라산수구도 있는 것 같다.


모시대는 성삼재에서 올라오면서부터 많았는 데 오늘은 애들이 처음이네.


이 길은 천상의 길이다. 이 길을 걷는 자, 살아서 천상을 누비는 영광을 안는다.


긴산꼬리풀이 심심찮게 보인다.


나 참! 갈 길 바쁜데 이녀석들이 자꾸만 유혹을 한다. 


세상에! 어느 산을 가야 이런 길을 걸을 수 있나~ 없다. 지리산밖에 없다. 지리터리풀이 가로수처럼 늘어진 길을 걷고 싶으면 지리산으로 가라. 지리산이 부르거던 언제던지 달려가라. 



고산에 가면 흔히 보는 둥근이질풀도 올해는 여기서 처음보네.


이 모습은 이 길을 걸으며 담은 적이 있는 모습이네.


여기는 돼지령.


헬기장도 있고


고추잠자리가 앉은 모습을 당겨본다. 300mm의 진가를 발휘한다.


여기서 귀한 친구를 만난다.


처음 보는 녀석이다. 난생 처음 만난 '흰제비난'이다.


개체 수가 그리 많지 않다. 이녀석들 역시 보호되어야 마땅하리라.




일월비비추는 하루 이틀 뒤면 만개하겠네요.


고추잠자리와 일월비비추. 역시 망원렌즈의 기능을 실감하는 순간이다.



피아골삼거리. 이제 우리는 여기서 피아골로 내려간다. 오늘 산행의 목적은 바로 여기 이 길 피아골로 가는 길이다. 계속 직진하면 반야봉으로 가는 종주 능선길이 이어진다.


마치 우리 부부처럼 말나리도 꽃 두 송이가 서로를 보호하고 있다.


피아골로 내려가는 길은 경사가 급하고 조망도 없으며, 꽃도 별로 없다. 그저 아무 생각없이 묵묵하게 내려간다. 그래도 저번에 갔던 뱀사골보다는 짧다는 생각으로 위안을 삼으며 간다. 피아골로 들어서니 등골나물이 보인다. 지금까지 눈에 띄지 않던 등골나물이 피아골 가는 길에 보이니 피아골하면 떠오르는 핏빛 계곡과 오버랩된다.





달걀버섯. 산행하면서 가끔 보는 녀석이다.


누가 이렇게 예쁘게 갉아 먹었나?


에휴, 피아골대피소까지는 다 와 가는데 아직 갈 길이 멀다.



피아골대피소에 이르자 비로소 계곡이 보인다. 능선 피아골삼거리에서 피아골대피소로 내려오는 길은 계곡이 보이지 않는다.


좁은잎배풍등, 배풍등은 봤지만 애는 처음 만난다.



이끼와 바위떡풀이 범벅이 된 계곡이 시원스럽다.


드디어 피아골대피소 열린 철책 문으로 나온다.




피아골대피소 전경


화장실


피아골은 단풍이 익은 가을이 지리산 10경에 속한다. 이 단풍이 가을날 익으면 엄청나겠지. 피아골에서 숨진 원혼이 빨갛게 물들어 피아골 단풍이 더 빨갛다고 하지 않던가? 그 생각을 하며 녹음이 짙은 색이지만 담아본다.



피아골에 오니 저 물이 그리 차고 시원하게만 보이지 않는 건 아마 피아골에서 흘린 피가 연상되기 때문이겠지.



지리산 돌길 아시죠? 발바닥이 땡겨 도저히 참을 수가 없어 계곡으로 내려갑니다.


어휴, 보기만 해도 시원해라. 사람도 없는데 그만 풍덩 뛰어들까 보다.


양말벗고 얼굴만 씻고 가볍게 더위를 식힌다.







너무 당기니 흔들림이 생겨 촛점이 잘 안 맞는다.


남명 조식 선생이 피아골 단풍을 노래한 그 유명한 삼홍소


삼홍이란? 뭐 대충 이런 뜻이다. 산홍-산도 붉고, 수홍-물도 붉으니, 인홍-사람마저 붉어라 간단히 그래 보고 가자.



피아골은 직전마을을 의미하는 피밭골에서 피아골로 바뀌었다는 얘기다. 흔히 태백산맥이나 피아골을 소재로한 영화에서 피가 연상된 곳이다 보니 피아골하면 피로 물든 계곡이라 먼자 연상된다.


표고막터까지 왔으면 다 온거나 마찬가지다. 마을 주차장까지 1km 넘게 남았지만, 길이 좋으니 그까짓 거야 지금까지에 비하면 여반장이다.


표고막터는 표고버섯을 재배하던 단지였나 보다.


골짜기의 식당이 여유롭다. 아직 휴가철이 아닌지라 관광객은 많지 않았으나 그로 인해 분위기는 조용한 것이 너무 좋다. 업을 하시는 분들이 보시면 꽤심타 뭐라 하시겠다.




저 빨간집우 끝이 광장 주차장이다. 저기서 버스를 기다려야 한다. 얼마나 기다려야 하는지 버스가 있기나 한지~


주차장 맨 끝에 있는 천왕봉 식당 여주인께서 커피도 한 잔 타 주시고, 버스 시간도 잘 가르쳐 주시고, 택시도 콜 해 주시고 물 한잔 팔아 주지도 않는 우리 부부를 위해 극진할 정도로 친절을 베풀어 주신다. 더욱이 버스 올 때까지 기다리라며 시원한 계곡에서 발 담그고 쉬고 있으면 차 오면 불러 주신단다. 참 고마운 분이셨고 넉넉한 마음 씀에 고마움이 묻어나왔다. 돈 많이 벌고 잘 사시기를 바란다.

이 식당 여주인장께서 그리 인심이 좋으셨다. 다음 기회가 있다면 꼭 이 식당에 눌러 앉아 막걸리 한 사발하고 가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