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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공산

갓바위 가을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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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초절정을 자랑하는 갓바위 가로수 단풍

 

 

■ 언제 : 2013. 11. 9.(토)

■ 어디로 : 팔공산 갓바위 산행 & 팔공산 순환도로 단풍길 드라이버

■ 누구랑 ; 아내

 

 

 

흔적


가까이 있기에 언제든 가면되지 하는 넉넉한 마음이 늘 늦음을 자초한다.

학교나 직장 가까이 사는 사람이 자주 지각하듯 같은 이치가 아니겠는가.


이맘 때 쯤 높은 산 하늘 아래 있는 갓바위 부처님 만나러 가는 길은 천지가 울긋불긋하여 운전대 잡은 손이 술 취한 사람마냥 흔들리기 십상이니 조심해야 한다.


그런데 팔공산 가는 가로수 길은 아직 단풍이 마지막 정염을 불태우는데 막상 갓바위로 가는 산행길은 색 바래진 단풍잎이 가는 바람에 떨고 있다.


그나마 오늘이라도 만나지 못했더라면 정작, 먼 곳에 있는 단풍은 보고 가까이 있는 단풍은 못보고 지나갈뻔 했다. 갓바위 가는 길에 만나는 팔공산 단풍길은 명품 중에 그 으뜸인데 단풍놀이가 주된 목적이라면 굳이 먼 길 찾아갈 이유가 없는데 말이다.


갓바위는 역시 예상했던대로 수능이 끝난 직후라 공들이러 오는 사람들로 북새통을 이루고 있다.

발 디딜 틈 없이 빽빽한 자리를 비집고 들어가 용케도 절을 하고 또 절을 하는 우리네 어미들의 모습을 보니 괜히애틋한 마음이 든다.


기계처럼 엎드렸다 일어 섰다를 되풀이하는 어미의 모습에서, 저 사람들 중에 자신의 영달을 위해 저렇게 하는 사람이 과연 몇이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자 갑자기 어떤 서글픔이 회한으로 마음 한 구석에 다가온다.


내 어머니가 그랬고, 이젠 내 아내가 그리 하고 있다.

이는 조상의 삶의 형태가 무형유산으로  자연스럽게 답습되는 풍습이라 볼 수 있을 것이다. 누가 그리 하라고 강요하거나 시키지도 않았는데 대한민국의 어미가 되는 순간 자연스럽게 할매와 어머니라는 이름을 갖인 사람은 그렇게 살고 있다.

 

누구를 위하여 종을 울리겠는가?

 

이러한 사실로만 미루어봐도 우리네 자식들은 대한민국의 아들로 탄생한 순간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나라에서 태어난 것은 틀림없는 사실일 것이다.


갓바위는 2.1km를 계속 올라야 하는 만만한 길이 아니다. 그런데도 젊은이보다 나이 지긋한 분이 더 많다. 그래서 난 이 길을 항상   '어미 공덕 길’이라 부르고 싶다. 갓바위 부처님께서 높은 곳에 계신만큼 더 멀리 보고 더 많은 중생을 긍휼히 여겨, 그 소원을 빠짐없이 들어 주고자 거기 높고 먼 곳에 계신 것이라 생각한다.


우린 갓바위에 오르면 웬만하면 공양을 하러간다. 갓바위 아래 선본사 공양간이나 아니면 약사암에 들러 공양을 한다. 배가 고파 먹는 것이 아니라 공양을 위해 길게 늘어선 줄에 괜히 끼이고 싶은 맘이 들어 하염없이 늘어선 줄 제일 끝에 선다. 줄지어 서있어 보면 기다림 끝에 다가오는 순서가 마냥 즐겁다.


약사암으로 돌아 나와 주차장에 당도하니 위에는 거의 지고 없던 가로수의 빨간 단풍이 새로운 모습으로 눈에 확 들어온다. 아마 의도적으로 심은 가로수보다 산행을 하면서 질서 없이 막자란 농익은 단풍의 모습을 보고 싶었는데 그 모습을 보지 못한지라 가로수의 붉은 단풍 물결에 마음을 더 빼앗긴다.


마지막 단풍철인지라 미련이 남아 동화사와 파계사로 가는 팔공산 순환도로의 단풍 명소로 방향을 틀었다. 

이 길은 단풍으로 빚어진 한국의 아름다운 길로 선정된 곳이기도 하다. 아직은 타다가 남은 마지막 불꽃을 볼 수 있어 다행이었지만, 이젠 아쉽게도 이 길도 단풍이 끝물로 가고 있었다.


산에 다니면서 늘 느끼지만, 계절의 변화는 항상 산이 먼저 안다. 이는 곧 자연이 절기를 가장 먼저 읽는다는 뜻이다. 이제 11월이 가면 산 속이 훤히 보일 것이다. 휑하니 앙상한 가지만 남아 지금까지 숨기고 있던 속을 모두 보여줄 것이다. 높은 산에 올라 산너머 산이 훤히 보이는 모습은 겨울산의 또다른 진풍경이다.


이젠 순리대로 예쁜 가을도 가고 곧 겨울이 오겠지. 올 가을은 유난히 단풍이 예뻤으니 가을이 예뻣던 만큼 겨울도 매우 유난을 떨 것이라 생각된다.

아내와 나도 이제 겨울산 만나러 갈 채비를 서서히 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