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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공산

가산산성, 저물어 가는 가을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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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 : 2015. 11. 12.(목)

어디로 : 가산산성, 늘 가던 길로

경로 : 진남문 - 남포루 - 동문 - 중문 - 진남문

 

 

 

 

흔적

 

 

산성이 내뿜는 깊어 가는 가을 내음을 맡으러 갔다.

 

오늘은 수능일이다.

낙엽 떨어지는 곳이 아이들의 정답 자리였으면 좋겠다.

 

진남문 앞 주차장엔 가을이 깊어 그런지 수능일이라 그런지

달랑 차량 몇 대만 휑하니 서 있다.

 

언제나 그랬듯 성곽을 따라 올랐다.

아내랑 갈 때도 그랬고 홀로 가도 이 길을 따라 오른다.

 

성곽길엔 노부부만이 보이고, 노부부는 산을 오르다 말고 소나무 둥지에 온몸을 부딪혔다 뗐다하면서 느긋하게 간다.

그런 노부부의 모습이 저물어 가는 황혼만큼이나 살갑게 다가온다.

 

그런데 오늘은 없는 줄 알고 갔지만 역시나 없다.

안 보인다.

꽃이 안 보인다.

, 여름, 가을에 그렇게 무성했던 그 꽃들 말이.

 

다 졌다.

모두 지고 없다.

어느틈에 산성에도 가을이 깊게 왔나 보다.

산은 매양 절기에 따라 옷을 입고 이내 갈아입는다.

대자연의 섭리는 인간이 감히 어찌할 수 없는 모양이다.

 

앞서 가던 노부부를 앞지르니

이젠 혼자다.

진짜로 아무도 없다.

꽃도 없고 사람도 없다.

 

보이는 그대로가 무위자연이다.

앙상한 가지에 애처롭게 붙은 잎이 떨고 있는

그건, 아마도 바람이리라.

  아무도 없는 하늘과 바람과 구름만이 유일한 곳에

자연의 일부가 되어 어울리고 싶은 어줍잖은 사내가 함께 있다.

오늘따라 유난히 잘 어울린다.

 

남포루 위, 성곽길 만댕이에 올라서니

안개가 온 산을 뒤덮으며 급기야 안개비를 뿌린다.

사진기만 없다면 가던 길 계속 이어가면 되련만

산성이 날 잠시 쉬어가라는 듯 숨을 고라 준다.

 

지난번에 갔을 때도 이와 같은 상황이더니

오늘 또 돌문 속으로 들어가 숨을 고른다.

운 좋게 돌문 가까이 왔을 때 이슬비가 내려 셨다 가라 한다.

내친김에 빵 하나 먹고 물 한 모금 마셨다.

지난 번에도 그랬다.

 

사진기가 비를 맞아도 될 만큼 비가 숙졌다.

지금 현재 가산엔 안개가 온 몸을 감싸 안았다.

더러 몽환적인 분위기를 자아내면서

대수롭잖던 리기다소나무의 자태가 예전에 없던 멋을 발하기도 한다.

바로 바람과 구름이 만든 작품이다.

 

산책길 같은 등로에 깔린 솔가리가 양탄자보다 더 푹신하다.

가을이 깊어갈 즈음이면 낙엽 밟는 감촉보다 솔가리 깔린 길을 걷는 것이 더 감미롭다.

낙엽 밟는 것과는 사뭇 다른 기분이다.

 

요즘 가산은 옛 선조들의 삶의 현장과 문화재 발굴이 한창이다.

이미 많은 흔적을 발굴했고 또 계속 발굴 중에 있다.

집터를 발견하고 복원하는 현장을 지날 때 작업하는 인부에게 슬며시 물었다.

'여기 쌓아 놓은 돌멩이는 작업 편의를 위하여 쌓은 것이 아니고 옛날에 있던 흔적 그대로죠?' 하니까

그렇다며 여기는 굴뚝자리고 여기는 방이 있던 자리라고 설명을 덧붙인다.

바야흐로 가산에 거주했던 선조들의 삶의 터전이 발굴되는 순간이다.

산을 다니다보니 마치 타임머신을 타고 과거로 돌아가 옛 선조들의 삶과 어울리는 행운도 누린다.

 

한창 문화재 복원을 하는 곳을 지나노라니 빠알간 열매가 엄청나게 많이 달려있다.

가녀린 나무에 얼마나 알알이 맺혀있던지 보는 눈이 더 황홀할 지경이다.

그런데 이놈이 참빗살나무인지 참회나무의 열매인지 또 헷갈린다.

그 아래도 빨간 열매가 많이 달려 있다.

같은 듯 다른 모습으로 어울려 있다. 

수 없이 이 길을 드나들었지만, 이렇게 빨간 열매가 군락을 이루고 있는 모습은 처음 본다.

아마, 가을이 깊어가는 계절에 자주 다니지 않았기 때문에 보지 못한 모습이었으리라.

 

진남문에서 남포루에 올라 동문으로 내려가는 길은 탄탄대로다.

전봇대 보다 키가 더 큰 낙엽송에서 떨어진 깔비가 마치 스폰지를 깐 듯 깔려 있는 폭신한 길이다. 

그러니 이 길은 남녀노소 불문하고 걷기 좋을 수밖에 없는 길이다.

세상 그 어느 때보다 편한 마음으로 넉넉하게 내려간다.

 

가을이 깊어가니 비록 꽃은 지고 없다만, 그래도 오히려 땡볕이 내리쬐는 한 여름보다 낫다.

산림이 우거져 속이 안 보이던 때와는 또 다른 분위기가 있다.

앞으로 날이 갈수록 더더욱 맑은 속살을 내보이겠지.

아마, 겨울이면 더 허물없는 맨살을 볼 수 있으리라.

겨울산을 다녀보면 그래서 좋다.

군더더기가 없어 여름에 볼 수 없었던 속이 훤히 보여 좋다.

 

 

 

한 바퀴 휘둘러 짧지 않은 길을 걸었으나 집으로 바로 가기에는

아직 시간적인 여유도 있고 또 뭔가 아쉬움이 남는다.

꽃이 없어 사진 찍는데 소요되는 시간이 줄었기 때문에 그만큼 시간 여유가 생겼다.

멀리 가지 않고 내 고장 팔공산을 갈 때면

오가는 시간을 줄일 수 있어 시간적인 측면에서 보아 여러가지 이점이 많다.

 

기왕에 나선 걸음 2주 전에 다녀갔던 팔공산순환로나 한 바퀴 돌아봐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가산에서 차량으로 이동하면 금방이니 안 갈 이유가 없다.

2주 전에는 단풍이 50%정도 들었던데 오늘은 어떨지 모르겠다.

오늘 가산을 방문한 이유도 실상은 꽃과 나무가 아니라 단풍이 주목적이랬는데

막상 와보니 가산의 단풍은 거의 다 지고 없었다. 그저 황량하기만 했었던 것이다.

단풍잎 떨어진 늦가을 가산에서 빈 나뭇가지랑 노닐다 보니 뭔가 2% 부족하다.

 

파계사로 올라가는 사거리부터 팔공산의 단풍이 그 진가를 발하기 시작했다.

자가용으로 드라이버를 하던 사람들이 도저히 그냥 지나치기 어려웠던 듯

너나 할 것 없이 가던 길을 멈추고 사진 찍기에 여념이 없다. 왜 그렇지 아니하겠는가?

낫살 꽤나 먹은 사내인 나도 일부러 일삼아 홀로 단풍을 보러 갔는데 나보다 더 가을을 타는 이들은 오죽하겠는가.

 

팔공산 동봉을 가기 위해 이 길을 수시로 드나 들었지만, 단풍철엔 이 길로 다닌 적이 거의 없었다.

내 고장 팔공산 단풍을 보자고 작년에 비로소 이 길을 처음 지났던 것이다.

단풍이 워낙 좋은 길이라 내장산이니 강천산이니 단풍 구경할 거라고 일부러 먼 길 나설 것이 아니라

내 고장 팔공산의 단풍으로 물든 명풍길을 우선 즐기고 싶었던 것이다.

 

그래서 오늘은 낫살 먹은 사내 혼자 맘껏 이 길을 누비며 팔공산순환로의 불타는 단풍에 서슴없이 온몸을 불살랐다.

누가 보면 저 양반, 되게 가을을 타는 사람인가 보다 라며 착각 할 정도로 분위기가 한껏 고조되었다. 

술은 취해 봤어도 오십고개 넘어서 이런 얄궂은 분위기에 도취되어 세월을 보낼 줄도 안다.

취미치곤 아주 고상해졌다. 내가 이렇게 변하다니, 아니 변할 수 있다니

그야말로 삼척동자가 웃을 일이다.

 

 

 

 

 

 

1부. 가산산성의 가을이 저물어 가는 풍경

 

 

미국쑥부쟁이. 잎 모양이 달라

 

 

털별꽃아재비

  

 

청미래덩굴

 

 

굴참나무 연리목

 

근육질로 탱탱 뭉친 서어나무

 

서어나무군락

 

 

 

 

 

 

서어나무군락

 

 

 

 

 

 

 

 

 

 

 

 

 

 

 

노박덩굴

 

물푸레나무군락

 

 

 

 

 

참빗살나무

 

 

 

 

 

 

 

 

 

 

 

 

동고비

 

 

 

 

 

 

 

집터 발굴작업 현장

 

 

 

 

백당나무 열매

 

층층나무???

 

 

 

 

 

 

 

 

 

 

 

 

 

 

 

 

 

2부. 팔공산순환로, 환상적인 단풍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