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부회 을미년 신년 나들이, 통영에서 1박 2일
(2부)
■ 언제 : 2014. 1. 4.(일) ~ 5(월)
■ 어디로 : 통영 일원
1일차 : 한려수도조망케이블카, 박경리 기념관, 달아공원, 통영중앙전통시장
2일차 : 마리나리조트 해안 누리길 산책, 동피랑벽화마을, 이순신공원, 산청 남사 예담촌마을
■ 누구랑 : 육부회 회원 몽땅
■ 숙박 : 통영금호마리나리조트
2일차 사진 기행
다섯 번째 이야기, 숙소 주변 해안누리길 수륙산책로 탐방
우리가 하룻밤 묵은 통영금호마리나리조트 뒤로 대한민국 해안누리길이 조성되어 있다.
이 길은 한산대첩로 제5코스로 삼칭이길이라고도 한다.
삼칭이길은 이운마을에서 마리나리조트까지 6.6km에 달하고
그길엔 수륙해안산책로라 일컫는 일부 구간과 중복이 된다.
충무공 이순신의 구국 혼을 되새기며 걷자는 의미로 이름한 수륙해안산책로는
마리나리조트에서 영운리 삼거리까지이며 거리는 4.3km에 달한다.
대략 1시간이 넘는 해안선을 따라 걷는 낭만이 깃들인 길이다.
어젯밤 사나 다섯이 발품을 팔아 통영중앙전통시장에서 직접 공수한 회를
안주삼아 소주병을 꽤 비웠는데도 아침에 일어나니 별로 찌뿌둥함 없이 살만하다.
모두 어젯밤 끓여 놓은 매운탕을 데워 맛있게 아침 식사를 하고
여장을 챙긴 후 해안누리길인 수륙해안산책로를 걸었다.
시원한 바닷바람을 마시며 걷자니 어젯밤 여독이 일시에 사라진다.
오늘도 여기저기 스치듯 다닐 곳이 많아 5코스 끝까지 가지 못하고
중간쯤까지만 가서 되돌아 나왔다.
우리는 이 좋은 길을 조금 걷다 말았지만, 마리나리조트나 5코스 가까운 곳에 숙소가 있다면
5코스까지라도 알뜰하게 다녀봄직도 하다.
가는 길에 등대낚시공원도 있고, 해바라기 전망대도 있다.
우리는 아침에 가볍게 산책하는 정도로 몸을 풀고 왔다.
여섯 번째 이야기, 한국의 몽마르트 통영 동피랑마을
한국의 몽마르트라 일컫는 동피랑 마을은 숙소에서 멀지 않은 통영중앙전통시장 언덕배기에 있다.
동양의 나폴리라 일컫는 통영, 문화관광지가 곳곳에 산재해 있는 통영
그곳에 동피랑벽화마을이 있다.
동피랑벽화마을은 서민들의 삶의 애환이 깃들인 마을로
재개발 계획에서 벗어나 지금은 멋진 문화공간으로 자리매김하여
통영을 찾는 관광객의 발길을 붙들고 있는 자랑거리가 되고 있다.
페인트로 담장에 그린 장난 같은 그림이 뭐, 그리 볼거리라고 일삼아 찾는가 싶었으나
막상 꼬부라진 골목을 누비고 다녀보니 생각에 머무르는 것과 직접 보는 것과는 과연 천양지차였다.
발상의 전환이 멋진 문화공간을 만들어 냈을 뿐만이 아니라
지금은 명실공히 통영의 자랑거리로 거듭나게 된 것이다.
꼬불꼬불 계속 오름길로 이어지는 골목을 걷노라니
만 가지 떠오르는 상념에 옛 생각이 절로 난다.
동피랑은 과거 우리 어미가 걷던 길이고 어미의 손을 잡고 우리가 따라 걸었던 길이다.
손수레도 지나가지 못하는 좁은 골목길을 지게로 연탄을 실어 날랐던 길이다.
쌀가마니째 지게로 실어 나르자면 식겁똥겁했던 바로 그 길이다.
지금도 동피랑마을엔 주민이 살고 있다.
관광지가 되어 전국에서 수 많은 여행객이 방문하여 마을 주민 입장에서는
그리 좋을 일도 아닌 듯하다.
지금도 어떤 집 담벼락에는 '쉿'하는 글이 그림보다 더 크게 적혀있다.
이 마을 토박이 할머니가 몸이 성치 않아 누워 계시는 모양이다.
지상 없이 떠드는 소리에 방해되지 않게 해 달라는 주의 문구다.
동피랑마을에는 무수히 많은 관광객이 드나든다.
통영시 입장에서는 웃을 일이나 현지에 살고 있는 주민의 입장에서는
다시 생각해 보아도 그리 넋 놓고 환영할 일만은 아닌 것 같다.
동피랑마을을 찾는 관광객은 한 번쯤 재고해 보아야 할 대목이다.
동피랑벽화마을은?
<펌> 통영시청 통영관광
재개발 지역이 문화공간으로 탈바꿈된 '동피랑'
'동피랑'은 동쪽에 있는 비랑, 즉 비탈의 지역 사투리다.
통영시 정량동, 태평동 일대의 산비탈 마을로 서민들의 오랜 삶터이자 저소득층 주민들이
지금도 살고 있으며 언덕마을에서 바라보는 해안도시 특유의 아름다운 정경을 가지고 있는 곳이다.
이 지역은 재개발 계획이 수차례 진행, 변경 및 수정되어 왔는데 지방의제 추진기구인
'푸른통영21'(시민단체) 위원들은 현지를 답사, 이 지역을 일괄 철거하기 보다는 지역의 역사와
서민들의 삶이 녹아있는 독특한 골목 문화로 재조명 해보자는데 의견을 모으게 된다.
이에 푸른통영21, 행정(통영시, 행안부), 교육계(충무중학교, 인평초등학교, 통영교육청)
경상대학교 해양과학대학, 지역 내 자생문화지킴이인 '드러머팀' 마을주민자치위원회가
한자리에 모여 머리를 맞대고 함께 만들어낸 협력과 소통의 장으로 동피랑 사업을 추진하게 된다.
문화와 삶이 어우러지는 마을 만들기를 통해 예향 통영을 체감할 수 있는 장소로 가꾸어
공공미술을 통한 통영의 명물로 만들고자 그림이 있는 골목, 역사와 문화가 살아있는 골목으로
커뮤니티 디자인(Community Design) 개념을 추가하여 벽화 뿐 아니라 천천히 걸어 다니면서 느끼는
볼거리와 휴식을 추구하는 슬로우 시티(Slow City), 슬로우 라이프(Slow Life)를 지향하는
통영의 또 하나의 명물로 재구성된 곳이다.
일곱 번째 이야기, 이순신 공원
통영의 새로운 명소로 부각되는 이순신 공원은 통영시 정량동에 자리 잡고 있다.
이순신 공원의 가장 전망 좋은 자리에는 이순신장군을 상징하는 청동으로 제작한 동상이 서 있는데
긴 칼 옆에 들고 서 있는 그 키가 무려 17.3m에 이른다.
이순신 공원으로 가는 길은 시작부터 편백나무가 마치 키 자랑을 하듯 두 줄로 줄지어 서 있다.
그 편백나무 사이로 연인들이 숨바꼭질하는 모습을 하고 사진을 찍으면 금방이라도
영화의 한 장면을 찍는 것처럼 분위기 조성이 될 것 같다.
정말로 젊은 연인들의 낭만과 추억이 새록새록 솟아날 것 같은 분위기다.
우리 여성 동무들도 아직은 청춘이라 그런지 나무를 부둥켜안고 사진 찍는 모습이
예전에 여고시절을 연상하듯 발랄한 모습이 젊은이 못지않다.
적당히 나이 들어가는 중후한 모습 또한 젊은이와 비교할 바가 아니다.
사람은 나이가 들수록 젊게 살아야 한다. 그러자면 산이 제일이고 그것이 안 되면 걷는 게 최고다.
걸으면 살고 누우면 죽는다.
입구에서 3분 정도 올라가면 바다가 훤히 보이는 광장에 이순신장군의 동상이 우뚝 서 있다.
한산대첩을 이룬 이순신장군이 현해탄 너머 일본 열도를 바라보며 일갈을 하는 것 같은 우람한 모습이다. 아직도 독도를 자기네 땅이라고 우기는 일본을 믿지 못해 죽어서도 죽지 못하고
굳건한 청동상이 되어 나라를 지키고 있는 것이다.
통영은 참 갈 곳도 많고 볼 것도 많은 도시다. 통영에서 갈 수 있는 섬만 해도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다.
섬도 많고 산도 많은데다 관광지만 해도 넘쳐난다.
그뿐인가 이순신 공원처럼 새롭게 개발되는 관광지도 만만치 않게 늘어나고 있다.
통영은 가꾸고 다듬으면 거기가 곧 유명한 명소가 된다.
과연 천혜의 자연을 품고 있는 통영은 동양의 나폴리라 해도 손색이 없다.
시간이 허락되면 바닷가로 내려가는 오솔길과 숲으로 가는 산책길을 쭉 따라 걷고 싶었지만
일행들이 기다리고 있어 갈 수가 없었다.
그래도 지척에 있는 길을 두고 발걸음을 뒤로 물리자니 아깝다는 생각을 떨쳐 버릴 수가 없었다.
하지만, 내 욕심만 낼 수는 없는 노릇이다.
어차피 이런 풍경은 산과 바다가 함께 있는 길을 더러 걸어 봤기에
눈도장만 찍고 돌아서도 크게 아쉬울 일은 없다.
어제 박경리기념관에서도 나 혼자 시간을 지체하여 일행을 기다리게 했는데 또 그럴 수는 없는 노릇이다.
동피랑마을에서도 두 팀으로 나누어져 이순신 공원으로 앞서간 팀은
우리가 내려오기를 기다리고 있는 상황이다.
대구로 바로 가자면 시간 여유는 있었지만, 사진으로 충분히 남겼으니 그로서 만족을 한다.
여덟 번째 이야기, 산청 남사예담촌마을 이야기
통영을 벗어나 경남 산청군 단성면 남사리에 있는 남사리 예담마을을 찾았다.
어느덧 짧고 긴 여정의 마지막 이야기로 남았다.
다음 정기 모임 때나 아니면 이번에 퇴직하시는 두 분을 위해 임시 모임이 마련되더라도
빨라야 3월이 되어야 만날 수 있으니 모두 지금 이대로 헤어지기란 아쉬움이 남는가 보다.
이구동성으로 올라가는 길에 한 군데 쯤 더 방문하자고 한다.
어디가 좋을까? 갑자기 적당한 장소가 쉽게 나올 리 만무하다.
일단 통영-대전 고속도로의 첫 휴게소인 공룡나라휴게소에서 만나기로 하고
이동 중에 각자 갈 곳을 생각하기로 했다.
휴게소에서 만나 먼저 점심부터 해결했다.
점심은 서부장이 사온 통영에서 전통적으로 유명한 충무김밥과 휴게소 식당을 점령하여
식사를 하여야 하니 우리가 준비해온 음식물만 달랑 먹고 가기란 낯 뜨거운 일이다.
해서 자리 값으로 우동을 시켜 함께 먹었다.
점심을 해결하기 까지 갈만한 장소는 나오지 않았다.
궁여지책 끝에 장부장이 안내소에서 팸플릿을 가지고 와 이리저리 살피더니 툭 한 마디 던진다.
고마 ‘남사예담촌으로 가자.’ 남사예담촌이라... 처음 들어본다.
‘예담촌’이란 구태의연한 이름과 냄새가 썩 당기지도 않는다.
하지만 아직 적당한 장소를 물색하지 못했던지라 특별하게 갈 곳도 없으니 일단은 가보기로 했다.
그러니까 그저 그러려니 하고 큰 기대감 없이 그냥 갔던 곳이다.
우리나라에서 전통한옥마을로 유명한 곳을 꼽자면
먼저 안동하회마을과 전주한옥마을을 떠올리는 것이 다반사다.
오늘 우리 일행의 마지막 여정이 된 전혀 예정된 곳이 아닌 ‘남사예담촌’ 역시 예사롭지 않은 마을이다.
우리는 얼떨결에 난생 처음으로 경남 산청군 단성면 남사리에 있는 ‘남사예담촌’에 왔다.
농촌전통 테마마을로 지정된 "남사 예담촌" 은 고즈넉한 담장 너머
우리 전통 한옥의 아름다움을 엿볼 수 있어 표면적으로는 옛 담 마을 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으며,
내면적으로는 담장 너머 그 옛날 선비들의 기상과 예절을 닮아가자는 뜻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
단성면 남사리 마을 도로 어귀의 빈 공터에 주차를 하고 오른쪽 마을길을 따라 갔다.
별 특이한 점은 눈에 띄지 않고 그저 돌담이 이쁜 정도로만 보였다.
그러나 한 집 건너 두 집, 세 집 지날수록 선비마을 같은 분위기가 고조된다.
한 바퀴 돌아 예담촌 중심부에 오니 남사예담촌은
한국에서 가장 아름다운 마을 제 1호로 지정된 곳이란 표지판이 있다.
그러니까 무심코 방문한 것이 마지막 코스로 너무나 멋진 곳을 찾아들게 된 것이다.
늘 자주 접하는 산과 바다보다 쉽게 가지지 않는 역사와 문화가 공존하는 곳을 우연찮게 들리게 것이다.
남사마을은 과거에 급제한 유능한 인재를 많이 배출한 선비의 고장이며 학문의 고장으로,
공자가 탄생하였던 니구산과 사수를 이곳 지명에 비유할 만큼 예로부터 학문을 숭상하는 마을로 유명하다.
남사예담촌 대표의 인사말에 의하면 니구산은 천왕봉에서 일백 여리를 흘러와 우뚝 멈춘
수려한 봉우리로 그 모습이 아름답기 그지없고 그 아래를 휘감아 흐르는 사수가 조화를 이룬 가운데
넓은 들과 울창한 숲이 주위를 둘러친 천혜의 자연 승지라고 한다.
마을은 당산이 숫룡의 머리이고 니구산이 암룡의 머리가 되어 서로 머리와 꼬리를 무는 형상인
쌍룡교구의 모습을 하고 있으며, 반달모양의 마을 터를 배 모양으로 생각하여
마을의 중심부에는 그 무엇도 채우지도 않고 우물을 파는 것도 금하여 왔다고 한다.
산과 강이 마을의 버팀목이 되고 있는 남사리는 풍수로 봐도 천혜의 자연승지라 할만하다.
지리산이 버티고 섰고, 거울과 같이 맑고 깨끗하다는 경호강이 구비 흐르는 것만 봐도 그렇다.
자연이 주는 천혜를 업고 탄생한 남사리는 전통 한옥이 잘 보존되어 있을 뿐만 아니라
돌담이 특히 아름다운 마을이다. 돌담도 어디서 주워오고 다듬고 한 돌이 아니라
마을을 끼고 흐르는 강가에서 돌을 가져다 마을 주민들이 그대로 쌓은 것이다.
예담촌은 그래서 돌담이 특히 아름다운 마을이다.
남사리는 전통 한옥, 돌담, 과거에 급제한 많은 선비 배출을 자랑하는 것 외에 볼거리가 더 있다.
600년 묵은 감나무, 650년 된 매화나무, 이씨 고가로 가는 300년 된 X자형 회화나무
사효재의 520년 묵은 향나무 등 자랑할 만한 고목 또한 부지기수다.
한 마을에 이와 같이 거대 고목이 여럿 있다는 것은 괄목할만한 일이며 마을의 자랑거리다.
아쉬웠던 점은 감나무와 매화나무를 보지 못했다는 것이다.
있는 줄 알았으면 불원천리하고 달려갔을 텐데 가까이 두고도 몰라서 보지 못했으니 안타깝기 그지없다.
이런 역사와 문화가 있는 마을은 해설사와 동행하는 것이 좋다.
전통 가옥 하나를 보더라도 아는 것만큼 보이기 마련이다.
우리끼리라면 특별한 점이 없다면 눈여겨보지 않을 텐데 해설사랑 함께 다니면 많이 보고 들으며 배운다.
X자형 회화나무 두 그루 사이를 지나 이씨 고가에 들어서니
덩치 큰 학생들이 해설사의 설명을 열심히 듣고는 고개를 끄덕인다.
학생들의 듣는 태도가 진지해서인지 해설사는 신이나 열심히 설명을 하고 있다.
슬며시 학생들 틈에 끼여 설명을 듣노라니 과연 혼자 어슬렁거리며 사진기를 들이대는 것보다
훨씬 들을 것이 많고 깨우치는 것이 많았다.
잠깐 동안이었지만, 해설사의 설명을 훔쳐 들으며 간과하기 쉬운 사실 몇 가지를 얻었다.
해설사의 설명을 나름 귀를 곤두세우고 듣는지라 마을을 안내하는 분인지
날 보고 함께 다니면서 설명을 들으라고 권한다.
고맙기는 하지만 더 이상 시간을 지체하기 어려워 그냥 일행들이 있는 곳으로 갔다.
보나마나 내가 제일 늦을 것이고 날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민폐 해소 차 이 쯤에서 가야겠다. 일행들은 남사리 마을의 특수작물인 겨울딸기를 사 놓고
신랑들을 챙겨 먹인 모양이다. 늦게 도착한 나도 아내가 챙겨주는 딸기 몇 개 입 속에 넣고
딸기처럼 달콤했던 남사리 마을을 떴다.
공룡나라휴게소에 집결하여 서부장이 통영에서 공수해 온 충무김밥과 휴게소에서 우동을 시켜 점심을 먹고 남사예담촌으로 왔다. 예담촌 주소는 경남 산청군 단성면 지리산대로2897번길 10. 도로변 공터에 주차를 하고 마을을 한 바퀴 휘둘러본다.
시멘트벽에 달라 붙은 담쟁이가 겨울 벽화를 수 놓고 있다.
예담촌 골목으로 마을을 탐방한다.
마을로 들어서니 한옥으로 된 고가촌의 모습이 드러나기 시작한다. 그러나 아직까지는 다른 지역의 한옥마을보다 실감이 나지 않는다.
사양정사란 민박집에 곶감이 주렁주렁 많이도 매달려 있다.
그놈의 곶감, 먹음직스럽기도 하다.
돌담이 아름다운 마을리아 예담촌이라 이름했고, 돌담은 마을을 흐르는 남사천의 강돌을 사용하였으며, 하부는 2~3층으로 5~60 cm의 막돌로 쌓고 그 위에 돌과 흙을 교대로 쌓아 올려 담장을 구축했다.
따사로운 햇빛 아래 일행을 기다리며 잠시 머무르고 있다.
담장 너머 우뚝 솟아오른 엄나무 가시가 웬만한 재앙은 막을 듯하다.
예쁜 담장에 얽히고 설킨 담쟁이가 나름대로 잘 어우러진다.
저장 창고 같은데 감나무를 베어내지 않고 지붕 구멍을 뚫어 감나무를 살려 놓았다. 그렇게 해 놓으니 오히려 보기가 좋다.
여기는 막돌로 그냥 막 쌓아 올려 놓았다. 그래도 웬만해서는 무너지지 않지요.
마을을 감고도는 남사천이 나오면 다리 건너 유림독립운동기념관이 나오고, 남사천을 거슬러 올라갈수록 예담촌의 진면목이 드러난다.
유림독립운동기념관은 요기까지 만족하고 남사천을 따라 거슬러 올라간다.
이 길은 자립의 길
유림독립운동기념관인 모양이다.
처음 들어왔던 골목길과는 달리 돌담 분위기가 더욱 더 짙어진다. 남사리의 전반적인 돌담의 특징이 3층 정도 막돌로 층을 쌓은 다음 돌과 진흙을 차례로 쌓아 올린 형식이다.
남사천 건너 데크로 가는 길은 안내판에 그려진 그림으로 보아 '내현재'로 가는 길인 모양이다.
채남정 쯤 되는 것 같고
채남정과 내현재를 가려면 이 징검다리를 건너면 되겠다.
이사재 유숙지. 이순신 장군이 하룻 밤 유숙했던 곳
내용을 꼭 읽어 볼 필요성이 있다. 남사예담촌은 그냥 대충 곁눈질하며 지나갈 곳이 아니다. 볼 수록 볼거리와 이야기거리가 많은 동네다. 아이들과 함께 문화탐방 오기 딱 좋은 곳이다.
이사재에서 채남정이 있는 예담기로 가는 길
이순신장군이 고초를 겪은 백의종군로는 예담촌 1코스 고난의 길이다.
예담촌은 7가지 테마가 있는 길로 조성되어 있다. 아이들과 함께하는 문화탐방코스로 아주 좋다.
우리는 남사천 오른쪽 길을 따라 왔다. 마을 담장과 고택을 두루 구경하자면 우리가 온 쪽이 낫고, 예담길과 채남정, 용소바위가 있는 곳을 거닐고자 하면 왼쪽으로 따라오면 된다.
예담촌 주차장에서 도로변 방향 고택을 훓어며 간다.
예담촌은 말 그대로 담이 예쁜 마을이다. 물론 담이 예쁘다는 것은 여러가지 의미가 내포되어 있다. 덕망을 갖춘 선비가 많아 예로부터 학문을 숭상하는 마을이었으며, 지리산 천왕봉의 정기와 경호강의 맑은물의 영향을 받아 자연스럽게 아름답게 꾸며진 마을이다. 이 마을은 현재 한국의 가장 아름다운 마을 1호로 선정된 곳이다.
남사천을 따라 고가를 지나다보니 웬 아름드리 향나무가 한 그루가 담장너머 보인다. 이거 뭐지~ 대번에 예사롭지 않다는 느낌이 든다.
화적으로부터 아버지를 지키기 위해 자신의 몸으로 칼을 받아 부모를 지킨 영모당 이윤현의 효심을 기리기 위해 나라에서 효자비를 내렸으며 그 후손들이 사효재를 지어 후손들에게 길이길이 그 효심을 본받게 하였다. 사효재의 마당에 있는 향나무는 수령 550년이나 되었으며, 성주이씨 집안과 마을에서 제례를 올릴 때 이 향나무를 사용하였다고 한다. 이 향나무 역시 후손들에게 효심을 전달하기 위해 심었다.
사효재로 들어가는 문
550년의 세월을 묵었어도 워낙 효심이 깊은 나무라 그런지 아직 건장한 채 많은 사람의 귀감이 되고 있다.
사효재
사효재 옆에 있으며 조선 개국에 공을 세운 경무공 이제의 공신교서가 내린 곳이다.
물레방아 쉼터. 처음부터 이쪽으로 왔었더라면 좀 더 꼼꼼하게 살펴보았을 텐데 거꾸로 돌아 시간이 없던 우리는 그리 알뜰하게 살펴 보지를 못했다.
이씨고가로 가는 짧은 골목담장길에 또 예사로워 보이지 않는 나무 두 그루가 X자형으로 교차된 모양을 하고 섰다.
느티나무인가 하고 갔더니 회화나무라 적혀있다.
그것도 무려 300년 되었단다. 오늘 남사예담촌에 정말 잘 왔다. 볼거리가 이렇게 많은 줄이야 예전엔 미처 몰랐다. X형으로 교차된 회화나무는 일명 부부나무라 일컫기도 하는데 부부가 이 나무 아래로 지나가면 부부금슬이 좋아진단다. 이실장, 장부장, 나중에 오줌눌 때 없나 싶어 이쪽으로 온 서부장 뭐, 대충 이렇게 이 나무 아래를 지났는데 그러고보니 사나들만 부부금슬이 좋아진다는 부부나무라 부르는 이 회화나무 아래를 지났구만. 그러면 이야기가 어찌되지. 사나들의 의리라도 더욱 돈독해 질라나~ 아닌데... 낫살 먹을수록 부부금슬이 더 좋아야 하는데. 반쪽만 지나가면 인정 안 해줄란가???
사람의 마음과 머리를 맑게하는 선비나무로 잘 알려진 나무다. 남사리는 지세가 쌍용교구 형이라 용의 기운이 강하다. 용의 불기운을 막기 위해서 두 그루의 회화나무를 심어 불의 기운을 막았다고 전해진다.
아주 짧은 골목 끝집이 이씨고가다.
이실장, 장부장, 나 밖에 없는 줄 알았는데 이씨고가 안으로 들어오니 학생 문화탐방 온 단체가 해설사의 설명을 열심히 듣고 있다.
가만히 학생들 틈에 끼어 도둑고양이처럼 해설사의 설명을 엿듣는다. 가만히 듣자하니 설명이 아주 구수하고 상세한 것이 귀담아 들을 것이 많다.
설명을 들으려 사진 촬영을 하랴 바쁘다 바뻐~~~
사진은 나중에 찍고 학생들 틈에 끼여 설명을 들어야 하는데 잘못했다.
해설사 분이 우물가에 서더니 우물 이야기를 하면서 귀신 얘기도 하고, 부부의 정을 판단하는 얘기도 한다. 뭐라하시더라~ 우물은 보통 사대부에서는 우물정자 형태로 짓고, 1년에 한 번씩 남편이 우물 청소를 위해 우물로 들어 갔을 때 평소 원망이 많았던 아내가 우물 뚜껑을 덮어 버리면 큰일이라는 둥 너스레를 떨며 재미있게 이야기를 한다. 학생들은 진지하게 설명을 들으며 웃기도 하고 경청하는 태도가 좋다.
아무도 없을 때 사랑채만 한 장 담아본다.
곧 학생들이 해설사를 따라 사랑채로 우르르 몰려와 설명을 듣는다.
위에 자그마한 창을 설명하길래 얼른 카메라를 줌인하여 사진을 한 장 담았다. '불밝기창'이라고 하는데 아마 어두운 방에 빛을 비추기 위해 만든 창이라 불밝기창이라 부르는 모양이다. 해설사 곁에 있으니 뭐라도 하나 줏어 듣는다.
이씨고가 안 마당에도 고목나무가 한 그루 있다. 해설사분의 설명으로는 삼신할미나무라고 한 것 같다. 골목에 있는 부부나무라 일컫는 회화나무다 보다 더 오래된 350년 묵었다고 들은 것 같은데 기억이 아리아리하다.
삼신할미나무의 아래쪽에 할미의 배꼽이 있는데 이 할미의 배꼽이 아이를 점지하는데 또 그렇게 영험하단다. 아이를 갖지 못한 여인이 할미의 배꼽에 손을 넣고 소원을 빌면 할미가 없던 아이를 점지해 주고, 아이를 더 갖고 싶어 소원을 빌면 더 가지게 해 준단다. 그러나 나이 든 할머니 또래의 여자가 장난스럽게 손을 집어 넣고 소원을 빌다가는 우사를 당하기 십상이란다. 나이 7~80세에 잉태를 하여 아이를 낳는다면 어메, 망칙스러버라.ㅎㅎㅎ
대문 밖에 서 빨간 추리닝을 입고 서 계시는 분은 내가 나올 때까지 기다리고 계셨나보다. 난, 그런 줄도 모르르고 삼신할미나무를 찍는라 안에서 지체하고 있었더만, 빨리 나올 기미가 없자 나보고 나올 때 문을 당겨 달라고 한다. 그때서야 내가 나오기를 기다리며 서성거리고 있음을 눈치채고 문을 당겨 주고 얼른 나왔다.
처음에는 학생들 인솔교사인가 싶었는데 차림으로 보아 학생들 인솔교사는 아닌 듯하고 아마, 체험활동을 온 사람의 편의를 제공하는 이 마을 주민인 듯했다. 저 분에게 물어보니 학생들은 경남 산청에 있는 대안학교인 '간디학교 학생'들이라고 했다. 저분은 해설사의 설명도 들어가며 사진 촬영을 하고 있는 내 모습을 쭉 보고 있었던지라 날 보고 함께 다니며 보라고 권한다. 고마우신 말씀이었으나 내가 여기서 이렇게 꾸물거리고 있었으니 분명 일행들은 또 날 기다려야 할 것이다. 이만하고 일행들한테로 가야겠다.
내가 나오면 문을 닫을려고 지켜보고 있는데 그 이유를 모르는 난 계속 이러고 있다. 이씨고가에서 나가기 전에 마지막으로 보고 찍을 곳이 있다. 바로 이 장면이다. 대문을 액자로 부부나무를 담는 것이다. 보이는가? X자로 교차된 회화나무 위에 걸린 사랑마크가?
대문너머 회화나무 위에 걸쳐진 사랑을 본 사람은 사랑이 깊이 샘 솟고 사랑을 얻는단다. 재미있는 이야기 아닌가?
우리는 백의종군로에서 이쪽으로 왔다.
이 안내판 한 장이면 남사예담촌은 손바닥 안에 있다. 진작 이쪽으로 와 안내판을 봤더라면 가까이 있는 600년 된 감나무, 650년 된 매화나무도 봤을텐데 아깝다 아까워. 고가 한 두 채 못보더라도 이 귀목들은 봤어야 하는데 참말로 등신 같다.
우리나라 여기저기 다니다보면 우리나라에서 최고, 가장 높은 , 가장 오래된 이런 내용을 더러 접한다. 마을마다 지방마다 우리 것이 최고이기를 위하는 맘은 알겠다만, 공식적으로 인정되지 않은 경우에는 그리 표현하지 않으면 좋겠다. 보는 사람은 그리 믿고 그리 사용하는데 자칫 보고 온 내용을 문서화 시켰을 때 큰 과오을 범하기 십상이다. 사소한 것 하나라도 정확한 사실 근거에 의해서 표시했으면 한다. 여기는 맞겠지.
마지막으로 담장이 예쁜 예담촌 골목을 바라보며 발길을 돌린다.
1박 2일의 짧은 여정, 짧은 일정 속에 먼 길을 돌아 왔다. 거창휴게소에 들르니 해가 서산으로 넘어간다. 거창휴게소의 일몰을 보며 육부회 신년행사를 마감한다. 고회장 내외 분, 초대회장이 되어 2년간 터전을 굳건하게 닦아 주어 고맙고 수고 많았오이다. 아울러 차기 회장님 내외도 큰 부담 갖지 마시고 알뜰하게 맡아 주기 바랍니다. 모두 을미년 신년에 즐겁게 노느라 수고 많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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