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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공산

팔공산 하늘정원 - 오도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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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공산의 새로운 명소로 부각된 하늘정원

그리고 천혜의 기도도량 오도암에 들어가다.

 

 

언제 : 2015. 6. 21.(일)

어디로 : 팔공산 하늘정원 - 오도암

누구랑 : 아내

 

 

오도암(悟道庵) 개요

<암자에 세워진 안내글을 옮김  >

 

팔공산 제일의 명당으로서 비로봉 아래 청운대 절벽아래 자리하고 있는 이 절은 신라 654(태종 무열왕 원년) 원효대사가 창건하여 오도(悟道)한 곳이라 오도암(悟道庵)이라 전해지고 있다. 1963년 폐사이래 유허(遺墟)만 남이 있고, 빼어난 상호의 불상과 고탱화는 지금까지 전하여지고 있으며, 절 뒤편 청운대에는 원효대사가 득도한 원효굴과 젊은 시절 김유신 장군이 기거하며 그 물을 먹으면서 나라의 앞날을 생각했다는 장군수가 있다.

 

 

동산계곡<군위군청 홈에서 펌>

 

경북 군위의 동산계곡은 남쪽 끝에 솟은 팔공산의 원시림과 4km에 걸쳐 흐르는 맑은 물이 어우러진 계곡입니다. 울창한 숲과 맑고 깨끗한 물, 그리고 곳곳에 작은 폭포들이 시원하고 상쾌한 소리를 만들어낸답니다.

 

예로부터 물의 양이 많다고 해서 "멱바우"라고 불려지고 있으며 크고 작은 여러개의 폭포가 계곡 따라 이어져 있어 절경을 더하고 있답니다. 또한 주변에 군위 삼존석굴, 팔공산도립공원 등 둘러볼 만한 곳이 많아서 좋답니다.

 

대구에서 팔공산 한티재를 넘어 군위로 들어가는 79번 지방도로는 멋진 드라이브 코스여서 여름철이면 이 동산계곡을 찾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있습니다.

 

 

 

흔적

 

산을 몰랐을 땐 우리나라에 이렇게 산이 많은 줄 실감하지 못했다. 이제 산을 조금 알고 재미가 붙은 지금 내 눈엔 삽작문만 삐죽 열고 나와도 온 천지가 산으로 보인다.

 

내 곁에 산이 이렇게 많았던가? 이 산을 언제 다 다니지. 살아도 앞으로 백년은 더 살아야 다 다닐 수 있을 것 같은데. 백년 더 살면 과연 다 다닐 수나 있을까? 그것 또한 의문이다.

 

지난 주 일요일 수태골에서 동봉을 거쳐 비로봉을 올랐을 때 우연히 송신탑 뒤로 문이 열려 있음을 알았다. 평소엔 드나드는 문이 있다 하더라도 당연히 굳게 닫혀 있을 거란 생각에 언강생심 뒤로 가볼 생각은 추호도 하지 않았다혹시 비로봉 오르는 길섶이나 그 주변에서 보지 못한 꽃들이 있나 싶어 두리번거리다 그제사 뒷문이 뚫려 있는 것을 알게 된 것이다. 새로운 길을 알았다는 반가운 마음은 마치 콜럼부스가 신대륙을 발견한 것 마냥 신비롭고 즐거운 일이다. 내친 김에 포장된 임도를 쭉 따라가노라니 동봉에서 비로봉가면서 본 들꽃과는 또 다른 들꽃들이 각양각색으로 반기고 있었다.

 

국화방망이, 미나리아재비, 함박꽃나무, 꼬리말발도리 등을 대면하는 것도 물론 좋았지만, 평소에 팔공산 꽤나 걸어봤다고 자부하고 있던 터라 처음 걸어보는 길에 정신줄을 놓은 것만은 분명했다. 그러니까 곧 하산해야 함에도 탄력 붙은 발걸음이 멈출 줄 모른다는 게 문제였다. 이래서는 안 될 것 같아 다음 주에 반대로 와 봐야겠다는 생각을 한 후에야 겨우 발걸음을 되돌릴 수 있었다. 그래서 팔공산 비로봉을 거꾸로 찾아 나선 길이 오늘 이 길이다.

 

세상에, 작년 727일 공군부대 앞에 주차를 하고 그 주변의 야생화를 탐방할 때만 해도 하늘정원이 조성되어 있지 않았었다. 그런데 이번에 우연히 알고 간 그 자리에는 군위군에서 그동안 군부대로 인하여 민간인의 출입을 통제했던 구간을 팔공산 명소로 탈바꿈시켜 놓았다. 거액을 들여 구름을 타고 하늘정원으로 가는 데크를 조성해 놓은 것이다. 내 고장 팔공산이 점점 더 팔공산을 찾는 산객의 심금을 울린다.

 

오늘은 어제 일기가 불순했던 탓인지 그놈의 메르스 때문인지 오전에는 산객이 크게 눈에 띄지 않았다. 구름이 산정을 덮은 하늘정원으로 가는 길은 꽃밭 한가득이다. 좀조팝나무가 산정을 온통 뒤덮은 위로 허연 구름이 걸쳐 있기까지 하니 하늘정원으로 가는 길은 몽환적인 분위기 그대로를 연출하고 있다. 아내와 난 홀린 듯 데크를 따라 안개가 자욱한 구름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하늘정원까지는 대략 500m쯤 될 거다. 전망대와 멀리 조망을 할 수 있게끔 망원경도 두 군데 비치해 놓았다. 오늘은 산마루에 구름이 길게 머물러 시계가 제로 상태이지만, 구름밭을 거니는 기분 또한 나쁘지 않다. 땅 위에서 볼 때 높은 하늘에 걸린 그 하얀 구름 속으로 들어가 그 길을 걷고 있는데 무슨 말이 필요하랴. 신선이 뭐 별거던가. 지금 이 길을 걷고 있는 아내와 내가 곧 신선인 게지.

 

하늘정원은 야생화단지를 조성해 놓았는데 시기가 이른지 아직 무르익지는 않았다. 팔공산정에 이렇게나 넓은 평원이 있었다는 것이 그저 놀랍기만 하다. 그동안 군부대로 인해 잠자고 있었던 땅을 군위군이 주민에게 내어준 것이다. 탁월한 선택이고 그 선택은 곧 팔공산의 명물이자 산객의 주요 안식처로 자리매김했다. 차제에 감사의 인사를 드린다.

 

하늘정원으로 통하는 길은 그동안 막혀있던 TBC 중계소를 지나 비로봉으로 연결된다. 지난 주 혼자 비로봉을 왔을 때 TBC방송 중계소가 있는 여기까지 왔었다. 오늘은 지난주에 갔던 딱 거기까지만 가고 발길을 되돌렸다. 그래도 지난번에 왔던 흔적과 연결하면 길은 쭈욱 연결되는 것이나 다름없다. 가급적이면 빨리 돌아가 오늘은 오도암으로 가야한다. 아내가 아직 가보지 않았기에 오늘은 다른 데는 못가도 오도암만은 꼭 구경시켜 주어야한다. 아내를 위해 어떤 사명감 같은 맘을 가진 채 오도암으로 데불고 간다.

 

오도암은 임도에서 대략 1.5km 선상의 청운대 아래에 있다. 들어가는 초입은 숲이 무성하고 나무가 우거져 여름에 들어가기 딱 좋다. 아랫마을 동산계곡은 여름이 깊어지고 날씨가 무더우면 더위를 피해 계곡을 찾는 이로 인산인해를 이룬다. 그때도 오도암으로 가는 이 계곡에는 사람이 거의 없다. 간혹 아는 사람들만이 깊은 계곡 속으로 찾아 들어가 망중한을 즐기는 정도다. 오도암까지 1.5km 정도 되는 거리는 대략 1/3은 콧노래 부르며 갈 수 있고, 나머지는 비지땀을 흘리며 가야한다. 그러니 오도암은 쉽게 길을 내어주는 암자가 아닌 것이다.

 

오도암으로 가는 길은 원효대사의 길로 구도의 길이다. 원효대사가 6년간 서당굴에서 수도를 하며 오도(悟道) 한 곳이다. 그 전에 김유신이 수도했다고도 전해지는 서당굴(誓幢窟)의 서당(誓幢)은 원효의 또 다른 이름이라 하며, 서당굴은 오도암 뒤를 병풍처럼 에워싼 청운대의 깍아지른 듯한 거대한 바위 절벽의 중간쯤에 있어 접근하기가 쉽지 않다. 선답자의 어떤 블로그에는 서당굴과 그 옆에 있는 좌선대에 앉아 사진을 찍기도 했더만, 우리는 스님의 위험하다는 말씀에 감히 올라갈 엄두조차 내지 않았다.

 

사립문을 열고 오도암으로 들어섰다. 한적한 오도암은 참배를 위해 온 사람과 산객이 더러 오가고 있었지만, 고즈넉한 분위기는 팔공산 기도도량으로 최고의 명당이라 아니할 수 없다. 절터는 해당 관청에서 문화재 발굴을 위해 파헤친 흔적이 있었지만, 현재 발굴 작업은 완료되었나 보다.

 

갑자기 호쾌한 목소리의 스님이 반갑게 인사를 건네 주시며, 어서 와보라고 한다. 뭔가 싶어 가봤더니 빨간두꺼비가 오도암 축대 밑에 들어가려고 하고 있었다. 스님은 그 모습을 보여 주고 싶어 축대 안으로 들어가려는 두꺼비를 불러내고 있었다. 스님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두꺼비는 낯선 이가 다가오니 두려웠던지 안으로 쏙 들어가 버렸다. 스님께 말씀드렸다. ‘낯선 사람이 와 낯가림 하는가 봅니다.’ 했더니 스님은 그렇지 않다고 하시며 유쾌하게 웃으신다.

 

그렇게 스님과 맞대면을 하다 보니 아내가 직장 동료로부터 들었던 청운대의 부처님 상에 대해서 여쭈어 보았다. 그랬더니 스님이 마치 기다렸다는 듯 이리와 보라고 하시더니 오도암 뒤에 우뚝 솟은 봉우리에 관해 설명을 해 주셨다. 청룡과 백호 사이에 봉우리 하나 더하여 삼불봉이라고 부르기도 하는 오도암 주변의 기이한 봉우리의 형상에 대해서 세세한 설명을 덧붙여 주셨다. 그러고 보니 지난번에 왔을 땐 무심코 바라보아 오도암 뒤로 거대한 암벽이 있다는 정도로만 느꼈지 더 이상 세세한 내용은 알 길이 없었다. 스님이 자상하게 설명을 해주어 알았지 그렇지 않았으면 또 무심코 지나갈 뻔 했다. 오도암을 스쳐가는 수많은 사람들도 아마, 이 내용은 모르리라. 오늘은 왠지 날아갈 것 같은 기분이다.

 

청운대의 봉우리 위쪽을 자세히 보면 부처님이 서 계시는 모습을 볼 수 있다. 부처님상 왼쪽에는 갓을 쓴 일본병사가 부처님을 향해 머리를 조아리고 용서를 구하는 모습의 바위가 있다. 그리고 고개를 숙이고 잘못을 비는 일본병사 뒤에는 잘못을 단죄하기 위하여 병사의 뒤통수를 가격하는 장면이 연출되고 있다는 말씀을 덧붙이는데 그 장면은 눈에 확 들어오지는 않았다. 또 그 오른쪽에도 부처상이 팔공산 서봉을 바라보고 있는 형상의 바위가 있다. 과연, 설명을 듣지 않으면 알 수 없는 장면이다. 이제 오도암에 가면 다른 이들보다 좀 더 아는 체 해도 될려나. 산에 오가는 사람들은 스님의 말씀을 빌자면 가슴에 담고 마음으로 품어야 한다고 하셨는데 이리 밉상스럽게 미주알고주알 떠벌려도 될는지 모르겠다. 오도암 법당 안에서 스님이 이런 고얀 놈 같으니라고할 것 같다.

   

오도암은 청운대 아래 천혜의 명당에 자리하고 있다. 올해부터 시작해 내년까지 중창불사를 해 법당이 새로 거듭난다고 한다. 개인적인 소견으로는 현재 모습이 더 다정다감하지만, 신도들 입장에서는 그렇지 않을 것이다. 기도하는 사람을 위해 더 넓고 아늑한 공간이 필요할 것이고 새로 탄생하는 법당은 멋진 모습으로 탈바꿈해 팔공산 기도도량으로 거듭날 것이다. 팔공산이 품은 5대 기도도량 중 하나인 오도암의 변하는 모습이 사뭇 기대된다. 법당이 새로 탄생하면 당시 오도암 주변에서 발굴한 금동불입상도 은해사에서 다시 이리로 모셔온단다. 오도암에서 발굴한 금동불입상은 스님의 말씀에 의하면 약 9cm 정도의 높이로 불상 제작 당시에는 부처님상이 지금처럼 크고 우람한 체격을 가진 것이 아니라 주로 자그마하게 제작했다고 하신다. 백제시대에 이르러 나라가 위급해짐에 부처님께 의지하는 마음이 커 불상이 거대해지기 시작했다고 한다. 그리 알아들은 것 같다.

 

오도암이 중창하면 다시 모시게 될 금동불입상에 대해 궁금함이 들어

군위군청 홈페이지를 통해 그 내용을 알아본 즉

 

지정번호 : 경상북도 문화재자료 제507

지정년월일 : 2006-06-29

지정면적 : 1

소유자 : 영천 은해사 박물관 기탁 보

 

경상북도 군위군 부계면 동산리의 오도암에 보관되어 있는 금동불입상이다.

불상 높이는 약 9.4로 작다.

 

아래를 굽어보는 것처럼 보이며 배를 앞으로 내밀고 있다.

, , , 귀의 생김새가 뚜렷하고 법의의 형태 등을 미루어 볼 때 8세기 중후반의 통일신라시대 불상 양식을 갖추고 있다. 광배와 좌대가 없어졌지만 다른 부분은 상대적으로 완전한 모습을 하고 있으며, 일부 도금이 떨어져 나간 부분이 있다.

 

주변 지역에서 금속제 불상이 나온 경우는 흔치 않아 중요한 문화재적 가치가 있다.

고 전한다.

 

스님께 초청 받아 선방에 올라갔다. 겨우 사람 한 명 올라갈 정도의 구멍으로 짝달막한 사닥다리를 통해 올라가니 너댓명은 너끈히 앉을 수 있는 다락방 같은 곳이 나왔다. 스님이 직접 키우고 재배한 뽕나무 잎으로 차를 만들어 주셨다. 대구 모 병원 앞 빌딩에서 방사선촬영을 전문으로 한다는 병원장과 함께 차를 마시며 이런 저런 스님의 좋은 말씀을 많이 들었다.

 

스님은 사립문에 들어오기 전에 새로 생긴 간이화장실이 무척 마음에 들고 고마우셨나보다. 물론 스님이나 거주하는 보살님이야 별것아니었겠지만, 아마, 불자들과 오가는 탐방객들의 편의를 도모할 수 있어 그리도 좋으셨나보다 라는 생각이 든다. , 아니 그러하겠는가. 그래도 난 개인적인 소견으로 전에 있던 벼랑 끝에 문짝도 달리지 않은 채 앉아 볼일을 보던 화장실이 그리 나쁘지 않다고 여긴다. 앉아 있으면 팔공산이 병풍처럼 눈앞에 펼쳐지는 광경이 무엇보다 좋았던 것이다. 가만 앉아 있노라면 앉은 그 자리가 곧 무릉도원 같다고 여겼는 데 그 모습이 사라져 쬐금 아쉽다. 재래 화장실이 허술하기는 했어도 나름대로 오도암의 상징적인 명물인데 명물 하나가 사라진 느낌이다. 내 맘이 그런지도 모르고 스님은 계속 군위 군수님께 고맙다는 말씀과 간이화장실을 설치하느라 애를 먹었던 말씀만 되뇌인다. 오도암 입장에서는 꼭 필요했고 필요했던 만큼 고마웠던 모양이다. 스님이 그리 좋아하셔서 그런지 괜히 우리도 화장실에 애착이 더 가 가는 길에 짧은 볼일 한 번 보고 갔다.

 

오늘은 참말로 소득이 짭잘한 하루였다. 산행하는데 힘도 크게 들지 않는 팔공산의 또 다른 명소로 거듭날 하늘정원을 걷는 길이 그랬고, 오도암으로 가는 길이 그랬다. 오도암에서 스님의 정성이 깃들인 뽕잎차도 그랬고, 스님의 말씀이 그랬다. 스님의 말씀 가운데 나한테 특히 가슴에 남는 말씀이 하나 있다. ‘산을 다니며 사진을 찍고 여기저기 인터넷에 올리며 다 알지도 못하면서 다 아는 냥 사진과 글을 올리는 얄팍한 행위는 죄를 짓는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그래서 스님은 오도암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왈가왈부하는 것을 원치 않으시는 것 같다. 특히 사진을 찍히는 자체도 몹시 싫어했다. 암자와 암자 주변을 찍는 것은 뭐라 하지 않으시는데 본인이 찍히는 것은 원치 않으셨다. 그래서 스님과 함께 기념으로 사진을 한 장 찍고 싶었지만, 언강생심 말도 꺼내지 못하고 사진기를 목에 걸고만 있었다. 이런 글을 남기는 것도 어쩌면 싫어하실지도 모른다. 스님의 말씀을 내내 듣고만 있다가 나도 한 마디 딱 했다. ‘스님, 그래도 좋게 표현하고 좋게 나타내는 것은 서로 정보 공유 차원에서 도움을 주고 받을 수 있으니 이쁜 죄 짓는 것이 아닐런지요.’ 스님은 딱히 다른 반응은 보이지 않으시고, 계속 하던 말씀을 이어가셨다.

 

줄 때는 홀딱 벗고 준다고 스님이 주무시는 방까지 안내하며 구경을 시켜주셨다. 방이래야 자그마한 조립식으로 스님 한 분 지내시면 족할 공간이다. 4~5단으로 보이는 책꽂이에 책이 가지런하게 정리되어 있는 모습이며 깔끔한 내부가 포근하게 보인다. 스님이 기거하는 곳이라 그런지 더욱 정감이 간다. 스님은 본인의 잠자리를 보여줄 목적이 아니라 벽체를 감싼 낙엽송을 보여주려고 우리를 데리고 간 것이다. 냄새를 맡아 보라며. 은은한 향내가 코끝으로 풍겨왔다. 낙엽송에 그런 향기가 있었던가? 전봇대로 주로 쓰는 일본잎갈나무를 흔히 낙엽송이라 하지 않던가. 산행을 하면서 키 큰 낙엽송을 올려만 보다가 낙엽송의 진한 향내를 알게 됐다.

 

중창불사가 끝나고 오도암이 새로운 모습으로 단장할 때 다시 와야겠다. 어떤 모습으로 기다릴지 기대가 크다. 스님께서는 지금 있는 암자를 옆으로 옮기고 새로 중창한 곳에 은해사에 보관하고 있는 금동불입상을 모시고 단청은 하지 않으실 계획이라고 하신다. 뭇 중생을 비롯한 오도암에 기거하는 스님을 비롯하여 많은 분들이 따뜻하게 지내실 수 있도록 해당 관청에서 기왕 마음 써 주시는 김에 홀딱 벗고 주셨으면 좋겠다. 오늘 스님께서 홀딱 벗고 주신다는 말씀을 세 번은 들은 것 같다. 스님, 이런 말 옮겼다고 호통을 치시지는 않으시겠죠. 저는 그 말씀 덕에 많은 것을 얻고 깨달았으니 그런 표현이 정겹기만 하네요. 스님! 늘 건강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대단히 고마웠습니다.

 

 

 

 

 

사진으로 보는 하늘정원과 구도의 길로 가는 오도암 풍경

 

 

팔공산 하늘정원. 공군 부대 못미쳐 데크가 설치된 곳에 주차장이 있다. 동산계곡을 따라 주욱 올라와야 한다. 그동안 공군부대로 인해 출입이 제한되었던 곳으로 군위군에서 하늘정원을 개발해 시민들에게 개방을 하고 있다.

 

비로봉과 동봉, 서봉을 가려면 여기서 가면 보다 쉽게 갈 수 있다.

 

하늘정원으로 가는 데크가 초입부터 길게 늘어져 있다.

 

하늘정원으로 가는 길은 온 천지가 꽃밭으로 무성하다. 특히 좀조팝나무와 미역줄나무가 대세를 이루고 있다.

 

미역줄나무는 동봉에서 비로봉으로 가는 오름길에도 많이 분포되어 있더만, 여기도 지천이다.

 

데크로 가는 길에 참좁쌀풀도 만난다. 제법 무리를 지어 자라고 있다. 좁쌀풀은 눈에 자주 띈다고 하지만, 참좁삽풀을 만나는 것은 쉽지 않다. 

 

데크로 이어지는 상부에 톡 튀어 나온 이런 부분이 있다. 이곳을 넘어 우측으로 표지기가 붙어 있는 곳을 따라가면 청운대가 나오고 나름 유명한 낙락장송이 있다.

 

구름이 앞을 가려 시야가 전무하지만, 군부대의 철조망은 하늘정원과 또 다른 느낌을 준다.

 

데크가 끝나고 군부대 담을 따라가면 이내 하늘정원이 나온다. 오른쪽이 하늘정원이다.

 

구름에 가려 시야가 흐리지만, 하늘정원은 야생화 단지를 조성해 놓았고 쉬어가기 좋게 꾸며 놓았다.

 

철조망 너머 구름에 가렸던 헬기장을 잠시 보여주기도 한다.

 

깍아지른 암벽을 아래로 두고 하늘정원이 조성되어 있다.

 

조망을 즐기라고 망원경까지 설치해 놓았다.

 

봐봤자 아무것도 보이지 않을터 구름을 뚫고 전경을 바라보는 혜안을 가지시게...

 

잠시나마 구름이 걷히며 군부대의 모습이 약간 드러난다. 군부대 내부는 촬영금지라 자세하게 담지는 않았다.

 

하늘정원에는 애기나리와 기린초 등 흔히 보는 야생화를 심어 놓았지만, 심은지 얼마되지 않아 아직 어린티가 솔솔난다.

 

군부대 철망과 데크 그리고 숲이 어우러져 있다.

 

 

여기도 망원경이 있다. 오늘은 있으나마나...

 

좀조팝나무가 동산계곡으로 올라오면서부터 엄청난 군락을 자랑하며 자라고 있다. 이렇게 많은 좀조팝이 있는 곳은 그리 흔치 않을터 과연 내고장 팔공산은 무궁무진한 자원의 보고라 할 수 있다.

 

고광나무도 흔치 않게 봤는데 아직 그리 눈에 익지 않아 장소가 바뀌고 꽃이 피고 지는 상황에 따라 구별이 잘 안된다.

 

꿀풀 사진이 제일 잘 받는다.

 

찔레꽃의 가지가 휘어진 모양이 예뻐 담아봤다.

 

비로봉으로 가는 길도 모두 시멘트로 포장되어 있다. 그길을 따라 좀조팝나무가 줄지어 있다.

 

이슬을 머금고 있는 좀조팝나무

 

비로봉. 지난 주에 혼자왔을 때 비로봉에서 여기까지 왔다. 오늘은 역으로 갔지만, 비로봉까지 가지 않고 여기까지 왔다. 지난 주와 연결하면 비로봉으로 가서 동봉까지 간 택이다. 그리 생각하고 오늘은 여기까지만 가고, 이제 다시 내려가 오도암으로 가야 한다. 

 

함박꽃나무에 하얀 함박꽃이 아직 드문 드문 피어 있다. 언제 봐도 고결하고 순결해 보인다.

 

공군부대가 있는 저곳은 그 옛날 공산성이 있던 자리란다. 애석하게도 산성의 흔적은 티끌만큼도 남아 있지 않다.

 

구름에 가린 비로봉 철탑이 아련하게 보인다.

 

구름이 산을 감싸고 있는 모습은 언제봐도 멋진 풍경을 자아낸다.

 

요놈도 뭔 나리꽃 종류인데 뭘까? 싱싱한 꽃잎에 맺혀 있는 물방울이 보석처럼 달려있다.

 

이놈도 고광나무다. 꽃이 떨어지고 난 후의 모습이다.

 

다시 군부대 철망과 데크를 따라 하늘정원으로 가고 있다.

 

지난 주에 봤던 국화방망이

 

미역줄나무는 철망이고 뭣이고 모두 덮은 채 물불을 가리지 않고 세력을 과시하고 있다.

 

구름이 잠깐 걷히더니 군부대의 모습을 일부 보여주기도 한다.

 

 

하늘정원 꼭대기. 망원경이 설치된 곳이다.

 

 

 

하늘정원

 

 

하늘정원 초입에 있는 주차장이다.

 

봄여뀌가 맞는 모양이다. 벌써 여뀌류도 올라온다. 봄여뀌는 다른 여뀌보다 일찍 피어난다.

 

구주피나무. 절에서 흔히 보리수나무로 알려진 찰피나무와 피나무 모두 비슷비슷하다.

 

산과 구름 그리고 구름 속의 여인

 

앞서 말했던 데크가 톡 튀어 나온 저기로 넘어와 청운대로 가거나 아니면 하늘정원 쪽에서 헝클어진 철조망을 지나 청운대로 간다. 거기가 거기다.

 

옛날 천제를 지내던 천제단이 있던 자리인 모양이다.

 

청운대 벼랑 끝에 서 있는 낙락장송. 청운대의 매력포인트다.

 

여기서 잠깐 입맛을 다신다.

 

청운대 왼쪽 벼랑끝으로 가니 또 멋진 소나무가 새로 솔방울을 맺은 채 자태를 뽐내고 있다.

 

다양하게 변화를 주고 담아본다.

 

스케치모드로도 찍어보고...

 

이쪽도 습한 모양이다. 고사리류가 군락을 형성한 채 뒤덮고 있다.

 

이 길은 아무리 봐도 좀조팝나무가 대세를 이룬다. 좀조팝이 대세를 이루고 있는 가운데 귀한 참좁쌀풀도 만나는 행운을 누린다.

 

참좁쌀풀. 산을 많이 다니다보니 여러가지 다양한 우리풀, 우리나무를 만나게 된다.

 

하늘정원 입구로 내려가는 길. 이제 내려오니 구름이 걷히고 시야가 트이기 시작한다.

 

저어기 내 차도 있지롱...

 

터리풀도 만나고...

 

오리새도 만난다. 오리새가 맞는지 확실하지는 않다.

 

하늘정원에서 내려와 원효대사 구도의 길로 가기 위해 왼쪽에 간이주차장을 만들어 놓은 곳에 주차를 한다. 아내가 있는 전봇대 오른쪽으로 오도암으로 가는 원효대사 구도의 길이 나온다. 

 

여기 주차를 하면 된다.

 

오른쪽에 오도암으로 가는 입간판이 서 있다. 지금 아내는 구도를 위해 오도암으로 들어간다.

 

대략 500m쯤은 걷기 좋은 숲길이고, 나머지 1km는 땀 좀  빼야 한다.

 

원효대사 구도의 길은 숲이 좋아 걷기 좋은 길이다.

 

송림이 우거진 길에 인적마저 드물어 절로 힐링이 되는 길이다. 천길 낭떠러지 아래 자리잡은 오도암은 이렇게 사람을 불러 들이고 있다.

 

여기선 숙은노루오줌도 만난다. 하늘정원쪽보다 빠르게 피었다.

 

산꿩의다리도 만난다. 이놈은 동봉아래 마애석조여래입상이 있는 곳에 많이 있는데 지난 주에 갔을 때는 시기가 맞지 않아 보지를 못했다.

 

스님은 이 다리를 오작교라 불렀다. 아내와 난 오작교를 지나 오도암의 스님을 만나 재밌고 유익한 말씀을 많이 들었다. 뽕잎차도 마시고 선실까지 초대되어 말씀을 들었다.

 

 

어제 그렇게 기다리던 비가 좀 내렸나 했더니 여기도 비가 오다 말았는지 계곡이 말라있다. 큰일이다. 비가 제법 내려야 할텐데... 다행히 장마가 곧 온다고 하니 해갈은 되겠지.  

 

산수국도 꽃망울을 달고 여차하면 피어날 태세를 갖주고 있다.

 

김종해의 그대 앞에 봄이 있다. 숨이 거칠어 지면서 그대 앞에 봄이 있다 앞에 섰다. 그리고 싯구를 읽으며 마음 속으로 되뇌어 본다.

 

육가정이 보이면 이제 다와 간다. 잠시 쉬었다 가려다 신발을 벗고 올라가세요 라는 문구가 있어 신발 벗기 귀찮아 그냥 올라간다.

 

조록싸리도 이제 피어나기 시작했다. 위에서 내려오는 길에 모양 좋은 애들이 더러 있었는데 차를 세우기 귀첞아 그냥 지나쳐 왔더니 이제 안되겠다 싶어 이 아이라도 담는다.

 

여기도 좀조팝나무가 지천이다.

 

 

이제 다왔다. 구도를 위해 사립문 안으로 들어간다.

 

 

태풍 매기가 왔을 땐가 산사태가 나 무너진 흔적이라고 했던가...

 

저 봉우리에 부처상이 서봉을 향해 있는 모습이 있다. 스님께 설명을 듣지 않으면 알기 어렵다. 오늘 우린 그런 행운을 누렸다.

 

저기 청운대에서 오도암으로 내려서는 끊어진 길에 경사가 급해 내려오기 힘든 길이 있다. 청운대에서 저리로 내려와 다시 올라 가려다 아무래도 길이 장난이 아닐 것 같아 포기하고 임도로 내려와 주차를 하고 안전한 길을 택했다.

 

절 화단에 잘 가꾸어진 황금낮달이꽃이 환하게 웃는 얼굴로 산객의 피로를 씻어준다.

 

 

 

현재 오도암이 있는 이자리는 올해 중창불사가 이루어져 새롭게 탄생할 것이며 이 법당은 왼쪽으로 자리를 옮겨 갈 것이라고 한다.

 

왼쪽 봉우리가 백호라하며 윗부분에 부처상이 있다. 보이시는가요. 

 

청룡이라고 일컫는 봉우리다.

 

청운대 왼쪽으로 세 번째 왜놈 갓을 쓰고 있는 바위가 있고, 그 옆에 나무가 있는 바로 오른쪽에 부처가 있다. 갓을 쓴 왜놈 병사가 부처님께 머리를 조아리며 사죄를 하고 있고, 뒤에서 왜놈 병사의 머리를 쥐어 박는 모습을 하고 있는 바위가 있다. 구전이 되어 내려왔거나 스님이 만든 이야기인지는 모르겠으나 기가 막힌 연출이다. 이런 얘기를 아는 이 얼마나 있을까...

 

세심정에서 마음을 세탁하기 위해 바가지로 물을 마신다. 세심정 앞에서 풀을 뜯던 보살님이 다정스럽고 편하게 물 한 잔 하라고 권한다. 

 

 

오도암은 팔공산 5대 기도도량 중의 한 곳이다. 기도발이 영험해 몸이 아픈 이들이 찾아와 기도를 많이 드린다. 아픈 사람을 위로하고 치료에 도움을 주기 위해 스님이 송림숲 사이로 산책길을 만들어 놓으셨다. 몸이 아픈 사람은 여기에 기거하면서 송림숲 사이 산책로를 거닐면 치료에 많은 도움이 되겠다.

 

한겨레신문의 사찰 전문 취재 기자인 조현기자님이 오도암을 취재하면서 법당에 모셔 놓은 약사여래불에 관한 글을 봤다. 그 글에 의하면 오도암의 금모스님이 전국팔도를 돌아다니면서 제일 못생기고 거저 줘도 가져 갈 것 같지도 않은 못난이 불상을 가져와 안치했다고 한다. 내가 보기에는 그리 못난 것 같지도 않은데... 아마, 스님의 노고와 법력을 찬사하는 의미로 쓴 글인 것 같다. 

 

못났나요. 그렇지 않죠.

 

 

불인선원 : 佛印禪院. 부처로부터 직접 인가를 받은 곳이란 뜻이다. 편액의 글은 일타스님의 글이라고 한다.

 

이 길을 따라 올라가면 청운대로 간다. 그러나 그길은 경사가 급하고 험해서 웬만해서는 가지 않는 것이 좋을 것이다.

 

스님이 말씀하시기를 사립문 안에 있는 저 잣나무의 가지가 잘려나간 모습이 보이는가 하고 물으셨다. 예라고 대답하니 저 나무도 가지가 잘릴 때 왜 사람의 손발이 찢겨 나가는 듯한 고통이 없었겠나. 하지만 그 고통 뒤에는 더욱 싱싱하고 건강하게 자라지 않는가. 사람도 마찬가지 고통없이는 성장하기 어려운 법 고통을 느껴봐야 그만큼 더 성숙해진다. 라는 말씀이다.

 

다시 한 번 더 부처님께 머리 조아리며 용서를 구하는 바위를 잡아본다. 카메라의 한계로 더 이상 당겨 잡기 어렵다.

 

송림이 쭉쭉 잘 뻗어 하늘을 찌르고 있다.

 

흰숙은노루오줌

 

산수국도 이제 엄청 보겠지.

 

성질 급한 노랑물봉선도 본다.

 

큰까치수염도 앞으로 산에 다니다보면 엄청나게 보게 될 것이다.

 

내려오면서 오은사에 들렀다.

 

 

오은사는 오도암과 달리 부자 절인 모양이다. 금빛으로 치장되어 있다.

 

절에 계시는 분께 이 나무 이름을 물었더니 보리수라고 답해 주신다. 그러려니 했더니 보리수가 아니고 보통 절에서 흔히 키우는 이 나무의 이름은 찰피나무라고 한다. 일명 염주나무로 불리운다.

 

 

 

 

 

 

오은사 아미타불

 

 

 

찰피나무 아래서

 

 

 

찰피나무

 

 

 

최정산 목장 주변에 엄청나게 자라고 있던 컴프리도 만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