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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공산

팔공산 중암암(돌구멍절) 가는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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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공산 자락의 은해사가

품고 있는 중암암(돌구멍절) 기행

 

 

1. 언제 : 2013. 3. 17.(일)

2. 어디로 : 팔공산 은해사 중암암

3. 누구랑 : 나홀로

4. 산행 기점과 종점 : 은해사

5. 탐방 코스

코스  : 은해사 - 저수지 삼거리 - 인종태실 - 삼인암(만년송 있는 곳) - 중암암 - 임도를 따라 돌아 내려와 - 길가에 있는 백흥암 들리고 - 저수지 삼거리 - 은해사로 회귀

 

거리 : 은해사 - 4.2Km - 임도가 아닌 인종대왕 태실을 거쳐 산 길로 중암암까지 - 2.3Km - 백흥암(임도) - 2.5Km - 은해사(임도) 

   총 9Km (산길 4.2Km + 임도 4.8Km)

 

 

6. 참고사항

  - 은해사를 기점으로 할 경우에는 이 코스가 가장 적당하다고 판단 됨. 부득이한 경우에는 차량을 이용하여 중암암까지 갈 수 있으나 가급적 지양하기 바라고, 산행을 겸한 암자 탐방을 위한다면 위 코스를 권장함.

 

  - 은해사 공영주차장에 주차 할 경우 무료 주차 가능. 매표소와 그리 멀지 않음.

  - 조금이라도 편히 중암암을 탐방하고 싶다면 어차피 입장료 3,000원을 지불해야 하니 차량이 통과 할 수 있도록 매표하고, 백흥암 정도에서 주차를 하면 중암암까지 무난한 산행을 즐길 수 있음. 나는 은해사 안에 주차를 했으나 매표 시 차량 통과는 신도증이나 사찰 관계자 아닌 경우 입장을 거절 당할 수 있으니 참고 바람.

 

 

 

흔적


작년 여름이던가 아들과 함께 나들이했던 기억을 되살리며, 오늘은 홀로 은해사를 찾았다. 은해사가 품은 많은 사찰 중 돌구멍절로 유명한 중암암을 탐방하기 위해서다.

중암암은 암자의 이름을 보통 '중앙암(中央庵)'이라 잘못 알기 쉬운데, 中央庵이 아니라 '중암암(中巖庵)'이다. 그리고 사람들은 한자 이름보다는 흔히들 '바위구멍 절'또는 ‘돌구멍절’이라 부른다.


가녀린 박무에 묻혀 솔숲 향이 밀려오는 은해사의 아침은 맑고 싱그러웠다. 공영주차장이 새로 생겨  무료 주차가 가능하나 어차피 매표해야 하니 차를 몰고 은해사 주차장 안까지 들어갔다. 오늘은 상태가 좋지 않아 내친김에 백흥암까지 차를 몰고 갈까 하다가 ‘이건 아니지’란 생각에 은해사를 기점으로 출발하였다. 고요한 산사에 차를 몰고 매연을 내뱉으며 올라가는 것은 몰지각하고 염치없는 행위임이 틀림없다. 다음에는 은해사까지 들어갈 것도 없이 공영주차장에 주차하고 가야겠다.

 

임도를 따라 올라가면 은해사에서 2Km 지점에 비구니 도량인 백흥암이 있다. 백흥암에서 2.3Km 정도 임도를 따라 계속 올라가면 중암암이 나온다. 콘크리트로 포장된 길이라 산길 걷는 재미가 없을 법도 한데 주변 솔숲 향과 계곡에 흐르는 물소리를 벗 삼아 걸으면 그 또한 나름대로 흥취가 있다. 특히 산행이 힘든 사람은 임도를 따라 슬슬 올라가면 더없이 여유롭고 편한 길이니 이 코스를 권장하고 싶다. 나는 저수지 삼거리에 이르러 잠시 고민을 하다가 임도를 따라가는 편한 길을 버리고 인종태실로 넘어가는 고행의 길을 택했다. 산행이 목적이니 산과 은해사가 품은 산중 깊은 곳의 천년고찰인 중암암 두 마리 토끼를 다잡고 싶었다.


태실로 올라가는 산길은 800m에 불과한데 오르막 경사가 급하다. 더구나 은해사에 북적이던 사람들은 태실로 올라가는 길엔 흔적조차 보이지 않는다. 홀로 가는 산객의 발걸음이 더욱 무거워짐은 비단 산길 오르막이 힘든 이유만은 아닌 듯하다.

태실에서 중암암 가는 길은 꽤 더디고 힘들고 지친다. 주린 배를 채워야 하는데 곁에 옆지기가 없으니 배낭을 풀고 음식조차 꺼내 먹기 싫어진다. 겨우 두유 1통과 빵 1개를 먹고 허기를 달랜 후 만년송이 있는 삼인암에 다다르니 그제야 기운이 다시 샘솟는다. 삼인암은 아기를 낳지 못하는 여인이 공을 들이면 아기 셋을 얻을 수 있다는 이야기와 친구 셋이 모여 맹세를 하면 뜻을 이룰 수 있다는 전설이 깃들인 곳이기도 하다. 삼인암 앞에는 ‘만년송’이 있는데 만년을 묵었다기보다는 척박한 바위에 뿌리를 내린 질곡의 삶을 살아온 세월에 붙인 이름이라 생각된다.


벼랑 끝에 선 삼인암에 올라 주변 풍경을 두루 조망하고, 끈질긴 생명력을 자랑하는 만년송 곁에 잠시 머물다 일명 ‘돌구멍절’이라고 하는 중암암으로 내려간다. 가는 길에 화엄굴(극락굴)과 은해사 중암암 삼층석탑이 있다. 극락굴은 신라시대 원효스님과 조선말기 영파 스님의 이야기가 전해지는 유서 깊은 굴이다. 거대한 바위가 갈라져 생긴 틈 사이를 비집고 들어가 세 바퀴를 돌면 소원을 성취한다는데 비좁은 틈새를 빠져나가기란 쉽지 않다. 극락이 아무나 그리 쉬 갈 수 있는 곳은 아니기 때문이리라. 극락굴을 지나면 바로 아래 고려시대 초기의 탑인 은해사 중암암 삼층석탑이 있고, 그 밑에 은해사가 품고 있는 암자 중 가장 높은 곳에 있다는 중암암이 있다.


중암암은 자그마한 은해사 산중 암자로 팔공산 벼랑 끝 가장 높은 곳에 다소곳이 자리 잡고 있다. 법당으로 들어가자면 ‘돌구멍절(바위구멍절)’이라는 천연요새와 같은 석문을 지나야 한다. 석문을 지나면 바로 법당과 요사채가 있고, 요사채 앞에는 시커먼 바위굴 같은 곳이 있는데 그곳으로 들어가면 통도사와 해인사 그리고 중암암 세 스님의 해학이 담긴 이야기 한 자락이 전해져 내려오는 해우소가 있다. 그 중 가장 큰 뻥을 친 중암암의 해우소 이야기 때문에 중암암을 찾는 이 이야기를 아는 이들은 시골 담 한 귀퉁이에 있는 옛날 변소처럼 생긴 문짝을 열고 안을 들여다본다. 물론 나도 예외일 수는 없다. 쳐다보니 컴컴한 것이 아무것도 보이지 않아 정말 정월초하루에 볼일 보면 그 해 섣달그믐에 떨어지는지 궁금증이 폭발하여 가만히 쉬를 해본다. 섣달그믐이 되면 떨어지고 있는지 가볼 작정이다. 해우소에서 뒤돌아 나오며 법당을 들렀더니 비교적 규모가 작은 법당 마루 끝에 있는 앙증맞은 동종이 나를 활짝 반긴다.


은해사의 고결한 암자인 중암암을 둘러본 후 왔던 길로 뒤돌아 가지 않고 임도를 따라 은해사까지 4.8Km의 먼 길을 내려간다. 임도를 따라 내려가는 하산 길은 완만한 내리막길이라 편하게 갈 수 있다. 청정한 계곡에 흐르는 물소리와 바람에 묻혀 들려오는 새소리는 산사를 찾은 나그네의 지친 발걸음을 더욱 가볍게 해준다. 비록 길은 산사에 어울리지 않게 콘크리트로 포장되어 있지만, 길 따라 함께 움직이는 계곡의 물소리, 새소리, 바람소리, 솔숲 향기 그리고 간간이 노랗게 핀 생강나무와 산수유 꽃은 포장길의 딱딱함과 어색함을 묻어준다. 올봄 들어 처음으로 현호색도 마주친다. 몇 종이 군락을 이루며 피어있는 모습에 마냥 즐거워 똑딱이 대신 스마트폰을 이리저리 눌러본다. 오늘은 똑딱이도 가져오지 않았다. 그래도 똑딱이 대신 스마트폰이 대역해 주니 세월은 변해도 참으로 많이 변했다.


갈까 말까 망설이다가 몸을 털고 일어서 미리 탐색해 둔 중암암을 향해서 현관문을 박차고 나갔더니 오늘 하루도 ‘잘했다’란 생각이 절로 든다. 홀로 나서서 그런지 힘은 곱절로 배가되었지만 결국 사전 탐색했던 대로 다녀왔다. 집에 있었으면 뭐 하고 지냈겠나. 털고 일어나길 잘했다. 오늘은 이로써 팔공산의 또 다른 품속으로 들어가 팔공산의 진면목을 보았다. 내 고장 팔공산의 품이 참으로 넓고도 깊다.

 

 

 

 

 

스마트폰으로 보는 팔공산 은해사 중암암 사진 기행

(똑딱이를 가져 가지 않아 스마트폰으로 촬영)

 

 

 

은해사 극락보전 앞에 있는 450년 묵은 향나무. 줄기는 세월만큼 묵은 골도 깊다.

 

세월을 이고 가는 노인의 골 깊은 주름이 연상됨과 동시에 모진 풍파를 겪고 지난 세월의 흔적을 엿볼 수 있다. 

 

은해사 향나무의 이력

 

은해사 극락보전

 

은해사에 있는 이정표를 기점으로 중암암을 목표로 한다. 보통 은해사를 찾아 산행 겸 암자 탐방을 위한 코스로 중암암을 찾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중암암까지 4.8Km로 적혀 있으나 이는 차량 통행이 가능한 임도길 거리를 뜻하고 인종대왕 태실로 가는 산길로는 4.2Km 거리에 있다. 중암암은 가고 싶으나 여력이 없다면 차량을 이용하여 중암암까지 갈 수 있다. 그러나 가급적 차량 통행은 자제하기 바란다.

 

사방댐. 사방댐을 보니 생태계의 순환에 다소 문제가 있어 보인다.  

 

 

은해사에서 계곡의 물소리와 함께 어울려 조금 올라오니 저수지가 나온다. 이 저수지를 기준으로 중암암 탐방을 위한 코스를 최종 선택한다.

 

저수지 다리를 건너면 삼거리가 나온다. 좌측은 백흥암과 중암암을 가는 포장된 임도 길이고, 이정목이 있는 산길은 인종대왕태실로 가는 길이다. 태실로 가는 길이 중암암으로 가는 산길이다. 태실로 가는 중암암 코스는 힘이 많이 든다. 그러나 산행에 의미를 둔다면 이 코스로 가서 임도를 따라 내려 오는 것이 좋다. 임도를 따라 내려 오는 길은 다소 지루할 수 있으나 내리막길이라 거리가 멀어도 쉽게 내려올 수 있고, 시종일관 계곡에 흐르는 물소리와 함께 할 수 있어 그리 지루함을 느끼지 않는다.

 

저수지 삼거리에서 인종대왕태실까지는 800m에 불과하나 계속 오름길이라 힘이 든다. 그리고 이 코스는 중암암까지는 몇 번 내림길이 있다가 쭉 올라가야 하는 그리 만만한 코스는 아니다.

 

인종대왕태실

 

 

조선시대에는 중종이 맏아들인 인종의 태실을 팔공산에 묻으면서 은해사가 이 태실을 지키기도 했다고 한다.

 

태실 주변에 모아 둔 유적

 

태실을 지나면 곧 헬기장이 나온다. 중암암까지 가는 길은 거의 외길 수순이라 생각하면 되고 옆길로 빠지는 곳이 몇군데 있으나 무시하고 계속 가던 방향으로 올라가고 내려가고 또 올라가면 된다.

 

태실을 지나 중암암으로 가면서 처음 맞이하는 이정목이다. 길이 단순하여 굳이 이정목이 필요치 않으나 산우들의 불안한 심리를 헤아려 옆으로 빠지는 길목엔 이정목이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샛 길로 빠지는 헷갈리는 곳이 두세군데 있었는 듯... 

 

등로를 가로엮은 나무뿌리가 계단 모양을 하고 있어 산객의 안전 산행에 일조를 하고 있다.

 

팔공산 서남쪽에 위치한 대구 동화사 지구와는 달리 동북쭉에 위치한 은해사 지구의 지형은 다른 점이 많다. 은해사가 품은 중암암 일대는 거대한 바위로 둘러쌓인 괴석이 많이 분포되어 있다.

 

삼인암 아래 비교적 고른 공터가 있는데 바위에 뚫린 구멍으로 보아 이 공터가 옛날 암자가 있던 자리가 아니었나 유추해 본다.

 

절 터가 있었던한 곳에 거대한 바위가 세월에 쪼개져 마치 3형제 바위처럼 얹혀져 있다.

 

삼인암에서 바라본 공 터

 

만년송. 극락굴에서 바위를 더 타고 오르면 바위에 뿌리를 박고 자라는 '만년송'이 있다. 척박한 바위에 뿌리를 내려 마치 만년의 세월을 버틴 듯 대단한 위엄이 서려 있다.

 

삼인암 아래있는 공 터

 

삼인암. 삼인암은 중암암 뒤로 우뚝 솟아 있는 바위인데 세 개의 기암이 절벽 위에 의좋게 나란히 줄지어 서 있다. 삼인암에 얽힌 전설은 아래 사진을 참조. 

 

삼인암. 삼인암 오른쪽 아래 중암암이 있다. 임의로 표기한 1, 2, 3암 중 1암에 위 사진에 있는 삼인암이라는 글이 새겨져 있다. 친구 셋이 의기 투합하여 삼인암을 찾아 맹세를 하면 뜻을 이룰 수 있고, 애기를 낳지 못하는 여인이 여기에서 공을 들이면 아들 셋을 얻을 수 있다는 전설이 전해진다.

 

삼인암에 얽힌 내용 확대하여 읽어보세요. 재미 있네요.

 

삼인암에서 극락굴 가는 길. 삼인암 바로 아래 있다.

 

화엄굴(극락굴). 극락굴을 바라보고 있는 산객들

 

극락굴에 얽힌 전설. 역시 예사로운 굴이 아니니 확대하여 자세히 보기 바랍니다.

 

화엄굴(극락굴). 신라시대 원효스님과 조선 말기 영파스님의 이야기가 함께 전해지는 유서 깊은 굴이다.

 

산우들이 모두 자리를 비울  때를 기다려 온전한 모습을 담았다. 저 비좁은 틈을 지나가야 되는 모양인데 언뜻 보니 엄두가 나지 않는다. 내 정도도 도저히 빠져 나갈 수 없는 비좁은 틈이다. 저 틈을 지나 세 바퀴를 돌면 소원을 들어준다는데 소원성취하기가 어디 그리 쉽겠나. 극락굴은 굴이라기 보다는 거대한 바위가 쪼개져 틈이 벌어져 생긴 것이라고 보면 된다. 

 

은해사 중암암 삼층석탑. 고려시대 초기의 탑

 

 

돌구멍절(바위구멍절). 천연요새로 형성된 석문을 통과하면 자그마한 법당과 요사채 그리고 법당 옆에 지은 산신각이 있다. 그리고 통도사와 해인사 스님의 뻥에 이은 중암암 스님의 뻥이 가장 돋보였던 중암암 해우소가 있다.

 

천연요새인 석문을 통과하면 바로 자그마한 법당과 요사채가 나온다.

 

중암암 법당 내부

 

법당 마루 한켠에 자리한 동종. 암자의 규모에 잘 어울린다.

 

기암절벽에서 자라 하늘을 향해 뻗어 있는 나무의 모양이 이채롭다.

 

요사채 앞의 어두컴컴한 바위 굴 안으로 들어서니 자그마한 해우소가 2칸 있다. 한 칸은 보다싶이 막아 놓았고 왼쪽 칸은 사용 중이다. 아마 여기 있는 이 해우소가 우리나라에서 내놓으라 하는 사찰 스님의 해학적인 이야기가 담겨있는 곳인가 보다. 이야기인 즉슨 중암암은 해우소가 깊기로 유명한데 여기에는 재미있는 이야기 한 자락이 전해온다. 통도사와 해인사, 중암암의 스님들이 절자랑을 시작했는데 먼저 통도사의 스님이 허풍을 시작한다. "우리 절은 법당 문이 어찌나 큰지 열고 닫을 때 문고리에서 쇳가루가 한말 석되가 떨어진다." 해인사 스님이 질 수 없다. "스님이 많은 우리 절은 가마솥이 커서 동짓날 팥죽을 쑤면 솥 안에 배를 띄워 노를 젓는다." 중암암은 자그마한 암자니 대찰들과 규모야 어디 비할 수 있을까. 그래도 중암암 스님은 지지 않는다. "우리 절의 뒷간은 어찌나 깊은지 정월 초하루에 볼일을 보면 그해 섣달그믐에 떨어지는 소리가 들린다." 이런 이야기 때문인지 중암암을 찾은 이들이라면 누구나 돌구멍 속에 있는 해우소를 기웃거리곤 한다. 나도 떡본 김에 제사 지낸다고 시험삼아 짧은 볼 일을 봤으니 아마 2013년 섣달그믐이 되어야 떨어지는 소리가 들리지 않겠나 싶으다. 묻힌 김에 올 해 섣달그믐이 오면 중암암 해우소에 내 오줌 떨어지는 소리 들으러 가야겠다.

 

왼쪽 법당, 오른쪽 요사채

 

오른쪽 직벽이 '장군수'가 있는 곳이다.

 

 

건들바위와 장군수. 김유신 장군이 화랑시절 심신을 단련할 때 즐겨 마시던 물에서 연유하여 이름지어 졌다란 말이 전해진다. 위 내용 참조

 

팔공산은 나름대로 여기저기를 들머리로 올라 봤지만 아직 갈 길이 많다. 보면 볼수록 타 지역 국립공원에 비해 손색이 없다. 국립공원으로 승격되면 뭐가 좋을까?  국립공원 승격 기념으로 광주 무등산을 다녀와서 느꼈지만, 그리 환영할 만한 일은 아닌 것 같았다. 이유는 너무 많은 사람들로 산이 몸살을 앓고 있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지역 경제는 활성화 되겠지만 먼 장래를 봤을 때는 과연 국립공원이라는 타이틀이 좋기만 할란지 의문이 든다. 팔공산은 지역인으로서 나 또한 국립공원으로 승격되었으면 하는 마음이 간절했다. 그러나 광주 무등산이 국립공원으로 재탄생한 후 방문한 느낌은 꼭 그렇지만은 않았다. 사람들이 너무 많이 모인다. 소견머리 없는 나로서는 어쩌면 대구 팔공산은 그 이름 그대로 그 명성만 안고 그냥 가는 것이 팔공산을 위해서 좋을 것 같다. 동화사와 은해사 그리고 갓바위만 해도 팔공산은 몸살을 앓고 있을터인데 마음이 쓰인다. 괜히 오지랍 넓은 생각을 해 본다. 

 

중암암에 관한 얘기가 요약되어 있네요.

 

여기는 중암암 주차 공간이 있는 곳에 있으며, 지붕을 덮은 기와가 비록 고풍스러운 면은 없으나 이렇게 찍어 놓으니 마치 하늘을 이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을 준다.

 

밑에서 보면 이렇다.

 

내려 오는 길에서 기대하지 않았던 현호색 군락을 만난다. 생강나무, 산수유, 홍매화를 제하고 올 봄 처음으로 산행 중에 만난 놈이다. 이토록 반가울 수가 없다.

 

같은 현호색인데 잎과 꽃 색깔이 다르다. 시간을 두고 구별을 해 봐야 겠다.

 

중암암에서 임도를 따라 하산하는 길은 시종일관 콘크리트 포장 길이나 그래도 포장 길의 딱딱함을 이처럼 맑은 물이 흘러 홀로 가는 산객의 귓전을 울리니 먼 길이 결코 지겹지만은 않다.

 

산을 다니면서 바위에 뿌리를 내려 자란 나무를 보면 항상 경이로움과 함께 그 생명력에 감탄을 한다.

 

이 나무는 고사한 채 아치형의 형상을 하고 있다. 이 또한 어찌 절로 만들어 졌으리. 모두 자연이 이런 기이한 형상을 만든 것이 아니겠나.

 

응달진 곳엔 아직 겨울의 잔설이 남아있다. 은해사에서 중암암까지 4.8Km의 거리는 이런 계곡의 물소리 그리고 산새 소리와 함께 걸으니 먼 길 가는 길이 그리 지겹지 않다.

 

임도를 만드느라 파혜쳐진 길 가장자리는 주로 이런 모습을 연출하고 있다. 뭔가 아쉬움이 남는다.

 

봄을 재촉하는 노랗게 핀 산수유가 산객의 외로운 발걸음을 달래준다.

 

백흥암은 비구니 도량으로 은해사에서 임도를 따라 2.5Km 지점에 있다.

 

백흥암은 비구니 도량이라 외부인 출입을 삼가하고 있다. 은해사는 많은 불자들과 관광객이 찾는 유명한 곳이나 백흥암의 산사는 고즈넉하기만 하다.

 

들어가지는 못하겠고 밖에서 개구리가 옹알옹알 울어대는 소리를 들으며 백흥암의 전경을 담아본다.

 

저수지 삼거리까지 내려왔다. 태실로 올라가는 산길을 택하여 콘크리트로 포장된 길로 물소리, 새소리를 들어며 함께 내려왔다. 태실로 가는 산길은 그리 만만치 않다.

 

고사목을 조경으로 한 이 곳은 뭔가 새롭게 조성할 곳인가 보다.

 

은해사에서 중암암으로 가는 초입의 길 중앙에 버티고 서있는 키 큰 나무가 봄이 오는 길목을 맞이하고 있다.

 

은해사의 풍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