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산산성의 가을이 익어가고 있네요.
■ 언제 : 2017. 10. 14.(토)
■ 어디로 : 팔공산 가산산성
■ 누구랑 : 아내랑
흔적
오늘은 아내랑 팔공산 자락에 있는 가산산성으로 갔다.
이유는 오로지 팥배나무의 빠알간 열매가 궁금했기 때문이다.
작년 10월 30일 날 갔을 때 엄청난 양의 빨간 열매가 달린 것을 보았기에
오늘은 시기적으로 빠르지 않나 싶지만,
정황상 더 이상 미룰 수가 없다.
다음 주나 다다음 주는 예식이랑 다른 일정이 잡혀 있어
다소 빠른 감이 있지만 갈 수 있을 때라도 가봐야 겠다.
아무래도 작년보다 보름이나 빠른 방문이라
열매가 빨갛게 익었을지나 모르겠다.
가산의 가을이 생각보다 빠르게 오고 있다.
단풍도 작년보다 빠르게 온다.
오늘이 14일인데 작년 10월 말보다 단풍이 더 많이 익어 있다.
이거, 조짐이 이상하다.
아니나 다를까 동문에 우뚝 서 있는 거대한 파수병!
거목의 팥배나무에 빨간 열매가 보이질 않는다.
‘이게 아닌데. 보름 일찍 왔다고 팥배나무의 상황이 이렇게 다르진 않을 텐데.’
'역시 예감대로 너무 일찍 왔나?'
아쉬운 마음에 두 눈 불끈 치켜뜨고 팥배나무의 전모를 훑어봤다.
다행히 나무 꼭대기에 빨갛게 달려있는 팥배나무의 열매가 보인다.
그런데 너무 높이 달려있다. 망원이 아니었다면 열매를 볼 수 없을 뻔 했다.
망원을 최대한 당겨 파란 하늘에 점점이 박혀있는 열매를 알알이 잡아냈다.
그나마 팥배나무의 상태는 동문에 있는 게 그중 상태가 나은 편이다.
성곽에 줄지어 늘어서 있던 거목에 깨알 같이 달린 열매는 어딜 갔는지 흔적조차 보이지 않는다.
어제 내린 비로 열매가 모두 떨어졌나 싶어 바닥을 훑어봐도 떨어진 열매도 없다.
그렇다면 아직 열매가 열매가 익지 않았나 싶어 나뭇가지를 쳐다봐도 익어야 할 열매조차 보이지 않는다.
‘이상하다. 올해 해거리를 하나’
오늘 가산을 찾은 기분이 반감되었다.
하지만 가산산성에는 팥배나무만 있는 것이 아니지.
참빗살나무도 있고 노박덩굴도 있고 남은 가을 꽃들이 심심찮게 그 모습을 보여준다.
참빗살나무와 노박덩굴은 지난 주 팔공산 하늘정원에서
비로봉으로 가는 길에 있는 것보다 세력이 약했지만,
여기는 더 빨갛게 익은 모습으로 벌어지고 있다.
아마 비로봉 가는 길도 지금은 더 벌어졌을지 모를 일이다.
그 모습을 보러 가야하는데 앞으로 주말마다 일이 있어 볼 수 있을지 모르겠다.
한 바퀴 휘둘러 중문에서 가산바위로 곧장 가지 않고 성곽길로 갔다.
가면서 투구꽃도 보고 자빠져 있는 천남성의 빨간 열매도 봤다.
군데군데 단풍도 들어 파란하늘과 너무 잘 어울리는 가을이 익어가는 소리를 듣는다.
성곽길엔 꽃향유가 지천이다.
여기도 지난 번 황매산에서 봤던 꽃향유처럼 키가 작았다.
하지만 키가 작다고는 하나 황매산에서 봤던 것처럼 애기향유 같아 보이지는 않았다.
성곽길은 배부름 현상으로 인해 붕괴의 위험이 있으니 조심하라는 안내판이 세워져 있다.
금방 무너질 것 같지는 않아 아랑곳 하지 않고 유유자적 꽃향유와 노닌다.
늘어선 팥배나무의 열매가 없어 아쉽기는 했지만,
꽃향유가 그 아쉬움을 대신했다.
역시 꽃향유는 군락으로 있어야 제 멋을 발한다.
향기가 강한 향유의 일종으로 기름샘이 있어 꽃향유라 부르는
이 아이는 벌을 부르는 밀원식물로 유용한 식물이다.
그래서 그런지 꽃향유에는 끊임없이 벌들이 날아들었다.
꽃향유 틈새로 가을을 감미롭게 하는 산국이 발걸음을 가볍게 한다.
노랗게 핀 산국과 진보랏빛 꽃향유가 팥배나무의 빨간 열매를 대신한다.
구절초는 한물갔는지 드문드문 하다.
다른 곳보다 적게 보여 그런지 그도 애달프다.
역광으로 그 모습을 담아본다.
남포루를 지나 성곽을 따라 진남문으로 내려갔다.
오늘은 평소에 오던 방향과 역순으로 산행을 했다.
보통은 힘이 들어도 진남문에서 성곽을 따라 남포루로 오르는데
오늘은 편한 길을 선택한 것이다.
요즘은 아내도 힘든 길을 싫어하고, 실은 나도 어제 과음을 한 터라
쉽고 편하게 가고 싶어 굳이 힘든 길을 택할 이유가 없었다.
그러고 보니 올해는 계속 편한 길을 주로 찾는다.
이제 산행보다는 꽃탐방이 주가 된 것 같아
정상에 쉽게 접근하고 꽃사진 찍는데 더 주력한다.
오늘도 무려 7.2km나 걸었지만, 큰 힘은 들지 않았다.
산 보다 꽃이 우선인지
꽃 보다 산이 먼저인지
애매해 지기 시작했다.
산도 가고 꽃도 보니
뭐가 문제이겠나 만은
분명한 것은 산을 우선으로 하던 마음이
꽃을 핑계로 소홀해져 버린 것이다.
이런 마음은 주기적으로 찾아와 날 혼란에 빠드린다.
이런들 어떻고 저런들 어떠리.
보고 싶은 꽃은 산에 있고
산에 가야 꽃을 보니
어차피 산도 가고 꽃도 보니
그로서 족하면 되지 않겠나.
둘 다 부족하지만 둘 다 볼 수 있어 산술적인 기쁨은 같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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