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공산터널 개통 기념 여기저기
■ 언제 : 2017. 12. 3.(일)
■ 어디로 : 팔공산터널, 김수환추기경생가, 동명저수지, 금호강변, 환경자원사업소, 금호지구고속도로야경
■ 누구랑 ; 아내랑
흔적
팔공산터널이 개통됐다는 소식을 접하고
갈 곳이 그닥 마땅치 않던 차, 이번 기회에 12월 1일 자정을 기해 개통한
팔공산터널을 달려보기로 했다.
그렇지 않아도 팔공산은 꽃을 보기 위해 자주 다닌 길이라
한시 빨리 터널이 개통되기만을 학수고대하고 있었다.
그놈의 한티고개를 넘자면 멀지 않은 길을 늘 멀리 다녀야만 했기 때문이다.
터널이 개통된다면 내가 즐겨 가는 팔공산 치산계곡과
팔공산 하늘정원 가는 일이 훨씬 수월해진다.
이제나저제나 기다리던 그 길이 결국 1일 자정을 기해 개통되었다.
그것도 터널 길이 3.7km로 우리나라에서 여덟 번째로 긴 터널로 탄생했다.
무려 10년이 지난 긴 세월의 기다림이었다.
동명 기성리 법성삼거리에서 팔공산터널을 지나가면
군위군 부계면 부계사거리까지 곧장 이어진다.
치산계곡을 가자면 늘 꼬불꼬불한 한티재를 넘어
부계사거리에서 우회전 해 79번 도로를 타고 영천 신녕쪽으로 가야했다.
내 사는 곳에서 가자면 늘 그렇게 갈 수밖에 없는 길이다.
그런데 그 길이 지금은 팔공산터널 개통으로 인해 시간이 확 줄어들었다.
어림잡아 기성리 법성삼거리에서 부계사거리까지 족히 20분 이상이나 빨라졌다.
팔공산 꽃사냥을 자주 다니는 나로서는 이보다 더 반가울 수가 없다.
그런데 막상 새로 개통된 이 길을 가면서 한 가지 문제점이 있음을 알았다.
대구에서 군위로 가는 운전자는 터널 이용에 여전히 불편한 점이 야기된다는 것이다.
아직 선결해야 할 숙제가 남았다는 얘긴데,
그 숙제를 해결하자면 무엇보다 터널로 진입하는 접근성 문제부터 해결해야 한다.
한티재를 넘어갈 이유가 없다면 굳이 팔공산터널을 통과해야 할 이유가 없다.
다행히 그런 불편함을 해소하기 위하여
조야동에서 가좌삼거리와 동명으로 이어지는 광역도로를 건설 중이라 하니
그 도로가 완공되면 대구 지역 이용자도 더 편리하게 이용할 것이라 생각한다.
오늘은 팔공산터널 첫 나들이를 기념해 ‘김수환 추기경 생가’를 가장 먼저 방문하고자 한다.
추기경 생가라면 터널 개통 기념 첫 나들이 장소로 최적이다.
생가는 군위읍 용대리에 있어 동명에서 바로 가는 것이 낫지만,
기왕지사 나선 길 돌아가더라도 팔공산터널을 이용해 추기경 생가를 방문하고 싶었다.
오늘은 터널 개통 3일째 되는 날이다. 개통 후 3일 만에 터널 속으로 들어갔다.
지금까지 수없이 많은 터널을 지나 다녔지만,
오늘 팔공산터널을 지나는 기분은 어째 묘하다.
늘 팔공산 하늘정원과 치산계곡을 지나다니며
10여 년 간 공사하던 모습만 봤기에 더 그런 생각이 든 모양이다.
팔공산터널이 그런 기분을 알기라도 한듯
터널 속엔 무지개빛이 환하더니 또 한 번 더 환하게 비쳐준다.
팔공산터널은 무지갯빛 터널로 길을 열었다.
터널을 지나니 팔공산 한티재 그 높고 긴 꼬불꼬불한 길을 통과하는데 10분도 안 걸린다.
터널이 끝나니 바로 백송스파비스관광호텔이 나온다.
한티고개 넘어올 때를 생각하면 너무 빠르다.
온천을 보더니 아내가 온천부터 먼저 하잔다.
올 때부터 온천을 하기로 약속했지만 난, 추기경 생가부터 먼저가고 싶었다.
의견이 분분하다가 결국 내 고집대로 추기경 생가부터 다녀온 후 온천을 하기로 했다.
마침 백송온천은 팔공산터널 개통 기념으로 7,000원 하던 것을
12월 15일까지 4,500원으로 가격을 낮춰 손님을 유인하고 있다.
가는 날이 장날이라더니 잘 됐다.
터널을 이용하니 추기경 생가로 가는 길은 생각대로 돌아간다.
생가는 군위군 용대리에 있어 동명에서 천평쪽으로 바로 가는 것이 낫지만,
오늘은 팔공산터널 가는 것이 무엇보다 먼저인 만큼 겸사겸사 돌아갔다.
그렇게 찾아갔건만 어째 추기경 생가가 쪼매 이상하다.
생가 본연의 모습은 간데없고 주변을 모두 파헤친 채
현재 생가 복원을 겸한 공원을 조성하고 있는 중이다.
탐방객들로 많이 붐비고 있으리라 생각했기에 생뚱맞은 기분까지 들었다.
공사는 거의 마무리 단계였지만, 정비된 깔끔한 모습을 보자면 아직 기약 없다.
우리나라에서 김수환 추기경이 어떤 분이신데 선종하신지가 언젠데
아직까지 저런 모습인지 선뜻 이해가 가지 않는다.
뒤늦게나마 기념관을 비롯한 공원을 조성한다니 다행이다.
선종하시고 장기 기증까지 한 추기경의 ‘바보야’ 라는 심성으로 봐
‘뭐 할라고 이리 분답시럽게 캐샀노’라며 대노하실지 모르겠지만,
그분의 삶을 배워야 할 후학을 위해 기념 공원 조성은 당연시 되어야 한다.
우리도 그 분을 닮아 ‘바보’같은 마음을 배워야 하기 때문이다.
차제에 추기경의 ‘바보야’에 대해 알고 싶어 조사를 했더니
역시 생각한 것처럼 그랬다.
추기경은 1941년 동성중고의 전신인 동성상업학교를 졸업했다.
85세가 되던 2007년 세종문화회관 전시실에서 동성중고 100주년 기념전 개막식이 있었다.
그때 기자가 "왜 자화상에 '바보야'라고 쓰셨나"라고 묻자
추기경께서 머뭇거리던 끝에 하신 말씀이 이러셨단다.
"있는 그대로 인간으로서, 제가 잘났으면 뭐 그리 잘났고
크면 얼마나 크며 알면 얼마나 알겠습니까?
안다고 나대고, 어디 가서 대접받길 바라는 게 바보지.
그러고 보면 내가 제일 바보같이 산 것 같아요."
내용 참조 daum [중앙일보] 2007.10.19. 권근영 기자, 사진=최승식 기자
바보 되기 참 어렵다.
언감생심(焉敢生心) 앞으로 함부로 바보 같다는 소릴랑 꺼내지도 말아야겠다.
당신은 원치 않을지 모르시겠지만 후대를 위해
당신의 바보 같은 마음이 널리 널리 전파되기를 바라는
소박하고 바보 같은 마음을 배우고 간다.
비록 기념 공원이 완공되지 않아 주변이 너저분하였지만,
그래도 바보의 진가를 느끼고 갈 수 있어 좋았다.
백송온천으로 가기 위해 왔던 길을 되돌아간다.
왜가리로 유명한 ‘왜가리 마을’이 있기에 잠시 둘러보고 싶었지만,
오면서도 그랬고 가면서도 보니 왜가리가 어디 있는지 당최 보이질 않는다.
그래도 아내한테 슬쩍 ‘가볼까’라고 한 마디 던졌더니
늘 그랬듯 ‘그냥 가자.’라는 말만 되돌아온다.
쌩하고 지나 가버린다.
백송스파비스관광호텔에는 온천이 있다.
치산계곡을 들락거리며 늘 봐왔었지만, 들어가는 건 오늘이 처음이다.
앞서 얘기했듯 팔공산터널 개통 기념으로 7,000원하던 것을 4,500원으로 대폭 인하했다.
온천욕을 4,500원으로 즐긴다는 자체는 기분 좋은 일이다.
팔공산터널로 인해 제2석굴암을 비롯한 온천 주변 상권이 활성화되었으면 좋겠다.
목욕을 하고나니 개운한 것이 하늘을 날 것 같다.
그래도 산에 간 것이 아니어 뭔가 허전한 기분이다.
온천하고 기분이 좋아졌기에 또 아내한테 의향을 물어본다.
‘제2석굴암 들렀다가 부계리 한밤마을 돌담길이나 한 바퀴 돌아볼래?’
간다면 난, 사진이나 좀 찍어볼 요량이다.
그런데 아내한테 돌아오는 말은 역시 ‘그냥 가자.’ 늘 듣던 그 한 마디다.
‘그럼 또 그냥 가지 뭐~~~’
동명사거리 못가서 규모가 꽤 큰 동명저수지가 있다.
언제부턴가 수변공원을 조성해 못가를 단장해 놓았다.
저수지 둘레길을 팔공산 다녀오는 길에 혼자서 한 바퀴 돈 적도 있다.
그런데 오늘 보니 전에는 보이지 않던 못 안에 사람이 다닐 수 있는
데크를 만들어 놓은 게 눈에 띄었다.
눈에 띈 이상 당연히 그냥 갈 수 없지.
차를 세웠다.
이런, 못 안에 설치한 데크의 출입구에는
출입금지라며 철판으로 문을 만들어 막아 놓았다.
아직 완공이 되지 않았던 것이다.
옥포 용연사 가는 길에 있는 송해공원처럼 못 안을 걸어보나 싶었는데
하는 수없이 다음 기회를 노려야겠다.
하긴 여기는 팔공산 때문에 늘 다니는 길이라 갈 기회는 얼마든지 있어 서운하지는 않다.
&
아내는 어머니한테 가고 나는 금호강변으로 갔다.
혹시 강가에 노는 왜가리가 있으면 줌으로 한 번 당겨보고 싶어 갔다.
왜가리는 보이지 않고 강 건너 청둥오리만 띄엄띄엄 무리지어 놀고 있다.
당겨보니 그림이 시답잖다.
금호강 자전거 길을 달리는 사람들이 많다.
강변을 따라 붉게 물든 남천의 빨간 열매가 줄지어 늘어섰다.
금호강에 흐르는 물과 빨간 남천 열매 그리고 자전거 타는 풍경이 잘 어우러진다.
어느새 해가 서산너머 KTX 지나는 철로 위에 섰다.
노을을 배경으로 기차가 지나가길 기다려 기회를 포착해 본다.
미련이 남아 환경자원사업소 근처 파크골프장으로 갔다.
남아 있는 열매가 있지 싶어 갔더니
해 떨어진 시간이라 사람이라고는 개미 새끼 한 마리 보이지 않고
빨간 열매가 있기는 했지만 별로 감흥을 주지 않는다.
대왕참나무에 달린 이파리도 메말랐다.
손으로 톡 치거나 입으로 불면 금방이라도 떨어질 듯 애처롭게 매달려있다.
황량한 겨울만 남았다.
와룡대교를 건너는데 고속도로의 야경이 너무 좋다.
갑자기 고속도로의 불빛을 찍고 싶었다.
가다 말고 적당한 곳에 차를 세우고 다리 위로 갔다.
삼각대가 없어 고속도로의 야경을 찍자면 어려움이 있겠지만, 흉내라고 내고 싶었다.
다른 이의 사진만 보다가 손각대로 찍어 봤더니 역시 볼품은 없다.
하지만 그 나름대로 만족감이 드는 사진을 얻기도 했다.
서산마루에 뜬 해는 완전히 넘어갔다.
겨울 낮이 짧은데 오늘 하루해는 꽤 길게 느껴진다.
짧은 시간 여기저기 많이 다녀 그런 모양이다.
1. 팔공산터널 개통 기념 차 나선 김수환추기경 생가
팔공산터널
<Daum 백과> 등 여기저기 퍼서 편집한 내용임을 밝힘
2008년 3월 첫 공사를 시작해 9년 9개월간 2,506억 원을 들인 팔공산터널이 2017년 11월 30일 오후 2시 칠곡군 동명면 팔공산 터널 입구에서 개통식을 열었고, 12월 1일 새벽 0시에 개통을 하였다. 이날 개통식에는 김관용 경북도지사와 권영진 대구시장, 김영만 군위군수, 지역 주민 등 1,000여명이 참석했다.
칠곡 동명∼군위 부계 간 길이 3.7㎞의 팔공산터널 개통으로 팔공산 한티재 고갯길 21.3㎞가 14.2㎞로 7.1㎞ 줄어든다. 왕복 2차로의 급커브길이 왕복 4차로로 확장돼 차량 주행시간은 36분에서 12분으로 무려 24분이나 단축된다. 한티재 고갯길은 심한 굴곡에다 겨울철 결빙과 폭설로 인한 통행차단 등 불편이 컸다. 그러나 이번에 개통된 팔공산 터널로 인해 상주∼영천 간 고속도로와 쉽게 연계되어 편리성이 좋아졌을 뿐만 아니라 대구에서 군위와 의성지역도 빠르게 갈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이 팔공산 터널이 '그림의 떡'인 곳도 있다. 대구 지역 주민이 사용하기에는 그다지 편리하다고만 볼 수 없다는 점이 바로 문제로 지적되고 있다. 팔공산 터널까지 대구에서 바로 연결 되는 진입로가 없는 상태라 기존 도로를 통해 팔공산 터널로 연결되는 도로 시작점인 칠곡군 동명면 기성리에 있는 법성삼거리까지 가야 하는데 팔공산 터널을 이용하려다 오히려 시간이 더 걸린다는 것이 대구시 측 설명이다. 그림의 떡이나 다름없는 팔공산 터널 이용을 위해 대구시는 북구 조야동에서 도남지구를 통과해 가좌삼거리까지 9.7km, 왕복 6차로인 조야동에서 동명으로 이어지는 광역도로 건설을 추진하고 있다.
김수환추기경 생가
<Daum 백과> 등 여기저기 퍼서 편집한 내용임을 밝힘
김수환(金壽煥) 추기경은 대한민국의 천주교 성직자이자 사회운동가이다. 세례명은 스테파노이다. 대구광역시 남산동에서 5남 3녀 중 막내로 태어났고, 본관은 광산(光山)김씨이며 1922년에 탄생하여 2009년 호흡 곤란과 혈압 저하로 인해 87세의 나이로 선종(善終)하였다. 할아버지 김보현은 1866년 천주교 병인박해 때 논산군 연산에서 순교한 독실한 가톨릭 신자였다.
아버지 김영식은 유복자로 태어나서 어릴 때 박해를 피해 옹기장수로 전국을 떠돌다가 1895년 경상도 장자골 옹기굴 신자촌에 정착하고 서중하와 혼인을 했다. 김영식·서중하 부부는 여덟 명의 자녀를 두었는데, 그 가운데 넷째 김동환과 막내 김수환이 천주교 성직자로 자랐다. 김수환의 나이 다섯 살 때 가족이 모두 군위군으로 이주했다. 김수환은 군위보통학교 1학년 때 아버지가 사망했다. 어머니 서중하는 ‘아비 없는 자식’ 소리를 듣지 않기 위해 자식들을 엄하게 키웠다. 김수환의 어릴 적 꿈은 장사꾼이었으나, 어머니의 깊은 신심으로 성직자의 길을 걷게 되었다.
군위보통학교 5학년 때 가족이 대구로 이사하여 김수환은 성유스티노신학교 부설초등학교로 전학했다. 졸업 후 김수환은 성유스티노신학교를 거쳐 서울 동성상업학교에 입학했다. 1941년 김수환은 천주교 장학생으로 일본 조치대학[上智大學] 철학과에 입학했다가 1944년 학도병으로 강제 징집 당했다. 2차 세계대전이 끝나자 김수환은 상지대학에 복학했고, 1946년 12월에 귀국하여 서울 성심대학[현 가톨릭대학교]에 편입했다가 1951년 9월 15일 대구 계산동성당에서 사제 서품을 받았다.
1968년 서울대교구장 취임의 자리에 올랐을 때 그는 "교회의 높은 담을 헐고 사회 속에 교회를 심어야 한다."라고 말함으로써 교회쇄신과 현실참여의 원칙을 분명히 했다.
또한 교회는 가난하고 힘없는 사람들을 위해 종교적인 양심으로 그들의 입장을 대변해야 할 것이라고 주장했으며, 교회는 정치적·사회적인 권력보다 인간 존엄성의 가치를 근본적인 신념으로 삼아 사회와 인류 안에서 빛의 역할을 수행해야 한다는 종교적 현실 참여를 강조했다. 따라서 교회는 절대로 불의와 부정과 타협하는 교회 공동체가 아닌 인간 모두가 순수한 양심에 따라 내면의 회심으로써 사회정의를 실현해야 할 것을 주장했다.
이러한 그의 입장은 과도기의 혼란한 사회에 지대한 영향을 주었다. 즉 물질만능주의의 현대 사회를 염려하여 모든 사람들이 마음을 비워 서로 밥이 되어주는 길이 인간회복의 길이며 민주화의 길임을 호소하여 사회 인사들을 각성시켰고 소외계층에게 위로와 용기를 주었다.
또한 아시아 주교회의와 세계 주교회의에 참석하여 세계 속에 한국의 위상을 정립하여 국위선양에 이바지했다.
1984년 5월 6일에는 100만 신도가 운집하고 교황 요한네스 파울루스 2세가 집전한 가운데 한국 천주교 200주년 기념성회를 개최, 세계 최초로 교황청 밖의 시성식을 열어 한국의 순교자 103위를 성인의 반열에 올렸으며, 1989년 10월 9일에는 교황과 세계의 가톨릭 지도자들이 참석한 가운데 '그리스도 우리의 평화'라는 주제로 가톨릭의 올림픽이라 불리는 세계적 행사인 제44차 세계성체대회를 개최하기도 했다.(103위 성인). 이 자리에서는 또한 헌혈, 안구·장기(臟器) 등의 기증으로 인간의 생명을 존중하는 근본적인 나눔의 실천운동을 전개했다.
1969년 교황 바오로 6세에 의해 한국 최초의 추기경으로 서임되었고, 1998년 서울대교구장을 맡은 지 30년 만에 은퇴하였다. 2007년부터 건강이 악화되어 입원과 퇴원을 반복하며 치료를 받아오다가 선종하였으며, 빈소는 명동성당에 마련되었고, 장례는 닷새간의 일정으로 치러졌는데 이 기간에 시신이 유리관에 보관되어 일반인들에게 공개되었다. 20일 오전 가톨릭교 서울대교구장인 정진석 추기경이 교황특사 자격으로 장례미사를 집전한 뒤, 같은 날 오후 경기도 용인 천주교 성직자묘역에 안장되었다. 생전에 생명 연장만을 위한 어떠한 조치도 취하지 않도록 당부함으로써, 산소 호흡기나 심폐소생술 등의 처치를 받지 않고 생을 마쳤다.
이러한 김수환 추기경의 선종은 존엄사 논란은 물론, 국내 첫 존엄사 소송에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았다. 장기기증 서약에 따라 선종 직후 안구 적출수술을 받았으며, 장례 절차 등도 '다른 신부와 달리 특별하게 취급하지 말라'는 추기경의 뜻에 따라 간소하게 치러졌다. 선종 이후 그를 추모하는 국민들의 열기가 뜨거워 명동성당을 찾은 조문객이 40만 명에 이르렀으며, 장기 기증 서약도 확산되었다.
저서로 〈사회정의〉·〈평화를 위한 기도〉·〈참으로 사람답게 살기 위하여〉·〈너희와 모든 이를 위하여〉 등이 있다.
김수환추기경 생가가 있는 용대리 마을
지금 공원조성 사업이 한창 진행 중이다. 대략 70%쯤 완공된 것 같다.
마무리 공사 중에 있다.
"바보야" 그 의미를 오늘에야 알았다.
꾸며 놓으면 그럴듯 할 것 같다.
옹기장수의 아들로 생활했던 것을 상기시키고자 미니 가마터를 만들어 놓았다.
생가 복원 중
2. 백송 온천 후 가다가 본 제2석굴암
군위삼존석굴(제2석굴암)
<펌> Daum 백과
군위 아미타여래삼존 석굴(軍威 阿彌陀如來三尊 石窟)은 경상북도 군위군 부계면 남산리, 팔공산 연봉 북쪽 기슭에 있는 석굴이다. 1962년 12월 20일 대한민국의 국보 제109호로 지정되었다. 이 석굴은 경상북도 경주 석굴암 석굴보다 100년 전에 먼저 만들어졌다고 한다.
신라 소지왕15년(493)에 극달화상이 창건했으며 석굴은 지상에서 20m 높이에 위치하고, 굴 입구 높이는 4.25m, 굴 깊이는 4.3m, 바닥은 평면이고, 네모반듯한 형상으로 천장은 한가운데가 제일 높고 사방 주위가 차차 낮아지는 하늘 형상이다. 석굴 내에는 본존불인 아미타불과 좌우로 대제지보살과 관음보살이 있다.
백송스파비스관광호텔에서 온천욕을 즐기고 팔공산터널로 진입하자 제2석굴암의 전경을 한 눈에 바라볼 수 있는 지점에 주차 공간이 있었다. 아마 이 공간은 먼발치에서 제2석굴암을 조망하는 전망대를 조성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3. 동명저수지
송림못이라 부르는 동명저수지에 보다시피 못을 가로지르는 데크가 설치되어 있다. 이 길을 건너기 위해 잠시 들렀는데 아쉽게 막아 놓았다.
4. 금호지구 금호강변
아직 해가 남았기에 금호강변으로 갔다.
서서히 해가 넘어가고 있다.
갑자기 참새떼가 ~ 내가 더 놀랬다.
5. 환경자원사업소
6. 금호지구고속도로 야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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