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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B산악동아리

청량산 가을 산행(1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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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이 익어가는 속이 깊은 청량산을 찾아서

청량산 (장인봉 870m)

 

GB산악동아리 창단기념 가을산행

 

▣ 언제 : 2012. 10. 5 ~ 6  1박 2일

▣ 어디로 : 청량산 (경북 봉화군 명호면 소재)

▣ 누구랑 : 직장 동료와 함께 (7명, 저녁 늦게 2명 합류하였으나 아침에 떠남, 1명 발목부상으로 아침에 떠난 팀과 합류하여 함께 감, 산행식구 6명) 

▣ 어떻게 : 승용차 2대 (정보부장, 황○○ 운전)

▣ 왜 : GB 산악회 창단 기념 산행

▣ 숙소 : 청량산 하늘정원 펜션 대표 : 이복림 054-674-2552

    비용 : 2층 큰 방 2개 모두 사용, 사용가 200,000원인데 20,000원 활인하여 180,000원

▣ 청량산도립공원관리사무소 : ☎ 054-679-6653

▣ 탐방안내소 : ☎ 054-672-4994

▣ 산행 들머리 : 청량폭포 가는 길   날머리 : 입석

▣ 산행코스 및 거리 : 청량폭포 가는 길 어귀 - 1.7Km - 장인봉 - 0.8Km - 하늘다리 - 0.5Km - 뒷실고개 - 0.7Km - 자소봉 - 1Km - 김생굴 - 0.4Km - 청량정사 - 0.2Km - 청량사 - 0.2Km - 청량정사 - 1Km - 입석

산행거리 6.5Km

 

  

 청량산을 한 바퀴 휘둘러 내려오는 거리는 그리 길지 않으나 거리에 반해 걸리는 시간은 만만치 않다. 환주코스가 7Km 정도이며 시간은 개인차에 따라 다소 차이가 있겠지만 일반적으로 6시간 정도면 무난하다고 보면 된다. 우리 일행은 경일봉 코스를 생략하고 김생굴과 청량사를 거쳐 입석으로 하산했으나 거의 청량산 일대를 모두 헤집고 다녔다고 보면 된다. 6.5Km를 쉬엄쉬엄 다니면서 백두대간 주변의 명산인 단정하고 밝고 엄숙한 청량산에서 도시의 찌든 아스팔트 열기와 건조한 콘크리트 숲에서 생활하던 일상을 탈출하여 1박 2일을 청량산인과 함께했으니 무엇을 더 바라겠나. 더 이상 좋을 수가 없다.

 

흔적

 

  청량산은 퇴계 이황이 반하여 스스로‘청량산인’이란 호를 짓고 유산태평 [遊山太平] 하게 생활했던 곳이며, 주세붕 또한 청량산을 웅장하기는 지리산이고, 청절하기는 금강산이라 비유할 정도로 그 유명세가 대단한 산이다.

 우리 일행이 산행 동아리 조직 기념 산행을 청량산으로 택한 것은 참말로 잘한 것 같다. 겉보기에는 아기자기하게 보이지만 속으로 들어가면 갈수록 내공이 깊다는 것을 알 수 있음은 비단 퇴계, 주세붕, 최고운, 김생이란 유명 인사가 아니어도 청량산을 거니는 산객이면 충분히 공감할 수 있으리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이번 청량산 산행에서 우리는 김생굴에서 10년간 칩거하면서 서체를 개발한 김생 선생에 대해서 알았고, 주세붕 선생과 퇴계 이황의 청량산 사랑을 느끼면서 우리 몸속에 내재된 꾀째째한 욕망과 허상의 해묵은 티끌을 털고 왔다. 청량산은 산객에게 말없이 준엄한 가르침을 준다. 


 이번 산악동아리 기념 자축산행에 참가한 동료들 가운데는 산 다람쥐만큼이나 산을 잘 타는 이도 있고, 그저 일상에서 벗어나 스트레스 해소 차원에서 온 이도 있는 것 같다.

오랜만이거나 처음 산을 오르는 것은 결코 쉽지 않은 일이고, 거기다가 청량산이 결코 만만한 산이 아니기에 다소 걱정은 되었지만 그것은 기우에 불과했다. 우려했던 동료들은 늘 정기적으로 산을 다녔던 것처럼 낙오 없이 잘 따라 주었고 덕분에 동아리 조직 기념산행은 목적대로 잘 이행되었다.

 다만, 막내가 (장●●) 전 날 실수로 발목을 접 질러 도중에 하차하여 끝까지 참가를 하지 못함이 아쉬움으로 남는다. 오랜만에 참가하는 등반이라 추석연휴를 이용하여 미리 구미 금오산을 시험 산행까지 했다는 준비성이 많고 재기발랄한 젊은이라 더욱 아쉽다. 하지만 산이 어디 이사 다니거나 옮겨 다니는 것이 아니고 항상 거기 그 자리에 버티고 있으니 다음 기회가 많다. 그 때 다시 참가하여 아쉬움을 달래도록.


 산행동아리의 이름은 우선 내 맘대로‘GB산악동아리’로 명명하고 앞으로 혼자 다닐 것이 아니라 젊은 동료들과 함께하는 시간을 자주 갖도록 해야겠다.


 급변하는 거센 교육계의 회오리바람과 몸살이 날 정도로 격하게 소용돌이치는 물결 속에서 학업에만 전념 해 온 교사들은 교육 현장의 폭풍 같은 변화에 당황할 수밖에 없고, 교육현장 안팎에서 발생하는 많은 일을 감내하기란 결코 쉽지 않다. 이 친구들을 위한 어떤 보상 내지 직․간접적으로 도움을 줄 수있는 방안은 가까이 있는 동료들의 관심이라고 생각한다. 급한대로 곁에 있는 선․후배의 격려와 도움이 가장 큰 위로와 힘이 아니겠나. 다들 쉬운 직업이 어디 있겠나마는 오랜 세월을 함께하고 교육환경의 변화를 지켜본 사람으로서 현재 우리나라 학교 안팎의 분위기를 간과하기란 쉽지 않다. 그래서 시작은 미미하지만 산악동아리가 조직되어 선․후배 교사가 함께하는 시간을 가지며 이산저산 다니면서 위로하기도 하고 받기도 하며 스트레스를 해소하는 것도 좋은 방법일 것 같다. ‘가르치는 자는 더 많은 것을 배워야 한다.’가르침에 있어 배움이 소홀하다면 가르치는 일 역시 쉽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산을 찾는 것이다. 교육의 미래는 국가의 장래다. 우리는 산을 통하여 더 많은 포용과 인내를 배워 후학을 양성함에 한 치의 소홀함이 없도록 해야겠다. 이번에 참가한 팀이 주축이 되어 서로의 업무 상 자주 가지는 못하더라도 정기적인 산행을 통해서 더 지혜롭고 다정다감한 정을 나누는 장을 마련하도록 하자.

행복은 각자 가지고, 고통은 분담하도록 하자.


 

 이번 행사에 물심양면으로 노고를 아끼지 않은 학생부장, 정보부장, 황●●한테 심심한 감사의 인사를 하고 아울러 함께한 후배 교사들에게도 고마움을 전한다. 모두 노고가 많았습니다.

 

 이제 서로 다음 산행을 기약해 볼까요.

 

 

 

청량산에 대해서 알고가자.

 

 청량산 개요는 카테고리 산행길잡이에 소개한 내용을 대신하고, 일반적으로 블로그나 카페에서 잘 접할 수 없는 내용을 신정일의‘다시 쓰는 택리지’의 본문 내용을 발췌하여 소개하고자 한다.


「택리지」에는 청량산에 대하여 이렇게 설명하고 있다.

 안동의 청량산은 태백산의 산줄기가 들에 내려오다가 예안강 가에서 우뚝하게 맺힌 것이다. 밖에서 바라보면 다만 흙으로 덮인 봉우리 두어 개뿐이다.그러나 강을 건너 골짜기에 들어가면 사면이 석벽에 둘러 있고, 모두 만 길이나 높아서 험하고 묘한 모습이 형용할 수가 없다.

그 안에 위치한 난가대(欄柯臺)는 최고운이 바둑을 두던 곳으로, 모난 돌에 바둑판 줄이 그어진 듯하다. 그 곁에 있는 석굴 안에는 늙은 할머니의 상 하나를 안치하였는데, 전해오는 말에는 고운이 이 산에 살 때 음식을 지어 놀리던 계집종이라 한다.

 산에 연대사(蓮臺寺)가 있고, 이 절에는 신라 때의 명필 김생이 쓴 불경이 많다. 근래 한 선비가 이 절에서 글을 읽다가 불경 한 권을 훔쳐 집에 왔다. 그라나 그 사람은 곧 염병에 걸려 죽었다. 그 가족이 두려워하여 불경을 즉시 절에 돌려주었다 한다.


낙동강 상류에 자리 잡은 청량산을 조선시대의 문신인 주세붕은「청량산록」이라는 기행문에서 다음과 같이 예찬했다.

“해동 여러 산 중에 웅장하기는 두류산(지금의 지리산)이고 청절하기는 금강산이며 기이한 명승지는 박연폭포와 같은 가야산 골짜기다. 그러나 단정하면서도 엄숙하고 밝으면서도 깨끗하며 비록 작기는 하지만 가까이할 수 없는 것은 바로 청량산이다.”또한 주세붕은 

 이 산은 둘레가 백리에 불과하지만 산봉우리가 첩첩이 쌓였고 절벽이 층을 이루고 있어 수목과 안개가 서로 어울려 마치 그림 같은 풍경이었다. 또 산봉우리들을 보고 있으면 나약한 자가 힘이 생기고, 폭포수의 요란한 소리를 듣고 있으면 욕심 많은 자도 청렴해질 것 같다. 중국의 형산에서 맑은 물을 마시고 만월암에 누워 있으면 비록 하찮은 신선이 아니고 또 무엇이겠는가.


 

주세붕보다 여섯 살 아래이며 이곳 예안이 고향인 퇴계 이황은 청량산의 아름다움에 반하여 스스로 호를‘청량산인’이라 짓고 이렇게 노래했다.

청량산 옥류봉을 아는 이 나와 백구,

백구야 헌사 하랴 못 믿을 손 도화로다.

도화야 떠나지 마라 어주자(魚舟子) 알까 하노라.


어주자(魚舟子) : 고기잡이를 전문으로 하는 사람(어부)

 

 

 

위에서 우리 일행이 산행한 코스와 거리플 표기하였지만 안내도를 보고 다시 부연 설명하면 청량산 코스 중 비교적 난코스에 해당하는 청량폭포를 들머리로 정상인 장인봉을 찍고, 하늘다리를 거쳐 자소봉까지 간 다음에 경일봉을 생략하고 김생굴을 거쳐 청량사를 둘러보고 청량정사로 해서 입석으로 나왔으니 거의 청량산 한 바퀴 휘둘러 내려왔다. 일반적으로 청량산을 찾는 이들은 입석을 주로 들머리로 한다. 

 

 

스마트폰으로 찍은 파노라마 사진. 화질이 썩 마음에 들지는 않지만 그래도 블로그 상단 스킨용으로 적절하게 사용한다. 이 놈이 없었을 때는 상단 스킨용은 내가 더러 이용하는 사이트에서 가져와 올렸는데 이젠 그럴 필요가 없다. 다소 부족하더라로 내 것을 올릴 수 있어서 좋다.

 

 

 

 

 

 

 

장인봉에서가 아니라 하늘다리에서다. 잘못 적었다.

 

요 놈도 역시 장인봉이 아니라 하늘다리다.

 

 

 

 

 

2012. 10. 5. 청량산 도립공원 관리사무소 근처 하늘정원펜션에 도착하여 여장을 정리하고 전일제 행사 진행 중. 푸짐하게 준비하여 모두 부족함 없이 실컷 먹고 스트레스를 한 방에 명호천에 날려 보냄

 

전일제 행사 진행 중. 먹을거리가 푸짐하다. 내일 산에 갈 수 있을려나 걱정되었는데 모두 나보다 더 잘간다. 내가 제일 못 간다. 젊음이 좋긴 좋다.

 

스마트폰 사진. 눈에 적목현상을 제거할려니 시키는대로 해도 잘 안되네. 그냥 보시오. 전 날 찍은 사진이 없어 귀하네요.

 

우리 일행 숙소 앞에있는 민박집. 너와집 지붕이 정감이 가서 한 컷

 

 

자, 이제부터 2일차 청량산 산행 사진입니다. 청량폭포 들머리에 있는 청량산 개념도. 빨간 글씨로 표기된 현위치에서 부터 시작한다.

 

정상인 장인봉까지 1.7Km(예상시간 1시간 40분). 학생부 2명은 40분에 주파, 나머지는 예상시간 보다 빠르게 도착. 나는 시간에 구애 받지 않는 자유인. 퇴계 선생님 청량산인1, 나는 2라고나 할까요. 누가 욕할라...

 

시작 20~30분은 빨래판 같은 콘크리트 포장길이다. 걷는 촉감은 별로지만 그래도 오르는 길 내내 가을꽃을 대변하는 보랏빛 쑥부쟁이와 노랗게 핀 고들뻬기 그리고 여뀌류가 길가에 무리를 짓고 피어있어 기분은 상큼하고 좋다. 이리저리 들꽃에 취해 한 눈 팔다보니 이 사람들은 벌써 저만큼 가고 있고 누구는 보이지도 않는다.

 

청량산 쑥부쟁이. 깊은 산 중이라 자태가 우리 일행 중 여성 동료들 만큼이나 곱다.

 

좁쌀 같은 것이 빨간 끝에 흰색이 묻어 있는 이 놈은 여뀌 종류인데 개여뀌인지 바보여뀌인지 무슨 여뀌인지 나중에 정확하게 올려 놓겠오이다. 요즘 온 산 지천에 깔려있다. 청량산에 있는 이 놈은 색감이 더 좋다. 

 

누리장나무.  여기저기 들꽃 향기에 취해 20여분 오르다보니 이 놈을 여기서 본다. 야생화에 관심없을 때도 산에 다니면서 분명 봤을텐데 그냥 무심코 지나쳤을테고 야생화를 알아가고 있는 요즈음은 직접 보진 못했는데 여기서 활짝핀 누리장나무를 본다. 카페에서나 봤는데 참으로 반갑게 맞이한다. 이 놈은 만지면 누린내가 난다고 해서 누리장나무라고 했다나. 활짝 핀 꽃은 이쁘기만 하다.

 

이 놈은 점봉산, 방태산 그리고 이산저산 다니면서 많이 봤는데 워낙 유사형태가 많아 도통 헷갈리는 무리 중 하나다. 계단을 오르면 온 천지가  이 놈들 밭이더만 헷갈린다.

 

사람이 사는 듯 살지 않는 듯 산중가옥이 한 채 있다. 푯말에는 막걸리 파는 집이라고 적혀있다. 동료들은 벌써 시야에 사라진지 꽤 되었고, 기다리거나 말거나 막걸리 파는가 확인도 하고 싶고 몰래 한 잔 먹고 갈려다 발걸음이 느려 더 늦어질까 참았다. 이런 유혹에 흔들림 없이 가는 이 마음을 이 친구들은 알려나.

 

일행들을 내버려 두고 그냥 이 지점에서 여유를 가지며 쉬어간다. 드문드문 올라가는 산객들을 마주하며 서로 정다운 인사를 주고 받는다.

 

청량폭포에서 장인봉으로 올라가는 코스는 산객들이 많이 찾지 않는 코스라 주변 곳곳이 밀림을 방불케한다.

 

올라가면서 누리장나무를 또 맞이한다. 요즈음 이 맛에 산을 탄다.

 

장인봉, 청량폭포, 하늘다리로 가는 삼거리 지점. 여기까지 올라오니 젊은 처자 2명이 장인봉갔다가 내려오고, 나머지는 벌써 하늘다리에서 '나' 오기를 기다리며 한참을 배회하고 서성거린다. 여기서 이쁜 젊은 처자 둘이랑 함께 하늘다리로 가야 먼저 온 친구들이 덜 지겨울텐데 처자 둘이 먼저 보내고 나는 여유롭게 장인봉으로 간다. 어떻게 가든 청량사에서 만나자고 해라고 전하면서. 요 대목에서 쬐께 미안해질라칸다. 

 

청량산 정상석 장인봉. 김생선생의 서체인가 보다.

 

장인봉 삼각점. 자세한 내용은 삼각점 주변의 글씨가 닳아서 안보인다. 삼각측량의 기준점

 

장인봉에서 북쪽으로 바라본 주변 산마루금

 

장인봉에서 북동쪽으로 바라본 산마루금

 

장인봉으로 가는 마지막 스테인레스로 만들어 놓은 데크로 계단의 경사가 급하다.

 

먼저 온 이 친구는 한참을 기다렸을거다. 걱정이 되었던지 기다림에 지쳤던지 삼거리까지 마중을 나와있다. 그 참 체력 탐나네.

 

하늘다리. 선학봉과 자란봉을 연결하는 해발 800m 고지의 다리

 

하늘다리를 지켜보고 있는 명품 소나무

 

저 기암괴석의 단애는 마치 하늘다리를 보호하 듯 위풍도 당당하게 버티고 서있다. 

 

바라만 봐도 아찔하다. 이 친구는 고소공포증도 없나보다.

 

기암괴석 뒤에 펼쳐진 저 산마루를 보라. 우리나라 산 참말로 많기도 하다.

 

국내에서 가장 긴 산악현수교. 다리를 건너는 심약한 산객들을 고려하여 고무로 된 깔판을 깔아 놓아 공포감을 덜어놓았다. 

 

쇠밧줄은 다리를 건너는 상부 구조물을 잡아 당겨 현수교를 안전하게 지탱하는 역할을 한다. 줄 하나하나 모두 역학적으로 계산된 공법이다. 

 

동료들과 함께 하늘다리에서 간단하게 허기를 달래본다.

 

모두들 대단하고 기특하다. 아무쪼록 이번 산행에서 묵은 스트레스가 있으면 이 하늘다리 위에서 훌훌 털고, 내일도 오늘 같이 씩씩하고 강건하게 생활하기를 바란다.

 

모두 처음으로 모였네요. 자, 청량산 하늘다리는 우리가 접수한다.

 

 

하늘다리 옆에도 보라색 쑥부쟁이가 시원스럽게 무리를 지어 피어 있네요. 고도가 높은 맑은 구름 아래 자라서 그런지 빛깔이 참으로 맑고 곱다.

 

꽃보다 이쁜 사람들은 여기 모여있구만.

 

니네 그러다 정분날라. 그러기엔 나차가 너무 많이나나.

 

모두 피로한 기색도 없이 씩씩하다. 오늘 청량산을 빛내주러 당신들이 왔구만.

 

하늘다리 만큼이나 위풍이 당당하다. 그대의 힘차고 당찬 모습이 부럽오이다.

 

하늘다리에서 자소봉으로 500m 오면 뒷실고개가 나온다. 여기서 자소봉으로 갈 것인가 청량사로 하산할 것인가 쬐깨 고민하다가 자소봉 쪽으로 계속 진군하고 내친 김에 경일봉을 돌아 청량산을 일주하기로 작정한다.

 

자소봉으로 오르는 가파른 계단이 나온다. 이제 이 젇오야 모두들 탄력을 받아 거뜬하게 오른다.

 

계단을 오르고 10여 분 가니 자소봉까지 0.6Km가 남았다는 이정표가 나온다. 

 

저 멀리 우리나라에서 가장 긴 산악현수교 하늘다리가 보인다. 까마득히 보이나 막상 산봉우리를 걸어보면 눈에 보이는 만큼 그리 멀지 않음은 직접 다녀보면 느낄 수 있다.

 

산 중 높이 있는 소나무는 언제봐도 그림 같은 집의 조경수 보다 더 멋지다.

 

연적봉에서 바라보는 전망 또한 과히 일품이다.

 

연적봉에서 바라 본 탁필봉과 자소봉. 앞-탁필봉, 뒤-자소봉

 

자소봉

 

탁필봉은 지나가는 등로에 표식이 있다. 봉우리 모양이 붓과 같다고하여 필봉이라 하고 중국에 있는 봉우리 이름을 따 최치원이 탁필봉이라고 이름붙였다고 한다.

 

계획은 경일봉을 경유하여 김생굴로 가려고 했는데 경일봉 역시 가는 등로에 간단하게 세워진 표석만 하나 있고 조망권이 좋은 곳은 아니다. 여기서 경일봉을 경유하여 가는 것이 시간이 그리 많이 소비되는 곳이 아니지만 우리는 여기서 청량사로 바로 내려간다. 

 

역시 가을꽃을 대표하는 꽃향유가 청량산에도 한창이다. 가는 곳곳에 꽃향유가 군락을 이루고 이쁜 색깔을 뽐내고 있다.

 

기암괴석을 감싸고 도는 담쟁이 같은 덩굴식물이 가을의 단풍으로 먼저 물이든다. 지난 번에 왔을 때도 느꼈지만 늘 거대한 암벽을 뒤 덮은 덩굴 잎이 먼저 빨갛게 익어간다.

 

김생굴. 참으로 대단하다. 여기서 10년을 버티다니 실로 그 의지에 경악을 금치 않을 수 없다. 

 

암벽 사이로 흐르는 물과 위에서 떨어지는 물방울로 패여진 샘 같은 곳. 여기서 먹을 갈고 붓을 씻었다나.

 

김생이 글씨를 연습하여 김생필법이라는 서체를 개발한 이 곳은 재미있는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다. 내용인즉슨 수도생활 9년 째 접어든 어느날 역시 청량산에서 길쌈을 하는 여인이 찾아와 대결을 하였다. 김생은 글씨로 여인은 길쌈으로 대결을 하였는데 어두운 굴 속임에도 불구하고 여인이 짠 천은 규칙적이고 고르게 짜여져 김생이 패하고 말았다. 여기에서 김생은 새롭게 깨우친바가 있어 1년을 더 수련한 후 하산하여 명성을 더 높였다고 한다. 김생을 깨우치고 명필로 만든 그 여인은 청량봉녀라고 한다.  

 

김생굴. 꽤 깊어 보이며 수십명을 수용할 만한 반월형의 자연암굴로 되어있다.

 

 

 

김생굴 앞에서 바라본 청량사 전경. 거대한 암벽으로 둘러쌓인 편안한 곳에 자리잡고 있다.

 

조금 더 당겨서 본 모습

 

청량정사. 퇴계 이황이 청량산에 머무름을 기념하기 위해 사림들이 논의를 거쳐 건립하였다.

 

산꾼의 집. 오고가는 아픈 다리 쉬어가며 약차 한 잔 무료로 드시고 가란다. 넉넉하고 인심 좋은 집이다. 안에 들어가서 약차 한 잔 마시며 잠시 피로를 달래본다. 약차도 약차지만 산꾼이라는 이 어른의 호방하고 넉넉한 인심이 산객들을 더욱 편안하게 만들어 주어 청량산을 더욱 포근하게 감싸 안아준다.   

 

오늘 7시에 청량사에서 산사음악회가 열리는 관계로 청량산 일대가 분주하게 움직인다. 오전에 산행 시작할 때는 주차도 원활하더니 하산 시에는 도로가 차량으로 즐비하고 산사음악회에 참가하기 위한 많은 사람들의 발걸음이 분주하다. 우리는 시간 관계상 산사음악회는 참가하지 못했으나 일찌기 청량산 봉우리를 잘 돌아나왔다.

 

김생굴.  입석으로 하산하는 길에 김생굴을 거쳐 지난다.

 

청량사. 청량사는 깊은 산속에 위치한 지리적 난관에도 불구하고 경북 봉화 지역 어린이, 청소년, 농민 포교에 힘써 지역의 대표적 포교 중심 도량이 되었다.

 

청량사 유리보전 앞에 있는 5층석탑.  5층 탑은 1990년에 세워졌으며 석탑의 주위에는 석난간을 두르고 있으며 부처님 진신 사리 5과를 모시고 있다. 석탑 주변은 산사음악회 준비를 위한 구조물 설치와 행사 준비로 분주하다.

 

오늘 밤 청량산은 음악을 즐길란지 몸살을 앓을란지 알 수가 없다. 기왕 개최하는 음악회인 만큼 청량산의 가을도 산사에 울려 퍼지는 음률을 따라 이 가을을 만끽했으면 좋겠다.

 

산사음악회 참관을 위한 명당자리. 여기는 스님석, 내빈석 등이 주로 자리잡고 있다.

 

석축 위의 청량산 청량사 현판. 김생선생의 필체인지 어느 선생의 필체인지 아직 모르겠음

 

 

청량사는 산악에 위치해 있다보니 터가 좁아 창건 당시 넓은 공간을 확보하기 위해 축대를 쌓아야만 했다. 지금의 유리보전 앞 석축과 범종루 뒷편의 석축은 청량사 창건과 그 연대를 같이 한다고 보아야 할 것 같다. 특히 유리보전 앞 석축은 붉은 색을 띠고 있어 이채롭다. 청량사의 석축은 부석사의 석축보다 웅장하거나 장대하지는 않지만 푸른 하늘과 산과 조화롭게 축조되어 무질서한것 같으면서도 잘 정형화되어 있고 소박한 아름다움을 지니고 있어 정겹다.  -청량사홈내용 펌-

 

청량사 유리보전.  유리보전은 조선 후기 건물로 연화봉과 반야ㆍ문수봉 아래 가파른 경사면에 자리잡은 건물이다. 워낙 경사가 급해 단단한 석축을 쌓아 너른 대지를 조성한 후 전각을 세웠다. 이 유리보전은 청량사의 중심 전각으로 경상북도 유형 문화재 제47호로 지정(1974.12월)되어 있다.

유리보전은 약사여래를 모시는 전각으로 즉, 약사여래는 동방의 유리광세계(琉璃光世界)를 주재하는 분으로 중생의 치병을 서원으로 삼은 분이다. 중생이 육체적으로 고통받을 때, 혹은 정신적으로 번뇌에 허덕일 때 약사여래는 자비로운 손길로 중생의 인기를 받아 왔다. 오늘날 대부분의 사찰에 약사전이 들어서 있는 것은 이러한 약사여래의 신통력에 대한 믿음 때문이다.  <청량사홈에서 펌>

 

 

청량사의 본전 유리보전 앞에서. 유리보전의 현판(260×60cm)은 고려 후기의 공민왕(恭愍王)이 직접 쓴 친필이라고 전한다. 공민왕은 홍건적의 난을 피해 안동 지방에 피난 온 적이 있었으므로 친필일 가능성이 높다고 한다.

 

사찰에 가면 저기 장독엔 뭐가 있는지 뚜껑을 열어보고 싶은 마음이 생기지요. 차마 열어보지는 못하지만 보는 것만으로도 웬지 서정적이고 정갈한 스님들의 일상을 엿보는 것 같지 않습니까?

 

 

 

 

기와로 덮은 배수로가 예쁜 꽃과 어우러져 참으로 정겹다. 

 

카메라를 들이대는 곳 마다 그림 같은 작품이 연출된다.

 

 

 

안심당(安心堂)은 지난 98년에 지은 건물로 사찰 내의 다원(茶園)으로 대중 포교의 장이다. "바람이 소리를 만나면"이란 나무현판이 붙어 있는 이 찻집은 안팎 곳곳에서 은은한 전통의 멋과 향을 느낄 수 있는 개방된 절집의 포근한 쉼터이다. 정면 2칸, 측면 한 칸의 맞배지붕으로 되어 있으며 굴뚝이 아름답다. "마음이 흔들리지 않는 경지에 이르게 하는 집, 마음을 한 곳에 집중하여 산란을 멈추고 평온을 가져다 주는 집" 이 바로 안심당이다. 이곳에서 얻어지는 수익금은 중생 구제의 한 실천으로 포교 사업과 불우한 이웃을 위해 쓰여지고 있다.                            <청량사홈에서 펌>

 

청량정사와 산꾼의 집 갈림길에 입석으로 나가는 이정표가 있다. 청량산을 찾는 이들은 일반적으로 입석 쪽을 들머리로 많이하나 우리는 이번에 청량폭포 쪽을 들머리로 하고 입석 방향을 날머리로 돌아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