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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B산악동아리

속리산의 겨울을 찾아서(2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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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2월 초하루, 속리산의 겨울은 다정했다.

1057m

 

제2회 GB산악동아리 정기산행

 

 

  GB 산악동아리 2회-준비물.hwp

 

1. 언제 : 2012. 11. 30.(금) ~ 12. 1(토)

   -11. 30 : 숙소 도착, 친목도모

   -12. 01 : 속리산 산행

2. 어디로 : 법주사탐방지원센터 - 문장대 - 신선대 - 법주사탐방지원센터

3. 참가자 : 10명(슬로우늘보,태릉숙,지하여장군,힘돌이,포근이,토숙이,재간둥이,하회탈,

              아이돌숙,능력자)

4. 산행코스

   법주사 주차장 1.0Km(15분) 법주사 일주문 2.7Km(1시간) 세심정 3.1Km(2시간30분) 문장대 1.1Km(30분) 신선대 1.6Km(1시간) 비로산장 3.1Km(1시간15분) 법주사 일주문 1.0Km(15분) 법주사 주차장


산행 거리 14Km

산행 시간 6시간 45분

 총 걸린 시간 7시간 40분

 

◆ 속리산국립공원사무소 주소 : 충북 보은군 내속리면 상판리 19-1  우) 376-862

 

   전화 : 043) 542-5266

속리산유스타운 주소

   충북 보은군 내속리면 상판리 3-8번지     전화 043-540-7777

 

 

◆ 속리산국립공원 개요

 

 

  한국팔경 중의 하나인 속리산은 태백산맥에서 남서방향으로 뻗어 나오는 소백산맥 줄기 가운데 위치하고 있으며, 남북으로 백두대간이 지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천왕봉에서 한남금북 정맥이 분기하고 있으며, 행정구역상으로 충북 보은군, 괴산군, 경북 상주시의 경계에 있는 산이다. 해발 1057m인 속리산은 화강암을 기반으로 변성퇴적암이 섞여 있어 화강암 부분은 날카롭게 솟아오르고 변성퇴적암 부분은 깊게 패여 높고 깊은 봉우리와 계곡은 가히 절경을 이루고 있어 광명산(光明山), 미지산(彌智山), 소금강산(小金剛山)으로 불리기도 한다.


화강암의 기봉(奇峰)과 산 전체를 뒤덮은 울창한 산림은 천년고찰 법주사와 잘 조화되어 승경(勝景)을 이루고 있다. 최고봉인 천왕봉(天王峰)을 중심으로 비로봉(毘盧峰), 길상봉(吉祥峰), 문수봉(文殊峰)등 8봉과 문장대(文藏臺), 입석대(立石臺), 신선대(神仙臺) 등 8대 그리고 8석문(石門이 있다.


법주사지구 학소대 주변 은폭동(隱瀑洞)계곡, 만수계곡, 화양동지구 화양동계곡, 선유동계곡, 쌍곡계곡과, 장각폭포, 오송폭포(五松瀑布)등의 명소가 있으며, 정이품송(正二品松천연기념물 제103호), 망개나무(천연기념물 제207호) 등 1,055종의 식물과 까막딱다구리(천연기념물 제242호), 하늘다람쥐(천연기념물 제328호) 등 희귀 동물을 포함하여 1,831종의 동물이 서식하고 있는 자연자원의 보고(寶庫)이기도 하다.


   속리산에 들어가면 속세를 잊게 된다. 산과 산들이 겹겹이 펼쳐놓은 절경을 통해 속세의 아름다움도 더불어 깨닫게 되는 산 또한 속리산이다. 속리산 국립공원은 봄, 여름, 가을, 겨울의 특징이 뚜렷이 드러나는 곳이다. 법주사지구, 화양동지구, 화북지구, 쌍곡지구 네 지구로 구분이 되어 있는 속리산에서의 사계절 탐방코스는 봄, 가을에는 문장대, 천왕봉, 도명산, 칠보산, 군자산을 탐방할 수 있고, 여름에는 화양/선유/쌍곡계곡, 겨울에는 천왕봉 코스의 펼쳐진 설원이 장관을 이루는 곳이다.

 

속리산홈페이지

 

 

 

◆ 깃대종


망개나무 Berchemia berchemiaefolia

(멸종위기야생동·식물Ⅱ급. 천연기념물 제207호, 제266호)


-영명Korean Berchemia

-사는곳 : 충북 및 경북(속리산, 월악산, 주왕산 등)

-생김새 특징 : 잎은 어긋나고 긴 타원형으로 잎 가장자리에 밋밋한 물결모양

-생태적 특징 : 흙이 많지 않은 바위지대에서 자람.

  나무가 매끈하고 불에 잘 타기 때문에 과거 농업용 도구를 만들거나 땔감으로 사 용됨.

-특이사항 : 꽃이 아름다우며 가을에 노란색 단풍이 드는 세계에서도 보기드문  나무임.


하늘다람쥐 Pteromys volans

(멸종위기야생동·식물Ⅱ급. 천연기념물 제328호)


-영명Siberian Flying Squirrel

-사는곳 : 전국 산림이 비교적 양호한 지역의 나무 위.생김새 특징몸길이 15~16cm로 몸은 회갈색. 앞발과 뒷발 사이에는 피부가 이어져 커다란 날개처럼 된 비막이 있음. 땅에서는 엉금엉금 기어다님. 나무 사이를 오갈때 비막을 이용해 행글라이더처럼 기류를 타고 이동함.

-생태적 특징 : 새끼는 딱다구리가 파 놓은 구멍이나 인공 새집 등을 이용하기도 하며, 집을 만들기도 함. 야행성으로 낮에는 나무 구멍에 들어가 잠을 잠. 겨울잠을 자지 않음. 먹이잣, 도토리, 과실, 나무의 싹, 어린 나뭇가지 등특이사항 전국적으로 산림이 비교적 양호한 지역에서 서식하나 점차 그 개체수가 줄어들고 있음.   

 

흔적

 

  30일 하던 업무를 정리하고 지하주차장에 모여 속리산을 향해 출발을 하였다.

애나 어른이나 언제든 길 떠나면 마음이 설레는 모양이다. 젊은 청춘들은 내일 어떤 고난이 닥칠지 예견하지 못한 채 그저 즐겁기만 한 것 같다. 젊음은 그래서 좋은거지.

다람쥐 쳇바퀴 돌 듯 되풀이 되는 일상과 과중한 업무가 주는 스트레스가 먼 길 떠난다는 기분에 조금 위로가 되는 모양인지 낫살깨나 먹은 나도 산행 길 떠나는 기분이 덩달아 상큼하고 뿌듯하니 좋다.


근 2시간을 달려 하룻밤 유숙할 내속리면에 있는 속리산유스타운을 향해 가노라니 마치 아나콘다와 같은 거대한 뱀의 형상을 하고 있는 구불구불하고 긴 말티고개를 넘어간다.

이 고개를 넘어가면 속세를 떠나 삶을 깨닫는다는 속리산에 들어간다. 백두대간의 그 장엄한 줄기의 중심에 당당히 자리 잡고 있는 속리산국립공원이다.


숙소에 도착해 여장만 풀어 놓고 조촐하나마 다음 날 산행을 위한 저녁 만찬을 즐기자니 느닷없이 어둠이 밀려오는 창밖으로 이슬 같은 하얀 눈가루가 잔잔한 바람에 소리 없이 날리고 있다. 마치 우리 일행의 속리산 입성을 반기는 듯 대구에서 구경하지 못한 첫 눈을 속리산이 반갑게 맞이하며 환영 인사를 한다. 내일 눈이 많이 오면 산행에 어려움이 많을텐데 하는 걱정도 잠시 환영 인사만 한 채 언제 눈이 왔느냐는 듯 뚝 그쳐 버렸다. 내일 산행은 그런대로 예감이 좋다.

오늘 밤은 미리 준비한 음식과 박부장이 챙겨준 술을 시작으로 기분 좋게 묵은 스트레스를 해소하며 즐거운 시간을 가졌다. 하루가 즐거우면 하루가 괴로운 법이니 내일 안전한 산행을 위하여 오늘은 요 만큼만 하도록 자제를 한다. 모두 절제하는 마음이 다부지다.


속리산에 들어가면 속세를 떠나게 되고 또한 속세를 알게 된다고 한다.

속리산 여기저기 우뚝 솟아 있는 기암괴석은 화강암이 모반인 듯 했고, 군데군데 변성퇴적암이 섞여 깊은 골을 만든 계곡은 가히 절경을 방불케 한다.

일단 우리 일행은 할딱고개를 넘어 문장대를 경유하여 천왕봉까지 목표를 설정하고, 여의치 않으면 신선대에서 법주사로 회귀하기로 이단 계획을 세우고 출발하였다.

늘 아내랑 주말 산행을 하는 나도 오늘 천왕봉까지 가능할런지 의구심이 드는데 오늘 처음 산행을 하는 젊은 친구들이 여럿있어 목표지점까지의 가능성 여부는 글쎄, 가봐야 알 일이다. 어쨌든 젊은 힘이 있는 친구들이니 함께 의지하고 가면 못 갈 일도 없으리라.


법주사 주차장에서 세심정까지의 근 1시간 거리는 워밍업을 하면서 속리의 시작을 음미하듯 경쾌한 발걸음으로 노래하는 기분으로 즐겁게 간다. 그러나 속리산 산행의 참맛은 세심정 부터 시작이다. 세심정에서 시작되는 오르막 산행은 속리산이 어떤 곳인지 여실히 증명해 준다. 산천도처에 깔려있는 우리나라 어떤 산이 내게 그리 편한 곳이 있었던가마는 속리산 역시 쉽게 발을 내딛게 하지 않는다. 산은 어떤 이름을 가졌든 결코 쉽지 않다.


문장대에 오르니 바람이 거세다. 올라올 때와 상황이 많이 다르다. 구석구석 거대한 암벽 사이 바람이 드문 곳엔 문장대에 먼저 오른 많은 산객들이 자리를 선점하고 점심을 먹고 있다. 우리도 적당한 곳에 터를 잡아 아침에 미리 준비해 따뜻하게 끓여 온 육개장과 각자 배낭에 있는 먹거리를 풀어 놓으니 산중 만찬이 부럽지 않다. 주변에서 우리가 가장 풍성하게 먹는 것 같아 괜시리 미안한 생각이 든다. 어쨌든 정보부장과 태릉숙을 비롯한 여성 동지들 덕에 점심은 산중만찬으로 풍성하게 해결했다. 다들 애 많이 먹었오.


주린 배도 채우고 이제 천왕봉을 거쳐 법주사로 내려가야 하는데 갈 길이 멀다.

점심을 해결하고 출발하려니 시간이 벌써 1시 30분 쯤 됐다. 문장대에서 천왕봉까지 1시간 50분(3.2Km), 천왕봉에서 법주사까지 2시간 40분(5.5Km)이 소요되니 대략 하산 지점까지 4시간 40분이 더 걸린다. 물론 등산용 안내지도의 시간 표시는 대체로 느린 걸음을 기준으로 제시하였지만 그래도 우리 걸음으로 단축할 수 있는 시간은 2시간은 무리라고 볼 수밖에 없다. 어두워지기 전에 하산하려면 4시 이전에는 하산을 하여야 하는데 아무래도 능선길 그늘에는 아이젠을 착용해야 행보가 가능한 지역이 많아 천왕봉을 강행하기는 무리라고 판단된다. 결국 태릉숙이만 제외하고 나머지는 신선대에서 하산을 했다. 그런데 태릉숙이는 천왕봉 찍고 우리보다 먼저 법주사로 내려왔다. 그 참 !!!


문장대에서 신선대까지 1.1Km 구간은 약 30분 정도면 가능한 코스다. 문장대에 올라 그냥 왔던 길로 되돌아가기는 너무 허무한 마음이 들어 신선대까지 가기로 하고 출발했다.

문장대너머 화북탐방지원센터에서 올라오는 북사면은 눈이 얼어 길이 미끄러웠다. 하지만 우리는 천왕봉으로 향하는 신선대 방향의 능선길을 따라가니 얼어붙은 눈길은 피할 수 있겠다 싶어 주저 없이 신선대로 향했다. 그런데 이 코스도 군데군데 그늘 길에는 눈이 얼어붙어 길이 매우 미끄러웠다. 역시 겨울 산행은 준비를 철저히 해야 함을 새삼 느끼는 순간이다. 다행히 우리는 그런대로 준비가 되어있어 아이젠이 필요한 사람은 장착을 하고 산행을 하여 그리 위험한 상황은 크게 없었다.

어쨌든 신선대를 경유하길 잘했다. 능선길에서 바라보는 조망도 일품이었지만 하산길에 펼쳐진 넓은 바위의 경업대에서 바라보는 천왕봉과 비로봉 그리고 신선대를 바라보는 조망은 과히 천하절경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비록 천왕봉을 다녀가진 못했지만 속리산이 왜 한국팔경 중의 하나인지 여실히 증명이 되는 순간이다.  


이번 속리산 산행은 참으로 즐거웠다.

젊은이들과 함께할 수 있어 좋았고, 힘이 들었음에도 불구하고 자연에 경탄하고 행복에 젖을 줄 아는 젊고 패기있는 모습이 보기가 더 좋았다.

그래, 가끔 일상이 힘이 들면 우리 함께 산으로 가도록 하자.

언제 어떤 곳에 있든 산은 우리가 올 때까지 기다려 줄 테니 우리가 너무 기다리게 하지 말고 지치고 힘이 들 땐 위로하고 위로 받으러 함께 산에 가도록 하자.

가다보면 깨달음도 지혜도 안 얻어지겠나.


만반의 준비를 한 정보부장, 태릉숙, 그 외 모두 수고 많았고, 특히 임쌤도 함께 동참해 주어 무척 고마웠습니다.

 

 

 

휴대폰 파노라마 사진

 

 

 

 

 

 

 

 

 

 

 

지금부터 12월 초하루, 속리산 사진으로 보는

겨울 산행기가 시작됩니다.

 

 

11월의 마지막 날. 속리산유스타운에서 저녁 만찬을 즐기던 중 우리 일행의 속리산 입성을 환영하는 눈이 펄펄 내리는 모습을 볼 수 있네요. 아마 대구에서 온 우리 팀에겐 첫 눈이 아닐까요.

 

넘의 식당을 우리가 완전 점령해 버렸네요. 유스타운 관계자 여러분 설거지 해 준다고 들어왔으니 오해일랑 마세요. 

 

 

아따, 힘돌이 힘 한 번 제대로 쓰는구만.

 

식사를 끝내고 이 큰 식당에 달랑 우리 식구 10명이 내일 산행을 위한 2차 몸풀기 운동. 목운동, 팔운동 등 가비얍게

 

보은군 내속리면 상판리 속리산유스타운. 2층 왼쪽 2번 째부터 4칸 사용

 

연맹에서 애들과 함께 야영도 많이 오고, 지도자 기본연수도 여러번 왔었죠.

 

법주사 주차장에 주차를 하고 법주사로 가는 상가, 호텔 밀집지역을 지나간다. 아직 시간이 이른지 산객의 발걸음이 뜸하다. 주차료 4,000원 비싸다. 입장료도 1인당 4,000원 이던데.

 

속리산 황토길. 능력자의 사진찍는 폼이 일품이죠. 맨발로 걸어보면 좋으련만 우리는 시간이 없어서 그냥 인증샷만 한 컷

 

문장대 왼쪽 관음봉, 묘봉을 제외하고 나머지 봉들을 다 넘어 와야 했는데 천왕봉을 못 밟아 아쉬움이 컸다. 태릉숙이 대표로 밟았으니 그나마 다행이다.

 

안내도에 코스가 비교적 소상하게 나타나 있다.

 

법주사 매표소. 1인당 4,000원. 10명 4만원 거금이다. 비싸다.

 

태릉숙과 여장군의 포스. 지하여장군이란 닉네임은 여기서 나왔음. 정보부장의 포스가 법주사 일주문을 압도함

 

법주사 일주문 호서제일가람. 중간에 지하여장군의 포스가 느껴집니까?

 

상수원보호저수지. 저수지엔 얼음이 가늘게 얼어있다.

 

위에 보이는 휴게소가 세심정휴게소. 왼쪽 길로 따라 올라가면 문장대, 오른쪽으로 내려가서 올라가면 천왕봉 가는 길. 우리는 왼쪽 문장대로 올라가서 오른쪽 길로 하산했죠. 오른쪽 등로는 신선대휴게소에서 법주사로 하산하는 길

 

뭣고가 뭐꼬

 

용바위골휴게소. 동동주 한 잔 마시고 싶지만 하산 길까지 꾹 눌러 참자.

 

소나무가 바위 정 중앙에 양반다리하고 점잖게 앉아 오가는 산객들을 지켜보고 있다.

 

 

보현재의 할딱고개에 있는 경상도집 휴게소. 어디 있으나 지하여장군의 포스는 좌중을 압도하구만.

 

할딱고개에서 지친 육신을 잠시 풀고 간다. 왼쪽 끄트머리 아이돌숙, 서있는 이 태릉숙, 재간둥이, 지하여장군, 포근이, 능력자

 

잠깐 머물렀다 다시 문장대를 향하여 발길을 재촉한다. 꼬치오뎅부터 다 묵고 싶다.

 

왼쪽 바위의 머리가 순한 괴물 모양의 두상을 하고 있다.

 

아이돌숙과 포근이는 꼬부랑 할머니와 모습이 똑같네. 아마 나도 저런 모습이겠지.

 

문장대에서 천왕봉을 잇는 마루금. 태릉숙이만 비로봉을 너머 천왕봉까지 다녀오고 우리는 아쉽지만 신선대에서 법주사로 내려왔다.

 

요기가 문장대까지 가는 마지막 냉천골휴게소.

 

냉천골휴게소에서 30분 정도만 가면 문장대에 도착한다. 지붕은조릿대로 덮었다.

 

문장대로 향하는 길에 두꺼비 같은 바위가 있네요. 여러분은 봤나요.

 

오르는 등로가 대부분 바위길이라 산을 밟는 촉감은 그리 개운치 않다.

 

능력자와 태릉숙 인증샷. 무거운 사진기 들고 고생 많았습니다.

 

태릉숙은 우리보다 근 30분 이상 먼저 도착해 올라오는 우리를 배웅나왔다가 다시 올라간다. 대단한 경상도 아지매다.

 

문장대 오르기전 암석에 나타난 사람 얼굴 형상의 바위가 보이나요. 여러분은 보셨나요. 눈도 있고 코도 있고 입도 있다. 영락없는 사람 얼굴 모양이다.

 

저기 툭 튀어 나온 큰바위 얼굴이 보이나요. 여러분은 보셨나요.

 

주차장에서 문장대까지 오는데 근 3시간이 소요됨.

 

포근이랑 충청도 문장대 표지석이랑

 

태릉숙 그대가 문장대를 이고 가겠오이다.

 

문장대에서 바라본 주변 산마루. 오늘은 날씨가 맑고 구름 한 점 없어 저멀리 있는 산마루도 한 눈에 들어온다. 이 맛에 정상에 오른다.

 

처음 시작 할 때 닉을 모두 붙여 놓았죠. 닉이 마음에 안드는 사람은 개명 시 500원 

 

화강암을 모반으로 한 기봉이 남자의 근육처럼 불끈 솟아 올라 있다.

 

정상에 올라 산너머 산을 보노라면 무거운 마음이 절로 씻겨 내려간다. 여기서서 대자연이 펼친 웅장한 물결을 보노라면 인간의 허망된 욕심은 한낱 물거품에 불과한 것이 아닐런지.

 

문장대에서 바라보니 신선대, 비로봉, 천왕봉이 한 눈에 들어온다.

 

경상도 상주시 문장대. 오늘 문장대의 하늘이 참 푸르고 맑다.

 

충청도 보은군 문장대, 같은 장소에 문장대 표지석이 두군데 있다. 지역의 이기가 여기서도 팽배해 있는 느낌이다. 이해는 가지만 그리 아름답게 보이진 않는다.

 

따뜻한 육개장에 김장 김치, 기타 등등 이 정도면 만찬이다.

 

점심 먹고 커피도 한 잔 하고 그래도 갖출 것은 다 갖추었다.

 

돌 덩어리가 차곡차곡 포개진 바위 뭉치가 속리산의 위용을 과시하고 있다.

 

문장대 바람이 장난이 아니었지만 바람을 막는 곳에 자리를 차지하고 점심 한 끼 푸근하게 해결했다. 다들 포만감에 행복한 듯. 올라올 때 힘든 여정은 씻은 듯 날아가고... 사람이 다 그렇지. 인생도 그래 살면 된다.

 

문장대에서 신선대로 넘어가는 등로엔 아직까지 쌓인 눈이 얼어 붙어 있다. 겨울산은 능선을 올라서면 아래와 상황이 반전되는 경우가 많다. 그러니 유비무환이랄까 사용하지 않더라도 준비는 철저히 해야 함을 다시 한 번 각성한다. 포근이를 시작으로 완전무장을 하고 가는 폼이 예사롭지 않다.

 

이 친구들 아무래도 아이젠을 해야겠다.

 

북사면 쪽엔 조릿대를 덮을 만큼 적설량이 꽤 된다.

 

신선대까지 약 30분 거리지만 눈이 얼어있고 길이 미끄러우며 오르막내리막이 연이어져 시간이 지체된다.

 

신선대로 가는 길에 멀어지는 문장대를 바라보며

 

결국 아이젠을 착용하고 천천히 걸음을 옮긴다.

 

능선길을 따라 가면 주변의 확 트인 조망이 펼쳐져 십년 묵은 체증이 확 달아나는 느낌이다. 참 하늘이 맑고 푸르다.

 

신선대까지 40분 정도 걸려 도착했다. 해발 1,026m. 신선대에서 천왕봉까지 2.3Km면 가능할 것 같기도 한데 길이 어떨지 모르겠다. 기왕 신선대에서 하산하기로 했으니 천왕봉은 미련없이 포기하고 가자.

 

신선대휴게소. 이 높은 곳에서 장사하는데 산객들은 대부분 자기가 가지고 온 음식물을 섭취하고, 장사는 잘 안되는 것 같아. 수고하시라고 인사하고 내려오는데 멀뚱히 쳐다보기만 하고 답이 없다.

 

신선대휴게소에서 주변 조망을 관찰하고 커피도 한 잔하고 귤도 까먹고 충분히 쉬어간다.

 

신선대에 올라서 바라본 조망

 

경업대로 내려오면서 입석대를 겨냥하며

 

비로봉을 겨냥하면서. 천왕봉을 넘어가면 저 곳들을 다 지나 갔을텐데 못내 아쉬운 생각이 든다.

 

화살표 방향으로 경업대와 법주사로 가란다. 이정표 확실하네요.

 

경업대에서 바라본 바위군에 뿌리내린 소나무 군락

 

경업대의 조망이 워낙 걸출하여 여기서 또 한참을 쉬어간다. 사진도 찍어가며 주변 조망도 즐기며

 

내려가는 철제 데크의 경사가 심하게 급하다. 조심조심.

 

신선대휴게소에서 세심정까지 하나 밖에 없는 금강골휴게소. 미리 내려온 여기 이 친구들은 금강골에서 한참을 기다렸네요.

 

뒤 늦게 내려온 팀과 합류하여 동동주에 감자전을 곁들여 피로를 풀어 본다. 금강골 아지매가 주는 양념없는 맛들은 김치가 제 맛이더구만요.

 

동동주를 한 잔 걸치고 하산하니 발걸음이 가볍나요. 편해 보이네.

 

저 거대한 바위를 가녀린 나뭇가지가 버팀목을 하고 있네요. 나뭇가지 참 대단하네.

 

비로산장

 

세심정휴게소

 

세심정휴게소 계곡의 나뭇가지에 얼음이 꽁꽁 얼어 붙어 있다. 속리산의 물이 참 맑고 깨끗하다.

 

세심정 절구

 

 

올라오면서 본 저수지의 얼음이 내려오면서 보니 더 꽁꽁 얼어 붙어있다. 

 

법주사 팔상전과 범종각. 법주사는 신라 진흥왕 14년(553) 의신조사에 의해 창건되었고, 팔상전은 임진왜란 때 불타 없어진 것을 선조 38년(1605)부터 인조 4년(1626)까지 다시 지은 것이다. 1968년에 해체 수리를 거쳐 지금의 모습을 하고 있다. 내부 기둥과 기둥 사이 4면에 팔상도가 그려져 있어 팔상전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높이 24m. 돌로 낮게 쌓은 정사각형 기단 위에 갑석을 얹었다. 1층과 2층은 앞면 5칸, 옆면 5칸이며, 3층과 4층은 앞면 3칸, 옆면 3칸, 5층은 앞면 2칸, 옆면 2칸으로 되어 있다. 1층부터 4층까지는 공포가 기둥 위에만 있는 주심포 양식이고, 5층은 기둥과 기둥 사이에도 공포를 놓은 다포 양식이다. 지붕 위에는 탑모양의 장식이 있다. 건물 안쪽은 사리를 모시는 공간, 불상과 팔상도를 모시는 공간, 예불를 드리는 공간으로 되어 있다. 현존하는 우리나라의 탑 가운데 가장 높은 건물이며 유일한 목조탑이다.

 

통일호국금동미륵대불은 신라 혜공왕 12년(서기 776년)에 진표율사가 7년간의 노력 끝에 금동미륵대불을 조성해 모셨다한다. 그 때부터 모신 미륵부처님을 조선조 고종 9년(서기 1872년)에 대원군이 경복궁을 축조함에 소요되는 자금마련이라는 구실로 당백전 화폐를 주조하기 위해 불상을 몰수해 갔다고 한다. 일제치하인 1939년에 장석상 당시 주지스님이 대시주 김수곤의 후원 하에 김복진 조각가에게 의뢰하여 시멘트부처님을 조성하던 중 약 80%의 공정상태에서 6.25동란으로 중단되었다가, 1963년 박추담 주지스님 당시, 국가재건최고회의 의장 박정희장군과 이방자여사의 시주로 복원불사가 재개되어 1964년 5월에 시멘트미륵부처님이 완성, 회향되었고, 그 이후 몇 차례의 공사를 거쳐 지금의 통일호국금동미륵대불로 완성되었다고 한다.

 

GB 산악동아리 2회-준비물.hw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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