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천 보현산, 봄꽃 나들이
■ 언제 : 2019. 4. 27.(토)
■ 어디로 : 영천 보현산
■ 누구랑 : 아내랑
흔적
보현산, 근 1년 만의 나들이다.
근래 산을 등한 시 했는데,
그럼에도 보현산만은 두 번이나 갔다.
봄이 살포시 오는 소리를 외면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아랫동네에 비해 보현산의 봄은 생각보다 더디게 온다.
강산에 봄이 올 즈음 으레 난, 남보다 앞서 보현산을 달려가곤 했다.
꽃피는 봄소식에 마음이 급했던 모양이다.
하지만 급한 마음에 달려간 보현산의 봄은 늘 저 아랫동네에 머물러 있고,
갈 때마다 허방 짚고 돌아서기 일쑤였다.
그랬던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그래서 올해는 보현산에 가고 싶은 마음을 최대한 쟁여놓고, 한 주 미루어 갔다.
보현산은 자주 갈 수 없어 한 번 가는 김에 적어도 목표량 이상은 보고 와야 한다.
이 산엔 요즈음 나도바람꽃, 노랑무늬붓꽃, 피나물, 은방울꽃, 보현개별꽃이 한창이리라.
그밖에 별별 꽃들이 많고도 많겠지만 난, 특히 이번 방문 길엔 얘들을 목표로 삼았다.
욕심만큼 다 보고 올 수 있을지 모르겠다. 그건 가봐야 안다.
생각대로 다 볼 수 있다면 운이 좋다고 봐야겠지.
예상대로 나도바람꽃이 지천이다.
보현산 산정의 한 부분을 나도바람꽃이 뒤덮었다.
나도바람꽃 물결이 잔잔한 클래식 선율로 오감을 자극한다.
이런 바람이 좋아 난, 해마다 거르지 않고 여길 찾는다.
외갓집 뒷동산에 온 느낌이다.
하얗게 핀 나도바람꽃 군락만큼 초록빛을 띤 박새 잎 또한 싱그럽기 그지없다.
나도바람꽃이 지면 이 숲은 박새가 점령할 것이다.
박새는 크고 긴 꽃대가 올라올 때면 보기 흉할 정도로 잎이 상해있다.
흉할 정도로 다 큰 모습보다
난, 얘가 연둣빛 기지개를 켤 때 가장 상큼함을 느낀다.
여기 박새는 '참여로'란 얘기가 있어 꽃필 때 다시 가서 확인이 필요함.
나도바람꽃 군락지의 피나물은 아직 물이 오르지 않았다.
노란 꽃잎이 무성한 피나무 군락의 모습 또한 장관인데, 여긴 아직 이른 모양이다.
흰괭이눈이 다문다문 눈을 뜨고 있고 큰개별꽃과 노랑제비꽃은 사방천지 널렸다.
보현개별꽃을 봐야 하는데 얘는 어디 숨었는지 당최 정체를 드러내지 않는다.
다른 뭐가 있는지 가지 않은 길을 더 가봤다.
더 간다고 뭐 특별한 녀석을 보여주진 않았다.
원래 가던 코스대로 타성에 따라 발길을 돌린다.
늘 다니던 길로 갔는데 그 길에서 뜻밖의 아이를 발견했다.
한두 번 간 길이 아니건만 여기선 단 한 번도 보거나 만난 적이 없는 녀석이다.
특히 눈여겨보며 지나다닌 곳이라 오히려 생뚱맞은 생각까지 든다.
이 녀석은 오늘 내가 겨냥했던 노랑무늬붓꽃인데,
여기서 볼 수 있으리라고는 상상도 하지 않았다.
이 녀석을 보려면 시루봉 팔각정까지 가야한다.
거기서 보려고 했는데 여기서 먼저 만났다.
모양도 건강 상태도 아주 양호하다.
지금까지 보현산을 들락거리며 내가 본 노랑무늬붓꽃 중 가장 잘 생겼다.
가다말고 이 녀석과 희희낙락하며 한참을 논다.
정상너머 천문대를 지나면 염소들이 즐겨 노는 아지트가 있다.
피었으려나 했던 천문대의 야생별인 구슬붕이는 아직 이르고,
송아지 같은 염소 한 마리가 혼자 걷는 날 노려보고 있다.
아니 날 노려보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아내는 나랑 같이 다니는 게 지루한지 혼자 후딱 한 바퀴 돌고 차 안에서 쉬고 있다.
지나가는 산객도 나물 뜯는 아지매들도 안 보인다.
이 길엔 오롯이 혼자인 셈이다.
송아지만한 염소 한 마리가 갑자기 두려움으로 다가온다.
날 노려보고 있던 뿔난 염소가 갑자기 후다닥거리며 달려온다.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라 잔뜩 긴장한 채 이 녀석의 행동을 주시하는데,
다행히 그늘진 건물 아래로 가더니 거기 터를 잡고 섰다.
아마 지 녀석이 늘 쉬던 그 자리에 오기 위해 그랬나보다.
녀석, 이동하려면 곱게 갈 일이지 짧은 거리를 뭣 땜에 성난 황소 달리듯 달려와
조용히 꽃길 걷는 사람을 심쿵하게 했는지 가만 생각하니 도리어 화가 난다.
괜히 무안하기도 해 나도 한 번 째려보았더니
이 녀석 가소롭다는 듯 날 본체만체 한다.
지 상대가 아닌 모양이다.
보현산 정상에서 천문대 길을 지나 시루봉으로 가는 길은 산책길이다.
지금 이 길로 가는 길섶은 서양민들레와 양지꽃이 주류를 이루고 있다.
특별한 꽃은 없다만 그래도 노란 꽃이 줄지어 늘어져 가는 길이 지루하진 않다.
이 길의 끝은 시루봉이다.
보현산에 가면 빼먹지 않고 시루봉 앞에 서지만,
여기 서면 늘 막힌 가슴이 뻥 뚫리는 쾌감을 느끼곤 한다.
시루봉은 어디 한 곳 막힘이 없다.
조망 좋고 바람 좋아 시루봉에서 잠깐의 여유를 가져본다.
멀리 팔공산 비로봉을 바라보며 한 시름 내려놓는다.
팔각정 모퉁이 주변엔 노랑무늬붓꽃 자생지가 있다.
노랑무늬붓꽃은 여기서 보려 했는데, 오늘은 예기치 않게 앞서 만났다.
그것도 모양 좋고 뷰(view)도 좋은 곳에서 말이다.
먼저 만난 애가 너무 좋았기에 팔각정 주변의 노랑무늬붓꽃은 그다지 성에 차지 않는다.
예전엔 이 녀석이 감동이었는데 오늘은 그렇지 않다.
이 녀석은 다른 애들과 함께 섞여 자라 도드라진 모양을 찾기 힘들다.
본의 아니게 오늘은 애가 괄시를 받는다.
오늘은 시기를 잘 맞추었는지 노랑무늬붓꽃을 자주 만난다.
평소에 못 보던 곳에서도 봤고,
여기저기 눈에 자주 띄는 것으로 보아 개체 수가 더 늘어난 것 같다.
게다가 무슨 행운인지 천수누림길을 내려오면서는
지금까지 단 한 번도 만나지 못한 노랑무늬붓꽃도 만난다.
보랏빛 꽃잎에 노랑무늬 자수를 놓은 애를 만난 것이다.
애는 오늘 난생 처음 봤고, 이런 애가 있는 줄도 몰랐다.
보현산에 숱하게 왔건만 이 아이를 만난 건 처음이고,
블로그나 카페를 검색했을 때도 보현산에 이런 애가 있다는 소리는 없었다.
앞서 가던 꽃님이 뭔가 열심히 찍고 있기에 무언가 싶어 관심을 갖고 봤더니,
바로 보랏빛 바탕에 노랑 무늬를 한 노랑무늬붓꽃이었던 것이다.
많지도 않았다. 딱 한 송이 있었다.
그 참! 이런 아이도 있었나 싶다.
횡재한 기분이다.
천수누림길 기슭엔 나도바람꽃 군락지에서 못 본 피나물이 산더미처럼 피어 있다.
그러면 그렇지, 지금쯤 피나물도 물이 올랐을 텐데 왜 아직 안 보이나 했다.
은방울꽃은 아직 이르다.
한두 주 쯤 더 있어야 할 것 같다.
보현개별꽃도 찾지 못했다.
비록 욕심낸 만큼 다 본 건 아니지만 그래도 오늘 꽃 탐사는 대만족이다.
이제 보현산은 하루가 멀다고 이 꽃 저 꽃 피어날 거다.
봄꽃 지면 여름꽃 피고, 여름꽃 지면 가을꽃이 피어날 것이다.
당분간 보현산을 자주 들락거려야 할 것 같다.
야생에 피는 꽃이 보란 듯 날 기다리기야 하겠나마는,
그건 내가 알아서 할 일이다. 알아서 가면 될 일이다.
이제 곧 봄은 물러가리라. 허나 이내 여름 오고, 가을이 오니
겨울이 오기 전까진 보현산은 꽃으로 물들어 있을 것이다.
얼마나 갈지 모르겠지만 갈 수 있을 때까지 가볼 참이다.
보현산에 피는 꽃
내, 하나도 놓치지 않으리라.
(흰)괭이눈
박새, 나도바람꽃 등
큰괭이밥
노랑제비꽃
민눈양지꽃
큰개별꽃
노랑제비꽃
큰개별꽃
댓잎현호색
댓잎현호색
댓잎현호색
민눈양지꽃
댓잎현호색
현호색
벌깨덩굴
족두리풀
피나물군락
꿩의바람꽃
민눈양지꽃
벌깨덩굴
고깔제비꽃
큰개별꽃
흰괭이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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