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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길잡이

[여행] 충남 서천, 철새도 쉬어가는 신성리 갈대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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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충남 서천, 철새도 쉬어가는 신성리 갈대밭

한국교직원신문 2013-10-14  

 

 

 

 


하얀 억새와 붉은 갈대가 금강변을 따라 군락을 이루고 있는 서천의 신성리 갈대밭.


너울너울 황금물결이 굽이친다, 가을에 취한다

영화 ‘공동경비구역(JSA)’에서 한국군 이병헌과 북한군 송강호가 처음 조우하는 장면으로 유명해진 충남 서천의 신성리 갈대밭은 하루 중에도 느낌과 풍경이 사뭇 다르다. 아침햇살에 젖어 황금색으로 빛나는 갈대는 가슴을 뭉클하게 하고, 황혼 무렵 역광에 붉게 물든 갈대밭은 사색의 장으로 변신한다. 그래서 갈대는 예로부터 시의 소재로 사랑을 받아왔다.

                ‘언제부턴가 갈대는 속으로
             조용히 울고 있었다

             그런 어느 밤이었을 것이다. 갈대는
             그의 온몸이 흔들리고 있는 것을 알았다

             바람도 달빛도 아닌 것.
             갈대는 저를 흔드는 것이 제 조용한 울음인 것을
             까맣게 몰랐다
             산다는 것은 속으로 이렇게
             조용히 울고 있는 것이란 것을
             그는 몰랐다.’


신경림 시인의 ‘갈대’를 만나려면 벤치 네댓 개가 정겨운 금강 둑길 전망대와 연결된 나무 갑판을 내려가서 갈대밭 속으로 들어가야 한다. 신성리 갈대밭은 길이 1.4㎞, 폭 50~200m로 면적이 여의도공원 두 배에 가깝다. 갈대밭 속에는 미로를 닮은 2㎞ 길이의 산책로도 조성되어 있어 연인들의 밀어가 바람과 갈잎의 속삭임처럼 은근하다. ‘동해물과 백두산이’를 비롯해 ‘추노’ 등 사랑을 주제로 한 영화와 드라마가 신성리 갈대밭을 무대로 삼은 이유다.

갈대는 솜털처럼 부드럽고 하얀 꽃이 푸른 하늘을 배경으로 춤추는 만추를 최고로 꼽는다. 박두진 시인은 갈대가 바람에 흩날리는 모습을 보고 노래했다.


                ‘하얀 꽃 갈대 꽃
             잎에는 피가 묻어
             스스로가 갈긴 칼에
             선혈이 뛰어 흘러
             갈대가 부르짖는 갈대의 절규다’ 


바람이 휩쓸고 지날 때마다 박두진과 신경림의 시가 파편처럼 부서져 허공을 나는 갈대밭 미로에서 연인들은 사랑, 사색, 고독, 행복이란 시어를 주워 가슴에 품는다.


과거 황포돛배 재현한 유람선 운행

신성리 갈대밭을 품고 있는 금강 하류는 고려 말에 화약을 개발한 최무선 장군이 노략질을 하던 왜선 500여 척을 불태운 진포대첩의 현장이자 조선시대에는 충청도와 전라도의 세곡을 실은 조운선이 다니던 강이다. 지금은 금강하굿둑에 가로막혀 배 한 척 드나들 수 없지만 1970년대까지는 소금과 해산물을 실은 황포돛배가 젓갈로 유명한 논산 강경을 거쳐 부여 구드래 나루까지 거슬러 오르기도 했다.

 

황포돛을 단 유람선 두 척이 신성리 갈대밭 앞 금강을 미끄러지고 있다.


당시의 풍경을 재현이라도 하려는 듯 강바람에 서걱거리는 갈대밭 너머로 누런 돛을 펄럭이는 황포돛배 한 척이 호수처럼 잔잔한 금강을 미끄러진다. 지난 5월에 운행을 시작한 황포돛 유람선이다. 신성리 갈대밭 상류의 부여 땅에서 출항한 황포돛 유람선은 강 건너 익산의 곰개(웅포)나루를 에둘러 익산·군산 경계까지 내려간다. 그리고 강을 가로질러 서천으로 되돌아온 후 신성리 갈대밭에 바싹 붙어 강을 거슬러 오른다.


“ 하늘은 맑고 날은 따뜻해 물결 또한 잔잔하다. 파도도 일지 않으니 좌우 산천의 경치가 밝고 아름다워 마을은 빗살처럼 가지런히 정돈되어 있다. 대쑥 등속으로 엮은 대뜸(蓬) 발을 걸고 주위를 바라보니 양도 사이가 아름다운 명승지임이 틀림없다.”
-  ‘을해조행록’ 중에서


조선 고종 때 함열현감 조희백은 12척의 조운선에 성당창(聖堂倉) 세곡을 싣고 1874년 봄에 전북 익산의 성당포구를 출항했다. 그는 익산을 비롯해 금산, 남원 등 호남 여덟 고을에서 거둔 세곡을 싣고 금강과 서해를 거쳐 강화에 이르기까지의 모든 과정을 을해조행록(乙亥漕行錄)이라는 항해일지로 남겼다. 그가 을해조행록에서 극찬한 ‘양도’가 신성리 갈대밭으로 유명한 충남 서천과 강 건너 전북의 익산과 군산이었다.

익산과 군산의 금강변은 1920년대의 간척사업을 통해 농경지로 변했지만 서천의 금강변은 조희백이 극찬했던 옛 모습을 대체로 유지하고 있다. 신성리 갈대밭에서 금강 하구의 서천조류생태전시관까지 이어지는 13㎞ 길이의 둑길은 승용차 두 대가 마주 달릴 정도로 넓은데다 흙먼지가 풀풀 날리는 흙길이라 트레킹을 겸해 금강을 관찰하기에 좋다. 요즘에는 목화처럼 부푼 억새꽃이 하얗게 피어있는 길섶 좌우로 호수처럼 넓은 금강과 황금들판이 둑길을 중심으로 펼쳐져 가을 정취가 듬뿍 묻어난다.


금강자전거길 따라 만나는 철새들

둑길 아래 금강둔치에 조성된 금강자전거길을 달리면 금세 서해안고속도로 금강대교가 지나는 화양면 와초리에 도달한다. 와초리 앞 금강은 가창오리의 휴식처로 시베리아의 혹독한 추위를 피해 10월 중순부터 충남 서산의 천수만으로 이동한 가창오리는 11월 초부터 수천 마리씩 무리를 지어 와초리를 비롯한 금강 하구로 날아든다. 그리고 이곳에서 겨울을 난 후 2월에 시베리아로 되돌아간다.



금강 둑길의 억새가 석양에 붉게 물들고 있다.


금강대교에서 금강하구둑까지 이어지는 둑길 주변의 논은 기러기와 청둥오리의 세상. 추수가 끝난 망월리 논에서 먹이를 찾던 수천 마리의 철새들은 자동차가 질주할 때마다 어지럽게 날아올라 도로를 건넌다. 그리고 호수처럼 잔잔한 금강에서 날개를 접은 채 잔뜩 경계의 눈초리를 보내다 언제 그랬느냐는 듯 V자 편대를 이룬 채 금강의 하늘을 허허롭게 날아오른다.

금강둑에서 내려와 공원으로 단장한 갈대밭을 S자로 달리던 자전거길은 금강하구둑과 인접한 서천조류생태전시관 앞에서 대장정을 마무리한다. 금강하구둑은 21번 국도와 장항선 철도가 통과하는 금강과 서해바다의 경계. 금강에서 폭이 가장 넓은 곳으로 가창오리를 비롯해 청둥오리, 흰빰검둥오리, 흰죽지, 알락오리, 큰고니, 개리 등 온갖 겨울 철새들의 보금자리로 자리 잡았다.

금강하구둑 아래의 바다는 갈매기들의 놀이터이지만 물이 빠지면 기러기와 오리류를 비롯해 민물도요들의 낙원으로 변한다. 주둥이가 뾰족한 민물도요는 오리류에 비해 덩치는 작지만 잿빛이 도는 흰색날개를 퍼덕이며 날아올라 군무를 펼치는 모습이 앙증맞다.


노을 배경으로 가창오리 군무 장관

군산 망해산에서 솟은 태양이 바다와 입맞춤을 하고 금강하구둑의 가로등이 하나 둘 불을 밝히면 와초리 앞 강심에서 휴식을 즐기던 가창오리 떼가 군무를 시작한다. 군무는 가창오리 떼가 먹이활동을 위해 서천과 군산의 들녘으로 이동하기 전에 펼치는 장엄한 의식.


수만 마리의 가창오리가 저녁노을에 붉게 물든 금강의 하늘에서 군무를 펼치고 있다.
가창오리 군무는 이달 말부터 관찰할 수 있다.


수만 마리의 가창오리는 금강대교 아래 갈대섬 주변에서 무서운 기세로 날아오른다. 작은 점이 모이고 흩어지고 다시 모이면서 만들어내는 군무는 세상에서 가장 경이로운 공연. 붉은 노을을 도화지 삼아 3∼4㎞의 대열을 형성한 가창오리 떼가 전투기처럼 빠르게 날아가더니 순식간에 토네이도를 닮은 거대한 회오리 모양을 만드는 등 변신을 거듭한다.

팽이처럼 빠르게 회전하던 회오리가 부메랑으로 변하는데 걸리는 시간은 불과 몇 초. 이어 두 무리로 갈라진 가창오리 떼가 정면으로 부딪치기도 하지만 비행의 고수답게 충돌하는 일 없이 점과 점 사이의 좁은 공간으로 파고들어 다시 거대한 생명체를 만든다. 그리고 암청색으로 짙어진 어둠 속으로 사라진다.

먹구름처럼 하늘을 빈틈없이 까맣게 수놓았던 가창오리 군단이 금강 둑길을 넘어 서천의 논으로 사라진 순간. 신성리 갈대밭의 갈꽃과 금강 둑길의 억새꽃이 비로소 가창오리의 군무가 연출하는 감동과 공포에 몸을 부르르 떤다.
 

박강섭 국민일보 관광전문기자




여 행 수 첩 (지역번호 041)

◆ 가는길
서해안고속도로 서천IC에서 4번 국도∼서천읍∼한산모시관∼유사사거리까지 간다. 유사사거리에서 우회전해 웅포대교 방향 613번 지방도로를 타고 5㎞ 달리면 신성리 갈대밭이다. 서천~공주 고속도로 동서천IC에서 내려 29번 국도를 타면 신성리 갈대밭이 더 가깝다.


◆ 볼거리
- 한산 모시마을 입구에 위치한 한산모시관은 한산세모시의 직조기술을 전승하고 보존하기 위해 만든 박물관. 모시 만드는 과정을 재현한 전통공방, 베틀 등을 전시한 전수교육관, 길쌈놀이의 유래 등을 전시한 저산팔읍길쌈놀이전수관, 특산품판매장 등으로 이루어져 있다. 

-  인근의 한산면 소재지는 한산 오일장(끝자리가 1일과 6일인 날)으로 유명하다. 장터의 ‘한다(韓多)공방’은 대장간 함석집 부채집 짚풀공방 솟대공방 모시공방 등에서 만든 작품들을 모아 전시, 판매하는 상설전시장. 

-  기산면 화산리의 서천식물예술원(951-0020)은 초등학교 교장 출신인 김재완 원장이 50여 년 동안 수집한 도기, 분재, 화폐 등을 전시하는 공간이자 청소년을 위한 체험학습장. 국립수목원에도 없는 푸른노랑무늬붓꽃을 비롯해 700년 수령의 모과나무, 희귀종인 운룡매화, 미국에서 개량해 선풍적 인기를 끌고 있는 우리나라 수목 미스김라일락 등이 볼 만하다. 

-  신성리 갈대밭 상류에 위치한 금강수상레저(832-8804)는 황포돛을 단 유람선 서동호(18톤)와 선화호(17톤)를 오전 8시부터 오후 5시까지 수시로 운항한다. 

-  서천군은 10월 19일부터 11월 10일까지 매주 토요일과 일요일에 신성리 갈대밭과 한산모시관, 조류생태전시관 등을 둘러보는 시티투어를 진행한다.


◆ 먹거리
-  서천은 해산물 축제가 가장 많은 고장으로 싱싱한 제철 해산물을 싼값에 맛볼 수 있다. 3~4월에는 마량포구의 주꾸미, 5월에는 장항 송림의 백합조개와 마량포구의 광어·도미, 그리고 9~10월에는 홍원항의 전어가 맛있다. 서천읍내에 위치한 서천수산물특화시장은 꽃게, 방어, 도미, 갑오징어, 꼴뚜기, 소라, 대합, 바지락 등 서해안 어패류의 총집합 장소. 

-  한산모시관 맞은편에 위치한 한산소곡주는 신라의 교동법주와 고구려의 계명주에 필적하는 백제 소곡주를 생산하는 전통술 명가. 인간문화재 우희열 할머니가 백제 왕실에서 비롯된 전통 제조법을 계승했다. 일본 사케의 원조로도 알려진 한산소곡주는 쌀 우리밀 누룩 등을 넣고 100일 동안 숙성시킨 다음 용수를 사용해 걸러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