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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길잡이

[여행] 경북 경주, 역사와 자연이 공존하는 ‘주상절리’ 해안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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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경북 경주, 역사와 자연이 공존하는 ‘주상절리’ 해안도로

한국교직원신문  2013-11-11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경주 양남의 부채꼴 주상절리가 신비로운 모습을 연출하고 있다. 세계적으로도 희귀한 부채꼴 주상절리는 그동안 군부대 안에 위치해 세상에 뒤늦게 알려졌다.



백성 평화 위해 바다에 잠든 문무대왕 … 그 꿈을 만나다



한국 미술사 연구의 태두로 꼽히는 우현 고유섭 선생은 1940년 발표한 ‘경주기행의 일절(一節)’에서 “경주에 가거든 문무왕의 위적(偉蹟)을 찾으라. 구경거리의 경주로 쏘다니지 말고 문무왕의 정신을 기려 보아라”고 권했다. 살아서 당나라 군사를 몰아내 삼국통일을 완성하고 죽어서 해룡이 되어 나라를 지키겠다고 바다에 묻힌 문무대왕의 호국정신을 새겨보라는 뜻이다.


해룡이 되어 신라를 지키는 문무대왕

 

토함산 자락에서 발원한 대종천이 동해바다와 만나는 경주 양북면에서 양남면의 읍천항을 연결하는 31번 국도는 역사와 자연이 공존하는 신비의 해안도로다. 월성원자력발전소 때문에 내륙으로 우회하는 일부 구간을 제외하고는 쪽빛 동해바다와 어우러진 문무대왕릉과 부채꼴 주상절리가 눈을 황홀하게 한다.

태종 무열왕(김춘추)의 아들인 문무대왕은 삼국통일을 완성한 후 투구와 병기를 경주 덕동호 상류의 암곡동 골짜기에 묻었다고 전해온다. 전쟁으로 얼룩진 역사를 마감하고 병기가 필요 없는 평화시대를 열겠다는 결연한 의지를 천명한 것이다. 백성들은 대왕의 위대한 업적을 기리기 위해 이곳에 절을 짓고 투구를 묻었다는 뜻으로 무장사라 불렀다. 지금은 깨진 비석받침과 삼층석탑 하나가 쓸쓸하게 무장사터(무장사지)를 지키고 있을 뿐이다.

경주 시내에서 보문호와 덕동호를 거쳐 문무대왕릉인 대왕암으로 가는 감포가도(4번 국도)에는 낙엽이 화려했던 가을의 기억을 안고 도로를 뒹굴고 있다. 험준한 추령 고개를 넘고 구절양장 토함산 자락을 달리는 감포가도는 사계절이 아름다운 길로 신라의 왕들이 말을 타고 다니던 ‘대왕의 길’이다. 하지만 몇 해 전 터널이 뚫리고 계곡을 가로지르는 교량이 건설돼 운치는 덜하지만 대왕암을 찾아가기는 편해졌다.

이른 아침에 지게를 진 촌로가 양북 들녘을 휘적휘적 걸어간다. 불현듯 삼국유사와 삼국사기에 기록된 대왕의 유언이 떠오른다. 태평성대를 만들기 위해 병기를 녹여 농구를 만들고 세금을 가볍게 한 대왕이 이제는 죽어 호국용이 되겠노라고 한 유언 말이다. 대왕은 한갓 재물만 허비하고 헛되이 사람을 고되게 한다며 동산처럼 큰 왕릉을 거부했다.


신비로움 간직한 감은사지 3층 석탑

폐허로 변한 감은사의 3층 석탑(사진)은 아름답다 못해 신비롭다. 아들인 신문왕은 대왕의 뒤를 이어 절을 완공하고 부왕의 은혜에 감사한다는 뜻으로 감은사로 명명하고, 용을 본 바닷가 언덕에 이견대를 지었다. 그리고 해룡이 된 대왕이 드나들도록 금당의 계단 아래에 동쪽으로 구멍을 뚫었다.

옛날에는 감은사 아래까지 바닷물이 드나들었다고 한다. 토함산 골짜기에서 흘러내린 대종천이 감은사 앞에서 강폭을 넓혀 밀물 때는 바닷물이 감은사까지 역류한 것이다. 지금은 문전옥답으로 변했지만 대종천 어귀에 위치한 감은사터 아래에는 나루터 흔적이 역력하다.

대종천은 안타까운 사연과 함께 동해로 흘러든다. 대종천의 본래 이름은 동해천으로 고려를 침공한 몽골군은 황룡사를 불태우고 에밀레종보다 4배나 큰 황룡사 대종을 뗏목에 묶어 가다 물속에 빠뜨린다. 대종은 동해 바다로 떠내려가고 파도가 거센 날에는 바다 속에서 종소리가 울렸다고 한다. 그 후 일제강점기 때 동해천은 대종천으로 이름이 바뀌었다. 대동여지도에 동해천으로 표기된 강을 동해천으로 부르면 동해를 일본해로 주장할 수 없기 때문에 일제가 이름을 바꿨다는 것이다.

대왕의 혼이 서린 대왕암 너머 수평선에 여명이 부챗살처럼 펼쳐진다. 대왕이 죽어서도 지키겠다던 동해바다 건너 일본이 독도를 자기네 땅이라고 주장하면서 동해 수평선도 먹구름으로 잔뜩 뒤덮였다. 무심한 갈매기들만 대왕암을 배경으로 날갯짓을 한다.

문무대왕은 신라를 지키기 위해 해룡이 되는 것에 만족하지 않았다. 외삼촌인 저 세상의 김유신 장군과 함께 낮에는 둘이 되고 밤에는 하나가 되는 신비의 대나무를 신라에 선물했다고 한다. 신문왕은 이 대나무로 피리를 만들어 만파식적(萬波息笛)이라 명명하고 월성의 천존고에 보존했다. 피리를 불면 왜적이 물러가고, 질병이 낫고, 가뭄 때 비를 부른다는 신라의 국보이다. 실제로 대종천 주변 산자락에는 대금 재료인 쌍골죽이 무성하게 자라고 있다. 

대왕암과 200m 떨어진 몽돌해변에서는 만파식적에 버금가는 아름다운 소리가 끊임없이 들려온다. 파도가 밀려왔다 나갈 때 몽돌이 쓸리는 해조음이다. 사라진 만파식적 대신 파도와 몽돌로 피리 소리를 대신한다고나 할까.


용암과 세월이 빚은 부채꼴 주상절리

지난해 연말에 첫선을 보인 ‘주상절리 파도소리길’은 문무대왕릉에서 남쪽으로 7㎞를 더 달려야 모습을 드러낸다. ‘주상절리 파도소리길’은 월성원전과 인접한 경주시 양남면 읍천항에서 하서항까지 1.7㎞ 구간에 만들어진 동해안 트레일. 천연기념물 제536호로 지정된 부채꼴 주상절리를 비롯해 유려한 곡선의 해안선과 해송이 이국적인 느낌의 풍경화를 그린다.

주상절리(柱狀節理)는 마그마가 화구로부터 흘러나와 급격히 식을 때 부피가 수축하면서 사이사이에 가뭄으로 갈라진 논바닥처럼 틈이 생기고, 이 틈이 오랜 시간 풍화작용을 받아 단면이 오각형이나 육각형 기둥 모양으로 발달한 돌을 일컫는다.

‘주상절리 파도소리길’의 출발점은 한적한 어촌마을인 읍천항. 월성원전이 아름다운 마을을 조성하기 위해 150여 동의 건물 담벼락에 그린 원색의 벽화가 그림책을 펼쳐 놓은 듯 황홀하다.  바닷가 언덕에 올라서면 ‘느린 우체통’으로 명명된 붉은 우체통의 멋스런 전망대가 나온다. 주상절리는 이곳에서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첫 번째로 만나는 부채꼴 주상절리는 길이 10m가 넘는 육각형 모양의 주상절리 수백 개가 부채꼴 모양으로 펼쳐진 특이한 형태를 자랑한다.

한 송이 해국이 바다를 수놓은 것처럼 보여 ‘동해의 꽃’으로 불리는 부채꼴 주상절리는 국내서 처음 발견된 것으로 세계적으로도 희귀하다. 경주의 주상절리가 그동안 제대로 알려지지 않았던 까닭은 2009년까지 군부대에 위치해 일반인의 출입이 통제된 때문.

여인의 주름치마를 펼쳐놓은 형상의 부채꼴 주상절리는 바람 부는 날에 더욱 환상적이다. 부채꼴 주상절리를 범접한 파도가 하얗게 부서져 중앙의 움푹 팬 웅덩이로 흘러드는 모습은 차라리 에로틱하다. 여기에 동해의 해돋이가 더해져 황금색 바다가 너울거리면 부채꼴 주상절리는 무도회에서 춤을 추는 무희처럼 황홀하다.

부채꼴 주상절리를 관망하는 전망대를 돌아 나와 다시 해변으로 내려서면 운치 있는 흙길이 이어진다. 해변에는 커다란 바위에 뿌리를 내린 작은 해송들이 끈질긴 생명력을 자랑한다. 두 번째로 만나는 돌기둥은 ‘위로 솟은 주상절리’로 해안에서 조금 떨어져 있다. 수백 개 창을 꽂아 놓은 형상의 주상절리가 동해의 용이 되어 나라를 지키겠다고 한 문무왕의 군사들을 연상하게 한다.

세 번째 돌기둥은 와상주상절리로 불리는 ‘누워 있는 주상절리’. 장작을 가지런히 쌓아놓은 것처럼 보이는 주상절리는 해안과 맞붙어 강태공들이 세월을 낚는 장소로 이용된다. 마지막 돌기둥은 거대한 벽화가 그려져 있는 하서항에서 만난다. 몽당연필처럼 짧은 ‘기울어진 주상절리’가 파도에 묻혀 사라졌다 나타나는 모습이 마치 바다 속으로 사라진 신라 왕궁의 주춧돌을 보는 듯하다.

박강섭 국민일보 관광전문기자

 





여 행 수 첩

◆ 가는길
경부고속도로 경주IC에서 보문단지까지 간다. 보문단지에서 4번 지방도를 타고 양북면 소재지까지 간 후 14번 지방도로 갈아타면 감은사지를 만난다. 대종교에서 남쪽 방향 31번 지방도를 타면 문무대왕릉과 읍천항이 차례로 나온다. 

◆ 볼거리
-  벚나무 단풍잎이 거리를 뒹구는 대릉원 담장길은 덕수궁 돌담길을 연상하게 하는 매력 탓에 연인들의 데이트 코스로도 이름 높다. 어둑어둑한 골목길을 벗어나면 시야가 확 트이면서 야간조명으로 한껏 멋을 낸 월성과 첨성대, 그리고 동부사적지구의 고분들이 어둠 속에서 모습을 드러낸다.  

- 안압지<사진1>는 신라 멸망 이후 본래 모습을 잃은 연못에 오리와 기러기가 날아들자 붙인 것으로 본래 이름은 월지(月池). 월지는 동서 200m, 남북 180m, 둘레 1000m로 복원된 3채의 건물이 불을 밝히고 연못에 반영을 드리운 모습은 데칼코마니 기법의 그림을 연상하게 한다.

-  경주의 밤은 보문호수에서 절정을 이룬다. 거울처럼 잔잔한 호수는 오색물감을 풀어놓은 듯 황홀하고 호숫가 산책로는 잠 못 이루는 연인들의 밀어로 은근하다. 터널을 이룬 벚나무 가지에서는 빨갛게 물든 낙엽이 하나 둘 떨어져 산책로를 뒹굴다 연인들의 발끝에서 바스라진다.
 
- 불국사 산책로<사진2>는 단풍과 낙엽이 아름답기로 유명하다. 밤이 시나브로 깊어갈 무렵 경주의 랜드마크인 경주세계문화엑스포공원의 경주타워에서는 화려한 빛의 잔치가 펼쳐진다. 아파트 30층 높이의 경주타워(82m)는 황룡사 9층 목탑을 음각화한 건물.


◆ 먹거리
경주는 맛의 고장이다. 30년 역사의 해장국으로 유명한 팔우정 해장국거리, 한우고기 등 다양한 음식을 맛볼 수 있는 보문음식단지, 보문동의 순두부단지, 산내불고기단지 등이 대표적이다. ‘별채반’은 지역농산물을 재료로 사용하는 경주 향토 음식 브랜드로 6부촌육개장, 곤달비 비빔밥, 가자미 과일소스 단호박, 전복초 등이 주요 메뉴이다.  문무대왕릉 인근에는 자연산 전복으로 탕<사진3>을 끓여 내는 음식점들이 몇 곳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