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공산 동봉 & 비로봉
1. 산행일 : 2012. 7. 14.(토)
2. 누구랑 : 나 홀로 산행
3. 어디로 : 팔공산 치산계곡(수도사) - 동봉 - 석조약사여래입상 - 비로봉 - 석조약
사여래입상 - 치산계곡(수도사)
4. 왜 : 4월의 치산계곡 야생화와 7월의 야생화를 관찰하기 위하여
흔적
어제는 하염없이 비가 내리더니 오늘 아침엔 잠시 비가 그친다. 일기예보는 남부 지방에 오늘 저녁부터 비구름이 다시 몰려 장맛비를 내리 퍼부을 예정이란다. 여기도 당장은 비가 올 것 같지는 않다만 오늘 중으로 장맛비는 거세게 내릴 것 같기도 하다. 우의부터 챙기고 간단하게 등반 채비를 하여 팔공산 치산계곡 쪽을 향한다.
평소에 원거리 산행이 어려울 땐 가까운 팔공산의 이곳저곳을 찾아 다니고 싶은 마음이 많이 들었다. 그래서 이번에는 날씨가 좋지 않아 멀리 갈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니 은해사에서 동봉 방향의 새로운 코스로 가고 싶었다. 그러나 지난 4월 산행에서 뜻하지 않게 접하게 된 치산계곡의 무성한 야생화들이 눈에 아른거려 7월이 익어 가는 지금은 어떤 모습을 띄고 있는지 궁금해 결국 치산계곡으로 방향을 틀었다. 치산계곡은 길이 그리 험하지 않아 기상 상태에 따라 언제든 내려오기 쉬워 오늘 같은 날씨에는 야생화 탐사를 겸한 산행 코스로 최적격이다.
치산계곡으로 들어가는데 지난 4월에는 주차료를 받지 않더니 행락철이라 그런지 주차료 2,000원을 받는다. 주차료를 내고 올라가니 어제 온 종일 비가 왔고, 오늘도 비가 올 것 같은데 캠핑장에는 야영객들로 붐비고 있다. 내친 김에 주차장 주변 풍경부터 살펴보고 슬금슬금 다닐까 하다가 지난 4월 산행에서 보았던 그 놈들이 그 자리에 어떻게 버티고 있는가를 보자면 계곡의 꽤나 깊은 곳까지 가야한다. 어슬렁거릴 여유가 없다. 미련을 버리고 수도사에 주차를 하고 본격적으로 야생화 탐방을 위한 산행을 한다.
공산폭포는 시간을 아끼기 위하여 지나치고, 빨간 현수교 앞에 다다르니 지난번엔 보지 못했던 산수국이 지천으로 널려있다. 가는 내내 하늘말나리가 고개를 빳빳하게 들고 아무도 없는 계곡에 홀로 걷는 산길 나그네를 반갑게 맞이하며 인사를 한다. 시작부터 야생화에 대한 기대감이 솟구친다. 그런데 웬일인지 산기슭의 곳곳에는 멧돼지가 먹이를 구하기 위하여 야생초를 파헤친 흔적이 굉장히 많았다. 그래서인지 지난번 보았던 야생화 군락지는 손상이 된 채 흔적도 없고, 박새는 이리저리 흩어져 나뒹굴고, 잎은 메말라가고 있었다. 박새는 독성이 있어 멧돼지도 건드리지 않을텐데 사람 손을 탓는가 하는 의아심이 들기도 하였다.
좌우지간 이번 산행은 장맛비의 틈새를 이용하여 일부러 다른 곳을 배제하고 치산계곡을 찾았건만 산은 헤쳐진 모습 그대로 보여 줄 뿐이었다. 같은 곳 같은 장소에서 4월과 7월의 변화를 관찰하고 싶었건만 자연에 순응하며 살아가는 야생초는 4월 놈과 7월 놈이 따로 있어 내가 올 때까지 친절하게 기다려 주는 것만은 아니었다. 자연에 무지한 사람이 또 한 가지 더 자연의 생태를 깨닫고 이해를 하는 대목이다.
기왕지사 생각만큼 되지 않았으니 동봉까지 갔다가 내려오기로 마음먹었다. 비가 곧 내릴 것 같지도 않고 해서 지난번 갔던 길과는 조금 달리 방향을 틀어 사람들이 거의 지나지 않는 산길을 택해 올라갔다. 어차피 동봉을 경유하여 돌아 내려오면 될 것 같았기 때문이다. 동봉을 가자면 치산계곡을 따라 가다가 능선길로 접어들어야 쉬운데 나는 계곡 왼쪽 방향으로 길을 잡았다. 이번엔 일부러 그 방향을 선택했는데 아뿔싸 이게 또 엉뚱한 방향으로 길을 인도한다. 산길은 예정 코스에서 방향을 살짝만 틀어버려도 삼천포로 빠짐을 여러번 경험한 바 있었건만 또 같은 실수를 되풀이 한다. 덕분에 가지 않은 길도 다녀보고 밧줄도 없는 암릉도 겁 없이 올라야 했지만 모두가 다니는 팔공산 등산로가 아닌 혼자만 다녀 본 길이 생겨 오히려 새로운 추억거리를 하나 더 만들었다.
어찌어찌해서 팔공산 종주 능선길로 올라서 동봉까지 1Km 정도를 더 걷고, 동봉에서 늦은 점심을 먹었다. 동봉에 오니 그제서야 산행객들이 더러 눈에 들어온다. 동봉을 비롯한 팔공산은 온통 운무에 휩싸여 조망은 전무한 상태고, 갈 길이 바빠진 마음은 조급증만 더 한다. 설상가상 동봉에 걸린 구름은 그 무게를 감당하지 못해 곧 장대 같은 비를 떨어뜨리기 위한 만반의 태세를 갖추고 있다.
동봉에서 수태골 방향으로 가면 치산계곡(수도사)로 내려가는 이정표가 있겠지 싶어 내려가는데 비로봉 쪽으로 등산로가 눈에 들어온다. 직감으로 이 길이다 싶어 그리로 향했더니 헬기장이 나오고 석조약사여래입상이 있다. 동봉을 자주 들락거렸는데 여기에 석조약사여래입상이 있는 줄 오늘 처음 알았다. 이것도 소득이다. 헬기장이 있는 이곳에는 팔공산 등산로 안내판이 있다. 안내판을 보니 이지점에서 내려가는 길이 있는데 숲이 우거져 하산하는 등산로가 눈에 띄지 않는다. 그래서 등산로가 선명하게 잘 이어진 길을 따라 계속가다 보니 이 길이 아닌데 하는 의구심이 생긴다. 반신반의 하면서 가다보니 비로봉이 나왔다. 내친 김에 비로봉까지 올라갔다.
비로봉 주변에도 기린초를 비롯한 바위채송화, 노루오줌 등 각종 야생화가 즐비하게 늘어서 있었다. 예상치 않은 소득을 올리긴 했지만, 아무래도 아까 석조약사여래입상이 있는 곳까지 다시 되돌아가 등산 안내판을 자세하게 들여다봐야 할 것 같았다. 길을 묻고 싶어도 등반을 하는 사람이 눈에 띄지 않으니 그 길 밖에 없다. 헬기장(석조약사여래입상)으로 다시 돌아와서 안내판을 자세히 들여다보니 비로봉과 동봉 사이에 치산계곡으로 내려가는 길이 표식이 되어있다. 결국 숲에 가린 길을 발견하지 못해 급한 시간을 비로봉까지 다녀온 꼴이 됐다. 아까는 자세하게 들여다보지 않아 육감적으로 비로봉 방향으로 가다 보면 하산 길이 나올 것이라 생각하고 계속 이동을 했는데 어설픈 육감이 괜히 갈 길이 바쁜 사람 시간만 빼앗은 꼴이 됐다.
어쨌거나 이제 길을 찾았으니 안심이 된다. 하산길이 거의 6Km다. 빠르게 내려가야 2시간 정도 걸리는 거리다. 이제 막 길을 찾아 안심을 했더니 우려했던 비가 내린다. ‘까마귀 날자 배 떨어진다.’ 더니 과연 그 꼴이 났다. 다행히 많은 양의 비는 아니고 맞아도 될 만큼 내린다. 그러나 지금 그게 문제가 아니다. 내려가는 도중 어느 정도 비가 내릴지는 그 누구도 장담할 수 없는 형편이다.
서둘러 내려가야 했다. 길이 조금만 좋아지면 뛰어내려 가기도 하면서, 단 1분도 지체하지 않고 쉼 없이 내려왔다. 내려오는 도중에 계곡을 이리저리 건너다가 이끼 낀 바위에 미끄러져 계곡 속에 한쪽 허벅지와 엉덩이가 빠지기도 하면서 그렇게 하산했다. 폭우가 쏟아지기라도 했다면 낭패를 볼 뻔 했는데 그나마 다행이었다. 불순한 날씨에 팔공산의 치산계곡을 거의 혼자서 좌충우돌하며 이렇게 혼자서 대여섯 시간을 보냈다. 다소 불안한 산행이었지만 그나마 안전하게 산행을 마쳐 무척 다행스러웠다.
사진 설명은 지난 4월에 팔공산 치산계곡을 탐방하여 내용을 올린 바 있어 이번 산행의 결과물은 중복을 피해 간단하게 피력하고자 한다.
팔공산 비로봉. 대구의 진산이며 팔공산의 최고봉인 비로봉 1192m. 비로봉에는 특별한 정상석이 없는 것이 특이하다. 커다란 바위에 누군가 몹쓸 짓을 해 놓은 팔공산 비로봉이라는 글씨가 새겨져 있고, 그 앞에는 삼각점이 있다.
수도사에서 올라가면서. 녹음이 우거진 계곡 사이로 힘차게 흘러내리는 물줄기를 바라보며 세속의 묵은 때를 씻는다.
빨간 현수교 위에서. 팔공산 치산계곡의 정기가 수도사로 흘러내린다.
이번 산행길도 지난 4월 산행과 같이 능선 방향으로 가지않고, 계곡 방향을 선택했다. 4월에 봤던 야생화와 7월 야생화를 비교 관찰하기 위함이다.
여기가 박새 군락 지점인데 멧돼지의 소행인지, 인간의 짓인지 모두 파헤쳐 놓고, 그나마 자리를 잡고있는 놈들은 모두 잎이 말라가고 있다.
이번 산행은 박새에 핀 꽃을 보고 싶었는데 아쉬움이 많이 남는다.
치산계곡의 끝 지점에서 계곡 우측 오름길인 능선길로 올라 석조약사여래입상(헬기장이 있는 곳)이 있는 곳으로 갔어야 했는데 계곡 좌측 오름길로 올랐더니 길은 있는데 사람이 많이 다닌 길이 아니라 거의 개척 수준으로 동봉 능선길을 찾아야 했다. 그쪽으로 올라가도 그리 큰 차이는 나지 않을 듯하여 올랐는데 막상 오르고 보니 동봉과는 멀리 떨어져 있다. 대신 팔공산 산행에서는 잘 보여주지 않던 관중이 더러더러 나타난다. 치악산과 민주지산 같은 고산준봉 습지에서나 보았는데 팔공산에도 중후한 모습으로 그 자태를 뽐내고 있었다.
관중
방향을 잘못잡아 오르는 내내 어디로 나올 것인가 염려되었는데 팔공산 주능인 긴급구조 072 표식이 있는 곳으로 나왔다. 능선길에 발을 내디뎠으니 그나마 다행스럽다.
층층이 포개져 있는 육중한 바위의 무게감을 바라보며 안도의 한숨을 내쉰다.
074 표식까지 오니 동봉 0.7Km를 가르킨다. 동봉 표식이 있는 이정표를 보니 이리 반가울 수가.
동봉 0.7Km 구간까지 짧은 로프 구간과 철제 계단이 더러 나온다.
074 지점에서 동봉 0.7Km 까지 발걸음이 더디다. 팔공산 종주 시 2번이나 갔던 길인데도 비가 올것 같아 마음이 바쁘다.
시야를 완전 덮어버린 구름 속에 팔공산의 세월을 이고있는 저 소나무를 보라. 무슨 말이 필요하리.
긴급구조 085 지점인 동봉이다. 원점회귀하자면 한티재와 서봉 방향으로 가야한다. 팔공산 종주 시 갓바위로 넘어가던 생각이 애절하다.
동봉은 수태골에서 주로 올라왔는데 치산계곡을 통해 오르니 또 다른 감흥이 밀려온다.
구름 속에 갇혀있는 동봉이 마치 마법같은 분위기를 연출한다.
지금 시간이 14시 34분에 불과한데 운무에 자욱한 팔공산의 시야는 초저녁 분위기를 자아내어 하산 길을 더욱 조급하게 만든다.
동봉에서 수태골로 하산하는 계단을 내려오다보니 계단 끝 지점에서 샛길이 한군데 보인다. 직감적으로 옳지 저쪽이구나 싶어 계속 내려가지 않고 샛길로 빠졌다.
바로 헬기장이 나오고 그 자리엔 팔공산을 드나드는 산길 중생들의 안위를 지켜주는 석조약사여래입상이 우뚝 서 있다.
이 지점에 있는 안내도를 보니 여기에서 치산계곡으로 하산 하는 길이 분명하게 나타나 있다. 안내도 입간판 좌측 바로 옆에 하산길이 있는데 숲에 가려 그걸 찾지 못했다. 해서 가던 방향으로 조금 더 가야 하산 지점이 있나보다 하고 잘 정비된 등산로를 쭉 따라간다. 가다보니 치산계곡 쪽으로 빠지는 길은 나오지 않고 전에 한번 갔던 익숙한 오르막 길이 나온다. 아뿔싸 비로봉으로 올라가는 길이다.
내친김에 비로봉까지 올랐다. 처음 산행 시작할 때 의도와 전혀 무관하게 동봉을 거쳐 비로봉까지 오게 되었다. 갈 길은 멀고 마음은 조급한데 즐길건 다 즐긴다. 어쩌겠나. 피할 수 없으면 즐겨라 했으니. 덕분에 올라오면서 보지 못했던 노루오줌, 기린초, 바위채송화가 예쁘게 꽃 핀 모습도 봤다. 비로봉에 처음 올라온 것은 아들내미가 졸업 1달 앞두고 취업에 성공한 기념으로 딸내미까지 동원하여 처음 올라 온 기억이 난다. 팔공산의 정기를 마시고 가서 그런지 직장생활 초년병치곤 적응을 잘하고 있어 다행스럽다.
비로봉 앞에 있는 돌무더기 제단
하늘과 땅이 맞닿은 비로봉은 예부터 조상님이 국태민안을 기원하며 하늘에 제사를 지내던 성지다.
비로봉에 자리잡고 있는 송신기지탑
비로봉에서 다시 헬기장으로 돌아와 안내도를 자세하게 살피니 분명 이 부근에 치산계곡으로 향하는 길이 표시되어있다. 다시 자세하게 살피니 아뿔싸 안내도 좌측편에 하산 길이 뚜렷하게 나있다. 그걸 봇보다고 그냥 지나쳣다니 참으로 혀를 찰 노릇이다.
헬기장에서 치산계곡 방향으로 300m 쯤 내려오니 지난 4월에 왔던 치산계곡에서 동봉에 이르는 능선길 삼거리 이정표가 나온다. 4월에는 수도사에서 계곡(동봉) 방향으로 올라와서 이 지점까지 왔다가 진불암을 거쳐 갈 목적으로 동봉은 생략하고 수도사(능선길, 템플) 방향으로 하산한 적이 있었다. 오늘은 조금이라도 빨리 내려가야 해서 하산 길이 0.8Km 짧은 계곡 방향으로 틀었다. 하산하는 길이 그리 험하지 않고 비교적 빠르게 내려 갈 수 있으니 그리 판단하는 것이 현명하리라 본다. 그러나 현재까지 그렇게 우려할 정도의 비가 내리지 않고 있기에 그리 판단할 수 있으나 만약 비가 많이 내린다면 다소 시간이 지연되더라도 능선 방향으로 하산해야 한다. 계곡은 금방 물이 불어 등산로를 삼켜버릴 것이고 길은 온데간데 없어져 위험천만한 하산 길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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