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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행방

솔숲 향기 그윽한 사시사철 푸른 의성의 명산 금성산 & 비봉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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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성 명산 금성산과 비봉산 종주 등산

 

▣ 언제 : 2012. 4. 11. 수요일 (19대 총선일)

 

 

 

 

 

어디로

 

  - 금성산 : 530.1m   경북 의성군 금성면 대리, 학미리, 탑리

  - 비봉산 : 671m     경북 의성군 다인면 봉정리

  - 들머리 : 금성산성 주차장(원점회귀 산행)

 

 

 

▣ 등산코스 및 시간 :

 

  금성산성주차장(들머리) → 0.2Km(10분) → 금성산성 → 0.2Km(15분) → 관망대 → 0.2Km(20분) → 병마훈련장 → 0.4Km(20분) → 금성산 정상 → 0.2Km(5분) → 건들바위가는길 → 0.4Km(10분) → 용문정갈림길 → 0.8Km(25분) → 봉수대 → 0.3Km(5분) → 못동골갈림길 → 1.7Km(50분) → 노적봉갈림길 → 0.4Km(10분) → 비봉산갈림길 → 0.9Km(30분) → 비봉산 정상 → 0.6Km (15분) → 여인의 턱 → 0.5Km (15분) → 수정사갈림길 → 1.8Km(40분) → 산불감시초소 → ( 0.8Km 25분 ) → 공원조성지(날머리) → 0.2Km(5분) → 주차장

 

총 거리 및 소요 시간 : 9.6Km, 5시간

 

 

▣ 금성산과 비봉산 개요

 

  경북 의성의 명산인 금성산(金城山ㆍ530.1m)과 비봉산(飛鳳山ㆍ671.8m). 중앙고속도로 또는 국도 28호선을 따라 의성 방면으로 향하며, 차창 밖으로 한눈에 바라 뵈는 이 두 산은 웅장하게 다가온다. 전국 어느 명산에 견주어도 손색없는 의성의 대표 명산으로, 다양한 코스에 육산과 골산으로서의 품성을 모두 갖춘 산행지이다.

금성산은 숱한 전설을 간직하고 있는 국내 최초 사화산으로 태백산맥 남쪽 일부이다. 옛 삼한시대 부족국가인 조문국시대에 조성한 길이 2천730m, 높이 4m의 금성산성을 배경으로 등산로가 개설돼 있으며 산성을 따라가면서 흔들바위, 조문전망암, 아들딸바위, 동굴, 솟대바위 등이 자리하고 있다. 신라시대 의상이 창건한 유서깊은 고찰 수정사와 산운 대감마을 등 산행을 하기에 부족함이 없다.

금성산은 무엇이든 품에 안을 것 같은 넉넉하고 부드러운 능선과 호젓한 송림 사이 이뤄진 후덕한 길이라면, 비봉산은 수백 길 단애를 이룬 절벽 위를 걷는 암릉 길로 솟대바위 등 수직의 절벽과 기암괴석들이 장관이다.

 

금성산과 비봉산 종주코스가 좋은 점은 한둘이 아니다.

첫째, 산 높이와 산행시간이 초행자가 선뜻 나서도 부담이 없다.

둘째, 승용차를 이용한 산행객에게 편리한 원점회귀형 코스다. 무리하다 싶으면 두 개의 산 중에 하나만을 등산하고 수정사로 하산할 수 있으며, 산행 중 언제든 코스를 달리하여 하산할 수 있다.

셋째, 가운데 위치한 수정사를 중심으로 두 산이 풍기는 산세는 완연히 다르다는 점이다. 화성암으로 이뤄진 금성산은 외관과 달리 부드러운 능선길의 운치와 넉넉함을 갖추었으며, 아찔한 비봉산 절벽 위 암릉길은 짜릿함과 빼어난 조망이 좋다.

넷째, 수정사 북쪽 두 산 사이 경계지역 일부만 굴참나무와 소나무로 형성돼 있을 뿐 소나무가 우점하고 있다.

다섯째, 입맛 까다로운 산행객에게도 즐거움을 선사할 볼거리와 즐길거리가 풍성하다.

 

■ 금성산

  금성산에는 흔들바위와 봉수대, 비봉산에는 남근석과 호랑이굴 등이 있다. 조문전망암 아래로 바라보이는 국보 77호 의성탑리오층석탑으로 유명한 탑리리 일대는 옛 조문국 도읍지이자, 문익점의 손자 문승로가 목화를 재파하던 곳이다. 목화와 경덕왕릉, 세계 최대의 공룡 탑리한외룡 발자국 화석지 등을 산 아래에서 만날 수 있으며, 수수농원에 둘러 열기구나 트랙터가 끄는 마차를 타고 밀레의 ‘만종’ 등 대지 위에 그린 그림을 감상하거나 허브 꽃밥, 수수빈대떡, 야외 바비큐와 고구마 구워먹는 재미를 직접 느낄 수 있다.

의성참숯가마빌에 둘러 참숯의 효능을, 탑산약수온천과 빙계온천에서는 온천욕을, 빙계계곡에서는 시원한 바람을 즐길 수도 있다. 들머리 금성산 위에 구름이 감도는 것을 보고 마을을 정하였다는 산운(山雲)마을에서 옛 모습이 그대로 유존되고 있는 고샅풍경과 소우당, 점우당, 운곡당, 학록정사 등 전통 건조물도 감상할 수 있다. 특히 이 마을에 3개나 되는 사당(祠堂)이 있어 매일 새벽 문안드리던 신알례를 비롯 출입례 등을 행하던 효사상과 전통적 조상숭배 사상을 읽을 수 있다.

들머리에 이르기 위해서는 의성읍 남쪽에서 영천방향 28번 국도를 따라 11km가량 금성면소재지 끝 지점에서 유턴하듯 금성면 소재지와 마주하게 된다. 오른편 굴다리를 지나 68번 지방도를 따라 2.2km 정도 진입하면 산운교를 만난다. 도로 왼편 산운생태공원 방면 수정사로 향하는 새로 2차선으로 조성된 길을 따라 주차장까지 향한다. 2.1km 거리이다. 수정사 뒤편에서 산행을 시작하고자 한다면 수정사 주차장까지 차를 끌고 간다.

비봉산을 들머리로 하여 오르는 경우도 있다. 이때에는 주차장에 차를 세워둔 채 수정사 방면으로 걷는다. 용문지 오른편 비치골 방면으로 들머리가 나선다. 그러나 통상 금성산을 들머리로 비봉산으로 돌아나서는 코스를 선택한다. 이때 들머리는 주차장에 차를 세워둔 다음 가에 있는 금성산과 비봉산에 얽혀진 전설을 안내하는 간판 뒤쪽 소나무 샛길이다. 개울 건너는 정자골 가는 길이다.

금성산 품 안으로 접어들자 경사가 초반부터 급하다. 제법 숨이 가쁘다. 가파르게 치닫는 길 힘은 들어도, 짧은 거리여서 벌써 힘에 부치는 느낌이 들기도 하나 순간일 뿐이다. 어떤 이는 16분 만에 정상에 이르렀다 하니 정말 매우 짧은 순간이다.

시골의 밭 가에 있는 돌담 같은 산성 너머로 등산길이 이어진다. 이 석축은 천혜의 요새지를 활용하여 조문국 시대에 산 아래까지 연결하여 축조한 둘레 2천730m, 높이 4.3m의 금성산성이다. 이 산성은 KBS 대하드라마 ‘태조왕건’에서 고려태자 무와 백제 태자들이 겨루는 1차전을 치른 곳이자, 그 이전 신라 제9대 벌휴왕(184~196) 2년(185년)에 군주 구도(仇道)와 구수혜(仇須兮)를 앞세운 신라군과 전투하던 곳이다. 조문국이 최후를 맞은 패전장(敗戰場)인 것이다.

산성을 따라 지그재그로 오르는 길, 450고지에는 관망대가 자리하고 있다. 건너편에는 머리를 풀어헤친 여인 형상의 비봉산, 골짜기 안쪽에는 수정사 남쪽으로는 수정마을과 산운마을 그리고 강물 같은 비닐하우스 군집들이 보인다. 병마훈련장에 도착하니, 과거 조문국이 최후를 맞아 성안에 갇혀 있을 동안 병마를 훈련시키던 500여평 평지는 숲에 덮이고 산정에서 흘러내린 토사로 경사져 있다. 평지였다는 느낌이 들지 않는다.

병마훈련장 오른편은 용문으로 향하는 길이다. 병풍처럼 둘러쳐진 바위절벽이 사과상자를 옆으로 세워 놓은 모양으로 생긴 바위 가운데, 움푹 안으로 파져서 문처럼 생긴 바위가 ‘용문’이다. 용가매골을 두고 인근 주민들은 금성산에서 가장 절경이라고 한다. 그러나 용문 왼편으로 용이 승천했다 하는 용가마가 있어 바위 사이에서는 사시사철 맑은 물이 용출했다고 하나 지금은 찾을 길 없다. 이곳에서 용문정으로 향하는 길은 외지길로 왔던 길로 되돌아서야 한다.

비탈길 솔숲과 암괴 사이 밧줄을 잡는 구간을 지나며 마사토 오르막길을 꾸준하게 오르자 앞이 훤하게 트이며, 헬기장이 나타난다. 금성산 정상이다. 비록 풍수를 바라보는 눈이 트이지 않은 평범한 사람일지라도 여기서는 맑은 기운을 느낄 수 있는데, 산정에 있는 500여평 평지로 이뤄진 산정에 있는 무덤을 쓰고 또 파헤쳤다 하던 큰 웅덩이는 영남에 널리 알려진 풍수일화를 간직한 곳. 부근 최대의 명당터로 알려진 이곳에 매장을 하게 되면, 그 후손은 3년 이내 큰 부자가 되고 인근 마을에는 비가 내리지 않는 등 액운이 겹친다 하는 속발지지(速發之地)의 풍수설로 인한 것이다. 이런 연유로 인한 것인지, 주변 일대에 가뭄이 들면 금성산 정상은 기우제를 지내는 하늘과의 통로가 되곤 하였다.

금성산은 벌판 한가운데 우뚝하니 솟아 가까이 있는 오토산을 비롯 칠곡의 유학산, 의성 최고봉 선암산 등 가까이 또는 멀리 있는 산들을 바라보기에 좋다. 금성산에서 출발하여 비봉산을 거쳐 나오는 가운데 골골마다 전답을 거느리고 있는 99개나 되는 소류지를 바라보게 된다.

대부분 명산은 계곡과 함께 차가운 물과 바람이 있다. 그러나 금성산은 화기가 센 산인 만큼 사시사철 넉넉한 물이 흐르는 계곡은 없다. 대신 가까운 거리에 월척방죽 얼음낚시터로 알려진 16만평 규모의 가음 양지저수지를 비롯하여 골골마다 소재한 소류지에서 음이온을 함유한 바람과 더불어 시원하다. 또한 소나무향 가득한 산이다.

솟을바위 위 소돌방구라 하는 조문전망암 위에 서면 과거 조문국 도읍지 일대가 한눈에 바라다 뵌다. 시원한 조망이 ‘일품’이다. 낙조와 더불어 스러져간 조문국 옛터를 바라보기 좋을 너럭바위이다. 또한 야외로 나온 예술의 전당 ‘수수농원’이 산 아래에 위치하고 있어서 살짝 엿볼 수도 있다. 아래로는 탑리2리 우매마을로 향한다. 탑리 사람들이 아침 운동하는 코스이자, 수차 금성산에 들렀을 경우 달리 선택해 볼 코스다.

 

■ 비봉산

  이름만큼 날렵한 9개의 올망졸망 연이어진 봉우리 따라 춤추듯이 오르내리는 암릉미가 압권이며 조망이 좋다. 또한 아래쪽을 내려다보면 아찔함과 현기증 그리고 산행에 따른 충만감이 전율처럼 다가오는 등 강인함을 느끼게 한다. 마주하고 있으나 그야말로 분위기는 상반된다.

비봉산으로 향하는 길에 오토산 갈림길을 마주한다. 오토산에서 아홉 개의 봉우리로 이뤄진 구봉산, 비봉산 봉황이 놀던 오동산과 조문국 마지막 경덕왕 왕자의 태를 묻던 태실감이 있던 곳으로 전해져오는 태봉산으로 나눠진다.

비봉산으로 오르는 길은 내려설 때의 여유로움과는 달리 치받이 길, 부지런히 발품을 팔자 갑자기 하늘이 환히 열리면서 헬기장이 나타난다. 산발한 여인의 이마에 해당하는 비봉산 정상이다. 산정은 달리 특별할 것 없으나, 선암산 등 주변지역이 한눈에 조망된다.

산정을 뒤로하고 올망졸망 묏부리를 차지하고 있는 바위길을 지나 큼직한 바윗돌이 있는 3봉 솟대바위를 만나게 된다. 3봉에서는 속이 다 후련하게 한 점 막힘도 없다. 사방에서 불어오는 바람과 더불어 ‘유쾌, 상쾌, 통쾌’한 조망을 즐길 수 있다.

고만고만한 길을 지나다 갑자기 뚝 떨어지는 15m쯤 되는 수직의 절벽을 만나게 된다. ‘여인의 턱’에 해당할 이곳을 밧줄을 타고 하강해 보는 긴장감을 제공해 준다. 낭떠러지 밧줄을 타고 내려서며 약간의 긴장감을 느껴 보기도 한다. 그러나 안전을 고려 우회 등산로가 오른쪽으로 조성돼 있어 굳이 밧줄 타고 내려설 필요는 없으나, 암릉 길을 벗어나기 이전 왼편 앞쪽에 있는 전망암에 올라 방금 내려온 암벽 맨 오른쪽 끝단의 남근석을 바라보기를 권한다.

절벽 가 날등으로 깎아 세운 듯 천 길의 낭떠러지 단애가 아찔하고, 벼랑에 뿌리박힌 수백 년 인고의 세월을 느끼게 하는 소나무 아래 절묘하게 자리하고 있는 남근석이 신기하기 그지없다. 너무 많이 우회하여 그대로 스쳐 지나가 버리는 일이 없도록 주의해야 한다. 내리막길에는 수정사 갈림길이 나선다.

요사채의 천 수백 년 된 싸리나무가 역사를 말해주고 있는 수정사, 숲 속에 새가 노래하고 나비가 춤추는 것을 보고 성지라 여겨지었다는 수정사는 깊은 골짜기 울창한 송림 사이 수정과 같은 맑은 물이 흘러내리는 개울가에 지은 아담한 절이다.

수정사는 구봉산에서 전투를 치렀던 의성의진과 1996년 7월 이달의 독립운동가로 선정된 의성 출신 조선말의 김하락 의병장이 경기도 이천에서 단발령에 반발 창의(倡義)한 이래 남하한 이천이병이 연합한 연합의 진이 천마봉(天馬峰) 등에서 비봉산 전투를 치를 당시에 본진을 설치하고 머물렀던 곳이다.

산 아래 들머리 주차장으로 내려서는 길은 포장되어 있다. 내려서는 길가에서는 전설의 ‘아들바위와 딸바위’를 만날 수 있다. 입구 사방댐을 넘으면 금성산 동향에 ‘투구바위’라 하는 또 하나의 암장이 있다.

갈림길을 지나며 암릉길 전망능선이다. 여인의 가슴에 해당할 날등위 오른편으로는 방금 지나온 금성산 능선이 보인다.

601봉과 552봉을 지나며 비봉산을 향해 올라가는 것처럼 보이는 두꺼비 바위 위에 올라서 금성산을 바라보며 쉬다 이른 곳은 산불감시초소. 비봉산 마지막 봉우리이다. 제1전망대라 할 산불감시초소 왼편으로는 가음으로 내려서는 길이며, 통상 하산하는 길은 용문지로 향하는 길이다.

하산하는 길에는 경이로운 관심거리가 또 하나 있다. ‘호랑이굴’이라 하는 동굴로 박쥐가 숙면을 취하는 관계로 정확한 위치를 밝히지는 않는다.

가음면 경의제로 내려서는 길은 용문지로 내려설 경우 급한 경사가 부담될 경우 선택 가능한 코스이다. 마을 입구에서 느티나무와 말채나무, 회나무, 버드나무 등으로 구성된 노거수(老巨樹)들을 만나게 된다.

300여년 이상 된 노거수들과 함께 입석이 있는 노거수 앞에서는 지금도 동제를 지내곤 한다. 용문지로 하산 할 때 길에서 조금 벗어나면 호랑이굴을 만나게 된다. 입구는 매우 좁아서 속이 넓을까 싶다. 그러나 등불을 밝혀 한참 낮은 포복을 하여 들어가면 성인 50여명이 서 있을 수 있는 넓이의 동굴이다.

용문지는 다산과 풍요를 기원하는 뜻에서 인위적으로 조성한 소류지다. 산 위에서는 그 지형이 보인다. 일명 ‘옥샘’이라고 하여 성기형 지세이다. 용문정이라는 제명(題名)에는 용이 솟구쳐 오를 만한 용소(龍沼)가 저수지로 변한 안타까운 사연을 담고 있다.

 

<펌> 2012. 3. 24. 대구일보 김호운 기자 기사 내용

 

 

 

▣ 산행 발자취

 

오늘은 19대 총선일이다. 의성에 있는 금성산과 비봉산을 한 바퀴 휘두르는 종주 등산을 계획했는데 난데없이 비가 내린다. 그것도 산행을 포기하기 딱 좋을 만큼 적당한 양의 비가 내린다. 투표소가 지척에 있어 우산을 쓰고 가서 투표하고 난 후 일기를 가늠해 보고 산행 결정을 하려다 그러면 아무래도 날씨 때문에 포기할 것 같아 아예 산행 준비를 갖춘 채 투표소까지 차로 이동을 했다. 투표를 하고 나왔는데 비가 쉬 그칠 것 같지 않다. 망설임  끝에 목적지까지 이동하다 보면 비가 그칠지도 모른다는 일말의 기대감을 가지고 일단 차를 금성산으로 움직여 무리한 출발을 했다.

 

어라, 금성산에 도착하니 거짓말 같이 비가 그치고 날이 개이기 시작한다. 날이 개이니 산행하기에는 오히려 전화위복이다. 등반을 하기에는 최적의 조건을 갖춘 날씨로 둔갑을 한다. 탁월한 선택에 안도를 하며 금성산과 비봉산을 잇는 종주 등산을 위하여 들머리 주변을 두루두루 살피며 산에 오를 준비를 한다.

 

우리는 금성산성 주차장을 들머리로 시계방향으로 돌아 주차장 길 건너 공원쪽을 날머리로 원점회귀하는 코스를 선택하였다. 금성과 비봉을 찾는 산객들은 아마 이 코스를 대부분 메인코스로 선정하리라 생각한다.

 

금성산성 주차장에서 시작되는 산행은 초입부터 가파른 경사길이 이어진다. 비교적 짧은 거리지만 금성산 정상까지 오르는 길은 결코 쉽지만은 않다. 어제 저녁 과한 음주가 원인인지 그리 어렵지 않고 재미있게 갈 수 있는 코스임에도 숨이 많이 찬다. 다음부터는 산행일 이전에는 가급적 술을 금해야겠다. 오늘은 비가 옴에도 산행을 감행한지라 산행의 의미가 더욱 깊다. 그것도 비오는 날 출발하여 비도 맞지 않고 금성산과 비봉산이란 두 마리 토끼를 얻었으니 그야말로 일거양득이다.

 

금성산과 비봉산!

능선 길로 이어져 있지만 두 산은 극명하게 대립된다. 금성산은 육산과 암반이 고루 섞여있으며 대체적으로 포근하고 넉넉한 것이 마치 어머니 품속 같은 따뜻함을 주고 비봉산은 깍아지른 듯한 단애와 암릉 길의 연속으로 이어진 기암괴석이 장관을 이룬 조망 좋은 길이 활짝 열린다. 특히 금성과 비봉산의 가장 두르러진 특징은 그 무엇보다도 온 산이 솔숲으로 뒤 덮여있다는 것이다. 우리나라 산은 웬만하면 소나무, 참나무 등이 주종을 이루며 산을 푸르게 하고 있지만 이토록 온 산 천지를 소나무가 빽빽하게 산야를 가득채운 경우는 잘 없으리라 여겨진다. 더구나 관상목의 가치가 뛰어난 솔이 여기만한 곳이 어디 있겠나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아름다운 소나무가 많다. 이번 산행은 시작부터 끝날 때까지 산 중에서 내뿜는 그윽한 솔잎 향기를 마시고 그 향을 가슴에 품으며 유유자적하게 솔숲을 헤집고 다녀 여느 산에서 느껴보지 못한 깊은 솔잎 감흥을 느꼈다.

 

솔내음의 감흥이 사라지기 전에 금성과 비봉이 100대 명산에 속해있나 싶어 검색해 보니 금성과 비봉산은 아쉽게도 100대 명산에는 속해있지 않다. 그러나 100대 명산이 아니면 어떠하랴... 적어도 금성과 비봉이 내게 안겨준 기쁨은 100대 명산이 준 기쁨 그 이상이니 더 이상 산을 급수로 계량하는 것은 의미가 없다. 의성이 가진 역사와 전설을 품은 금성산과 비봉산의 진면목은 직접 가서 걸어봐야 안다.

 

 

 

 

 

 

수정사 신라 신문왕 때 의상조사가 창건한 사찰. 금성산과 비봉산 사이의 깊숙한 골짜기에 위치하고 있다. 금성산성 주차장을 들머리로 산행을 하고 비봉산을 둘러 내려오면 수정사를 일부러 찾기란 쉽지 않다. 우리는 공원조성지에서 1.5Km 지점에 있는 수정사부터 둘러보고 다시 주차장으로 내려와 산행을 시작했다.

 

 

 

 

금성산 주차장(들머리)

 

 

주차장이 잘 정비되어 있고 맞은 편에는 잘 다듬어진 공원이 조성되어 있다. 주차장이 들머리고 맞은편 공원쪽이 날머리가 되니 원점회귀로는 아주 적절한 코스라 여겨진다.

 

 

금성산을 처음 오르는 사람은 시작 지점이 어딘지 잘 파악하기 어렵다. 시작은 주차장 바로 옆에 있는 개울을 따라 오른다. 누구나 쉽게 찾아 올라가리라 생각하나 처음 시작점 표시가 없으니 헷갈릴 수 있다.

 

 

금성산을 오르는 초입에서 산괴불주머니를 만난다. 지난 일요일 문경 황장산에 갔을 땐 봉우리만 맺혀 있었는데 금성산에선 활짝 피어있는 모습을 본다.

 

 

 

초입에서 10여분 오르면 금성산성 표식이 나온다.

 

 

금성산성 이 석축은 천혜의 요새지를 활용하여 조문국 시대에 산 아래까지 연결하여 축조한 둘레 2,730m, 높이 4.3m의 금성산성이다. 이 옛 성을 조문성, 금산석성, 금학산 고성이라고도 한다. 산정식[山頂式]과 포곡식[包谷式]을 갖춘 복합식 성이다. 이 산성은 KBS 대하드라마 "태조왕건"에서 고려태자 무와 백제 태자들이 겨루는 1차전을 치룬 곳으로 비정하는 곳이자, 그 이전 신라 제9대 벌휴왕(184~196, 發暉尼師今) 2년(185년)에 군주 구도[仇道]와 구수혜[仇須兮]를 앞세운 신라군과 전투하던 곳이다. 그야말로 조문국이 최후를 맞이한 패전장[敗戰場]인 것이다.

 

금성산성을 따라 관망대 가는 길에

 

 

관망대 산성을 따라 오르는 길, 450고지에는 관망대가 자리하고 있다. 편평하고 솔숲이 무성하여 쉬기에 좋은 이 곳의 산성은 원형이 비교적 잘 보존되고 있다. 이 곳은 조문국 망루가 있던 곳으로 적의 침입을 감시하던 곳이었던 만치 조망이 좋다.  로프구간은 없어졌으며 철제데크로 만들어져 수월하게 오른다.

 

관망대 표지판

 

 

병마훈련장 과거 조문국이 최후를 맞아 성안에 갇혀 있을 동안 병마를 훈련시키던 500여평 평지는 숲에 덮이고 산정에서 흘러내린 토사로 경사져 있다.

 

 

 

흔들바위 가는 길 이정표  정상에서 흔들바위 가는 길로 이동한다.

 

 

금성산 정상의 삼각점

 

 

 

금성산 정상의 너른 터 금성산을 산운마을에서 바라볼 때는 옛 선비들이 갓을 쓰고 앉아있는 갓탕관 형상이라 선비가 많이 나고, 초전[草田]마을에서 쳐다보면 여인이 머리를 풀어헤친 형상이라 청상과부가 많다 전하여 내려오고 있다.

 

 

금성산 정상 표지판에서 건들바위 가는 길로 이동한다.

 

 

금성산(金城山)은, 경상북도 의성군에 있는 해발 531m의 산이다. 사화산으로, 화구는 없으며, 성층화산이다. 백악기 때 분화한 기록이 있는, 우리나라 최초의 화산이다. 화구가 없는 이유는, 용암이 분출하다가 화구를 메워 더 이상 분출하지 못하는 것이다.

 

 

양쪽 돌무더기 사잇길로 가는 길이 건들바위 가는 길이다.

 

 

건들바위까지는 왕복 200m 우리는 가지 않았다.

 

 

정상에서 용문정 갈림길 까지는 약 15분 거리. 여기에서 봉수대 방향으로 향한다.

 

 

용문정 갈림길에서 봉수대까지는 약 30분 거리

 

 

 

 

봉수대에서 못동갈림길로 향함

 

 

금성산 정상에서 비봉산에 이르는 능선은 오르막 내리막 길이 많으나 힘이 들만하면 쉬어 갈 수 있는 솔숲 터널길이 많아 초보자도 어렵지 않게 즐산을 할 수 있다.

 

 

봉수대에서 5분 거리에 못동갈림길 이정표가 나온다.  못동갈림길에서 노적봉갈림길로 이동한다.

 

 

평탄하게 이어진 싱그러운 솔숲 길이  심심찮게 나와 심신의 피로함을  달래준다. 금성에서 비봉으로 이어지는 산 길은 이래서 좋다.

 

 

못동갈림길에서 노적봉갈림길까지 약30분 거리

 

 

 

힘들만 하면 송림숲으로  이어진 터널 길이 나와 피로를 달래 준다.

 

 

노적봉갈림길에서 약 10분 거리에 비봉산갈림길이 나온다. 이제 정상까지는 900m이나 여기서부터 또 힘들여 올라간다.

 

 

비봉산갈림길

 

 

비봉산 정상으로 오르는 길에 하얀 노루귀를 어렵게 발견한다.

 

 

비봉산 정상  비봉산은 대동여지도와 1872년 지방지도에서 금성산[金城山]이라 기록하고 있다. 그러다 산 이름을 현재의 금성산에 내어 놓으면서, 병풍처럼 우뚝하니 솟아있는 산의 형상이 마치 봉황이 날아가는 것과 같다고 하여 명덕리 절골의 남쪽, 도경리 북쪽에 있는 '비봉산'이란 이름을 이곳에 붙였다. 또 다른 유래로는 옛날 세상을 개탄하던 지사와 현인이 비봉산에 은거하고 있을 때, 산 중간에서 봉이 날아갔다 하여 비봉산이라 하였다.

 

 

비봉산 정상에서 바라 본 여인의 턱

 

 

 

양쪽 단애 사이로 보이는  저 푸른 소나무는 인고의 세월을 견디며 우리에게 무엇을 보여주고 싶은것일까? 

 

 

낮은 산이 지형의 경계를 만들고 골마다 저수지와 논.밭이 조성되어 있는 흔치 않은 지형

 

 

여인의 턱. 이름표가 떨어져 뒹굴고 있어 자기 자리에 세워 놓았음. 남근석전망대 방향으로 하산

 

 

또 뒤돌아 온 길을 감회하며

 

 

수정사갈림길. 여인의 턱에서 500m지점

 

 

재미있는 지형으로 구성되어 있다.

 

 

지나온 발걸음을 다시 되새기며.

 

 

솔숲 능선길이 곳곳에 평안하게 이어진다.

 

 

 올괴불나무 올괴불나무는 산지, 계곡, 민가 주변 등산로 등의 양지바르고 약간 습한 곳에서 서식한다. 괴불나무류는 독특한 열매의 특성으로 이름을 얻은 경우라고 한다. 생강나무와 함께 가장 이른 시기에 꽃을 피우며 꽃의 화관은 짧고 5갈래로 갈라진다. 꽃밥주머니는 자주색이며 매우 아름답다. 열매는 구형으로 2개씩 서로 떨어져서 달리며 9~10월에 붉은색으로 익으며 맛이 무척 쓰다.

등산을 하면서 식물 이름을 하나씩 알아 가는 재미가 쏠쏠하다.

 

 

 

 

 

 

 

 

 

또 올라가야 할 산봉우리가 보인다. 이제 점점 힘에 겨워진다.

 

 

저 멀리 봉우리에는 산불감시초소가 보인다.

 

 

사진 솜씨가 유감이다. 연장을 탓해야 하나 솜씨를 탓해야 하나. 보여 주는 만큼 담아 오질 못했으니 아쉬움이 크다.

 

 

실컷 웃어보자. 복이 올라나.

 

 

깍아지른 듯한 단애 사이로 피어난 멋드러진 솔나무는 그야말로 그 자체가 천하걸작이로세.

 

 

깍아지른 듯한 단애 너머 보이는 저 봉우리들을 우리가 거쳐 왔단 말이지.

 

 

산불감시초소 여기서 20여분 내려가면 공원조성지인 날머리고 수정사로 가는 도로가 나온다.

 

 

산불감시초소에서 왔던 길을 뒤돌아 보며 힘들고 즐거웠던 산행의 뒤안길을 되뇌어 본다.

 

 

산불감시초소에서 내려다 본 의성의 평화로운 마을 전경

 

 

산불감시초소에 있는 망원경으로 의성의 구석구석을 자세하게 들여다 볼 수 있습니다.

 

 

산불감시초소에서 하산하는 일부 구간은 잔돌로 인하여 미끄러우니 각별히 조심

 

 

도로에 있는 이정표가 날머리. 도로 건너 좌측 200m 지점이 들머리인 금성산성주차장이다. 주차장에서 계곡을 따라 올라 시계방향으로 한바퀴 돌아 나오면 원점회귀 산행이다. 도로 위 제방이 용문지.

 

 

비봉산 정상에서 날머리까지 3.7Km. 대략 2시간 정도 소요됨

 

 

비봉산 들머리가 되고 금성산에서 한 바퀴 휘돌아 내려오면 종주코스의 날머리가 되며 이 지점에는 공원이 잘 조성되어 있음

 

 

도로 위로 보이는 둑이 용문지. 용문지는 다산과 풍요를 기원하는 뜻에서 인위적으로 조성한 소류지다. 일명 "옥샘"이라고 하여 성기형 지세이다. 용문정이라는 제명[題名]에는 용이 솟구쳐 오를 만한 용소[龍沼]가 저수지로 변한 안타까운 사연을 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