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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행방

병방산 동강할미꽃/동강할배 알현하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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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강할미꽃/동강할배 알현하고 병방산 잠깐




■ 언제 : 2020. 3. 9.(월)

■ 어디로 : 동강생태체험전시관 주변에서 동강할미꽃 탐사 후 아리힐스리조트 스카이워크전망대로 가 동박나무 군락지

   로 향함

   동강생태체험전시관 주소 : 강원 정선군 정선읍 동강로 2908, 지번 : 정선읍 광하리 16-5,  연락처033-560-3470

■ 누구랑 : 아내



흔적

 

지금 작년에 갔던 그 곳에 가면

동강할미꽃과 동강고랭이, 돌단풍을 일시에 볼 수 있을지 모른다.

하지만 요즘 우리나라는 코로나19에 발목 잡혀 자유롭게 어디 나다닐 분위기가 아니다.

 

시기가 시기인 만큼 온 나라에 비상이 걸렸다.

게다가 전염병 확산을 막기 위해 사회적 거리두기동참을 요구하는 상황에

한가롭게 꽃 사진 찍으러 간다는 게 어째 좀 거시기 하다.

 

하지만 집에 있자니 생병이 날 것 같다.

동네 공원과 강가를 산책하기도 하고 코로나가 발생한 후 수목원도 두어 번 다녀왔지만,

지금쯤 동강에 폈을 꽃을 생각하니 안달이 난다.

 

이미 발 빠른 사람들이 백운산 주변에 핀 동강할미꽃을 올려놓았기에,

당장이라도 달려가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다.

 

하지만 우린 대구 사람이다.

아내는 본향이 충청도이긴 하나 나랑 함께 오랜 세월 살았으니 대구 사람이나 다름없다.

요즘 같으면 대구 사람은 어딜 가도 환영 받지 못한다.

 

그래도 가야만 하나? 자문하면서 망설이기도 했지만,

결국 가고픈 마음이 자제력보다 앞서고 만다.

 

나라가 이런 비상시국인데 그래도 꼭 가야겠다면 염치라도 있다면,

자구책이라도 강구해야겠지.

 

동강할미꽃 자생지까진 대구에서 괘 먼 길이다.

승용차로 꼬박 3시간을 달려야하는 먼 거리다.

이 길을 우린 휴게소 한 번 들리지 않고 가기로 했다.

사람과의 접촉을 피하자면 하는 수 없다.

만약 현지에서 사람을 만나면 거리를 두고, 멀찍이 떨어져 다니기로 했다.

 

마스크를 단단히 하고 물, 커피, , 꼬마김밥 등 필요한 양식을 챙겨 길을 나섰다.

식당도 가기 그러니 먹거리를 자체 공수해야만 했다.

그래야만 사람과의 접촉을 원천봉쇄할 수 있다.

 

사회적 거리 두기에 동참은 못할지언정 타 지방으로 길을 나서자면

최소한 기본 범절은 갖추어야 하지 않겠나.

그것도 대구 사람이 움직이는 만큼...

그 참! 쓰다 보니 대구 사람이 뭔 큰 죄나 저지른 것 같다.

 

가볍고 즐거운 마음으로 가야하는데 좀은 무거운 마음으로 길을 나섰다.

논스톱으로 가려했는데 단양휴게소에 차를 한 번 세웠다.

아내가 화장실을 가야했기 때문이다.

아내가 화장실을 간 사이에

, 차에서 내리지도 않고 차 안에서 담배 한 대 피워 물었다.

 

요즈음 담배 피우는 사람은 흡연 장소가 제일 위험한 곳일지도 모른다.

난 코로나에 걸리지 않았다고 확신하지만, 그건 모르는 일이다.

본인도 느끼지 못하는 보균자일 가능성은 있기 때문이다.

 

모르긴 해도 흡연 장소는 바이러스 온상일 가능성이 농후하다.

담배 연기 내뿜을 때 얼마나 많은 바이러스가 튀어 나오겠는가?

그 생각을 하면 흡연 장소에서는 담배 못 피운다.

 

결국 화장실에 다녀온 아내한테 한 소리 들었다.

전자 담배지만 그래도 차 안에서 담배 냄새가 난 모양이다.

냄새에 아주 민감한 사람이라 한 소리 들을 줄 알았다.

 

목적지까지 바로 갔다.

주차장에는 차 한 대 주차되어 있었지만 사람은 보이지 않았다.

길 건너 가까운 동강할미꽃 서식지로 바로 갔다.

거기에도 사람 한 명 없다.

 

그런데 문제는 동강할미가 보이지 않는다.

검색했을 땐 동강할미꽃이 올라왔던데, 여긴 아직 아닌 모양이다.

백운산(白雲山) 백룡동굴 쪽에서 올라온 것을 보고 여기도 폈으려니 생각하고 갔는데,

그게 아니었던 것이다.

 

조양강 물길이 잔잔하다.

아내는 너럭바위에 걸터앉아 동강할미는 잊은 채 아예 망중한을 즐긴다.

나 혼자 분주하게 돌아다닌다.

 

동강할미가 잘 안 보인다.

눈에 띄는 건 겨우 몽우리만 올라온 모습이다.

열흘 정도 지나야 활짝 필 것 같다.

작년보다 보름이나 일찍 왔더니만, 역시 빨랐나보다.

 

동강할미가 활짝 핀 꽃은 안 보였지만, 그래도 포기하지 않고 샅샅이 살폈다.

성의가 괘씸해서인지 바위 틈바구니 사이에 부끄럽게 고개 내민 동강할미가 보였다.

그것도 세 군데서나 발견했다.

 

상태가 만족스럽진 않았지만, 그나마 다행이다.

쟤들이라도 못 봤다면 그 먼 길 달려온 허탈감을 어찌 달랬으랴.

어렵게 만났기에 요리조리 방향을 바꿔가며 마구 찍어댔다.

 

말없이 잔잔하게 흐르는 강물을 바라보며 망중한에 사로잡힌 아내 곁으로 다가갔다.

잠시 먼 길 달려온 피로도 삭일 겸 잔잔하게 흐르는 강물을 응시하며

코로나도 잊고 아직 실감나지 않지만 퇴직한 여운마저 흐르는 강물에 흘려보냈다.

앉은 자리가 무릉도원이라더니 우리가 앉은 자리가 그렇다.

청정지역이라 그런지 코로나는 걱정도 안 된다.

 

작년엔 할미새 한 마리가 왔다 갔다 하더니 오늘은 새 한 마리 보이지 않는다.

마냥 앉아 있을 수도 없고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동강할미꽃 대신 뼝대(석회암 절벽)에 있는 동강고랭이와 돌단풍을 보러갈 참이다.

여기 동강할미꽃 상태가 이렇다면 뼝대에선 동강할미꽃 기대는 거두고 가는 것이

정신 건강에 이롭다.

 

병방산 깍아지른 뼝대에 핀 동강고랭이와 돌단풍 또한 동강할미 못지않다.

작년에 왔을 땐 무지로 인해 동강고랭이를 소홀히 했었다.

이번엔 단단히 보고 갈 요량이다.

 

동강고랭이는 뼝대를 보호라도 하듯 긴 수염을 늘어뜨리며 그 위용을 자랑하고 있었다.

마치 신선이라도 된냥 이 고을을 지키는 수호신처럼 자릴 잡고 있다.

바위 절벽 틈에서 나와 가지런히 흘러내린 잘 정돈된 묵은 줄기가 할아버지 수염을 닮았다.

 

이 할아비는 정선황새풀이라 불리던 동강고랭이다.

한 때 잡초로 취급받은 흔한 사초과 식물이었지만,

·수가 따로 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지금은 귀한 대접을 받고 있다.

동강할미꽃처럼 강원도 일부 골짝에서만 자라는 우리나라 특산종이다.

 

동강고랭이는 동강할미꽃처럼 여러해살이 풀인 묵은 줄기를 달고 새 줄기가 나며,

그 위에 보일 듯 말 듯 자잘한 꽃이 맺힌다.

 

암꽃은 흰색이고 수꽃은 노란색인데,

이창복 교수가 '정선황새풀'로 명명하여 부르던 것을

이영로 박사가 '동강고랭이'로 정식 학계에 등록한 후 동강고랭이로 불리게 되었다.

 

작년에 소홀했던 무지로 이번엔 동강고랭이는 원 없이 관찰했다.

그런데 그 많던 돌단풍은 모두 어디 갔는지 눈에 띄지 않는다.

여기가 돌단풍 밭인데.

 

이 녀석들 어디 갔나 했더니 아직 시기가 이른지

돌 틈새에 뿌릴 박고 고개만 삐죽 내밀고 있다.

이 녀석들도 아직 일렀다.

 

여기 오면 일타삼피를 해야 한다.

동강할미꽃, 동강고랭이, 돌단풍! 모두 다 봐야 한다.

여기까지 오자면 너무 먼 길이기에 띄엄띄엄 올 수 없다.

 

동강할미는 우리 꽃쟁이들 세계에선 BTS(방탄소년단)보다 유명하다.

하지만 내 보기엔 석회암 돌틈 사이를 비집고 꽃을 피운

돌단풍 또한 동강할미꽃에 비해 손색없다.

 

물론 돌단풍은 곳곳에서 쉽게 볼 수 있다는 이점이 있다.

하지만 석회암 절벽에서 자라는 돌단풍은 여기 말고는 잘 없다.

돌단풍도 같은 돌단풍이 아닌 것이다.

 

돌단풍의 뿌리를 보면 마치 고구마 덩이뿌리처럼 굵고 통통하다.

석회암 절벽(뼝대) 틈새서 어떻게 그 굵은 덩이뿌리를 내렸는지 이해가 안 되지만,

이 녀석들 무리를 보아하니 아마도 석회암 절벽을 아작 내고도 남을 기세다.

 

석회암 절벽(뼝대)의 낙석이나 갈라짐은 모르긴 해도

내 상식으로 봐선 이놈들이 주범이라 생각된다.

보기에는 가녀린 녀석들이지만 덩이뿌리를 본다면 이해가 가고도 남을 것이다.

 

먼 길 왔기에 뭔가 아쉬움이 많이 남는다.

아내더러 캠핑장 주변에 주차하고 기다리라고 하고선,

난 강가에 병풍처럼 늘어선 뼝대(절벽)를 따라 수색 작전에 들어갔다.

절벽 아래 혼자 2km쯤 걸었나보다.

 

이 길에도 사람 한 명 없다.

동강할미꽃 찍으러 온 사람이 있을 법도 한데 단 한 명도 없다.

도로변에 있는 못 쓰는 땅을 개간하여 밭 만드는 포크레인 운전자만 두 사람 있다.

사람을 만나지 않아 이렇게 마음 편한 기분은 처음이다.

모두 코로나 때문이다.

 

지성이면 감천이라더니 결국 절벽 틈새에 핀 동강할미꽃을 만났다.

아주 귀하게 세 군데서 만났다.

비록 활짝 피진 않았지만 그래도 얼마나 반갑던지

좀 전에 강가에서 찍던 감과는 사뭇 다른 감정이다.

내가 바랐던 동강할미꽃의 모습이다.

 

만족감은 50%밖에 안 되었지만 기분은 그것으로 충분했다.

아내 따라 갔더라면 여기까지 와 기대했던 이런 모습도 못 보고 그냥 갈 뻔 했다.

모름지기 찾는 자에게 길이 있고, 두드려야 열린다고 하는 말이 실감나는 순간이다.

 

한껏 기분이 좋아진 난 아내더러 여기까지 왔으니 병방산스카이워크로 가자고 했다.

멀지 않은 곳에 있으니 여기까지 온 길이 아까워 그냥 가기 아까웠던 것이다.

의도한 꽃은 50%밖에 만족하지 못 했고 돌단풍조차 제대로 못 봤으니 그도 그럴만했다.

 

병방산스카이워크는 우리가 동강할미꽃 촬영할 때 짚라인을 타고 슝 내려오던 그 곳이었다.

괴성을 지르며 내려오는 모습을 봤을 때도

난 꽃에 취해 거길 가고 싶다는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그런데 이번 방문은 만족도가 낮아 전망대 분위기가 어떤지 한번 가보고 싶었다.

때가 때인지라 영업은 하지 않을 것이고 분위기만이라도 살피고 싶었다.

전망대에서 우리가 동강할미꽃을 찍던 곳을 내려다 볼 수 있는 곳이라

그 장면이 궁금하기도 했다.

 

전망대로 온 아내가 깜짝 놀라 소리친다.

여기 예전에 우리가 왔던 곳이란다.

나 참! 그러고 보니 여긴 언젠가 우리 여섯 부부 모임이 다녀갔던 곳이었다.

 

그럼 우리가 동강할미꽃을 찍었던 곳이

작년에도 그랬고 오늘도 병방산스카이워크 전망대 아래 뼝대에서 놀았다는 얘기 아닌가.

 

! 미련하기도 하다.

그걸 그렇게도 모르고 있었다니 내가 길치는 길치인 모양이다.

한반도 지형으로 유명하다고 입장료 내고 전망대까지 가서 사진도 찍고 했건만,

그걸 그렇게도 몰랐다니 미련 곰탱이 따로 없다.

 

정선아리힐스스카이워크 전망대는 생각대로 영업을 하지 않았다.

여기 오면 스카이워크, 짚와이어, 레일바이크 모두 이용할 수 있다.

취향에 따라 이용하면 된다.

한 장소에서 세 곳 모두 이용할 수 있는 곳도 흔치 않을 텐데

여기 오면 모두 다 이용할 수 있다.

 

지금까지 사람을 만나 유일하게 한 마디 말을 나눈 곳이 뱅뱅이재(병방치)에 있는 매표소다.

여기 매표소에 근무하는 사람인데 데크를 따라 올라가는 산길이 보이기에

입장료를 내고 가야하는지 물어본 게 다다.

입장료는 없단다.

매표소 직원과 나눈 말 그게 지금까지 한 말 다다.

 

뱅뱅이재는 강원도 정선군 정선읍 북실리와 귤암리 사이에 있는 고개다.

다른 이름으로 병방치(兵防峙)라고도 하며 아라리고갯길이라고 한다.

귤암리 쪽에서 부르는 이름은 뱅뱅이재이고, 북실리 쪽에서는 멀구치라 부른다.

옛날 북실리엔 머루덩굴이 많아 멀구라 하였는데,

멀구는 머루의 정선 방언이다.

 

뱅뱅이재라는 이름이 재밌다. 뱅뱅이재란 이름은 그 옛날 이 길을 지나가자면

36굽이 뱅글뱅글 돌면서 걸어내려 가는 길이라고 해서 붙은 이름이라고 한다.

1979년에 귤암리로 가는 우마차길이 개설되기 전까지는 귤암리에서 거주하는 주민이

정선 읍내로 가기 위해선 반드시 이 재를 거쳐 가야 하는 유일한 길이었다.

지금 병방치전망대 자리는 병방산 정상에 위치한 이 고갯길 중간에 설치되어 있다.

여기 설치된 전망대에서 바라보는 한반도 지형의 모습이 압권이다.

 

전망대가 있는 병방산은 층암절벽으로 되어 있는 매우 험준한 산이다.

게다가 산 밑은 강이라 한 명의 병사가 관문을 지키면

천군만마도 물리칠 수 있는 지세라 하여 병방산(兵防山)이라 이름 지었다고 한다.

 

아내와 난 매표소를 지나 데크를 따라 전망대가 보이는 쪽으로 갔다.

오르막 계단이었지만 길지 않은 것 같아 거기까지라도 가고 싶었다.

매점을 지나니 안내판이 있었다.

 

동박나무 전망대 0.8km

동박나무 군락지 1.2km

동강생태체험학습장 3.5km

 

동강생태체험학습장은 우리가 동강할미꽃을 찍기 위해 맨 처음 주차를 했던 곳이다.

체험학습장까지래야 3.5km밖에 안 된다.

전망대까지만 올라가면 더 이상 오르막도 없을 것 같다.

오랜만에 산길 한 번 타고 싶었다. 그런데 그러자니 차량 회수가 문제다.

되돌아오기엔 시간이 역부족이라 가볍게 전망대까지만 다녀오기로 했다.

 

그런데 안내판에 쓰인 글씨가 모두 동백나무도 생강나무도 아닌 동박나무로 표시되어 있다.

내 상식으론 이미 동박나무가 생강나무란 걸 알아챘다만,

혹여 진짜 동박나무란 나무가 따로 있는지 궁금하여 검색해 봤더니

역시 짐작대로 동박나무란 강원도 쪽에서 동백나무를 지칭하는 방언이었다.

 

그렇다면 이 동박나무란 동백나무가 아닌 생강나무를 말함이리라.

강원도 출신 소설가 김유정의 소설 동백꽃에 나오는 동백꽃이 빨간 동백이 아닌

노란 생강나무 꽃임을 아는 사람은 다 알지 않는가.

 

동박나무 전망대 올라가는 길이 800m밖에 되지 않는데 꽤 가파르다.

아내는 잘 올라가더만 난 여전히 쌕쌕거린다.

좌우지간 올라가는 길은 내겐 쥐약이다.

 

입장료 내고 보는 한반도 지형이 제일 잘 보이는 지점인데

돈 안 주고 올라가면서 보자니 한반도 지형이 잘 안 잡힌다.

잎 떨어진 황량한 나뭇가지지만 조망에 장애가 된다.

 

좀처럼 나뭇가지에 가려 모습을 잘 보여주지 않더니만

전망대 넘어서니 또렷이 잘 보여준다.

공짜로 보려면 땀 좀 빼야 된다.

 

전망대까지 힘들게 올라왔으면 동박나무 군락지까지는 그리 멀지 않다.

400m만 더 가면 된다.

그런데 아직 이 동네는 노란 생강나무 꽃이 이르다.

가 봐야 채 꽃망울도 올라오지 않았음이 분명하다.

시간을 너무 지체해 거기까지 가기도 쉽잖다.

오늘 동강 나들이는 여기까지 하는 게 좋겠다.

 

커피도 빵도 꼬마김밥도 다 떨어졌다.

전기자동차 충전도 해야 하고 대구까지 내려가자면 저녁도 먹어야 한다.

충전하는데 시간이 걸리니 그 시간을 이용해 저녁을 해결하면 된다.

 

아침에 올 땐 늦겠지만 집에 와서 저녁 먹을 계획이었는데,

여기저기 구경하다 보니 시간이 너무 지체되었다.

무엇보다 자동차를 충전해야만 했다.

 

충전은 정선군청에서 했다. 작년에도 거기서 했다.

충전하는 동안 적당한 식당을 찾았다.

작년에는 손칼국수를 먹었는데 그 집은 문을 닫았다.

가급적 순두부 같이 팔팔 끓인 음식을 먹고 싶었는데 적당한 곳을 찾기 어렵다.

 

여기도 식당 문 닫은 곳이 많다.

청정지역에 와 코로나가 기승을 부리는 대구 사람이

음식점에 들어가자니 괜히 마음이 쓰인다.

 

곤드레 나물밥집이 두 군데 눈에 띄었다.

한 곳은 문은 열었는데 장사를 하지 않았고,

좀 더 유명한 곳으로 보이는 집은 문은 열렸는데 사람이 없다.

문을 닫은 곳이 많아 어디 먹을 만한 곳도 없다.

 

다시 처음에 갔던 곤드레 나물밥집으로 갔다.

주인장으로 보이는 젊은 사람이 식당 앞을 어슬렁거리다

우릴 보고는 집사람이 장을 보러갔다며,

장사하려면 30분 이상은 걸릴 것 같으니 옆집으로 가보란다.

 

그 집은 문은 열어 놓았는데 사람이 없다고 했더니

자기 식당은 집사람이 와야 영업이 가능하다며

요즘 장사 분위기에 대해 너스레를 떨었다.

 

요즘 코로나 때문에 정선도 장사에 타격을 많이 받는다고 했다.

군청 가까운 곳이라 그나마 공무원들 때문에 몇 그릇 팔지만,

대부분 장사가 안 되어 장사를 하는 사람들도 늦게 문 열고 일찍 문을 닫는 실정이란다.

 

젊은 주인장의 얘기를 듣다보니 마침 집사람이 장을 보고 왔다며 이제 식사가 된단다.

, 그 사람과 얘기할 때 고개만 끄덕이고 가급적 몸으로만 반응했다.

간간히 주고받는 말은 아내가 대신했다.

 

, 괜히 경상도 티를 내기 싫었다.

주문도 미리 아내더러 하라고 해 놓았던 터다.

아내는 충청도 사람이니 경상도 티는 안 낼 수 있다.

 

손님이라고는 우리밖에 없더니 곧 젊은 아가씨 두 명이 들어왔다.

식당에 있는 사람은 우리 둘 그리고 남자 주인과 주방일 보는 그의 아내

젊은 아가씨 손님 두 명, 저녁시간인데 그 큰 식당에 손님은 네 명이 다다.

식당 밖에서부터 주문과 식사 완료하기까지 난 말 한마디 안 했다.

이거 뭐 내가 전염병 환자도 아니고 수배된 범죄자도 아닌데,

코로나가 기승을 부리는 대구에 사는 사람이라 괜히 마음 쓰인다.

 

더욱이 요즘은 전국적으로 사회적 거리 두기동참 호소 기간 아닌가?

동참하지 못한 것이 양심에 찔려 누구 탓도 못하겠다.

하지만 우린 나름대로 최선을 다했다.

 

국가도 직장인도

식당하는 사람도 장사하는 사람도

학생도 공무원도 모두 모두 힘 든다.

 

이제 그만 물러갔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