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덕유는 은빛설원과 함께
가야와 지리의 정기까지 모두 내 주었다.
(향적봉 1,614m)
■ 언제 : 2014. 1. 23.(목)
■ 어디로 : 덕유산 능선 트레킹
■ 누구랑 : 태릉숙, 위풍당당그녀와 함께
■ 어떻게 : KJ 산악회에 참여(참가비 1인 삼만원)
■ 산행 경로 : 설천봉-0.6km-향적봉-0.1km-향적봉대피소-2.1km중봉-1.0km-백암봉(하봉)-2.2km-동엽령-4.2km-안성탐방지원센터
이동 거리 : 9.2km
이동 시간 : 근 5시간(사진, 식사, 휴식 포함)
흔적
지난 19일(일) 선자령을 다녀온 후 헬스장을 기웃거리는 일 외에 크게 하는 일 없이 빈둥거리고 있는데, GB산악동아리 친구들이 덕유산 눈꽃산행을 번개하자고 한다. 그렇지 않아도 지리산 바래봉과 선자령 눈꽃산행이 다소 미진했던 터라 한국 100경 중 3경에 속한다는 덕유산의 설경을 염두에 두며 갈까 말까 미적거리고 있었는데, 잘 됐다 싶어 앞뒤 요량 없이 ‘콜’ 사인을 내렸다. 인원은 나를 포함 3명이고 KJ산악회에 참가비 인당 30,000원을 내고 덜컥 탑승을 해 버렸다.
산악회에서 제공하는 아침을 먹기 위해 거창휴게소에 들어왔다. 그런데 휴게소에 들어오니 거창휴게소 주변의 산이 설경과는 전혀 무관한 풍경을 보이고 있다. 게다가 해가 뜬지 꽤 된지라 거창휴게소 주변이 자랑하는 산자락에 걸린 몽환적인 분위기의 안개마저 모두 걷히고 없다. 8시쯤만 해도 이 일대는 휴게소 건너편의 미녀봉과 오도산 그리고 휴게소 방향의 우두산과 비계산에 서려 있는 짙은 안개가 아침을 쉬 열어주지 않는 곳이다. 특히 벌거벗은 나신의 형태로 드러누워 있는 미녀봉은 부끄러움에 안개가 겉옷을 두른 마냥 온 몸을 덮어 주고 있는 곳이 아니던가? 보아하니 오늘 덕유산의 눈꽃과 상고대는 애당초 기대를 저버려야 맘이 편할 것 같다. 기대가 크면 실망도 큰 법이니 거창 상황을 보면 덕유는 충분히 짐작이 가고도 남는다.
겨울 덕유산은 이로써 두 번째 방문이다. 무주리조트에 당도하니 스키어와 행락객을 비롯한 산객의 발걸음이 분주하다. 이곳은 주 중임에도 아랑 곳 없이 많은 인파로 들끓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곤드라를 타는데 시간이 그리 많이 지체되지 않아 무척 다행스럽다. 사람이 많을 때는 1시간쯤 기다리는 것은 예사라고 하는데 오늘은 스키어들이 생각보다 그렇게 많이 몰리지 않은 모양이다.
곤도라를 타고 올라가면서 보이는 풍경은 그야말로 환상이다. 10여분 정도 타고 올라가며 보는 풍경은 걸으면서 볼 수 없는 또 다른 조망을 안겨주어 시작부터 커다란 즐거움을 선사한다. 스키를 타지 않는 나는 스키어들이 활강하는 모습에 함께 즐거운 마음이 들 뿐이나 동행한 젊은 친구들은 분위기에 젖어 스키어가 다된 기분에 빠져든다. 은빛 설원의 스키장을 질주하는 역동적인 모습에 당장이라도 함께하고픈 마음이 드는가보다.
곤도라를 타고 10여분 올라가며 걸어면서 볼 수 없는 또 다른 풍경을 즐기다보니 눈 깜박할 사이에 설천봉에 다다른다. 설천봉을 뒤덮은 백설 같은 설경과 스키어가 오가는 모습은 스키장을 전혀 찾은 적이 없는 내겐 다소 이국적인 풍경으로 다가오긴 했지만, 우리는 눈앞에 펼쳐진 광경을 뒤로하고 곧 설천봉에서 향적봉을 향하여 발걸음을 옮긴다. 앞으로 우리가 갈 향적봉과 중봉 그리고 백암봉과 동엽령을 거쳐 안성으로 이어지는 길을 기대하며 덕유의 능선길로 힘찬 발걸음을 내딛는 순간이다.
오늘 덕유의 능선길은 산행이라기보다는 지난번 선자령과 마찬가지로 트레킹 코스라고 보는 것이 맞을 것 같다. 해발 고도 1,614m에 달하는 무척 높은 산이지만, 곤도라를 이용해 설천봉까지 왔으니 설천봉에서 동엽령까지는 내가 가장 선호하는 완만한 능선길이 주어진다. 간혹 오르내리기는 해도 경사가 심하지 않아 산행 거리 근 10km의 짧지 않은 길이지만, 충분히 여유를 가지고 즐길 수 있는 코스라고 봐도 무방하다.
오늘 덕유산은 눈꽃이나 상고대는 볼품없어도 녹지 않고 적설된 하얀 눈은 충분하다. 오히려 19일 선자령 갔을 때보다 쌓여있는 눈의 양은 더 깊고 많다. 백암봉에서 동엽령으로 가는 길은 아직 1m 깊이가 넘는 눈이 적재되어 있기도 했다. 상고대가 펼쳐져 있었더라면 금상첨화였겠지만, 그 기대는 거창휴게소 쯤 왔을 때 이미 마음을 비웠기 때문에 지금 이 상황을 그대로 즐기는 것 또한 충분한 위로가 된다. 나뭇가지에 매달려 핀 눈꽃이나 환상적인 상고대가 아니라도 산을 오르다보면 어떤 상황이든지 산은 그 자체로 만족감을 부여해 주기 때문이다. 그것이 바로 산이 지니고 있는 매력이 아닐까 한다.
설천봉에서 불과 20여분만 올라오면 향적봉에 다다른다. 오늘 날씨가 얼마나 맑고 푸른지 향적봉에 서니 가야산일대와 거창 일원의 산군이 선명하게 그 모습을 드러낸다. 그뿐만이 아니다. 향적봉에서 이미 남덕유산과 서봉이 확연하게 제 모습을 보일뿐 아니라 그 너머에 있는 지리산 천왕봉과 반야봉을 잇는 지리산 주능선이 구름 위로 솟구쳐 그 위용을 자랑한다. 지리산 산군은 향적봉을 지나 중봉에 다다르면 그 위용이 더욱 두드러지게 드러난다. 덕유산에서 쉽게 볼 수 있는 풍경이 아니다.
눈꽃과 상고대 그리고 청명한 날씨는 겨울산이 주는 환상의 조합이다. 쉽지 않은 만큼 이를 기대한다는 것은 그만큼 쉬운 일이 아니다. 그렇지만 오늘 비록 덕유산의 환상적인 눈꽃은 볼 수 없었지만, 그래도 날씨가 워낙 청명하여 덕유산에서 조망할 수 있는 모든 산을 볼 수 있어 오히려 행운이라고 할 수 있다. 여름이면 시도 때도 없이 내리는 비와 겨울이면 늘 눈이 내리는 덕유산에서 이런 조망을 기대한다는 것은 실로 쉽지 않은 경우라 더 그런 생각이 든다. 정말 아쉬움이 컸던 것은 이 일대의 산을 알지 못해 조망이 좋은 오늘 같은 날, 눈에 보이는 산 이름을 모두 불러 주지 못했음이 오히려 더 큰 안타까움으로 다가왔다.
중봉에 서면 지나온 향적봉과 계속 진행할 백암봉으로 가는 능선길이 한 눈에 들어온다. 겨울산이 주는 만족감은 여기에 있다. 마치 아름다운 여인이 감추어진 속살을 살며시 드러내듯 봄, 여름, 가을 내내 덮고 있던 거추장스러운 옷을 한 겹씩 벗어 던지고, 마침내 어여쁜 S라인의 아름다운 능선을 활짝 열어준다. 향적봉보다 중봉에 서면 그 길이 더욱 선명하게 나타난다. 겨울산의 묘미를 한껏 즐기는 순간이다.
중봉에서 백암봉을 거쳐 동엽령으로 가는 길은 1시간 30분 정도 걸린다. 짧지 않은 길이지만 눈밭을 걸으며 확 트인 조망을 즐기면서 걷다보니 지루할 틈이 없다. 더구나 나는 뒤쳐져 가면서도 이름을 알고 있는 나무나 알고 싶은 이름의 나무를 촬영하면서 가노라니 가는 길도 더디고 마음은 늘 쫓긴다. 언제부터인가 산에 다니다보면 내가 다니고 있는 산에는 어떤 종류의 야생화와 어떤 종류의 나무가 자생하고 있는지 궁금해진다. 아직 알아가는 단계라 많이 부족하지만, 그래도 관심을 두지 않았을 때에 비하면 지금은 장족의 발전을 하고 있음은 분명하다. 관심을 가지고 하나둘 알아가는 재미가 쏠쏠하다.
향적봉에서 중봉을 거쳐 백암봉을 지나면서 남덕유산과 지리산의 조망을 즐기고 또 지나온 길을 다시 뒤돌아보면서 천천히 볼 것 다보고 찍을 것 다 찍으며 슬렁슬렁 오다보니 어느 틈에 동엽령에 다다른다. 동엽령에서 모두 챙겨온 음식을 꺼내 늦은 점심을 먹고 4.2km에 달하는 1시간 30분 정도 걸리는 안성탐방센터로 하산길을 서두른다. 안성으로 가는 길은 눈이 많이 덮인 내리막길이 줄곧 이어지니 조심스럽게 내려가야 한다.
늘 그렇지만 하산길은 참으로 지루하다. 4.2km나 되는 긴 길을 내려가야 하니 지루 할만도 하다. 야생화가 많은 계절이면 어떤 종이 분포하는지 눈여겨보면서 가노라면 지루함을 달랠 수 있는데 겨울이 길고 눈이 깊게 덮인 계절에는 별로 볼거리가 마땅치 않다. 눈에 띄는 건 봐도 이름도 잘 모르는 헐벗은 나무밖에 없다. 그런데 다행하게도 덕유산국립공원의 나무는 안성지구로 내려갈수록 나무에 이름표가 많이 매달려 있다. 마치 교실에 이름표를 달고 있는 착한 녀석들처럼 참으로 반갑기 짝이 없다.
산행을 다니다보면 들꽃이나 나무의 이름을 알고 싶은데 워낙 많은 개체가 식생 하는지라 좁은 식견으로는 도무지 그 이름을 알 재간이 없다. 그럴 때마다 나는 사람이 많이 찾는 산은 식물의 이름표 정도는 붙어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자주한다. 그래서 나는 산을 다니면서 이름표가 붙어 있는 산이 있으면 얼마나 고마운지 모른다. 나무에 달려있는 명찰은 이름을 알고 싶어 하는 산객에게 참말로 반갑고 고마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고맙게도 안성지구로 내려가는 길의 웬만한 나무에는 이름표가 붙어있다. 한 번 보고 모두 알 수 없는 노릇이지만, 관심을 가지고 자주 대하다보면 저절로 익혀질 것이다. 모두 그 놈이 그 놈 같지만 오늘도 사진을 찍어가며 관심을 가지다보니 헷갈리거나 모르고 지나갔던 나무 중에 물박달나무와 물푸레나무, 서어나무, 쪽동백나무는 수피를 보고도 구분을 할 수 있을 것 같다. 이렇게 서두르지 않고 산에서 자라는 식물에 관심을 갖다보면 산은 나에게 더욱 친근하게 손을 내밀어 줄 것이다.
안성지구로 하산하는 길은 미끄러운 눈밭을 걸으며 그렇게 내려왔다. 아는 놈이 있을 때는 젊은 친구들한테 아는 척하며 설명까지 곁들여 준다. 그렇게 하산하니 하산길이 지겹지 않다. 그러다보니 어느 틈에 짧지 않은 먼 길을 다 왔는지 안성탐방지원센터 앞에 우리가 타고 온 버스가 대기하고 있다. 오늘 하루는 덕유산에서 이렇게 즐겁고 보람 있는 시간을 보냈다. 젊은 친구들 덕에 덕유산에서 보낸 하루가 어린아이처럼 마냥 즐거운 하루였다.
덕유산 향적봉에서 바라본 조망. 스마트폰 파노라마.
사진으로 보는 『설천봉 - 향적봉 - 중봉 - 백암봉 - 동엽령 - 안성탐방센터』로 가는 능선 트레킹
무주리조트. 성서홈플러스에서 8시 30분 경에 출발하여 목적지까지 2시간 30분 정도 소요(거창휴게소에서 아침 식사 시간 포함)
현재 기온은 영하 0.6도에 불과하다. 은빛설원을 누비고 다니는 스키어 무리가 장난이 아니다.
그래도 슬로프는 비교적 한산하다. 그래서 그런지 곤도라를 탈 때 생각보다 시간은 덜 지체되었다.
곤도라를 타고 설천봉에 오니 하늘은 맑고 푸르고 바람마저 잔잔하다. 눈꽃이 만발했다면 금상첨화였을텐데 모두를 충족시킨다는 것은 그저 욕심에 불과할 것이다.
설천봉의 상징 '상제루'. 하늘을 보라. 오늘 덕유는 인근 일대의 모든 산군을 보여줄 만반의 준비를 갖추고 있다.
설천봉에서 향적봉으로 가는 초입부터 고사목이 파란 하늘과 잘 어우러져 있다.
벌거벗은 산그리메와 무주 일원
설천봉에 있는 설천이동탐방지원센터. 여기서부터 향적봉으로 오른다. 향적봉까지 약 20여분 소요. 자, 젊은 친구들 함께 출발해볼까요.
조금 올라가다가 팔가정이 있는 상제루와 설천봉 전경을 다시 들여다본다.
향적봉으로 가는 계단에 올라서면 바로 나오는 주목. 주목은 고사해도 천년을 작품 속의 그림으로 버틴다. 여기에 눈꽃이 주렁주렁 매달려 있어야 하는데~~~ 올해는 일부러 눈꽃으로 유명한 곳을 찾아다녔는데 어째 핀트가 잘 안맞다.
그래도 날씨가 청명하여 조망권은 두드러지게 좋다. 덕유가 주는 조망은 귀한 편인데~~~
심지는 고사했는데 바깥쪽을 다시 튼실하게 살아났네요.~~~
예상은 하고 기대치는 버렸지만, 저런 그림을 보면 안타까운 마음이 절로 든다. 저기에 하얀 눈이 덕지덕지 붙어 있다면 그야말로 환상일텐데...
설천봉에서 향적봉까지가 설천봉에서 동엽령까지 가는 가장 긴 오르막길, 겨우 20분 정도 걸으면 됩니다. 동엽령에서 안성탐방센터까지는 4.2km에 달하는 경사가 있는 내리막길 입니다.
오늘 향적봉의 하늘은 푸르고 푸르다. 설화와 상고대만 좋았다면 설산산행의 3박자를 모두 갖추는 것을 참으로 아쉽다. 향적봉 정상엔 사람이 많아 편히 사진 한 장 찍기 어렵다. 사람을 피해 기다리다 지쳐 오가는 사람이 적을 때 한 장 건져본다.
위풍이 대단하네요~~~ 덕유를 한 손에 거머 쥐겠오이다.
뭐하노~~~ 언제 찍었지. 인물 사진은 카메라 앞에서 경직된 모습으로 찍는 것 보단 본인도 모르는 사이에 찍히는 사진이 일반적으로 더 좋은 법이지^^^
아직 30~40대 라고 해도 믿겠네^^^ 욕 엄청 먹을라나~~~
오늘 덕유의 하늘은 한정없이 맑고 푸르러서 더욱 좋다. 엄동설한에 덕유를 산행하면서 이렇게 맑고 화창한 날씨를 만나다니 크나큰 행운이다.
저 자리에 저런 모양으로 굳어서 돌이 되고 싶다. 그래서 덕유산을 찾는 이들의 수호신이 될까보다.
산에만 오면 고기가 물 만난 듯 날아다니는 태릉숙과 산에만 오면 늘 어정쩡한 늘보
그래도 산이 좋아 틈만 나면 산을 찾아 다닌다.
세 명이 함께하니 덕유의 청명한 겨울 하늘이 더욱 돋보이네요.
같이 어울리도 괜찮겠네^^^. 욕비나?
그래 내가 빠지는 게 그림이 좋네~~~
향적봉에 올라 설천봉과 슬로프를 배경으로
사람이 비켜 줄 때를 기다려도 당체 비키지를 않네요. 그러나마 두 팔을 벌리고 하늘을 품으시오.
오른쪽 봉긋 솟아 오른 봉우리가 아마 가야산이지 싶으네.
제일 뒤에 보이는 산그리메가 지리산일 것 같네요.
이제 향적봉을 떠나기 전에 마지막으로 설천봉 전경을 다시 한 번 들여다 보고 길을 떠난다.
향적봉에서 향적봉대피소로 내려가는 길. 저 멀리 지리산이 운해 위로 솟구쳐 그 위용을 자랑하고 있다.
향적봉에 있는 이정목. 향적봉에서 0.1km 떨어져 있는 향적봉대피소를 거쳐 4.3km 지점에 있는 동엽령으로 향한다.
향적봉에 있는 덕유산 전경 안내판. 내친김에 남덕유산까지 가고 싶으나 향적봉에서 14.8km나 되니 너무 멀다.
향적봉 풍경. 젊은 우리 친구가 안내판 앞에 있네요. 오늘은 향적봉을 찾은 산객이 그나마 적은 편이다.
향적봉에서 대피소로 내려가는 길. 그야말로 말 그대로 은빛설원일세.
향적봉대피소를 지나며 향적봉의 하늘을 다시 가슴에 담는다.
오늘 향적봉의 하늘은 막힌 가슴이 탁 트일 만큼 싱그럽기 그지없다. 겨울날 향적봉에 서서 이런 하늘을 보기가 쉽지 않을터인데 오늘은 날씨 덕을 톡톡이 본다.
설천봉에서 향적봉을 오를 때도 고사목인 주목이 더러 있었지만, 향적봉대피소부터는 아직 살아있는 주목과 고사목을 심심찮게 본다.
잘 어울리는 그림일세...
위풍당당한 보안실장도 잘 어울리는구려.
주목은 고사목이 되어서도 그 위용은 변함이 없다. 저기에 눈꽃이 주렁주렁 매달려 있었다면 금상첨화인 것을^^^
속이 텅 빈 고사목일지언정 이대로 천 년을 가려나.
사진 한 장 얻을려고 저리 정성을 다하는데 난, 그냥 대충 꾹꾹 눌러댄다. 똑딱이나 스마트폰이라도 요즘 웬만한 성능은 발휘하니 산행을 할 때는 똑딱이가 최고다.
잎 떨어진 빈 몸뚱어리일지언정 파란 하늘을 배경으로 담아보니 그 역시 일품일세.
이름이 무엇인지 모르겠으나 저 튼실한 나무가 덕유의 강한 바람을 이기지 못해 저리 처참하게 누워있다. 바라보는 내 가슴이 시리다.
주목은 고사해도 작품으로는 천 년을 그린다.
향적봉을 지나 중봉으로 가는 길. 이미지 처리를 하였더니 청명한 하늘 아래 덕유의 겨울이 더욱 스산하게 나타난다.
죽어서도 이토록 장엄하다니 이 어찌 말로 표현을 다 할 수 있겠나. 그저 자연의 숭고함에 고개를 떨굴 뿐이다.
지난 번 우리 부부와 성부장 아내 정부장을 대동하고 왔을 때는 삼봉지원센터에서 백련사를 거쳐 설천봉으로 가 곤도라를 타고 내려 간 적이 있었다. 그 길에는 고사목이 손가락으로 셀 수 있을 정도로 극소수 였는데 중봉으로 가는 길에는 다양한 형태를 한 고사목을 아주 많이 본다.
이 친구는 마치 작가의 손을 거쳐 인위적으로 표현한 듯 하네요.
삿갓봉과 남덕유산으로 가는 방향. 저 멀리 지리산이 보이네요.
덕유산 중봉 하늘 밑
표지석은 달리 없고 대신 표지목이 서 있다.
여기는 중봉. 향적봉에서 1.1km 지점. 이제 3.2km 지점의 동엽령으로 가야한다.
겨울산은 속과 길을 훤히 내 주어 좋다. 백암봉으로 가는 능선길.
줌을 당겨 지리산의 실체를 더욱 가깝게 본다. 지리산은 아직 종주는 못했지만, 중산리와 백무동 그리고 뱀사골과 바래봉 코스를 이 느린 두 발로 걸은 느낌이 아련하다. 덕유에서 지리를 바라보니 그 마음이 더욱 애닳게 다가온다.
오늘 온종일 운해 위로 솟아있는 지리의 주능선이 시선을 사로잡는다. 저 고개 만댕이는 백암봉이렷다.
어째 하얀 설원보다 잎 떨어진 삭막한 산능선의 분위기가 더욱 겨울을 실감나게 한다.
여름에 왔더라면 야생화 무리 천지일 듯...
쌓인 눈이 녹지 않고 얼어 붙어 햇빛에 반사되어 마치 보석 같이 반짝거린다. 보석처럼 반짝이는 빛까지 찍고 싶었는데 욕심 같이 찍히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반짝이는 모습을 알아 볼 수는 있게 찍힌 것 같네요. 지리산에서 보던 '수리취'의 모습이 눈밭에서도 그 모양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 자연이 주는 강인한 생명력을 다시 한 번 느끼는 순간이다.
산객의 발걸음이 워낙 잦은 곳이라 등로는 트였으나 주변은 엄청난 양의 눈이 녹지 않고 아직 그대로 쌓여 있다.
백암봉(하봉). 설천봉에서 1시간 30분 가량 걸려 백암봉까지 왔다.
백암봉은 향적봉에서 2.1km 지점. 우리는 동엽령으로 가서 안성탐방센터로 하산하도록 되어있다.
동엽령으로 넘어가는 능선과 운해 위의 지리는 오늘 온종일 함께한다.
겨울산의 진면목
여기 수리취는 노란 꽃망울을 머금고 '내가 바로 수리취요.' 하는 것 같다.
수리취. 아! 이 얼마나 숭고한 모습인가? 이 정도면 겨울 야생화의 제왕이라고 이름 붙여줘야 마땅하지 않을까?
당신도 마찬가지일세^^^
백암봉에서 1.2km 지점에 있는 이정목. 갈수록 남덕유산이 가까워지니 능력은 안 되면서 괜한 욕심이 발동하네요.
지나온 백암봉 방향을 뒤돌아 본 것 같다. 사진을 워낙 많이 찍었더니 헷갈린다.
눈꽃은 없어도 능선길은 시종일관 이런 눈밭이다.
덕유의 능선길에 보이는 풍경에 도취되어 느릿느릿 사진을 찍으며 왔더니 어느 틈에 동엽령까지 왔다. 계속 직진하면 삿갓재와 남덕유로 가는 능선길이다.
동엽령에 당도하여 비로소 한 숨을 돌린다. 이제는 경사가 조금 급한 안성지구로 하산하는 일만 남았다.
동엽령에서 이정목을 보고 안성지구로 가는 내리막길로 하산한다.
동엽령에 있는 안내판을 보고 지나왔던 길과 안성지구로 내려갈 길을 되짚어본다.
동엽령에서 안성탐방지원센터까지 4.2km 내려가야 한다.
동엽령에 시설되어 있는 데크에서 늦은 점심을 먹고 잠시 휴식을 취한다.
동엽령에서 점심을 먹고 30여 분 지체한 후 하산길로 접어든다.
이 놈은 산벚나무인가 싶은데 역시 강한 바람에 꺽여있다. 오랜 세월 자랐을텐데 애석하기 그지없다.
참나무에 기생하고 있는 겨우살이를 여기에서 또 본다. 올 겨울은 가는 산마다 겨우살이를 참 많이 본다.
계곡을 뒤덮고 있는 하얀 눈과 고드름이 참 예쁘다.
고드름 부분만 당겨 보았더니 그 실체가 아주 묵직하게 보인다.
쪽동백나무인가 싶은데 아랫부분이 붙어 연리지가 되어 버렸네요.
동엽령에서 3km 내려왔다. 칠연폭포까지 갈까하다가 일행 중 아무도 가는 사람이 없어 우리도 그냥 패스~~~
안성지구로 하산하는 팀은 우리 일행을 제외하고 별로 없다. 동향인 글로벌산악회 한 팀이 우리랑 코스가 동일해 산행 내내 함께했다. 우리가 늦은지 빠른지 모르겠지만, 눈 쌓인 길을 뽀드득뽀드득 밟으며 근심 걱정 모두 내려놓고 간다.
어이, 젊은 친구들 기분 어떠신가? 이보다 더 좋은 곳 없재. 그래 무거운 짐 내려놓기는 산이 최고지~~~ 지금 이 친구들은 계곡을 덮고 있는 하얀 눈 밑으로 흐르는 물소리를 듣고 있다. 그럼 여기가 '소리길'이네.^^^
눈에 덮여있고 얼어있는 계곡 바닥으로 소리 없이 흐르는 물소리가 들린다. 소리 없이 흐르는 물, 우리는 지금 그 소리를 듣고 있다. 덕유산의 겨울 소리를~~~
쌓인 눈이 녹으면서 얼어 붙은 고드름
별 것 아니지만 이 또한 작품일세 그려.
설천봉에서 안성탐방지원센터까지 대략 9.2km 거리를 5시간 가량 걸렸다. 쉬고 먹고 찍고한 시간에 비하면 그리 늦은 걸음은 아니었다. 우리가 목적지까지 오니 아직 반 정도 도착하지 않았다.
마지막으로 안성탐방지원센터에 있는 탐방로 안내를 보면서 지나왔던 길을 세밀하게 그려보며 덕유의 눈밭길 산행을 마감한다.
오늘 덕유산 산행은 생각지도 않다가 두 친구의 제의로 느닷없이 다녀왔다.
집에서 는적거리는 것 보다 얼마나 잘한 일인가?
좋은 후배들 덕에 즐거운 산행을 다녀와 오늘 하루 기분이 아주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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