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씨도 좋지 않은 데 가도 되것나 모르것다.
■ 언제 : 2024. 02. 04.(일)
■ 어디 : 00산
■ 누구랑 : 부산 1, 대구 2(한 팀은 부부), 현장에서 우연히 만난 부딱 인연 1
■ 탐조 내용 : 멋쟁이새, 양진이
날씨가 좋지 않다.
하지만 이미 약정된 날이라 헛걸음할 요량하고 그냥 갔다.
여긴 늘 가던 곳이라 대충 현장 분위기를 알고 있다.
오늘 같은 날씨라면 빈손으로 돌아올 확률이 높다.
함께한 분들이 뭔가 소득이 있어야 할 텐데 괜히 마음 쓰인다.
날씨도 고르지 않은데 어찌하다 보니 여러 사람이 함께하게 되었다.
혼자일 때보다 마음이 쓰이는 건 사실이다.
설상가상 목적지에 도착하기도 전부터 안개가 자욱하다.
산허리를 감싼 안개는 쉬 사라질 분위기도 아니다.
안개가 쉽게 그칠 것 같지 않아 우린 안개가 사라지길 기대하며 청도로 갔다.
원앙은 겨울 초입보단 개체 수가 늘었지만 어제 만큼 한 곳에 모여 있진 않았다.
여기저기 분산되어 있고 풀숲에 주저앉아 사진은 그저 그랬고
동행한 사람들한테 검은등할미새와 흰목물떼새가 있는 곳을 찾아 찍게 하고
점심 무렵 다시 목적지로 향했다.
안개는 그대로였다.
오전과 다름없었고 오히려 더 심했다.
이젠 도리 없다. 그냥 안갯속으로 들어갔다.
안갯속을 헤집고 다니는 기분도 나름 괜찮아 보인다.
새도 새지만 안개 속을 누비고 다니는 우린 지금 이 순간만큼 신선이 따로 없다.
어제 내린 비가 여긴 눈으로 왔다.
군데군데 하얀 눈이 쌓였고 눈 녹은 숲길은 질퍽질퍽
길은 질퍽한데 새는 없다.
우리 발자국만 숲을 더럽히고 있다.
갑자기 멋쟁이새 소리가 들린다.
아니나 다를까 소리 나는 쪽을 주시하니 새가 있다.
빈 나뭇가지에 앉은 멋쟁이가 다섯 마리까지 보인다.
안갯속에 묻힌 멋쟁이
자연이 빚은 고아한 분위기까지
있는 그대로의 모습이 가공한 연출보다 훨씬 돋보이는 모습
사진은 또록또록하지 않아도 지금 본 이 모습은
내가 새를 찍으러 다니며 본모습 중 가장 압권이다.
오늘 같이 안개가 자욱한 날
이 산 이 숲에 들어오지 않았다면 어찌 이런 모습을 볼 수 있으랴.
평생 볼 수 없는 진기한 장면을 목도했다.
이런 모습을 본 것만으로 오늘 할 일은 다했다.
요즘 여긴 양진이 보다 멋쟁이가 더 자주 보인다.
언제부터인가 양진이가 안 보인다.
멋쟁이가 안 보일 때는 양진이만 보였는데 양진이가 안 보이니 멋쟁이만 보인다.
안갯속 실루엣 형상으로 있는 멋쟁이에 정신이 팔려있는데
갑자기 얽히고설킨 숲 속 바닥에서 뭔가 꼬물꼬물 움직인다.
양진이다. 양진이가 아직까지 있었던 것이다.
근래 잘 보이지 않기에 어디 다른 곳으로 이주했나 싶었는데 아직 가지 않고 남아 있었다.
그렇지. 아직 이주할 때가 되지 않았는데 이상하다 싶었다.
깊은 숲 속에 꼭꼭 숨어 있어 눈에 띄지 않았을 뿐이다.
궂은 날이었지만 오히려 이런 날이 새를 더 쉽게 볼 수 있기도 한 모양이다.
기대도 하지 않았는데 이게 뭔 횡재인지
안갯속에서 멋쟁이새도 보고 갔다고 여겼던 양진이까지 보는 행운이 주어졌다.
마음을 비웠더니 그 마음을 헤아렸는지 되려 채워준다.
탐조의 제1원칙, 마음을 비워라.
비우면 채워진다.
다시 한번 되뇐다.
검은등할미새/ 다른 곳에선 보기 쉽지 않은 새, 여기 오면 늘 본다.
멋쟁이새 암컷/ 짙은 안개로 사진이 되겠나 싶었는데 오히려 분위기는 더 산다. 희뿌연한 모습의 배경은 모두 안개
이 녀석 안개란 장벽이 있어 그런지 근접해도 날아가지 않는다. 안개가 시야를 흐려 쟤도 우리가 다가서는 것을 잘 의식하지 못하나 보다. 가까이 다가가서 찍고 주변의 잡다한 나뭇가지를 트리밍하면서 제거했더니 새가 뚱돼지가 되었다.
암.수가 같이 앉아 있지만 포커스는 수컷이 받았다.
오늘 주어진 포즈가 지금까지 여기서 얘를 만나 찍은 사진 중 가장 두드러진 모습인데 안개가 심해 모두 실루엣 사진이 되어버렸다.
양진이 수컷/ 가버리고 없는 줄 알았던 녀석이 이렇게 버젓이 꼬물거리고 있다.
다음에 만날 때 더 좋은 모습으로 만나길 바라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