낮지만 고귀한 산, 冷山(태조산)
- 후삼국의 역사와 신라 불교의 성지, 도리사를 품고 있는 산 -
■ 언제 : 2014. 11. 29.(토)
■ 어디로 : 구미 해평면 冷山(태조산)
■ 누구랑 : 홀로
■ 산행 경로 : 도리사 – 0.5km – 안부(정상 삼거리) – 0.2km – 냉산(정상) - 0.2km - 다시 안부로 – 0.7km – 삼림욕장 주차장 가는 능선 삼거리 – 1.2km – 활공장 – 0.5km – 태조산정 삼거리 – 0.3km- 태조산정 – 0.3km – 다시 태조산정 삼거리 – 0.2km – 금수굴 – 0.2km – 다시 태조산정 삼거리 – 1.2km – 산악레포츠 공원가는 이정표(임도를 따라) - 0.3km - 삼림욕장 주차장 가는 능선 삼거리로 다시 올라감 – 0.7km – 도리사로 내려가는 안부 – 0.5km – 도리사로 회귀
대략 7km 쯤 걸음
冷山(태조산) 개요
<펌> 다음백과사전 [출처] 한국학중앙연구원 - 향토문화전자대전
[정의]
경상북도 구미시 해평면 송곡리와 도개면, 군위군 소보면에 걸쳐 있는 산.
[명칭유래]
일명 태조산(太祖山)이라고도 하는 냉산은 고려 태조 왕건이 산성을 쌓고 후백제 견훤과 전투를 벌인 데서 유래된 이름이다. 태조봉(太祖峰)이라고도 하는데, 고려 태조가 견훤을 정벌하기 위해 축성한 숭신산성이 있다.
[자연환경]
냉산은 높이 691.6m로 낙동강 동쪽에 위치하고 있다. 도리사 아래 골짜기로는 송암천이 흐르며, 송암천은 용수골 못을 지나 수창동 부근에서 송곡천과 합류한다. 송곡천은 송암마을에서 시작되어 송암지를 지나 산양리를 흐르는 하천이다. 송곡천과 합류한 이 하천은 또다시 창림리에서 시작된 금호천을 만나 낙동강으로 유입된다.
[현황]
냉산에는 신라에 불교를 처음 전한 아도화상이 창건한 것으로 전하는 도리사를 비롯해 숭신산성(일명 냉산성), 금수굴 등의 명승지가 있어 도리사를 찾는 신도뿐만 아니라 등산객을 비롯한 다양한 관광객이 즐겨 찾는 곳이다. 근래 구미시에서 시민들의 편의를 위해 잡목으로 우거진 숲을 정비하여 주차장과 쉼터를 만들었다.
흔적
경북 구미시 해평면과 도개면 그리고 군위군 소보면에 걸쳐 있는 냉산은 낙동강 물줄기의 동쪽에 자리 잡고 있다. 냉산은 몇 년 전에 성부장과 박부장을 따라 산악자전거를 타고 임도를 한 바퀴 휘둘러 내려온 적이 있고, 도리사도 두어 차례 방문했던 적이 있었던지라 그닥 염두에 두지 않았던 산이다. 아직까지 가지 않은, 앞으로 가야할 산이 워낙 산재한 터라 가급적이면, 갔던 산은 배제하고 가지 않았던 산을 먼저 다닐 요량이라 냉산이 좋은지는 알지만, 언제든지 마음만 먹으면 갈 수 있는 곳이라 크게 염두에 두지 않고 있었다.
오늘은 사업상 대구에 자주 와야 하는 아들내미가 와 있고, 아내는 컨디션이 좋지 않아 혼자 길을 나서야 했다. 그러다보니 먼 길 가기도 그렇고 어디 혼자 갈만한 적당한 곳이 없나 해서 찾은 산이 그동안 잠정적으로 미루어 두었던 냉산이다. 구미 해평에 있는 냉산은 앞서 얘기 했듯 MTB를 타고 임도를 따라 크게 돌아본 적이 있었지만, 오늘은 두 발로 자전거가 갈 수 없는 길을 따라 직접 걸어보고 싶었다. 냉산은 불자들을 비롯한 탐방객들의 발길이 연중 끊이지 않는 '도리사'란 천년사찰을 품고 있는 산이다. 산이 절만큼 널리 알려진 것은 아니나 ‘도리사’가 있는 산이라면 사람들은 더 잘 안다. 그만큼 도리사는 유명한 절이다. 요즘은 임도를 더 잘 닦아 해마다 산악자전거 경연대회가 개최되면서 산악자전거 애호가로부터 많은 호평을 받고 있기도 하다.
자전거를 타고 넘을 때는 산세가 주는 풍광을 크게 느끼지 못했는데, 오늘 직접 두 발로 걸어보니 과연 소문대로 냉산은 예사로운 산이 아니었다. 앞서 언뜻 언급하기도 했지만, 냉산은 '도리사'란 신라 최초의 가람 적멸보궁이 있는 천년사찰을 품고 있는 산이다. 고구려의 아도화상이 묵호자란 이름으로 신라에 처음 불교를 전파하여 지은 절이 ‘도리사’다. 그러니까 도리사는 신라 불교의 발상지인 셈이다. 이러한 도리사는 아도화상이 신라에 불교를 전파하러 올 때 가지고 온 세존진신사리가 봉안되어 있던 절로서 우리나라 8대 적멸보궁에 속한다. 그뿐인가? 아도화상이 참선한 좌선대와 아도화상이 입적한 금수굴을 비롯해 아도화상으로 말미암은 신라 불교의 역사가 냉산 곳곳에 스며있다.
아울러 냉산에는 후삼국을 통일한 고려 태조 왕건이 견훤을 정벌하기 위해 축성한 숭신산성(일명 냉산성)이 있고, 전쟁을 위해 태조 왕건의 어가가 냉산 주변에 머무르기도 했다. 그래서 냉산을 태조산이라 부르기도 한다. 후백제와 태조 왕건의 치열한 전투가 벌어진 곳이라 냉산이라 불리게 되었다지만, 견훤이 태조 왕건에 의해 함락되어 그런지 도리사 전각에 새겨진 이름과 일주문에는 냉산이란 지명보다는 ‘태조산 도리사’로 명명한 곳이 많다. 보통은 냉산으로 많이 알려진 곳이지만 속내는 차가운 냉산보다는 좀 있어 보이는 태조산으로 더 부르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당초 냉산 산행은 제1주차장을 시작으로 정상에 올라 금수굴과 태조산정을 다녀 온 뒤에 임도를 따라 산악레포츠공원을 거쳐 원점으로 회귀하려고 했다. 대략 10km여에 달하는 비교적 먼 거리지만, 거리 대비 그렇게 험하거나 위험한 곳이 아니니 좀 늦게 가더라도 시간적인 여유는 충분하리라 여겼다. 더구나 내 사는 곳에서 도리사 어귀까지는 불과 40여 분이면 도착하니 11시 남짓 도착해도 크게 무리가 없을 것 같아 더디게 시동을 걸었다.
도리사 제1주차장까지 가노라니 웬 꼬부랑 할머니가 지나가는 차를 향해 태워 달라고 손짓을 한다. 앞차들이 여러 대 지나가던데 모두 모른 체하고 가버린 모양이다. 나도 그냥 갈까하다가 할머니의 꼬부라진 어깨와 허리를 보니 도저히 그냥 지나 칠 수가 없었다. 올해 85세의 내 어머니 생각도 나고 해서 할머니를 차에 태우고, 산행 출발 지점인 제1주차장을 그냥 지나쳐 도리사 주차장까지 모셔 드렸다. 그러고는 다시 제1주차장으로 내려가려고 했는데 도리사까지 와 버렸으니 다시 내려가기도 그렇고 해서 이참에 절 구경이나 꼼꼼하게 하고가자 싶어 산행을 잠시 미루고, 도리사 경내를 30~40분 정도 시간을 투자하여 두루 탐방을 했다. 예전에 몇 번 왔던 절이었지만, 서과피지(西瓜皮舐) 한 탓에 오늘은 마음먹고 알뜰하게 살폈다.
이래저래 산행 출발 시간이 많이 지체되었다. 어쨌든 할머니 덕에 절 구경은 잘 했다만, 앞으로 산행할 일이 걱정이다. 도리사에서 1주차장으로 내려가 들머리를 잡자니 시간이 늦을 것 같아 여기까지 온 김에 도리사에서 올라가는 산길이 없나 찾아보았다. 의외로 산길이 눈에 잘 띄지 않아 산길 찾아 이리저리 다니다 전망 좋은 서대를 만나 시간을 또 빼앗겼다. 서대에 서니 전망이 얼마나 좋던지 낙동강 물길따라 눈이 따라 가더니 어느틈에 발길도 물길 따라 절로 흘러 간다. 도리사 탐방과 서대 전망대에서 시간을 많이 빼앗긴 탓에 산행 시간이 많이 촉박해 졌다. 늦었지만, 주차장 위로 난 조그맣게 표시된 산길 안내판이 있는 곳을 찾아 그곳을 들머리로 냉산을 오르기 시작했다. 이때 시간이 거의 12시가 다 됐다. 뻔히 시간이 지체됨을 알면서도 일단 서대 전망대에 서니 풍경에 넋을 잃어 쉽게 발을 빼기가 어려웠다. 더구나 서대는 아도화상이 이곳에 올라 김천의 황악산을 가리켜 그 유명한 直指寺를 탄생시킨 곳이 아닌가? 하여튼 냉산은 볼거리와 이야깃거리가 많은 산이다.
절과 낙동강 물길에 마음을 빼앗겨 산행 출발 시간이 많이 지체되었지만, 7부 능선쯤에서 출발해서 그런지 예상 외로 시간을 많이 잡아 먹지는 않았다. 그러나 사전 조사 때 제1주차장을 중심으로 빙 돌아 나오는 경로를 그리고 왔는지라 막상 도리사에서 출발하니 감을 잡기가 쉽지 않았다. 자그마한 출발 안내판에는 선명하지 못한 채 고개만댕이까지 0.5km를 나타내고 있다. 아마 정상을 향한 안부를 표시한 것 같은데, 초행이라 확신이 서지 않아 이정표도 없는 길을 시그널을 보고 무턱대고 올라갔다. 안부로 오르는 길은 시작부터 가파른 된비알이다. 몸은 느리고 마음은 조급해져 발걸음만 조갑증을 더한다. 0.5km에 불과했지만, 생각보다 센 오르막길이라 쉽지 않았다. 거기다가 전형적인 육산에 우거진 숲이 시야를 가려 안부에 도달하기 전에는 조망도 없이 그저 올라야만 한다.
하지만 냉산 산행은 생각보다 수월했다. 도리사에서 출발해서 그런지 대략 0.5km 정도 거리의 안부까지 도달하면 힘든 곳은 거의 없다. 능선을 따라 낮은 고개를 오르내리기만 하면 된다. 숲속 오솔길로 뒤덮인 능선길엔 낙엽이 쌓여 가을이 가고 이미 겨울이 왔음을 알리고 있다. 바삭바삭 낙엽 밟는 소리가 양탄자를 밟고 지나는 것과는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촉감이 좋다. 아무리 고급이라 하더라도 인위적으로 설치한 양탄자나 생전 밟아 볼 일 없는 레드카펫보다는 자연을 밟는 소리가 훨씬 더 고급스럽다. 저질 쓰레기로 만든 시멘트로 지은 빌딩을 움켜 쥔 사람은 감히 접근하기 힘든 길이다. 어떻게 사느냐의 문제는 누가 더 오래 사느냐의 문제가 아니다. 삶의 질은 어떻게 사는가에 따라 결정되어 진다. 땀을 흠뻑 적신 채 깊은 숨 몰아쉬며, 레드카펫보다 더 질 좋은 산마루의 낙엽 밟는 길은 인간이 걷는 가장 아름다운 길이다. 이런 길을 밟으며 사는 삶이 가장 질 좋은 인생이다. 고로 나는 요즘 반백년을 넘게 살아오면서 가장 아름다운 길을 만나 가장 아름다운 길을 걷고 있다. 요즘, 삶에 활력이 넘친다.
도리사에서 올라 안부에 이르면 동쪽으로 냉산 정상을 향해 0.2km 더 가서 다시 돌아와야 한다. 정상이래야 볼품은 없지만, 그래도 정상에 이르는 곳이니 200m 앞에 두고 안 갈 수가 없다. 정상엔 정상석이나 표지석도 없이 나무에 매달아 놓은 표식이 전부다. 아무도 없는 정상에서 인증사진만 날리고 곧바로 안부로 되돌아와, 능선을 따라 이제 제법 먼 길을 휑한 나뭇가지와 낙엽을 밟으며 친구삼아 가야 한다. 오늘 내가 예기치 않게 최종적으로 선택하여 산행한 코스는 도리사에서 대략 500m 정도 안부에 다다르기 까지 힘들지, 나머지는 ‘룰루랄라’ 콧노래 부르며 가면 된다. 한 군데 더 난코스가 있다면 활공장을 지나 금수굴 가는 내리막길 200m가 경사가 급한 길이긴 하지만, 오가는 길이 짧아 애써 피해갈 필요가 없다. 금수굴은 고구려 사람으로 신라에 불교를 처음으로 전파한 아도화상이 입적한 곳이라 냉산 산행을 하면 반드시 거쳐야 할 필수 코스라고 봐야 한다.
정상에서 도리사 삼거리 안부로 다시 돌아와 태조산정과 금수굴 가는 방향으로 힘차게 발걸음을 내딛는다. 이 길은 내려가고 올라가는 고개가 크게 없어 수월하게 이동을 할 수 있다. 숲으로 에워싸인 전형적인 토산(土山)이라 조망권은 없으나 산 능선을 오솔길처럼 걷는 기분은 이루 말할 수 없이 좋다. 난, 늘 그렇지만 산정의 편안한 능선 길을 가장 좋아한다. 힘들게 올라 능선 오솔길을 만나면 모든 피로가 일시에 가신다. 이 맛에 늘 산을 다닌다.
정상에서 홀로 인증사진을 찍고 내려오는 길에 부부 한 팀을 만났 것 외에는, 능선을 따라가는 먼 길엔 아무도 없고 철저하게 독백을 즐긴다. 그러나 비록 혼자이긴 하나 난, 늘 혼자라도 혼자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내가 가는 길엔 산도 있고 나무도 있고 떨어진 낙엽도 있고 바람도 분다. 모두가 자연이고 그 자연 속을 걷는 나도 자연의 일부다. 그러니 혼자일 리가 없다. 산중에 있는 나는 혼자일지라도 결코 혼자가 아닌 것이다.
정상을 갔다가 다시 도리사 삼거리 안부로 돌아와 활공장 방향으로 능선을 따라가다 보면 산악레포츠공원으로 가는 삼거리가 나오고, 거기에 비로소 길 안내를 나타내는 이정목이 하나 나온다. 도리사로 가는 삼거리 안부에서 대략 700m쯤 가면 나오는데 그 전에는 이정표도 없고 중간에 빠지는 길도 없다. 그냥 능선 오솔길을 쭉 따라 가면 된다. 만약 산악레포츠공원으로 빠르게 가자면 여기서 좌측으로 빠지면 된다. 나는 금수굴과 태조산정을 가야하니 이쪽으로 빠지는 것보다 가던 길로 내쳐 가는 것이 좋다. 능선을 따라 태조산정과 금수굴을 다녀가면 임도로 내려와야 하니 도리사로 원점회귀가 곤란하다. 허나 어쩔 수가 없다. 냉산 산행의 하이라이트는 도리사, 태조산정에서 바라보는 전망, 금수굴이니 제 자리로 돌아가기 어렵더라도 꼭 거쳐야 한다. 만약 제 자리로 돌아가고 싶다면 왔던 길로 되돌아 가면되지만 별로 걷는 재미가 없다. 걷지 않은 길도 있는데 이미 걸은 길을 다시 걷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산악레포츠 공원으로 빠지지 않고 능선길을 따라 1.2km쯤 가면 패러글라이더가 새처럼 훨훨나는 활공장이 나온다. 곱게 다듬어 놓은 활공장에 다다르면 비로소 굽이굽이 흐르는 칠백 리 낙동강 물길이 그림처럼 눈앞에 펼쳐진다. 칠백 리 낙동강 물길을 감싸 안은 높고 낮은 산들이 보여주는 그림은 진경산수화보다 더한 실물 진경으로 다가온다. 이 같은 그림 앞에서 어찌 발길을 쉬 뗄 수 있으랴. 내 고장 가까운 구미 냉산에서 이런 그림을 보다니 예전엔 미처 몰랐다. 아무리 갈 길이 바쁘더라도 누릴 건 모두 누리고 가야겠지. 미친 듯이 정상을 향해서 질주하는 무리와 성격을 달리하는 나는, 늘 늦지만 볼 것 다 보고 누릴 것 다 누리는 산행을 즐긴다. 이는 곧 내가 가장 즐겨하는 산행 성격이다.
활공장에서 바라보는 풍경을 만끽하며 휴식을 취했으니 이제 금수굴과 태조산정으로 내려가야 한다. 금수굴과 태조산정으로 가는 사거리로 내려와 금수굴로 먼저 내려간 후 태조산정으로 가는 것이 동선이 좋은데 난, 계산 없이 400m에 거리에 있는 태조산정으로 바로 갔다. 태조산정으로 가면 다시 사거리로 돌아와 금수굴로 내려가야 하니 잠시 이동 경로를 잘못 짚었다. 허나 이리 가나 저리 가나 먼 거리가 아니니 크게 구애 받을 일은 아니다.
태조산정은 팔각정으로 꾸며져 있으며 역시 전망 좋은 곳에 자리 잡고 있다. 활공장에서 보던 모습 보다 더 가깝게 낙동강 물길을 끌어안을 수 있다. 좀 더 높은 곳에 있는 활공장에서 이미 본 풍경이지만, 그래도 태조산정에서 바라보는 풍경은 더 정겨운 모습으로 가까이 다가온다. 이제 금수굴을 갔다가 도리사 주차장으로 돌아갈 일만 남았다. 금수굴로 가기 전에 식사하기 딱 좋은 태조산정(팔각정)에서 늦은 점심을 먹으며 주린 배를 채웠다. 아내가 챙겨준 곳감말랭이와 귤, 사과도 있었지만, 그냥 대충 식빵만으로 점심을 때웠다. 아무도 없는 팔각정에서 숨을 고르며 먹는 식빵 맛이 기가 막힌다. 한 통 가득한 식빵을 단숨에 해치워 버렸다.
다시 금수굴로 가는 사거리로 돌아와 200m 아래 있는 금수굴로 내려갔다. 거리는 짧지만 내려가는 길은 지금껏 다닌 길과는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급경사다. 게다가 나무로 발 디딜 칸을 만들어 놓기는 했지만, 그나마 낙엽이 쌓여 길을 모두 덮어 버렸다. 그러니 급한 내리막길에 미끄러운 낙엽을 밟고 내려가기란 여간 힘든 일이 아니다. 조심조심 내려가 결국 커다란 단일 바위 밑에 사람 한두 명 쉴만한 공간이 있는 금수굴을 만났다.
금수굴은 아도화상이 입적을 한 곳이다. 즉 적멸(寂滅)에 들고 열반을 한 곳이다. 아도화상은 고구려인으로 신라에 불교를 파급하기 위해 오신 분으로 신라 최초 가람인 ‘도리사’를 창건한 분이다. 그러니까 도리사는 신라 불교의 태생지가 되는 신라 불교의 성지인 셈이다. 신라 불교를 태동시킨 분이 입적한 곳이 금수굴이라 하니 냉산을 찾아 금수굴을 마다한다면 산행의 의미는 이미 반 쯤 퇴색한 것이나 다름없다. 오늘 나 홀로 냉산을 찾아 호젓한 산행을 하면서 고려 태조 왕건을 만나고, 후삼국의 치열한 전장의 소용돌이에 빠져들기도 하며, 도력이 깊은 스님을 만남과 동시에 신라 최초의 가람을 거니는 호사를 누린다. 길을 나서지 않았다면 어찌 오늘 같은 만남이 있었겠나? 역사를 초월한 만남은 자고로 산에서 길에서 만나는 법. 책으로 만나는 만남과는 또 다른 깊은 감흥은 길 위에 있는 법이다.
이제 도리사 주차장으로 돌아갈 일만 남았다. 여기까지 와버렸으니 다시 왔던 길로 되돌아가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km 수는 크게 멀지 않으나 왔던 길로 되돌아가자니 먼저 재미가 없다. 이미 이 길로 왔을 때는 임도를 따라 크게 돌아 제1주차장으로 가서 도리사로 돌아가기로 작정을 했던 터다. 재수가 좋으면 히치하이킹을 해 쉽게 갈 수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내가 올 때 꼬부랑 할머니를 태워 드렸으니 어쩌면 나도 맘씨 좋은 운전자를 만날지도 모른다. 마음먹은 대로 안 되면 오늘 걸음 한 번 실컷 걸어 볼 요량으로 잘 아는 왔던 길을 마다하고 임도를 택했다.
금수굴에서 임도로 바로 내려와 길 잃은 나그네가 되어 고즈넉한 산길을 독점하고 걸었다. 내 앞에 걸리적거리는 것은 그 아무것도 없다. 있다면 길바닥에 나뒹굴던 낙엽을 바람이 내 앞으로 쓸어 담아주는 것이 다다. 임도는 보통 산길 임도보다 길이 더 좋다. 왜냐하면 이 길은 산악자전거 대회가 열리는 길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런지 임도가 보통 임도보다 상당히 정갈하고 깔끔하게 정리되어 있다. 난, 임도 끝 지점인 태조산정에서 산악레포츠공원 쪽으로 내려가고 있다. 1주차장까지 걸어 갈 생각을 하고 가자니 상당히 먼 길이라 조갑증이 생기기도 했지만, 여유를 갖고 지금 상황을 최대한 즐긴다. 길 사정을 잘 모르는 상황에서 왔던 길로 되돌아가지 않았으니 도리가 없다. 그냥 먼 길 돌아갈 각오만 다지고 현 상황을 즐겁게 맞이할 뿐이다.
맘 편하게 먹고 산길 같지 않은 매끄러운 산악자전거 도로를 따라 가자니 세상만사 부러울 것이 없다. 뒹구는 낙엽과 친구삼아 유유자적하게 한참을 걷다보니 갈림길 이정목이 하나 나온다. 그렇지 않아도 임도를 걸으며 이정목이 나오기를 예의 주시하며 걸었던 터라 반가웠다. 이정목은 산악레포츠공원으로 내려가는 길과 정상으로 올라 가는 길 그리고 임도를 따라 계속 내려가는 길목을 가리키고 있다. 여기서 어쩌면 도리사 주차장으로 가는 빠른 길을 만날 수 있을 것 같다는 예감이 든다. 얄팍한 마음을 접고 임도를 따라 도리사 제1주차장으로 그냥 내쳐 갈려고 했는데 여기서 정상으로 가는 이정목을 만났다. 태조산정에서 임도를 따라 대략 2km쯤 왔으니 어쩌면 여기서 정상으로 올라가면 도리사로 가는 능선과 가까운 곳을 만날 수 있을 것 같다. 정상으로 가는 오르막길을 바라보니 엄두가 나지 않았지만, 빙 둘러 한참을 가는 것보다는 잠깐 힘든 길을 택하는 것이 아무래도 현명할 것 같은 생각이 든다. 자차로 움직이면 항상 제자리로 돌아가야 하니 이럴 땐 불편하기 짝이 없다. 이쪽으로 온 김에 임도 끝까지 내쳐 걸어보는 것도 좋은데 걷다가 말아 조금 아쉽기도 하다.
큰 맘 먹고 정상을 향한 오르막길을 오르기 시작했다. 역시 예상대로 된비알이라 쉽지 않았다. 다시 내려가 먼 길 돌아 길게 갈까 생각도 했지만, 까짓 기왕지사 마음먹고 올라온 길 끝까지 가보자 생각하고 그냥 올라갔다. 그렇게 마음먹고 몇 번 숨 고르며 올라갔더니 의외로 오르막길은 길지 않았고, 더더욱 다행스러운 것은 도리사 삼거리에서 능선을 타고 가다가 처음 만났던 산악레포츠공원 방향 이정목이 있는 삼거리와 만났다는 점이다. 이 삼거리는 정상에서 능선을 타고 가다가 처음 만난 이정목이 있는 곳이었다. 무척 다행스러웠다. 임도를 따라 가다가 이정목이 가리키는 방향을 보고 도리사 가는 능선 길과 만날 것 같은 예감에 올라갔는데 예상했던 바대로 딱 맞아 떨어졌다.
아주 기분이 좋다. 임도를 따라 빙 둘러 가자면 발품 꽤나 팔아야 했는데, 이제는 그저 먹기다. 정상가는 길과 도리사로 내려가는 삼거리까지는 불과 0.7km 밖에 되지 않는다. 거기서 도리사 주차장까지는 0.5km에 불과하다. 왔던 길이지만, 거리가 짧아 지루함도 힘이 드는 것도 잊은 채 즐거움을 가득 안고 홍안이 되어 돌아간다.
냉산(冷山)은 고려 태조 왕건이 산성을 쌓고 후백제 견훤과 전투를 벌인 데서 유래된 이름이다. 일명 태조산(太祖山)이라고도 하는데 그 이유는 고려 태조의 어가가 이곳에 머물렀다하여 태조산이라 부르기도 했다고 앞서 이야기 했었다.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차가운 냉산 보다는 태조산으로 명명하는 것이 좀 더 있어 보인다. 실제로 도리사에서 멀리 떨어진 일주문부터 가람 곳곳의 편액에는 냉산이라 표기하지 않고 ‘태조산 도리사’와 같이 명기되어 있다. 차제에 냉랭한 냉산보다는 태조산으로 부르고 싶어진다.
그만큼 이번 냉산 산행은 나에게 유의미하게 다가왔다. MTB로 임도를 한 바퀴 휘둘러 내려왔었지만, 자전거는 역시 두 발로 걷는 것 보다는 못하였다. 차보다는 자전거가 자전거 보다는 두 발이 낫다. 두 발로 걷는 것은 못가는 곳이 없다. 문명의 이기인 차와 자전거는 가지 못하는 곳이 많다. 두 발로 직접 걸은 냉산은 도리사의 아도화상과, 성철 스님이 머무른 흔적, 신라 불교의 성지, 전망 좋은 서대와 활공장, 태조산정에서 바라본 낙동강 물길과 파도처럼 일렁이는 산마루 등 눈에 보이는 것은 다 접할 수 있다. 기회가 주어진다면 새벽에 당도하여 서대에 서서 낙동강이 뿜어낸 안개 덮인 강과 산야를 보고 싶다. 그때 서대 전망대에 서서 자전거를 타고 냉산을 누비고 다닌 기억과 이번에 직접 걸어본 냉산을 상기하며 가슴 속에 한 번 더 담아두고 싶다.
작은 산이지만 후삼국의 역사와 신라 최초의 가람인 도리사를 품고 있는 냉산은 참으로 많은 것을 내포하고 있는 큰 산이었다. 산이 높고 크다고 하여 큰 의미를 많이 내포하고 있는 것은 아니리라. 작지만 강렬한 산이 있고, 크면서 허당인 산도 있다. 이러나저러나 산은 오르내릴 수만 있어도 가치가 있는 법이다. 어떤 산이든 산은 내게 그렇게 산으로 다가오니 난, 그로서 족하다.
사진으로 보는 냉산 산행기
1부. 신라에 불교를 처음 전파한 아도화상(묵호자)이 창건한 도리사
도리사에 대해 알고 갈까요.
신라 최초 가람 적멸보궁 도리사는 신라 제19대 눌지왕대(417년)에 고구려의 승려
아도화상이 불교가 없었던 신라에 포교를 위해 처음 세운 신라불교의 발상지 이다.
아도화상이 수행처를 찾기 위해 다니던 중 겨울인데도
이곳에 복숭아꽃과 오얏꽃이 활짝 핀 모습을 보고 좋은 터임을 알고
이곳에 모례장자의 시주로 절을 짓고 이름을 복숭아와 오얏에서 이름을 따 도리사라 하였다.
신라불교 초전법륜지로 불교의 성지인 이곳은 1976년 아도화상이 신라에 불교를 전하로 올 때에
모셔온 세존 진신사리가 세존 사리탑 보수 공사 중 금동육각사리함에 봉안되어 발견되었다.
금동육각사리함은 8세기 중엽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이 되며 국보 제208호로 지정되어
현재 직지사 성보박물관에 위탁 소장되어 있다.
일주문(一柱門). 일주문은 기둥이 한 줄로 서 있는 문이라는 뜻으로, 사찰에 들어가는 첫 번째 관문이기도 하다. 사역에서 4.5km 정도 떨어진 곳에 위치한 도리사 일주문은 1993년 돌기둥을 세우고 그 위에 팔작지붕을 올린 건물로, 정면에는 ‘東國最初伽藍聖地太祖山桃李寺’라는 편액이 걸려 있다. 일주문을 지나 도리사로 진입하는 도로는 느티나무 가로수가 조성되어 있어 신록으로 우거져 잎이 무성할 때 자전거를 타거나 걷거나 아니면 승용차를 이용해 달려도 기분 좋은 길이다. 난, 이 길을 성부장과 박부장과 함께 MTB를 타고 달린 적이 있다.
일주문을 지나 제1주차장 못미쳐 꼬부랑 할머니 한 분이 차를 태워 주기를 기다리며 손짓을 하고 있었다. 내 앞에 가는 차들이 그냥 지나치기에 나도 그냥 갈까 하다가 태워 드려도 뭔일 있겠나 싶어 태워 드렸다. 좋은 마음으로 지나가는 행인을 태우다 뜻밖의 봉변을 당하는 경우가 더러 있기에 차량 운전자들은 대부분 거의 지나치는 것이 현실이다. 나도 그냥 지나칠까 하다가 차마 외면하기 어려워 태워 드렸다. 꼬부랑 할머니께서 도리사 스님들이 거처하는 수선료에 들어가서 쉬시는 것을 보아 도리사를 자주 찾는 보살님인 듯 했다. 잘 했다는 생각이 든다.
신라 최초의 가람 적멸보궁 도리사. 신라 제19대 눌지왕(417년)에 고구려의 승려 아도화상이 불교가 없었던 신라에 포교를 위해 처음 세운 신라불교의 발상지 이다. 당초 냉산 산행 계획은 제1주차장에서 시작하려고 했는데 도리사까지 꼬부랑 할머니를 태워 드리는 바람에 도리사가 오늘 산행의 들머리가 되어 버렸다. 내친김에 산행은 잠시 미루고 도리사 경내를 두루 탐방하는 시간을 갖는다.
도리사 경내 주차장. 할머니 덕택에 여기까지 올라와 버렸다. 오르막 경사가 심해 1단을 놓고 올라왔더니 차도 힘이 들었는지 타이어 마모 냄새가 좀 심하게 났다. 할머니가 이 차는 이리 높은 데는 잘 안 다녔나 보네. 지도 힘이들어 숨이 차다고 이리 냄새가 나나 보다. 이렇게 말씀을 하신다. 연로하셔도 똑똑하신 꼬부랑 할머니다. 송림 숲에는 쉼터가 잘 조성되어 있다. 우리 아이들을 여기에 데려와 수업하면 얼마나 좋을고~
도리사 주차장으로 올라 오는 길
중간 건물이 수선료(修善寮). 스님들의 거처하는 요사(寮舍)로 정면 5칸, 측면 4칸 규모의 팔작지붕 2층 건물이다. 1990년에 건립하였으며 1층은 공양간, 2층은 종무소와 요사로 사용하고 있다. 정면에는 「東國最初伽藍」ㆍ「太祖山 桃李寺」 등의 편액이 걸려 있다. 왼쪽 전각은 설선당 <펌> 도리사 홈
아래서 위로 올려다 본 범종각. 종각은 일반적으로 범종, 법고(法鼓), 목어(木魚), 운판(雲版) 등의 사물(四物)을 걸어놓고 의식 때마다 소리를 내어 삼계(三界)의 미물들까지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하는 전각이다. 도리사 범종각은 2005년에 건립된 정면 1칸, 측면 1칸 규모의 사모지붕 건물로 현재 사물 가운데 범종만 봉안되어 있다.
반야(般若)쉼터. 일종의 휴게실처럼 꾸민 건물로 정면 3칸, 측면 1칸의 규모이다. 내부에는 약간의 도서를 갖추어 참배객들이 차를 즐기며 독서도 할 수 있는 공간으로 2003년에 건립하였다. <펌> 도리사 홈
설선당(說禪堂). 1999년에 건립한 정면 7칸, 측면 3칸 규모의 팔작지붕 2층 건물로, 1층은 보은전(報恩殿)이고 2층이 설선당이다. 보은전은 평생위패를 봉안한 곳으로, 이곳에 봉안된 영가들의 극락왕생을 기원하며 명절이나 기일마다 재(齋)를 지내고 있다. 설선당은 강당으로 사용하며 각종 법회와 신행활동이 이루어지는 곳이다. <펌> 도리사 홈
정리된 나무 조각에 도리사 탐방 소감이나 소원을 적어 걸어두었다.
적멸보궁으로 올라가는 계단. 아도화상과 극락전을 가는 길에 있어 나옹선사의 말씀을 새긴 글을 먼저 대한다.
아도화상. 아도화상 아도의 어머니 고도녕은 중국에서 온 사신 아굴마와 연정이 깊어져 아도를 낳게 되었다. 그 후, 아도가 다섯 살이 되자 고도녕은 아도를 출가시켰다. 아도가 16세가 되자 아도는 중국으로 가 현창화상 밑에서 수행을 하고 고구려로 돌아왔다. 어머니 고도녕은 아들을 불교가 없던 신라로 불법을 전하라며 보내었다. 당시 신라는 외래 문물에 배타적이어서 불교 박해가 심했었다. 그는 묵호자란 이름으로 지금의 선산부 도개에 와서 모례장자의 집에 몸을 의지하고 낮에는 일을 하여 도움을 주고 밤에는 사람을 모아 자비로운 불법을 전하였다. 그때, 양나라의 사신이 신라에 향을 예물로 보내왔으나 그 사용법을 아는 사람이 없어 걱정 해오던 중 모례장자의 추천으로 궁에 들어가 향의 사용법을 알려주길 “향을 불에 태우면 향기가 그윽하여 신성하기가 이를 데 없고 소원을 빌면 반드시 영험이 있다”하였다. 이에 왕의 공주인 성국공주가 큰 병이 들어있었는데 왕이 아도화상에게 치료를 청하니 아도화상이 칠일간 향을 피우고 부처님께 공양을 올리니 신통하게도 공주의 병이 씻은 듯이 나았다. 그 공덕으로 불교를 전할 기회를 얻었으나 왕이 세상을 뜨자 아도화상을 해치려 하는 무리들이 공격을 해와 몸을 숨길 수밖에 없었다. 모례장자의 집에 잠시 머물다 떠나려하자 모례장자가 가는 길을 물었으나 “나를 만나려거든 얼마 후 칡순이 내려올 것이니 칡넝쿨을 따라 오시오.”라는 말을 남겼을 뿐이다. 그 해 겨울 과연 기이하게도 정월 엄동설한에 모례장자 집 문턱으로 칡순이 들어왔다. 모례장자는 그 줄기를 따라가 보았다. 한 겨울인데도 복숭아꽃과 오얏꽃이 활짝 핀 나무 아래 좌선대에서 아도화상이 정진하고 있었다. “ 잘 오셨오. 모례장자. 내 이곳에 절을 세우려 하니 이 망태기에 곡식 두말을 시주하시오.” 아도화상은 모례장자 앞에 작은 망태기를 내놓고 시주를 권했다. 모례장자는 기꺼이 승낙을 하고는 다시 집으로 내려와 곡식 두 말을 망태기에 부었으나 어인 일인지 망태기는 두말은 커녕 두섬을 부어도 차지 않았다. 결국 모례장자는 재산을 모두 시주하여 도리사를 세웠다. 아도화상은 절 이름을 복숭아꽃과 오얏꽃의 이름을 따 도리사라 칭했고 그곳이 바로 신라에 처음 세워진 절 도리사이다. 아도화상은 도리사에서 정진하다 나이가 들어 금수굴에 들어가 열반에 들었다. 지금도 도리사에서는 성국공주의 병을 낫게 한 아도화상 동상 앞에서 향을 피워 올리며 가족과 친지들의 쾌차를 위해 기원하고 있으며, 많은 이들이 그 가피를 받고 있다. <펌>도리사 홈
수선료(修善寮). 스님들의 거처하는 요사(寮舍)로 정면 5칸, 측면 4칸 규모의 팔작지붕 2층 건물이다. 1990년에 건립하였으며 1층은 공양간, 2층은 종무소와 요사로 사용하고 있다. 정면에는 「東國最初伽藍」ㆍ「太祖山 桃李寺」 등의 편액이 걸려 있다. <펌> 도리사 홈
태조선원(太祖禪院). 스님들이 수행하는 선방으로 정면 7칸, 측면 8칸 규모의 ‘ㄷ자’형 건물이다. 근래의 선지식인 전강영신(田岡永信) 큰스님을 비롯하여, 성철(性徹) 큰스님도 이곳에서 정진하였다. 정면에는 「太祖禪院」ㆍ「桃李寺」 등의 현판이 걸려 있다. <펌> 도리사 홈
포대화상
극락전(極樂殿) :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466호 서방극락정토(西方極樂淨土)의 주재자인 아미타불을 모시는 법당이다.
정면과 측면이 각 3칸인 팔작지붕 건물로, 건립연대는 알 수 없으나 1875년(고종 12) 용해(龍海)스님이 중수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외부 앙서와 상부 익공 및 내부 운궁의 형상이 1870년 중건된 경복궁 근정전의 공포 구성양식과 유사한 데서도 알 수 있듯이 조선말기의 건축특징을 갖추고 있다. 내부에는 1645년(인조 23)에 조성한 목조아미타여래좌상과 1876년(고종 13)에 조성한 아미타후불탱을 봉안하고 있으며, 근래에 지장탱과 신중탱을 조성하여 봉안하였다. <펌> 도리사 홈
아미타불을 모신 극락전. 단청이 바래져 더욱 고풍스런 매력이 풍긴다.
보물 제 470호로 지정된 고려 시대의 석탑. 화엄석탑(보물 제470호) 극락전 뜰 앞에 있는 우리나라 절 어디에도 찾아볼 수 없는 독특한 양식으로 전탑을 모방한 높이 3.5m의 3층 석탑이다. 고려 중엽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계단(승려의 수계의식을 행하는 단)’같이도 보인다. 펌
극락전 동편을 내려가는 길에 아도화상 좌선대가 있다. 내려가 본다.
아도화상 좌선대. 아래 안내글 참조
1655년(효종6년)에 세운 아도화상이 신라에 불교를 전한 사적을 적은 아도화상 사적비가 있고 배면에는 ‘자운비’가 음각되어 있다. 그 옆에는 1712년(숙종38년)에 세워진 불량답시주질비가 나란히 서있다.
뒷면에는 '자운비'라고 음각되어 있다.
극락전
여기는 더 이상 들어가지 못한다. 들어가면 개가 물어버릴지도 모른다는 글이 적혀 있다. 절에서 좀체 보기 쉽지 않은 위협성 글이다.
세존사리탑. 극락전 뒤편에 있는 조선시대의 석종형 부도로 크기는 작지만, 사리탑 곳곳에 새겨진 사자 머리 등 조각의 솜씨가 세련되고 뛰어나다. 그 전에 도굴당해 내버려져 있던 사리탑을 1977년 경내로 옮기는 공사를 하던 중 8세기경에 만들어진 금동육각사리함(국보 208호)과 그 속에 천과 종이에 싸인 아도화상이 가져온 진신사리가 발견되었다. 이로 인해 폐사 직전의 조용한 절에 중창 불사가 일어나 근래에 적멸보궁, 삼성각, 반야정사 같은 큰 불사가 이루어졌고 전국의 수많은 불자들이 몰려드는 불교의 성지가 되었다.
적멸보궁(寂滅寶宮). 적멸보궁이란 부처님의 진신사리를 모신 법당을 말한다. 따라서 불상을 별도로 모시지 않고, 법당의 뒤쪽에 진신사리를 봉안한 사리탑을 조성하여 법당 안에서 사리탑을 향해 예배를 올리게 된다. 도리사 적멸보궁은 정면 3칸, 측면 2칸 규모의 맞배지붕 건물로 1982년에 주지 법등(法燈) 스님이 사리 예배와 기도를 위하여 건립하였다. 법당 안에서 바라보이는 석가여래사리탑은 1977년 세존사리탑에서 발견된 사리 1과를 봉안하기 위해 1987년에 조성한 것이다. <펌> 도리사 홈
적멸보궁
세존진신사리가 봉안된 사리탑. 여기는 성지입니다.
새로 발견된 진신사리를 봉안한 높이 8m의 사리탑.
사리탑을 둘러싸고 있는 돌담
위에서 내려다본 도리사
도리사 제일 위쪽에 있는 주차장 뒤 송림 숲에는 쉼터가 예쁘게 조성되어 있다. 우리 아이들 앉혀 놓고 산행을 다녀온 흔적을 설명하면 딱 좋겠다.
날씨가 흐려 조망이 좋지 않다. 그래도 풍경은 일품이다. 보이는 것 만큼 아름답게 담지를 못해 늘 아쉽다.
도리사의 서남쪽에는 ‘서대’라는 망대가 있다. 아도화상이 도리사를 짓고 나서 이곳에 올라 바로 보이는 황악산 중턱에 절을 지을 좋은 자리가 있다고 손가락으로 가리킨 곳에 절을 지으니 바로 김천 직지사(直旨寺)이다.
2부. 태조왕건의 역사가 서려 있어 일명 태조산이라 불리는 냉산 산행기
쉼터가 있는 공간을 가로질러 올라가면 흐름한 산행 안내판이 하나 나온다. 그쪽으로 올라가면 정상으로 간다.
안부에 다다라 정상으로 가다보면 돌무더기가 하나 나온다. 이 돌무더기를 지나 조금만 가면 정상이다. 저 앞에 보이는 봉우리가 정상이다.
냉산 정상엔 표지석도 정상석도 돌무더기도 없다. 나무에 매단 표식이 정상을 말한다.
정상 인증
안내판의 글씨가 다 닳았다.
도리사에서 500m 올라오면 처음으로 안부와 맞닿는다. 동쪽으로 200m 가면 정상이고 금수굴 방향으로 산행을 이어가자면 다시 이 길로 돌아온다.
소나무의 우람한 위상을 느끼며...
정상에서 800m 쯤 능선을 따라오면 첫 번째 이정목이 있는 삼거리를 만난다. 여기서 왼쪽으로 내려가면 산악레포츠 공원으로 가는 임도를 만나고 계속 능선을 따라가면 활공장과 금수굴, 태조산정으로 간다. 도리사 주차장에 주차를 한 경우에는 능선 길을 따라 태조산정과 금수굴을 탐방한 후 임도를 따라 내려와 이쪽으로 다시 올라오면 원점회귀가 수월하다.
위 삼거리에 있는 이정목이다. 태조산정과 금수굴을 탐방 후 임도를 따라 내려오다가 산악레포츠공원 방향으로 다시 올라오면 도리사로 가는 길이 쉽다.
역시 위 삼거리에 있는 안내판이다. 태조산정에서 임도를 따라 내려오다가 현위치에서 내려오는 길로 0.3km 다시 올라가서 도리사로 회귀한다.
능선을 따라가다 보면 보이는 채석장
지나온 능선 길. 앞 봉우리 뒤에 있는 봉우리가 정상. 돌무더기는 앞 봉우리에 있었던 것 같다.
능선 길은 온통 소나무 숲으로 뒤덮여 있고 평탄한 오솔길이 연이어진다.
패러글라이딩 활공장으로 가기 직전에 있는 이정목.
저 멀리 냉산 정상이 보인다.
패러글라이딩 활공장.
활공장에서 바라본 낙동강 물길
좀 더 당겨보고...
듬성 듬성 있는 평화로운 농촌 마을이 정겨워 더 당겨본다.
활공장에서 금수굴로 내려간다.
활공장에서 내려가면서 구름과 파도처럼 넘실대는 산마루를 놓치지 않는다.
활공장으로 내려오는 길섶에 식재되어 있는 것 같아 보였으니 아마 좀작살나무가 아닌가 한다.
활공장에서 내려오면 사거리에 이정목이 나온다. 여기서 먼저 금수굴부터 다녀오는 것이 낫다. 금수굴 갔다가 다시 올라와 태조산정을 가서 임도를 따라 오면 된다. 난, 여기서 태조산정을 먼저 가고, 다시 이리로 돌아와 금수굴을 갔다가 동편 임도길로 바로 나갔다.
태조산정에 오면 조망이 아주 훌륭하다. 난, 여기서 점심을 해결한다.
더 높은 활공장에서 본 풍경이지만 가까이서 보니 더 정겹다.
경사가 급해 내려가는 길을 나무 턱을 걸쳐 놓았으나 낙엽이 쌓여 매우 미끄럽다. 왼쪽에 보이는 바위가 금수굴이다.
아도화상이 입적한 금수굴이다.
커다란 단일 바위 아래 사람이 들어갈만한 공간이 있다. 당시에는 아마 누구도 근접하기 어려운 곳이었으리라...
금수굴 탐방 후 올라가는 길
금수굴에서 올라와 임도로 내려간다. 여기서 태조산정까지가 임도 끝자락이며 이제 임도를 따라 끝까지 걸을 작정을 하고 간다.
해마다 산악자전거 경연대회가 개최되는 곳이라 임도가 상당히 깔끔하게 정리되어 있다.
멀쩡한 소나무를 왜 잘랐는지 이해가 안 되네. 실없이 자르진 않았을테고 뭔가 이유가 있었지 싶은데... 아까운 생각이 많이 드네요. 루이지애나재선충이라면 이렇게 처리하지는 않았을테고...
길 좋다.ㅎㅎ 이 길을 따라 혼자 유유자적하게 거추장스러운 것 모두 벗어 던지고 아무 생각없이 걷는다.
저기 보이는 길따라 하염없이 걸을 작정이었는데 다행하게도 도리사로 쉽게 갈수 있는 길목을 만난다.
만약 도리사에 주차하고 나와 같은 코스로 산행을 하였다면 임도를 따라 오며 만난 산악레포츠 공원으로 가는 이 이정목을 놓치면 안된다.
여기서 정상까지 1.1km를 나타내니 도리사로 가는 능선길을 만나자면 약0.3km 쯤 올라가면 된다. 여기는 능선길까지 거리가 표시되어 있지 않으니 능선길과 만나자면 대략 30분 정도만 올라가면 될 것 같아 이쪽으로 방향을 급선회 한다. 임도를 따라 제1주차장으로 가면 도리사로 가는 여정이 험난하다. 여기서 정상으로 가는 길로 올라가야만 한다.
임도를 버리고 오르막길을 좋아하지 않는 내가 오르막 산길을 택해 올라간다.
오르막 된비알이었지만, 몇 번 숨고르고 가다보니 바로 이곳이 나온다. 여기는 정상에서 능선을 타고 가면서 처음 만났던 이정목이 있는 삼거리다. 그러니까 임도에서 300m만 올라오면 된다. 탁월한 선택이었다.
조그만 딱다구리 한 마리가 얼마나 나뭇가지를 쪼아 대던지 따다닥 따다닥 쪼아대는 소리가 그저 반갑기만 하다. 아무도 없는 산길이라 그런지 더욱 정겹게 들린다.
처음 도리사에서 올라왔던 정상 아래 삼거리 안부에 도착했다. 곧 바로 가면 정상, 오른쪽으로 가면 도리사로 내려간다.
버섯 종류 같은데 이름을 알아봐야겠다.
주차장 위 송림 쉼터가 나오고...
서대 전망대로 또 가서 낙동강을 배경으로 조망을 한 번 더 하고...
쉼터가 있는 송림숲이 너무 좋아 셧트를 계속 눌러댄다.
처음 서대부터 먼저 왔으나 나중에 다시 돌아와 유홍준의 낙동강 감상을 담아본다.
서대에서 바라본 풍경
역시 서대에서...
서대전망대에서 주차장으로 나오는 길의 송림 숲에서 우거진 송림 하늘을 바라보며 산행기를 마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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