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탄절! 계방산 심설산행
- 크리스마스트리로 가득찬 계방산 겨울나무는 귀천이 없더라. -
■ 언제 : 2014. 12. 25.(목)
■ 어디로 : 계방산[桂芳山] 높이 1,577m
위치 : 강원도 평창군 진부면(珍富面)과 홍천군 내면(內面) 사이에 있는 산
■ 누구랑 : 아내(산악회와 동행)
■ 준비물
☞ 점심 도시락지참, 카메라(여분 배터리), 스마트폰(여분 배터리)
☞ 아이젠, 스패츠, 배낭(필수), 스틱2개, 선글라스 또는 고글, 등산화, 물통(필수), 자켓(방풍, 방수가 가능한 긴팔), 여벌옷, 비옷, 모자, 장갑, 렌턴, 손수건, 여분 양말, 신분증, 비상식(행동식) 등
■ 산행 경로 : 운두령 쉼터 – 0.7km - 1166봉 – 2.6km - 1492봉 – 0.8km - 계방산 정상 - 1.9km -
옹달샘 – 3.5km - 이승복 생가(2야영장) - 1.2km – 아랫삼거리
아래 개념도로는 대략 10.7km이나 추정거리는 11.5km쯤 될 듯함.
■ 산행 지도
계방산 개요 <펌> 계방산 사이트
♣ 해발 1,577m의 계방산은 태백산맥의 한줄기로 동쪽으로 오대산을 바라보고 우뚝 서 있으며, 한라, 지리, 설악, 덕유산에 이은 남한 제 5위봉이다. 계방산 서쪽에는 남한에서 자동차가 넘는 고개로서는 꽤나 높은 운두령(해발 1,089m)이 있으며, 북쪽에는 수미상의 반달곰이 서식한다는 깊은 골짜기 을수골이 있고, 남쪽에는 몸에 좋다는 방아다리 약수와 신약수 등 약수가 두 곳이나 있다. 계방산은 각종 약초와 야생화가 자생하는 곳으로, 특히 산삼이 유명하여 사철 심마니들이 모여드는 곳이기도 하다. 또한 이산에는 회귀목인 주목, 철쭉나무들이 군락을 이루며 자라고 있는 곳으로 산세가 설악산 대청봉과 비슷하며, 이 일대가 생태계 보호지역으로 지정될 만큼 환경이 잘 보호되어 있는 곳이다.
계방산은 겨울철에만 만끽할 수 있는 환상적인 설경이 이른 3월 초순까지 이어져 등산인들에게 인기를 더하고 있다. 여기에다 어지간한 산 높이에 해당되는 해발 1,089m의 운두령에서 정상까지 표고차가 488m에 불과하기 때문에 크게 힘들이지 않고도 오를 수 있다는 장점을 가지고 있다. 이 산 정상에 오르면 백두대간 등줄기를 한 눈에 볼 수 있어 인근에서는 최고의 전망대로 손꼽히는데 북쪽으로 설악산, 점봉산, 동쪽으로 오대산 노인봉과 대관령, 서쪽으로 회기산과 태기산이 파노라마를 연출한다.
흔적
‘성탄절에 산으로 가는 것이 어떨까요?’ 이번에도 아내가 제안을 했다. 생각지도 않았는데 참으로 멋진 발상이다. ‘성탄절에 산행을 한다.’ 그것도 강원도 먼 곳까지 심설산행을 감행한다. 그렇다면 성탄절 선물로는 이보다 더 큰 선물이 없다. 생각이 여기에 미치자 아내에게 흔쾌히 OK사인을 보냈다. 아내는 사인을 받은 뒤 곧 바로 산악회에 신청을 했다. 산행지는 우리나라에서 한라-지리-설악-덕유에 이어 다섯 번째로 높은 산으로 겨울 설산이 백미인 강원도 평창군과 홍천군에 걸쳐있는 계방산이다. 계방산은 산악회에서는 초급이라고 소개를 하였지만, 아무래도 그리 만만하게 볼 수만은 없을 것 같다. 아무리 해발 고도가 높은 운두령에서 출발한다고 해도 그래도 우리나라에서 다섯 번째 높은 산이고, 게다가 심설산행인데 그리 만만하게 길을 열어 주지는 않을 것이다. 이번 산행은 단단히 각오를 하고 따라 붙어야 할 것 같다.
계수나무 향기(桂芳)가 진하게 느껴진다 하여 이름 붙은 계방산(桂芳山)은 명실공히 우리나라에서 다섯 번째 높은 키를 자랑하는 높은 산이다. 그러나 계방산은 높은 키에 비해 그다지 힘들지 않게 산행을 할 수 있다는 특별한 이점을 안고 있는 산이다. 그 이유는 해발 1,577m 높이의 산을 해발 1,089m의 운두령에서 시작하니 정상까지 표고차가 확연하게 줄어드는 편리함이 있기 때문이다. 운두령 고갯마루에서 정상까지 표고차가 겨우 488m에 불과하니 웬만한 산객들도 어렵지 않게 드나들 수 있다. 운두령 고개는 차량 이동이 가능한 우리나라에서 두 번째로 높은 고갯마루다. 첫 번째는 함백산 고갯마루인 만항재가 우리나라에서 차량 이동이 가능한 가장 높은 고개라 알고 있다. 작년 겨울에 아내랑 자차를 이용해 만항재에 주차를 하고, 하얀 눈으로 범벅이 된 함백산을 다녀온 즐거운 추억이 있던 곳이기도 하다.
운두령 고갯마루에 내리니 기온이 몹시 차다. 차 안에 있던 등산 스틱의 손잡이에 매달려 있는 줄이 차에서 내리자마자 뻣뻣해 지기 시작한다. 어젯밤 일기예보에 의하면 오늘 강원도 횡성을 비롯해 평창, 홍천군 일대는 한파주의보가 내렸다. 매서운 칼바람에 고생 꽤나 하겠다 싶어 단단히 각오를 했던 터라 무장을 단단히 했더만, 의외로 기온은 낮아도 걱정만큼 그렇게 세찬 칼바람이 몰아치지는 않았다. 다행히 일기예보와 달리 계방산 현장 날씨는 그렇게 우려할 정도는 아니었다. 그러나 스틱의 손잡이 줄이 굳어 버리고 귀가 따가운 정도로 보아 계방산의 냉랭한 겨울산을 결코 만만하게 보아서는 안 될 것 같다.
계방산은 앞서 얘기 했듯 우리나라에서 서열 다섯 번째로 높은 산이다. 허나 계방산이 높은 산임은 분명하지만, 그 높이에 비해 산객들로 하여금 위축되지 않고 너나 할 것 없이 쉽게 오를 수 있는 길을 열어 주는 고마운 산이다. 특히 계방산 서쪽에는 자동차가 넘나들 수 있는 해발 1,089m의 운두령이 있어 거개의 산꾼들은 이곳을 들머리로 출발을 한다. 우리를 싣고 온 차량 역시 운두령을 시작으로 두 개의 고봉을 넘어 정상을 찍고 주목군락지를 지나 노동계곡으로 내려오는 코스로 정해져 있다. 산행 과정을 기록하다보면 내용이 두서없이 전개될 수 있어 지금부터 지나온 흔적을 코스별로 나누어 그때그때 떠오른 계방산 산행의 감흥을 피력하고자 한다.
산행 첫머리는 운두령을 시작으로 1,492봉까지 길게 잡아 본다. 먼저 운두령에서 대략 0.7km쯤 가면 1,166봉이 나온다. 이 길은 짧은 나무계단을 올라서자마자 곧 능선으로 길이 이어지는데 대체로 쉽고 평탄한 길이며, 초반에 몸을 풀면서 워밍업하기 딱 좋은 길이다. 이 길은 물푸레나무 군락이 이어지는 길로 지금까지 많은 산을 다니며 물푸레나무가 듬성듬성 눈에 띈 곳은 보았지만, 여기처럼 물푸레나무가 군락을 이룬 곳을 다닌 기억은 없다. 역시 강원도 산은 뭐가 달라도 다르구나 라는 느낌을 받으며 마치 도인이라도 된 냥 가볍게 발걸음을 옮기며 유유자적하게 눈으로 덮인 산길을 간다. 운두령에서 1,166봉까지는 아무리 지대가 높은 강원도라 해도 눈이 내린지 꽤 되었는지라 아직까지는 기대했던 설화나 상고대는 만날 수 없었다. 하지만 계방산이 어떤 산이던가? 겨울 눈꽃 산행으로 우리나라에서 두 번째 가라면 서러운 유명한 설산이 아니던가? 아직, 시작에 불과하니 기대치를 저버리지 않고 등로에 가득 쌓인 눈을 밟으며 사뿐사뿐 걸음을 옮긴다. 시작부터 묵직한 등산화로 사각사각 눈을 밟는 촉감이 아주 좋다.
1,166봉에서 1,492봉까지는 대략 2.6km에 달한다. 이 코스는 지금까지와는 달리 땀을 좀 흘려야 된다. 들머리인 운두령에서 약 2km 정도는 순한 능선 길이나 1,492봉으로 가는 1km가 넘는 길은 깔딱고개를 비롯해 힘을 좀 써야 하는 구간이다. 지금까지는 비교적 여유롭게 왔는데 1,492봉이 가까워 질 수록 발걸음이 무거워 진다. 더구나 경사가 급할수록 칼바람은 아니어도 기온이 낮아 중등산화를 신었음에도 발끝이 시리고 귀가 따가워 겨울 군밤장수 할배가 쓰는 모자를 턱까지 당겨 밸크로를 단단히 채웠다. 그러나 시린 발끝은 어찌할 방법이 없어 그냥 참고 갔다. 예비로 등산 양말을 아내꺼랑 한 켤레 더 챙겨 갔지만, 한 켤레 더 신었다간 오히려 더 불편할 것 같아 발이 시려도 그냥 갔다.
1,166봉을 지나 1,492봉으로 가니 그동안 잠잠했던 눈꽃이나 상고대의 모습이 점차 그 진면목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더 높이 올라갈수록 빈가지에 맺힌 상고대와 눈꽃은 겨울나무의 진가를 유감없이 발휘한다. 비로소 계방산이 자랑하는 겨울 설산이 제대로 된 모습을 자랑하기 시작한 것이다. 오늘 계방산 심설산행의 주목적은 사실상 이런 모습을 보기 위해 온 것이나 다름없다. 이번 주는 비교적 포근한 날씨였던지라 기대를 한 만큼 눈꽃을 보기가 쉽지 않으리라는 생각과 기온이 워낙 낮은 지대이다 보니 어쩌면 기대 이상으로 눈꽃 장관이 펼쳐져 있지 않을까 하는 마음이 내내 교차되고 있었다. 그런데 막상와서 보니 기대 이상으로 엄청나게 황홀한 광경을 연출하고 있었다. 올라갈수록 전개되는 눈꽃 향연의 환상적인 분위기는 이 추운 겨울에도 산을 오르는 이들의 마음을 한 순간에 앗아가 버리기에 충분했다. 넋을 잃고 바라보노라니 이 상황에서 과연 순백의 겨울이 아름다운지, 이 아름다움에 도취되어 버린 산객의 마음이 아름다운지 분간이 가지 않는다. 이 순간 계방산에 있는 자연은 모두 아름다울 수밖에 없다. 순백의 고산이 그린 자연도 이 상황을 맞이한 산객도 모두 아름답기는 매일반인 셈이다. 천지가 백으로 변한 겨울 계방산처럼 이참에 우리도 마음을 새하얗게 비우자. 아내도 나도 속을 하얗게 순백으로 치장하고 지금까지의 삶이 아닌 아직 남아 있는 생을 위해 새롭고 깨끗하게 아름답고 이쁜 그림을 다시 그리자. 여보시오. 우리 그렇게 한 평생 살아 가세나.
아내의 볼때기가 볼그스레하다. 역시 깔딱고개를 오르기란 쉽지 않다. 가쁜 숨이 차오르기 시작하더니 호흡이 거칠어지기 시작한다. 볼그스레한 볼을 한 아내는 그래도 크게 힘들이지 않고 잘도 가더구만, 나는 역시 오르막길은 최악이다. 그러나 비록 힘은 부쳐도 주변 풍경이 너무 환상적이라 지금 내가 도대체 어디에서 무엇을 하고 있는지 그야말로 꿈결 같은 행복감에, 지친 몸도 살을 에이는 듯한 추위도 아랑곳 하지 않는다. 겨울 심설을 자랑하는 계방산에 있다는 자체가 행복이고 그 행복이 오늘 우리 부부에게 만사를 평화롭게 만든다. 힘든 것도 순간이다. 여기에 오면 순백의 자연이 때묻은 심신을 모두 치유한다.
오늘 산행 여정은 깔딱고개를 넘어 1,492봉에 오르는 것으로 힘든 과정은 거의 끝났다고 보면 된다. 1,492봉에서 무려 1,577m에 달하는 계방산 정상까지는 0.8km에 불과하다. 그것도 완만한 능선을 따라가면 정상에 도달한다. 보통 정상 턱 밑에서 정상까지는 있는 힘을 다 쏟아 부어야 하는 마지막 난제가 남아 있기 마련인데, 의외로 고산인 계방산의 정상은 순순하게 길을 내어준다. 그것도 갈수록 더욱 짙어지는 설화와 이쁜 상고대의 모습을 덤으로 내어 주면서 말이다. 겨울 계방산은 이렇게 우리 부부를 순백의 아름다움으로 포장한 채 반갑게 우리를 맞이해 주었다.
1,166봉이나 쉼터, 1,492봉에서 바라보는 조망도 더 없이 좋았지만, 역시 조망은 정상에 서야 제 맛이다. 이 맛과 느낌을 가지고자 산꾼은 정상에 오르는 것이 아닐까? 정상에서 바라보는 태백준령과 백두대간의 산그리메를 발 아래 두고 보는 순간 가슴이 뭉클해 진다. 산은 비록 잿빛을 하고 있었지만, 언제나 그래 느꼈듯이 겨울산은 속이 훤히 들여다보이는 그 잿빛이 좋다. 거추장스러운 옷을 모두 벗어 던진 겨울 산은 이쁜 아낙의 벌거벗은 몸뚱이보다 더 아름답다. 난, 이처럼 겨울산 정상에 서면 발아래 펼쳐진 파도처럼 다가오는 산맥이 그리는 그림이 좋다. 물론, 누구나 그렇지 않은 산꾼이 있으랴 만은, 만약 내가 그림 꽤나 그린다면 난, 산에 올라 늘 이 모습을 수묵으로 나타내고 싶다. 이참에 그림이나 좀 배울까? 높은 산에 올라 아내가 지켜보는 가운데 퉁소 한번 불고 붓으로 하얀 종이에 그림을 그릴 수만 있다면 말해 뭣하겠는가? 그게 곧 신선놀음인 게지.
정상에는 우리 일행 중 한 팀이 아직 남아 있었다. 우리가 꼴등이라 마음이 쓰였는데 다른 일행이 남아 있는 것을 보니 다소 위안이 되었다. 우리 뒤에 한 팀이 아직 남았다는 사실에 우리는 마음에 여유가 생겼고, 다소 느긋하게 자동차야영장 방향으로 이동을 했다. 자동차야영장으로 가는 길은 주목삼거리로 가는 길이라 계방산에 오면 놓쳐서는 안 될 꼭 거쳐야 하는 길이다. 물론 정상에서 종착지점인 아랫삼거리까지 가는 길은 두 갈래 길이 있다. 우리 일행이 가야 하는 좀 더 길고 먼 1코스와 좀 더 빠르고 짧은 2코스로 빠지는 길이 있다. 2코스로 빠지면 시간은 많이 단축되지만, 주목군락을 만날 수 없고, 노동계곡의 비경을 비켜가니 정상에서 아랫삼거리까지 가는 산객이라면 우리가 간 1코스로 내려가야 계방산의 진가를 알 수 있다. 그래야 이승복 생가도 덤으로 만날 수 있는 행운을 만난다.
정상에서 주목삼거리로 갔다. 지금부터 이어지는 길은 내내 내리막길이라 거침이 없다. 하지만 눈이 많이 쌓인 길이라 올라갈 때보다 내려가는 길이 더 위험하고 힘든다. 조심조심하면서 주목군락지로 내려가노라니 멀리 태백의 풍력발전소가 아스라이 실루엣처럼 다가온다. 마치 파도가 일렁거리는 것처럼 강원도의 고산준령이 그리는 산그리메는 여느 산에서 보는 것과는 확연히 다른 감흥을 불러온다. 그 모습에 심취해 걷노라니 일순간에 주목군락지에 도착해 버린다.
계방산의 주목군락지는 사실 크게 기대를 하지 않았다. 가이드가 산행지도를 주면서 산행코스를 설명할 때 계방산에도 주목 군락이 있었구나? 있다면 어느 정도 규모일까? 눈에 덮인 주목을 배경으로 사진을 담을 수 있을까? 주목에 얹힌 눈이 모두 녹지는 않았을까? 이런 의아심을 가지면서 왔는데 직접 와서 보니 모든 것이 기우에 불과했고, 실상은 우려했던 사항 모두를 충족하고 있었다. 주목을 덮은 눈은 아직 녹지 않고 붉은 빛을 띠고 있는 줄기와 푸른 잎을 하얀 눈이 그대로 덮고 있어 겨울 주목이 주는 신비로움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었다. 이렇게 거대한 주목 군락을 만난 건 엄청난 행운이었다. 산행 후 계방산의 주목 군락의 내력이 궁금하여 조사를 해 보았더니 계방산의 주목 군락은 지금까지 본 것과는 달리 아주 많은 신비로움을 간직하고 있었다.
홍천의 계방산은 유전자원 보호구역의 상징으로 여기고 있으며, 최근에 계방산에서 국내 최대의 주목을 발견하기도 했다. 흉고둘레가 무려 488.9㎝에 이르는 주목을 발견했으며, 가장 주목할 만 한 점은, 정선 두위봉에 있는 천연기념물 제433호, 추정 수령 1,400여 년이나 되는 주목보다 흉고둘레가 4.38m 더 큰 수치라는 점이다. 아마, 지금까지는 정선 두위봉에 있는 주목이 우리나라에서는 가장 큰 상징성을 가지고 있었겠지만, 계방산에 있는 주목이 발견됨으로써 사실상 주목의 역사는 새로운 양상을 띤 셈이다. 이 글을 쓰고 있는 본인도 산행을 즐겨하면서 우리나라에서 방귀 꽤나 뀐다는 고산의 주목을 많이 봐 왔지만, 계방산의 주목은 좀 남다르게 느껴졌다. 태백산, 함백산, 덕유산 등에서 본 것과는 달랐다. 물론 계방산 다른 곳에서는 보지 못했지만, 산행길을 거쳐 가는 주목삼거리에서 본 주목 군락은 다른 고산에서 보던 것과는 달리 고사목이 거의 없고 오래 묵었음에도 줄기와 잎이 생생하기 그지없었다. 수령에 반해 아직 젊은 피가 용솟음치는 듯 했다.
환상적인 주목군락지대를 벗어나 옹달샘이 있는 곳을 거쳐 흰 눈으로 가득 쌓인 노동계곡을 타고 무려 4km나 되는 제2야영장까지 한정 없이 걸었다. 걷는 길은 내내 흰 눈이 가득한 산길이었지만, 크게 험하거나 위험하지 않았으며 지루하지도 않았다. 다만 계방산 동쪽에 위치해 있어 그런지 주목군락지를 벗어나고부터는 설화나 상고대가 모두 녹아 올라올 때처럼 장관을 맛볼 수는 없었지만, 그래도 주변에 가득 쌓인 눈과 함께 걷노라니 지루할 틈이 없었다. 짧지 않은 먼 길을 나름대로 여유롭게 겨울 산행을 즐기면서 내려왔다.
옹달샘에서 3.5km를 내려오니 하얀 눈으로 뒤덮인 제2야영장이 나타났다. 눈이 덮여 섹타 구분이 잘 안되었지만, 야영지를 나타내는 푯말이 나무에 매달려 있어 대략 야영장의 크기와 규모가 짐작되기는 했다. 제2야영지에는 ‘나는 공산당이 싫어요.’ 하며 처참하게 죽어간 이승복의 생가가 복원되어 있었다. 반공 영화로 혹은 책에서나 접하던 이승복의 생가를 방문하노라니 참으로 묘한 기분이 떠올랐다. 우리의 처참한 역사 앞에서니 계방산을 넘어오면서 보냈던 호사로움이 일시에 사라지기도 했다. 이승복 생가의 눈에 덮인 원두막 형상을 하고 있는 화장실은 사람이 드나들기 어려울 정도로 입구가 협소했다. 겨우 짐승이나 들락거릴만한 규모로 보아 당시에는 첩첩산중에 위치한 화전민 마을과 다름없어 보인다. 현재 담장 안쪽만 이승복기념관 소관 공유재산이고 밖은 사유재산 지역이라고 한다. 앞으로 부지 매입을 서둘러 생가를 중심으로 환경개선을 해야 할 필요성이 다분하다.
이승복 생가는 용평면 노동리에 있다. 바로 계방산 자동차 제2야영장이 있는 곳이다. 이승복 생가를 벗어나 이제 최종 목적지인 일행이 대기하고 있는 아랫삼거리로 가야한다. 대략 1km 넘게 가야할 것 같다. 가는 곳마다 자리 좋은 곳은 펜션이 차지하고 있다. 예쁘게 지은 펜션에 하얀 눈까지 덮여 있어 마치 동화 마을 같다. 우리 부부도 이렇게 먼 곳은 아니라도 내가 살고 살아온 지역을 크게 벗어나지 않는 곳 쯤에서 한옥으로 지은 황토집을 짓고 어머니와 함께 여생을 보내고 싶다. 가능할는지 모르겠으나 꼭 그랬으면 좋겠다.
아랫삼거리에 도착하니 일행이 우리가 올 때를 기다리고 있었다. 주어진 시간에 8분을 지체했다. 그래도 오늘 나름대로 선방을 했다. 사진 찍고 볼 것 다보고 하다보면 주어진 시간에 갈 수 있겠나 우려가 많이 되었는데, 그럭저럭 시간을 잘 맞춘 듯 했다.
계방산의 겨울 심설산행! 백두대간의 고산준령이 발 아래 보이고, 설화와 상고대가 만발한 모습은 먼 길 찾아온 우리를 오늘 하루 호사 시켜주기에 충분했다. 온 산이 마치 크리스마스트리를 장식한 것처럼 하얗게 칠해져 있는 그 경이롭고 환상적인 길을 마음껏 걷고 누리고 왔다. 자연 앞에 인간은 미물에 불과하다는 것을 또 한 번 느끼는 순간이었다. 이런 기분에 젖다보니 문득 직업에 귀천이 어디 있고, 사람 사이에 상․하 종속관계가 왜 존재해야하는지 서글픈 생각이 든다. 능력이 있는 자는 마음껏 능력을 발휘해 그에 합당한 보상을 받고, 그에 미치지 못하는 자는 자기 능력만큼 일을 하고 그에 상당하는 몫만 받아 챙기면 될 일이다. 능력이 미치지 않는 자가 능력 있는 자를 비난하거나 탓해서는 아니 될 말이며, 능력이 있다고 해서, 위치가 높다고 해서 아랫사람을 하인처럼 거느려서는 아니 될 것이다. 사람 위에 사람 없고 사람 밑에 사람 없는 법이거늘 요즈음 뉴스거리로 연일 회자되는 불미스러운 행태는 어쩌면 세상 밖으로 잘 터진 일일지도 모른다. 아직까지 수면에 드러나지 않는 인면수심의 불미스러운 행태가 얼마나 많이 잔존하고 있겠나. 모두 이참에 다시 한 번 생각하고 행동할 일이다. 모두를 귀히 생각하고 대접하며 살아야 함이 인간이 살아갈 수 있는 원천임을 우리 모두는 알아야 한다.
계방산에는 귀한 나무도 많고 귀한 풀도 많다. 반면에 천한 나무도 많고 천한 풀도 많을 것이다. 그렇다면 과연 어떤 풀과 나무가 귀하고 천한 것일까? 차제에 스스로 자문을 해본다. 지금 현재 계방산에는 키가 낮은 풀은 눈 속에 묻혀 존재 자체도 드러내지 못하지만, 나무는 그래도 눈 속에 파묻히지 않고 눈 위로 솟아있다. 물론 이 중에도 귀한 나무가 있고 천대 받는 나무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내 눈에는 상고대를 달고 있는 겨울나무의 모습이 하나 같이 이쁘지 않은 애들이 없다. 모두 똑 같이 예뻤다. 여기에서 나무의 수종과 연륜은 아무런 비교 대상이 되지 않았다. 모두가 다 같이 예뻤기 때문이다.
‘계방산 겨울나무는 귀천이 없더라.’ 오늘 산행이 내게 준 산행 교훈이다.
사진으로 보는 계방산 심설산행기
계방산 정상(1577m)/ 장갑낀 손이 우둔하여 카메라 조작이 잘못 조정되는 바람에 좋은 사진 많이 놓쳐 아쉽기 짝이 없다. 어휴, 계방산에 언제 다시 올거라고 귀중한 장면을 이렇게 어리석게 놓치다니 참 어이가 없다. 하지만, 이만큼이라도 건졌으니 다행이라 여겨야겠다. 함께 찍은 사진은 노출이 심해 쓸모가 없어져 버렸다.
우리를 싣고 온 차량은 홍천군 내면에 있는 운두령 고갯마루에 내렸다.
우리나라에서 두 번째 높은 차량이 이동 가능한 고갯마루 운두령이다. 해발 1,000고지가 넘는다. 들머리가 운두령 고갯마루 쉼터에서 시작되니 계방산이 우리나라에서 다섯 번째 높은 산이라 하더라도 별 부담없이 겨울 심설산행을 즐길 수 있다. 나무계단을 올라서면 곧 능선으로 이어지는 완만한 길이 나타난다. 정상까지는 외길 수순이며, 갈림길이 없다. 그러니 길을 잃어버리거나 헷갈려 할 이유가 전혀 없다.
자, 이제 서서히 출발을 해볼까요. 아내를 비롯해 일행들이 출발하기 시작했다. 우리는 정상을 넘어 주목군락지를 경유해 노동계곡으로 하산하여 아랫삼거리까지 가야 한다. 대략 거리는 11.5km에 달하나 주어진 시간은 5시간이다. 원래 4시간 코스로 1시간을 더 준다고 하나 초급자를 모아 산행하는 코스이니 5시간 코스로 보고 6시간을 주어야 웬만큼 여유 있는 산행을 즐길 수 있을 것 같다. 계방산이 주는 즐거움을 만끽하고 가자면 시간을 더 넉넉하게 주어야 할 것 같다. 산행 종료 시간이 16시 까지인데 우리는 16시 08분에 도착했다. 즐길만큼 충분히 즐기면서 나름대로 선방을 한 편이다.
나무 계단에 올라 운두령 임특산물 홍보과관이 있는 운두령 고갯마루를 배경으로 서쪽 산을 담았다.
시작부터 능선길은 흰 눈으로 뒤덮였지만, 나뭇가지에는 아무것도 없는 빈가지만 덩그러니 하늘을 바라보고 있다.
다행히 바람이 드세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기온이 낮아 귀가 시리다. 빈가지 사이로 흰눈으로 뒤덮인 정상부가 보이고 나뭇가지에는 서서히 상고대가 맺혀 있는 모습이 보인다.
운두령에서 불과 얼마되지 않는 곳에 물푸레나무 군락지가 나온다. 산행하면서 물푸레나무는 자주 보지만, 이렇게 군락을 형성하고 있는 곳은 아직까지 본 적이 없다.
주변이 온통 물푸레나무다. 물푸레나무 사이로 산객이 밟고 간 등로를 함께 밟으며 간다.
거제수나무도 심심찮게 보인다.
잎이 떨어진 틈 사이로 정상부가 보이기는 하는데 아직까지 당체 시원하게 보여주는 맛이 없다. 잎이 무성한 계절이면 올라가면서 이런 모습을 볼 수도 없을 것이다. 겨울산은 그래서 좋다.
서서히 빈가지에 이슬처럼 맑은 가녀린 상고대의 모습이 나타나기 시작한다.
위로 갈수록 상고대의 모습이 더욱 진해진다.
아니, 이게 무슨 그림인고... 웬만하며 이 정도 가녀린 상고대는 모두 녹았을텐데 기온이 얼마나 차갑길래 녹지 않고 이런 모습으로 우리를 반긴단 말인가? 서서히 황홀경으로 빠져 들기 시작한다.
쉴 자리로는 충분치 않지만 산객 중 일부는 여기서 사진 촬영하느라 여념이 없다.
이크, 이게 뭔 그림인고... 순간 할 말을 잃고 넋이 빠져 나간다. 이 장면을 고대했던 것이 아닌가?
가녀린 나뭇가지에 감당하기 어려운 눈이 덮여 고개를 숙이고 있는 모습보다 눈으로 떡칠한 모습보다 이 모습이 훨씬 정갈하고 이쁘다.
깔딱고개를 올라가고 있는 모양이다. 계방산은 운두령에서 대략 2km쯤은 쉽고 너끈하게 갈 수 있으나 2km쯤은 그래도 각오하고 올라가야 한다. 초급이라하나 결코 초보코스로 만만하게만 보아서는 안 된다.
오르막만 나타나면 쥐약이다. 낑낑거리며 가쁜 숨을 몰아 쉬며 올라간다.
먼저 올라간 아내가 포즈를 요구하자 멋적은 모습으로 손을 들어본다.
우와, 갈 수록 점입가경이다. 완전 환상 + 황홀 + 무아지경 + 붙일 거 뭐 더 없나... 지금까지 본 상고대 중 최고다.
하늘 보고 찍고
이리 찍고
저리도 찍는다. 일행들은 벌써 저만큼 가고 없는데 우리는 이러고 있다.
쉼터까지 왔다. 오르막 구간을 올라왔지만, 전망대까지 아직 본격적인 깔딱고개가 남아 있다.
운두령에서 쉼터까지 2.2km다. 아직 계방산까지 2.6km 남았다.
쉼터에서 올라갈수록 가지에 붙은 눈이 굵어진다.
대충 셔터만 눌러도 환상적인 그림이 나온다.
모두 씩씩하게 잘도 올라간다.
난, 이 그림이 언제 끝날지 몰라 갈 생각은 않고 이러고 있다.
이쯤에서 힘도 드는데 잘됐다 싶다. 이러고 놀다보면 힘도 덜든다.
무릉도원이 이러한가 천상으로 가는 길이 이러한가? 오늘은 우리가 도인이고 발길 닿는 곳이 천상이다.
너무나 황홀한 광경에 취해 버린 아내도 오늘은 전혀 길을 재촉하지 않는다. 장갑낀 손이 어둔하여 사진기 모드가 엉뚱하게 돌아갔는지도 모르고 셔터만 눌러댔더니 정상 사진을 비롯하여 정말 좋은 사진을 많이 놓쳤다. 노출이 심해 대략 4~50장의 사진을 버렸다. 놓쳐 버린 사진이 더 멋진 것 같아 아쉽기만 하다.
그래도 아내가 스마트폰으로 여기저기 찍은 사진이 좋은 것이 많아 그나마 다행이다.
참으로 숙연하고 멋진 장면이다. 이 역시 아내의 스마트폰에서 나온 사진이다. 그래도 카메라가 해상도가 더 좋은데 내 카메라 사진은 이런 장면을 많이 버렸다.
난, 겨울산에 오면 이런 장면을 제일 좋아한다. 뭐라고 해야할까? 자연에 순응한 본래의 모습이라고 할까 아니면 지고지순한 대자연의 섭리라고 해야할까? 아무 생각이 없다. 그저 가슴이 뻥 뚫리는 순간이다.
에이, 배경은 기가막힌데 인물이 작품버렸네. 이 사진은 없애삐까? 그래도 인물 사진이 너무 없어 남겨야겠다.
마치 목화솜 같이 덕지적지 붙어 있는 모습도 괜찮네. 이 정도면 눈꽃으로 봐야 하겠지. 꽃보다 예쁘다.
내린 눈이 가지에 얼어 붙었다. 기온이 낮아 웬만해서는 녹지 않을 것이다. 원래 계방산의 눈꽃이 유명하기로는 한번 눈이 내리면 녹지 않는다는 점이다. 그만큼 기온이 낮다는 얘기다.
자, 지금부터는 말이 필요 없습니다. 사진은 잘 찍는 솜씨가 아닙니다만, 배경이 워낙 좋아 사진은 절로 만들어 졌습니다. 말없이 오른쪽 스크롤바만 내려 그림만 볼까요.
정상 사진은 아내를 배경으로 담은 것이 유일하다. 카메라 조작하는 부분이 마음대로 돌아간 것을 모르고 찍어 사진을 많이 버렸다. 아쉽다.!
정상에서 계단으로 가면 계방산의 '주목'과 노동계곡을 볼 수 없다. 우리는 이정목을 보고 자동차야영장 쪽으로 이동했다.
저 멀리 설악산도 보이는 모양이다. 난 어디가 어딘지 잘 모르겠다.
벌거벗어 보기가 흉하나요. 난, 개인적으로 겨울산의 가장 큰 매력은 바로 이 모습이랍니다. 태백쪽으로 풍력발전도 보인다. 사진보다는 눈으로 더 잘 보였는데~ 카메라의 한계라 해야하나~
저 능선을 타고 간다.
지나온 정상부를 바라보며
거쳐온 정상
정상에서 0.6km 오니 주목군락지가 나온다.
자, 드디어 기대하던 주목군락지에 도착했다.
계방산에서 지금 현재 흉고가 가장 넓은 주목이 최근에 발견되었다고 한다.
높은 산, 천년 세월을 넘긴 주목을 보노라면 그저 가슴이 먹먹하기만 하다. 계방산 주목은 수령도 오래되었을 뿐만 아니라 지금까지 고산에서 본 주목들과는 달리 줄기도 가지에 잎도 가장 싱싱하고 풍성하다.
보통 천년 이상이 된 주목은 고사목으로 변해 죽어 천년 세월을 보내더만, 계방산 주목은 아직 건장하기 짝이 없다.
저, 붉그죽죽한 건장한 모습을 보라. 아직 장년 아니 청년 주목보다 더 건강한 모습이다
아쉬운건 주목 주변에 다른 수목이 많아 독사진 찍는 데 영 애로가 많다.
일주일 전에 주목에 내린 눈인 것 같은 데 기온이 워낙 낮아 아직까지 녹지않고 덕지덕지 붙어 있다.
주목에 쌓인 눈이 전혀 녹지 않고 있다. 오늘 햇살에도 아무런 영향을 받지 않을 것 같다.
주목에 살포시 내려 앉은 하얀 눈을 보는 것은 오늘 이 길을 간 사람만이 누리는 고유 권한이다.
태백산맥을 바라보고 섰는 주목이 압권이다.
분비나무
우람한 분비나무의 모습. 알고보니 계방산엔 분비나무도 참 많다.
눈에 덮인 옹달샘.
눈에 뒤덮인 노동계곡
나무 숲 사이로 흰 눈을 밟으며 가는 아내의 모습을 보니 더 이상 세상 부러울 것 없다. 최고와 최대의 행복이다.
제2야영장이 나온다. 계방산 등산로 운두령 반대쪽 들머리가 되는 곳이다. 이쪽으로 올라가면 에휴, 고생 꽤나 각오해야 될 걸요.
제2야영장 캠프장 모습
제2야영장 한 켠에 이승복 생가가 복원되어 있다.
화장실 입구가 너무 낮아 꽤 불편했을 듯~
화장실
이승복 생가를 지나 이제 일행이 대기하고 있는 아랫삼거리로 간다.
야영장을 가로질러 왔더니 발이 무릎까지 푹푹 빠진다.
겨울 캠프를 즐기고 있는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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