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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부회

2019. 1월 육부회 정기 모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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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 1월 육부회 정기 모임



■ 언제 : 2019. 1. 14.(월) ~ 1. 15.(화) 1박 2일


■ 어디로 : 고군산군도, 군산근대문화유적 탐방

    1일차 : 거창휴게소 집결 - 진안마이산휴계소 - 장자도 어촌계횟집 점심 - 대장도, 장자도, 선유도 탐방 - 군산 시내

              갈비집에서 저녁 - 은파호수 공원 - 숙소

    2일차 : 군산 근대문화유적 탐방

              옛군산세관 - 군산근대역사박물관 - 근대미술관 - 초원사진관 - 일본식 가옥 - 점심(갈치찜) - 이성당 빵집 -

              금강철새조망대


■ 누구랑 : 여섯부부



 

 

언제 : 2019. 1. 14.()~15.()

어디로 : 고군산군도, 군산 일대

첫날 : 고군산군도 탐방, 군산 차칸호텔 1

이튿날 : 군산근대문화유적지 탐방

누구랑 : 육부회 여섯 부부 12

 

 

흔적

 

14, 첫날

 

지난 번 팔공산 모임 때 겨울 정기모임은 군산으로 낙찰 봤다.

고군산군도와 군산근대문화유적지를 탐방하기로 한 것이다.

1차 집결을 위해 10시 남짓 거창휴게소에서 만나기로 했다.

12명이 움직이자니 차량 3대가 움직이는 것은 기본이다.

이번엔 박시*, 고봉*, 장창*, 이 세 사람이 운전했다.

장거리 운전이라 고생이 많겠다.

 

10시쯤 되니 모두 정확하게 모였다. 다들 시간관념이 철두철미하다.

휴게소에서 차 한 잔 나누는 동안 회장님이 일정을 설명했다.

집집이 프린터 해온 유인물을 나누어 주며 친절하게 안내했다.

내용을 보니 여물게 준비하고 알뜰살뜰 준비한 냄새가 역력하다.

 

일정 설명을 들은 후 진안 마이산 휴게소에서 만나기로 하고 장도에 올랐다.

지루한 시간이지만 두 부부가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며 가노라니 생각보다 지겹진 않았다.

자식들 얘기며 저마다 살아가는 얘길 하면서 웃고 즐기다보니

어느 틈에 왔는지 고 대감이 마이산 휴게소 앞에 차를 대고 있다.

 

휴게소에 도착하자마자 습관처럼 담배부터 한 대 피우러 가는데

나뭇잎에 눈이 살포시 내려앉은 모습이 보인다.

여기까지 달려오면서 눈커녕 이슬도 보지 못한 낯선 모습이다.

신기해서 가만히 살펴보니 눈이 아니라 서리 내린 것이

낮은 기온 때문에 얼어붙어 있었다. 이를 우리는 흔히 상고대라 부른다.

이 지역은 우리 사는 곳 보다 눈이 많이 내리는 곳이다.

휴게소에서 조금 더 가니 급기야 눈발까지 흩뿌리더니 다행히 잠시 오다 만다.

우리 사는 지역과 달리 날씨가 들쭉날쭉 한다.

 

마이산 휴게소에서 잠시 쉬고 고군산군도까지 직행했다.

이 길은 지난 번 퇴직자 연수 때 장 대감과 한 번 다녀간 길이다.

한 번 다녀간 길이라 그런지 낯설지 않고 눈에 익었다.

다녀 간지 불과 2개월 남짓이고

더군다나 난, 여행기까지 낱낱이 기록을 했으니 아직까지는 머릿속에 각인되어 있을 수밖에 없다.

시간만 충분하다면 장 대감과 같이 갔던 곳만큼이라도 모시고 다녔으면 좋겠더라만,

보아하니 그 정도 시간적인 여유는 없을 것 같다.

 

고군산군도에 도착한 우리는 먼저 군도의 끝머리에 있는 대장도 어촌횟집으로 갔다.

차는 장자도 주차장에 주차하고 대장도로 이어지는 횟집까진 부두를 따라 걸었다.

장 대감과 지난 번 여기 왔을 땐 이 길은 가지 않았던 길이다.

장자도에서 선유도로 이어지는 길과는 반대 방향이니 걸었을 리가 없다.

가지 않았던 길이라 그런지 처음 본 동네처럼 생소하고 바다 내음이 싱그럽다.

 

어촌 마을은 볼 때마다 서정적이고 포근하다.

여행자의 관점에선 누구나 그럴 것이다.

질박한 삶을 살아가는 주민들껜 미안한 얘기지만

여행자가 바라보는 시선은 그저 정겹기만 하다.

 

이 년 전 3학년 수업하면서 교실에 곽재구의 포구기행이란 책이 꽂혀 있는 것을 본 적이 있다.

작은도서실이라고 학급마다 운영하는 책꽂이에 꽂혀 있던 책인데,

제목이 선뜻 눈에 띄어 수업하다말고 책을 꺼내 보았다.

책에선 뽀얗게 쌓인 먼지가 툭툭 떨어졌다. 색마저 바래져 다시 꽂아둘까 하다가

이미 포구기행이란 제목에 시선이 꽂힌지라 일단 교탁 위에 올려놓았다.

아마 현 학급 이전부터 그 반에 누군가 작은도서실 운영을 위해 갔다 둔 책 같았는데,

이미 그 책은 그 자리에서 몇 년은 더 묵었던 것 같다.

볼 품 없게 된 책을 내 자리로 가지고 와 일단 먼지부터 털고 걸레로 닦아

책을 깨끗하게 청소한 뒤 틈 날 때마다 탐독했다.

 

이 책은 작가 곽재구가 포구를 떠돌며 느낀 감성을 기행 산문으로 정리한

곽재구의 포구 기행이란 여행 산문집이었다. 작가는 이 책을 쓰면서

"과거를 회상하는 버릇은 가슴 안에 깊은 말뚝을 지닌 모든 슬픈 짐승들의 운명 같은 것"이라고 말했다.

작가는 포구 여행을 하면서 느낀 개인적인 감정과 바다 내음, 개펄,

어촌 주민들의 삶과 열정에 대한 얘기를 가감 없이 풀어나갔다.

아마, 작가가 이루지 못한 어린 시절의 꿈을 포구를 찾아 감성으로 보상 받은 것이리라 여겨진다.

 

횟집에서 산우럭매운탕으로 배를 채우고 대장도 동산을 넘어 주차장으로 회귀했다.

높지 않은 포구를 잇는 자그마한 동산이지만 명색이 섬인지라 조금만 올라서도 사통팔달이다.

그야말로 시야가 훤하다. 묵었던 체증이 단숨에 날아간다.

우리는 고군산군도의 끝인 대장도를 걸었으며,

이 길은 대장도와 장자도를 잇는 등마루다.

대장도와 장자도 두 섬을 잇는 등성을 걸은 것이다.

 

일정이 빡빡해 고군산군도를 여물게 탐방할 여유가 없다.

일정이 지난 번 변산 연수 왔을 때보다 더 빡빡하다.

회장님이 어찌나 여물게 계획을 짰던지 수학여행이나

연맹 활동하면서 아이들 인솔하는 것 보다 더 빡세다.

아마 책임감을 가지고 회원들한테 하나라도 더 보여 주고 싶은 맘에 그러했으리라.

 

일정이 빡센들 여기까지 와서 고군산군도를 그냥 지나치기엔 너무 아쉬운 생각이 든다.

비록 장 대감과 난 한 번 왔었던 곳이고 서 교감도 다녀간 적이 있긴 하다만,

그래도 본 사람보다 안 본 사람이 더 많으니 우겨서라도 모시고 가야한다.

그래서 선유도라도 보고 가자며 부추겼다.

고군산군도를 낱낱이 볼 수는 없지만 선유도가 열도의 중심이고 가장 유명하니

여기라도 봤으면 싶었다.

선유도 명사십리도 걸어보고 해안과 솔섬을 잇는 다리라도 건너게 하고 싶었다.

 

막상오니 다들 너무 좋은 모양이다.

, 그럴 줄 알았다. 모시고 오길 잘했지.

만약 그냥 지나쳤다면 한 번 다녀간 적 있는 사람으로서 무책임한 행동을 한 꼴이 된다.

언제 다시 올 거라고 여기까지 와 선유도에 발 한 번 담그지 않는다는 건 아니 될 일이다.

 

군산 시내에 있는 숙소로 갔다.

겉으로 보기엔 평범한 모텔에 불과한데 전기자동차 충전기가 3대나 있었다.

전기자동차를 타고 다니는 나 같은 사람에겐 반가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여섯 부부라 방을 6개 잡았다.

부부끼리 자니 잠자리 편해서 좋다.

6개를 잡아도 콘도나 펜션 가격과 별반 차이도 안 난다.

숙소는 장 대감이 미리 검색하여 예약을 해두었다.

장 대감이 이 방면엔 빠꼼이다.

 

숙소에 도착해 여장 정리만 하고 저녁 식사 장소로 이동했다.

회장님이 미리 검색해 놓은 식당으로 꽤 유명한 곳이었다.

막상 음식을 시켜놓고 보니 소문만큼은 아니었지만 그런대로 먹을 만했다.

고 대감이 라면사리를 너무 많이 넣어 배 터져 죽을 뻔 했다.

 

숙소로 가면서 은파호수공원을 들렀다.

해는 졌지만, 야경이 좋다고 해 갔는데

호수 공원엔 어둠만이 짙게 내려앉았다.

우릴 반겨줄 기미는 전혀 보이지 않았다.

 

숙소로 돌아와 저녁 식사 자리에서 먹다만 술이 고파 술집부터 찾았다.

마나님들은 숙소로 남정네들은 술집으로 향했다.

숙소 주변엔 우리가 갈만한 마땅한 술집이 안 보였다.

그저 선술 한 잔 더 했으면 싶었는데 우리 기호에 맞는 마땅한 술집이 없다.

결국 숙소 주변을 한 바퀴 돌아 제 자리로 돌아 왔다.

숙소에서 나오자마자 눈도장을 찍어 두었던 그곳으로 다시 왔던 것이다.

포차 같은 집인데 왠지 마음에 들지 않아 더 돌아봤으나,

오늘 밤 우리가 한 잔하기엔 그래도 포차 같은 냄새가 나는 곳은 여기뿐이었다.

 

여섯 명이 만 원짜리 마른안주 두개 시켰다가 부족해

메뉴에 보이는 갑오징어 한 마리를 추가 주문했다.

그런데 갑오징어 이 놈 짜슥이 가격이 만만찮다.

한 마리 가격이 4만 원 넘었다. 선 술 한 잔 마시기엔 단가가 세다.

결국 이 놈 짜슥 때문에 빈 술병만 더 는 셈이다.

 

저녁 먹을 때 차 때문에 술 한 잔 마시지 못한 고쌤 술이 시작됐다.

이 양반, 안 마실 땐 거들떠도 안 보는데 회가 동하면 걷잡을 수 없다.

두툼한 갑오징어구이가 나오자 술맛이 더 땡기는 모양이다.

갑오징어 저 놈, 11월에 변산 연수 갔을 때 김 교장과 장 대감이랑

회를 먹고 싶었는데 없어서 못 먹은 놈이다.

그런데 이번에 우연찮게 선술집에 와 구운 놈을 맛본다.

일반 오징어와 한치 이런 애들과는 급이 달랐다.

맛도 맛이려니와 크기와 두께 차이도 많이 났다.

비싸서 그런지 맛이 좋아 그런지 질겅질겅 씹히는 맛이 일품이다.

 

시부저기 한두 병 마시다보니 술병이 제법 쌓였다.

술 한 잔에 갑오징어 얇게 찢어 하나 입에 넣는데,

갑자기 회장님이 남은 갑오징어를 주섬주섬 담기 시작한다.

딱 반만 남겨 놓고 나머지 반은 챙긴다.

내가 그거 뭐 할라고 담는데하니 마나님들 맛이라도 보라고 가져다준단다.

우리 안주거리도 모자란다. 고마 나또라.”

그래도 아랑 곳 하지 않고 알루미늄호일로 알뜰하게 감싼다.

그 참, 회장은 아무나 하는 것이 아니구먼, 회장은 회장이로고~

 

마나님들만 있을 걸 생각하니 미안하기도 해 술자리를 털고 숙소로 갔다.

본부는 실장님 숙소로 정했고, 갈 사람은 가고 있을 사람만 있기로 했다.

간 사람은 장 대감뿐이었다.

장 대감은 장이 탈난 혜지 엄마 땜에 숙소로 먼저 갔다.

혼자 있을 걸 생각하니 마음에 걸렸던 모양이다.

나이드니 착하게 행동한다.

하기야 요즘 가만 보면 장 대감뿐만 아니라 다들 매양 일반이다.

늙어 밥 한 끼 얻어먹자면 이젠 깨우칠 때도 되긴 됐다.

 

숙소에 남은 우리 다섯 부부는 별 소득 없는 소리도 재밌다며 깔깔거렸다.

뭔 얘기 끝에 나온 지 모르겠다만 내가 장난삼아

지금까지 아내 모르게 잘못한 게 있으면 이 자리에서 한 사람씩 고해성사를 하라고 했다.

잘못 없는 사람이야 없을 터인 즉 그럼에도 아무 말이 없다.

장난삼아 할만도 한데 선뜻 나서는 사람이 없다.

 

그렇지. 뭐 할라고 일부러 나서서 자폭할고.

보아하니 아무도 고해 할 사람이 없는 것 같다.

그래서 말은 내가 꺼냈으니 내 스스로 자폭한다며 내용 없이 횡설수설하기 시작했다.

모두 재밌어 하면서 귀담아 듣는데 갑자기 서 교감 마나님께서

가만 듣고 보니 고해성사가 아니라 자기 마누라 자랑만 실컷 한다며 우스워 죽는다.

내가 그랬나? 고해성사가 아니라 내 사람 자랑만 했단 말이지.

내가 당수 팔 단이다.

 

군산에서의 하룻밤이 유쾌하게 지나갔다.

 

15, 둘째 날

 

아침 식사는 숙소에서 해결했다.

성찬은 아니지만 투숙객을 위한 아침 식사로는 꽤 괜찮았다.

객실 하나에 오만원도 채 안 되는 데 아침 식사까지 제공했다.

이름만 호텔로 붙었지 그저 모텔 수준인 그런 숙박업소에서 아침까지 준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지금까지 경험한 적이 없다.

객실도 나름 괜찮았고 무엇보다 전기자동차 충전기가 있어 더 좋았다.

여행자한테는 여러모로 편리한 숙소다.

군산에 다시 와 하룻밤 머문다면 반드시 여길 또 와야겠다.

 

아침밥을 든든하게 먹고 군산근대역사도시로 향했다.

회장님이 알뜰살뜰 챙겨 온 계획대로 다 돌아 다녔다.

옛 군산세관, 군산근대역사박물관, 진포해양테마공원, 근대미술관을 관람한 후

길 건너 초원사진관, 일본식 가옥 등을 돌아봤다.

 

모두 고만고만한 거리에 있어 도보여행하기엔 제격이었다.

시간이 없어 대충대충 훑고 지났지만, 자세히 보면 하나하나 볼 게 너무 많다.

특히 근대문화유적지는 여자 혼자 여행하기 좋다.

도심지에 있고, 상가와 여행객이 많아 여행 중 발생하는 위험요소가 거의 없다.

특히 여성들의 감성을 자극할 수 있는 초원사진관은

여성들이 빠뜨리지 않고 탐방하는 인기 코스 중 하나다.

한석규, 심은하 주연의 영화 '8월의 크리스마스' 촬영지이기 때문이다.

, 본 적이 없지만, ‘8월의 크리스마스는 관객 동원에 성공한 꽤 유명한 영화다.

보진 못했지만 사진관에 들어가니 마치 영화를 본 것 같은 친근한 느낌이다.

 

월명동과 신흥동엔 적산가옥이 꽤 있었다.

해방 전 일본인이 사용하던 일본식 가옥인데 현재 일반 주택으로 사용하거나

전시장으로 이용되고 있었다.

생각보다 적산가옥을 보러오는 관광객이 많았다.

물론 뭐 할라고 적산가옥을 보러 오느냐고 반문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아픈 역사도 역사인 만큼 굳이 쌍심지 켤 필요가 없다.

그때 그 시절을 알아야 할 분명한 이유가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적산가옥과 같은 일제의 잔재를 보고 역사적 인식을 바로 심어야 한다.

적산가옥 앞에서 사진이나 찍고 기념장소로만 여겨서는 안 될 일이다.

다녀가되 역사를 바르게 인지해야 한다.

그게 일제의 잔재를 남겨두는 분명한 이유다.

 

오래전 아이들을 인솔해 일본 히로시마에 간 적이 있다.

히로시마 평화공원과 평화기념자료관에 갔는데,

히로시마 평화공원에 가면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것이 흉물스럽게 방치된 돔 형태로 된 건물이다.

녹색 빛 잔디가 퍽이나 평화로운 곳에 흉물스런 원폭돔이 우뚝 서 있어 더 더욱 눈이 간다.

20여만 명이 목숨을 잃고 삽시간에 폐허가 된 히로시마에

유일하게 원폭돔만이 뼈대만 앙상하게 남은 채 서 있다.

 

그럼 일본 정부는 왜 저 흉측한 건물을 치우지 않고 그냥 방치해 두었을까?

이유는 단순하다. 원폭 피해의 현장을 각인시키기 위해 그냥 둔 것이다.

자국민에게 원폭의 뼈아픈 기억을 되새김 하여 그 날의 악몽을 잊지 말자는 것이다.

히로시마 평화기념자료관에 가면 당시의 히로시마시를 묘사해둔 모형을 볼 수 있다.

피폭 전과 후의 상황을 모형으로 표시해 비교해 놓았다.

전시장 유리너머 모형을 보는데도 끔찍하기 짝이 없다. 소름이 돋을 정도였다.

도시가 완전히 잿더미로 변했고 그 당시 히로시마에 거주하는 일반 시민의 목숨을 20만 명이나 앗아 갔다.

애꿎은 우리 조상의 목숨도 2만 명이나 앗아 갔다.

기념관에 와 이 광경을 본 일본인들은 과연 어떤 감정이 들까?

아마 소름이 돋겠지?

 

일본은 이런 나라다.

지네들이 입은 피해와 서러움은 만천하에 알리며 경종을 울리고,

지네들이 저지른 만행은 사실대로 인정하지 않는다.

대표적으로 위안부 문제만 해도 그렇다.

어제 경남 양산에서 태어난 김복동 할머니가 향년 93세의 나이로 운명하셨다.

194014살이던 해 일본군에 의해 위안부로 끌려가 8년만인 22세에 귀향하신 어른이다.

 

김복동 할머니가 죽기 전에 꼭 하고 싶은 게 하나 있는데 그게 뭐냐면

꼭 일본정부로부터 미안하다.”, “잘못했다.”란 말을 듣고 싶은 게 마지막 소원이라고 했다.

죽기 전에 꼭 이 말만은 듣고 죽고 싶었던 것이다.

하지만 과연 그들이 잘못했다고 할까?

이제 남아 계신 위안부 할머니는 23분이다.

이 할머니들께서도 살아도 산목숨이 아니다. 산다면 얼마나 더 사실까?

과연 김복동 할머니가 듣지 못한 마지막 소원을

남은 23명의 할머니 중 한 분이라고 들을 수 있을까?

 

히로시마 공원을 걷다보면 피폭 때 희생당한 사람들을 위한 참배 장소가 있다.

연맹 활동을 하면서 언젠가 학생들을 인솔해 여길 간 적이 있는데,

그때도 피력한 바 있지만 여길 가보면 속에 천불이 난다.

일본인 희생자를 위한 참배 장소는 그럴듯한 반면,

강제 징용 당해 희생당한 우리 선조 2만여 명의 참배 장소는 초라하기 그지없다.

우리는 죽어서도 이토록 서러움을 당해야 하는가?

차라리 참배하는 곳이 서로 멀리 떨어져 있다면 이토록 참담하게 느끼진 않았을 터인데~~~

 

행여 우리나라 사람이 히로시마 평화공원에 가거들랑

거북이 등에 세워진 위령비를 가장 먼저 찾아보시기 바랍니다.

억울하게 징용당해 원폭에 희생된 한국인 희생자 위령비를 앞에 두고도 못 보고,

천 마리의 종이학에 얽힌 사사키 사다코 양의 원폭어린이상 앞에서 기념 촬영하는

오류를 범해서는 아니 되겠죠.

물론 사사키 사다코 양의 가슴 아픈 사연은 세상 사람이면 누구나 아파해야 하고,

더는 이런 아픔이 있어서는 아니 될 것이다.

하지만 우리 선조들의 위령비가 바로 그 옆에 있다.

알고서야 무심하게 돌아서랴마는 만약 보거들랑 그 위령비 앞에 서서 단 5초라도 묵념하기 바란다.

 

참 나! 군산의 적산가옥 이야기 하다가 갑자기 김복동 할머님의 소천 소식에

안타까움을 금할 수 없어 급기야 히로시마 평화공원에 있던

초라한 한국인 위령비가 생각나 갑자기 분기탱천했다.

우리 얘기가 잠시 혼란에 빠졌다.

 

군산 빵집 이성당단팥빵이 유명하다고 회장님이 집집이 빵을 사준다고 가잔다.

빵집이 유명한 모양이다. 모두 빵집으로 가더니 빵을 고른다고 분주하게 움직인다.

난 빵집엔 들어가지도 않고 밖에서 도시를 감상했다.

군산시내는 잠깐 돌아봤지만 도시가 계획적으로 재구성된 것 같다.

도시계획을 했는지 도로 구분이 명확하고 길도 반듯하다.

 

이성당은 본관과 신관 두 건물이 있었고 나란히 붙어 있었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역사가 깊다는 빵집인 본관은 단팥빵이 유명하고,

신관은 신제품이 생산되는 빵을 주로 팔고 있었다.

본관엔 들어 가보지도 않았는데 본관에서 나온 서 교감이 신관에 가보자고 해 따라갔다.

본관엔 손님들이 바글바글하던데 신관에는 본관에 비해 손님들이 많지 않았다.

사지도 않을 빵을 보고 있기가 그래 다시 밖으로 나왔다.

길거리엔 이 지역 모 국회의원이 예산을 1조 유입했다고 자랑하는

현수막이 바람에 살랑거리고 있다.

많이도 가지고 왔다.

 

이제 가야하나? 아니 마지막 코스가 한 군데 더 남았다.

내심 내가 가장 기대한 금강하구철새도래지가 마지막 남은 보루다.

꼭 한 번 가고 싶은 곳이었고, 언젠가는 가야할 곳이었다.

TV나 다른 사람의 블로그를 통해서 보던 철새도래지를 드디어 간다는 반가움에

다소 들뜬 마음이 들었지만, 크게 내색은 하지 않았다.

TV에서 보던 가창오리의 군무가 눈앞에 아른거린다.

 

철새도래지로 가는데 이런 제기랄 갑자기 비가 내리는 것이 아닌가.

지금까지 멀쩡하더니 하필 철새도래지 가는데 웬 비란 말인가 야속하게끔.

그래도 빗줄기가 약하기에 우리는 철새도래지를 향했다.

가는 도중 비가 그쳐 주기를 염원했지만, 야속하게도 주차장에 도착하니

부슬부슬 내리던 비는 걷지도 못할 정도로 더 심하게 내렸다.

결국 돌아설 수밖에 없었다.

길이 멀어 철새 보러 여기까지 다시 오기란 쉽지 않은데 언제 다시 오려나 모르겠다.

 

금강하구철새도래지 탐방이 불발에 그치고 우리는 귀갓길에 올랐다.

올 때와는 달리 역순으로 마이산휴게소에 한 번 쉬어 가고

거창휴게소에서 12일의 부부 모임을 마무리했다.

 

본 행사를 위해 처음부터 끝까지 꼼꼼하게 확인하고 모임을 이끌어 주신

회장님 내외분께 감사의 말씀을 드리고

육부회원님들께도 수고 하셨다는 인사를 드립니다.

모두 함께해 즐거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