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엄사 흑매보고 쌍계사로
■ 언제 : 2020. 3. 18.(수)
■ 어디로 : 지리산 화엄사-쌍계사-최참판댁
쌍계사 : 경상남도 하동군 화개면 쌍계사길 59종무소 Tel : 055-883-1901템플사무국 Tel : 010-6399-1901
■ 누구랑 : 아내
여기저기 다니다 보니 이제 코로나19도 겁 안 난다.
조심스럽게 다닌다면 크게 겁 먹을 일도 아니다.
아내와 난 주로 산으로 다닌다.
형편이 여의치 않을 땐 내 고장 수목원 같은 곳도 더러 다니긴 했다.
지리산 화엄사나 쌍계사 같은 천년고찰은 내방객들로 붐빌 것이다.
내고장 수목원 같은 경우에도 사람들이 많았다.
산으로 갔을 땐 우리 두 사람밖에 없을 때도 있었으나
수목원이나 사찰 같은 경우엔 사람들을 제법 만난다는 얘기다.
코로나19가 우리나라 전역에 기승을 부리는 현실에서
사실 길을 나선다는 건 부끄러운 행동이라 할 수 있다.
특히 우린 대구사람 아니던가.
하지만 운동은 해야겠고, 우리가 하는 운동이라곤 운동을 핑계삼아 꽃바람 타는 게 다인데,
어쩔거나 그렇다고 방콕만 하기도 그렇고.
목숨을 담보로 최전선에서 비지땀 흘려가며 일하는 의료진과 환자를 생각하면
꼼짝없이 집에 있어야 하는 게 마땅하지만,
멀쩡한 입장에선 그것도 큰 어려움이다.
생각은 이성적이나 행동은 이성과는 달리 움직인다.
길을 나설 때마다 미안하고 죄송한 생각이 든다.
최대한 조심스럽게 다니는 수밖에 없다.
우린 코로나19로 부터의 전염을 예방하기 위해 나름대로 수칙을 정했다.
첫째, 산행이나 여행은 당일로 하고 저녁은 늦더라도 집에 와서 먹는다.
둘째, 끼니를 해결하기 위해 휴게소나 식당을 이용하지 않는다.
셋째, 가급적 용변 외 휴게소는 그냥 통과한다.
넷째, 음식은 형편에 맞게 준비를 하고, 이동 중 사람 없는 분위기 좋은 곳을 찾아서 먹는다.
여섯째, 여행지에선 가급적 의자에 앉거나 각종 시설물에 손을 대지 않는다.
일곱째, 여행을 하고 차량에 탑승했을 땐 차량에 비치된 소독제로 손소독을 한다.
여덟째, 혹시 모를 상황에 대비하여 그날 이동 경로를 기록한다.
요즘 우리나라 국민이면 누구나 지키는 기본 수칙이리라.
기본은 해야겠다 싶어 이 정도 불편은 지키리라 생각하고 다니지만,
애쓰시는 분들한텐 비할 바가 아니리라 여긴다.
여하간 나로 인하여 문제를 야기시켜선 아니될 것이다.
도량안내도 <펌>http://www.ssanggyesa.net
참으로 대단한 절이다. 화엄사보다 전각이 더 많은 것 같다.
지리산 남쪽기슭에 신라 성덕왕 21년(722년)에 의상대사의 제자 삼법스님이 창건한 쌍계사의 처음 이름은 옥천사였으나 그 후 문성왕 2년(840년)에 진감선사가 대찰로 중창시킨 후 887년 정강왕이 선사의 도풍을 앙모하여 '쌍계사'로 개칭하였다고 한다.
절에 가면 일단 제일 먼저 살피는 곳이다.
일주문 편액에 삼신산쌍계사라 적혀있다. 삼신산이란 지리산, 한라산, 금강산을 말한다.
절의 입구에 세워져 있는 일주문은 속세를 떠나 부처의 세계로 들어가는 첫 번째 관문이며, 항상 한마음을 가지고 수도하고 교화하라는 의미의 상징물이기도 하다. 일주문에는 ‘삼신산쌍계사’‘선종대가람’이라는 두 개의 편액이 걸려 있는데, 이는 근대 서화가로 이름을 떨친 해강 김규진(1868~1933)이 쓴 것이다.
<펌>http://www.ssanggyesa.net
금강문은 일주문 다음에 통과하는 문으로 천왕문과 함께 절에 들어오는 공간으로 불법을 수호하고, 속세의 더러움을 씻어내는 의미있는 장소이다. 이곳에서는 금강역사를 모시고 있는데 금강역사는 불교를 수호하고 악을 벌하는 천신으로 문의 왼쪽에는 부처님을 늘 모시는 ‘밀적금강’이 있고 오른쪽에는 ‘나라연금강’이 있다. 문 앞에는 벽암스님이 쓴 ‘금강문’이란 현판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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쌍계사 천왕문은 숙종 30년(1704)에 박봉스님이 지었고 순조 25년(1825)에 고쳤으며, 현재의 건물은 고산스님이 1978년에 다시 수리한 것이다. 사천왕을 모시는 문으로 사천왕은 부처님께 의지하여 불법을 수호하고 수도하는 스님과 선량한 사람을 돕는 4명의 수호신이다. 동주를 다스리는 지국천왕, 서주의 광목천왕, 남주의 증장천왕, 북주를 다스리는 다문천왕이 있다. 사천왕상은 나무로 만든 것으로 조각 솜씨가 뛰어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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쌍계사 9층석탑. 쌍계사 9층석탑의 의미를 알고 싶어 검색을 했더니 쌍계사 홈에도 사진만 나와 있고 자세한 설명은 없었다. 마땅한 자료가 없나 싶어 여기저기 막 뒤적여도 쓸만한 내용은 없었다. 그러던 중 어렵사리 daum카페 <선다향>에서 쌍계사 9층석탑을 건립하게 된 배경을 자세히 설명해 놓은 글을 찾았다.
대략 내용은 이랬다. 백창기 거사의 부인인 김반야성 보살이 딸아이 백진희의 예능 시험 합격을 위해 스님께 축원기도를 청하다가 쌍계사9층석탑을 건립하게 되고, 급기야 일주문에서 대웅전까지 박석을 깔게 됐다는 얘기다. 시험에 응하기도 전에 탑 건립을 위한 작업에 들어간 주지스님은 기도 3일째 되는 날 문수보살의 영험한 기운이 합격을 예고함을 확실하게 믿고 강력하게 탑 조성에 대한 추진을 밀어 붙였다고 한다. 스님의 영험함과 백씨 거사와 그의 아내 김반야성 보살의 불심이 3,000여 명의 응시생 중 단, 세 명만 통과시키는 시험에 떡하니 합격하였으니 그 기쁨은 두 말할 나위 없었으리라.
요 녀석은 딱새 수컷으로 보이는데 옆면을 못 봐 장담을 못하겠네요.
대웅전. 1968년 12월 19일 보물 제500호로 지정되었다. 정면 5칸, 측면 4칸이다. 단층 팔작지붕의 다포계(多包系) 건물이다. 쌍계사는 840년(신라 문성왕 2)에 진감선사(眞鑒禪師) 혜소(慧昭)가 개창한 대한불교조계종 제13교구 본사로, 자연조건에 순응하면서 건물을 배치한 산지(山地) 가람의 대표적 일례이다. 대웅전은 가람의 중심이 되는 전당으로, 큰 힘이 있어서 도력(道力)과 법력(法力)으로 세상을 밝히는 영웅을 모신 전각이라는 뜻으로, 이 사찰의 본전이다. 중앙의 3칸에는 각각 사분합(四分閤)의 빗살문이 달렸고, 상부에는 창방(昌枋) 밑으로 광창(光窓)을 달았으며, 기둥이 그만큼 높아져서 규모도 큰 편이다. 좌우 끝의 두 문은 주간(柱間)을 좁혀 두 짝으로 정자(井字)살문을 달았다. 평방 위에 배치한 공간포(空間包)는 중앙의 3칸은 2개씩이고, 좌우 끝에는 1개씩이다. 공포의 구성도 내외 모두 삼출목(三出目)으로 처마를 받치게 하였다. 내부는 첨차(檐遮)가 모두 교두식(翹頭式)이고 바닥에는 마루를 깔았으며, 중앙의 뒷면에 불단(佛壇)을 마련하였고 그 상부에는 정자각형의 닫집을 달아 조각으로 장식하였다. 첨차가 교두식인 것으로 보아 오래된 양식임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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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엄전
엎드려 들으니 선사 대은율사께서 칠불사에서 7일간 용맹기도 중에 서상수계하시고 전수계맥하되 계단을 정하지 않으시니 산승이 1988년 무진년 음력 7월 17일에 쌍계사 대웅전에서 7일간 용맹기도를 시작하여 제5일인 7월 21일 오후 기도 중에 석가모니불과 문수보살, 미륵보살이 오색구름 위에서 나투시고, 삼존불 아래 허공 중에 금자사구가 나타나니 하리라는 서상계를 받고는 불은에 보답코져 국내, 국외의 크고 작은 사암을 가리지 않고 보살계 전계전법에 전념하여 쉬지 않았으며 또한 대은율사서상계맥을 국내외 승속불자가 전수 받지 않음이 없으나 근본계단이 없음을 통탄히 여기고, 나 또한 서상수계하였으나 근본계단이 없는 연고로 2007년 정해년에 불현듯 뜻을 내어 바로 대시주자를 만나 대은고산율맥계단을 원만조성하여 부처님 혜명이 영원히 끊어지지 않게 하니 유정들도 무정들도 모두 정계를 받고 번뇌를 여의고 보리를 이루어서 널리 중생을 제도하며 사바세계가 극락으로 바뀌어지고, 이것을 보고 듣는 이는 부처를 이루어서 중생계가 다하도록 모두 다 상락아정을 즐길지어다. - 쌍계사 조실 고산스님 금강계단조성기문
<펌>http://www.ssanggyesa.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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