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공산 동봉에 핀 상고대와의 만남
■ 언제 : 2015. 1. 24.(토)
■ 어디로 : 팔공산 수태골 동봉
■ 누구랑 : 아내랑
■ 산행 거리 : 왕복 7km
흔적
올 겨울엔 어쩌다보니 산을 많이 가지 못했다. 일행과 더불어 활동을 하다보니 아무래도 산보다는 주로 여행에 가까운 나들이를 하게된 모양이다.
어제 아들내미가 사준 니콘 카메라를 메고 비슬산자연휴양림 얼음동산을 방문했다가 우연히 대견사지 너머로 보이는 하얀 눈밭을 보고, 팔공산 동봉에 가도 눈꽃 내지는 상고대를 볼 수 있을 것 같은 기대감이 생겨 오늘은 일삼아 내 고장 팔공산 동봉을 찾았다. 상고대도 만나고 카메라 연습도 할겸 해서다.
팔공산은 수시로 드나드는 곳이라 이제 큰 특별한 의미는 없다. 그저 멀리 갈 수 없을 때 가까이 있는 수월성 때문에 찾거나 아니면 봄, 여름, 가을 야생화를 보기 위해 자연스럽게 찾는 곳 중의 한 곳이 되었다. 물론 겨울에는 눈꽃이나 상고대를 만나기 위해 팔공산으로 간다.
겨울이라 꽃을 만난다는 것은 애시당초 기대하기 어렵고 오늘은 그저 어제 먼발치에서 바라본 비슬산 상고대가 암시를 준 것에 기대해 동봉에도 상고대가 피어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으로 왔을 뿐이다. 굳이 한 가지 이유를 더 보태자면 요즘 산행을 거의 하지 못한지라 오랜만에 산행도 하고 상고대도 만나는 즐거움을 만끽하며 아들내미가 사준 카메라 기능도 익힐겸 해서 동봉을 찾은 것이다.
동봉은 자주 드나드는 편이라 야생화가 무르 익는 계절이면 어디쯤 무슨 꽃이 피어 있고 겨울 상고대와 눈꽃은 어디쯤에서 확실하게 볼 수 있는지 대충 가늠이 된다. 요즘 같은 날씨면 아무래도 동봉 아래 서봉가는 삼거리 지점이 아니면 눈꽃을 보기 어려울 것이다.
예상대로 눈이 보이지 않더니 수태골 폭포 지나면서부터 아직 녹지 않은 눈길이 서서히 나타기 시작했다. 하지만 나뭇가지에 앉은 눈은 대부분 녹아 있어 눈꽃 기대를 점차 사그라지게 만들었다. 이런 상황이면 동봉에 가더라도 눈꽃을 보기 힘들 것 같다. 그러나 동봉에 가면 혹시 눈꽃은 보지 못하더라도 기온이 낮아 상고대는 볼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실낯 같은 희망이 생기기는 한다.
기대했던 동봉과 서봉으로 가는 삼거리 지점에 도착했다. 눈꽃과 상고대를 기대했던 곳이다. 그런데 예상과 달리 눈밭은 일구고 있는데 눈꽃은 없다. 여기에 없다면 위에도 더 이상 기대하기 어렵다. 마음을 접고 동봉이나 다녀오자고 100m쯤 더 올라갔는데 아니, 이게 웬일인가? 상고대를 보겠다던 심경을 포기하고 올라갔건만, 의외로 삼거리 바로 위에는 지금까지와의 풍경과는 전혀 동떨어진 환상적인 상고대 물결이 펼쳐지고 있는 것이 아닌가? 기대감이 사라졌기에 더욱 진한 황홀함으로 다가오는 순간이다.
한 치 앞을 예감하기 어렵다더니 정상 목전에 다다라 겨우 고대했던 상고대를 만났다. 동봉으로 올라가는 마지막 계단길 주변은 그야말로 환상적인 풍경을 자아내고 있었다. 더 이상 기대할 곳이 없으니 여기서 시간을 죽치고 아들이 사준 카메라를 들고 무한정 찍어대기 시작했다. 아직까지 카메라 사용 기능이 익숙치 않아 혹시 사진을 망칠지도 모른다는 강박 관념에 사로잡혀 오토모드로 먼저 확실한 사진을 확보한 다음에야 이래 저래 연습삼아 찍고 또 찍었다.
오늘 산행은 대만족이었다. 처음엔 상고대를 기대했다가 올라가는 도중에 상황을 보면서 기대했던 마음을 접었던 터라 그 기쁨은 더욱 더 크게 다가왔다. 아내와 함께 한동안 행복감에 도취되어 마음껏 행복을 누렸다. 조만큼 앞에 있는 서봉쪽은 동봉보다 더 새하얗다. 서봉은 동봉에서 대략 1km쯤만 더 가면 되는 길이다. 길도 능선을 따라 걸으니 크게 더 힘든 것도 아니다. 내친김에 서봉까지 갔다가 수태골로 내려 갔으면 좋으련만, 아내가 그리하기 싫은 모양이다. 아내가 싫다면 굳이 무리하면서 할 이유는 없다.
동봉에서 행복감을 마음껏 향유하고 멀리 서봉을 이고 있는 하얀 눈밭을 그윽한 눈길로 바라보며 요즘 산행 같은 산행을 제대로 해보지 못한 기분을 제대로 만끽했다. 아쉬웠던 점은 카메라 노출 조정이 잘못되어 자동으로 찍어 놓은 사진이 없었더라면 이 멋진 광경을 모두 놓칠 뻔했다. 노출 보정이 상향 조정되어 있는 것을 모르고 매뉴얼모드로 찍었더니 하얀 눈에 반사된 노출까지 추가되어 빛바랜 사진 일색이 되어버렸다. 집에 와서 보니 내가 찍었지만, 마땅치가 않아 실웃음만 나왔다. 아무래도 카메라 공부에 전념을 해야겠다. 아무리 연장이 좋다하나 사용할 줄 모르면 무슨 소용이 있으랴. 백약이 무효가 되기 전에 공부 좀 해야겠다.
산행도 하고 상고대도 보고 카메라 연습도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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