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여행방

제주 여행 셋째 날 : 성이시돌목장 - 새별오름 - 마라도 - 이중섭갤러리 - 제주매일올레시장 - 새섬다리 야경

728x90

56일의 제주 여행

-눈으로 보고 가슴에 쓸어 담은 제주 이야기-

 

 

언제 : 2016. 1. 10. ~ 1. 15.(56), 110일 저녁에 출발, 115일 아침 비행기로 도착, 실제 여행 기간은 4

 

어디로 : 제주로

 

누구랑 : 아내랑 딸내미랑

 

숙식은 : 제주도에 머물고 있는 조카네 집에서

 

 

제주 여행 셋째 : 성이시돌목장 - 새별오름 - 마라도 - 이중섭갤러리 - 제주매일올레시장 - 새섬다리 야경(마라도는 따로 편집함)

 

 

1. 성이시돌목장편

 

 

흔적

 

 

오늘 셋째 날 일정의 하이라이트는 마라도다.

마라도 역시 나는 한 번 다녀갔던 곳이다.

그러나 딸내미와 아내는 아직 가보지 않았기에

이번 기회에 마라도 역시 빠뜨릴 수 없는 주요 코스 중의 하나가 되었다.

 

아침 일찍 나섰기에 예약을 해 놓은 마라도 배시간이 남았다.

그래서 먼저 전혀 예정에 없던 듣도 보도 못했던 성이시돌목장을 찾았다.

단지 딸내미가 원했기에 나선 길이었다.

 

그런데 우연찮게 방문하게 된 성이시돌목장은 이상하게도 내게 큰바위얼굴로 다가왔다.

먼저 우리가 찾은 곳은 말과 소를 키우는 방목지였다.

황량한 겨울 들판에 차가운 바람이 부는 데도 아랑곳 없이

말과 소들이 평화롭게 노닐고 있었으며

한적하기 이를 데 없었다.

차가운 아침 바람만 매섭게 몰아치고 있었다.

 

갑자기 성이시돌목장에 대해 많은 사실이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먼저 왜 '성'이라는 이름이 붙었고, '이시돌'이란 사람 이름인 것 같은 데 어떤 인물인지 알고 싶었다.

 

주차한 곳에 낯선 구조물이 한 채 있었다.

테쉬폰이란 구조물인 데 처음보는 형태의 건축물이었다.

처음엔 창고로 쓰는 곳인가 했더니 세워 놓은 안내판을 읽어보니 그게 아니었다.

테쉬폰은 주택으로 사용된 건축물이며, 우리나라에서 유일하게 이곳에만 존재하는 보물이다.

이라크 바그다드 인근에 테쉬폰이라 불리우는 곳이 있는 데 이곳에서 이 건축물의 기원을 찾을 수 있어

이러한 양식의 건물을 테쉬폰이라 부른다고 한다.

그곳에는 약 2,000년 전부터 전해 내려오는 유사한 형태의 건물을 볼 수 있다고 한다.

제주에는 1961년에 목장에서 숙소로 사용하기 위해 처음으로 지어졌다.

더 자세한 내용을 알고 싶어 목장을 벗어나 성이시돌 센터로 향했다.

 

제주에 성이시돌목장을 세운 사람은 나눔을 실천하는 제주의 목자 PJ맥그린치라는 분이다.

그는 1954년 제주에 첫발을 디딘 후 50여 년을 제주를 위해 일해 온 성 골롬반 외방 선교회 사제이다.

6ㆍ25전쟁과 4ㆍ3 사건 등으로 폐허가 된 제주에서 가난을 대물림하며 살아온 제주도민을 위해

축산업을 시작으로 여러 사업을 벌여 제주도민의 가난을 몰아내고 성이시돌회관(피정의 집)과

새미 은총의 동산, 삼위일체 성당 등을 지어 제주도의 복음화를 위해 애쓰고 있다.

성이시돌목장 홈에서 발췌 

 

이시돌이라는 사람은 원래 스페인 농부로서 1,110년 스페인의 마드리드에서 태어난 보잘 것 없는 인생이었다.

그런 형편에도 각고의 노력 끝에 1622년 그레고리오 15세 교황 치하에서 성인품에 오르기 까지 하였으며

결국에는 농민의 주보성인이 된 훌륭한 인물이다.

 

맥그란치 신부님이 제주에 귀의하여 하느님께서 함께 해주실 것을 믿고 

목장 이름을 이시돌이라고 지은 것이다.

 

성이시돌목장이란 이름은 그렇게 탄생하였던 것이다.

 

전시관에 들러 성이시돌목장의 소개와 경영이념, 개요, 연혁, 현황 등을 대략 훓어보고

 

직원분과 함께 담소를 나누며 창업주에 대해서 이런 저런 얘기를 들었다.

성이시돌목장은 현재카톨릭재단은 아니며 운영 수익금 전량은 복지사업 운영에 소중하게 쓰이고 있다고 한다.

 

나는 곧 건너에 있는 새미은총의동산으로 갔다.

 

새미은총의동산은 새미소라는 작은 오름에 예수님의 일생을 예술작품으로 재현한 곳이다.

미로처럼 이어진 길을 따라 가다보니 끝간 데가 없다.

나중에 나가는 길을 잃어버릴까 두려움이 밀려온다.

시간이 늦으면 마라도 가는 배를 놓칠지도 모른다.

다 보지도 못하고 허급지급 왔던 길을  따라 나갔다.

 

 


 

 

 

테쉬폰 

 

 

 

 

 

 

 

 

 

 

 

 

 

 

 

 

 

 

 

 

 

 

 

 

 

 

 

 

 

 

 

 

 

 

 

 

2. 새별오름

 

주소(지번) :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애월읍 봉성리 산 59-3   전화 064-728-4075

 

흔적

 

성이시돌목장의 새미은총동산을 돌아보다가 시간이 급한 듯하여 다 돌아보지도 못하고

마라도 가는 배 시간이 걱정되어 딸아이와 아내가 기다리는 주차장으로 허급지급 급하게 돌아나왔다.

바람이 심하고 날씨가 추워 두 사람은 차 안에서 날 오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다행히 아직까지는 마라도 가는 배 시간에 약간의 여유가 있었다.

시간도 좀 남았고 가는 길이니 딸아이가 '새별오름'이 좋다고 둘러보고 가잔다.

혼자 가고자 했던 곳이라 하니 여기까지 와서 그냥 지나치기가 그랬다.

딸아이가 오빠네 집에서 혼자 오기란 호락호락한 거리가 아니었다.

 

새별오름 주차장에 당도하니 오름의 규모가 동산처럼 아담해 그리 힘들어 보이지는 않았다.

하지만, 지금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으로 봐선 오름의 끝까지 올라갈 여유는 없었다.

아까웠지만, 주변만 서성거리며 오름의 예쁜 모습과

오름을 뒤덮고 있는 억새 물결을 따라 분위기만 잠시 느끼고 이내 돌아섰다.

그 짧은 사이에 그래도 아내랑 딸아이는 중간 정도 올라갔다가 내려왔다.

 

이왕 여기까지 온 김에 새별오름의 특징과 뭐가 좋은지 알아나 봐야겠다.

혹, 다음에 퇴직하고 제주에 장기간 머물 일이 있으면

대놓고 제주의 368개의 오름길을 섭렵하고자 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다.

그때가 되면 아마 이번에 어설프게 방문했던 새별오름이 아스라한 여운으로 떠오를 것이다. 

 

아래 내용은 daum 백과에서 발췌한 내용이다.

 

새별오름이 소재하는 애월읍 일대의 서부 중산간지역은 오름지대가 많이 밀집된 지역이다.

 산정 표고 519m의 새별오름은 단성화산(單成火山: 일회의 분화활동으로 만들어진 소형 화산)으로

오름길 서사면이 열려 있는 말굽형 화산체이나, 북사면에도 작은 말굽형 화구가 발달하고 있는 복합형 오름이다.

새별오름에서는 2000년부터 매년 제주들불축제가 개최되고 있으며

정월대보름을 전후하여 열리는 제주들불축제는 제주도의 대표적인 축제 가운데 하나로 1997년부터 개최되었다.

 

제주도에서는 밭 경작과 작물의 운반을 목적으로 농가마다 소를 길렀는데,

농한기에는 마을별로 중산간 초지대에 소를 방목하여 관리하였다.

이때 방목을 맡았던 테우리(목동을 가리키는 제주어)가 오래된 풀을 없애고,

해충을 구제하기 위하여 늦겨울부터 경칩 사이에 초지대에 불을 놓았다.

제주도의 오랜 목축문화라고 할 수 있는 불놓기를 계승한 축제가 바로 제주들불축제이며,

오름 전체가 초지로 이루어져 있는 새별오름의 남사면에서 오름 불놓기 행사가 치러지고 있다.

문화체육관광부는 2015년에 제주들불축제를 우수 축제로 지정하였다.

 

다 올라가지는 못했지만, 가까이에서 본 새별오름은 억새가 장관이었다.

이번에 시부지기 방문하면서 남은 기억은 바람에 심하게 나부끼는 억새의 울음소리다.

새별오름을 뒤로하고 도로변으로 나가 바라보는 오름의 모습은

경주에서 보던 큰 왕릉의 모습을 하고 있다.

 

 

 

 

 

 

 

 

 

 

 

 

 

 

3. 추사 김정희 유배지

 

주소 : 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대정읍 추사로 44, (지번) 서귀포시 대정읍 안성리 1661-1
전화 : 064-760-3406

 

흔적

 

오늘 아침 일찍 서둘러서 그런지 마라도 가는 길이 꽤나 마디다.

높지도 않은 새별오름을 오를 여유가 없어 주변만 서성거리다 왔는 데

마라도를 가기 위해 모슬포항으로 가면서 대정읍을 지나니 추사 김정희유배지라는 이정표가 눈에 확 들어온다.

추사가 누구던가? 제주에 왔으면 꼭 들려야 할 곳이 아니던가.

그런데 이제 정말 시간이 없다. 20여 분의 여유도 없다.

시간이 없다고 그냥 가자는 걸 잠깐이라도 후다닥 보기만 하고 가자며

핸들을 꺽어 이정표가 가리키는 곳으로 갔다.

 

뭔지 모르겠지만, 비석이 많이 세워진 곳에 '제3호 기록사랑마을'이라는 표지석이 반들반들하게 세워져 있다.

대정읍 안성마을 주차장이지 싶은 데 거기에 주차를 하고 집담길을 따라 골목으로 들어갔다.

언뜻 보아하니 그쪽이 추사의 유배지 냄새가 났다.

골목을 따라가며 높이 있는 노랑하늘타리 열매와 마을에 자라는 키 큰 동백꽃을 담으면서 갔다. 

그런데 유배지의 흔적이 보이지 않는다.

아무래도 여기가 아닌 것 같아 다시 마을회관으로 돌아오니 마을 할머니 한 분이 걸어가고 계셨다.

말씀을 여쭈어보니 조금 더 아래로 내려가면 바로 있단다.

 

그렇게 해서 급하게 유배지를 찾았으나, 이젠 정작 들어갈 시간이 없다.

매표소 앞에서 사진도 한 장 남기지 못하고, 장소만 확인한 채 바쁘게 차를 몰아 모슬포로 갔다.

아쉬움에 간략하게나마 내용을 추스려본다.

 

2010년 11월, 서귀포시 대정읍 안성마을은 

국가기록원이 지정하는 제3호 기록사랑마을로 이름을 올리면서 문을 열었다.

150여가구가 모여사는 안성리에 한국근현대사의 일단을 살필 수 있는 기록전시관이 5년째 운영되고 있지만, 

현재 운영의 어려움이 있어 마을 주민들은 지자체가 더욱 관심을 기울여 주었으면 하는 바램을 갖고 있다.

 

 

 

<추사의 유배생활> 제주관광정보 코너에서 펌

 

추사는 유배시절 많은 풍토병에 시달려 아프지 않은 곳이 없을 정도였다.

혀에 종기가 나고, 코에는 혹이 생겼으며, 눈이 잘 보이지 않아 나중에는 글씨를 쓸 수 없다고 호소하기도 했다.

더구나 위까지 좋지 않아 음식을 겨우 삼켜도 소화가 되지 않을 정도로 유배의 고통을 톡톡히 느꼈다.

이렇게 갖은 병에 시달리면서도 추사는 9년의 유배기간을 꿋꿋이 견뎌낸다.

추사는 어떻게 이런 병들을 견뎌냈을까?

당시 영의정이었던 친구 권돈인은 추사의 건강을 위해 인삼을 많이 보내주었다.

덕분에 추사는 인삼을 무 먹듯이 먹을 수 있었다.

그리고 초의선사가 보내 준 차를 자주 마신 것도 건강에 도움이 되었다.

거기다 유배지에서 매일 바라보던 산방산의 범상치 않은 기운도 한 몫을 하였을 것이다.

산방산의 약수를 먹으면 장수한다는 전설이 내려오는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추사는 이렇게 유배시절을 이겨내고 71세까지 당시로써는 장수를 누린다.

 

 

 

 

 

 

 

 

 

 

 

4. 이중섭 거주지·제주매일올레시장·새섬다리야경

 

 

마라도 다녀온 후 이중섭을 찾아 그의 제주 피난 시절 거주지와 미술관에서 작품을 관람한 후

제주매일올레시장에 들러 제주에서 유명한 오메기떡과 모닥치기로 저녁을 때우고

새섬다리로 가 야경 사진을 촬영하면서 제주 여행 셋째 날의 긴 하루를 마감하였다.

 

주소 : 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이중섭로 29 (서귀동)

 

6.25중에 서귀포에서 피난 생활을 하며 그림에 대한 열정을 불태웠던 천재화가 이중섭을 기리기 위해

피난 당시 그가 거주했던 곳 주변을 이중섭 거리로 지정했다.

서귀포시의 문화 예술의 중심이 되고 이 곳에 계란형으로 만들어진 추모포석이 있다.
이중섭 화가가 피난생활 거주했던 집에 들어서면

불우한 시대를 살았던 그의 비극적인 삶과 예술혼이 가슴 깊이 사무쳐 온다.

 

불운한 시대의 천재화가로 일컬어지는 대향 이중섭화백이 서귀포시에 거주하면서

서귀포의 아름다운 풍광과 넉넉한 이 고장 인심을 소재로 하여 서귀포의 환상 등 많은 작품을 남겼습니다.
짧은 기간 그의 서귀포 체류는 그 후 대향 이중섭 예술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음을 느낄 수가 있습니다.
서귀포시에서는 그의 높은 창작 열의와 불멸의 예술성을 후대 에 기리고,

이 고장을 찾아오시는 분들과 시민들이 그 예술적 발자취에 대하여 공감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하고자 합니다.

<펌>제주관광정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