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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길잡이

[여행] 철새들의 천국 충남 서산 천수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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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철새들의 천국 충남 서산 천수만

한국교직원신문 2014-11-10

박강섭 국민일보 관광전문기자


천수만에서 유유자적 하던 가창오리가 새카맣게 날아오르고 있다.

점과 점이 모인 수만 마리 새들의 비행

 

거대한 ‘뫼비우스의 띠’가 허공을 가른다. 하늘을 새카맣게 수놓은 점들이 창공으로 비상하더니 순식간에 수면으로 곤두박질한다. 그리고 다시 비상. 갈대의 지휘봉을 따라 검은 점들이 경쾌한 왈츠를 춘다. 안단테에서 프레스토로, 프레스토에서 안단테로…. 가창오리 떼가 금빛 호수와 오렌지빛 하늘에서 화려한 군무를 펼친다. 세계 최고의 공연이 천수만에서 시작되는 순간이다.

여명조차 짙은 안갯속에 묻혀버린 이른 새벽. 쉬이이익 쉬익….  충남 서산 천수만의 탐조대를 향해 철새 떼가 날아간다. 수백 수천 발의 화살이 허공을 가르듯 날카로운 소리가 귓전을 때린다. 반사적으로 고개를 돌리면 시베리아의 혹독한 겨울을 피해 10월 중순부터 날아든 가창오리가 먹구름처럼 떼를 지어 머리 위를 날고 있다.

간척지에 들어선 그들만의 왕국

해마다 천수만을 찾는 가창오리는 약 30만에서 50만 마리. 녀석들은 추수가 끝난 서산 A지구와 B지구 간척지 논에서 밤새 낙곡(落穀)으로 배를 채운 뒤 휴식을 취하기 위해 수백 수천 마리씩 무리를 지어 간월호로 날아든다. 가창오리를 비롯해 기러기·청둥오리·흰뺨검둥오리·흰죽지·알락오리·큰고니·개리 등 겨울 철새가 가장 많이 관찰되는 시기는 10월부터 11월까지. 최대 55만 마리가 몰려들어 천수만에 새들의 왕국을 건설한다.
세계적 철새도래지로 부상한 천수만은 얕은 바다라는 뜻이다. 수심이 얕고 수초와 암초가 많아 물고기들의 산란장 역할을 했다.

그러나 농경지를 확보하기 위한 방조제가 1984년에 완공되고 간척공사가 끝나자 간월호를 둘러싼 A지구 간척지와 부남호를 둘러싼 B지구 간척지 등 4700여만 평에 온갖 철새들이 날아들기 시작했다.

탐조여행은 천수만이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서산시 부석면 창리의 야산에 들어선 서산버드랜드에서 시작된다. 철새박물관과 4D 영상관, 철새들의 박제 등을 전시한 철새박물관을 둘러본 후 피라미드 모양의 4D 영상관에서 기러기의 비행을 경험하고 나면 A지구 간척지를 한 바퀴 도는 철새탐조투어 버스가 기다린다.

가창오리 떼의 저공비행은 공포 그 자체다. 녀석들의 빠른 날갯짓이 새벽공기를 진동하면 아침이슬 머금은 갈대가 부르르 떨다 저도 모르게 영롱한 이슬방울을 하나둘 떨어뜨린다. 알프레드 히치콕 감독의 스릴러 영화 ‘새’를 떠올렸기 때문일까. 몇몇 탐조객들이 환호성에 가까운 비명을 지른다.

가창오리 떼의 쉼터 찾기가 끝나면 간월호에서 날아오른 큰기러기들이 V자 편대를 이뤄 가창오리 떼가 떠난 논으로 먹이를 찾아 이동한다. 큰기러기의 비행은 우아하고 질서가 있다. 다정한 형제처럼 줄지어 함께 날아간다고 해서 안항(雁行)이란 낱말까지 탄생시켰으니 녀석들의 품위 있는 비행을 감히 누가 흉내라도 내겠는가.


먹이를 찾아서 혹은 쉼터를 찾아서 간월호와 인근의 농경지로 자리바꿈이 끝나면 가창오리와 큰기러기 떼는 해미천이 흘러드는 제1 탐조대와 제2 탐조대 사이의 간월호 모래톱과 논에서 날개를 접은 채 한가로이 시간을 보낸다. 30㎞에 이르는 간월호 탐조로는 철새들의 전시장이다. 이따금 덩치 큰 백로와 왜가리가 가창오리 틈에 끼여 물고기 사냥을 하고, 뒤늦게 모습을 드러낸 흑두루미는 우아한 자태를 뽐내며 호수를 선회비행한다.

가창오리는 신경이 무척 예민하다. 탐조여행 버스가 뽀얀 먼지를 꼬리에 달고 달릴 땐 꿈쩍도 않다가 사람만 접근하면 순식간에 물수제비를 뜨듯 수면에서 튕겨 올라 어지럽게 날아오른다. 하지만 녀석들은 하늘을 뒤덮을 듯 날아오르면서도 서로 부딪치는 일이 없다. 녀석들의 비행술이 얼마나 정교하던지 천수만철새기행전위원회는 가창오리 마스코트인 ‘창이’에게 빨간 마후라를 선물했다.

천수만의 하루가 저문다. 서산 너머로 해가 뉘엿뉘엿 기울고 동녘에서 달이 휘영청 떠오르면 천수만은 찬 서리를 맞으면서 어디론가 날아가는 큰기러기들로 장관을 연출한다. V자 편대의 큰기러기들이 해나 달을 향해 날아오르는 모습은 한 장의 연하장 같다. 날개가 빨갛게 물든 큰기러기가 너울너울 춤을 추고, 누렇게 탈색한 갈대는 고단한 날개 쉬어가라고 손을 저어 기러기를 부른다.

해를 향해 날아오르는 V자 편대

가창오리 떼의 환상적인 군무는 해가 서산을 완전히 넘어간 직후에 펼쳐진다. 녀석들의 생체시계는 워낙 정확해 결코 이르거나 늦지 않다. 제3 탐조대 건너편 천수만 모래톱에 앉아 있던 가창오리 떼의 울음소리가 예사롭지 않다. 마치 출병을 앞둔 수십만 대군단의 술렁거림이라고나 할까. 정찰병을 자처한 듯 가창오리 수십 마리가 떼를 지어 천수만을 한 바퀴 돌고 나면 화려한 군무가 펼쳐진다. 먹이를 찾아 나서는 대규모 행진이 시작된 것이다.

붉은 노을을 배경으로 수십만 개의 점으로 변한 가창오리가 모이고 흩어지고, 다시 모이면서 먹구름처럼 다양한 형태를 연출한다. 점들의 집합은 거대한 생명체다. 왕관 모양의 점들이 팽이처럼 빠르게 돌다가 한순간 도넛을 닮은 블랙홀을 선보인다. 꽈배기 모양으로 변한 가창오리 떼가 부메랑으로 변하는 데 걸리는 시간은 불과 몇 초.

거대한 부메랑이 간월호를 한 바퀴 돌고 나면 가창오리 떼는 한 마리 거대한 용처럼 4∼5㎞의 대열을 만든다. 두 무리로 갈라진 부메랑이 정면으로 부딪치기도 하지만 가창오리는 비행의 고수답게 점과 점 사이로 파고들어 다시 거대한 생명체를 만든다.

하늘을 빈틈없이 까맣게 물들였던 가창오리 떼가 사라진 순간. 간월호를 수놓은 갈대꽃이 비로소 가창오리 떼의 군무가 주는 감동과 공포에 몸을 부르르 떤다.

-- 천수만 별미 삼총사 --

천수만은 생명의 원천, 개흙을 품고 있는 천혜의 어패류 서식지다. 천수만의 동쪽은 홍성군 서부면·보령시 천북면에 맞닿아 있고, 북쪽은 서산시 부석면과 태안군 남면, 그리고 동쪽은 태안군 안면읍과 접하고 있다. 기다란 안면도가 방파제 역할은 해 호수처럼 잔잔한 바다에서 사시사철 어패류가 나온다. 특히 찬바람 부는 늦가을부터 겨울철까지 천수만을 둘러싼 항구와 포구에는 별미여행을 하러 온 관광객들로 북적거린다.

키조개(보령시 오천면)

오천항 앞 깊은 바다에서 잠수부들이 직접 채취하는 키조개는 전국 생산량의 70%로 연간 4000톤에 달한다. 키조개는 곡식을 까부는 ‘키(箕)’를 닮았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 수심 20∼50m의 갯벌에 서식하는 키조개의 길이는 30㎝ 내외며 3∼5년생을 식용으로 이용한다. 11월부터 5월까지 가장 맛있다.

키조개는 불포화지방산과 단백질이 풍부해 정혈작용으로 산후조리나 피부미용에 좋으며 혈액 속의 콜레스테롤 수치를 낮춰주는 효과가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회, 구이, 꼬치, 전, 죽, 샤브샤브, 게두보채, 궁중보채 등 다양한 조리법이 개발됐다. 오천항에 키조개 요리 전문 음식점이 15곳 정도 있다.

굴구이(보령시 천북면)
홍성방조제를 사이에 두고 남당항과 이웃한 보령 천북면 장은포구는 서해안 최대의 굴마을로 형형색색의 천막으로 이루어진 90여 개의 음식점에서 굴을 비롯해 다양한 어패류를 맛볼 수 있다. 천북굴을 으뜸으로 꼽는 이유는 개흙이 풍부한 천수만에서 자라 맛이 담백하고 영양이 풍부하기 때문이다.
11월부터 이듬해 3월까지 가장 맛이 좋은 굴은 비타민이 풍부하고 소화흡수력이 좋아 바다의 우유로 불린다. 칼슘과 인, 철 등 무기질도 풍부하다. 구이용 굴을 비롯해 굴밥, 굴회, 굴칼국수, 굴삼겹살, 굴보쌈, 굴전, 굴탕수육 등 굴을 재료로 한 음식이 다양하다.

새조개(홍성군 남당리)

가을철 대하로 유명한 남당항은 찬바람이 불면 새조개가 나온다. 새조개는 속살에 붙어 있는 발이 새의 부리를 닮았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 12월부터 이듬해 3월까지가 제철로 씨알이 굵고 부드럽다. 단백질과 미네랄은 물론 피로회복에 좋은 타우린 성분도 풍부해 대표적인 겨울철 보양식품으로 꼽힌다.

새조개는 무침과 구이보다 끓는 물에 살짝 데쳐 먹는 샤브샤브가 맛있다. 냄비에 무, 대파, 팽이버섯, 마늘 등 야채를 듬뿍 넣고 펄펄 끓인 뒤 새조갯살을 담가 5초 정도 익힌다. 그리고 초장에 찍어 입안에 넣으면 연하게 씹히는 맛이 일품이다. 남당항에 새조개 전문 음식점 70여 곳이 성업 중이다.



여 행 수 첩

가는 길

서해안고속도로 홍성IC에서 세계적 철새도래지인 서산 천수만까지는 약 13㎞. 가창오리는 추수가 끝나는 10월 중순부터 날아오기 시작해 날씨가 추워지는 11월 중순까지 머물다가 금강 하굿둑으로 이동한다. 가창오리의 화려한 군무는 해가 떨어진 직후에 펼쳐진다.

가창오리 무리를 관찰하려면 간월도 입구의 무논탐조대를 찾도록 한다. 더욱 많은 새를 관찰하고 싶다면 간월호와 부남호 주변의 농로를 따라 탐조여행을 떠나거나 오전 10시부터 오후 4시까지 한 시간 간격으로 운행하는 탐조버스를 타는 것이 좋다. 

볼거리

간월도의 간월암은 조선 초 무학대사가 창건한 암자로 썰물 때는 육지와 연결되고 밀물 때는 섬이 된다. 특히 보름달이 휘영청 밝은 밀물 때는 물 위에 떠 있는 암자처럼 신비롭다. 이밖에도 서산에는 백제의 미소로 널리 알려진 서산마애삼존불상, 개심사, 안견기념관 등이 있다.

프란치스코 교황이 방문해 화제를 모은 해미읍성은 조선 태종 때 왜구를 막기 위해 쌓기 시작해 세종 때 완공된 성으로 동문, 서문, 남문의 3문 가운데 남문인 진남루만 원래의 모습이고 동문과 서문은 1974년에 다시 만들었다.

해미읍성은 1866년 병인박해 때 천주교 신자 1000여 명을 처형했던 곳으로 김대건 신부의 증조부도 이곳에서 순교했다고 전해진다. 성안에는 천주교인을 처형한 회화나무와 사형대 등이 남아 있다. 신자들의 머리채를 묶어 매달아 고문했던 회화나무에는 지금도 철사줄이 박혀있다.

먹거리
간월도에는 대추·호두·은행·굴 등을 넣은 영양굴밥이 별미다. 굴밥에 양념장을 살짝 뿌려 비빈 후 어리굴젓을 얹어 먹는다. 간월도에는 영양굴밥 전문점이 수두룩하다. 간월도 어촌계에서 판매하는 어리굴젓은 초겨울에 채취한 굴로 만들어져 싱싱하다.

간월도에 펜션과 모텔 등 숙박시설이 몇 곳 있으나 탐조철에는 방 구하기가 어려우므로 인근 태안이나 서산 시내에서 숙소를 구하는 것이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