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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길잡이

[여행] 단풍의 계절에 찾은 충북 단양팔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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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단풍의 계절에 찾은 충북 단양팔경

한국교직원신문 2014-10-27


단풍잎은 붉고

절벽은 하늘에 오르려하고




충북 단양의 단양팔경(丹陽八景)을 울긋불긋하게 채색한 단풍은 퇴계 이황을 연모하는 관기 두향의 단심(丹心)만큼이나 붉다. 퇴계는 1548년에 단양군수로 부임한다. 이때 퇴계의 나이는 48세. 9개월이라는 짧은 재임 기간에도 불구하고 퇴계는 단양의 풍광에 반해 곳곳을 유람하며 단양팔경을 선정하고 이를 주제로 40여 편의 주옥같은 시를 남겼다.

‘산은 단풍잎 붉고 물은 옥같이 맑은데/ 석양의 도담삼봉엔 저녁놀 드리웠네/ 신선의 뗏목을 취벽에 기대고 잘 적에/ 별빛 달빛 아래 금빛파도 너울지더라’

단양팔경 중 제1경인 도담삼봉의 가을 풍경을 읊은 퇴계의 시이다. 남한강 상류의 푸른 강심에 그림자를 드리운 도담삼봉은 조선 개국공신인 정도전의 유년시절을 지켜본 벗이자 퇴계의 시심을 자극한 명승지로 퇴계를 비롯해 정도전·정약용·김병연 등이 도담삼봉의 절경에 취해 남긴 시가 무려 131수나 전한다.

단양팔경 중 제2경인 석문은 도담삼봉 상류 200m 거리에 있다. 석문은 석회동굴이 붕괴하고 남은 동굴 천장의 일부가 구름다리처럼 남은 것이다. 단풍에 둘러싸인 석문 자체의 형태도 특이하지만, 석문을 통해 보이는 남한강과 도담마을은 한 폭의 그림처럼 아름답다. 낚싯배를 타고 남한강에서 올려다보는 석문은 푸른 하늘에 걸린 무지개를 보는 듯하다.

시심(詩心) 불러일으키는 풍광

퇴계 이황과 겸재 정선 등 수많은 시인 묵객들이 글과 그림으로 찬사를 한 구담봉과 옥순봉은 장회나루에서 유람선을 타고 충주호를 미끄러져야 만날 수 있다. 그 옛날 나룻배를 타고 남한강을 건널 때보다는 운치가 덜하겠지만, 색색의 물감을 풀어놓은 듯 단풍으로 물든 충주호는 절로 시심을 불러일으킨다.

장회나루 건너편의 15m 높이 바위는 신선이 내려왔다는 강선대이다. 퇴계와 두향이 시를 짓고 거문고를 타던 곳으로 퇴계가 풍기군수로 발령 나자 두향은 강선대 아래 남한강 변에 움막을 짓고 평생 퇴계를 그리며 살았다고 한다. 그러던 어느 날 두향은 퇴계가 69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을 듣고 남한강에 몸을 던진다. 퇴계와 이별한 지 21년째 되던 해였다.

강선대 아래에 묻힌 두향의 무덤은 충주댐 건설로 수몰 위기에 처하자 강선대 위쪽으로 이장해 퇴계가 잠들어 있는 안동의 하늘을 우러르고 있다. 이심전심이라고나 할까? 퇴계의 마지막 유언도 ‘매화에 물을 주어라’였다. 평생 매화를 두향과 동일시해 온 퇴계에게 매화는 곧 두향이고 두향은 곧 매화였다.

단양팔경 중 시인 묵객들로부터 최고의 칭송을 받은 봉우리는 제3경인 구담봉으로 무려 158수의 시가 전해온다. 중국의 소상팔경이 이보다 나을 수 없다며 구담봉을 극찬한 퇴계가 시 한 수 선물하지 않았을 리 없다.

‘구담을 지나는 새벽달은 산에 걸려있어/ 그곳을 상상하니 뵐동말동 아득하이/ 주인은 이제 와서 다른 곳에 숨었으니/ 학과 잔나비 울고 구름만 한가하네’

유람선이 가까이 다가갈수록 구담봉은 더욱 웅장해진다. 병풍을 닮은 바위절벽과 바위틈에 뿌리를 내린 소나무는 겸재 정선의 ‘구담도’를 그대로 빼닮았다. 푸른 호수에서 일렁이는 구담봉 그림자를 지우며 구담봉 모퉁이를 돌자 멀리 옥순봉이 모습을 드러낸다.

제4경인 옥순봉은 희고 푸른빛을 띤 바위들이 힘차게 솟아 마치 대나무 싹처럼 보인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으로 제천의 땅이다. 단양이 고향인 두향은 퇴계에게 옥순봉을 단양 땅으로 만들어 달라는 청을 했다. 하지만 청풍부사가 거절하자 퇴계는 석벽에 단구동문(丹丘洞門)이라는 글을 새겨 단양의 관문으로 정했다는 이야기가 전해온다.

크고 작은 바위봉우리를 차례대로 쌓아 놓은 듯한 옥순봉은 구담봉보다 규모는 작지만, 입체감이 도드라진다. 퇴계는 이 풍경을 보고 ‘매달린 듯 깎아지는 절벽은 하늘에 오르려 하고/ 새로 간 장검은 경중에 꽂혔더라/ 누가 달 여울에 가로 앉아 시선을 부를 것이며/ 늦게 취하여 신공의 묘함을 알 수 있으랴’라고 노래했다.

김홍도도 망설이게 한 사인암

단양팔경 제5경인 사인암은 하늘을 닮아 더욱 푸른 계류가 기암절벽을 안고 휘도는 운선계곡에 있다. 마치 해금강을 옮겨놓은 듯 하늘을 향해 뻗은 붉은 암벽과 중력의 법칙을 무시한 채 수직의 바위 틈새에 뿌리를 내린 노송은 세상 어떤 조각가도 흉내 낼 수 없는 신기의 결정체. 오죽했으면 조선 최고의 화원으로 불리는 단원 김홍도가 사인암을 화폭에 담으려 붓을 잡았다가 1년여를 고민했을까.

삼선암은 단양팔경 중 하선암(제6경), 중선암(제7경), 상선암(제8경)을 이르는 말로 선암계곡에 있다. 삼선계곡으로도 불리는 선암계곡은 단성면 가산리에서 별천리까지 이어지는 10㎞ 길이의 계곡으로 색색의 물감을 흩뿌린 듯 단풍에 물든 선암계곡을 배경으로 여인의 피부처럼 매끄러운 기암괴석이 산수화를 그리고 있다.

하선암은 삼선암 중 가장 돋보이는 바위이다. 마당바위로 불리는 3단의 너른 반석 위에 신선바위로 불리는 둥글고 커다란 바위가 덩그러니 올라 있고, 하선암 앞의 소(召)는 바닥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깊어 에메랄드빛을 띠고 있다. 특히 가을에는 붉게 물든 단풍이 선경을 이뤄 시인 묵객들이 가장 많이 찾던 곳이다.

하선암에서 2㎞ 상류에 위치한 중선암은 삼선계곡의 중심지로 두 마리의 용이 용틀임하는 형상의 쌍용폭포, 옥렴대와 명정대로 불리는 두 바위 사이로 흐르는 계류는 바라만 보아도 시원하다. 중선암에 새겨진 ‘사군강산삼선수석(四郡江山三仙秀石)’은 단양·영춘·제천·청풍 4개의 군 중에서 선암, 중선암, 하선암이 가장 아름답다는 뜻이다.

“위에는 오래된 소나무와 늙은 나무가 있어 어떤 것은 눕기도 하고 엎어지기도 하여 얽혀 있다. 시냇물이 길게 우묵한 돌에 이르면 돌구유에 물을 담은 것 같고, 동글게 오목한 돌에 이르면 돌가마에 물을 담은 것 같다. 물과 돌이 서로 부딪치며 밤낮으로 시끄러워서 물가에서는 사람의 말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이중환이 택리지에서 가장 사실적으로 묘사한 이 글은 상선암을 두고 이른 말이다. 중선암에서 상류 쪽으로 2㎞ 지점에 있는 상선암은 사각기둥 형태의 돌 여러 개를 차곡차곡 쌓아놓은 형상으로 삼선암 중에서 가장 기묘하다. 층층이 몸을 맞댄 바위틈으로 힘찬 계곡 물이 휘돌아 흐르고 상선암 뒤로는 단양의 산들이 단풍으로 활활 타오른다.
박강섭 국민일보 관광전문기자


사진설명=(위)단양팔경 제5경인 사인암이 울긋불긋한 단풍으로 물들었다. 사인암은 단원 김홍도가 1년을 고민한 끝에 그림을 그렸을 정도로 보는 위치에 따라 느낌이 사뭇 다르다.
석회동굴이 붕괴되고 남은 동굴 천장의 일부가 구름다리처럼 남은 석문 .
육쪽마늘의 생산지인 단양의 마늘요리.
경비행기를 타고 내려다본 남한강과 단풍으로 물든 산길.


이자벨라 버드 비숍 여사와 도담삼봉

구한말인 1895년에 벽안의 여인이 한양에서 나룻배를 타고 남한강을 거슬러 올라 충북 단양에 발을 디뎠다. 홍수로 나룻배가 떠내려가는 등 갖은 고초를 겪은 그녀는 영국왕립 지리학회 최초의 여성회원이자 여행가로 ‘은둔자의 나라’ 비경을 찾아 나선 이사벨라 버드 비숍 여사였다.

“한강의 미(美)는 내가 이제야 보게 된 가장 아름다운 강마을인 도담에서 절정에 이르렀다. 넓게 뻗어있는 깊은 강과 높은 석회 절벽, 그것들 사이의 푸른 언덕 위에 그림 같은 낮은 처마와 갈색 지붕의 집들이 지어져 있었다. 또 강의 입구로 인도해 주는 세 개의 그림 같은 뾰족한 삼각바위가 있었다.”
(이사벨라 버드 비숍의 ‘한국과 그 이웃나라들’ 중에서)

옥순봉과 구담봉의 비경에 감탄한 그녀는 두 바위봉우리가 ‘천국의 향기’와 같다고 묘사했다. 그리고 도담삼봉을 품은 도담마을에 이르러선 ‘이제야 보게 된 가장 아름다운 강마을’이라고 극찬을 아끼지 않았다. 그녀가 감탄한 세 개의 뾰족한 삼각바위가 바로 도담삼봉이다.

KBS 대하드라마 ‘정도전’으로 유명한 도담삼봉은 삼도정으로 불리는 정자가 위치한 남편봉을 중심으로 상류의 첩봉과 하류의 처봉으로 이루어져 있다. ‘도담’은 마을 이름이고, ‘삼봉’은 태조 이성계와 함께 조선을 건국한 정도전(1342∼1398)의 호(號). 외가인 단양에서 태어나 이곳에서 불우한 유년시절을 보낸 정도전은 도담삼봉의 절경에 매료돼 ‘삼봉’을 호로 삼았다고 한다.

도담삼봉이 위치한 도담나루터는 조선시대에 죽령을 넘은 선비들이 한양으로 가는 나룻배를 타던 곳으로 송파나루나 뚝섬까지는 3~4일 거리. 지금은 충주댐이 들어서면서 뱃길도 막히고 물길도 달라졌지만 남한강 수운이 번성했던 시절에는 도담나루터가 소금배로 흥청거렸다고 한다.

남한강 푸른 물에 발을 담근 도담삼봉은 계절마다 독특한 산수미를 연출해 추사 김정희는 “도담삼봉의 품격과 운치는 신선 그 자체”라고 극찬했다. 도담삼봉이 가장 아름다운 때는 초가을에 남한강 물안개가 아침햇살에 화염처럼 물들 때이다.

도담마을은 현재 27가구가 사는 육지 속의 섬이다. 주민들이 나들이를 가거나 아이들이 학교에 가려면 21세기를 살아가는 요즘도 나룻배를 타야 한다. 그러나 겨울에 얼음이 꽁꽁 얼면 나룻배를 탈 수 없어 뱃사공이 수시로 오가며 얼음이 얼지 못하도록 물길을 만든다.





여 행 수 첩

가는 길

중앙고속도로 북단양 나들목에서 내려 5번 국도를 타고 단양 방면으로 9㎞를 달리면 도담삼봉과 석문이 나온다. 구담봉과 옥순봉을 감상하려면 장회나루에서 유람선을 타야 한다. 단양IC에서 내려 단성역 방면으로 달리다 단양1교와 우화교를 건너면 우화삼거리가 나온다. 이곳에서 좌회전해 선암계곡을 거슬러 오르면 하선암, 중선암, 상선암이 차례대로 나온다.

볼거리

단양에는 ‘바보 온달과 평강공주’ 설화로 유명한 온달 장군 유적지가 있다. 온달산성은 고구려 명장 온달 장군이 신라에 빼앗긴 남한강 유역을 되찾기 위해 쌓았다고 전해오는 산성으로 남한강을 굽어보고 있다. 683m 길이의 반월형 성곽에 오르면 북으로 산자락을 휘돌아 가는 남한강 물줄기가 시원하다.

단양 읍내의 단양다누리센터(043-420-2951)는 아쿠아리움, 낚시박물관, 도서관, 시외버스터미널 등으로 이루어진 복합문화공간. 특히 다누리 아쿠아리움은 국내 최대의 민물어류 수족관으로 국내 민물 어류를 비롯해 아마존 강과 메콩 강 등에 서식하는 해외 민물 어류 등 145종 1만5000여 마리가 전시돼 있다. 수심 8m에 수량 650t 규모의 메인 수조가 압권이다.

먹거리

육쪽마늘 주산지인 단양은 마늘 음식이 유명하다. 단양 읍내의 성원 마늘약선요리(043-421-8777)는 인공조미료 대신 100여 종의 효소와 한약재로 맛을 내는 음식점으로 마늘요리와 약선요리를 접목했다. 다누리센터 옆에 위치한 돌집식당(043-422-2842)은 수육·더덕·양념마늘을 상추에 싸서 먹는 마늘삼합을 비롯해 곤드레마늘솥밥, 마늘튀김, 구운 마늘, 흑마늘이 맛있다. 단양군 관광관리공단 043-421-7885